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으면 1년 이내 핵(核)무장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 2023년 4월 28일 하버드대 강연)
지난해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하버드대 강연에서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는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당시 국내에서는 ‘가능하다(6개월 이내)’는 주장과 ‘불가능하다(최소 2년 이상)’는 주장이 엇갈렸다.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중 대다수는 “핵무장은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1년 이내 핵무기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은 ‘핵무장’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핵무기는 또 다른 전문 영역”이라며 “쉽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나라 원자력 전공자의 절대다수는 원자력 발전(소)을 공부했다. 원자력 분야 전문가들조차 말을 아끼는 이 민감한 문제를 두고 우리나라에선 문과 출신 학자들이 매체에 등장해 핵무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핵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기에 앞서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의 핵무장 능력을 분석한 보고서를 먼저 짚고 넘어가자.
퍼거슨 보고서
2015년 4월 찰스 퍼거슨(Charles D. Ferguson)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비확산 전문가 그룹에 비공개로 회람한 보고서 〈한국이 어떻게 핵무기를 획득하고 배치할 수 있는가〉에서 한국의 핵무장 역량이 충분하며 기초적인 핵무장에 필요한 시간을 5년 이내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핵보유를 ‘초기 단계(5년 이내)’와 ‘초기 단계 이후’로 나눠 명시했다. 초기 단계는 한국이 핵개발을 시작해 주변국에 신호를 보내며 비핵화(非核化)를 압박하는 (외교적) 과정을, 초기 단계 이후는 한국이 수준급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단계이다.
보고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핵 개발 초기에 필요한 핵물질을 확보(연간 플루토늄 50kg, 핵무기 약 8개 분량)하는 데만 최소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핵무장은 핵폭탄(핵탄두)과 투발(投發) 수단을 확보한 상태를 말한다. 크게 ▲핵분열 물질(원료, 고농축우라늄·플루토늄) ▲핵탄두 디자인(기폭 장치) ▲핵탄두 운반 체계(미사일 등 투발 수단)를 보유해야 한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이 세 가지를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수소탄과 같은 발전된 형태의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봤다. 또 보고서는 한국이 핵분열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고농축우라늄(HEU) 방식보다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방식으로 플루토늄을 활용한 핵물질 확보가 더 빠르고 가능성 높은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핵탄두 재료에는 고농축우라늄(HEU, 농축도 20% 이상)과 플루토늄이 있다. HEU는 천연 우라늄 중 0.7%만 존재하는 우라늄-235를 원심분리기 등으로 농축한 것이다. 핵무기용 HEU는 농축도가 90% 이상이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에는 농축도가 3~5%인 저농축우라늄(LEU, 농축도 20% 이하)을 연료로 사용한다.
원자로에서 사용한 폐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Pu-239, 순도 93% 이상)을 핵탄두 원료로도 쓸 수 있다.
핵·미사일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에 따르면,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통상 플루토늄은 5~7kg, HEU는 20~25kg이 필요하다. 이론상 플루토늄(Pu-239) 1kg이 완전하게 반응하면, TNT 19.5kt의 위력을 낸다. 이는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의 위력이다.
우라늄탄 1개 = 천연 우라늄 2t
우라늄 핵폭탄을 1개 만드는 데 천연 우라늄 약 2t이 필요하다. 기폭(起爆) 장치 성능이 우수하면 위력이 더 센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중수로(重水爐)를 사용하는 월성 원전(原電) 1~4호기(1호기는 2019년 폐쇄)에서 핵물질을 확보할 것으로 봤다. 경수로(輕水爐)와 달리 감속재와 냉각수로 중수를 사용하면, 경수만큼 중성자를 많이 흡수하지 않아 우라늄 연료 안에 있는 우라늄-238을 플루토늄-239로 바꿀 수 있는 중성자가 더 많이 남는다. 이는 중성자가 충돌해 플루토늄으로 전환되는 양이 많음을, 플루토늄-239 함량이 높음을 뜻한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플루토늄 생산력 제고를 위해 중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퓨렉스(PUREX)’ 방식으로 재처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퓨렉스는 습식 방식으로 화학 공정을 거쳐 유효한 우라늄,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 방식을 통해 주당 약 1kg, 연간 약 50kg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더 나아가 재처리 전용 공장을 신설하면 연간 최고 800t을 재처리할 수 있으나 시설을 마련하는 데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기폭 장치에 필요한 기술은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핵폭발에 필요한 고폭탄 등은 한화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비핵실험(시뮬레이션 등)을 여러 번 할지, 핵개발을 공언하고 실제 핵실험을 1회 이상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핵실험을 하면 대규모 탐지망으로부터 핵실험 증후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핵탄두를 실어 나를 투발 수단은 충분하다고 봤다.
