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거제는 벌써 봄

醉月 2010. 4. 30. 08:49

매화야, 마음이 급했나 보구나…

거제는 벌써 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에는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매화나무 5그루가 있다. 한달 전쯤 첫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이제 막 절정을 넘어섰다.


다포항 부근의 바다에 떠있는 오리. 갯바위에 진초록 감태가 붙었다.

동백나무와 종려나무가 가득한 공곶이의 수선화가 싹을 밀어올린 모습.
순백의 매화가 팝콘처럼 타닥타닥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가지마다 어찌나 탐스럽게 꽃송이가 열렸던지, 어쩐지 좀 헤픈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다니까요. 겨울 추위가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탓일까요. 훈풍에 실려온 봄꽃 소식이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봄볕’이라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이곳은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의 작은 폐교입니다. 구조라초등학교의 매화나무를 찾은 것은 꼭 1년 만입니다. 이 지면을 열심히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지난해 봄에도 이곳에서 일찌감치 보내드린 첫 매화 소식을 기억하시겠지요.

그때도 일찌감치 꽃을 피운 매화에 감회가 새로웠지만, ‘어쩌다 보니 올해만 이리 일찍 피어났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의 첫 꽃소식도 이곳에서 시작됐습니다. 이곳의 첫 매화가 꽃망울을 막 터뜨렸다는 전갈을 받은 것이 지난 1월10일 쯤이었으니, 꽃소식이 이르다 해도 이렇게 이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로써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의 3그루와 노인정 뒤쪽의 1그루, 그리고 마을 초입의 1그루까지 모두 5그루의 매화나무는 한반도 내륙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틔워올리는 매화나무라고 ‘공인’해도 괜찮지 싶었습니다. 멀리 바다 건너 제주 땅의 매화 소식도 이렇게 이르지 않았으니, 어쩌면 이곳의 매화가 대한민국의 첫 꽃소식을 전하는 나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제에서 이즈음 만날 수 있는 꽃이라면 동백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거제의 동백이라면 지심도의 울창한 동백숲이 이름나 있지만, 와현마을에서 더 들어가서 만나는 공곶이의 동백터널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공곶이의 동백은 지심도의 동백과는 달리 붉은 꽃잎이 겹쳐 피어나는 ‘겹동백’입니다.

공곶이의 매력이라면 단연 은밀한 맛입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제법 가파른 330개의 돌계단을 따라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좁은 꽃터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숲에 들면 붉은 꽃망울과 짙은 숲그늘로 정신이 다 아득해질 정도입니다. 그뿐인가요. 동백나무숲을 지나면 종려나무들이 우뚝 서 이국적인 정취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일대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수선화는 아직 일렀지만, 이제 막 진초록의 잎들을 틔워내기 시작했습니다.

봄볕이 따사로워 내친 김에 소매물도까지 건너갔습니다. 소매물도의 행정구역은 통영이지만, 거제도의 저구항에서 출발하는 편이 훨씬 더 가깝습니다. 등대섬이 내려다보이는 소매물도 언덕에 올라서니 붉은 동백꽃을 간질이는 훈풍에 남해안을 딛고 오는 봄이 손으로 만져질 듯했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데 이처럼 완벽한 곳이 또 있을까요.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가르는 고깃배들을 보면서 아직 도회지의 겨울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따스한 봄 소식을 담은 엽서라도 한 장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수줍은 동백꽃도 빨간 얼굴을 살포시…
거제는 벌써 봄
거제도를 딛고 건너간 소매물도에도 지금 동백이 한창이다. 소매물도는 통영시에 속해 있지만, 거제도 저구항에서 가는 편이 훨씬 더 가깝다. 동백 뒤쪽으로 보이는 바위는 등대섬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이 닿는 곳은 어디일까. 입춘이 지난 이즈음이면 전남의 해남 땅에도, 진도 땅에도 보리밭이 진초록으로 펼쳐져 있을 터다. 경남 남해에도 초록빛 마늘밭이 성성하게 자라고 있겠고, 전남 여수의 해안에도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겠다. 그러나 꽃소식으로 봄이 당도했음을 따진다면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단연 거제도다.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의 폐교된 구조라초등학교 교정 옆에 아름드리 매화나무 3그루에는 지금 매화가 한창이다. 지난 1월10일 첫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지금 절정의 순간을 막 넘어서고 있다. 가지마다 온통 순백의 꽃을 매달고 있다. 초등학교 옆 노인정 뒤쪽의 매화나무도 가지마다 꽃을 달고 있다. 구조라 마을로 드는 초입,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그마한 매화나무에도 꽃망울이 타다닥 터졌다.매화향은 폐교 교문 밖에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짙지만, 그래봐야 구조라의 매화나무는 고작 5그루. 본격적으로 꽃구경을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섬진강변의 전남 광양 매화마을만 해도 야산을 뒤덮고 피어나는 매화가 수십만 그루를 헤아리지 않는가. 그럼에도 거제도 허름한 폐교의 몇그루 매화나무가 소중한 것은,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봄 기운을 알아채기 때문이겠다.

