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醉月 2008. 11. 26. 12:54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한관계연구실장 조사 / 북한의 핵심 파워 엘리트 26인 리제강·리용철 제1부부장, 매제 장성택, 실질적 부인 김옥이 ‘최상위 핵심 파워 엘리트 4인방’
감명국 /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소
   
▲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9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5·1경기장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합뉴스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60여 일이 넘도록 은둔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이 평양에 쏠리면서 갖가지 추측과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김정일의 신병에 이상이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8월 중순 김정일은 뇌졸중 또는 뇌혈종으로 보이는 뇌혈관 이상 증세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절대 권력자의 공백은 필연적으로 그 후계자에게로의 권력 이양을 가속화시킨다. 하지만 현재 북한에는 공식적인 후계자가 없다. 한마디로 예측 불허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2008년 10월 현재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는 상당히 중대한 관심사가 된다. 곧 ‘김정일 이후 누가 북한을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후계 구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세 아들(김정남, 김정철, 김정운)들이 향후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3대째의 권력 세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단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집단 지도체제 가능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처럼 김정일의 ‘병상 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떠한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그 면면을 파악하는 것은 현재의 대북 정책 수립 및 ‘김정일 이후’ 대비와 관련해서 볼 때 상당한 의미가 있다. 북한 지도부에서 누가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국 정부가 특정 현안과 관련해 북한의 누구와 접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떠한 엘리트들이 참여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게 되면,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당 중심’의 체제가 될 것인지 ‘군부 중심’의 체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현실성 있는 전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북한 내 파워 엘리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는 드문 실정이다.

주석단 서열을 권력 서열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

또한, 그동안 이루어진 북한 엘리트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여왔다. 첫째, 북한의 주요 행사시 주석단에서의 주요 인사 배치 서열을 ‘권력 서열’과 동일시하는 문제점이다. 물론 ‘주석단 서열’은 특정 엘리트가 북한 내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되기는 하지만, 이 서열이 곧 영향력의 크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4월25일 주석단 서열(표 참조)을 보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총비서에 이어 서열 2, 3위이지만, 그들이 현재 김정일 다음 가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주석단 서열에서 이처럼 영향력이 작거나 실제적인 활동이 거의 없는 엘리트들이 상위에 배치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대내외적 상징성과 5대 권력 기관(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에 대한 대표성이 서열 결정에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핵심 중의 핵심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들과 여러 부부장들, 그리고 김정일의 대외 활동에 가장 빈번하게 수행하는 현철해 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리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 중 어느 누구도 주석단 서열 19위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김정일 총비서의 대외 공식 활동에 수행하는 빈도를 특정 엘리트의 영향력과 동일시하는 문제점이다. 물론 특정 엘리트가 김정일의 공식 행사를 수행하는 빈도는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도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정일의 대외 활동이 주로 군과 관련되어 있어 수행 인물에 군 관련 인사들이 과다하게 포함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북한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 기관인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당 조직을 담당하는 제1부부장과 그 밑의 부부장들은 김정일의 대외 공식 활동 수행자 명단(표 참조)에 들어가 있지 않거나 그 중요성에 비해 하위권에 처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북한 체제는 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당-국가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심적 체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 시각으로 북한을 인식하려고 함으로써 북한에서 당의 엘리트보다 국가 기구의 엘리트들을 더 중시하는 문제점이다. 국내의 대다수 언론이 북한의 국방위원회를 ‘최고 권력 기관’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북한에서는 5대 권력 기관을 언급할 때 국방위원회를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 다음에,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 앞에 호명한다. 그리고 김정일의 직책을 언급할 때에도 국방위원회 위원장 직책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직 다음에, 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 앞에 호명한다. 이는 북한에서 국방위원회가 아니라 당중앙위원회가 정책 결정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당·군·정의 모든 파워 엘리트들에 대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김정일과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들 그리고 조직지도부라고 증언하고 있다.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비서들과 정책을 결정하는 비서국 회의에 반드시 조직지도부 부부장들을 참가시킴으로써 조직지도부도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여러 전문 부서들 중에서도 조직지도부는 총비서로서 조직지도부장직까지 겸임하고 있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이다. 즉, 다른 부서의 사업을 간접적으로 통제·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막강한 조직이다. 따라서 조직지도부 부부장들은 다른 비서들에게 예의를 차리기는 하지만 비서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노동당을 움직이는 것은 당중앙위원회와 조직지도부

