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호젓한 동해 "양양"

醉月 2020. 9. 10. 17:36
 


구릉에 자리잡은 ‘팜 일레븐’

풍광 즐기며 안식하기에 제격


진전사 초입 국보 ‘삼층석탑’

기단·몸돌 사방으로 둘러가며

천인·불상 등 돋을새김 눈길


양양 코앞 ‘속초 상도문마을’

정감 넘치는 돌담·민박 많아


쌍천 물줄기 낀 마을언덕 숲엔

솔향 가득 200년 된 소나무들

‘속초 8경’ 학무정 정취도 물씬



▲ 홍천에서 구룡령을 넘으면 양양 갈천리다. 갈천리에는 갈천약수가 있는데 약수터로 가는 1㎞가 채 안 되는 숲길이 이처럼 청량하다.


한때 속초를 일개 ‘리(里)’로 거느렸을 정도로 위세를 자랑하던 강원 양양(襄陽). 과거 강원도는 강양도, 혹은 양원도라고도 불렸습니다. 강양도는 강릉과 양양, 양원도는 양양과 원주의 첫 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두 이름 모두에서 빠지지 않았을 정도로 양양은 강원지역의 명실상부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양양은 변방입니다. 이웃한 속초와 강릉에 비하면 더 그렇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속초와 강릉과는 달리 양양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별다를 게 없습니다.

서핑의 명소로 떠올랐다고는 합니다만, 시즌에만 반짝할 뿐입니다. 한철에만 반짝하는 건 가을 송이버섯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지의 다양성도, 공간의 확장성도 없습니다. 발길이 자주 닿지 않은 만큼, 양양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들이 있습니다. 양양에서 조심스럽게 여행을 다시 시작할 때쯤 가볼 만한 호젓한 ‘거리 두기’ 목적지를 찾아봤습니다.


#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을 배우는 자리

강원 양양에 관광농원 ‘팜 일레븐(Farm 11)’이 있다. 경량 철골구조로 지은 펜션 겸 베이커리 카페다. 들어선 자리는 의표를 찌른다. 양양 땅에 있으면서 바다에는 전혀 기대지 않는다. 그렇다고 깊은 산중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다와 등 돌리고 앉은 ‘깊은 산중을 바라보는 언덕’에 있다. 낮고 편안하며 그래스류의 식물을 심은 정원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팜 일레븐은 ‘팜스테이’라고 부르는 독립건물 숙소 3동과 베이커리 카페 겸 커뮤니티센터, 온실스타일로 지은 민트색 가든 숍 등으로 이뤄져 있다. 유리온실 스타일의 민트색 가든 숍 건물을 빼면 다른 건물들은 모두 낮고, 단색이며 구조도 단순하다. 건축물의 단순한 선과 구조는 주변의 자연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그렇다. 팜 일레븐의 주인공은 건물이 아니라 자연이다.

베이커리 카페 팜 일레븐은 빵맛으로도 이름났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미덕은 ‘경관을 보는 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팜 일레븐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카페 테라스에서 보는 자연이다. 구릉의 비탈면 한쪽을 잘라 만든 자리는 거칠 것 없는 전망을 보여준다. 팜 일레븐은 ‘밖’을 보는 곳이다. 경사면의 언덕을 뒤로 두고 있어 방향은 명확하다. 점봉산과 방태산 일대의 자연경관을 스크린처럼 걸어두었다. 당연히 모든 시선이 스크린 쪽으로 향한다. 극장처럼 말이다.

팜 일레븐 테라스에 앉아 저 멀리 내륙의 초록 능선들이 겹겹이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이 주는 위안’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런데 사실 주변 경관을 하나하나 뜯어본다면 특별할 게 없다. 이렇다 할 근사한 경관이나 포인트가 될 만한 곳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풍경이 마음을 당긴다. 좋긴 한데 ‘왜 좋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심심하기 짝이 없는 무덤덤한 풍경들이 마치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져 있는데, 그게 참으로 근사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니었다면, 새삼 여행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자연을 보는 여행자의 눈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이런 공간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 코로나19가 띄운 ‘나만 아는’ 곳

▲ 양양의 유일한 국보인 진전사지 삼층석탑.


