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仙遊). ‘신선이 노닐다’라는 뜻의 이름의 섬, 선유도. 새만금 방조제가 지나는 전북 군산 앞바다에 무리 지어 떠 있는 고군산군도의 섬은 모두 예순 셋이나 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명성을 누리는 곳은 선유도입니다. 고군산군도의 다섯 개 섬은 내륙과 다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아직 공사가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는 이미 연륙(連陸)과 연도(連島)의 다리로 이어졌습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선유도는 여객선 ‘새마을호’를 타고 대여섯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먼바다의 섬이었지요. 그 먼 섬이, 육지를 끌고 들어간 새만금 방조제와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내륙이나 진배없는 땅이 된 것입니다. 먼저 고백합니다. 선유도를 위시한 다섯 개 섬을 차로 건너가면서 줄곧 느낀 감정이 낭패감과 안타까움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틀 동안 고군산군도를 돌아보며 수시로 목격했던 건 다리가 놓여 육지가 됐을 때, 섬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였습니다. 섬이 뭍이 되는 ‘상전벽해’가 축복만이 아님을, 손바닥만 한 섬에다 길을 놓고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욕심이 얼마나 빠르게 섬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그곳에서 깨달았습니다. 육지와 이어놓은 다리가 아예 섬을 죄다 망쳐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직 공사 중이라 주민들의 차량만 제한적으로 들여보내는 구간을 수시로 운행하는 ‘무료’라는 허울의 셔틀버스는 관광객을 섬에 데리고 들어간 뒤, 나오는 차를 태워주는 조건으로 강매하다시피 숙소와 식당 밥을 팔았습니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허용 통행시간을 어기고 편법으로 손님을 차에 태우고 공사 중인 위험천만한 도로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전기차 대여비용이 1시간에 3만 원, 스쿠터는 1시간에 2만 원. 새 것을 산대도 10만 원이면 충분해 보이는 낡은 자전거를 1시간에 5000원을 받고 빌려주는 데는 분노까지 치밀었습니다. 선유도를 찾아간 이번 이야기는 그동안의 여행기사와는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심 끝에 선유도에서 마주쳤던 일들을 다 털어놓기로 한 건, 그게 선유도를 찾아가는 이들에게는 더 나은 여행의 방식을 일러주는 일이기도 하고, 섬 사람들의 삶의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다리만 놓으면 된다’는 토건식 개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혼돈 속에서도 선유도와 고군산군도는 여전히 아름다운 경관을 잃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육지와 섬을 잇는 길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으니 여전히 기회는 남아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 섬을 징검다리로 딛고 바다를 건너가는 길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연륙교와 연도교로 건너가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배를 타고 가야만 했던 고군산군도의 섬으로 다리를 딛고 가는 여정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바다 위로 놓인 다리는 시간으로 계측되는 거리를 단숨에 압축한다. 배 시간을 확인하고 승선표를 끊고 여객선을 타고 가던 몇 시간의 거리를 다리는 불과 몇 분으로 단축한다. 여객선을 타고 느리게 당도했을 때의 낭만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대신 얻은 건 순간이동을 방불케 하는 편리함이다. 외지인들에게는 연륙교의 감회는 그 정도겠지만,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높으면 섬에 갇히기 일쑤였던 섬사람들에게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는 간절했던 염원이었으리라.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고군산군도에 떠 있는 그림 같은 다섯 개 섬으로 건너가는 길은 새만금방조제에서 시작한다. 육지를 먼바다까지 끌고 들어간 새만금방조제의 완공으로 고군산군도의 가까운 바다 섬인 비응도와 야미도, 신시도는 진즉 육지와 연결됐다. 신시도에서 무녀도로, 거기서 다시 선유도와 장자도로 건너가는 세 개의 다리를 더 놓는 게 고군산군도를 육지와 잇는 공사의 수순이다. 올해 연말 완공되는 다섯 개 섬을 다리로 잇는 연륙 공사는 막바지 단계다. 다리는 이미 다 놓았다. 다만 도로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외지인들이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건 무녀도까지다. 