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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이식하는 사이보그 세상 온다

醉月 2010. 1. 28. 08:51

[李仁植의 지식융합 파일] ‘머리’를 이식하는 사이보그 세상 온다

머리 이식은 머리를 통째로 남의 몸으로 옮기는 것이다.
뇌에 담긴 마음마저 고스란히 남의 몸으로 옮겨진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21세기에 임상적으로 현실화될 것을 전망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동물의 머리 이식에서 몇 차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李仁植
⊙ 1945년 광주 출생.
⊙ 광주제일고-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월간정보기술 발행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 저서: <미래교양사전> <지식의 대융합> <나는 멋진 로봇 친구가 좋다> 등 30여 권 저술.
⊙ 수상: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공학기술문화확산 부문),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저술부문),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 수상.
李仁植 과학문화연구소장

<데미코프 박사가 자신이 만들어낸 머리 둘 달린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2004년 수퍼맨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슬프게 했다. 영화 <수퍼맨>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토퍼 리브의 불운은 지구촌 청소년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나 그가 말년에 보여준 영웅적인 모습은 수퍼맨과 다를 바 없었다.
 
  1995년 리브는 승마 도중 말에서 떨어져 입은 척추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됐다. 그러나 사고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대중(大衆) 앞에 다시 나타나 많은 환자에게 용기를 북돋워 줬다. 1996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인물로 선정되고 그해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사로 초청될 정도로 눈부시게 재활에 성공했다.
 
  하반신 마비 환자인 리브가 초인적인 활약상을 보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사이보그(cyborg)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 유기체(cybernetic organism)의 합성어다. 1960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컴퓨터 기술자인 미국의 만프레드 클라인즈(1925~ )와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나단 클라인(1916~ 1982)이 함께 쓴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다.
 
  이들은 인간이 우주여행을 할 때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 공간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인체를 개조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기계와 유기체의 합성물을 사이보그라고 명명했다. 다시 말해 사이보그는 생물과 무생물이 결합된 자기 조절 유기체다. 따라서 유기체에 기계가 결합되면 그것이 사람이건 바퀴벌레이건 박테리아이건 모두 사이보그라고 부른다. 사람만이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이보그는 기본적으로 자기조절 기능을 가진 시스템, 곧 사이버네틱스 이론으로 규정되는 유기체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1948년 미국의 노버트 위너(1894~1964)가 펴낸 <사이버네틱스>에 제안된 이론이다.
 
  이 책의 부제(副題)는 ‘동물과 기계에서의 제어와 통신’이다. 요컨대 동물과 기계, 즉 생물과 무생물에는 동일한 이론에 의해 탐구될 수 있는 수준이 있으며, 그 수준은 제어 및 통신의 과정에 관련된다는 것이다.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 대해 제어와 통신의 과정을 사이버네틱스 이론으로 동일하게 고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이보그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주로 공상과학 영화의 주인공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신조어(新造語)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사이보그는 텔레비전 연속물인 ‘600만불의 사나이’(1974~1978)를 비롯해 ‘터미네이터’(1984), ‘로보캅’(1987), ‘공각기동대’(1995), ‘매트릭스’(1999) 등의 영화에서 맹활약한다. 
    
  우리는 사이보그 사회에 살고 있다
  영화 <수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후 첨단 휠체어에 의지해 사실상 사이보그가 됐다.
  1985년 미국의 페미니즘 이론가인 도나 해러웨이(1944~ )는 <사이보그를 위한 선언문>이란 글을 발표하고 사이보그를 성차별 사회를 극복하는 사회 정치적 상징으로 제시했다. 이를 계기로 사이보그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뛰어나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됐으며 ‘사이보그학(cyborgology)’이 출현했다.
 
  사이보그는 종류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유기체를 기술적으로 변형시킨 것은 모두 사이보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가령 로봇 팔을 이식한 사람은 물론이고 생명공학기술과 의학기술로 심신의 기능을 개선시킨 사람들, 이를테면 인공장기를 갖거나 신경보철을 한 사람, 예방접종을 하거나 향정신성 약품을 복용한 사람들은 모두 사이보그다.
 
  사이보그의 개념을 좀 더 확대하면 우리가 사이보그 사회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장치, 이를테면 안경·휴대전화·컴퓨터·자동차 등이 우리의 능력을 보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사이보그와 구분하기 위해 ‘기능적 사이보그’(functional cyborg) 또는 줄여서 ‘파이보그(fyborg)’라 부른다. 우리 모두는 이미 파이보그인 셈이다.
 