팜 일레븐은 지난해 11월 1일 문을 열었으니 아직 1년이 채 안 됐다. 팜 일레븐의 농장주 최길순(60) 씨에게 묻고 싶었던 첫 번째 질문은 ‘일레븐’, 그러니까 ‘11’이란 이름의 내력이었다. 삼성전자에서 마케팅과 기획 업무를 맡아 25년을 일했던 그는 2013년 사표를 낸 뒤 이듬해인 2014년 지금의 팜 일레븐이 들어선 땅을 계약했다. 부지면적은 대략 1만3400여 평. ‘11ac(에이커)’쯤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땅을 좀 더 샀지만 처음 샀던 땅의 면적 ‘11에이커’가 ‘팜 일레븐’이란 이름이 됐다.

평소 등산과 캠핑을 즐기던 최 씨가 은퇴를 택한 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의 설명이 이렇다. “생애를 100년으로 쳐서 25년씩 4개의 단계로 나눠 살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25년은 개인적 성장을 위해, 25년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25년은 본인이 원하는 삶을 위해, 그리고 남은 25년은 ‘베풂과 나눔’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은퇴 후 그는 세 번째 25년의 단계,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의 실현을 위해 이 땅을 찾았다. 유럽 출장길에서 틈만 나면 찾아가 보았던 관광 농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가 원했던 건 손수 농사를 지어 재배한 작물을 먹거리로 가공해 농장을 찾는 이들과 나누며 소통하는 삶이었다.

두 번째 질문. 양양에서는 바다가 우선인데 어떻게 이런 산중의 자리를 골랐을까. 강릉 출신인 그는 퇴직을 앞두고 틈만 나면 텐트를 차 트렁크에 싣고 동해안 일대의 땅을 이 잡듯이 뒤졌다. ‘바다의 낭만’은 이미 포화상태. 그는 바다에 등을 지고 산이 바라다보이는 자리로 들어갔다. 바닷가에서 산을 택한 건 오랜 기획업무의 경험으로 내린 사업적 판단이었고, 어쩌면 밋밋하다 싶은 경관을 가진 지금의 자리를 망설임 없이 택했던 건 남다른 안목의 힘이었다.

소박하게 시작한 팜 일레븐은 지금 양양에서 가장 ‘핫’한 명소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주목한 건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대단위 관광지에서 벗어나 ‘거리 두기’의 고즈넉한 공간을 찾던 이들은 여기를 ‘나만 아는’ 명소로 삼았다. 손님이 늘면 시설을 확장하고 영업시간을 늘리는 게 보통이지만, 팜 일레븐은 평일은 아예 카페 문을 닫고 금·토·일 3일 동안만 문을 연다.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꿈꾸던 삶을 위해 은퇴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공간을 늘리고 시간을 뺏기기 시작하면 ‘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의 인기는 ‘코로나19 효과’로 인한 거품이라는 게 최 씨의 판단이다. 최 씨는 “코로나19가 진정돼서 손님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손님이 많다고 해봐야 대중적인 관광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젓하지만, 최 씨는 팜 일레븐을 방문하는 가장 좋은 때를 ‘일요일 오후 4시 30분’이라고 했다. 오후의 햇볕도 좋고, 그때가 가장 고즈넉할 때라는 얘기다. 계절 중에서는 온 산천이 연두색으로 물드는 봄을 최고로 쳤다. 이듬해 봄이면 우리는 마음 편히 그곳에 가볼 수 있을까. 혹독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신록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삼척 초곡항, 강릉 심곡항과 함께 강원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강원 양양 남애항에 세워진 스카이워크. 투명유리 바닥의 스카이워크에서 기암을 내려다볼 수 있다.


# 보물찾기 하듯 즐기는 마을 산책

▲ 팜 일레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촬영 포인트인 온실스타일로 지은 가든 숍.


