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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쪽방_고시원 코리아

醉月 2008. 10. 31. 19:41

결국엔 이렇게 끔찍한 일이….”

40대 재중동포 김성주(가명)씨는 10월20일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서 벌어진 방화·살인 사건이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참극의 피해자가 재중동포여서만은 아니다. 하마터면 자신도 끔찍한 피해자가 될 뻔했다는 생각에 섬뜩하다. 고시원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한 그와 부인에게도 화마가 덮쳤던 기억이 살아나서다. 한국인이 방화해서 재중동포가 피해를 본 점까지 닮았다.

»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서울 동자동의 한 고시원. 재개발로 여기서 살던 이들은 고시원을 떠나야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이 많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3개월 전, 김씨의 방도 방화에 불타

지난 7월30일, 서울 도선동 ㅎ고시원은 불길에 휩싸였다. 누군가 고약한 냄새를 맡고 알리지 않았다면 참변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도선동보다 6일 앞서 일어난 경기 용인 고시원 방화 추정 사건으로 40분 만에 7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처럼. 당시 ㅎ고시원에 있었던 김씨의 부인은 소리에 놀라 뛰쳐나와 피해를 면했다. 화재가 발생한 오후 5시30분께, 다행히 대부분 출근한 시간이라 고시원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불을 피해 2층에서 뛰어내린 사람 등 2명만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황급히 돌아와 타버린 방을 보고 김씨의 가슴도 타버렸다. 옷가지 등은 다 타버렸고, 정신적 피해도 입었다.

역시 방화였다. 논현동 고시원처럼 고시원에 살던 이가 저지른 일이었다. 50대 양아무개씨는 이날 방세를 독촉하는 고시원 주인과 다투고 홧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여기도 30여 명 피해자 가운데 예닐곱 명이 재중동포였다. 논현동에서 숨진 이들 대부분도, 용인에서 숨진 7명 가운데 1명도 재중동포였다. 용인에선 재중동포 이철수(44)씨가 당시의 화재로 숨지고, 이씨의 동생 이철균(42)씨도 부상을 당했다. 도선동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가 14만~20만원. 저렴한 숙소를 찾던 재중동포가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동포들은 고시원 주인에게 화재의 책임이 적다는 이유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씨와 상담했던 성동주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상담팀장은 “더구나 고시원에 살던 한국인들이 재중동포를 빼고 피해보상 모임을 꾸려서 설움이 더했다”고 전했다. 고시원 원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인근의 고시원에 한 달을 ‘공짜’로 살라는 선심을 썼지만, 김씨는 고시원엔 잠시도 머물기 싫었다. 한 달치 고시원비 20만원만 받고 서둘러 다른 방을 찾았다. 아예 다른 동네로 이사가 단칸방에 사는 지금은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고시원은 이제 역설적 이름이 되었다. 고시원엔 고시생 빼고 다 있다?! 한국고시원협회는 전국에 6200여 개 고시원이 있다고 추산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7월31일~9월25일 조사를 통해 서울에만 3451개 고시원에 10만8428명이 사는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를 보면 회사원(24.1%), 무직(20.5%), 단순노무직(12.7%) 같은 숙박형 직군(57.3%)이 학생(23.3%)과 취업준비생(19.5%)을 합친 학습형 직군(42.7%)보다 많았다. 지난 7~8월 비슷한 조사를 벌였던 경기도 지역에선 숙박형 직군이 73%에 이르렀다. 고시원이 가난한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란 사실이 통계로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잇따른 화재에서 보듯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최대한 많은 방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촘촘히 나누어 사람은 많고 통로는 좁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조사를 보면, 서울의 3451개 고시원 가운데 337개에서 소방시설 문제 등이 지적됐다. 고시원의 칸막이가 대부분 석고보드(65.8%) 재질로 화재 위험이 높았고, 복도의 폭이 1m 미만인 곳이 75.9%를 차지했다. 대부분 복도 양쪽의 방문을 열면 사람이 다니기 힘들 정도다. 요컨대 미로형 구조에 벌집이다. 더구나 저렴한 고시원일수록 낙후한 건물에 들어서 안전의 ‘부익부 빈익빈’은 심화된다. 하지만 고시원은 숙박시설이 아니라 소방기준도 허술하다. 그래서 한 해 500~600개씩 우후죽순 생겨난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규제 얘기가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같은 나라 출신끼리 모여사는 곳도

고시원은 21세기 쪽방이다. 일부 ‘럭셔리한’ 고시원도 있지만 일용직 노동자, 가난한 학생, 시골 출신 젊은이, 독거노인 등 보증금을 낼 만한 형편이 못 되는 이들이 창문도 없는 한 평 남짓 고시원 ‘쪽방’에 몸을 누인다. 도심의 이면에, 건물의 안쪽에 숨겨진 쪽방인 것이다. 요즘엔 새로운 사람들도 들어온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해외동포. 이들의 ‘코리안드림’은 고시원에서 자란다.

