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해독하는 ‘땅속의 진주’ 칡
간암 환자 살려낸 흰민들레
◇ 칡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술자리가 끊이지 않던 김인호(63) 씨. 가정과 직장생활에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저녁이면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려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을 낙으로 여기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일주일에 3, 4일은 꼭 술을 마셨어요. 술자리가 시작되면 끝까지 남았죠.”
그렇게 술을 벗 삼아 지낸 지 어언 수십 년. 건강에는 자신 있던 김씨의 몸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아 낮에 일하다 졸기 일쑤였고, 밤에도 잠을 깊이 청할 수 없었다. 운전하다가 졸아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다. 입맛이 없어 밥을 적게 먹어도 배는 늘 더부룩했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도 시원하지 않았다. 몸의 이상을 느낄 무렵 배가 점점 불러왔다. 아내 최혜숙(54) 씨는 김씨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직감했다.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배가 임신 8개월만큼 볼록하게 나왔어요. 주변에서 남편에게 ‘언제 출산하느냐’고 놀릴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정체불명 ‘넝쿨’과 한판 전쟁
김씨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진단결과는 오랜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지방간. 2009년 가을이었다.
병원에서는 이렇게 술을 계속 마실 경우 지방간에서 간암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사는 우선 3개월 약을 먹고 나서 다시 검진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평소 감기에 걸려도 약을 잘 먹지 않던 김씨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생활습관에 뭔가 큰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약으로는 치료하기 어려울 듯했다.
결국 김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도시를 떠나 귀농하기로 결심했다. 술로 생긴 병이니 가장 먼저 술을 끊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술자리가 많은 도시를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병원 약을 안 먹겠다고 했을 땐 많이 걱정했죠. 하지만 남편의 의지는 완강했어요.”
50년 가까이 도시에서만 산 아내 최씨는 막막했다. 농사 같은 건 TV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일처럼 여겨온 터. 더욱이 30년 넘게 운영하던 유치원까지 접어야 했기에 무작정 남편을 따라나서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치유 방법을 찾겠다는 남편의 굳은 의지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최씨 역시 평소 이런저런 알레르기로 불편을 느끼던 차에 생활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렇게 김씨 부부는 경기도 인근 산속에 터를 잡았다.
화색 돌고 뱃살도 ‘쏙’
초보 농사꾼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산에 심은 나무들은 정체 모를 넝쿨에 시달렸고, 그 넝쿨의 뿌리는 땅속 깊숙이 박혀 농사짓는 걸 방해했다. 자르고 파내고, 김씨 부부는 이 넝쿨식물과 한바탕 힘겨운 전쟁을 벌였다. 그러기를 여러 날, 동네 주민에게서 이 넝쿨식물의 정체를 듣고서야 전쟁을 그쳤다. 그건 다름 아닌 칡이었다.
그동안 ‘이 귀한 칡을 갖다 버렸다니….’ 어이가 없었다. 김씨 부부는 그때부터 칡을 캐서 복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달여 먹는 방법밖에는 몰랐다. 그런데 땅속 깊이 박혀 있는 칡을 필요할 때마다 캐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 최씨가 알아낸 방법이 칡뿌리로 발효액을 담가 장복하는 것이었다. 또 절구에 빻은 칡을 물에 넣고 주무른 뒤 가라앉은 전분으로 묵을 만들어 식사 대용으로 남편과 함께 먹었다. 깨끗한 전분을 얻기 위해 하루 한 번씩, 3일 동안 물을 갈아줘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갔지만 점점 건강해지는 남편을 보면서 힘든 줄 몰랐다.
김씨가 술을 끊고 칡으로 만든 음식을 복용한 지 6개월쯤 지나자 검은빛을 띠던 얼굴색도 밝아지고 임신부 같던 배도 쏙 들어갔다. 병원 검사 결과 간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내 최씨의 알레르기도 사라졌다. 친구들이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할 때도 최씨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칡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여겨진다는 김씨, 그리고 그런 남편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아내 최씨. 땅속 깊이 뿌리내린 칡처럼 오늘도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간다.
김인호 씨의 칡 건강밥상
■칡영양밥
생칡을 우려낸 차를 밥물로 쓰고, 6년 된 칡 발효액과 발효시킨 칡뿌리를 더해 밥을 짓는다. 밥 한 그릇에 칡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콤 쌉싸래한 칡 향이 쌀알에 스며들어 그 맛이 일품이다.
■가마솥 칡백숙
가마솥에 깨끗이 손질한 칡뿌리와 칡잎, 엄나무, 감자, 마늘, 토종닭을 한데 넣고 푹 끓인다. 칡은 성질이 서늘하고, 닭은 따뜻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 음양의 궁합이 잘 맞는 여름철 보양식이다.
■칡묵
칡 전분으로 쑤는 묵. 절구에 찧은 칡을 물에 넣고 주물러 전분을 빼낸 뒤 건져서 물기를 꼭 짠 후 버린다. 칡의 전분이 섞인 물을 하루 동안 두면 밑에 흰 전분이 가라앉는데, 이때 윗물은 버리고 새 물로 갈아준다. 하루에 한 번씩 3일 동안 이 과정을 반복하면 새하얀 빛깔의 깨끗한 전분을 얻을 수 있다. 칡 전분과 물을 7:2 비율로 섞어 약한 불에서 끓인 후 걸쭉해지면 원하는 모양 틀에 넣어 식힌다. 이렇게 완성된 칡묵을 무침이나 묵 국수로 해먹어도 좋다.
