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고전 ‘당의정’
채운·안명희 기획·엮음, 그린비, 496쪽, 1만7000원
“고전(古典)을 읽어야 한다.”
너무도 귀에 익은 조언이다. 얼마나 고전을 경시했기에 이렇게 강조할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르침이 불효 시대에 나온 맥락과 비슷하다 하겠다.
고전은 필독서라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 흔히 일컬어진다. 곰팡내 풀풀 풍기는 옛날이야기, 전공자들만 읽는 전문서, 논술시험 준비하려면 요약본 정도만 읽어도 되는 책…. 이렇게 인식되지 않는지?
그런데도 ‘필독 고전 100선’ 따위의 책들이 끊임없이 소개된다. 고전 읽기가 중요하긴 중요한 모양이다. 고전의 가치를 곰곰이 따져보자. 숱한 책 가운데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생명력을 이어왔고 오늘날에도 읽힌다면 그만큼 귀중한 양서 아니겠는가. 저술 당시의 치열한 시대정신이 반영되었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공감을 주지 않으랴.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학에는 고전 강좌가 수두룩하다. 컬럼비아대학교는 고전 수십 권을 읽는 프로그램으로 이름났다. 서양 문화의 원천이 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등은 필독서다. 서양 지식인들의 글에 나타나는 다양한 비유법은 이런 고전에 뿌리를 둔다.
바쁜 세상에 비실용적인 고전을 읽으면 시간 낭비 아닌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에게 반론 비슷한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한국의 간판 기업인이었다. 실용 부문의 챔피언이라 할까. 그는 회사 운명이 걸린 결정을 할 때면 으레 ‘논어’를 다시 찬찬히 읽었다고 한다. 2500년 전 춘추전국 난세에 공자가 가졌던 고민을 반추하면 오늘날 난제에 대한 해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얄팍한 자기계발서 따위는 손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의 사례를 들먹이며 “부자가 되려면 고전을 읽으라”고 부추길 뜻은 추호도 없다. 고전에서 통찰력을 얻으면 실용적인 이로움도 얻는다는 의미다. 어느 분야에서든 고수가 되려면 고급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는 사람은 오래된 고전에서 새로운 지혜를 찾게 마련이다.
고전을 읽으면 좋은 줄은 알지만 막상 책을 펼쳐 들면 한두 쪽만 봐도 골치가 아픈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문이 난해하고 번역도 난삽한 탓이다. 그러나 이런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만화책처럼 달콤하게 읽히는 고전은 거의 없다. 어려운 만큼 한 쪽, 두 쪽 넘기며 저자의 마음을 헤아려 가면 성취감은 더 크다.
고전, 조언 아끼지 않는 현자(賢者)
‘수유+너머’라는 독특한 이름의 연구 공간 구성원들이 숱한 고전을 읽고 서평, 독후감 등을 묶은 ‘고전 톡톡’을 내놓았다. ‘고전, 톡(talk)하면 통(通)한다’라는 부제에서 짐작하듯이 구성원들끼리 치열한 토론을 벌여 책의 알맹이를 찾아낸 듯하다.
집필자 25명 가운데 몇몇 분은 이미 여러 저서를 낸 저술가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저자인 고전평론가 고미숙님,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를 펴낸 재야 사회학자 고병권님, ‘언어의 달인, 호모 로스’를 쓴 채운님 등이 그들이다. ‘수유+너머’ 연구원인 길진숙님(고전문학), 문성환님(한국현대문학), 박성관님(진화론), 신근영님(과학철학), 최정옥님(중국 근대문학) 등도 관련 분야에서 활발한 강의 및 집필 활동을 펼치는 전문가들이다. 경기도 수지에서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를 꾸려가는 공동체 연구가 이희경님도 집필자로 참여했다. 책 서문에는 집필 의의와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아래에 옮겨본다.
고전은 우리의 실생활에 유용하다. 살고 죽고 싸우고 욕망하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고전은 우리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나이든 현자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식이요, 보장이 확실한 ‘생명보험’이다. … 필자 중에는 고미숙 선생님처럼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스타 필자’도 있지만, 필자 대부분은 처음으로 ‘공적 지면’에 글을 발표하는 신인들이다. 우리는 작년 한 해 동안 각자가 공부하는 장에서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썼으며, 열심히 경청하고 열심히 깨졌다. 우리가 ‘다시 읽은’ 고전들은 이 과정에서 선택되었고, 모두들 고쳐 생각하고 고쳐 쓰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열 번 고쳐 쓰기는 필수요, 무려 스무 번을 고쳐 쓴 필자도 있다. 이런 공동작업을 통해, 독자는 마침내 필자가 되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저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맡은 고전 텍스트를 충분히 소화해 자기 목소리로 토해냈다. 오늘날 시각으로 재해석한 부분도 적잖다. 500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인데다 동서고금의 온갖 고전이 등장하니 책을 처음 잡을 때는 주눅 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저자들의 처절한 고뇌 덕분인지 독자는 경쾌하게 술술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며칠 동안 끓인 진한 사골국물을 단숨에 들이켜는 식도락처럼…. 기지가 번뜩이는 소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고전 읽기의 묘미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 모두가 선물이다
중국 송대의 스님 원오극근(圓悟克勤·1063~1135)의 ‘벽암록’에 관한 글을 보자. 화두(話頭)를 깨달으려 용맹정진하는 선승들의 교과서이니만큼 일반인이 뛰어넘기엔 너무도 높은 벽 같단다. 기존의 세계를 깨지 않으면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벽암록’이 전해준다고 한다. 이 글을 쓴 채운님은 “내가 믿고 있는 것뿐 아니라 사유하는 나 자신까지도 부정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불온하고 혁명적인 텍스트”라고 선언한다.