     » 경기도 안산역 앞 고시원 밀집지역.

경기 안산시 원곡동 ‘군자시장 앞 버스 정류장’ 양쪽 100m 안에 ‘한양’ ‘월드’ 등 6개 고시원이 서 있다. 2006년 말 현재 원곡본동 거주자 3만873명 중 외국인이 9672명으로 30%를 넘어, 안산은 ‘이주민의 서울’로 불린다. 10월23일 저녁 7시께 흰색 점퍼를 입은 청년이 근처의 고시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ㅌ고시원에서 나오던 청년은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안산으로 일자리를 옮긴 그는 값싼 숙소를 찾고 있었다. 이렇게 원곡동 고시원엔 재중동포와 이주노동자가 뒤섞여 살고 있다. ㅌ고시원은 ‘다국적 고시원’이다.

여기에 사는 재중동포 이명준(35·가명)씨는 “12개 방에 재중동포, 한족, 재러동포가 고루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월세 20만원만 내면 수도세, 전기세 등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6개월만 “더 고생하면” 돌아갈 생각인 그에게 고시원은 ‘견뎌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도 “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만 켜니 더운 공기가 방을 돌고 돈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화장실과 주방이 딸린 ‘원룸’에 살려면 보증금 100만원 이상에 월세 30만원 이상을 내야 한다.

ㅌ고시원 건너편 ㅎ고시원은 ‘러시아 고시원’이다. 고시원 입구의 알림판엔 한국어 대신에 러시아어 메모가 쓰여 있다. 고시원에 들어가는 40대 재러동포 남성 정성주(가명)씨에게 물었더니 “속초에서 출발하는 러시아행 배편의 시간”이라고 일러준다. 이렇게 원곡동 고시원 입구엔 러시아어 전단지가 놓여 있고, 복도에는 중국어 경고문이 붙어 있다. 정씨는 “여긴 모두 러시아 (동포)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같은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기숙사처럼 모여사는 고시원도 있다. 모여서 외로움도 덜고 일자리 정보도 나눈다. 하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뒤섞여 살다가 문화적 차이로 갈등도 생긴다. 이주노동자단체 관계자는 “한국과 고용허가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나라가 아닌 러시아인들은 3개월짜리 여행비자로 들어와 일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그래서 1년 계약의 보증금을 내야 하는 전세방보다는 고시원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이 모여사는 고시원도 있다. 임동근 안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지난해 조사하니 원곡동만 고시원이 25개를 넘었다”며 “두어 해 사이에 빠르게 늘었다”고 전했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따라서 옮겨야 하고, 언제든 가방을 챙겨서 떠나야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고시원은 유용하다. 더구나 하루에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하고 방에선 잠만 자들 이들이 선호하는 ‘방’이다. 여기에 전세계약서 등에 익숙지 않은 신참자들의 첫 주거지로 쓰인다.

 