  일부 학자들은 지구 자체를 사이보그로 간주한다. 예컨대 해러웨이는 제임스 러브록(1919~ )이 가이아 이론에서 제시한 것처럼 지구는 자기 조절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사이보그라고 주장했다.
 
  21세기에는 바이오닉스와 신경공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이 사이보그로 바뀌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사람과 기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질 전망이다.
 
  사람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대표적 기술의 하나인 바이오닉스(bionics)는 영어로 생물학과 전자공학을 합쳐 만든 단어다. 생명공학 기술과 전자공학의 융합으로 출현한 기술이라는 뜻이다. 바이오닉스는 생물학의 원리를 적용해 몸과 마음의 기능을 개선하는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예는 생물체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장기와 신경보철을 들 수 있다.
 
  인공장기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인체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개발되고 있다. 인공뼈와 인공관절은 신체의 기능에 버금갈 정도이며, 인공치아나 의수족은 물론이고 인공유방이나 인공성기(性器) 역시 손색없는 성능을 보여준다. 인공장기 중에서 생명과 직결된 인공신장과 인공심장은 성능이 계속 보강되고 있다.
    
  사람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기술, 바이오닉스
  영국의 로봇 공학전문가 케빈 워릭은 자신의 팔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는 실험을 했다.
  인공장기에 의해 인체의 손상된 부위가 보완되고 있지만 신경계의 보철기술은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 신경계의 정점인 뇌의 수수께끼가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보철의 목표는 신경계의 결손 부위를 대체하는 전자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신경계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손상된 감각이나 운동 기능을 복구 또는 보완하는 장치를 말한다. 인공 눈과 인공 귀, 마비된 근육 자극장치, 심장 박동 조절기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는 감각에 관련된 신경보철이다. 감각신경 보철의 핵심 연구 분야는 시각 및 청각 장애다.
 
  시각장애는 뇌의 시각피질이나 눈의 망막에 이상이 있을 때 발생한다. 시각장애인의 80%는 시각피질, 나머지 20%는 망막의 수용기가 손상돼 있다. 시각피질에 이상이 있는 시각장애인은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시각피질에 수백 개의 미세전극을 이식해 전기적 자극을 가함으로써 이미지를 지각하게 된다. 시신경은 온전하지만 망막의 수용기가 손상된 시각장애인은 인공망막을 이식하면 시각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청각장애는 대부분 와우각(귓속에 달팽이의 껍데기처럼 감겨 있는 관) 안에 있는 유모세포의 결손에서 비롯된다. 남자의 경우 65세가 되면 출생 당시 유모세포의 40% 가량이 소멸된다. 노인들이 보청기를 하는 까닭이다.
 
  청각장애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와우각 이식이 필요하다. 청각장애인은 유모세포가 없더라도 청신경은 대개 살아 있으므로 인공 와우각으로 청신경을 자극하면 소리를 듣게 된다.
 
  신경보철 장치를 몸에 지닌 환자들은 사이보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심신 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이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닉스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사이보그로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가능성에 학문적으로 도전한 대표적 인물은 영국의 로봇공학 전문가인 케빈 워릭(1954~ )이다.
 
  워릭은 두 번에 걸쳐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는 수술을 감행해 세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1998년 왼쪽 팔 피부 밑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고 9일 동안 자신의 위치 신호를 컴퓨터로 전송했으며, 2002년 3월에는 왼쪽 손목 밑에 100개의 실리콘 전극을 삽입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2002년 워릭은 자신이 사이보그로 변신하는 과정을 기록한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I, Cyborg)>를 펴내 화제의 인물이 됐다.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2002년 5월에는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 가족이 탄생했다. 미국 플로리다주(州)에 사는 일가족 3명이 모두 베리칩(VeriChip)을 몸속에 이식했다. 베리칩은 크기가 쌀 한 톨만 해서 주사기를 사용해 팔의 피부 밑에 간단히 이식할 수 있는 컴퓨터 칩이다.
 
  베리칩은 실리콘 메모리와 무선 송수신 장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캐너로 칩 안에 저장된 정보를 판독해 외부로 보낼 수 있다. 베리칩에는 칩을 이식한 사람의 신원과 질병에 관한 자료가 담겨 있다. 인체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체온·혈압·혈당 등을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고, 지구 위치 측정 시스템(GPS)과 연결하면 개인의 행방을 추적할 수도 있다.
 
