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노잼도시' 청주 재미있는 여행

醉月 2021. 9. 2. 18:56
문화제조창C 5층의 ‘열린 도서관’ 입구의 서가. 문화제조창C는 국내 최대의 담배공장이었던 청주 연초제조창을 리뉴얼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원더 아리아’라는 쇼핑몰과 레스토랑, 전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 그 도시가 재미없다고?


충북 청주는 ‘노잼 도시’다. 이런 식의 단언이 그곳에서 사는 이들에게 결례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청주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체로 동의했으니 그대로 쓴다. ‘노잼’이란 ‘NO 재미’라는 뜻. 한마디로 청주는 ‘재미없는 도시’라는 거다. 노잼 도시에서 ‘노잼’이 가정하는 상황은 ‘다른 지역에서 친구가 찾아왔을 때’다. 처음 그곳에 온 친구를 마땅히 데려가거나 보여줄 게 없다면 노잼 도시다.

흔히 거론되는 ‘3대 노잼 도시’가 있다. 1위는 대전, 2위가 울산이고, 3위가 청주다. 이런 순위를 보고 개인적으로 드는 두 가지 생각이 있다. ‘바다까지 있는 울산이 좀 억울하겠다’와 ‘청주의 순위가 생각보다 낮은 게 아니냐’는 것. 청주 도심에서 만난 한 젊은이는 ‘오죽하면 노잼 도시 순위에서도 뒤로 밀려서 3위’라며 웃었다.

청주라고 관광지가 왜 없을까만 압도적인 곳이 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난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관광지의 절대 수도 부족하고 다양하지도 않다. 2014년에 청원군과 합쳐진 거대 도농 통합시인데도 그렇다. 청주의 인구는 85만 명. 충북지역 전체 인구가 160만 명이니 충북 사람 절반 이상이 청주시민인 셈이다. 이렇게 시 하나가 도 인구 절반을 넘는 경우는 청주밖에 없다. 제주시도 그렇긴 하지만, 제주도야 제주시와 서귀포시 둘뿐이라 그중 하나는 늘 과반일 수밖에 없으니 논외로 치자. 아무튼 85만 명이 이 노잼 도시에 산다.

청주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다가 떠올린 생각. 아, 학창시절 청주를 ‘교육도시’로 배웠구나. 사실 교육도시에서 ‘교육’은, 공업도시의 공업이나 상업도시의 상업과는 좀 다르다. 큰 도시로 유학 온 시골 학생이 많아서 청주에 학교가 많이 들어섰던 건 그저 ‘결과’일 뿐 아닌가. 청주가 도시의 의지나 지향을 교육에 둔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아무리 재미없는 도시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재미없는 건 아니다. 청주를 여행하는 재미는, 보는 각도나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재미가 없는 경우라 해도, 그런 도시를 보는 재미가 또 있다. 청남대나 상당산성 같은 청주의 익숙한 관광지는 뒤에 덧붙이기로 하고, 덜 알려진 청주 도심부터 찾아가 보자.


# 역사(歷史)가 아니라 역사(驛舍)

▲ 1988년 당시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김수근이 설계한 목욕탕 전용건물 학천탕. 둥근 건물 외벽과 원형 기둥이 인상적이다. 목욕탕은 지난해 12월 31일 폐업했다.


청주 도심 한복판에는 ‘청주역사전시관’이 있다. 헷갈린다. 이름만 보면 누구나 ‘청주의 역사를 전시한 곳이겠거니’ 하겠다. 하지만 ‘청주역사(淸州驛舍)’ 전시관이다. 옛 청주역 건물을 전시관으로 꾸민 곳이란 얘기다. 청주의 역사를 보러 갔다가 역사(驛舍·역 건물)를 보고 왔다. 관광지도나 안내판에 한글로만 적어 놓았으니, 가보지 않고서는 알 도리가 없다.

청주역사전시관은 1921년 11월 충북선 개통으로 생긴 최초의 청주역을, 옛 자리에다 복원한 공간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옛 역 건물을 자료를 통해 80%쯤의 크기로 다시 지었다. 역사 안에는 철도의 역사와 처음 역이 들어서던 당시의 사회상을 전시하고 있다. 오래된 기차표 등을 전시해 놓았고 기차 내부 공간도 재현해 놓았다. 전시관 밖에는 옛 철로와 건널목을 만들고 간판을 달아 간이 세트장처럼 꾸며 놓기도 했다.

전시관으로 복원한 청주역은 북문로에 있었던 ‘첫 번째 청주역’이었다. 청주역은 이후에 1968년 우암동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지어졌다. 두 번째 청주역이다. 그리고 1980년에 한 번 더 옮긴 게 지금의 청주역이다. 복원해 역사전시관으로 문을 연 첫 번째 청주역은 1921년부터 1968년까지 47년 동안 ‘현역’이었던 셈이다.