   
▲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사후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EPA

북한에서 이처럼 핵심 정책 결정이 김정일과 당중앙위원회 비서들 그리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및 부부장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존 연구에서는 북한 엘리트들의 영향력과 관련해 공식적인 ‘주석단 서열’과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행사에 대한 엘리트 수행 빈도만이 강조되고 실제적인 측면은 간과되어왔다.
<시사저널>과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이 공동으로 조사한 이번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는, 기존의 분석과는 다르게 북한 파워 엘리트들의 공식적인 위상보다는 실제적인 위상 또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해 선정한 파워 엘리트 26인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인물들 가운데서도 중요도에 따라 최상위 파워 엘리트 4인(1~4위 해당), 핵심 파워 엘리트 7인(5~11위 해당), 파워 엘리트 15인(12~26위 해당) 등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최상위 파워 엘리트 4인은 김정일의 측근 중의 최측근들이다. 핵심 파워 엘리트 7인은 김정일에게 항상 자문을 해주고 당·군·정을 장악하고 있는 북한 내 살아 있는 권력 실세들이다. 파워 엘리트 15인은 북한의 모든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북한의 핵심 엘리트 26인을 선정하는 데 적용한 기준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5대 권력 기관의 현재 소속 유무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그리고 그 직을 얼마나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5대 권력 기관은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이다. 5대 권력 기관을 언급하는 순서가 대체로 이들 기관의 영향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특정 인물이 당중앙위원회에 소속된 경우 당중앙군사위원회나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경우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것으로 일단 간주했다. 물론 당중앙위원회에서도 핵심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2명과 6명의 비서국 비서들이다. 5명의 정치국 정위원들도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위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사들이다. 1974년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정책 결정의 중심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비서국과 조직지도부로 이동한 점을 영향력 순위 결정에 참작했다. 북한의 경우 한 인사가 여러 개의 직책을 겸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겸직이 대체로 그 인사의 영향력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했다.

군부 2인자인 조명록은 병마에 시달려 제외

둘째, 북한 엘리트들의 주석단 서열이 곧 그들의 영향력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석단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이 대내외적 상징성과 5대 권력 기관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석단 서열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주석단 서열로는 2007년 조선인민군 창설 75주년 기념 행사 때의 것을  참고했다.

셋째, 주요 인사들의 김정일 수행 빈도도 그들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참고 사항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이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시 수행해야 할 직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가 직책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인물이 공식적인 직책에 비해 김정일 수행 빈도가 높다면 그를 ‘실세’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주요 엘리트들의 김정일 수행 빈도는 최근 3년간의 것을 주로 참고했다. 

넷째, 북한 방송이나 각종 보도 등을 통해 최근 1~2년간 공식 활동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인물들은 파워 엘리트 26인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명록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정일의 유고시 군부 2인자인 조명록이 실세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지금 조명록은 심각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일의 대외 활동에서 군부대 시찰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도 조명록은 2006년과 2007년에는 단 한 차례씩만 김정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이는 그가 만성 신부전증으로 건강 상태가 심각해져서 최근 거의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을 반증한다.

이외에도 당중앙위 비서국의 한성룡 경제 담당 비서, 정치국의 김영주, 박성철 위원 등은 중요 직책에 있음에도 최근 공식 활동이 거의 없다. 또한, 국방위원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데도 인적사항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한때 외부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백세봉 역시 주석단 서열이나 김정일의 공개 활동 수행 기록이 전혀 없어 선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섯째, 기본적으로 북한의 ‘로열 패밀리’인 김정일과 그의 세 아들들은 제외했다. 반면 김정일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최측근 인사들은 상당한 가중치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현재 사실상 김정일의 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옥과 매제 장성택이다. 김옥은 사실상의 비서 역할도 하면서 김정일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현재 5대 권력 기관에서 요직을 맡고 있지 않음에도 그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김정일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당중앙위원회 비서들, 부인과 함께 검토해왔기 때문에, 2004년에 사망한 부인 고영희도 생시에 김정일의 사실상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당·군·정의 핵심 엘리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장성택 당중앙위 행정부장은 한때 절대적인 ‘2인자’로 군림하다가 지난 2004년에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서 낙마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점을 고려해 그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반면 그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중앙위 경공업부장은 남편의 영향력과 겹친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주석궁 '자리' 기다리는 사람들

