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검처럼 솟은 바위·아찔한 벼랑… 처음 만나는 ‘한국의 張家界’ V자로 파낸 듯한 무릉계곡 4㎞ 전국의 무릉 중 단연 경관 최고 호암소·관음폭포 등 명소 즐비 하늘 찌를듯한 금강송군락 마중 탐방코스 3시간 30분이면 OK 추암, 동해 대표 풍경중의 하나 비바람으로 파도 칠 때 더 장관 일출 기암 힘찬 기운까지 느껴져 중국 송나라 때 시인 도연명의 소설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 얘기가 나옵니다. 강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부가 복숭아꽃을 따라가다 굴 안으로 들어가게 됐고 그곳에서 만났다는 지상낙원의 땅이지요. 동굴 밖으로 나온 뒤에는 다시 찾을 수 없었다는, 천국과도 같은 이상향의 땅. 전국의 명승 곳곳에 보이는 ‘무릉(武陵)’의 지명은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수많은 ‘무릉’이란 이름의 명소 중에서 으뜸은, 단연 강원 동해의 명승, 무릉계(武陵溪)입니다. 무릉계곡이 있는 두타산에는 험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범접하기 어려웠던 바위 무리가 있습니다. 날카로운 창검과 수직의 벼랑으로 우뚝 선 ‘베틀바위’ 일대입니다. 아무나 감히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어서, 그곳이야말로 입구를 찾지 못했다는 진짜 무릉도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동해시와 산림청이 오랜 숙고 끝에 험준한 베틀바위로 가는 가파른 산자락 길을 뉘어 순한 탐방로를 만들었습니다. 모레(8월 1일) 문을 여는 그 탐방로를 미리 다녀왔습니다. 마침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베틀바위 일대는 안개로 자욱했습니다. 기기묘묘한 암봉과 붉은 둥치의 당당한 금강송이 짙은 안개에 휘감겨 묽은 먹색이 번지는 수묵화의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자욱한 안개에 감긴 암봉과 계곡은 마치 굵은 붓으로 찍어 그린 수묵화 같았습니다. 내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으니, 기상청의 틀린 예보로 퍼부었던 비도 무슨 대수였을까요. 다만 무릉도원처럼 혹여 이곳도 나가면 다시 찾아올 수 없을까 싶어 자주 뒤를 돌아다 보았습니다.
# 도연명의 ‘무릉도원’, 그 이름에 값하다 ‘무릉’을 가져다 이름으로 쓴 마을은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강원 정선과 영월에도, 전북 진안에도, 경북 안동에도, 충북 괴산과 충주에도, 경남 거창과 함안에도, 제주 서귀포에도 무릉리가 있다. 설렁설렁 찾아낸 행정지명만 이만큼. 공식 행정지명이 아니지만, 마을 이름으로 가져다 쓰는 곳까지 합치면 적어도 스무 곳은 가뿐히 넘길 듯하다. 모름지기 ‘무릉’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면, 도연명의 무릉도원 같은 지상낙원까지는 못 된다 해도 자랑할 만한 경치 하나쯤은 있다고 믿어도 좋다. 수많은 무릉이 있으되, 무릉도원의 이름값에 한 치도 모자라지 않는 최고의 경관은 단연 강원 동해시 두타산 아래 ‘무릉계’다.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 V자로 깊이 파낸 칼자국 같은 4㎞ 남짓의 긴 계곡. 그곳이 무릉계다. 무릉계곡은 계곡 전체가 굵은 붓으로 먹을 듬뿍 찍어서 그려낸 듯한 선경(仙境)이다. 무릉계곡에는 한여름 폭염에도 더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장마 뒤끝에 불어나 으르렁거리는 물소리와 맑은 물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 그리고 초록의 숲 그늘을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까지…. 여름의 무릉계곡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1977년 무릉계곡이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된 이유다. 옛사람들은 두타산 무릉계곡을 ‘선계(仙界)’, 그러니까 ‘신선의 세상’에다 비유했다. 선계는 기암괴석의 빼어난 경치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가린 듯 드러낸 듯 그윽한 배경에다 붓을 들어서 좌선하거나 바둑을 두는 신선 한두 명쯤은 그려 넣은 뒤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무릉계는 다른 명산 계곡과 달리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그 경관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사람이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무릉계곡에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명소가 있다. 호랑이가 건너뛰려다 빠져 죽었다는 호암소가 있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무릉반석’이 있으며,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선녀탕’이 있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한 곳으로 쏟아지는 쌍폭포, 용이 승천하며 자국을 남겼다는 용추폭포, 겹겹의 화강암층으로 떨어져 내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관음폭포도 있다. 무릉계곡에다 옛사람들은 앞다퉈 글을 새겼다. 지금으로 치자면 ‘낙서’인데, 낙서가 집중된 곳은 계곡 초입 무릉반석이다. 거대한 화선지로 삼은 반석에는 강릉 부사였던 명필 양사언이 날아갈 듯한 필치로 쓴 ‘여기는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로 시작하는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압도적으로 많은 낙서는 이름이다. 반석에는 줄잡아 850여 명에 이르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릉의 선계에다 이름이나마 두고 오고 싶어서였을 것이었다. 이름을 새긴 이 중 태반은 다시 무릉계곡을 찾지 못했으리라. 도연명의 도화원기 속 주인공이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을 다시 찾지 못했듯이 말이다.