서울역 고시원은 노숙과의 경계선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의 고시원은 노숙의 경계에 놓인 이들의 거처다. 10월22일 쪽방촌 운동단체인 ‘동자동 사랑방’에선 4명의 남성이 억울한 심정을 어쩌지 못했다. 60대 강씨는 “여기서 밥해먹고 빨래하고 잠자고 투표하고 주민세까지 냈는데 왜 주민이 아니야”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50대 정씨는 “정말로 나까지 철거하라고 드러누울 테니까”라며 이를 악물었다. 이들이 사는 ㅇ고시원은 황량한 철거촌 가운데 덩그러니 남았다. 도시환경 정비사업에 따라 동자4구역 주민들은 대부분 집을 비웠지만, 이들은 떠나지 못했다. 이들은 “고시원 원장과 재개발 조합이 보상 문제로 갈등하는 사이에 우리는 볼모로 잡혔다”고 말했다. 이렇게 양쪽에 끼여서 기다리다 지쳐 고시원 거주자는 30여 명에서 8~9명으로 줄었다. 원장은 얼마 전 조합과 보상금에 합의하고 10월 말까지 건물을 비우기로 했다. 하지만 조합은 “고시원이 주택이 아니라 주거이전비를 일부밖에 못 준다”고 주장하고, 이들은 “법적 보상금 850만원을 달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에게 동자동은 최후의 주거지였다. ㅇ고시원에 들어오기 전 60대 강씨와 30대 박씨는 노숙을 경험했다. 박씨는 “서울역에서 사는데 짐을 맡기는 보관함을 두 개씩 쓰니까 하루에 2천원씩 한 달에 6만원이 들어서 차라리 13만원짜리 고시원이 낫겠다 싶었다”고 돌이켰다. 강씨도 처음에 노숙인 지원단체의 후원으로 고시원에 들어왔다. 이렇게 ㅇ고시원 거주자의 80% 이상이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였다. 38만여원 정부 보조금 가운데 15만원 월세를 빼니 강씨는 “고시원 주방에서 국수만 끓여먹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시원에서 살다가 나간 사람을 만났는데, 하루 8천원씩 여인숙 방세 내고 밥 사먹으니까 못 살겠다고 하더라”며 “주거이전비를 제대로 받아야 방이라도 얻는다”고 호소했다. 더구나 심근경색으로 고생하는 50대 정씨처럼 병으로 노동능력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지난 8월 말, 동자4구역 ㅇ고시원 옆 돌담 그늘에 마른 사내가 앉아 있었다. 윤석민(38·가명)씨는 “바깥은 늦여름이지만 방 안은 한여름”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는 ㅇ고시원 안이 너무 더워 밖에 나온 것이다. 그는 “밤에도 선풍기를 켜면 더운 바람이 나온다”며 “견디다 못해 새벽엔 아예 종이박스를 구해 길에서 잔다”고 말했다. 검은 얼굴의 그는 결핵에 간경화가 겹쳤다고 했다. 그는 “용산의 병원에 오래 다녔는데 이 동네를 떠나면 보건소에 진단서를 다시 제출하고 깐깐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인근에 살아야 할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2006년 8월8일”, 동자동에 들어온 날짜를 또렷이 기억했던 그도 바라던 보상을 다 받지 못하고 고시원을 떠났다. 15만원 이상인 인근의 쪽방도 고시원보다 비싸서 가지 못한다던 그였다.

 

» 서울 동자동 4구역 주민과 빈민단체 활동가들이 용산구청 앞에서 주거이전비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그렇게라도 살아보려는 이들 지원해야”

당시 그가 안내해 들어간 고시원 복도는 2층인데도 어둑했고, 방은 후끈했다. 바닥엔 얼룩이 가득했고, 천장에 거미줄이 가득했다. 한낮에 배를 내놓고 자는 이들도 문틈으로 여기저기 보였다. 윤씨가 “0.7평”이라고 하는 방엔 누렇게 변색된 담요만 놓여 있었다. 그는 “바퀴약을 아무리 뿌려도 금방 옆방에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와 말을 나누는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나도 환자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빨리 보상을 받아서 나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두어 달이 지난 지금 그들은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10월의 동자동 사랑방, 고시원 환경을 묻자 다들 헛웃음을 쳤다. 박씨는 “이불에서 인분 냄새가 지독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어느 날 방에 들어오니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며 “누가 물을 뿌렸냐고 소리를 쳤는데, 다시 보니 벽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컵라면 용기로 받았다고 한다. 이동현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활동가는 “무보증 월세에 교통이 편하고 복지기관이 가까워 쪽방촌·고시원 주민들이 역세권을 떠나지 못한다”며 “미국의 단신가구용 임대주택(SRO)처럼 이들을 위한 주택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성북구 지역주거공동체단체 ‘나눔과 미래’의 남철관 대표는 “그래도 고시원 거주자는 일용노동 등을 하면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시원, 독서실 등 비주거용 건물이나 여인숙, 여관 등 숙박업소에 사는 이들을 ‘불안정 주거층’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인구조사에도 잡히지 않는다.

참, 앞으로 다국적 고시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숙식비를 사업주와 노동자에 ‘사이좋게’ 분담시키자는 정부안이 나온 탓이다. 지금은 관행상 회사가 숙식비를 부담하기 때문에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마저 ‘유료’가 된다면 고시원 거주자는 늘어날 것이다. 9월25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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