100살 넘게 장수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석학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 2009)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는 뉴기니 원주민 가후쿠-가마족의 축구 경기가 소개된다. 양 팀이 동점 골을 넣을 때까지 며칠이고 공을 찬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기를 의례로 받아들였기에 승부를 결정짓지 않고 무승부를 이뤄낸단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들의 이런 사유(思惟)를 ‘야생의 사고’라 명명하고 야생은 야만이 아님을 역설했다. 이 부분의 필자인 신근영님은 “타자든 자연이든 교감과 공존은 나의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의례였던 포틀래치. 마을 축제 때 손님들에게 온갖 음식과 선물을 푸짐하게 나눠주는 행사다. 베풀고, 받고, 되갚고…. 이렇게 재물과 정(情)이 서로에게 돌아간다. 이런 행태를 분석한 명저 ‘증여론’은 인류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물꼬를 텄다. 마르셀 모스(1872~1950)가 저자. 호혜적 선물 주고받기는 평화공존을 위한 실천적 지혜다. 공동체 삶을 구현해가는 필자 이희경님은 “모스의 ‘증여론’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세상, 매일 ‘리바이블’시켜야 하는 평화와 사랑의 세계를 꿈꾼다”고 털어놓았다.
조선의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제주, 강진 등에서 18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했다. 낡은 움막에서 기거하며 수백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의 인간적 고뇌가 가득 담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가운데 두 아들에게 띄운 글이 돋보인다. 폐족(廢族)이어서 과거를 볼 수 없어 벼슬은 못 하지만 학문에 정진하기에는 오히려 더 낫다고 격려한다. 서평을 쓴 문성환님은 다산의 치열한 학문 활동에 대해 “어쩌면 그것은 한 지식인이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혹은 정직한 방법이 아니었을까”라고 정리했다.
재상 벼슬을 마다하고 시궁창에서 살기를 자원한 쾌남아 철학자가 누구일까. 장주(莊周·기원전 365~290)다. 그는 흔히 장자(莊子)로 칭해진다. 그의 논변을 모은 고전 ‘장자’는 “만물은 모두 똑같다”며 인간의 오만을 꾸짖었다. 만물이 함께 살려면 다른 존재의 삶을 온몸으로 감지해야 한단다. 필자 길진숙님은 “다스린다는 행위가 없는데도 잘 돌아가는 세상. 그런 무위(無爲)의 세상이 장자가 상상한 공동체다. 국가 없이 살기를 꿈꾸고 국경 없는 사회를 꿈꾸는 당신에게 ‘장자’는 든든한 벗이 되어줄 것”이라 말했다.
고전 문학, 인간 욕망을 다루다
‘고전 톡톡’이 다룬 책 가운데 문학 작품도 적잖다. 이광수의 ‘무정’, 루쉰의 ‘아Q정전’, 카프카의 ‘변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 동서고금의 명작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삼국지연의’‘서유기’ 등에 비해 덜 알려진 중국 고전이 ‘홍루몽(紅樓夢)’이다. 청대의 작가 조설근(曹雪芹·1715~1763)이 남긴 대하소설이다. 480여 명의 등장인물이 벌이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한번 책을 잡으면 내려놓기가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 겉보기로는 연애소설이지만 인간 욕망의 허무함을 묘파한 구도(求道) 소설이기도 하다. 당대의 문화, 사회, 정치, 복식, 음식 등 다양한 배경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박물학적 보고(寶庫)여서 이 작품을 연구하는 학문을 ‘홍학(紅學)’이라 하기도 한다. ‘홍루몽’을 분석한 최정옥님은 “인간만이 자연현상과 인간사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가짜니 진짜니 하며 얽매이며 연연해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대표작 ‘죄와 벌’은 도입부부터 섬뜩하다. 가난한 청년이 전당포 주인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법학도인 청년은 스스로 범행 이유를 찾았으나 결국 실패한다. 그 점이 자신의 죄라고 여긴다. 그는 자수하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간다. 이 작품을 소개한 안명희님은 “주인공들은 천상이 아니라 지상에 있다. 이 지상적 존재들이 겪는 고통과 비극, 그리고 그를 돌파하기 위한 갈등과 투쟁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전편에 펼쳐진다. 그들은 피안(彼岸)이 아니라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한정된 조건 안에서 싸워 자유를 얻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좋겠다. 논술용이니 독서용이니 하며 급조한 고전풀이 참고서보다 훨씬 알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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