  바이오닉스가 사람의 몸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기술이라면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경공학(neurotechnology)이다. 신경공학은 사람의 뇌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신경공학은 뇌의 질환을 치유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결국에는 뇌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신경공학의 대표적인 기술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MI·Brain Machine Interface)’다. 이는 뇌의 활동 상태에 따라 주파수가 다르게 발생하는 뇌파 또는 특정 부위 신경세포(뉴런)의 전기적 신호를 각각 이용해 생각만으로 컴퓨터 등 기계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뇌파는 0.5~100Hz의 주파수 범위에 집중되어 있는, 느리고 연속적인 전자파다. 먼저 머리에 띠처럼 두른 장치로 뇌파를 모은다. 이 뇌파를 컴퓨터로 보내면 컴퓨터가 뇌파를 분석해 적절한 반응을 일으킨다. 요컨대 컴퓨터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스스로 동작하는 셈이다.
 
  뉴런의 신호를 활용하는 BMI 기술은 뇌의 특정 부위에 미세전극이나 반도체 칩을 심는다. 이러한 뇌 이식(brain implant) 장치를 처음으로 개발한 인물은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필립 케네디다. 1998년 3월 그가 만든 최초의 BMI 장치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목 아래 부분이 완전 마비된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이식됐다.
 
  그는 눈꺼풀을 깜박거려 겨우 자신의 뜻을 나타낼 뿐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였다. 케네디의 장치에는 미세전극이 한 개밖에 없었다. 사람 뇌에는 운동 제어에 관련된 신경세포가 수억 또는 수십억 개가 있으므로 한 개의 전극으로 신호를 보내 몸의 일부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엉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네디와 환자의 끈질긴 노력 끝에 생각하는 것만으로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케네디는 사람의 뇌에 이식한 미세전극이 뉴런의 신호를 받아 컴퓨터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손을 쓰는 대신 생각만으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BMI 실험에 최초로 성공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BMI 제품 속속 개발돼
 
  1999년 2월 독일의 닐스 버바우머는 몸이 완전 마비된 환자의 두피에 전자장치를 두르고 뇌파를 활용하여 생각만으로 1분에 두 자꼴로 타자를 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1999년 6월 브라질 출신의 미국 신경과학자인 미겔 니코렐리스와 동료인 존 채핀은 케네디의 환자가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쥐가 로봇 팔을 조종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를 내놓았다.
 
  이어서 2000년 10월에는 부엉이원숭이를 상대로 실시한 BMI 실험에 성공했다. 원숭이 뇌에 머리카락 굵기의 가느다란 탐침 96개를 꽂고 원숭이가 팔을 움직일 때 뇌 신호를 포착해 이 신호로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또 원숭이 뉴런의 신호를 인터넷으로 약 1000km 떨어진 장소로 보내서 로봇 팔을 움직이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BMI 기술로 멀리 떨어진 곳의 기계를 원격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2003년 6월 이들은 붉은털원숭이의 뇌에 700개의 미세전극을 이식하여 생각하는 것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2004년 니코렐리스와 채핀은 32개 전극으로 사람 뇌의 활동을 분석하여 신체 마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BMI 기술 연구에 착수했다.
 
  2008년 5월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앤드루 슈워츠는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음식을 집어먹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원숭이 뇌의 운동피질에 가느다란 탐침을 꽂고 이것으로 측정한 신경 신호를 컴퓨터로 보내서 로봇 팔을 움직여 꼬챙이에 꽂혀 있는 과일 조각을 뽑아 자기 입으로 넣게 만들었다.
 
  BMI 기술은 1998년 필립 케네디처럼 뇌에 미세전극이나 반도체칩을 이식하여 신경신호를 이용하는 방법과, 1999년 닐스 버바우머처럼 두피에 뇌파 기록 장치를 씌우는 방법으로 양분되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BMI 기술을 실현한 제품도 잇따라 선보였다. 2004년 9월 미국 신경과학자인 존 도나휴 교수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뇌에 이식하는 반도체 칩인 브레인 게이트(Brain Gate)를 개발했다. 사람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전극 100개로 구성된 이 장치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청년의 신경세포 100개에 접속되도록 운동피질에 1mm 깊이로 심어졌다.
 
  이 환자는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전자우편을 열고 텔레비전을 켜서 채널을 바꾸거나 볼륨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또 자신의 로봇 팔, 곧 의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인간의 ‘머리’를 통째로 이식
  헤드셋처럼 생긴 게임기 에폭은 뇌파를 이용해 게임기 속의 캐릭터를 조작한다.
  미국에서는 뇌파로 조작하는 비디오게임 장치가 판매되고 있다. 2008년 초에 발표된 ‘에폭’이나 ‘마인드셋’은 뇌파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게임을 조작하는 주변기기다. 머리에 쓰는 헤드셋처럼 생긴 에폭에는 16개의 뇌파 감지센서가 달려 있어 생각만 해도 밀기·들어올리기·회전하기 등 간단한 행동을 게임 속의 캐릭터에 명령할 수 있다.
 