거기서 선유도로, 그리고 선유도에서 장자도로 건너는 연도교는 도로정비가 한창인 거친 공사판이라 주민들의 차만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 제한적으로 드나들고 있다. 이 길이 다 완공돼 섬을 징검다리처럼 딛고 건너는 기분은 어떨까. 가벼운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던 건 신시도를 넘어 무녀도로 접어들었을 때까지만이었다. # 섬에 놓은 다리가 육지에서 불러들인 상혼 무녀도에서 선유도로 건너가는 연도교인 선유대교 앞에는 엄격한 출입통제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다리 아래쪽의 주차장은 북새통이다. 차를 몰고 와서 섬에 들어가고자 하면 다들 거기 주차할 수밖에 없으니 그럴밖에…. 주말 오전 시간이었지만 주차공간은 이미 꽉 찼다. 좁은 갓길에다 차를 세운 차량 탓에 몇 대의 관광버스가 갇히면서 차량정체가 길게 이어졌다. 이내 짜증 섞인 경적 소리와 차량 통제를 하는 호루라기 소리로 도로는 뒤범벅이 됐다. 주차장으로 내려서니 소란은 더했다. 주차된 차량 사이로 호객꾼들이 오갔고, 좁은 주차공간 탓에 곳곳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섬 안의 식당과 숙박업소 주인들이 연신 전화통화를 하며 예약한 손님들을 찾아 통제선 너머에 세워둔 승합차로 데려갔다. 선유대교 앞에서부터는 섬 주민들에게도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1시간씩 차량통행이 허락되지만, 통제 구간 철조망 너머 쪽에 세워둔 주민들의 차량은 시간에 아랑곳없이 한창 공사 중인 위험천만한 도로를 무시로 운행했다. 더 기가 막혔던 건 통제된 구간을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였다. 셔틀버스는 관광객을 섬 안으로 실어나른 뒤 특정 숙박업소나 전기차 대여업소, 식당 등을 지정해 주고 이용을 요구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이들에게는 나올 때 셔틀버스요금을 따로 받았다. 고작 600m 남짓을 운행하는 셔틀버스 요금이 5000원이었다. 버스 차체에다 버젓이 ‘무료 셔틀버스’라고 적어놓았지만 실제로는 ‘바가지 버스’나 다름없었다. 셔틀버스의 편법운행은 선유도의 상인들에게도 골칫거리였다. 정종국 선유도관광진흥회장은 “대부분의 셔틀버스가 무허가 숙박업소나 식당들의 손님 유인책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소비자를 위해서도, 상인들을 위해서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셔틀버스가 선유도로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면서 무녀도를 찾는 손님이 뚝 떨어지자 무녀도 주민들의 불만도 폭발했다. 한 번은 무녀도의 한 주민이 셔틀버스 운행에 항의하며 버스 앞에서 드러누워 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고 했다. 이게 다 다리가 놓이고 섬이 육지와 이어지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아직 도로가 다 완공되지 않아 생긴 일일까. 공사가 다 끝나고 도로가 정비되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까. 과연 지방자치단체는 대안을 마련해 두고 있을까.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착잡할 따름이었다.
# 선유도에 아직 남아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정취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선유도의 선착장에서 명사십리 해변으로 가는 길 한쪽은 전기차와 스쿠터가 점령하고 있었다. 2인승 전기차는 1시간 대여료로 3만 원을 받았다. 스쿠터는 2만 원, 자전거도 시간당 5000원을 불렀다. 섬 곳곳에는 업주들을 상대로 전기차 등을 판매한다는 광고현수막이 휘날렸다. 좁은 해안도로를 따라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스쿠터를 타고 함성과 함께 위태롭게 달렸다. 드나드는 방법부터 상인들의 인심까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선유도의 풍광만큼은 예전 그대로다. 해안가에 우뚝 솟은 망주봉으로 이어지는 명사십리 해변의 정취도, 활처럼 휘어진 해안을 붉게 물들이던 노을도, 섬 사이에 갇혀 거울처럼 잔잔한 내만의 바다 경관도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선유 3구의 허름한 어촌마을 처마 밑에 심어 기르는 꽃들도, 바지락을 캐러 가는 할머니들의 꽃무늬 몸뻬바지도 예전 그대로였다. 인심 좋은 주인 내외가 운영하는 허름한 민박집에서 바지락만 넣고 끓여내 아침 상에 올린 국맛도 훌륭했고, 무녀도의 수원지 옆에 갯돌이 펼쳐진 낭끝해변에서 듣는 파도소리의 정취도 그만이었다. 선유도에 갔다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 두 곳 있다. 두 곳 모두 섬의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그중 하나가 선유 3구 쪽의 남악산이다. 남악산은 해발 155.5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여기 오르면 망주봉 일대와 선유도해수욕장의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남악산 자락의 대봉전망대는 선유도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조망대라 할 만하다. 