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秘境과 역사품은 강원 영월

醉月 2018. 8. 25. 19:24

강원 영월 장성산 자락의 잣봉 턱밑쯤의 자리에서 내려다본 동강 어라연 일대의 모습. 강에 솟은 삼선암 사이로 래프팅 보트가 줄지어 내려가고 있다. 어라연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동강에서 유일하게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다.


여기 균형이 잘 잡힌 여행지가 있습니다. 경관과 역사, 음식 등이 적절하게 배분된 곳. 강원 영월입니다. 영월에는 어라연과 청령포, 선돌, 한반도지형까지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名勝)만 4곳입니다. 내로라하는 여행지로 꼽히는 이웃 평창이나 정선이 단 한 곳의 명승도 갖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영월에는 동강이 있고, 단종과 김삿갓의 역사가 있습니다. 적멸보궁의 사찰이 있는가 하면 별빛만큼 노을이 아름다운 천문대도 있습니다. 그윽한 풍류의 정자도, 뜻밖의 박물관도 곳곳에 있습니다. 보리밥과 다슬기탕으로 대표되는 음식도 그만하면 나무랄 데가 없지요. 연필부터 지우개, 볼펜, 만년필까지 가지런히 챙겨 넣은 필통 같은 여행지 영월로 갑니다.


# 유배의 길에 새겨진 연민의 이름

먼저 영월에 깃든 역사 얘기부터. 영월 주천에는 군등치(君登峙)가 있다. 88번 지방도로가 넘어가는 고개다. 뜻을 풀면 ‘임금(君)이 오른(登) 고개(峙)’다. 고개를 오른 임금이란 두말할 것 없이 ‘단종’이다. 계유정난 이후 작은아버지에게 왕위를 뺏긴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를 가던 길에 주천강을 끼고 있는 고개 군등치를 넘었다.

단종의 호송을 맡았던 건 금부도사 왕방연이었다. 왜 단종에게 사약을 가져다주고 돌아올 때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로 시작하는 시조를 썼다는 그 왕방연 말이다. 단종이 왕방연에게 묻는다. “무슨 고개가 이리도 험한가.” 왕방연의 동문서답. “지금부터 고개 이름을 군등치로 바꿔 부르겠습니다.” 지금이야 차로 단숨에 넘을 수 있고 걸어서 넘는다 해도 군등치는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고개다. 그럼에도 단종은 군등치를 넘는 게 힘겨웠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어디 이 고개뿐이었을까. 단종에게 영월로 향하던 7일간의 유배길은 육체적으로 그랬겠지만, 심리적으로 더 멀고도 험했으리라. 그런 단종에 대한 연민이었을 것이었다. 유배길의 사연이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 땅이름이 된 연유가 말이다.

유배길은 온통 단종의 일거수일투족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경기 여주의 두둔 마을은 단종이 우물물을 마신 곳이라 해서 ‘어수정(御水井)’이 됐고, 여주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는 임금이 행차한 곳이라 해서 ‘행치(行峙)’가 됐다. 영월로 향하던 유배길의 마지막 고개에서 해를 향해 절했다고 해서 배일치(拜日峙)라는 땅이름이 새겨지기도 했다. 유배를 가던 길 위에 붙여진 이름이 그럴진대, 그유배 생활을 하고, 끝내 사약을 받았던 영월 땅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을 것인가. 돌에 새기지 않았어도, 글로 적지 않았어도 백성과 백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들은 선명하다.

군등치는 단종의 사연을 지운다 해도 경관만으로 이름을 능히 알렸을 만한 곳이다. 군등치 고개 정상에 서면 굽이치는 주천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군등치 아래 용석리에는 주천강 물줄기가 U자 형태로 휘돌면서 만든 물방울 모양의 땅이 있다. 거기 살던 딱 한 가구 주민도 이제 떠나버려 빈 곳이다. 강을 건너는 제대로 된 길조차 없으니 오지도 이런 오지가 없다.