“테러용 低級 플루토늄탄 개발에만 18개월”
‘한국의 최단 핵무장 소요 기간’을 알아보기 위해 원자력·핵무기 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은 모두 공학도로서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원자핵공학과)는 핵탄두를 최초 1개 보유하는 시점으로 ‘테러용 저급 플루토늄탄’은 최소 약 18개월(핵실험 시 30개월), 우라늄탄은 43개월(핵실험 시 55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황 명예교수는 국내 중수로에 사용후핵연료가 약 1만5000t 저장돼 있으며 사용후핵연료 3t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 9kg(6개월)을 추출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원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는 Pu-239의 비율이 80% 이하, Pu-240이 18% 이상이다. Pu-240 비율이 높으면 폭발을 통제하기 어렵고 그 위력도 약하다. 황 명예교수는 핵실험(1년 소요)을 하면 테러용 저급 플루토늄 핵탄두 1개를 갖는 데도 30개월이 걸린다고 봤다. 플루토늄탄은 반드시 핵실험을 1회 이상 해야 한다. 일부 우라늄탄(포신형)은 핵실험을 생략할 수 있으나 그 위력이 약하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모두 핵실험을 6회 이상 실시했다.
아래 소개하는 소요 기간은 한국이 NPT를 탈퇴하고 개발 과정을 지연시키는 돌발 변수는 없으며 국가 비상상황이라는 가정하에서 최단 소요 시간을 추정한 값이다.
▲재처리 시설 설계·건설/핵물질 운송 용기 설계·제작/핫셀 제작(3개월) ▲재처리 시설 안전성 검증/핵탄두 설계(3개월) ▲재처리 시설 검증 및 준공/핵연료 이송/고폭장치 개발(3개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연간 탄두 1개분)/고폭장치 검증(6개월) ▲플루토늄 pit(핵물질 중심부) 제조/탄두 성형 및 검사(2개월) ▲핵탄두 조립(1개월) ▲핵실험(12개월).
위에 나온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활용되는 방식은 퓨렉스(PUREX·습식)이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한국은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재처리’를 할 수 없어 퓨렉스를 활용할 수 없다.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20% 미만 저농축은 모두 미국의 사전(事前) 동의를 받도록 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기술을 습득하고 적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핵탄두 1개에 HEU 20kg 필요
저급 플루토늄탄이 아닌 무기급 핵폭탄(플루토늄 순도 93% 이상)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까. 1년 이상 추가로 소요된다.
무기급 플루토늄(순도 93%)은 핵연료를 짧게 연소한 것을 재처리해야 한다. 통상 원전에 쓰는 핵연료는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연소한다. 이렇게 되면 Pu-239의 비율이 떨어지고 Pu-240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기존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할 수 없다. 우라늄을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대량 생산을 위해 국내 우라늄 광산을 발굴하고 정제 시설을 추가한다면 개발에 수년이 추가로 소요된다.
고농축우라늄은 원심분리기로 천연 우라늄에 있는 U-235와 U-238의 미세한 질량 차를 이용해 확보한다. 핵탄두 1개에는 HEU가 20kg 필요하다.
