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해발 980m 굽이치는 고갯길… 평창 깨우는 ‘찰나의 운해’ 만나다

醉月 2023. 7. 28. 08:53

강원 횡성에서 양구두미재를 넘어 내려오는 길에 만난 운해. 저 아래 운해로 뒤덮인 곳은 휘닉스 평창이 있는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와 무이리 일대다. 왼쪽에 보이는 길이 태기산을 넘어온 옛 6번 국도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무계획으로 떠나도 완벽한 여름 휴가지 평창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양구두미재’
횡성서 평창으로 넘어가는 태기산의 옛 6번 국도길
계절 가리지 않고 운무 끼는 날 많아 구름바다 장관

무더위 잊을 경이로운 ‘자연 속 힐링’
작년 개방 ‘광천선굴’ 평탄해 유모차도 편안한 관람
방아다리 전나무 숲·천년주목숲길은 산책하기 좋아


평창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계획 없이 떠나도 좋은 곳

강원 평창은 내로라하는 여름 휴가지다. 청량한 숲의 서늘한 기운이 있고, 깊은 계곡의 차고 맑은 물이 있으며, 사행하며 굽이치는 근사한 강도 있다. 여름휴가철에 평창이라면 아무 계획 없이 ‘떠나고 봐도’ 좋다. 휴가 기간에 무얼 할 것인지는 가서 찾아도 되니까. 평창에는 여름휴가에 즐길 만한 거의 모든 것이 있다. 딱 하나, 바다가 없지만 강릉까지도 금방이다.

가서 뭘 하든 상관없이 휴가차 평창에 가는 길이라면 넘어 보길 권하는 고개가 있다. 강원 횡성과 평창의 경계에 우리나라에서 99번째로 높은 태기산(1261m)이 있다. 그 자락을 타고 넘는 고개가 ‘양구두미재’다. 옛 6번 국도인 경강로가 이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간다. 경강로는 태기산을 넘는 유일한 길이다. 새로 놓인 6번 국도는 태기산 터널로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란히 가는 영동고속도로도 태기산을 비껴 청태산의 밑동을 터널로 지나간다.

다들 국도와 고속도로로 빠르게 가버리니 양구두미재를 넘는 옛 국도길은 한적하다. 속도와 효율을 잃는 대신 이 길이 얻은 건 경관과 여유다. 휴가를 떠나며 얻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여유 아니던가. 그렇다면 옛길로 쉬엄쉬엄 양구두미재를 넘는 건 여름휴가 여행과 가장 어울리는 일이겠다.

이쯤에서 살짝 농담 같은 이야기. 양구두미라는 고개 이름은 헷갈리기 짝이 없다. ‘전국에서 가장 헷갈리는 지명’을 꼽는다면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싶다. 양구두미라는 이름에서 ‘양의 머리(양두·羊頭)’에 ‘개의 꼬리(구미·狗尾)’를 뜻하는 사자성어 ‘양두구미’가 떠올라서 그런 듯하다. ‘양구두미와 양두구미’. 어떤가, 써놓고 봐도 뭐가 맞는지 헷갈리지 않는가.

# 구름의 바다, 운해를 만나다

고개 이름인 양구두미는 무슨 뜻일까. 양구는 ‘쌍 양(兩)’에 ‘비둘기 구(鳩)’ 자를 쓴다. ‘두 마리의 비둘기’란 뜻인데 유래는 이렇다.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에 용한 지관을 불러 이 고갯마루에 아버지의 묘를 쓴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가난뱅이 신세를 못 면하자 이장(移葬)을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땅속에서 두 마리 황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가 버렸단다. 그 뒤부터 ‘두 마리 비둘기가 날아간 더미’라고 해서 ‘양구(兩鳩)데미’라 불렀는데, 나중에 그게 양구두미가 됐다는 얘기.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요행이나 풍수에 기대지 말라는 교훈일까. 이야기를 하다 만 것처럼 딱 부러지는 결말이 없다.

양구두미재 넘기를 권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횡성에서 이 고개를 넘어 평창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높은 확률로 근사한 운해(雲海)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무가 밀려오면 봉평면 면온리와 용평면 장평리 일대 마을이 넘실거리는 구름바다가 된다. 운무는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자주 끼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도 운무가 끼는 날이 있다. 보기 쉽잖아서 그렇지, 운해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여행 가서 별 보기’보다 훨씬 더 근사한 볼거리다.

운해를 볼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발고도가 높은 곳으로 갈 것. 다른 하나는 되도록 이른 새벽에 가볼 것. 양구두미재의 해발고도는 980m에 달한다. 우리나라 고갯길 중 높이 순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여름휴가 피크 시즌이면 영동고속도로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진다. 정체를 피하려면 차가 적은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는 수밖에 없다. 새벽에 길을 나선 김에 양구두미재를 넘자는 얘기다.

이른 아침을 겨눠 양구두미재를 넘는다고 해도 사실 운해를 보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렇더라도 푸른 새벽에 서늘한 고갯마루를 오르면 첩첩한 산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 길을 간 보람은 충분하다.