# ‘한국의 장자제(張家界)’… 베틀바위 동해의 무릉계곡은 두타산에 있다. 계곡은 다 알지만, ‘두타(頭陀)’란 산 이름은 익숙하지 않다. ‘무릉’의 명성이 산 이름을 가리고 있는 탓이다. 두타산을 ‘금강산에 이은 두 번째’라고 옛 선비들이 평가했던 것도 다 무릉계곡 일대의 경관을 높이 친 결과였다. 두타산에 올라 탐방기를 남긴 선비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무릉계곡을 따라 산을 올랐다. 계곡의 경관이 좋기도 했지만, 두타산 양옆으로 암봉과 가파른 석벽이 버티고 있어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이유도 있다. 유람기 속 선비들은 무릉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무릉계에서 이미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발견한 선비들에게 더 무슨 탐색이 필요했을까. 두타산 허리쯤의 기이한 암봉의 무리를 일컫는 ‘베틀바위’는 그래서 알려지지 않았다. 베틀바위는 창검처럼 솟은 바위에다 수직의 벼랑이 어우러져 두타산에서 가장 압도적이면서 기이한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두타산의 계곡이 ‘무릉도원’이라면, 두타산의 베틀바위는 ‘장자제(張家界)’에 비유할 만하다. 그럼에도 옛 선비들의 탐방기에 베틀바위 얘기는 단 한 줄도 없다.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거칠고 험한 길 너머의 풍경이어서 그랬으리라. 다만 ‘벌을 받던 선녀들이 승천을 위해 삼베 세 필을 짜던 곳’이라는 베틀바위의 희미한 전설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접근 불가의 험준한 지형 너머에 있는 두타산 베틀바위는 거친 바위를 타는 리지등반이나 암벽등반을 즐기는 이들만 독점해 찾던 곳이었다. 다녀온 이들의 무용담으로 베틀바위 일대의 기막힌 경관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등산로가 없는 코스였으니 일반 등산객은 언감생심, 다녀올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베틀바위에 다음달 1일,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탐방로가 새로 열린다. 가파른 경사를 부드럽게 누이고 수직의 벼랑에다 계단을 놓아 이어놓은 길이다. 베틀바위에 등산로를 놓게 된 건 ‘잦은 등반사고’ 때문이었다. 베테랑 산꾼들만 드나들었음에도 베틀바위 일대에서는 등반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16년 추락사고를 비롯해 최근 5년 동안 발생한 산악사고만 75건에 달했다. 관광명소 확대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베틀바위 구간 개방을 내심 바라던 동해시는, 잦은 산악사고와 구조대 접근마저 어려운 험준한 지형을 이유로 동부지방산림청에 탐방로 개설을 요구했고, 그 결과 베틀바위 탐방로가 놓인 것이다. # 창검 바위와 금강송이 어우러지다
탐방로를 통틀어 정점의 경관은 두말할 것 없이 베틀바위. 하지만 탐방로를 딛고 오르는 주변으로 펼쳐지는 풍경만으로도 입이 딱 벌어진다. 수시로 나타나는 집채만 한 바위와 수직의 암벽 경관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바위 사이사이에서 붉은 둥치를 올리고 활개 치듯 자라는 금강송이었다. 원시림의 초록 그늘과 수직의 바위가 교대로 나타났는데, 위태로운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찌를 듯 허공을 향해 자라는 금강송은 장쾌하기 그지없었다. 거대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의도적인 조경을 한다 해도 이렇게 멋진 경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빗나간 일기예보로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예기치 않았던 장맛비가 퍼부었지만, 돌아 내려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거대한 스케일의 풍경을 일순 빨아들였다가 토해놓는 모습은,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점입가경. 더 높이,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갈수록 경관은 더 몽환적이었다. 아쉽게도 베틀바위는 안개 속에 몸을 감췄다. 베틀바위 전망대 앞에서 오래 기다렸지만, 창검 같이 솟은 바위 군락의 일부만 한순간 보여주고는 이내 진한 안개에 휘감겼다. 