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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9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5·1경기장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합뉴스 |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60여 일이 넘도록 은둔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이 평양에 쏠리면서 갖가지 추측과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김정일의 신병에 이상이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8월 중순 김정일은 뇌졸중 또는 뇌혈종으로 보이는 뇌혈관 이상 증세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절대 권력자의 공백은 필연적으로 그 후계자에게로의 권력 이양을 가속화시킨다. 하지만 현재 북한에는 공식적인 후계자가 없다. 한마디로 예측 불허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2008년 10월 현재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는 상당히 중대한 관심사가 된다. 곧 ‘김정일 이후 누가 북한을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후계 구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세 아들(김정남, 김정철, 김정운)들이 향후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3대째의 권력 세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단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집단 지도체제 가능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처럼 김정일의 ‘병상 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떠한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그 면면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의 대북 정책 수립 및 ‘김정일 이후’ 대비와 관련해서 볼 때 상당한 의미가 있다. 북한 지도부에서 누가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국 정부가 특정 현안과 관련해 북한의 누구와 접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떠한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게 되면,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당 중심’의 체제가 될 것인지 ‘군부 중심’의 체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현실성 있는 전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북한 내 파워 엘리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는 드문 실정이다.
주석단 서열을 권력 서열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
또한, 그동안 이루어진 북한 엘리트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여왔다. 첫째, 북한의 주요 행사시 주석단에서의 주요 인사 배치 서열을 ‘권력 서열’과 동일시하는 문제점이다. 물론 ‘주석단 서열’은 특정 엘리트가 북한 내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되기는 하지만, 이 서열이 곧 영향력의 크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4월25일 주석단 서열(표 참조)을 보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총비서에 이어 서열 2, 3위이지만, 그들이 현재 김정일 다음 가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주석단 서열에서 이처럼 영향력이 작거나 실제적인 활동이 거의 없는 엘리트들이 상위에 배치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대내외적 상징성과 5대 권력 기관(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에 대한 대표성이 서열 결정에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핵심 중의 핵심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들과 여러 부부장들, 그리고 김정일의 대외 활동에 가장 빈번하게 수행하는 현철해 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리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 중 어느 누구도 주석단 서열 19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김정일 총비서의 대외 공식 활동에 수행하는 빈도를 특정 엘리트의 영향력과 동일시하는 문제점이다. 물론 특정 엘리트가 김정일의 공식 행사를 수행하는 빈도는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도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정일의 대외 활동이 주로 군과 관련되어 있어 수행 인물에 군 관련 인사들이 과다하게 포함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북한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 기관인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당 조직을 담당하는 제1부부장과 그 밑의 부부장들은 김정일의 대외 공식 활동 수행자 명단(표 참조)에 들어가 있지 않거나 그 중요성에 비해 하위권에 처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북한 체제는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당-국가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심적 체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 시각으로 북한을 인식하려고 함으로써 북한에서 당의 엘리트보다 국가 기구의 엘리트들을 더 중시하는 문제점이다. 국내의 대다수 언론이 북한의 국방위원회를 ‘최고 권력 기관’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북한에서는 5대 권력 기관을 언급할 때 국방위원회를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 다음에,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 앞에 호명한다. 그리고 김정일의 직책을 언급할 때에도 국방위원회 위원장 직책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직 다음에, 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 앞에 호명한다. 이는 북한에서 국방위원회가 아니라 당중앙위원회가 정책 결정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당·군·정의 모든 파워 엘리트들에 대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김정일과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들 그리고 조직지도부라고 증언하고 있다.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비서들과 정책을 결정하는 비서국 회의에 반드시 조직지도부 부부장들을 참가시킴으로써 조직지도부도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여러 전문 부서들 중에서도 조직지도부는 총비서로서 조직지도부장직까지 겸임하고 있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이다. 즉, 다른 부서의 사업을 간접적으로 통제·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막강한 조직이다. 따라서 조직지도부 부부장들은 다른 비서들에게 예의를 차리기는 하지만 비서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노동당을 움직이는 것은 당중앙위원회와 조직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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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사후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EPA |
