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_05

醉月 2010. 3. 7. 18:14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강줄기 따라 수많은 문화·유적 분포… 중류 ‘평저 융기문 토기’ 한반도서도 출토

아무르 강 유역 유적 분포도

나는 아무르 강을 보면 ‘아, 물이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모스크바에 유학할 때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아무르’라는 명칭이 이주 한인들이 너무 힘들고 목이 마를 때 그 강물을 보고 “아, 물이다”라고 말한 연유로 생겨났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다. 아무르 강 하류의 니브흐인들은 그 강을 다-무르, 즉 큰 강이라고 불렀고, 더 하류 쪽의 에벤크(에벵키)인들은 이를 차용하여 아마르 혹은 아무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러시아인들이 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아무르 강이 되었다. 아무르 강은 그 물 흐르는 것이 검은 용과 같다 하여 흑룡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이칼 동쪽의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하는 아무르 강은 동쪽으로 흘러 아무르 주와 하바로프스크 주를 지나 타타르 해협으로 흘러나간다. 아무르 강은 전체 길이가 2824㎞로, 상류·중류·하류로 크게 구분된다.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제야 강 하구까지, 즉 블라고베시첸스크 시까지가 상류, 이곳에서 우수리 강까지, 즉 하바로프스크 시까지가 중류, 그리고 이곳에서 동해의 타타르 해협까지가 하류다.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교통로

아무르 강 유역에는 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나나이족을 비롯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도 이 강을 따라 살고 있다.

아무르 강은 동북아시아 북방지역의 교통로이자 젖줄과도 같았다. 사시사철 동북아시아의 북방을 동서로 연결했으며, 또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풍부한 음식물을 제공해주었다. 여름이면 배를 타고 아무르 강과 그 지류를 따라 아주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빙판길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토기가 한반도와,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가 일본과 각각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아무르 강과 그 지류에는 동해의 타타르 해협에서 올라오는 연어로 인해 강이 물고기로 넘쳐났다. 이곳의 주민들은 여름 한철의 연어 잡이로 겨울을 준비했다. 연어는 이곳 주민들의 주식이었고, 의복과 신발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았다. 아무르 강에는 철갑상어도 많이 서식한다. 주변의 산악지역에는 곰과 사슴 등 수많은 동물도 서식한다. 그 때문에 아무르 강 유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에 아무르 강 중류와 하류에는 수많은 고고학 문화가 발전했다. 하류 지역에서는 이미 1만3000년 전에 토기를 사용했다. 가샤 유적에서 출토한 이 토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이른 토기 중의 하나다. 더 하류로 가면 수추 섬 유적이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3년 동안 러시아와 공동 발굴조사를 한 유적이다. 길이가 약 40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이 섬에서는 신석기시대 전 기간의 주거지가 약 120여 기 확인되었다.

이 섬 안에는 환호가 있어 사람과 영혼이 거주하는 지역이 서로 구분되어 있으며, 주거지에서는 토기와 석기는 물론이고 사람 형상과 동물 형상을 한 다량의 토우도 출토되었다. 토기 중에는 번개무늬 토기가 있는데, 6000~7000년 전의 토기에 지금 우리가 쇠 울타리, 베개, 담장의 그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꼭 같은 모양의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유적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 덕분에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코리안 루트 상에 분포한 대표적인 암각화인 레나강 상류 카축의 암각화(사진|김문석기자)와 아무르 강 유역 시카치-얄랸 암각화(사진|정석배교수), 그리고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왼쪽부터)

발해, 중·상류까지 진출 주장도

또한 아무르 강 하류 지역에는 ‘아무르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토우도 있으며, 토기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도 있다. 나나이인들이 사는 시카치-알랸 마을 주변에는 암각화 유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과 사슴과 같은 동물의 형상을 새긴 바위들이 아무르 강변을 따라 수없이 널려 있다.