전시관에 조치원에서 충주까지 운행하는 충북선 상·하행 열차의 1956년 당시 운행 시간표가 있다. 시간표를 보니 출발역인 조치원에서 충주역까지 소요시간은 4시간쯤. 지금은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같은 구간이 1시간 10분 걸린다. 조치원에서 충주까지 거리는 90㎞ 남짓. 이 거리를 4시간 걸려 달렸으니 시속 20㎞ 남짓이다. 마라톤 선수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한 셈이다. 그렇다고 열차가 그렇게 느리게 달렸던 건 아니고, 정차하는 시간이 길었다. 시간표로 계산해보니 청주역 정차시간은 29분이나 됐고, 증평역에서도 15분을 쉬어갔다.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려 가락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기차도, 시간도 느릿느릿 흘러가던 시절의 청주 얘기다.


학천탕의 1, 2층 남탕 공간을 개조해 만든 카페 ‘목간’. 공중목욕탕 내부를 그대로 둔 채 카페로 꾸몄다.



# 청주가 보여주는 과거

청주의 도심이 보여주는 건 ‘어정쩡한 과거의 시간’이다. 유행을 말하기에는 낡았고,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모자란 그런 어정쩡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청주에는 역사 유적이 많지 않고, 식민지 근대의 풍경도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청주에 오래된 풍경이 드문 건, 비교적 최근까지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았다는 뜻이겠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져 건축물이 화석처럼 남겨진 도시가 있다. 군산이 그렇고, 목포가 그렇다.

청주는 매일 조금씩 늦어지는 시계를 닮았다. 실은 청주가 느려진 게 아니라, 세상이 현기증 날 만큼 빨라진 건지도 모른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유행처럼 세련된 신축 청사를 짓고 있는데, 청주의 공무원들은 84년 된 충북도청 건물과 56년 된 청주시청 건물에서 근무한다. 둘 다 근대문화유산이다. 도청 건물이 더 오래되긴 했지만, 눈에 더 들어오는 건 청주시청 본관이다. 일본 와세다대 출신의 대한민국 건축가 1세대 강명구의 설계로 지어진 건물은 청주 현대건축의 시작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명구는 시청 건물을 설계하면서 배를 모티브로 삼았다. 지면을 수평선으로, 3층 규모의 건물은 항해하는 배를 은유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난간의 모습이 배의 난간과 똑 닮았다. 청사를 4층으로 증축하는 과정에서 없애버렸지만, 건물 옥상에 배의 증기선 굴뚝 형상의 구조물이 있었다고 했다. 청주는 풍수적으로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이라 ‘배 주(舟)’ 자를 써서 ‘주성(舟城)’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서울로 치면 종로쯤 되는 도심 한복판에 철로 만든 고려 때 당간(幢竿)이 돛대처럼 남아 있는 것도, 청주의 지세가 배 모양이라 돛을 세워야 한다는 풍수의 영향이라고 전한다.

청주시청은 신청사 건립을 추진 중이다. 지금의 시청 건물을 보전하는 것을 조건으로 신청사 설계 국제공모를 진행해 지난 7월에 최종 당선작을 선정했다. 당선작은 노르웨이 건축설계회사 스노헤타가 국내 두 곳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으로 공모한 ‘청주의 새로운 신호등’이란 제목의 설계다. 설계는 신청사가 옛 청사를 ㄷ 자로 웅장하게 감싸는 형태. 지붕에 경사를 둔 설계에서 노르웨이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가 연상된다.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로 관광객을 불러 모은 수암골 마을에 들어선 세련된 카페 건물과 개방감이 느껴지는 루프톱 카페.



# 당대 최고의 건축가, 목욕탕을 설계하다

▲ 벽화가 그려진 달동네마을 수암골의 골목.


건축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청주에는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목욕탕 ‘학천탕’이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에 완공된 학천탕은 목욕탕 전용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8층 건물이었다. 둥근 외벽에 반원형 기둥을 붙인 독특한 구조. 1~2층은 남탕, 3~4층은 여탕, 5~8층은 VIP 사우나였다. 수년 전부터 경영난을 겪어왔던 학천탕은 2년 전쯤 ‘목간’이란 카페로 변신했다. 1~2층을 개조해 카페 영업을 하면서도 남탕만은 남겨 영업을 계속해 왔는데 코로나19 여파로 목욕탕은 32년 만인 2020년 12월 31일 폐업했다.

