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고수를 찾아서 <6> 안길원 정도술세계연합 대종사

醉月 2010. 3. 16. 08:30

고수를 찾아서 <5> 안길원 정도술세계연합 대종사
"신술(身術)·봉술(棒術)·검술(劍術)로 자기연마"
지상 12m 높이에서 뛰어도 말짱한 '출하술' 대가
청와대서 시범 후 '호국무술 정도술' 칭호 받아
MBC TV '암행어사' 등 드라마·영화 수십편 출연


1970년 일본 오사카.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의 한 사내가 높게 세워진 철 구조물 위에 섰다. 무려 12m의 높이.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자칫 발이라도 헛짚는다면 목숨을 건지기조차 힘들 처지. 밑에서는 일본 후지TV 카메라가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연방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순간 도복차림의 사내가 가볍게 위로 솟구쳤다. 그러더니 주저않고 밑으로 뛰어 내렸다. 점프 높이를 포함하면 도합 12m70㎝. 죽지 않더라도 성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보는 이들의 우려는 배반당했다. 사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높은 곳에서 밑으로 뛰어 내리는 출하술(出下術)은 정도술(正道術)에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연하게 하기 위한 역할을 합니다. 가장 좋은 공격시점은 자신의 몸을 최대한 늘였을 때고, 가장 좋은 방어시점은 자기의 몸을 최대한 움츠렸을 때거든요. 출하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호흡이죠. 숨을 들이마셔 멈춘 상태에서 행해야 합니다. 공기가 가득한 공은 튀지만 그렇지 않은 공은 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1970년 일본 후지TV에 출연, 출하술로 12m 높이에서 뛰어 내리고 있는 장면.
#대대로 전수된 가전비법(家傳秘法)
안길원(65) 정도술세계연합 대종사. 자타가 인정하는 정도술 최고수.
안 대종사를 만난 곳은 부산사회체육센터였다. 오는 6월 2일 열리는 제5회 부산시장기 호국무예대회 준비를 위해 부산에 잠시 들른 길. 고수를 만날 기회가 흔치 않은지라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천하를 호령하던 무술 달인이라고 해도 세월의 무게는 피할 수 없는 것일까. 20대 후반 출하술로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은 이제 백발이 더 잘 어울리는 노신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술인의 본성을 숨길 수는 없는 법. 한 수 시연을 부탁하자 주저없이 몸을 일으켰다. 도복으로 갈아 입은 안 대종사, 머리에 질끈 맨 파란색 두건이 이채로웠다. 고르지 못한 지면인데도 선뜻 신발을 벗었다. 제대로 된 자세를 선보이기에는 맨발이 편하다는 이유로. 가볍게 두서너 번 몸을 풀더니 이내 힘이 실린 손기술과 발차기가 이어졌다. 검술은 더 예리했다. 도저히 60대 중반의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동작들. 무술인의 편린이 곳곳에서 묻어 났다. 한창 시절엔 이보다 더 무시무시했을 터. 일본 후지TV가 1970년 오사카 엑스포 때 안 대종사를 초청한 이유를 짐작할만 했다.

"정도술은 신술(身術) 봉술(棒術) 검술(劍術)로 이뤄진 우리나라 고유 무술입니다. 집안 대대로 장손에게만 전수되어 오던 가전비법이지요. 어릴 때부터 정도술을 배웠습니다."

정도술의 직계 전수자는 안 대종사의 친형인 안일력 대정사(1996년 작고). 안 대종사는 형에게서 정도술을 사사한 뒤 평생을 무술인으로 살아 왔다. 집안에서 머물던 정도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59년. 형인 안 대정사가 서울에 도장을 내면서부터다. 빼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두 형제는 금세 입소문을 탄다. 1963년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경찰들에게 무술을 가르쳤고, 2년 뒤에는 한·중무술 경연대회에서 십팔기에 대항하는 한국대표 무술로 참가한다. 1977년에는 정도술의 위력을 들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들 형제를 청와대로 초청, 시범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 연무관에서 시범이 끝나자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호국무술 정도술'이란 명칭을 붙여 주

더군요. 그리고는 국방무술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즈음 창설된 육군본부 헌병감실 특별경호대에게 정도술을 가르쳤습니다. 특전사 3공수여단의 무술교육도 맡았습니다. 이후에 널리 보급된 특공무술의 전위대 역할을 한 셈이죠."

 
  안길원 정도술세계연합 대종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검술을 선보이고 있다. 작은 사진은 1980년대 MBC TV의 드라마 '암행어사'에 호위무사로 출연했을 때의 모습. 사진=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암행어사를 보호하라

기억력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1980년대 방영됐던 MBC TV의 '암행어사'를 기억할 법 하다. 이 드라마에선 삿갓을 쓴 무사가 암행어사를 몰래 수행한다. 박상도라는 이름의 무사는 어사 역을 맡은 탤런트 이정길 씨가 위기에 처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사태를 수습했다. 그 무사가 안 대종사다. 삿갓을 쓰고 칼을 찬 오래된 사진을 불쑥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잘 생긴 얼굴이다.