여기는 속초다. 양양 땅은 아니지만 설악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쌍천의 물길을 가운데 두고 양양과 마주 보고 있다. 양양과 가장 가까운 속초의 남쪽. 바로 설악동 입구 속초 상도문마을이다. 상도문은 ‘윗(上)도문’이란 뜻인데, ‘도문(道門)’은 도(道)로 들어가는 문(門)이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설악산을 향해 가다 이 마을에 이르러 도통의 문이 열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란 얘기도 있고, 수도자들이 도를 닦으러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란 얘기도 있다. 양양의 강선리에 내려온 신선이 여기서 설악산 가는 ‘길(道)을 물었다(問)’고 해서 도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도 있다.

상도문마을은 속초에서도 숨겨져 있다시피 한 마을이다. 구불구불 돌담이 이어진 마을에는 한옥이 많다. 고풍스러운 정통 한옥도 있지만, 대부분 1980년대쯤의 이른바 ‘민박 한옥’들인데, 담장 높은 대갓집 한옥보다 이게 더 편안하고 정감이 넘친다. 상도문마을에는 민박집만 서른 곳에 이른다. 과거 설악산을 찾던 관광객들이 적잖이 찾아들었지만 속초 일대에 우후죽순처럼 콘도와 호텔이 들어선 이후에는 민박 손님은 격감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음에도 마을이 공동화되거나 쇠락하지 않은 건,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마을인 데다 청정한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 속초 상도문마을 돌담에 새긴 ‘구곡가’. 구곡가는 주변의 아홉 경치를 노래한 시다.


쌍천의 물줄기를 끼고 있는 마을 언덕의 솔숲 속에는 정자 학무정(鶴舞亭)이 있다. 정자는 이 마을 출신인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매곡 오윤환이 제자와 함께 1934년 지었다. 작고 소박하지만 이래 봬도 ‘속초 8경’ 중 하나다. 매곡은 상도문마을 주변 쌍천의 명소 아홉 곳에 이름을 붙이고 구곡가(九曲歌)를 지었다. 구곡가는 마을 돌담에 수놓듯 새겨져 있는데, 9곡 중 제2곡이 여기 학무정이다.

상도문마을에 이즈음 다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지고 있는 건, 마을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이 마을 곳곳에 조형물을 설치하면서부터다. 자갈에 정성껏 참새를 그려 담장에 나란히 올려놓았고, 수박 크기의 돌에 고양이와 강아지를 그려 넣었으며, 돌담 위에 정크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공중전화 부스 혹은 버스정류장 형태의 공간에 스피커를 놓고 휴대전화를 연결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놓은 공간. 여기서는 음악을 들으며 나무 창틀을 액자 삼아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은 돌담을 거닐며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작은 재미로 가득하다.


# 도의선사가 북쪽으로 간 까닭은?

양양을 대표하는 명소 순위의 맨 앞에 서는 건 유서 깊은 바닷가 절집, 낙산사다. 낙산사야 일찌감치 경계를 넘어 전국적 명승의 반열에 오른 곳이니 새삼 이야기를 보탤 필요가 없는 곳. 호젓했던 암자 휴휴암도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지면서 탁 트인 바다 전망과 해안가의 기암, 바다에 새카맣게 몰려드는 황어떼들로 근래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진 명소다. 평소라면 빼놓을 수 없었을 테지만, 수도권발 코로나19 확산 진정 이후에 ‘조심스럽게 시작돼야 할 여행’에는 아무래도 맞지 않는 곳이다.

대신 ‘거리 두기’의 시대에 맞는 한적한 절집 혹은 오래된 절터를 찾아가 보자. 절집은 오래전에 허물어지고 없으나 불법이 짙고 뚜렷하게 지나간 자리다. 설악산 아래 둔전계곡이 있다. 대청봉의 동쪽 자락을 타고 흘러내려 설악저수지에 담겼다가 동해에 이르는 물길이 둔전계곡이다. 둔전계곡에는 옛 절집 터에 들어선 사찰 진전사가 있다. 진전사 터는 통일신라 때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 제1문인 ‘가지산문’의 도의선사가 은거하며 수도에 전념했던 곳이다.