목욕탕에서 둔갑한 카페 목간은 호기심에라도 들러볼 만하다. 카페 1층은 목욕탕 타일을 다듬어 깔았고, 남탕 탈의실 옷장 문을 장식처럼 배치했으며, 때타월과 비누, 번호표 등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삼았다. 하이라이트는 2층 욕조와 사우나, 수도와 샤워기 등을 그대로 두고서 테이블과 의자를 들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물 없는 탕 안에서, 혹은 샤워기와 거울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신기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이번에는 음식 얘기를 해보자. 청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마땅치 않다. 15년 전쯤 청주시가 지역 홍보와 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1년여에 걸쳐 야심 차게 ‘청주 한정식’을 개발했던 이유다. 문헌을 뒤지고 음식 전문가 설문조사를 거쳐 올갱이 된장국에다 스무 가지 반찬으로 청주 한정식을 구성해 식당에 보급했으나 관의 계몽으로 식탁과 취향이 바뀔 리는 만무한 일. 시도가 실패했음은 말하나 마나다.

한정식 실패 이후 청주는 ‘삼겹살의 원조 고장’을 자처하고 나왔다. 조선왕조실록에 청주에서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친 기록이 있고, 간장에 절인 삼겹살 요리와 삼겹살과 함께 먹는 ‘파무침’이 청주에서 처음 개발됐다는 게 주장의 근거였다. 그게 다 사실이라 해도 이미 ‘국민 음식’ 반열에 오른 삼겹살의 원조를 가려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공연한 헛심이다. 청주의 음식을 굳이 찾는다면 ‘짜글이’다. 짜글이는 양념한 돼지고기에 채소를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찌개. 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낸 김치찌개와 고추장찌개 사이쯤의 맛이다. ‘대추나무집’이나 ‘보글보글촌’ 등이 짜글이로 이름난 집이다.


1963년 개업한 유서 깊은 식당 ‘공원당’. 돈가스와 메밀국수를 판다.



# 분식과 빵을 함께 팔다…청주의 빵집

청주에서 여행자들의 주목은 끄는 음식은 뜻밖에 빵이다. 청주에서 촬영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영향이다. 11년 전에 방송된 오래된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가 ‘노잼 도시’에 끼친 영향은 크다. 진작에 관광지가 된 드라마촬영지 수암골에는 전망 좋은 루프톱 카페가 줄줄이 들어서 연인들을 불러 모은다. 청주의 빵집에서 드라마에 등장했던 ‘보리빵’을 여태 팔고 있는 것도 ‘제빵왕 김탁구’ 영향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시청률 제조기’라 불렸던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전시·공연 공간인 ‘김수현 드라마아트홀’이 수암골에 들어서게 된 것도 드라마 영향이 컸다. 청주시는 김수현의 고향이 청주라 주장하지만, 실제로 태어난 곳은 서울 흑석동. 출생 직후 청주로 와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니 청주를 고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빵 얘기를 더 해보자. 일제강점기이던 1920년대 청주에는 ‘청주빼까리’란 제과점이 있었다고 한다. 빼까리가 뭔가 했더니 ‘베이커리(Bakery)’다. 100년 전의 청주빼까리는 진작 사라졌다. 여태 살아남아 중년 이상 청주 사람들의 추억을 이따금 떠올리게 하는 곳이 공원당과 서문우동이다. 이른바 ‘청주식 빵집’의 전통은 분식과 빵을 함께 판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청주 도심 중앙공원 뒤편의 ‘공원당’이다. 공원당은 1963년 중앙시장에서 빵집으로 문을 열었다. 도넛과 고기빵을 팔며 우동과 메밀국수를 냈다. 지금은 빵은 팔지 않고 돈가스와 우동, 메밀국수를 팔고 있다. 아직도 빵집과 분식을 겸하는 곳이 ‘서문우동’이다. 본래 빵을 앞세운 ‘서문제과’였는데, 분식 매출이 더 커서 그랬는지 서문우동으로 상호를 바꿨다. 서문우동에서는 우동과 함께 단팥빵과 보리빵, 야채빵 등을 판다.

공원당까지 갔다면 일약 청주의 명소로 떠오른 ‘쫄쫄호떡’을 빼놓을 수 없겠다. 잠길 정도로 기름을 붓고 철판에 호떡을 구워내는데 바삭바삭한 호떡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기 줄이 길어 끼어들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는데 이즈음에는 구워낸 호떡을 쌓아두고 판다. 그만큼 청주 시내에 불황의 그늘이 깊다.