나나이인들은 이 암각화를 매우 신성하게 여긴다. 태초에 사람이 3명 있었다. 그들은 카도라는 남자와 쥴치라는 여자를 만들고, 나중에 마밀쥐라는 처녀를 만들었다. 카도는 하늘에 해가 3개 있어 너무 뜨거워 살 수가 없다면서 2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이를 기념하여 마밀쥐가 암석에 그림을 그렸고, 쥴치가 이제 사람들이 내 남편이 2개의 해를 죽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나나이인들은 이 신화의 내용대로 시카치-알랸 암각화를 자신들의 조상들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르 강 유역에서 발굴한 세칭 ‘아무르의 비너스’(왼쪽)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3000년 전) 토기의 조각들. |정석배 교수

아무르 강 중류 지역에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노보페트로브카 유적이 있는데, 평저 융기문 토기와 돌날로 만든 석기가 특징을 이룬다. 비슷한 평저 융기문 토기가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전기 유적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강원도 오산리 유적과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 그리고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신석기문화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바이칼 지역이나 중국의 중원문화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시기에 이미 환(環)만주문화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전에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는 발해가 아무르 강 중류의 제야 강 지역까지 진출했고, 어쩌면 더 서쪽으로 아무르 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의 박사학위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이곳은 발해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이 그린 발해의 강역도 범위를 많이 벗어나는 지역이다. 그 개요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서기 3~4세기부터 7~8세기까지 아무르 강 유역에는 대체로 소흥안령-부레야 산맥을 경계로 하여 그 서쪽과 동쪽이라는 두 개의 큰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서쪽은 지금의 블라고베쉔스크 시가 위치하는 제야 강 너머까지의 저지대에 미하일로브카 문화가 존속했고, 동쪽에는 하바로프스크 시를 중심으로 하는 아무르 강 중·하류 지역에 나이펠드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나이펠드 문화는 아무르 강의 지류인 제1송화강과 우수리 강의 저지대에 분포하는 중국 지역의 동인문화를 포괄한다.

이 두 지역은 유물의 양상이 서로 다르다. 서쪽의 미하일로브카 문화에는 장란형의 동체가 있는 호형 토기와 구상의 동체에 목이 있는 병형 토기가 많은데, 모두 격자타날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수제다. 나이펠드 문화에는 동체가 길쭉한 화병형과 심발형 계통의 토기가 많으며, 모두 어깨 부문에 침선문과 다치구 압인문이 시문되어 있다. 모두 수제다. 그 외에도 물레에서 보완 손질을 한 구연이 나팔 모양으로 크게 벌어진 화병형 토기가 있는데 역시 어깨 부분이 침선과 다치구 압인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미하일로브카 문화에는 보이지 않는 환옥과 은고리가 결합된 귀고리가 많다.

아무르 강 수추 섬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로 인해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린다. 한반도와도 연결되는 가장 오래된 번개무늬토기(왼쪽)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수추 섬에서 발굴한 석환과 곰상.

서쪽 8세기 문화에 고구려 토기 등장

여기에서 미하일로브카 문화는 사료에 나오는 몽골어계의 실위고, 나이펠드 문화는 퉁구스어계의 흑수말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 의견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서기 8세기쯤에 이곳의 정치적 양상이 바뀌는데, 발해의 건국과 관련한 사건이 그것이다.

8세기쯤 발해의 건국과 함께 아무르 강의 동쪽 지역에 거주하던 흑수말갈이 발해의 압박을 받고 서쪽으로, 그러니까 실위의 미하일로브카 문화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아무르 강 서쪽 지역에는 8세기쯤부터 나이펠드 문화의 요소가 확인된다.
한편, 조금 후에 그러니까 서기 8세기 중엽 이후에 아무르 강 서쪽 지역에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는데 바로 트로이츠코예 문화다. 이 문화는 말갈계의 수제 토기와 고구려계의 윤제토기를 함께 보이고 있다.

말갈계 토기는 어깨 부분에 볼록한 융기대가 장식되어 있고, 간혹 동체가 격자타날로 장식되기도 하였다. 어깨 부분의 융기대는 실위의 미하일로브카 문화와 흑수말갈의 나이펠드 문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던 요소다.