▲우라늄 농축 시설 설계/원심분리기 설계/육불화우라늄(UF6) 변환 시설 설계(3개월) ▲우라늄농축 시설 건설/원심분리기 시제품 제작/UF6 시설 건설(3개월) ▲우라늄 농축 시설 인허가/원심분리기 시제품 최적화/UF6 생산/핵탄두 설계(3개월) ▲우라늄 농축 기기 설치/원심분리기(P2급) 전량 생산/UF6 공급/기폭장치 개발(6개월) ▲우라늄 농축 및 원심분리기 시험 및 기동/기폭장치 검증(12개월) ▲HEU 20kg 생산(18개월) ▲핵탄두 조립(1개월) ▲핵실험(내폭형, 12개월).
황 명예교수는 “핵개발 국가 사례를 참고할 때 원심분리기(P2급) 개발과 관련 시설 건설에만 4~11년이 걸린다”고 했다. 우라늄탄(HEU 20kg) 1개를 확보하는 데 P2급 원심분리기 최소 800기(1년 가동 기준)가 필요하다.
핵무장은 핵탄두뿐만 아니라 투발 수단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핵무장, 한국적 핵무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합동참모본부에서 북핵 대응 실무를 맡았던 정경운(예비역 육군 중령,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서울안보포럼(SDF) 연구기획실장은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순간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전술핵뿐 아니라 전략핵(위력 TNT 수백kt)도 가질 수밖에 없다. 투발 수단(IRBM 등)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투발 수단 없어”
투발 수단에 대해서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적이 공격한 후 반격할 수 있는 능력, ‘2격(Second strike) 능력’을 갖춘 SLBM 등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 실장은 “국가적 역량을 모으면 초기 수준의 핵무장은 2년(5발 이내), 주변국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투발 수단을 갖춘 상태인 수준급 핵무장에는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면서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개발 기간은 순차적인 것과 병행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면 좀 더 선명하게 추정할 수 있다”면서도 “이 역시 변수가 워낙 많다”고 했다.
이춘근 박사는 “투발 수단을 갖추지 못한 상태는 핵능력을 확보하거나 핵무장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핵무장에 대한 기준이나 평가는 그 나라가 처한 환경과 보유한 투발 수단에 따라 달라지기에 상대적이다. 미국·러시아에 적용되는 관점과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에 적용되는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우리나라는 투발 수단을 갖추고 있습니까.
“아니요, 미사일용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칩시다. 이게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시험 평가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사일 개조도 해야 합니다. 이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무기체계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투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죠. 이 통합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죠.”
“핵실험은 많을수록 좋아”
— 핵실험을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여러 번,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인도·파키스탄 사례처럼 한 번 할 때 여러 개를 터뜨려 밀도 있게 진행하는 방식도 있죠.”
—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면 안 됩니까.
“안 돼요. 우리나라처럼 전술 환경이 복잡할 때는 핵탄두의 종류나 위력이 다양해야 해요. 다양하게 보유하려면 그에 맞는 실험을 해야 해요. 여기에 투발 수단이 달라지면 이에 알맞게 또 실험을 해야 해요. 미사일에 장착하는 핵탄두와 SLBM에 장착하는 핵탄두는 분명 다르니까요.”
— HEU 방식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HEU를 택한다면 15~20년 정도 걸릴 겁니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유렌코(URENCO)에서 저농축우라늄을 들여오거나 우라늄 관련 다국적 기업의 지분을 일부 보유해 활용하는 방법이 빠를 겁니다. 운송 물량도 줄어들고 환경 오염도 덜하니까요.”
— 재처리 방식은요.
“시간을 절약하고자 한다면 기술력이 검증된 프랑스 설비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하던 방법이죠. 핵물질 확보에 드는 시간은 차치하고 원자력을 규제하는 각종 법률과 주민 수용성에 큰 영향을 받기에 사실상 시설 가동이 힘들 것이라고 봐요. 각종 위험과 위법을 감수한다면 핵물질 확보에만 2년은 걸릴 거라고 봐요.”
— 국가 총력전 차원에서 마음먹으면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 주장이 나올 때면 참 답답해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예요. ‘마음만 먹으면’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겁니다. 전시(戰時)에는 그 긴급성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진행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전시에는 우리 작전통제권이 미군(한미연합군사령부)으로 넘어갑니다. 평시(平時)에 개발하겠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지금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放流)에도 이 난리인데….”
