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고수를 찾아서 <5> 문병태 대한활무합기도협회 총재

醉月 2010. 3. 10. 08:20

오랜 수련후 고유무예 전통 살린 활무합기도 정립
해외 지부 개척땐 현지인 거센 도전 모조리 물리쳐
"몸은 적당하게 쓰지 않으면 기계처럼 녹슬고 말아"


사범 한 사람이 웃통을 벗고 배를 하늘로 향한채 눕자 무 하나가 올려졌다. 그 앞에는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도인풍의 사내. 두 자는 족히 넘을 듯한 시퍼런 칼을 들고 있다.

백지 한 장이 단칼에 베어지던 것을 이미 본 터. 무 아니라 쇠라도 자를만큼 날이 서 있었다. 뭘 하자는 것일까. 칼로 무를 자른다는 것인가. 잘못하면 아랫 사람이 큰 상처를 입을 텐데.

순간 기합과 함께 칼이 무를 향해 떨어졌다. 단박에 두 동강이 나는 무. 그러나 칼은 정확하게 무만을 일도양단한 뒤 멈추었다. 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갔더라면 사범의 배가 제대로 남아나지 못했을 지경. 사범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사진=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감이죠. 내려치는 칼을 어디서 멈춰야 하는 지를 느껴야 합니다. 원래는 목에다 무를 대고 자릅니다. 근데 그건 보기에 너무 잔인할 거 같아서 하지 않았습니다."

문병태(56) 대한활무합기도협회 총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깡마른 체구, 그리 크지 않은 키. 평범한 이웃 아저씨같은 순박한 인상. 하지만 차돌을 주먹으로 깨부수고 대리석 20여장을 머리로 박살낸다는 고수였다.


#하나의 기술로 열 개의 길을 가다

합기도는 들어봤는데, 활무합기도라니. 이름부터가 생소하다.

"관절기술을 예로 들어볼까요. 너무 세게 돌리면(꺾으면) 사람이 죽고 마는 사법(死法)이요, 약하게 하면 사람을 살리는 활법(活法)입니다. 무술을 오래 하다보니 들면 전부 무기가 되더군요 "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무술 문외한으로서는 알쏭달쏭하기 그지없다. 감히 짐작을 하자면 남을 해치지 않고 정신과 육체를 바로 잡아 무술을 한다는 뜻이 될듯도 하다.

문 총재는 활무합기도의 창시자다. 어릴 때 고향 합천에서 동네 형님들이 하던 몸동작을 흉내내다 도회지에서 합기도 등을 수련했다. 근데 무술에 대해 알면 알수록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동작 하나가 막히면 그것을 해결할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하나의 기술로 열 개의 길을 갈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다 1976년 활무도 이론을 체계화하게 되었습니다. 활무도는 주먹지르기 발차기 던지기 목조르기 후려치기 등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마음대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이게 활무도가 가진 독특한 점이지요."

활무도라는 새로운 무술을 만들었지만 기존 무술의 틈바구니에서 정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지명도에서 밀렸다. 그래서 활무도가 합기도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에 착안, 활무합기도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제서야 문 총재의 새로운 무술은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사범의 배 위에 놓인 무를 예리한 칼로 두 동강 내고 있는 문병태 대한활무합기도협회 총재.
현재 활무합기도 도장은 창원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 일본과 호주 미국 영국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도 지부가 있다. 2년에 한 번씩 외국에서 현지 세미나를 연다. 지부 점검 및 새로운 기술 보급 등을 위해서다. 이 때는 다른 무술 수련자들도 참관한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외국에 지부를 내려면 현지인들의 기를 먼저 꺾어놔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꺾기공격을 하라고 한 뒤 제가 공격하는 식입니다. 격파도 마찬가지죠. 상대방이 먼저 차돌이나 벽돌을 깨도록 한 뒤 그들이 못 깨면 제가 나서서 직접 깹니다. 그러면 대개 굴복하게 됩니다."

문 총재와 사범 몇명이 시범에 나섰다. 잠시의 단전호흡과 낙법으로 몸은 푼 뒤 실전동작에 들어갔다. 장권찌르기 주먹지르기에 이어 발차기가 뒤따랐다. 무릎차기, 발등 돌려차기, 밀어차기, 안감아차기, 측면 감아차기, 옆차기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이어 '공격이 곧 방어'라는 공방술. 문 총재의 몸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기술은 정확했다.