바로 이 문화를 그 러시아 고고학자는 발해의 문화로 파악한다. 실제로 크로이츠코예 문화에 보이는 어깨가 융기대로 장식된 수제 토기와 고구려계의 윤제 토기는 연해주 지역에서도 확인되며, 그 외에도 철제 창이나 찰갑, 대도, ‘단검’ 등은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발굴 조사한 연해주의 체르냐치노 5 발해고분 유적에서 나온 것과 동일하다. 발해의 영역 연구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라 하겠다.

아무르는 흐른다. 그 물길을 따라 도처에 유적이 분포하고, 전설과 신화가 잠들어 있다. 오래전에는 한반도의 것과 매우 유사한 토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막연하게 느끼던 흑수말갈과 실위의 실체가 성큼 다가왔고, 그에 따라 발해도 점차 그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아무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이제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때다. 더욱이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고고학>

바이칼에 샤머니즘을 허하라
부리야트공화국 인류 최초 공식종교로 인정… 소수종족 샤머니즘문화 부활 선도

동부리야트 샤먼학교의 승급 심사 의식. 1년에 한 번씩 샤먼의 영험을 점검하고 품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3일 밤낮 동안 치른다. <김문석 기자>

지난 호에서 말한 것처럼 시베리아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러시아인들이다. 인구를 보면 러시아인을 포함하는 슬라브계 백인들이 주민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축과 복식, 공연과 예술, 심지어 음식과 놀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문화가 넘쳐난다. 군소 언어들은 일상 생활에서 퇴장한 지 오래이며, 연구실이나 박물관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알타이-투바-사하야쿠트-부리야트와 같이 소수종족의 자치가 허용되는 자치공화국에서도 러시아어가 공식어이며 동시에 일상어다. 서부리야트의 샤먼 마하, 샤먼 톨랴, 샤먼 발렌친도 러시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캄차카의 이텔멘 종족의 말과 같이 구사자가 전무하고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흔해서 언어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와 문화의 상실과 더불어 조상 대대로 시베리아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은 대부분 러시아인으로 동화되거나 사회의 주변부가 되었다. 오죽하면 박노자 교수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북방열도 분쟁을 주인을 몰아낸 ‘도둑들의 장물 다툼’이라고 비난했겠는가. 쿠릴열도 토박이인 아이누는 이제 ‘북방열도’에는 거의 거주하지 않는다. 아이누는 자신들의 고토에서 소외된 후 홋카이도와 연해주 일대로 뿔뿔이 흩어졌고, 개체수도 적어서 독립적으로 사회를 구성할 만큼 인구를 모으기도 힘들다.

사간 모린, 백마호텔로 가다

원주민 문화의 배경 위에 건설한 러시아 시베리아 문명 세계를 견문하면서 소수종족 토착민들의 생활상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점은 답사팀에게 안타까운 일이었다. 필자는 이르쿠츠크대의 박근우 교수가 7월 15일 울란우데에 도착한 후 여정을 풀 호텔 이름이 ‘사강 마린’이라고 귀띔해줄 때만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프랑스 소설가 ‘사강’과 바다의 이미지를 주는 ‘마린’이 결합한 정도를 떠올렸을 뿐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정차하는 울란우데역 인근의 호텔 이름은 ‘사강 마린(Sagang Marine)’이 아니라 ‘사간 모린(Sagan Morin)’이었다. 연애담을 즐겨 썼던 프랑스 소설가의 이름이 아니라 ‘흰 말’을 뜻하는 부리야트 원주민 말이었던 것이다. 자음 ‘n’을 ‘ng’로, 강세가 없는 모음 ‘o’를 ‘a’로 읽는 러시아어식 발음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간 모린을 사강 마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호텔 명패에 소수종족 단어가 걸려 있는 것은 범상치 않은 징조였다. 오랜 세월 시베리아를 유람하면서도 원주민 말로 된 호텔에 묵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필자는 여행을 하면서 주로 민박에서 지냈기 때문에 호텔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경우는 없어 호텔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역 명칭’이나 ‘회사의 상호’ 그리고 구소련 시절의 국영 여행사인 ‘인투리스트(Intourist)’를 붙인 정도가 필자가 기억하는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호텔이다.