베틀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이내 미륵바위다. 미륵바위는 손으로 만지거나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안개 속에서도 선명했다. 산 아래 풍경을 굽어보는 자리에 누가 일부러 세운 듯한 바위는, 등을 돌린 미륵의 형상을 꼭 빼닮았다. 베틀바위를 지나 고갯마루인 산성터에 이르는 구간은,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믿기지 않을 만큼 편안하다. 오름길도 그렇지만 산허리를 끼고 도는 길은, 구들돌을 겹쳐놓듯 넓적한 돌로 켜켜이 단단하게 쌓았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가파른 바위벼랑 두 곳에 나무 덱을 놓은 것을 빼고는 인위적인 시설은 없다. 전체 탐방로는 베틀바위 전망대와 12산성폭포를 지나 박달계곡을 거쳐 무릉계곡 깊은 쪽으로 내려선 후 용추폭포, 쌍폭포, 선녀탕의 순서로 내려오는 5시간 30분 코스로 설계됐지만, 조성이 완료돼 개방하는 탐방로는 두타산성을 거쳐 무릉계곡 옥류동으로 내려오는 3시간 30분 코스다. 박달계곡을 거쳐 용추폭포로 이어지는 구간은 오는 가을쯤 마무리된다. 어떤 코스든 무릉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걷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코스라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하면서 여름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 끓어오르는 바다, 5억 년이 만든 동굴 두타산 무릉계곡을 앞세우긴 했지만, 이미 지명에 바다가 스며있는 동해에서 바다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동해시를, 아니 동해 전체를 대표하는 풍경이 추암(錐岩)이다. 추암이란 갯바위들이 가득한 해변에 칼날처럼 솟은 바위를 이르는 이름. 송곳 추(錐)에 바위 암(岩)자를 쓰니, ‘송곳 바위’를 뜻하는데 송곳보다는 촛대바위로 더 익숙하다. 추암이 서 있는 해안을 ‘능파대’라고도 부른다. 송곳 바위란 직설적 표현이 못마땅했던지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지어 붙인 이름이다. 능파(凌波)란 가벼운 파도의 몸짓이나 발걸음을 은유하지만, 실은 비바람에 성난 바다가 거칠게 일어설 때의 능파대 모습이 더 장관이다. 마침 밤새 내린 장맛비에 바다로 밀려든 토사로 바다가 온통 황토색으로 물든 날이었다. 높은 파고로 끓어 넘치듯 아우성대는 바다를 품은 능파대의 장엄한 경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능파대는 예로부터 명승 중의 명승으로 꼽히던 곳이었다. 유배 가던 송시열이 능파대 앞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고, 정조의 명을 받들어 그림 여행을 떠났던 단원 김홍도는 무릉계곡의 풍경과 함께 이곳 능파대의 비경을 진경산수의 화첩에 담았다. 지금도 능파대는 동해를 상징하는 장한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모아 만드는 애국가의 영상에 단골로 등장하니 말이다. 여름 동해시에서 들러야 할 곳 하나 더. 동해시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 한복판에서 발견된 천연동굴 ‘천곡황금박쥐동굴’이 있다. 5억 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석회동굴 옆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 시내버스가 빈번하게 오간다. 1990년 아파트 건설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천곡황금박쥐동굴은 1996년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동굴은 석회암 종유석이 생성 중인 현재진행형 동굴이다. 지금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동굴에는 바닥에서 솟은 석순과 천장에 매달린 갖가지 모양의 대형 종유석이 즐비하다. 석순과 종유석이 기둥처럼 연결된 석주도 곳곳에 있다. 여름 천연동굴의 미덕은 더위를 잊을 정도로 서늘하다는 것. 더불어 동해의 능파대도, 무릉계곡도, 베틀바위도, 모두 다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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