풍류, 술, 멋

동양화가 말을 걸다_15

醉月 2013. 9. 1. 01:30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고 살아도 나 좋으면 그뿐”
임포 ‘산원소매’

 

동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 2수(二首)
임포(林逋)

꽃이란 꽃 다 떨어진 뒤 홀로 곱고 아름다워 (衆芳搖落獨暄姸)
작은 동산 향한 운치 가득가득 차지하네 (占盡風情向小園)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스듬히 드리우고 (疎影橫斜水淸淺)
그윽한 향기 떠도는데 달은 이미 어스름 (暗香浮動月黃昏)
겨울새는 앉으려고 먼저 주위 둘러보고 (霜禽欲下先偸眼)
어지러이 나는 나비 외로운 혼을 아는 듯해 (粉蝶如知合斷魂)
다행히 나는 시를 읊어 서로 친할 수 있으니 (幸有微吟可相狎)
악기가 없어도 항아리술 함께할 수 있으리 (不須檀板共金尊)

▲ 정선 ‘고산방학’ 비단에 연한색, 22.8×27.8㎝. 간송미술관

“오늘은 뭐했니?”

“산양도 보고 멧돼지도 쫓았어요.”

“멧돼지? 무슨 멧돼지?”

“부대 옆에 산이 있는데 눈이 많이 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내려오는 것 같아요. 근데 덩치가 장난이 아니에요. 1m가 넘어요.”

“그래? 멧돼지고기 맛있다는데 잡아서 먹지 그랬냐? 청정지역에 사니까 고기도 맛있을 텐데.”

“안 돼요. 우리 부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데 그걸 멧돼지가 와서 먹어요. 우리는 쓰레기 치워주니까 좋고 멧돼지는 굶지 않아서 좋고 상부상조하는 거죠. 어미 돼지 한 마리만 오는 것이 아니에요. 새끼를 여섯 마리씩이나 거느리고 온 식구가 총출동해서 와요. 그러니까 죽이면 안 돼요.”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이 전화해서 한 말이다. 입대하기 전에는 고기밖에 모르던 아들이 멧돼지를 죽이면 안 된단다. 사람한테 이로운 동물이니까 죽이면 안 되고 새끼가 있는 어미니까 죽이면 안 된단다. 인내심뿐만 아니라 동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는 것 같아 군대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된다. 기왕이면 멧돼지와 산양이 수시로 내려오는 최전방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풍류와 은일의 상징 매처학자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다. 천지가 눈에 덮여 형체를 감추었다. 여간해선 바깥 출입조차 그만둘 정도로 쌀쌀한 겨울날, 유건(儒巾)을 쓴 선비가 호숫가 언덕에 서 있다. 고목에 두 팔을 걸친 걸 보니 그 자리에 서 있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곁에 선 동자는 선비의 그런 모습에 이골이 난 듯 무심히 서 있다. 날도 추운데 선비는 왜 여기 서 있는 걸까.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 위를 올려다본다. 학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선비가 기다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학이다. 잠시 후에 학은 날개를 접고 선비 곁에 내려앉을 것이다. 학이 무사히 귀가했으니 선비도 마음을 내려놓고 비로소 방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식 같은 학이 아닌가.

허리가 아프도록 서서 사람 대신 학을 기다린 주인공은 송(宋)나라 때 시인 임포(林逋·967~1028)다. 그는 일찍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지만 공부에 전념하여 시서화에 일가를 이루었다. 벼슬에 뜻이 없어 관로를 포기하고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를 방랑했다. 결혼은 하지 않아 자식도 없었다. 나중에는 항주(杭州)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들어가 초옥(草屋)을 짓고 살았다. 가끔씩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청담(淸談)을 나눌 뿐 20년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임포가 사는 집 주변에는 매화나무가 많았다. 매화나무 숲에서 자식 대신 학을 기르며 살았다. 매화를 부인으로, 학을 자식 삼아 사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다.

매처학자의 은거생활은 은사(隱士)의 풍류로 상징되어 많은 학자의 부러움을 샀다. 평생을 등골 빠지게 일해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들에게 ‘무자식 상팔자’인 매처학자는 그야말로 최고로 팔자 좋은 사람이었다. 돈 들어갈 일 없지, 속 썩을 일 없지. 더구나 시도 잘 지어 ‘그윽한 향기 떠도는데 달은 이미 어스름(暗香浮動月黃昏)’ 같은 명구를 지어 길거리의 어린아이조차 ‘암향부동(暗香浮動)’을 읊조리게 했으니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임포만큼 심간 편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임포가 마치 자신들이 지향했던 이상적 삶을 대신 살아주기라도 하는 듯 대리만족을 느끼며 매처학자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심을 보냈다. 임포가 친구를 맞이한 매화나무 그늘은 한가로운 시정의 공간으로 칭송받았다. 자연과 벗하며 노년을 보내는 임포의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 낭만이요 서정이었다.