  전신마비 환자들이 생각하는 것만으로 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는 기술도 실현됐다. 2009년 5월 스페인에서, 6월 일본에서 각각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휠체어가 개발되었다. 스페인의 휠체어 사용자는 16개 전극이 달린 두건을 쓰는 반면 일본의 것은 5개의 전극이 뇌파의 변화를 포착한다.
 
  손을 쓰지 못하는 척추 장애인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소변을 볼 수 있게끔 뇌파로 작동하는 방광 제어 장치도 개발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걷지 못하는 하반신 불수 환자의 다리 근육에 전기장치를 이식하고 뇌파로 제어하여 보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가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BMI 전문가들은 2020년경에 비행기 조종사들이 손 대신 단지 머릿속 생각만으로 계기를 움직여 비행기를 조종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바이오닉스와 신경공학의 궁극적인 목표의 하나는 뇌 보철(brain prosthesis) 장치의 개발이다. 뇌 보철은 뇌의 손상된 부위를 전자장치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2003년 3월 미국의 신경과학자들은 세계 최초로 뇌 보철 장치를 개발했다. 이들은 해마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을 선보였다. 말하자면 인공해마를 만들어 낸 셈이다. 해마는 새로 학습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넘기는 일을 한다. 해마 부위를 손상당한 사람은 심한 기억상실증을 보인다.
 
  인체의 손상된 부위는 인공장기와 신경보철에 의해 부분적으로 보완되었지만 뇌 보철은 기술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인공해마의 개발은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됐다. 미국 연구진은 쥐와 원숭이의 뇌를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해마는 대부분의 포유동물에서 구조가 비슷하다. 따라서 동물실험에 사용된 기술을 거의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하더라도 별문제가 없다.
 
  사람 뇌에 인공해마 칩을 이식하면 알츠하이머병이나 뇌졸중으로 뇌가 손상된 환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테면 인공해마로 보철하면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 
    
  무선 텔레파시 기술, 2050년경 실용화 가능성
 
  뇌 보철 기술은 뇌질환 치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 기능 향상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신경세포 안에서 뇌의 활동을 직접 관찰하거나 측정하는 장치가 개발될 수 있다.
 
  이런 장치는 신경세포 활동의 정보를 무선신호로 바꾸어 뇌 밖으로 송신한다. 거꾸로 무선신호를 신경정보로 변환하는 수신장치를 뇌에 삽입할 수도 있다. 송수신기 모두 반도체 소자처럼 그 크기가 작아야 한다. 사람 뇌에 무선 송수신기가 함께 설치되면 뇌에서 뇌로 직접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이런 통신방식은 ‘무선 텔레파시’라고 불린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1923~ )이나 영국의 케빈 워릭이 전망한 대로 2050년경 무선 텔레파시 기술이 실용화되면 인류의 의사소통 체계가 송두리째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러한 뇌 이식 장치를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되면 생각으로 보내는 신호만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게 될 터이므로 전화나 텔레비전은 물론 언어마저 무용지물이 되어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한편 뇌 보철이나 뇌 이식과 함께 ‘머리 이식’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 이식은 머리를 통째로 남의 몸으로 옮기는 것이다. 뇌에 담긴 마음마저 고스란히 남의 몸으로 옮겨진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발상이지만 21세기에 임상적으로 현실화될 것을 전망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 근거는 동물의 머리 이식에서 몇 차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1908년 미국의 생리학자인 찰스 거스리(1880~1963)는 작은 잡종견의 머리를 더 큰 개의 목에 접합하는 실험을 했다. 큰 개의 머리는 손대지 않았으므로 머리가 두 개 달린 상태였다.
 
  1950년대에 러시아 과학자인 블라디미르 데미코프(1916~1998)는 잡종 강아지의 상체를 더 큰 개의 목 혈관에 접합시켰다. 앞다리가 달린 채로 상체를 접합했으므로 목은 두 개, 앞다리는 네 개 달린 개가 생긴 것이다. 이 개는 수술 뒤 29일이나 생존했다.
 
  머리가 제거된 포유동물의 몸에 새로운 머리를 이식시키는 수술은 1970년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로버트 화이트(1925~ )에 의해 처음 시도됐다. 화이트는 붉은털 원숭이가 머리 이식 수술 뒤 마취에서 깨어나 두개골의 신경 기능이 완벽하게 회복했으며 8일 동안 살아 있었다고 발표했다.
    