더구나 이번 겨울의 혹한은 얼마나 매서웠던가. 그 엄동의 혹한에서도 봄의 기운을 감지하고 꽃을 틔운 매화가 새삼 장하고 기특하다.

거제에서 봄의 기운을 만끽하겠다면 드라이브만 한 게 없다. 거제도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로 찾아갈 필요가 없다. 거제 해안선 길이는 총연장 355.9㎞. 이 해안선을 따라 거의 모든 도로가 나있으니 어느 길에 올라서든 바다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봄이 가까워오면 거제의 바다는 쪽빛이 한층 더 짙어진다.

사실 거제에서 가장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라면 단연 여차~홍포간 해안도로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비포장 흙길로 이어진 3.5㎞ 남짓한 이 길은 이즈음에 워낙 유명세를 얻고 있는 곳이라 그 길의 정취를 예서 새삼 따로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되겠다.

여차~홍포 해안도로가 거칠고 짧은 길이라면 반대로 부드럽고 긴 해안 드라이브 코스도 있다. 바로 망치에서 학동을 거쳐 해금강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망치에서 구조라까지 구간은 산허릿길이라 바다 전망이 빼어나고, 구조라에서 학동을 거쳐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온통 반짝이는 진초록 이파리 사이로 붉은 꽃이 피어난 학동동백림을 관통해서 달린다. 거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되 걷기 좋은 길도 있다. 남부면 저구리 저구마을에서 탑포리 쌍근마을을 잇는 길이다. 왕조산의 허리를 감아도는 6~7㎞ 남짓한 길인데 그 길 어디서나 바다의 풍광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시멘트포장이 돼있긴 하지만, 차량 운행이 통제돼 탄탄한 포장길을 따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거제에서 동백을 보겠다면 지심도를 찾아가면 된다. 그러나 근래 들어 지심도의 매력이 TV 방송 등에 소개되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나 여간 번잡스러워진 것이 아니다. 예전 외딴 섬의 호젓한 느낌은 좀처럼 맛보기 어렵다. 어쩐지 지심도의 동백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는 느낌도 이 때문인 듯싶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떨까. 거제의 와현해수욕장 깊숙이 들면 비경 ‘공곶이’가 있다. 예구마을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따라 흙길을 20분쯤 걸으면 공동묘지가 나오고, 그 아래로 전혀 예상치 못한 풍광이 펼쳐진다. 묘지 아래 비탈면에 붉은 꽃이 선혈처럼 낭자한 동백나무와 이국적인 풍광의 종려나무들이 빼곡하다. 해안까지 닿는 330개의 돌계단은 아예 동백나무들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빛 한 줌 새어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동백나무숲에는 붉은 겹동백이 피어 있다. 돌계단 바닥은 동백이 지면서 떨군 꽃잎들이 마치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공곶이는 평생 이 땅을 일구며 살아온 한 노부부의 평생 삶이 온전히 바쳐진 곳이다. 50여년 전 이곳에 정착한 노부부는 척박한 산비탈을 일일이 돌을 쌓아 계단식 밭으로 만들어 놓고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다. 9만여㎡에 이르는 돌투성이 땅을 오로지 호미와 삽, 곡괭이를 이용한 근육의 힘으로 손수 일궈낸 것이다. 노부부의 농장에는 짙은 초록의 종려나무, 조팝나무, 설유화, 잎새란, 후피향나무, 팔손이들이 자라고 있다. 모두 다 남녘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상록수들이다.

거제도를 찾았다면 내친 김에 소매물도까지 들어가보자. 소매물도의 행정구역은 통영시이지만, 통영에서보다 거제도에서 가는 편이 훨씬 더 가깝다.

저구항에서 소매물도까지는 40분 남짓. 소매물도는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워낙 섬의 경관이 아름다워 딱히 계절을 가려 찾지 않아도 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소매물도 선착장 부근 비탈진 사면에 다닥다닥 붙은 섬마을의 낡은 집들이 죄다 헐리거나 빈집으로 남아있고 그 대신 그 자리에 펜션들이 들어서면서 공사판이 돼버린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마을을 지나 소매물도 전망대에 오르면 건너편의 등대섬이 탄성을 지를 정도로 아름답게 떠있다.