■칡순 샐러드
봄부터 초여름까지 얻을 수 있는 칡순도 영양이 풍부하다. 어린 칡순은 제철 채소 및 과일과 함께 샐러드로 주로 활용한다. 소스 역시 칡으로 만들 수 있는데, 산딸기로 만든 잼에 칡 발효액을 섞어 샐러드에 뿌려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 흰민들레
강규원(79)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오른다. 산이 곧 집이다. 한때는 서울에서 사업하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모든 것을 접고 산속을 헤매는 이유는 뭘까.
28년 전 어느 날, 강씨는 유난히 피곤하고 의욕이 떨어져 병원을 찾았다. 간염이겠거니 했던 예상은 빗나가고 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가 나왔다.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려운 간암의 특성상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에는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어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게 기적이죠.”
3개월 시한부 선고. 두려웠다. 아무런 사실을 모르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곧 죽음이 닥쳐올 테고, 가족들에게 죽어가는 누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곧고 강했던 생전 모습 그대로 아내와 아이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수술은 무의미했다. 사흘 만에 퇴원을 결심한 강씨는 집으로 가 곧바로 짐을 쌌다. 혼자 남겨질 아내와 아이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필요한 서류들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정리해뒀다.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던 아내 이자근(70) 씨는 가슴이 콱 막히는 듯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으니 원망스럽기만 했어요. 오남매를 남겨두고 떠난다니 혼자 남는 심정이 어땠겠어요.”
부자 마시니 손발이 덜덜
너무 충격적이라 차마 남편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는 아내 이씨. 3일에 걸쳐 떠날 준비를 마친 강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몸이 안 좋으니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암이라는 사실은 차마 밝히지 못했다. 그 말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 강씨를 아내 이씨가 말없이 따라나섰다. 터미널에서 남편이 탄 버스가 멀어져 가자 그제야 이씨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때 이씨의 나이는 40대 중반, 막내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정은 괴로웠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아내와 어린 다섯 남매를 두고 떠나온 강씨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백번, 천번 다시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였다. 어차피 병원에서도 포기했다면, 약초를 이용해 자연요법을 써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고, 죽으면 또 그만 아니겠는가.
본래 서울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을 즐겼다는 강씨.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한약방을 운영한 아버지 덕에 약초에 대한 기본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낮이면 들로 산으로 약초를 캐며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걸인처럼 잠드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루는 웬 장정들이 강씨를 덮쳤다. 수상한 행색의 남자가 산 이곳저곳에 출몰하니 간첩으로 오인한 동네 주민이 신고를 했던 것. 서울에서 일하던 당시의 명함과 사정을 얘기한 뒤에야 풀려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산에 들어와 간에 좋다는 약초들을 캐서 먹은 지 3개월쯤 지나자 몸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은근슬쩍 욕심이 생겨 독초에까지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초오(草烏)’라고, 옛날에 장희빈이 먹은 사약의 재료로 쓴 독초예요. 잘 쓰면 약이 되는데, 반드시 법제 과정을 거친 후 전문가와 상의해서 써야 해요.”
잘만 쓰면 명약인 독초를 어떻게 먹어야 효과가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먹으면 해가 안 되는지 스스로 먹어보며 공부를 시작한 강씨. 하루는 독초의 한 종류인 부자를 달여 맛을 봤다. 한 잔을 다 마셨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 한잔을 더 마셨더니 손발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검은콩 달인 물을 한 대접 마신 후 30분이 지나자 차츰 부작용이 사라졌고, 이것이 바로 ‘법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책에서 본 정보에 본인의 경험을 더해 작성한 그의 건강 노트는 벌써 10년째 채워졌다.
마당에 약초 100여 종
살기 위해 약초를 캐던 그는 이미 약초와 사랑에 빠진 지 오래. 2005년에는 중국 칭다오대학의 약초수업을 수료하고, 2006년에는 국내에서 약용식물관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의 나이 일흔이었지만 배움에 대한 의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산에서 캐와 마당에 심어놓은 약초의 뿌리만 100여 종에 달한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해요. 넓은 땅에 농사나 짓지 돈 안 되는 약초만 심는다고….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남들 말은 신경 안 써요.”
마당에 있는 약초 중 간에 특히 좋은 약초가 무엇이냐고 묻자 구기자, 오갈피, 두충 등 약초 이름이 술술 나온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즐겨 먹는 약초는 ‘흰민들레’라고 했다.
“우리나라 토종 흰민들레는 생으로 먹으면 제일 좋고, 겨울에는 말려놨다가 차로도 끓여 마셔요. 나물로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자식 자랑하듯 흰민들레의 효능을 줄줄 읊는 그는 약초박사가 다 됐다. 서울에서 사는 아내 이씨는 틈나는 대로 남편이 있는 시골에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처음 남편이 가족들을 남겨두고 집을 떠날 때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남편을 보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약초 덕분에 시한부의 삶을 극복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강씨는 이제 자신이 아닌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픈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약초는 제 생명과도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서 미력하나마 아픈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요.”
강규원 씨의 약초 건강밥상
■약초 한방 백숙
토종닭 백숙에서 직접 키운 엄나무와 오갈피는 빠질 수 없는 재료. 오갈피는 간과 신장의 기운을 보충해주고, 엄나무는 열을 내리고 간을 보호해준다. 엄나무는 항암작용뿐만 아니라 염증 치료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
■죽순 영양죽
토종닭 백숙. 남은 국물에 찹쌀과 직접 캔 죽순을 넣고 죽을 끓이면 또 다른 별미를 즐길 수 있다. 죽순의 칼륨 성분은 체내의 염분을 조절하고 기름을 흡수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흰민들레 겉절이
강씨가 가장 즐겨 먹는다는, 흰민들레 겉절이. 깨끗이 씻은 민들레에 다진 마늘과 양파, 고춧가루, 액젓, 검은깨, 참기름 등 각종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내면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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