성긴 그림자는 비스듬히 드리우고

임포를 부러워한 사람은 월급쟁이 관리나 학자들만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송 황제 진종(眞宗·998~1022)은 비단과 양식을 보내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인종(仁宗·1023~1063)은 장례 비용을 대주면서 ‘화정(和靖)’이란 호를 하사했다. 중국과 조선의 선비와 화가들은 수백 년에 걸쳐 시와 그림으로 그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멈추지 않았다. 임포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암향부동(暗香浮動)’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뜰에 매화를 심고 그윽한 향기를 맡겠노라 야단법석이었다.

정선이 그린 ‘고산방학(孤山放鶴)’도 임포에 대한 찬사이자 오마주다. 임포가 기대고 선 고목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매화나무다. 봄보다 먼저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로 생명의 문을 여는 선구자 같은 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겨울. ‘암향부동(暗香浮動)’이 아무리 멋있는 문장이라 한들 꽃이 없는데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는 없다. 대신 정선은 ‘암향부동’의 앞 구절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스듬히 드리우고(疎影橫斜水淸淺)’에 주목했다. ‘고산방학’에 등장하는 고목은 몇 그루일까. 두 그루일까 세 그루일까. 얼핏 보면 세 그루 같지만 사실은 두 그루다. 임포와 동자를 호위하듯 서 있는 두 그루 나무는 진짜 나무다. 오른쪽 학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는 진짜 나무가 아니다. ‘성긴 그림자’다. 다만 그 그림자가 물 위가 아니라 눈 위에 드리웠을 뿐이다. 얼어붙은 호수에 그림자가 비칠 수 없지 않은가. 그윽한 향기를 그릴 수 없어 성긴 그림자를 표현한 정선은 임포보다 더 매화를 잘 아는 ‘매처학자(梅處學者)’다.

정선은 같은 제목의 그림을 한 점 더 그렸다. 2006년 독일에서 경북 칠곡 왜관수도원으로 반환된 화첩에 실린 작품이다. 왜관수도원 소장 작품에는 ‘고산방학’이란 제목이 분명히 적혀 있고 겨울 풍경이 더 뚜렷하지만 필자는 간송에 소장된 이 작품이 훨씬 더 임포의 시 세계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성긴 그림자’ 때문이다. 그림자가 이 그림을 살렸다

 

“무릉도원에 가도 그리운 곳은 허름한 나의 집”
왕유 도원행

 

도원의 노래(桃源行)
왕유(王維)

고깃배로 물 따라가 산속 봄을 즐기노니(漁舟逐水愛山春)
양쪽 언덕 복숭아꽃 가는 나루 끼고 있어(兩岸桃花夾去津)
꽃과 나무 앉아 보다 먼 줄도 몰랐는데(坐看紅樹不知遠)
푸른 개울 다하여도 사람 자취 볼 수 없네(行盡靑溪不見人)
산굴에 몰래 드니 후미지고 으슥하다(山口潛行始隈隩)
산 열리고 들이 뻗어 넓은 평원 펼쳐지네(山開曠望旋平陸)
아득한 곳 살펴보니 구름 속에 나무 있어(遙看一處瓚雲樹)
가까이 들어가니 집집마다 자란 꽃 대(近入千家散花竹)
나무꾼이 처음에는 한나라 이름 전하더니(樵客初傳漢姓名)
사는 사람 입은 옷은 아직 진의 의복이네(居人未改秦衣服)
사람들은 모두 함께 무릉도원 살고 있어(居人共住武陵源)
바깥세상 버려두고 밭과 정원 일으켰네(還從物外起田園)

▲ 안중식 ‘도원행주’ 1915, 비단에 색, 143.5×50.7cm, 국립중앙박물관
‘전쟁이 발발했다. 폭격기가 시도 때도 없이 폭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방공호로 뛰어야 했다. 한밤중에도 비행기는 출몰했다. 공습이 계속되자 엄마는 우리 사남매를 노교수님이 계신 안전한 시골로 내려 보냈다. 기차를 타고 처음 가 본 집은 낡았으나 어마어마하게 컸다. 벽에는 칼과 방패가 걸려 있고 오래된 그림과 남자 초상 조각이 진열되어 있었다. 남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낯설고 무료했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가 지루했던 나는 어느 날 큰오빠에게 술래잡기를 제안했다. 큰오빠가 술래를 했다. 언니와 작은오빠는 잽싸게 달려가 안전한 자리에 숨었고 막내인 나는 숨을 곳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그때 골방 구석에 있는 옷장이 보였다. 나는 뛰다시피 옷장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옷 속에 파묻혀 허둥거리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솔잎사귀가 뒷목에 닿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옷장 속이 아니라 마법의 세계였다.’