게다가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는 처녀들은 자신들을 에히리트-불라가트 종족 출신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흰색 말의 로고와 함께 유목민의 문양들로 장식한 호텔 안내문에는 울란우데의 역사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백마’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7월 16일 울란우데 사회과학원을 방문했다. 울란우데 소재 샤먼센터 텡게리 소속 샤먼인 이고리 선생이 사회과학원 일정에 함께 했다. 전날 텡게리 소속 샤먼인 츠드포프 선생과 함께 울란우데 역에 나와 필자 일행을 맞았던 이고리 선생은 샤먼 승급심사에 참여하는 일로 바쁜데도 사회과학원에 나타났다. 일 년에 한 차례씩 샤먼들의 영험을 점검하고 품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사흘 동안 쉬지 않고 치르는데, 마침 답사팀이 방문했을 때 그와 같은 의식이 진행 중이었다.

샤먼 이고리 선생과 사회과학원 견문

부리야트공화국 보리스 바자로프 사회과학원 원장(오른쪽)이 답사단의 인터뷰에 응한 뒤 책자와 자료를 증정했다. 바자로프 원장 뒤가 필자. <김문석 기자>
이고리 선생은 사회과학원 원장부터 복도를 지나치는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기 때문에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원장이 직접 답사팀의 인터뷰에 응했고, 최근 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한 중요 도서를 답사팀에게 선물로 주었다. 원장은 사회과학원 소속 고고학자 한 분을 답사팀에 합류시켜 흉노 관련 유적을 답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필자는 이와 같은 환대의 이면에는 마당발 샤먼 이고리 선생의 인간관계가 깔려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사회과학원 내의 고고유물 전시 박물관에서는 8000년 전의 신석기 유물들과 종족 이동경로에 대한 설명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한민족이나 부리야트인과 같은 종족 구분 없이 같은 인격체로서 신석기 사람들이 존재했으며, 종족의 분화는 그 이후에 시차를 두고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회과학원을 방문한 후 ‘사간 모린’ 백마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이고리 선생은 샤머니즘과 관련한 최근 문헌 한 꾸러미를 필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는 울란우데에 도착한 첫 날 주요한 박물관을 모두 돌아보았고, 다음 날 오전, 울란우데에서 북방으로 80㎞ 정도 떨어진 지점에 형성된 러시아 구교도들의 민속을 확인했다. 오후에는 사회과학원에서 고고학자와 원장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저녁식사도 건너뛴 채 주채혁 교수와 두세 시간 승용차를 타고 양가 마을 답사 일정을 소화했다.

체력이 거의 바닥날 만한 데도 자정을 넘기도록 그다지 피곤한 줄 몰랐다. 대순진리회에서 운영하는 연해주 한국농장에 들러 그곳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고, 선물로 꿀까지 받았는데, 매일 두세 스푼씩 벌꿀을 차에 타서 먹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한반도의 토속 전통 종교들에 대한 편견이 원래부터 없었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대순에서 행하는 색다른 봉사 방법을 확인하고 무척 기뻤다. 만주 일대와 연해주의 넓은 땅이 미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일 뿐 아니라 두개로 쪼개진 한반도 사람들이 서로 상생하는 농업 모델을 창출하는 토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연해주 일대를 다시 방문하여 대순의 연해주 개척 모델에 대해 상세하게 취재한 다음 그 성과와 가능성을 점검하고 싶다.
울란우데 북쪽에 자리잡은 발쇼에 쿠레나는 17세기 종교 박해에 시달린 구교도들이 이주해 세운 마을이다. 이들이 300년 이상 지켜온 민속을 답사단에게 선보였다. <김문석 기자>