김정일 대신하는 리제강·리용철이 핵심 실세 1순위 …김국태·김기남 등도 ‘주목’

   
▲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맨 왼쪽)이 마중나온 북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재단

평양의 주석궁이 폭풍 전야에 놓여 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인 김정일은 병상에 누워 있다. 빠르게 회복한다 하더라도 올해 67세인 그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후계구도에 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갑자기 사망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의 의중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과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이 공동으로 조사한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에서 북한의 파워 엘리트 26인을 가려뽑는 데도 역시 김정일과의 지근 거리에 있는지 여부가 영향력의 관건이었다.

최상위 파워 엘리트 4인

   
▲ 장성택(왼쪽). 김옥(오른쪽).
ⓒ뉴시스


■ 리제강(79)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제강과 리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핵심 실세 1순위로 지목된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질 법도 하다. 이들은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는 인물이다. 주석단 서열이나 김정일 수행 횟수에서도 높은 순위에 올라 있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지도부와 제1부부장이라는 상징적인 직책은 사실상 김정일을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리제강은 실질적으로 김정일을 제외한 현재 북한 권력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베일 속의 인물이지만 그는 평양 주석궁 내에서 현재 김정일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리제강 제1부부장은 북한 권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에서만 무려 35년 이상을 몸담고 있다. 1973년 당 중앙위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입성했고, 1982년 조직지도부 부부장 겸 김정일 서기실 서기에 임명되면서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조직지도부 부부장 10여 명 중에서도 제1부부장에 맞먹는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히는 인사담당 부부장 직을 20년 이상 유지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조직지도부 최고의 자리인 제1부부장에 올랐다. 조직지도부장을 겸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바로 다음이다. 그는 당 간부 및 당 조직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당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당중앙위위원 등 정부 행정 간부들, 중앙과 지방의 각급 당 간부, 중앙당 직원 등의 선발과 임명 및 해임을 전적으로 주관한다.

그는 2003년 하반기와 2004년 상반기 사이에 평양 주석궁 내부에서 단행된 장성택파 숙청의 실질적인 주도자였다. 리용철과 함께 고영희(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 2004년 사망)의 편이 되어 당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던 장성택을 직무 정지시키고 그의 측근들을 숙청했다. 고영희가 장남 김정남 대신에 자신이 낳은 아들인 김정철·정운 형제를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리제강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로 그의 힘은 막강하다.

이후 2년 만에 다시 장성택이 복권되면서 리제강과 장성택은 ‘포스트 김정일’을 다투는 양대 축이자 숙명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정일은 장성택을 다시 복권시키면서도 그가 과거에 맡았던 행정 부문을 조직지도부에서 분리시켰다. 조직지도부 내에서 리제강 등과 장성택이 대면할 기회를 줄이고자 하는 나름의 배려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리제강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은 절대적이다.

■ 리용철(81)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겸 당중앙군사위원

리용철은 북한 권력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으로서 군대에 대한 당 생활 지도와 군부 인사를 담당하고 있다. 인민무력부 작전국장 출신으로 1986년 노동당 조사부장으로 당에 입성한 뒤 1993년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거쳐 1994년에 지금의 제1부부장 자리에 올랐다. 최고 핵심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14년째 수행하고 있을 만큼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다. 과묵하면서도 세밀하고 꼼꼼한 작전 참모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2006년과 2007년 김정일 수행 횟수에서 10위 안에 들 정도로 김정일의 지방 현지 지도나 각급 군부대 시찰 때마다 밀착해서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영희가 사망 직전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리제강과 함께 도움을 요청했던 인물로서 리제강과는 협력적 관계에, 장성택과는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다.