길은 없고 주천강을 가로질러 놓은 시멘트 보(洑)가 강을 건너는 다리를 대신한다. 강물이 찰랑거리는 시멘트 보의 폭이 어찌나 좁은지 차로 강을 건너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지형에 익숙한 동네 사람들이나 대물을 꿈꾸는 낚시꾼들이 더러 차를 몰고 위험천만하게 보를 건너가는 모양이다. 그걸 흉내 내느니 그냥 바지를 걷어붙이고 보를 걸어 강을 건너는 편이 낫겠다. 강 건너편에는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 수직 벼랑과 그 아래로 굽이치는 강물을 보면서 늦여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리가 곳곳에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말이다.


강원 영월 별마로천문대가 들어선 봉래산 정상. 둥글게 구릉을 만들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쓰는 자리다. 여기 서면 영월읍이 한눈에 다 보인다.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화려한 낙조를 볼 수 있다.




# 억울하고 비통한 죽음과 마주하다

영월의 관광지 중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곳’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다. 단종이 죽어 묻힌 장릉도 있지만, 경관의 빼어남이나 비장미로는 청령포에 어림없다. 단종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처연함이라면, 그 처연함이 가장 절절하게 느껴지는 곳이 여기 청령포라는 얘기다. 청령포는 철창이 아닌 땅과 강의 형세로 사람을 가두는 자리다. 삼면이 서강의 강물로 막혀 있고, 뒤편은 험한 산자락으로 닫혀 배가 아니면 오갈 수 없다.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가면 눈길을 붙잡는 게 울울창창한 솔숲이다. 숲 한가운데에는 한눈에도 비범해 보이는 거대한 소나무가 있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고(觀) 오열하는 소리(音)를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는 나무다. 관음송의 수령은 600년이 넘는다는데, 생장추를 뚫어 측정한 건 아니고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이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을 토대로 당시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해 계산해낸 나이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알리는 비석, 복원한 단종이 머물던 거처, 그리고 민간인들의 접근을 금하라는 명령을 새긴 ‘금표비(禁標碑)’가 있다.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그리고 한양에 남겨진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도 있다. 청령포에 들어 이런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비로소 단종이 실체로 다가온다. 비통함과 좌절로 가득했을 그가 보인다.

청령포에서 뜨거운 여름날을 보낸 단종은 유배 온 지 두어 달 만에 거처를 옮긴다. 아마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계절이었을 것이었다. 홍수로 서강이 범람해 청령포 일대가 물에 잠기자 단종은 영월부 중심의 객사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처소를 옮기고 나서 한 달여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이던 그해 음력 10월에 단종은 사약을 받았다. 그의 나이 고작 열일곱. 역사의 수레에 치인 억울한 죽음이었다. 영월 읍내의 객사 관풍헌과 그 앞의 정자 자규루에는 비감한 단종의 죽음을 추억할 만한 어떤 것도 없다. 관풍헌과 나란한 건물에 난데없는 ‘약사전(藥師展)’ 현판이 걸려 있다. 관풍헌을 비롯한 일대 공간이 사찰 소유라서 그렇다는 설명. 게다가 법당으로 쓰는 약사전 옆의 망경헌도, 관풍헌으로 드는 솟을대문도 한창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의 솔숲. 뒤로 보이는 기와집은 단종이 머물던 집을 복원한 것이다.


