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고수를 찾아서 <8> 서인주 국술원 회장

醉月 2010. 4. 3. 12:24
"국술은 전세계를 제패한 한국문화"
미국 등 31개국 800여 개 도장, 170여만 명 수련
신장 2m 넘는 외국인 거한 단번에 제압하기도
한국과 미국 도장연계한 무술 세계화 위해 노력


"Are you Master(당신이 사범입니까)?" 덩치가 산만한 백인 미식축구선수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험악한 분위기와는 달리 사내의 태도는 의외로 정중했다. 뭘 하자는 속셈일까. 한번 겨뤄보자는 뜻일까. 그렇다면 단순한 시비는 아닐 터.

아니나 다를까. 사내의 입에서 "무례한 짓일줄 알지만 실력을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말이 나왔다. 2m가 넘는 거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를 잠시 고민하는 데 사내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멱살을 잡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 말 그대로 숨이 막혀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반사적으로 발이 거한의 허벅지로 날아갔다. 상대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찰라, 멱살을 잡은 오른손을 단숨에 꺾어 버렸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

"수만 번 연습한 동작이지요. 근데 그 거한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도장에 정식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마스터의 멱살을 잡은 것은 알겠는데 그 뒤 자기가 어떻게 맞았는지, 손목이 어떻게 꺾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모르겠다라고요."

한번은 훈련을 하던 중 주위가 시끄럽기에 둘러 봤더니 흑인 두 명이 성기를 내놓고 도장에 오줌을 갈기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나머지 도장에 진열되어 있던 칼 하나를 들고 도복을 입은 채 뒤쫓아 갔다. 1㎞를 달린 끝에 그들을 잡아 혼내줬다. 추격과정이 얼마나 살벌했던지 신고를 받고 경찰차가 따라왔다.

서인주(59) 사단법인 국술원 회장 및 세계국술협회 부총재가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도장을 열었을 때 있었던 일화다.

    상대방의 공격을 일차로 저지한 뒤(사진 맨위) 역공을 가하는 서인주 국술원 회장(사진 위). 국술원의 한 사범이 맨손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사진 아래). 사진=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동세서점(東勢西漸) 무술

국술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무술이다. 미국 영국 등 세계 국술협회 산하 31개국에 800여 곳의 도장이 있다. 등록회원만 170여만 명에 이른다. 국술이 태동한 것은 1958년. 서 회장의 친형인 서인혁 세계국술협회 총재가 우리나라의 전통무술을 집대성해 '국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 회장은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다. 자신을 포함해 네 명의 형제가 모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다. 서 회장은 1960년대 말 또 다른 형인 서인선 한민족합기도협회 총재의 도장일을 돕기 위해 부산으로 왔다. 1970년 해병대에 입대, 무술교관을 지내기도 했던 서 회장은 제대 이듬해인 1974년 해운대에서 자신의 첫 도장을 연다. 이어 송정과 일광에도 수련장을 개척했다.

이른바 '잘 나가던' 서 회장이 미국으로 간 것은 1978년이다. '국술의 세계화'를 위해 서인혁 총재가 도미한 지 4년 뒤였다. 계속 무술가로서의 길을 걸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서 회장은 마침내 1980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도장을 세운다. 그리고 형인 서인혁 총재를 도와 국술을 세계적인 무술로 키웠다.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미국인들은 서 회장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우리 땅에서 떠나라는 식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국술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를 제패한 대표적인 한국문화입니다. 미국 등의 도장에서는 한국과 달리 어린 나이의 관원들은 별로 없습니다. 평균 연령이 30살에 이르고 노인들도 많죠. 이는 국술이 현지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외국에 당했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아니라 이와 반대되는 동세서점(東勢西漸)이라고도 볼 수 있죠."

현재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거주하고 있는 서 회장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중간 사범들보다는 '마스터'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마스터 서'로 불리는 서 회장은 미국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많은 미국의 정관계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서 회장에게서 국술을 배웠다. 2006~2007 미국 프로농구(NBA) 챔피언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주전 선수인 팀 던컨도 제자다. 서 회장의 이웃에 살고 있는 팀 던컨은 스승을 만날 때마다 깍듯한 자세를 취한다.