안 대정사는 연예계에서는 무술 배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데뷔작은 1967년 개봉된 영화 '원한의 애꾸눈'이다. 당당한 주연 배우였다. 안 대종사는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임권택 감독의 작품에도 몇편 참가했다. TV드라마는 1967년 KBS TV의 '녹슬은 단검'을 시작으로 수십 편에 얼굴을 내밀었다. 무술지도 역시 꽤 했다. 안 대종사는 영화나 드라마 가운데 시대물 한 편 정도는 한 번 더 찍어봤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당초에는 대역, 요즘 말하는 스턴트맨으로 출연했지요. 그런데 영화사 측에서 대역을 쓰면 비용이 많이 드니 차라리 실제 무술인을 배우로 기용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영화에 몸을 담게 됐습니다. 근데 위험한 역할이다보니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안 대종사는 TV 오락프로그램에도 자주 나왔다. 1970년대 인기를 누렸던 MBC의 '묘기대행진'의 1회 출연자도 그다. 그 때는 남한산성 정각 위에서 뛰어 내렸다. 10m 높이였다. 모두 정도술을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정도의 유명세라면 강호의 고수들과 숱하게 일합을 겨뤄봤을 것은 당연지사. 독자들의 읽는 맛을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하시라는 청을 넣었다. 예상했던 대로 "싸움은 한 일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역시 고수. 하지만 취재가 끝날 무렵,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면서 안 대종사의 입에서 "몇 십명을 때려 눕힌 경험도 많다"는 말이 무심코 흘러 나왔다. 순간 귀가 번쩍 뜨였지만 더 이상 물을 수는 없었다. 함부로 힘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고수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렸기에.

#불의를 보고 지나치면 무술인이 아니다

안 대종사는 요즘 동분서주한다. 부산시장기 호국무예대회가 코 앞에 닥쳐온 데다 전봉준 장군 추모 호국무예대회(7월) 온조대왕 추모 서울시장상 호국무예대회(10월)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내년 부산에서 열릴 2008 세계사회체육대회 무술분야도 안 대종사가 관여하고 있는 부분이다. 사단법인 호국정신선양회 총재로서 각 지역별 무예대회를 통해 무술인들의 단합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루 1~2시간 정도의 가벼운 몸풀기는 빼놓지 않는다. 가히 노익장이 따로 없다.

자분자분 이야기를 하던 안 대종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대화 중 세상에는 무술 수십단의 고수가 많더라는 말이 나오고 부터다.

"생각해 보세요. 발족한 지 몇년 되지도 않은 어떤 무술협회에서 8단이나 9단이 나오는 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30, 40대의 젊은 사람의 전체 무술단수가 수십단이니 하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입니다. 제대로 하자면 한 단계 승단하는 데도 몇 년이 걸립니다. 이건 진정한 무술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안 대종사의 비난은 무술인의 자세에까지 이어졌다. 무술인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경호회사를 차린 무술인들의 경우, 부분적이긴 하지만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이권 개입에 나서는 등 엉뚱한 길로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싸움꾼들이 감히 체육관 앞으로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술인들이 싸움꾼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그냥 지나갑니다. 이런 현상은 마땅히 바로 잡아야죠. 할 수만 있다면 무술인들이 나서 마약사범이나 폭력배들을 추방해야 합니다. 또 잘못된 경호문화가 뿌리를 내릴 것 같으면 무술인들이 나서 이를 제압해야 해야죠. 무술이 몇 단이네 자랑할 것이 아니라 무술인들이 똑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임무라 생각합니다."

 
  힘찬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는 안길원 정도술세계연합 대종사
■ 정도술이란
# 알음알음 전해져 온 가전비법
# 천·지·인 합일 삼합사상 근간

정도술은 안일력 대정사에 의해 사회화됐다. 그 전까지 정도술은 선인들이 심신수련을 위해 개인적으로 연마하던 가전비법에 머물렀다.

안 대정사는 일곱살 때 안용복 대선사(안일력의 할아버지)로부터 도술을 전수받았다. 안 대정사는 대선사가 세상을 떠난 뒤 선운사로 들어가 홀로 정진하며 무술을 재정립한다. 지난 1996년 안 대정사가 작고한 뒤로는 안길원 대종사가 정도술을 이끌고 있다.

천·지·인 합일의 삼합사상을 근간으로 정도술은 신술 봉술 검술로 크게 나뉜다.

신술은 자기 보호를 목적으로 한 수련법으로 자세술 타격술 파격술 출하술 순환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단사회를 보호하는 목적의 봉술에는 단봉술 중봉술 장봉술 가봉술(2, 3절봉) 연봉술(채찍술 철퇴술) 등이 포함된다. 국가와 민족의 보호를 내세우는 검술은 단검술 중검술 장검술 쌍검술 표검술(수리검 표창) 등이다.

정도술의 수련과정은 몸풀이술 기초자세술 유술자세술 인술자세술 명술자세술 등으로 진행된다.

정도술세계연합 본부는 현재 서울에 있으며 조만간 부산지역에도 도장이 개설될 예정이다. 일본 등 외국에도 수련관이 있다. 현재까지 50여만 명의 수련생이 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