아쉬웠던 건 선유 3구마을에서 전망대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산자락으로 들면 길이 뚜렷하고 표지판도 서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풀숲으로 뒤덮여 여간 찾기 어려운 게 아니다. 낫질 몇 번이면 길을 다듬을 수 있는데도, 장사에만 매달린 주민들이 그걸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게 못내 서운했다. 또 한 곳이 선유도에서 장자도로, 다시 대장도로 건너가서 오를 수 있는 대장봉이다. 선유도에서 장자도를 잇는 다리는 아직 통행불가지만,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보행교가 있다. 산 아래서 대장봉까지는 밧줄을 타고 오르는 제법 힘겨운 코스지만 여기 오르면 장자도와 선유도, 그 너머로 무녀도와 신시도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여기에서도 아쉬웠던 건 대장봉을 오르는 코스나 조망지점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 선유도의 아름다운 시간, 그리고 트로트 노랫가락 선유도에서 가장 매혹적인 시간은 당일치기 관광객들이 다 빠져나간 오후 6시 이후부터 시작된다. 적막한 섬 안에서 설핏 기울기 시작한 해가 해변을 비스듬히 비추는 모습은 그것 그대로 매혹적인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윽고 시작된 노을이 간조로 젖은 명사십리 해변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붉은빛 썰물의 해변 위로 연인인 듯 싶은 남녀가 걸어 들어갔다. 노을이 다 지고 나면 이제 푸른 바다의 시간이다. 다들 배로 섬을 드나들던 시절, 선유도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섬을 잇는 다리가 놓인 뒤에 바뀐 것 중의 하나가 선유도를 찾는 관광객의 형태다. 배로 드나들던 시절에도 선유도에는 유람선을 타고 오는 단체 행락객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름 피서철이 아니라면 그보다는 고즈넉한 바다를 찾아오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다리가 놓인 뒤에는 단체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소주를 박스로 지고, 먹거리를 한가득 싣고 오는 이들이다. 상인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고요한 섬 풍경을 기대하고 섬을 찾아왔다면 이들이 반가울 리 없다. 바다를 끼고 있는 선착장 부근의 선유 2구의 한 펜션에서는 단체 관광객들이 밤늦도록 술판을 벌이는지 트로트 노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가장 먼저 뭍이 된 곳이 비응도다. 한때 ‘육지가 된 섬’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비응도는 횟집들이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팔고,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 값을 받으면서 외면을 받아 급격하게 쇠락하고 말았다. 주민들이 상가를 다시 단장하고 예전의 영화를 되찾기에 나섰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걸 어찌 모두 상인들의 악덕 상혼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거들어 변명하자면 섬이 육지가 되면서 땅값이 급등하자 외지 자본이 들어왔고, 외지인들이 부르는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채산을 맞추지 못한 상인들의 어쩔 수 없었던 속사정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길을 다 놓고 난 뒤의 고군산군도는, 그리고 선유도는 어떤 모습이 될까. 분명한 건 지금의 선유도가, 섬을 다리로 잇는다는 것이 토목공사의 셈을 넘어선 일이라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선유도에는 민박과 펜션이 여럿 있지만, 시설은 낡은 편이다. 비교적 근래에 지은 곳으로는 선유 3구마을의 편백나무펜션(010-6646-8494)이 있다. 펜션이지만 덩그러니 통나무집이니 시설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깔끔한 펜션은 대장도에 있다. 선유도에서 도보로 장자도로 건너가 다시 대장도로 건너가야 한다. 대장도에는 ‘섬마을풍경’(063-468-7300) ‘바위섬’(063-466-8005) ‘그 섬에 가고 싶다’(010-5196-2112) 등의 깔끔한 펜션이 있다. 선유도 선착장이 있는 선유 2구마을에는 횟집이 줄지어 있다. 어디에서나 상차림과 음식값은 비슷하다. 이동수단이 있다면 선유 3구마을 쪽의 횟집을 추천한다. 두 손을 모은 형상의 ‘기도등대’ 쪽에 깔끔한 횟집들이 몇 곳 있다. 직접 바깥 주인이 배를 타고 낚시로 잡아 올린 우럭과 통발로 잡은 갑오징어 등을 내오는 집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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