 지난해 11월 개방한 광천선굴의 하이라이트 구간. 조명을 밝혀 놓은 좁은 바위틈 사이로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동굴생성물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 광천선굴, 가장 편안한 동굴 관람

평창의 동굴도 훌륭한 피서지다. 평창은 석회암 지대라 동굴이 많다. 확인된 석회 동굴만 자그마치 116개에 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방된 곳은 2개뿐. 하나가 미탄면의 백룡동굴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개방한 대화면의 광천선굴이다.

평창의 동굴 중 환경적 가치나 아름다움을 겨룬다면 손들어 주는 쪽은 단연 미탄면의 백룡동굴이다. 백룡동굴은 1976년 동네 주민 정무룡 씨가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반은 맞고 반쯤은 틀린 얘기다. 동굴이 거기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알고 있었다. 정 씨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동굴의 좁은 구멍을 넓히고 들어가서 안쪽에 훨씬 더 크고 긴 동굴을 발견했던 것이다.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룡동굴은 조명이나 계단 등 인공 시설을 최소화하고 한정된 인원만 받는 생태체험 방식으로 지난 2010년 일반에 개방했다. 헤드램프와 탐사복, 장화 등을 신고 들어가는 동굴은 관광이라기보다는 탐험에 가깝다. 특히 좁은 병목 구간의 ‘개구멍’을 통과하려면 기다시피 해서 들어가야 한다. 다른 동굴 관람보다 체력 소모가 많다.

동굴의 생태와 환경에 관심 있다면 백룡동굴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지만, 고령자나 어린아이가 낀 가족 여행이라면 적합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개방한 대화면의 석회암 자연 동굴인 광천선굴을 ‘어드벤처 테마파크’라 부른다. 테마파크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광천선굴은 대중적 관광지 개발 차원에서 개방한 동굴이다. 대부분 동굴 관광지는 좁은 동굴 통로를 따라 줄을 서서 걷거나 긴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관람해야 하는데 광천선굴은 동굴 폭이 넓고 높은 데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수평형 동굴이어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특히 관람 구간의 바닥을 평탄화해서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쉽게 들어갈 수 있다. 계단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몇 개의 계단에도 친절하게 경사로를 설치해 놓았다. 동굴 곳곳에 연출 조명을 밝혀 놓았고, 여기저기 조형물도 설치했다.

광천선굴이 있는 마을 이름이 ‘광천(廣川)’이다. 넓은 하천이 있다는 뜻이다. 본래 ‘너브내’라고 불렸는데, 한자로 표기되면서 광천이 됐다. 동굴은 본래 ‘광천굴’이었다가 ‘신선이 동굴 속에서 도를 닦았다’는 이야기가 겹쳐져 ‘광천선굴(廣川仙窟)’이 됐다. 동굴 입구에 누군가 써놓은 글씨가 있었다는데 글씨는 오래전에 지워지고 없다.

마을과 가까운 평지에 있는 광천선굴은 접근이 쉬운 데다 동굴 내부가 넓어서 수백 년 전부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호기심 많은 이들은 횃불을 들고 동굴을 탐방해 그 기록을 체험기나 시의 형태로 남겼다.

조선 선조의 부마이자 문신 신익성이 1631년 펴낸 시문집 ‘낙전당집’에 그 이야기가 있다. “대화역 옆에 석굴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점점 높아지고 넓어져 몇 리를 가도 끝나지 않는다. …불을 가져다 비추어 보면 바위틈이 아주 기이하여 뭐라 형용할 수 없다.”

# 기이하고 화려한 동굴생성물

그리고 30년쯤 지난 뒤에 미수 허목이 동굴을 찾아왔다. 허목의 ‘척주지’에 그 기록이 있다. “큰 횃불을 앞뒤에서 연이어 들고 그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돌은 기괴한 모양이 많아 어떤 것은 꿈틀대는 이무기 같은 것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동굴을 테마파크로 만들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훼손을 감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광천선굴의 생태적 가치가 높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다. 광천선굴에는 동굴생성물이 많지 않고, 크기도 작은 편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니 훼손도 피할 수 없었으리라. 자연 동굴이 아니라 탄광의 갱도처럼 느껴지는 공간도 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 구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850m 길이의 동굴 3분의 2지점쯤의 곁가지 굴 안쪽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동굴생성물이 가득하다. 조명을 받은 종유관과 석순, 유석, 휴석소, 커튼 등의 동굴생성물이 마치 고풍스러운 중세 인테리어 장식처럼 화려하다. 여느 이름난 동굴과 비교한다 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동굴에는 다랑이 논 형상의 휴석소가 있는데 동굴의 물속에서만 발견된다는 아시아동굴옆새우가 산단다. 척박하고 어두운 동굴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해 색소가 없고 눈이 퇴화한 생물이라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당최 볼 수가 없다.