요즘 청주에서 가장 인기인 쫄쫄호떡. 바삭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 청주의 알려진 곳, 알려지지 않은 곳

이번에는 청주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보자. 근대건축물 ‘탑동 양관’ 얘기다. ‘양관(洋館)’이란 서양식 건물이란 뜻이다. 청주 탑동에는 1911년부터 1932년까지 세워진 여섯 채의 고색창연한 서양식 건축물이 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민노아(미국 이름·프레드릭 S 밀러)가 선교부의 지시로 청주에 내려와 선교기지를 만들면서 지은 건물들로 선교사 숙소와 가족 숙소, 성경학교, 병원 등으로 썼다. 양관은 서양 저택 스타일의 외형에 한옥 기와지붕을 올려 절충식으로 지어졌는데, 파스텔 톤의 동화적 느낌에다가 동서양의 건축적 특성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어 건축적으로도 제법 볼 만하다.

청주는 드물게 근대 역사의 자취가 새겨져 있고, 근사한 건축적 미감까지 뽐내는 곳이지만, 탑동 양관은 청주 사람들도 아는 이가 적다. 6채의 양관 중에서 4채가 여학교 교정에 있기 때문이다. 양관은 학교 부속실로 사용하고 있어 미리 학교 측의 허가를 받아 출입해야 한다. 일신여중·고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지원으로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니만큼 행정실로 연락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요즘 떠오르는 청주의 명소가 연초제조창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지어진 청주 연초제조창은 한때 국내 최대의 담배공장으로 지역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연면적 8만4000㎡의 거대한 건물 안에서 3000여 명의 직원이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해 일본 등 17개국에 수출했다. 한때 청주경제를 견인했던 효자 대접을 받다가 오염물질을 뿜어내는 혐오시설로 추락한 청주 연초제조창은 지난 2004년 폐쇄됐다.

폐쇄된 연초제조창은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연초제조창의 5층짜리 창고에 지난 201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를 개관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첫 국립현대미술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부 직원의 코로나19 확진에 따라 미술관은 오는 6일까지 휴관이다. 미술관은 휴관이지만 미술관 밖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감상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콘텐츠로 제작한 권민호 작가의 작품 ‘회색 숨’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앞 게시판의 안내에 따라 앱을 내려받은 뒤 스마트폰 카메라로 미술관 건물을 비추면, 화면 속에서 외벽에 건물 뼈대와 톱니가 튀어나오고, 생산설비가 가동되는 모습이 동영상처럼 펼쳐진다. 제조창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19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상징물 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인데 신기하기 짝이 없다. 미술관 앞마당에서는 소장품 15점을 AR로 구현한 ‘MMC 미술원(園)’ 프로젝트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변을 비추면 가상의 동물과 식물이 나타난다.

청주역사전시관에 재현해 놓은 옛 청주역 철길. 여기에 어울리도록 식당도 세트장처럼 꾸몄다.



국립미술관 청주관 옆에는 ‘문화제조창C’가 있다. 낡은 연초제조창 건물을 세련되게 손봐서 감각적인 쇼핑몰과 청주 공예비엔날레 전시관, 도서관 등을 들여놓은 공간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도서관이 인상적이었다. 현대미술관 청주 뒤쪽에는 담뱃잎을 보관하던 7개의 옛 연초제조창 창고를 재정비한 ‘동부창고’가 있다. 창고 건물을 커뮤니티플랫폼, 공연예술 연습공간, 문화센터,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제 기왕에 알려진 청주의 명소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보자. 우선 백제 때 토성이었다가 조선 시대에 석성을 쌓은 상당산성이 있다. 산성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청주의 랜드마크는 경부고속도로 청주IC와 이어진 가로수 길이다. 국도 36호선 구간인 석소동 청주IC에서 가경천 죽천교까지 6.3㎞ 구간에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길 양옆으로 도열해 있다.

대통령 전용별장이었다가 2003년 전면개방된 청남대는 잘 가꿔진 자연으로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이즈음에는 양어장과 음악분수가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의 경관이 가장 좋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이른바 ‘강소형 잠재관광지’인 문의문화재 단지도 청주 관광지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될 뻔했던 옛 건축물 등을 옮겨 놓은 곳인데, 대청호를 끼고 있어 경관이 좋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에는 영조의 태를 묻은 태실도 있다. 태실은 지금의 태실 옆 태봉산의 정상에 있던 것을 옮겨 복원한 것이다. 태실의 비석은 도난당한 것을 대구의 골동품상에서 찾아 사들인 것이다.


■ 담배 대신 문화를 만드는 공간

낡은 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뉴얼해 만든 문화제조창C 5층에 ‘열린 도서관’이 있다. 널찍한 공간을 책과 서가로 세련되면서도 간결하게 꾸민 공간이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은 데다 테이블도 의자도 넉넉해 거리두기를 지키며 쾌적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책도 다양하고 좌석도 다양하다.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지만 누구나 제한 없이 출입할 수 있으니 여행자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