# 동강의 딱 한 곳 명승, 어라연(魚羅淵)

이번엔 영월이 품은 경관 얘기다. 영월 땅에서 서강과 동강이 합쳐져 남한강이 된다. 영월의 서강이 한반도지형과 선돌의 비경을 빚어내며 흐른다면, 정선을 지나 영월로 흘러드는 동강 최고의 비경은 단언컨대 어라연에 있다. 영월뿐만 아니라 정선 구간을 통틀어 본대도 동강 경치의 절정은 여기 어라연이다. 동강에서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 ‘영월 어라연 일원’ 한 군데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라연은 병풍처럼 둘러친 벼랑 아래 U자로 굽이치는 초록의 소(沼)를 말한다. 굽이치는 강물과 강 한가운데 솟은 상선·중선·하선암 등 3개의 봉우리가 입체적인 경관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봉우리가 셋이어서 삼선암이라고도 했고, 신선이 내려와 노닌 곳이라 해서 정자암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어라연의 경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뒤로 물러나 고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어라연 일대 경관의 규모가 눈에 다 들어온다. 어라연을 내려다보는 최고의 조망대가 장성산 긴 능선의 끝자락인 잣봉에 있다. 잣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동강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생태탐방로는 몇 개 코스가 있는데, 거운분교에서 출발해서 시계방향으로 마차삼거리, 잣봉, 어라연, 만지동을 거쳐 다시 거운분교로 되돌아오는 7㎞ 남짓의 ‘어라연 산소길’의 정취가 단연 최고다. 다 걷는 데는 3시간 30분 남짓이 걸리는 코스다. 원점회귀 코스라 시계 반대방향으로도 걸을 수 있지만, 어라연에서 잣봉까지 숨이 턱까지 차는 힘든 급경사 구간을 굳이 선택할 이유는 없다.

잣봉의 해발 고도는 537m.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체감 높이가 낮다. 마차마을에서 나무 덱 오르막을 딛고 잠깐만 올라서 숨이 찰 만하면 이내 능선이다. 능선을 따라 잣봉 쪽으로 걷다 보면 저 아래 동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나무로 짜놓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어라연의 풍광이 좋긴 하지만, 나뭇가지들이 강변 양쪽의 시야를 살짝살짝 가리는 게 흠. 전망대에서 정상을 향해 조금 더 걷다 보면 덱 시설은 없지만 더 나은 조망을 보여주는 최고의 자리가 있다. 저 아래로 옥빛 강물과 초승달 같은 백사장, 그리고 어라연의 상선암과 중선암 사이로 동강 래프팅 보트들이 줄지어 떠내려오는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래프팅 보트가 기막힌 경관의 구간을 지날 때나, 물살이 거센 된꼬까리 여울을 타고 넘을 때 협곡은 젊은이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잣봉 정상을 거쳐 어라연 쪽 강변으로 내려서는 길. 강물이 휘돌아 만든 U자 형상의 지형 끝에 어라연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또 하나 있다. 어라연을 발밑에 둔 가장 가까운 자리다. 멀리 잣봉에서 굽어본 어라연이 고요한 수묵화의 느낌이었다면, 여기 가까이서 내려다보는 어라연의 풍경은 생동감 있고 입체적이다.


# 무릉도원과 술이 솟는 샘

▲ 주천강이 굽이치는 오지의 강변으로 건너가는 용석리 보(洑).
이제 영월의 풍류 얘기다. 영월 서강의 상류를 일러 주천강이라 부른다. ‘주천(酒泉)’이란 강 이름은 주천교가 놓인 망산 아래 ‘술이 솟는 샘’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주천은 양반이 오면 약주가, 천민이 오면 탁주가 나오던 샘이었단다. 하루는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샘에 가서 약주가 솟기를 기다렸는데, 탁주가 솟자 화가 나 샘터를 부순 후부터는 술 대신 물이 나왔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영월에서 고즈넉한 명소로 꼽히는 주천강 변의 마애불과 그 곁에 세워진 작은 정자 요선정은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있다. 복숭아꽃 핀 낙원(무릉도원)과 술이 솟는 샘(주천)이 만났으니 그 풍류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 좌상은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어 금시라도 좌우로 어깨를 털면서 바위에서 몸을 빼고 나올 것만 같다. 마애불 곁에 세워진 정자 요선정은 일대에 거주하는 계원들이 1915년에 지은 것이라 내력이 깊지는 않다. 하지만 인근의 정자 청허루가 퇴락하면서 숙종이 하사한 시를 적은 현판이 일본인 소유가 되자, 비싼 값으로 이를 사들인 뒤 걸어두기 위해 계원들이 힘을 합쳐 지은 정자가 바로 요선정이어서 의미가 깊다.

