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넓은 것이 세상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에는 몸을 숨긴 채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남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
김무수(50) 대한국자랑협회 총본원장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국자랑(國子郞). 이름만 들어서는 실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전통무예 중 하나라는 사전정보를 들었음에도 짐작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 얼핏 생각하면 춤사위를 일컫는 것 같기도 하고 산중에서 비밀스럽게 전해져 온 기인들의 수련법도 연상된다.
"시간이 나면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산에도 올라갑니다. 바닷가에서는 '보(步)밟기'라 하여 천천히 걷고 산에서는 나무와 돌의 기운을 받습니다. '비보(飛步)'라고 해서 산에서의 걸음걸이는 남들보다 좀 빠른 편입니다. 어떻게 걷느냐고 물어보는 등산객들도 많습니다. 힘들 때는 좌우로 몸을 틀면서 걸으면 좀 수월해지죠. 이게 다 오행운기법(五行運氣法)입니다. 이만하면 신선놀음 아닌가요. 하하."
사라진 민족정신을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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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수 국자랑 총본원장이 국자랑의 한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국자랑은 물 흐르듯 부드러운 동작 속에 감춰진 강력함이 특징이다. 아래 작은 사진은 검법(왼쪽)과 각법(오른쪽). 윤민호 인턴기자· | |
"국자랑은 우리민족 전통무예입니다. 산 속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몸동작이기도 하고요. 그것을 요즘 사람들에게 맞게 현대화한 것이지요. 거기에는 망각된 민족정신을 되살리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국자랑이 어떤 무술인지에 대한 김 총본원장의 짧지만 간결한 대답. 하지만 말은 그렇다치고라도 '전통무예'란 단어는 자칭 무술고수 열에 아홉의 입에 달린 상투어. 문헌적 근거가 있는지를 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짐작했던 대로 국자랑 역시 이런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행했던 선도호흡과 수련방법 등을 문헌에서 찾아 복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내금강산에서 백두산으로 옮겨 갔다는 '고구려진술', 해방 후 설악산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됐다는 '신라무도 팔중원류', 설악산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기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 전통무예는 무인출신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다른 무인세력이 커는 것을 두려워 한 태조 이성계 때 한 번,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한 번 등 크게 두 번의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전통무예는 그래서 제기차기나 닭싸움, 널뛰기 등의 놀이문화로 변해버렸지요.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산 속으로 들어가 구술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국자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원이야 어찌 됐든 무술의 요체는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 1000년 족보를 가졌더라도 실전성이 없다면 한낱 의미없는 몸동작에 불과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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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 역시 날카롭다. 앞차기는 순식간에 허공을 가른다. 검법 또한 예리하다. 상대가 설사 긴 창과 같은 무기를 쥐고 있다하더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쉬 보이지 않는다. 두 자루 목검을 휘두르는 쌍검도 튼실하다. 허공을 어지러이 난무하는 목검은 우아하기조차 하다.
유희가 아닌 무예
현재 국자랑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낮은 편. 그나마 이름을 들어본 사람일지라도 기억하는 것은 공연부분이다.
국자랑은 10여년 전부터 문화예술무대쪽으로 많이 진출했다. 국립창극단과의 협연을 비롯해 오페라단이나 무용단과도 자주 한 무대에 오른다. 그건 평상시에는 춤과 놀이를 하다 전쟁이 나면 싸움터로 달려 나가던 전통무예의 특징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까닭에서다.
하지만 이건 어찌보면 '양날의 칼'이다. 보급도 좋지만 자칫하면 전통무예의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총본원장은 가볍게 부인한다.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자랑은 겉으로 부드럽게 보일 뿐이지 위력은 상당합니다. 파괴력 또한 뛰어납니다. 국자랑은 격파연습 같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발경(發勁·힘을 집중해 큰 위력을 냄)'수련을 하죠. 또 '역근(易筋·다리 허리 팔 어깨 등을 평소와 반대로 비틀어 해당 근육과 인대를 풀어줌)'을 통해 근육을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러면 따로 어떤 물체를 두드리지 않아도 온 몸이 철근 같은 강골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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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김 총본원장은 지독하게 수련을 했다. 서울에 머물 때는 휴일마다 배낭에 10㎏가 넘는 소금부대를 넣고 관악산을 뛰어 다녔다. 심할 때는 하루 12시간가량 무예에 매달렸다. 자고난 뒤 일어나보면 문짝이 모두 박살나 있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낮에 연습한 동작을 잠결에 반복한 때문이었다. 발에 쥐가 나 고통을 느끼면서도 피곤한 까닭에 눈이 떠지지 않아 어쩌지 못했던 일도 많았다.
"한창 때는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지냈습니다. 그 때는 추운 줄도 몰랐지요. 수행은 곧 고행입니다. 무예수련은 어느 정도 미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최상의 경지는 깨달음
국자랑에는 천부 18식이라는 게 있다. 일종의 형(型)이다. '一始無始 一析三極…'으로 시작되는 천부경에서 이름을 따왔다. 하지만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 민족정신 부활의 길을 찾으려다 보니 천부경을 접하게 됐고 공통점이 많아 차용을 했을 따름이다. 우주의 원리가 국자랑이라는 무예 안에 모두 들어 있으며 천부경 역시 81자 속에 이 이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자랑은 무예 못지않게 내면의 수련도 강조한다. 따라서 국자랑은 단전호흡을 통한 기혈수련에 기본을 두고 있다. 여러 동작을 통해 근육을 부드럽게 하는 한편 뼈를 바르게 하고 나아가 단전에 기운을 충족시킨다는 원리다. 덩달아 원활한 기혈순환으로 심신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김 총본원장이 추구하는 국자랑의 가치는 아주 평온한 상태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자신의 표현대로 '수도승과 같은 처지'와 맥을 같이 한다. 더 나가서는 깨달음이다.
"무도 자체가 말이나 글로써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몸으로 행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새처럼 날고 싶어도 날 수는 없고, 아무리 강해도 벽을 뚫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무예를 하든지 꾸준히 몸 수행을 계속하면 반드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경지가 최상의 경지죠. 저는 여기에 다다른 분이 고수라고 생각합니다."
■ 국자랑이란
- 민족 고유 심신수련법 발굴, 복원
국자랑은 현재 대한국자랑협회를 이끌고 있는 박성대 회장이 우리 민족의 심신수련법이 기록되어 있는 각종 자료를 발굴, 그것을 토대로 체계화한 것이다. 국자랑이란 '국가의 아들과 딸들'이라는 뜻이다.
크게 국자랑은 선도건강과 무예로 나뉜다. 선도건강 부문에는 기혈체조, 신수법, 심수법, 기무법, 고구려 진술, 신라무도 팔중원류, 괄사요법 등이 있다. 검법, 각법, 권법, 기천 등은 무예부문에 포함된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국자랑 선무, 국자랑 검무 등의 공연예술도 있다.
수련은 정적, 동적, 심적 등 세 가지 원리를 통해 이뤄진다. 이를 통해 자연의 흐름과 정중동(靜中動) 및 동중정(動中靜), 활심(活心)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 세부적으로는 자연동화법 금강이보법 오행접목법 백두진술법 목초강목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