— ‘퍼거슨 보고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신뢰하지 않아요. 오히려 중국이 우리 핵무장 역량을 정확히 분석하고 있다고 봐요.”
“핵무장론으로 원자력계가 가장 큰 피해”
— 중국은 어떻게 봅니까.
“핵탄두를 갖는 데만도 최소 2년이라고 분석합니다. 저도 이게 맞다고 봐요.”
— 과학기술자 입장에서 핵무장(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핵무장론의 가장 큰 피해 집단은 과학기술자들이에요. 정치권에서는 핵무장 여론이 70%라고 주장하며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요. 국민감정을 자극해왔죠. 그 반대급부로 원자력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불필요한 의심을 사 평화적인 원자력 연구에도 제한을 받아왔죠. 반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신뢰와 협력을 얻어내 자유로운 연구와 농축·재처리를 다 하고 있습니다. 실리를 챙긴 거죠. 저는 핵무장을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 비과학적인 조기 핵무장 가능설을 주장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는 무기급 확보 못 해”
핵무기 분야에서 30년간 일하며 이론과 실무를 겸한 A씨. A씨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순도 90% 이상)으로 사용한 국가는 없었다”며 “월성 원전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했다. A씨의 설명이다.
“플루토늄에도 급이 있어요. 플루토늄 239, 240, 241, 242. 홀수인 239나 241의 순도가 93% 이상이면 무기급이라고 합니다. 순도가 60%면 원자로에 사용돼 ‘원자로급’이라고 합니다.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도 핵탄두를 만들 수는 있어요. 그런데 폭발 위력이 작고 불안정해 무기로는 쓸 수 없어요.
원자로급 플루토늄에는 240, 242가 많아요. 이것들은 중성자가 자발적으로 발생해 다루기도 어렵고 엄청난 붕괴열이 발생해요. 통제가 안 되는 중성자가 자발적으로 막 튀어나오니까 내가 원하지도 않는 시점에 조금씩 폭발이 생겨요. 이를 방지하려면 핵물질을 식히기 위해 핵탄두 그 자체보다 더 큰 냉각 장치를 달아야 해요. 어떻게 무기로 쓰겠습니까. 월성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주장은 기본적인 원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는 겁니다. 월성 원전을 활용하려면 새로운 핵연료를 장전해 용도에 맞게 연소(燃燒)시켜야 합니다.”
— 그럼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국가 비상사태이니) 사람 죽어나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해도 핵물질을 얻는 데만 3년이 걸려요. 이것도 재처리 시설 확보 능력과 재처리 전문가가 있다는 전제하에서요. 이렇게 해서 3년 동안 얻을 수 있는 플루토늄 239가 고작 핵탄두 1기 만들 수 있는 분량입니다.”
북한이 흑연감속로 이용하는 이유
— 북한은 왜 효율도 높지 않은 5MW급 흑연감속로로 핵물질을 확보합니까.
“핵연료에는 ‘연소도’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보통 핵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연소도가 1000MWD입니다. 만약 원자로 출력을 100MW로 설정하고 열흘을 가동하면 이 사용후핵연료의 연소도는 1000MWD입니다. 그런데 영변의 흑연감속로는 출력(5MW)이 낮아 연소도도 낮아요. 핵연료봉을 한 번 장입하면 2~3년씩 가동하죠. 플루토늄 239는 원자로를 오래 가동하면 할수록 많이 생깁니다. 핵물질 확보에는 제격이죠. 월성에 있는 중수로의 사용후핵연료는 연소도가 8000MW/t입니다. 원자로 출력이 높으면 그만큼 연료봉을 자주 교체해야 하죠. 짧게 가동하니 플루토늄 239는 적을 수밖에 없고요. 영국도 러시아도 흑연감속로를 통해 핵물질을 확보했습니다.”