문 총재가 지팡이를 들고 나왔다. 사범 한 사람이 윽박지르며 들어오자 순식간에 지팡이로 상대의 머리를 휘감아 내동댕이쳤다. 또 한번 공격이 있자 이번에는 하체를 가격해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이른바 지팡이 호신술. 문 총재는 "나이가 먹은 사람들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문 총재의 동작에는 아직도 탄력이 넘친다. 꾸준한 훈련 덕분이다. 쓰지 않으면 녹 스는 기계처럼 사람 몸도 적당하게 쓰지 않으면 망가진다는 게 문 총재의 지론이다.

#최고의 도(道)는 없다

문 총재가 다른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격파술. 벽돌 세 장을 일렬로 세웠다. 불끈 쥔 문 총재의 주먹이 옆으로 번뜩이는가 싶더니 벽돌 세 장이 정확하게 두 동강이 나버린다. 아무런 지지대도 없는 물체를 횡으로 깨는 것. 기가 모아지지 않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힘만을 사용한다면 벽돌은 깨지지 않고 밀려서 넘어졌을 일이다.

 
  문병태 대한활무합기도협회 총재가 벽돌깨기(사진 위)와 이로 못빼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는 주먹으로 못박기. 문 총재의 주먹질 몇번에 길이 20㎝가 넘는 대못이 두께 5㎝가량에 그냥 박혀버린다. 한술 더 떠 문 총재는 목 급소에 못머리를 댄 뒤 밀어 넣는다. 가히 소름이 끼친다. 보통사람같으면 못이 목 급소를 뚫고 들어갔을 터다.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문 총재가 송판에 깊이 박힌 못을 이로 뽑아내 버렸다.

아프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문 총재의 답이 걸작이다. "왜 안 아프겠습니까. 다만 참는 것이죠. 격파와 차력의 동작은 무식하고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살을 찢고 뼈를 깨는 것 아닙니까."

자세히 살펴본 문 총재의 주먹. 정권은 과장을 좀 보태 작은 산만했고 손날에는 굳은 살이 박혀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수십년간 단련한 결과다. 문 총재는 그 주먹으로 무쇠솥뚜껑 얼음덩어리 등을 무수히 격파했다. 정강이뼈 부분도 쇳덩이다. 야구 배트 격파 등이 정강이뼈 부분으로 이뤄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문 총재는 과격한 격파에 대해 고개를 내젓는다. 늘 단련을 했다면 별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몇년 전 모 TV 방송국에서 대리석 20여장을 머리로 깨는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전국에서 전화가 쇄도했지요. 그 기술을 배우겠다고. 도장으로 직접 찾아오겠다는 것을 제가 말렸습니다. 그거 배워봐야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라면서요."

문 총재가 이끄는 활무합기도는 가지고 있는 내공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배출된 유단자도 3000여 명으로 많지 않다. 그건 나서기를 꺼려하는 문 총재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무술은 자신의 건강과 정신을 살리는 것일 뿐인데 '내가 이런 사람이오'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이 영 못마땅한 까닭이다. 한 사람의 무술인이 다수를 제압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문 총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그럴 경우 아마 전혀 무술을 모르는 사람과 시비가 붙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문 총재는 같은 수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속된 말로 '한 방에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세상에 고수는 없지요.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고 무술가는 그 가운데 조금 전문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오랫동안 수련을 해보니 도(道) 역시 똑 같습디다. 더 나은 것도 없어요. 누구나 자기만의 도를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만 해도 무술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 일을 하다 보니 길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이것을 천직으로 하고 있지요."

■ 활무합기도란
- 선조들의 심신수련에서 유래
- 공방술 차력술 등 기술 다양

선조들이 일상 생활에서 행하던 심신수련에서 비롯됐다.

활무도이론이 정립된 것은 지난 1976년이다. 문병태 총재가 무술 고수들의 조언과 무예도보통지 등의 고서를 통해 체계를 잡았다. 따라서 활무합기도는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에 전해지는 무예를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대한활무합기도협회는 2003년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활무합기도의 기술은 다양하다. 상대방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제압하는 것으로는 공방술 관절기술 회전공방술이 있고 차력술 특기술 신체교정술은 신체의 체력 한계를 최대한 끌어 올려 주는 기술이다. 또 일상의 도구를 무기화할 수 있는 기술로는 낫권술 지팡이술 투기술 단검술 진검술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