주천의 망산 정상에는 빙허루가 있다. 퇴락한 정자 청허루와 주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 쌍벽을 이뤘다는 두 정자는 숙종이 와병 중에 이 두 정자를 노래한 시편을 지었을 정도로 알려진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무너진 것을 면민의 성금으로 1930년에 다시 지었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불탔다. 지금의 빙허루는 1986년에 이층 누각으로 새로 지은 것인데, 정자 안에는 숙종과 영조, 정조가 지은 시와 친필 복제본이 걸려 있다. 주천교 앞의 주천의 지명 유래를 적은 비석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망산 정상의 빙허루까지는 1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빙허루에서는 주천강을 끼고 있는 주천면 일대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 첩첩한 산 그림자가 그린 파도

▲ 바위에서 어깨를 빼고 걸어 나올 것 같은 요선암의 마애불.
영월에 들렀다가 놓치기 쉬운 곳이 봉래산의 ‘별마로천문대’다. 별자리에 관심이 없다 해도 이곳은 꼭 들르길 권한다. 산정에 펼쳐지는 조망만으로도 봉래산에 가볼 이유는 충분하다. 봉래산 정상의 해발고도는 800m에서 20㎝가 모자란 799.8m. 제법 높은 산이지만, 정상까지 반듯한 아스팔트 차로가 놓여 있고, 정상에는 주차 공간도 충분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른 발자국 남짓만으로 산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얘기다.

봉래산 정상에 서면 발아래로 영월읍 일대는 물론이고 사방으로 첩첩한 산군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이 파도처럼 일어서 있고 북쪽에는 청태산, 가리왕산, 청옥산 등의 능선이 겹쳐진다. 봉래산 정상은 특히 활공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정상 부위를 둥근 언덕처럼 다듬어 놓아서 어디에 서든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다. 조망만으로도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인데, 이즈음 같은 여름에는 서늘한 기온 또한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봉래산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해 질 무렵이다. 붉은 해가 첩첩한 산 위로 걸리면 햇살에 비낀 일대의 풍경이 한 폭의 유화 같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영월 사람들은 해 질 무렵에 차를 몰고 줄지어 올라와서, 봉래산 정상의 구릉 초지에 앉거나 서서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천문대 커피숍에서 주문한 향긋한 커피를 받아들고 있는 이가 여럿이고 낙조의 풍경을 안주 삼아 캔맥주 한 잔을 앞에 놓은 이도 더러 있다. 뜨겁고 화려하게 불타는 늦여름의 노을은, 낯 모르는 이들끼리도 기꺼이 건배를 나누게 만든다.


■ 여행정보

영월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나들목으로 나와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곧 영월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감곡나들목으로 나와 일찌감치 38번 국도에 오르는 방법도 있다. 청령포나 어라연 등의 명소는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찾아가기 편하다. 어라연의 빼어난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잣봉에 가려면 봉래초등학교 거운분교를 찾아가면 된다. 잣봉 아래까지 길이 나 있지만 주민들 외에는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차를 가져간대도 거칠고 가파른 비포장 구간이 많아 거운분교에 차를 대고 걷는 게 좋겠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영월의 동강 변에는 동강시스타(033-905-2000) 리조트가 있다. 강원랜드와 마찬가지로 폐광지역 지원을 위해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출자해 만든 리조트다. 퍼블릭 골프장과 스파 등을 갖췄다. 리조트 인근에 펜션 등 숙소가 여럿 있다. 펜션 등은 대부분 동강을 끼고 있다. 무릉도원면 소재지에서 법흥사로 이어지는 법흥계곡에는 펜션이 줄지어 있고, 캠핑장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영월에는 동강에서 잡은 다슬기로 끓여낸 해장국이 유명하다. 성호식당(033-374-3215)과 동강다슬기(033-374-2821)가 손꼽히는 곳이다. 해장국뿐만 아니라 다슬기 비빔밥과 다슬기 순두부도 내놓는다. 여름철이면 콩국수 딱 한 가지만 내놓는 행복식당(033-374-3337)도 괜찮은 편이다. 영월 서부시장의 일미닭강정(033-374-0151)의 매콤한 닭강정도 이름났다. 동강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챙기는 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