■ 장성택(63)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

김정일의 매제이다. 2004년 초 대부분이 숙청되거나 강등되기는 했지만 그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시절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나름으로 상당수 추종 세력을 가지고 있고, 또 북한 지도부 내에서 신망도 있다. 1992년부터 당중앙위원으로 있으면서 1995년 최고 권력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올랐다. 장성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의 2인자였다. 당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어린 조카들을 대신해서 김정일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낳았다. 그의 큰형 장성우가 평양 방어를 책임진 차수(원수와 대장 사이) 계급의 3군단장이고, 둘째형 장성길도 인민군 중장으로 군단 정치위원이었기 때문에 장성택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유고시 정권을 장악하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인물로 외부 세계에서 주목되어왔다. 하지만 지나친 세 확산이 화를 불렀다. 결국 2004년 3월 고영희·리제강 리용철 등에 의해 권력 다툼에서 밀리면서 제1부부장의 직무를 정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퇴진 이유는 ‘종파(파벌) 행위’와 ‘권력 남용’이었다. 북한은 수령(김일성)과 수령의 후계자(김정일) 이외의 당 간부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종파 행위로 간주하며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김정일에게는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측근이 필요했고, 결국 장성택은 고영희 사망 이후 다시 2년 만에 복권해서 서서히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비록 그의 현 직책(당중앙위 행정부장)은 과거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비해서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는 친인척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 최근 김정일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말미암아 장성택에 대한 김정일의 의존도가 더욱 커지고 있으며, 김정일의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장성택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 김옥(45)

2004년 고영희의 사망 이후 사실상 김정일의 부인 역할을 함으로써 북한 지도부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김정일의 와병설 이후에는 그 영향력이 더욱 급격히 커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옥은 20대부터 김정일의 업무를 보좌하면서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김정일이 국정 전반에 대해 함께 논의할 정도로 그녀를 신임하고 있다. 그에 힘입어 김옥은 현재 국정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며 권력 핵심부에 자신의 측근들을 앉히는 등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영희 사망 이후 김정철과 김정운의 대외 활동이 줄어든 것은 바로 후계 문제 가시화를 달가워하지 않은 김옥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이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3~6개월 정도의 안정 및 재활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기간 동안 김정일은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1호 결재(김정일이 직접 하는 결재)라고 하더라도 선별해서 최소한의 결재만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 김정일이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팩스 문건을 당중앙위 비서들 및 부인과 처리했다는 증언이 있는데, 적어도 앞으로 수개월 동안 김정일이 직접 처리하는 업무량은 수술 전에 비해 5분의 1~10분의 1 이하로까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과거에 김정일이 직접 처리했던 업무의 대부분이 당중앙위 비서국 비서들과 현재 그의 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옥에 의해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김옥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증대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내부에서 과거 고영희에 대해서 개인 숭배가 이루어졌던 것처럼 김옥에 대해서도 개인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김정일과 김옥 사이에는 자식도 없기 때문에 김정일의 후계자가 결정되면 김옥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 파워 엘리트 7인

   
▲ 김기남(맨왼쪽). 김영남(가운데). 김영일(맨오른쪽).
ⓒ연합뉴스


■ 김국태(85) 당중앙위 비서국 비서

김책 전 부수상의 장남이다. 현재 당중앙위 비서국 비서이면서 동시에 당중앙위 간부부장, 당중앙위원 등을 겸직하고 있다. 그는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혁명 2세대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1977년 중앙당 선전선동부장을 맡으면서 부부장으로 있던 김정일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사실상 김정일의 후계 구도를 완성한 인물이다. 상당한 고령이지만 지난해 이후 최근까지 김정일을 6차례나 수행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정일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문을 구하는 핵심 최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 김기남(83)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당중앙위 비서국의 비서로서 2007년에는 김정일 수행 횟수가 2위에 오르는 등 올해까지 수행 빈도에서 현철해 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리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과 함께 부동의 3인방을 형성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와 노동신문 논설위원 출신으로 북한 내 선전·선동 분야의 제1인자로 꼽힌다. 황장엽씨가 현재 북한 내에서 김정일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그를 꼽기도 했다.