서 회장이 미국에서 유명세를 치른 일화 하나.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차를 세운 경찰관이 저를 보더니 '마스터 서 아니시냐'며 알은 체를 하더군요. 내심 그냥 통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이 경찰관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분이 과속을 하면 되시겠느냐'고 나무란 뒤 여지없이 딱지를 끊어 버렸습니다. 하하."

#몸 속에 흐르는 민족무술의 피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바쁜 생활을 하는 서 회장을 만난 곳은 6월초 부산 강서실내체육관이었다. 영남지역 국술승단심사가 여기서 열린 까닭이었다. 운이 좋았다.

며칠 전 귀국했다는 서 회장에서 한 수 시연을 부탁했다. 시차적응이 채 되지 않았을 터라 미안하기 그지 없었지만.

근데 과연 '마스터 서'다운 실력이다.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는 두 사람을 가볍게 제압한다. 손목만을 잡은 듯 한데 상대방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한채 나가 떨어진다. 발차기 역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답지 않게 날카롭다. 칼을 든 상대의 공격을 막는 단도막기, 맨손으로 급소를 가격하는 편수법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시에 터지는 순간적인 동작들이 압권이다.

"예전에 미국에서 단도막기 시범을 할 때 칼이 미처 준비되지 않는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외국인이 잠시 나가더니 날이 시퍼런 회칼을 가지고 왔더군요. 한번 막아보라면서요. 으시시하기는 했지만 어쩌겠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인데. 휘두르는 칼을 피하면서 손목을 꺾어 버렸습니다."

20년 이상 미국에 머물던 서 회장은 지난 2000년말 한국으로 들어온다. 한국과 외국에 있는 국술도장을 연계해 국술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실전기술만을 연마하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국술의 이론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서 회장은 지난 2005년 11월 국술원 회장에 취임했다. 국술원협회 사무실은 현재 대구에 있다.

"한국에 온 이유는 무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너무 약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20대란 어린 나이에 해운대에서 도장을 할때만 해도 솔직히 건방을 좀 떨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가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그곳에서는 우리와 달리 문무를 같이 공부합디다. 어찌보면 미국에서 운동을 다시 한 셈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귀국한 뒤 2년 가량 백담사에 머물며 여러 가지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서 회장은 국술의 브랜드화 작업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이제 무술 자체도 고급화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오랜 미국생활에서 체득한 까닭이다. 사과가 있으면 자체는 건드리지 말되 포장을 잘 하는 작업, 이는 곧 경영수단이라는 것이다. 서 회장은 무술도 이제는 영세성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철학임을 거듭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국술 창시자 서인혁 총재가 애초 배운 것이 합기도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술 역시 합기도의 일종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서 회장은 단호하게 합기도와 선을 긋는다.

"서인혁 총재가 우리나라의 여러 무술을 집대성해 국술원이 창립한 지 50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국술은 자체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이제 당당한 민족무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군가는 민족무술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문헌 등 뚜렷한 근거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문헌은 없지만 대신 저에게는 '피'가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 고유의 무술은 한국인의 몸 속에 면면이 흐르고 있으며 제 몸에 있는 피가 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어떤 무술을 배웠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해외에 수출되는 우리나라 자동차가 100% 국산 부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그 차를 외국차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국술이란
- 정통 궁중·불교·사도무술 집대성

서인혁 국술원 총재가 창시한 국술(國術)은 궁중무술(왕가 호위) 불교무술 사도무술(무인가문이나 사대부가문에서 전수) 등 우리나라의 3가지 전통무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 총재는 젊은 시절 고수를 찾아 전국을 주유하면서 자신만의 무술체계를 완성했다. 서 총재는 1958년 19세의 나이에 국술원을 세울 무렵 부산 중앙동에서 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의 국술을 있게 한 주인공이다.

국술원은 무술로서는 보기 드물게 특허청의 특허를 받았다. 따라서 '국술원'이라는 이름과 로고는 아무나 사용할 수가 없다. 전세계에 있는 국술원 도장의 차량 색상이나 간판 등이 같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국술은 형(形)도 전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지부 설립과 운영방식 역시 본부의 허가 및 통제를 받는다.

국술은 대학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영산대학교 동양무예학과는 지난 2006학년도부터 국술 과목을 개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