  원숭이, 개 머리 이식 성공
 
  화이트는 원숭이 머리 이식수술 절차를 조금만 응용하면 사람의 머리 이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사람의 머리 이식수술 과정은 머리를 주는 사람과 머리를 받는 사람을 마취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의 목둘레를 절개한 뒤 조직과 근육을 분리하여 동맥, 정맥, 척추를 노출시킨다. 뇌가 충분한 혈액 공급, 즉 산소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피의 응고를 방지하는 약품을 각 혈관마다 넣는다. 두 사람의 목 척추에서 뼈를 제거한 뒤 척수를 들어낸다. 척추와 척수를 분리한 다음에 이식해야 하는 머리를 절단해, 머리가 이미 절단돼 있는 몸에 접합시킨다.
 
  이어서 이식된 머리에 달린 정맥과 동맥을 새로운 몸의 정맥과 동맥에 봉합시킨다. 근육과 피부가 차례대로 봉합되면서 머리 이식 수술이 완료된다.
 
  머리 이식은 사고로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된 사람들이 희망할 것 같다. 왜냐하면 머리를 다른 사람의 온전한 몸으로 이식하면 신체를 더 많이 움직일 수 있으므로 생명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화이트는 머리 이식에 필요한 몸은 뇌사 판정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기증받기 때문에 머리 이식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머리 이식으로 목 아래의 신체기관, 이를테면 심장, 젖가슴, 배꼽, 생식기, 항문, 발톱 등이 남의 것으로 바뀐 사람을 수술 전의 그 사람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바이오닉스와 신경공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가령 인공해마로 뇌를 보철한 환자가 기억 능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다면 망각하는 능력까지 상실하게 돼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치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이 뇌 보철과 뇌 이식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성찰하려는 시도를 ‘신경윤리’라고 이른다.
 
  신경윤리의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2003년 ‘신경윤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미국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1929~ )는 신경윤리를 ‘사람 뇌의 질환 치료 또는 기능 향상에 관한 옳고 그름을 검토하는 철학의 한 분야’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1939~ )는 “새파이어의 신경 윤리 정의는 뇌에 대한 생명윤리에 국한시키고 있으므로 불완전하다”고 비판하고, 2005년 펴낸 <윤리적 뇌(The Ethical Brain)>에서 “뇌의 기초를 이루는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질병·죽음·생활양식·생활철학과 같은 사회적 쟁점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기 바라는지를 검토하는 분야”라고 정의했다.
    
  신경윤리에 관심 가질 때
 
  그는 신경윤리가 뇌의 질병 치료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사회적 및 생물학적 맥락에서 개인의 책임을 따지는, 뇌에 기반을 둔 생명철학을 지향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신경윤리는 21세기 들어 광범위한 토론의 주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2002년 들어 신경윤리 학술대회가 미국과 영국에서 네 차례나 열렸다. 2008년에는 신경윤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제학술지가 창간됐다.
 
  신경윤리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두 범주로 나뉜다. 하나는 새파이어의 정의에 따른 좁은 의미의 신경윤리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가자니가의 정의에 따른 넓은 의미의 신경윤리 문제다. 전자의 경우, 신경공학으로 뇌의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기술, 예컨대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 보철, 뇌 이식 등의 윤리적 문제가 해당된다. 후자의 경우는 뇌의 기능과 마음, 예컨대 성격·사랑·도덕 감정 등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신경윤리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문제는 정상적인 사람의 뇌를 정신약리학 또는 신경공학 기술로 조작해 인지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따른 윤리적 쟁점이다. 정신약리학 측면에서는 정신 의약품을 투입해 뇌의 기능을 향상시키거나, 운동선수에게 약을 주입해 일시적으로 체력을 증강시킬 때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윤리적 쟁점이 될 수 있다.
 
  정신의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충격요법(ECT)이나 뇌심부 전기자극술(DBS)로 뇌 질환을 치료할 때 역시 윤리적 문제가 야기된다. 전기충격요법은 심한 우울증을 치료할 때처럼 뇌에 전기적 충격을 가하는 반면, 뇌심부 전기자극술은 뇌에 심은 전극으로 미세한 전류를 흘려 보내 자극하는 시술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신경윤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가톨릭대학의 이상헌 교수(철학박사)는 서강대 철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철학논집>에 두 차례 신경윤리 논문을 게재했다. 2009년 6월에 ‘인간 뇌의 신경과학적 향상은 윤리적으로 잘못인가’를, 10월에 ‘신경윤리학의 등장과 쟁점들’을 발표했다. 첫 번째 논문에 언급된 것처럼 신경과학적 뇌 기능 향상이 인간성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전통적 인식 및 가치관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