성지등록법, 종교간 갈등 예방

좌우당간, 벌꿀 차 덕분에 밤중에도 생생한 정신으로 이고리 선생이 필자의 손에 쥐어준 자료를 정리하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취합한 자료들 가운데 묘한 제목의 법령 두 개를 발견했다. 처음의 것은 ‘부리야트공화국 영역 내의 종교 활동에 관한 법’(이하 종교활동법)이었고, 두 번째는 ‘특별보호가 필요한 성지 등록법’(이하 성지등록법)이었다. 두 법은 1997년과 2001년에 부리야트공화국 의회인 나로드니 후랄(Narodnyi Khural)에서 연이어 제정한 샤머니즘 관련 법률이었다. 종교활동법은 인류 사회의 역사상 최초로 샤머니즘을 기성종교 가운데 하나로 공식 인정하고 포교권, 의식 집전권, 신앙 생활권을 합법화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리야트공화국에서는 러시아정교(구교 포함), 불교, 가톨릭을 합법적인 기성 종교로 인정해왔으나 종교활동법에 따라 샤머니즘을 포함하는 4대 종교를 기성종교로 합법화했다. 종교활동법의 제정으로 부리야트공화국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샤머니즘의 부활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고, 투바공화국과 사하야쿠트공화국을 비롯해 샤머니즘의 전통을 가진 소수종족 공화국들이 적극적인 샤머니즘문화의 복원을 유도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답사단이 묵은 울란우데의 사간 모린 호텔. 사간 모린은 부리야트어로 ‘흰 말’ 이라는 뜻이다. <신동호 기자>
2001년에 제정한 성지등록법은 1997년 샤머니즘의 합법화 조치 이후 기존 종교단체와 샤먼들 사이에서 종교의식을 치르는 장소를 둘러싼 다툼과 갈등이 잦고, 러시아정교 신도들이 자신들의 거주지 인근에서 샤먼의식의 집전을 물리적으로 막는 경우도 발행하여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인 것으로 보인다. 법률에 따르면, 샤먼들이 의식을 치르기 전에 의식집전 예정 장소를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성지’로 관청에 등록해야 한다.

샤머니즘의 합법화와 종교적인 측면에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법률의 존재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베리아의 여타 지역에서와 달리 울란우데 중심의 동부리야트 지역에서는 샤머니즘이 부활하는 과정이 매우 특이하다. 구소련이 해체된 이후 1990년대 초반, 부리야트공화국 사회의 파워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중량급 인사들이 줄지어 스스로 샤먼이라고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하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부리야트 공화국 국립도서관장을 지내고 문화부 장관직을 수행하던 하라예프, 울란우데 문화대학 교수 스테파노바, 부리야트 사회과학원 연구원 츠비크자포바 등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스스로 샤먼이라고 선언했다. 소수종족 문화에 대한 탄압과 샤머니즘 박해 등에 가위눌렸던 전통문화가 소비에트가 해체하면서 부활하기 시작했는데, 부리야트공화국에서는 전통 부활의 견인 역할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같은 지도층 인사의 샤머니즘과 관련한 고백은 자연스럽게 ‘샤머니즘의 부활’이라는 화두로 사회 전체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후 1993년 울란우데에는 ‘울려 퍼지는 북소리’라는 뜻인 샤먼협회 ‘헤세 헨게레그’가 조직되었고, 헤세 헨게레그는 1999년 ‘샤먼 협회’라는 뜻인 ‘보오 무르겔’로 재조직되어 기성종교로 문화부에 등록했다. 2000년대에 들면서 샤먼센터 텡게리와 샤먼센터 루사트 등이 문화부에 종교단체로 등록하면서 현재 부리야트공화국에는 샤먼 관련 공인 단체가 세 개로 늘어났다.

오늘날의 부리야트 샤먼들은 잔혹한 희생제의나 의뢰인을 속이는 혹세무민의 의식을 펼치기보다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펼치며, 전통 의료행위와 심리 상담 치료를 병행하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샤먼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인텔리 계층으로 진입하고, 적극적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대중교육에 나서기도 하는 것이 오늘 날 바이칼 샤먼들의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간 모린’에서 한밤중에 들여다보는 샤머니즘 관련 법조문들은 ‘바이칼에 샤머니즘을 허하라’고 외치는 듯하다.

양민종<부산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신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