북한에서 이처럼 핵심 정책 결정이 김정일과 당중앙위원회 비서들 그리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및 부부장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존 연구에서는 북한 엘리트들의 영향력과 관련해 공식적인 ‘주석단 서열’과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행사에 대한 엘리트 수행 빈도만이 강조되고 실제적인 측면은 간과되어왔다. <시사저널>과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이 공동으로 조사한 이번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는, 기존의 분석과는 다르게 북한 파워 엘리트들의 공식적인 위상보다는 실제적인 위상 또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해 선정한 파워 엘리트 26인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인물들 가운데서도 중요도에 따라 최상위 파워 엘리트 4인(1~4위 해당), 핵심 파워 엘리트 7인(5~11위 해당), 파워 엘리트 15인(12~26위 해당) 등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최상위 파워 엘리트 4인은 김정일의 측근 중의 최측근들이다. 핵심 파워 엘리트 7인은 김정일에게 항상 자문을 해주고 당·군·정을 장악하고 있는 북한 내 살아 있는 권력 실세들이다. 파워 엘리트 15인은 북한의 모든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북한의 핵심 엘리트 26인을 선정하는 데 적용한 기준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5대 권력 기관의 현재 소속 유무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그리고 그 직을 얼마나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5대 권력 기관은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이다. 5대 권력 기관을 언급하는 순서가 대체로 이들 기관의 영향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특정 인물이 당중앙위원회에 소속된 경우 당중앙군사위원회나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경우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것으로 일단 간주했다. 물론 당중앙위원회에서도 핵심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2명과 6명의 비서국 비서들이다. 5명의 정치국 정위원들도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위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사들이다. 1974년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정책 결정의 중심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비서국과 조직지도부로 이동한 점을 영향력 순위 결정에 참작했다. 북한의 경우 한 인사가 여러 개의 직책을 겸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겸직이 대체로 그 인사의 영향력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했다.
군부 2인자인 조명록은 병마에 시달려 제외
둘째, 북한 엘리트들의 주석단 서열이 곧 그들의 영향력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석단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이 대내외적 상징성과 5대 권력 기관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석단 서열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주석단 서열로는 2007년 조선인민군 창설 75주년 기념 행사 때의 것을 참고했다.
셋째, 주요 인사들의 김정일 수행 빈도도 그들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참고 사항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이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시 수행해야 할 직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가 직책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인물이 공식적인 직책에 비해 김정일 수행 빈도가 높다면 그를 ‘실세’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주요 엘리트들의 김정일 수행 빈도는 최근 3년간의 것을 주로 참고했다.
넷째, 북한 방송이나 각종 보도 등을 통해 최근 1~2년간 공식 활동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인물들은 파워 엘리트 26인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명록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정일의 유고시 군부 2인자인 조명록이 실세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지금 조명록은 심각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일의 대외 활동에서 군부대 시찰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도 조명록은 2006년과 2007년에는 단 한 차례씩만 김정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이는 그가 만성 신부전증으로 건강 상태가 심각해져서 최근 거의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이외에도 당중앙위 비서국의 한성룡 경제 담당 비서, 정치국의 김영주, 박성철 위원 등은 중요 직책에 있음에도 최근 공식 활동이 거의 없다. 또한, 국방위원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데도 인적사항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한때 외부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백세봉 역시 주석단 서열이나 김정일의 공개 활동 수행 기록이 전혀 없어 선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섯째, 기본적으로 북한의 ‘로열 패밀리’인 김정일과 그의 세 아들들은 제외했다. 반면 김정일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최측근 인사들은 상당한 가중치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현재 사실상 김정일의 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옥과 매제 장성택이다. 김옥은 사실상의 비서 역할도 하면서 김정일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현재 5대 권력 기관에서 요직을 맡고 있지 않음에도 그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김정일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당중앙위원회 비서들, 부인과 함께 검토해왔기 때문에, 2004년에 사망한 부인 고영희도 생시에 김정일의 사실상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당·군·정의 핵심 엘리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장성택 당중앙위 행정부장은 한때 절대적인 ‘2인자’로 군림하다가 지난 2004년에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서 낙마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점을 고려해 그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반면 그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중앙위 경공업부장은 남편의 영향력과 겹친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