영국 작가 C.S.루이스의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스시의 이야기들’ ‘반지의 제왕’과 함께 세계 3대 판타지소설로 꼽히는 책인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배를 타고 가다 만난 환상의 세계

한 어부가 무릉(武陵)에서 살았다. 그는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을 만났다. 강 양쪽에 다른 나무는 없었다. 오직 복숭아꽃만이 가득 피어 싱그러운 향기가 진동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복숭아꽃이 바람에 날렸다. 정신이 아찔할 만큼 황홀했다.

어부는 강기슭에 배를 대고 산속에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수십 걸음을 걸어가자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더니,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동진(東晋)의 작가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는 그렇게 시작된다.

안중식(安中植·1861~1919)의 ‘도원행주(桃源行舟)’는 어부가 도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지그재그로 펼쳐진 강 언덕에는 발그레한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고 어부는 도원 입구에 거의 도착했다. 복숭아꽃은 마치 어부의 길을 인도하기라도 하듯 산굴 안쪽으로 이어진다. 환상의 근원이 그쪽임을 의미한다. 산굴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걸려 있지만 꽃은 피어 있지 않다. 현실 세계이기 때문이다. 복숭아꽃은 유토피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는 상징코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몽환적 이야기로 결코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을 읊었다.

안중식은 산주름을 각진 형태로 과장스럽게 처리함과 동시에 진분홍과 청록색을 대비시켜 비현실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작품도 제법 커서 그 앞에 서면 내가 마치 무릉도원으로 배를 저어가는 어부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는 ‘도원행주’ 외에도 ‘도원문진’ ‘무릉춘색’ 등 여러 점의 도원도를 더 그렸다. 시대가 너무 힘들어 그림 속에서나마 현실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안중식은 그림 상단에 해서로 제시를 또박또박 적었다. 그런데 제시의 내용이 도연명의 ‘도화원기’가 아니라 왕유가 쓴 ‘도원행(桃源行)’이다.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도원을 이상향으로 읊은 이래 왕유(王維·699~759), 한유(韓愈·768~824), 소식(蘇軾·1037~1101), 왕안석(王安石·1021~1086) 등 많은 시인이 같은 주제로 시를 지었다. 시에서 강조한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도원을 이상향으로 설정한 것은 도연명의 뜻을 따랐다.

조선 사람들은 도원을 노래한 여러 시인 중에서도 특히 왕유를 좋아했다. 1779년부터 1883년까지 왕실 소속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을 선발하는 ‘녹취재(綠取才)’에서 ‘도원도(桃源圖)’와 관련된 화제(畵題)는 모두 13건이 출제되었는데 그중 11건이 왕유의 시였다.

조선 사람들의 왕유 쏠림 현상을 방증하는 단적인 예다. 안중식도 왕유를 편애했다. 이것이 도연명이라는 원조를 제쳐두고 굳이 왕유를 선택한 이유다.


환상이 베풀어준 또 다른 세상

안중식은 ‘도원행주’를 1915년에 완성했다. 1915년은 프란츠 카프카가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어느 날 아침 거북한 꿈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이 침대에서 괴물 같은 벌레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라고 시작하는 ‘변신’을 탈고한 해다. 식민지 치하라는 사나운 시대의 압력과 실존에 대한 공포가 두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생전에 전혀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두려움에 대한 반응은 비슷해 흥미롭다.

이런 유사성은 ‘도화원기’와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니아 연대기’는 독일의 공습이 한창이던 2차대전이 배경이고, ‘도화원기’는 진(秦) 말기에 전란을 피해 숨은 사람들의 세상이 배경이다. 현실세계에서 환상세계로 넘어가는 바탕에는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고립이 때로 훌륭한 창작의 배경이 된 예는 이뿐만이 아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를 피해 별장에 온 열 사람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었고,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는 언제 잡혀 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탄생했다. 그들 모두 현실을 잠시 떠남으로써 시시각각 조여 오는 불안과 강박감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일 뿐 현실은 아니다. 아무리 현실 속에 참담함이 흥건하게 고여 있을지라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된다. ‘도화원기’의 결말이 그 진리를 깨우쳐준다. 어부는 무릉도원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허름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후 또 다시 무릉도원을 찾아 나설지라도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시를 읽고 그림을 감상하는 이유도 어부가 집으로 돌아온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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