■ 전병호(83) 당중앙위 비서국 비서 겸 국방위원

모스크바 대학 출신의 경제 전문가이다. 1956년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처음 입성했다. 1986년 현직인 당중앙위 비서국 군수 담당 비서로 발탁된 이후 2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외에도 당 군수공업부장, 국방위 위원, 당 정치국원, 당중앙위 위원 등 여러 주요 보직을 겸하고 있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인 핵과 군수 산업 및 기계공업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상당히 명석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당 조직지도부에서 근무하면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김영남(81)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일을 제외한 북한의 행정 서열 1위에 올라 있다.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으로 한때 김정일을 대신해 김영남 위원장이 서울 혹은 제주를 방문하는 계획이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외적 서열에 비해 실질적으로 북한을 움직이는 핵심 실세 순위에서는 그의 영향력이 다소 처질 수밖에 없다.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을 지낸 바 있는 전형적인 행정 관료 계통이기 때문에 평양 주석궁의 깊숙한 권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외교 활동이 부쩍 빈번해지면서 대외적 서열 1위인 그의 위상을 과소 평가할 수만도 없다는 평도 있다. 김두남 인민무력부 부부장 겸 인민군 대장이 그의 친동생이다.

■ 현철해(75) 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2006년 이후 최근 3년간 김정일 수행 횟수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측근 중의 최측근이다. 인민군 대장이면서 동시에 당중앙위원을 겸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던 김일성 주석을 호위한 것을 비롯해, 충성도가 높고 과묵한 성격의 전형적인 참모형으로 통한다.

이런 성향 탓에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항상 그를 측면에서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혁명 2세대이면서 군에 포진한 3세대 엘리트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의 유고시 군을 통제하는 등의 ‘상황 관리’를 맡을 유력한 인물로 그를 점찍기도 했다.

■ 리명수(72) 국방위원회 행정국장

현철해와 함께 군을 대표하는 핵심 실세로 통한다. 그는 김정일 수행 횟수에서도 매년 3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과 작전국장 등 군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2000년에 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특히 1997년부터 그는 작전국장을 맡으면서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작전국장은 김정일과 독대하고 직보하는 군의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 김영일(65) 내각 총리

북한 관료의 세대 교체를 상징하는 새로운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5차 회의에서 육해운상(교통부장관)이었던 60대의 그가 일약 내각 총리로 발탁되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일약 북한 주석단 서열에서 김정일·김영남·조명록에 이어 4위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그는 육해운성 말단 지도원으로 출발해 일약 총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하고 있다. 별다른 정치적 배경이나 명문대 출신이 아닌데도 총리로 발탁된 것은 무엇보다 전문성과 업무 실적을 평가받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하위권도 만만치 않다

 
   

ⓒ뉴시스

김정일의 최측근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파워 엘리트 11인과는 달리 중·하위권 순위의 15인은 실질적으로 당·군·정에서 각각 정책 결정과 실무를 담당한다.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의 근로 단체 담당 비서 김중린은 지난 1970~80년대 대남 사업을 주관해온 최고의 대남 전문가였다. 1972년 남북 대화가 시작될 무렵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대화 상대로 나서기도 했다. 비서국 교육 담당 비서 최태복은 정치국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 주요 요직을 다수 겸하고 있다. 홍석형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은 소설 <림꺽정>의 저자 홍명희 전 북한 내각 부수상의 손자로 유명하다. 러시아 유학파 출신으로 1993년 북한 경제를 총괄 기획하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는 등 경제 전반에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남기 당중앙위 계획재정부장 역시 1998년 국가계획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경제 전문가이다. 당중앙위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는 리재일은 최근 들어 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일 조선중앙통신이 ‘김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기념해 열린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철도대학 간 축구 경기를 관전했다’고 보도했을 때 당시 유일하게 김위원장을 수행한 인물로 리재일 부부장이 거명되기도 했다. 김양건(사진) 당중앙위 통일전선부장은 지난해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얼굴이다. 현재 대남 사업의 1인자로 김위원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군부 쪽 파워 엘리트로는 김일철 당중앙군사위원 겸 국방위원, 리하일 당중앙위 군사부장 겸 당중앙군사위원, 김영춘 당중앙군사위원 겸 국방위 부위원장, 김격식 인민군 총참모장,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등이 있다. 현재 인민무력부장을 겸하고 있는 김일철 위원과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낸 김영춘 부위원장은 김정일 시대 군부를 대표하는 최측근 쌍두 마차이다. 현재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에서 군사 담당 부부장을 맡고 있는 황병서와 강동윤 역시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보직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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