▲ 상도문마을 곳곳에는 돌에 그린 동물 그림이 있는데 그걸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의선사는 ‘유학파’였다. 당나라에서 자그마치 37년 동안 불법을 공부했으니 신라로 돌아온 그의 꿈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지만 신도들은 그를 외면했다. 당시 신라 불교에는 불교 경전을 앞세우는 ‘교종(敎宗)’이 득세하고 있었다.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온 건 선종(禪宗)이었다. ‘경전을 바탕으로 한 교리해설’이 주가 되는 것이 교종의 설법이라면, ‘글을 몰라 불경을 읽지 못한대도, 본연의 품성을 잘 들여다보고 수행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선종이었다. ‘왕이 곧 부처요, 귀족은 보살이고, 대중은 중생’이라는 엄격한 왕권불교 국가에서 글씨를 못 읽는 대중도 능히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도의선사의 설법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선종은 지배계급에 의해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으로 간주됐다. 도의선사가 서라벌을 등지고 멀고 먼 양양 땅까지 온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었다. ‘도의선사가 북쪽으로 간 까닭’이 이렇다. 그때 진전사가 있는 둔전계곡은 얼마나 멀고 깊은 오지였을까. 그곳에 가면 변혁의 시대를 살다가 돌아섰던 한 선각자의 사무쳤을 외로움과 곧은 마음을 느껴볼 일이다.


# 느릿느릿 구룡령을 넘어가는 길

진전사 옛터에 다시 들어선 절집은 2005년 복원 불사로 지은 진전사다. 새 절의 법당 한쪽 구릉에 도의선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다. 우리 불교사 최초의 부도다. 부도는 보물로 지정됐다. 도의선사 이야기를 하느라 뒤로 밀렸지만, 진전사지에는 양양이 가진 유일한 국보도 있다. 진전사지 초입에 단단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석탑의 균형도 나무랄 데 없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탑의 기단과 몸돌에 새겨놓은 조각이다. 탑을 돌아가며 아래부터 위까지 천인(天人)과 팔부중상, 불상 등이 차례로 돋을새김돼 있다.

진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선종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대표적인 폐사지가 바로 양양 미천골 계곡 옆의 선림원지다. 선림원은 본래 화엄종에서 세운 사찰이었지만, 후에 선종사찰로 전향했다. 1100여 년 전쯤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절터 전체가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절터에는 1965년 복원한 삼층석탑과 석등, 부도비, 부도 등 4개의 보물이 있다. 삼층석탑은 온화한 느낌이고, 부도비는 용과 구름의 문양으로 화려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미천골 휴양림 운영은 중단됐지만, 휴양림 입구에서 선림원지까지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휴양림 운영이 중단되면서 선림원지 일대에는 인적이 없다.

선림원지를 들르기로 했다면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인제∼양양터널 대신 구룡령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56번 국도를 택하는 것이 낫겠다. 고속도로 개통 이후 구룡령길에는 차량이 더 줄어 길이 텅 비다시피 했다. 그 덕분에 유유자적 드라이브하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구룡령 넘는 길은 서울∼양양고속도로 내촌IC에서 내려서 내촌천의 물길을 따라가다가 56번 국도로 올라서는 게 가장 쉽고 간명하다. 미리 인제IC로 나와 상남면 소재지를 지나 내린천을 끼고 달리다가 원당삼거리에서 좌회전해 56번 국도로 구룡령을 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길을 택하면 지방도로 옆의 내린천 물길을 따라 살둔계곡 등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 굽이굽이 구룡령 옛길

구룡령은 강원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 가파르고 험한 길이 용이 구불구불 기어오르는 모습과 같다 해서 구룡(九龍)이란 이름이 붙었다. 구룡령 길은 동해안으로 가는 좀 더 빠른 고갯길이 놓이면서, 터널이 뚫리면서,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더없이 한적해져 뒤로 물러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