북한은 흑연감속로를 활용해 순도 98%인 플루토늄을 확보한다. 흑연은 우라늄-238과 중성자의 충돌을 촉진해 플루토늄-239의 생성량을 증가시킨다. A씨는 “흑연감속로는 적은 양의 우라늄을 투입해도 훨씬 많은 플루토늄이 나온다”며 “애초에 북한이 흑연감속로를 만든 것은 발전 목적이 아니라 핵무기용으로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핵무기 개발국은 플루토늄 생산 전용 원자로를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했다.
— 경수로는 어떻습니까.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앞서 ‘북한이 경수로에서 핵연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경수로에서도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투입하는 핵연료량에 비해 플루토늄이 적게 나올 뿐이죠. 한국처럼 우라늄이 부족한 나라는 재처리보다는 우라늄 농축 방식이 알맞습니다.”
우라늄, 北 자체 조달, 南 전량 수입
— 우라늄 농축 방식은 얼마나 걸립니까.
“원심분리기의 성능에 따라 그 기간은 천차만별이에요. 3년 이내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도 딱 1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에요. 우리가 억지력을 갖는 수준의 핵무장을 하려면 핵탄두 수량이 충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HEU를 만들기 위해 우라늄 수입량을 갑자기 2배, 3배 늘리면 외부에서 의심하겠죠. 어떻게든 1발은 만들어도 미국의 묵인 없인 지속적으로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 우리나라에도 우라늄 광산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품위가 좋지 않아 채산성이 없는 걸로 밝혀졌어요. 품질이라도 웬만큼 괜찮으면 진작에 캐냈죠. 북한은 자체 우라늄 확보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없다고 보면 돼요.”
— 기폭 장치는요.
“핵물질 확보 과정과 병행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죠. 그런데 기폭 장치를 만들면 이게 실제 작동하는지 실험해봐야죠. 그것도 여러 번 해야 해요. 첫 핵탄두 하나를 완성하는 데 플루토늄탄 기준 5년 이상 걸릴 것 같아요.”
—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안 했는데 우리도 핵실험 과정을 생략하면 안 됩니까.
“이스라엘은 프랑스가 대리 실험을 해줬다는 게 정설입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핵실험 횟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에요. 어떤 성능이 나오는지를 알아야 수정 보완하고 무기로서 신뢰성을 갖고 실전에 써먹을 수 있죠.”
공식 핵 보유국 중 핵실험을 가장 적게 한 나라는 인도·파키스탄으로 6회다.
— 핵개발 인력은 충분합니까.
“우리 산업·학계의 인력을 끌어모으면 가능은 해요. 건식 재처리 방식인 ‘파이로 프로세싱’을 연구했던 인력이 재처리에 투입되면 되고요. 다만 기폭 장치를 당장 개발할 만한 인력은 없어요. 재래식 탄두를 개발했던 인력과 핵을 전공한 이들이 모여 공부하며 극복해야죠.”
“핵무장, 10발로도 충분”
— 핵무장을 한다면 수량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북한을 상대로 하면 10발이면 충분합니다. 보유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김정은에게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발을 보유하는 데에도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야 할 겁니다.”
— ‘퍼거슨 보고서’가 처음 나올 때랑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 보고서가 가치가 있나요? 달라진 게 있다면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됐다는 정도? 우리의 핵무장 잠재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습니다.”
A씨는 “핵개발 소요 기간이 계획보다 훨씬 늦어질 순 있어도 단축되긴 어렵다”고 했다. 투발 수단에 대해서는 “현무 미사일 등을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핵무기 원리도 모르는 이들이 국민감정을 자극한다”며 “핵무장론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과학자와 국민,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A씨의 이야기다.
“오늘날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 강국이 된 것은 비확산 체제에서 혜택을 본 덕분입니다. 그 수혜자인 한국이 이제 와서 비확산 체제를 흔드는 것은 신뢰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과학계가 아닌 외교·안보 분야에 있는 이들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재처리, 농축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우리 과학기술의 자율성만을 훼손할 뿐입니다.”