하지만 소매물도 최고의 경치는 봄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소매물도 전망지점에 오르니 남녘의 봄볕이 이리 따스할 수 없다. 외투를 벗어들고 데크를 따라 깎아지른 해안 벼랑을 산책하는데 콧노래가 절로 난다. 건너다보이는 등대섬은 아직 풀밭이 누렇게 죽어있지만 봄의 훈풍이 이리 따스하니 곧 푸릇푸릇 초록기운이 감돌게 되리라. 소매물도를 돌아보고 등대섬으로 건너가려면 음력 보름과 그믐의 사리 무렵에 찾아가야 한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작은 조금 무렵에는 등대섬으로 건너갈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등대섬으로 건너가지 않고 이쪽에서 건너다보이는 풍광만으로도 매물도를 찾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거제·통영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 판암갈림목에서 대전~통영선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통영까지 간다. 통영에서 14번 국도를 타고 신거제대교를 건너면 거제도다. 여기서 동쪽 해안에 붙어서 14번 국도를 따라 신현~옥포~장승포~지세포~와현~구조라~해금강 쪽으로 돌 수도 있고 서쪽 해안의 1018번 지방도를 따라 반대쪽으로 돌 수도 있다. 구조라초등학교의 매화를 보겠다면 14번 국도를 택하는 편이 낫다. 공곶이는 지세포에서 해금강 방향으로 향하다가 와현해수욕장으로 들어서 길끝까지 들어가 예구마을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거제도 가는 여객선은 저구항에서 하루 4번 뜬다. 오전 8시30분에 첫 배가 운행한다. 왕복 2만원.

먹을 것 & 묵을 곳

함목에서 도장포를 지나 해금강 마을로 가는 길 옆의 ‘블루마우리조트’(055-632-6377)를 추천할 만하다. 리조트 확장공사가 이제 막 끝나 다소 번잡스럽긴 하지만, 객실에 들어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이곳만큼 아름다운 곳은 드물다. 14번 국도를 달리면 교차로마다 세워진 펜션 안내간판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다. 와현해수욕장 곁 해안도로변의 ‘거제 씨팰리스호텔’(055-730-1000)은 깔끔한 호텔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좋겠다.

거제의 대표적인 맛집으로는 장승포의 ‘항만식당’(055-682-3416)과 신현읍 고현리의 ‘백만석’(055-637-6660)이 있다. 항만식당은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된장을 풀어 끓인 해물뚝배기를 내놓는데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양은 풍성한 편이지만,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운 편. 백만석은 다져서 네모꼴로 냉동한 멍게와 김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비벼먹는 멍게비빔밥을 내놓는다. 이즈음 거제에는 양식굴이 한창이니 서정리 ‘거제도 굴구이’(055-632-9272)도 찾아가볼 만하겠다.
 
“귤·유자 농사 망하고 동백나무 심은지 40여년이 흘렀어”
공곶이 농원 강명식 옹
악수를 청하는 손을 잡자마자 손바닥에서 꺼끌꺼끌하면서도 단단한 굳은살이 느껴졌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예구마을 뒷산 산비탈에 공곶이 농원을 일궈낸 강명식(80·사진)씨. 열마디 스무마디의 말보다 손의 감촉만으로 오랜 세월의 고된 노동이 읽혔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1969년. 공곶이를 끼고 있는 예구마을은 부인 지상악(76)씨의 고향이었다. 고향이 경남 진주인 강씨는 1957년 군에서 제대한 이튿날 부모님의 강권으로 부인 지씨와 맞선을 봐서 한달 만에 결혼했다. 그때만 해도 거제도에 연륙교가 놓이기 전이라 거룻배를 타고 들어가 신부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하루를 묵었다.

“오전에 결혼식을 하고, 하릴없이 있는데 동네 청년들이 산책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지. 그때 따라와본 곳이 바로 여기 공곶이였다네.”

강씨는 그때 이곳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에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비탈면에는 온통 상록낙엽수들로 그득했다. 그때부터 ‘나는 여기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군에서 갓 제대한 형편이라 수중에 땅을 살 만한 돈은 없었다. 그가 이곳 공곶이의 땅을 살 수 있었던 밑천은 글라디올러스 두 뿌리였다. 이웃집에 놀러 갔다 얻어온 글라디올러스 두 뿌리를 남의 땅을 빌려 심어두고 정성을 다해 길렀다. 뿌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8년 만에 뿌리를 다 내다팔아 50만원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공곶이의 땅 9만여㎡(3만평)를 사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강씨 부부가 이곳 공곶이에 정착한 것은 1969년. 본격적인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호미와 괭이로 그 넓은 땅을 개간하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귤나무 2000그루를 샀다. 그러나 5년 만에 첫 결실을 얻기 직전 1976년 몰아친 기록적인 한파로 나무들이 다 얼어죽고 말았다. 이듬해 유자나무를 심었지만, 그것도 가뭄으로 죄다 말라죽었다. 지칠 법도 하건만 이번에는 종려나무를 비롯해 온갖 나무들과 꽃을 가져다 심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른 나무들은 꽃꽂이용으로 팔려나갔다.

공곶이가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애초에 조경이나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일궈온 삶의 자취이기 때문이다. 농원을 돌며 동백나무를 어루만지던 강씨는 “여기 온 지 40년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이렇게 나무들이 아름드리가 된 걸 보면 참 긴 세월이었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공곶이는 이제 거제8경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가 됐지만, 강씨는 이곳을 돈 받는 관광지로 개발할 뜻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강씨는 “이곳은 조선시대에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다 순교한 윤봉문 요셉 형제의 자취가 서린 곳”이라며 “천주교 사적지로 지정돼 이 땅을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내가 이 땅을 지킨 것은 순교지를 지키려는 하늘의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