‘6개월 핵무장설’의 기원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 반대 운동을 하는 서균렬 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른바 핵무장론자이다. 여러 매체에 등장해 ‘6개월이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2016년 9월 ‘생존을 위한 핵무장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자신이 핵무기 설계 도면, 3차원 도면을 갖고 있다며 1조원의 예산과 연구 인력 1000명, 기술 인력 1000명, 1000만 명의 뜨거운 가슴이 있으면 핵을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6개월의 시간을 주면 원자폭탄, 6개월 더 주면 수소탄, 전술·전략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또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은 20세기 기술인 원심분리기 2000기를 돌리지만 우리는 (약 50평 규모의 공간에서) 21세기 기술인 레이저를 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화학공학 기술이 좋아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240을 그대로 둔 채 재처리 없이 플루토늄-239만 빼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한국이 삼성전자가 있는데 인도, 파키스탄보다 못하느냐, 북한에 부동산이 있어 그 경제적 가치 때문에 트럼프(당시 미국 대통령)가 제재할 수 없다, 무서워할 것 없다고 했다.
서 전 교수는 왜 하필 6개월이 걸린다고 했을까? 이 의문을 이춘근 박사가 밝혀냈다.
《동아일보》 1977년 5월 26일자 4면 과학란에는 미국이 연구 중인 원자법 레이저 농축 동향 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에 ‘3.5일, HEU 20kg 생산 가능’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이 기술은 전열 후드로 금속 우라늄을 증발시키는 방법인데 3000도가 넘는 고열을 견디지 못해 곧바로 포기했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전자총으로 우라늄 극소량을 증기화해 레이저로 농축한 실험이 있었다. 3회에 걸쳐 총 10시간을 가동해 무기급(농축도 90% 이상)에는 미치지도 못하는 우라늄(약 30%) 0.2g을 얻었다. 이를 쉬지 않고 1년 내내 가동해도 얻을 수 있는 우라늄은 175g에 불과했다.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인 HEU 20kg을 얻으려면 이런 설비가 680대 이상 필요하다. 이런 설비를 갖춘 나라는 세상에 없다. 레이저 실험 직후 미국 등 국제사회는 한국의 핵무장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길들이기 차원에서 사건을 키웠다. 이 때문에 관련 설비들도 모두 폐기했는데 설령 장비가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1977년 기사와 2000년 한국 연구진의 레이저 실험 해프닝이 합쳐져 근거 없는 ‘6개월 핵무장설’이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1년 이내 핵무장(하버드대 강연)’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이 과학적 근거도 내세우지 못하는 핵무장론자에게 휘둘려 벌어진 사건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국민감정만을 자극하는 발언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자들이 말하는 한국의 핵무장
“초기 수준 핵무장은 2년, 수준급 핵무장에는 10년 이상 소요”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 低級 플루토늄탄 18개월, 우라늄농축탄 43개월 걸려(핵실험 생략 시)
⊙ “원심분리기(P2급) 개발과 관련 시설 건설에만 4~11년 걸려”(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
⊙ “핵 실험,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할 수 없어… 투발 수단 따라 실험해야”(이춘근 박사)
⊙ “중국, 한국이 핵탄두 갖는 데만 최소 2년 걸릴 것으로 분석”
⊙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 핵탄두 만들 수 있지만, 불안정해 무기로는 사용 못 해”
⊙ “핵개발 인력은 산업·학계 인력 끌어모으면 가능… 기폭 장치 당장 개발할 인력은 없어”
⊙ “원심분리기(P2급) 개발과 관련 시설 건설에만 4~11년 걸려”(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
⊙ “핵 실험,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할 수 없어… 투발 수단 따라 실험해야”(이춘근 박사)
⊙ “중국, 한국이 핵탄두 갖는 데만 최소 2년 걸릴 것으로 분석”
⊙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 핵탄두 만들 수 있지만, 불안정해 무기로는 사용 못 해”
⊙ “핵개발 인력은 산업·학계 인력 끌어모으면 가능… 기폭 장치 당장 개발할 인력은 없어”
이란 핵시설에 설치된 원심분리기. 사진=뉴시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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