옛사람들이 동굴을 드나들었다고는 하지만, 여기까지는 들어올 수 없었으리라.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아들 이민구가 ‘동주집’에 남긴 글이다. “태화굴(광천선굴)에는 신령한 자취가 매우 많다. 다만 어둡고 음침하여 기를 손상하니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그때는 그랬을지 모르나 지금은 많이 어둡지도, 음침하지도 않다. 게다가 동굴 안은 한여름에도 15도 남짓이라 동굴 밖의 폭염을 금세 잊을 수 있다.

 전나무 숲속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릿지의 숙소 ‘힐링스테이’. 승효상이 설계했다.



# 전나무숲과 건축의 만남

평창에서 또 한 곳 추천하는 곳이 방아다리약수다. 방아다리약수는 평창을 대표하는 ‘명수(名水)’가 나는 약수다. 방아다리약수의 명성을 짐작게 하는 건 바로 아래 가리골 계곡에 있는 ‘신약수’다. 신약수에서 ‘신(新)’은 ‘방아다리약수 말고 새로운 약수’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방아다리약수와 구분 짓는 것으로 이름을 삼았다는 건, 평창에서 ‘약수’라 하면 다 방아다리약수를 떠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아다리약수는 약수 때문에 가는 곳이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진짜다. 방아다리약수에서 보게 되는 건 청량한 전나무숲과 맑은 공기, 그리고 세련된 건축이다.

방아다리약수에는 학교법인 대제학원의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릿지’가 들어서 있다. 나무 한 그루 건드리지 않고 전나무 숲속에 미술관과 카페, 숙소, 레스토랑 등을 들여놓은 독특한 공간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은 건축가 승효상의 솜씨다. 국립공원의 입장료는 폐지됐지만 방아다리약수는 입장료를 받는다. 약수만 남겨놓고 주변 일대의 전나무숲이 개인 사유림이기 때문이다. 울울창창한 전나무숲은 독림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김익로(1993년 작고) 선생이 손수 가꾼 것이다. 평양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거상의 일곱 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해방 전에 월남한 뒤 강제징용을 피해 이곳 방아다리약수에 은신했다. 해방과 6·25전쟁으로 혼돈의 와중에 주위의 나무가 마구 베어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그는 방아다리약수 일대의 땅 1000만여㎡를 사들여서 나무를 심었다.

 왼쪽이 방아다리약수. 오른쪽은 용신을 모시는 용신당이다.



# 자연 앞에서 감격해보기

1959년 사라호 태풍은 그에게 결정적 기회였다. 산림녹화가 국정과제였던 시절, 정부로부터 벌채 허가를 받는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사망 및 실종자만 849명이 발생한 사라호 태풍 직후, 정부는 피해 지역에서 쓰러진 나무를 가져다 팔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아다리약수 주변 숲의 벌채 허가를 내줬다. 김 선생은 이때 쓰러진 나무를 내다 팔아 큰돈을 벌었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는 다시 산을 사들였고, 나무를 심었다. 전국 곳곳에서 이렇게 사들인 산을 생전에 단 한 평도 팔지 않았다. 그는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빠져 있던 방아다리약수를 국립공원에 편입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갖가지 규제가 뒤따르고 재산권 행사에도 제한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는 ‘약수 주변의 나무를 몰래 베어 가는 이들로부터 나무를 지켜 달라’며 국립공원 편입을 요청했다. 밀브릿지는 그렇게 지켜낸 숲에 들어섰다.

밀브릿지에는 숙소 ‘힐링 스테이’가 있다. 숙소에 묵으면서 삼림욕과 전나무길 산책, 숲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다. 초록의 숲 한가운데 들어서 있어 청량한 데다 2·3·4인용 방을 다 합쳐도 14개가 전부여서 여느 리조트나 호텔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말 그대로 자연 속에서의 힐링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꼭 묵어가지 않아도 좋다. 밀브릿지 주변의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들숨으로 초록의 기운을 한껏 담아갈 수 있다. 온 산이 다 황폐했던 시절에 신념 하나만으로 나무를 심어 이렇듯 거대한 전나무숲을 일궈낸 한 사람의 노고에 대한 감동도 숲을 걸으며 느낄 수 있다. 밀브릿지 주변을 크게 돌아 입구 쪽으로 나오는 산책로 3코스를 추천한다. 밀브릿지 입구 쪽의 나무 덱에는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누울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있다. 산책로 곳곳에 멈춰 서서 세워 놓은 시를 읽는 재미도 제법이다.

 모나 용평리조트의 ‘천년주목숲길’ 구간. 리조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발왕산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지 숲길에 놓은 근사한 산책로다.



# 늙은 나무가 삶을 은유하다

평창에서 나무를 보러 가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모나 용평리조트의 ‘천년주목숲길’이다. 천년주목숲길은 용평리조트에서 관광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발왕산 정상에 있다. 발왕산은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높은 산. 정상에 서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공중에 떠 있는 캔틸레버 구조물로 지어진 발왕산 기(氣) 스카이워크가 눈길을 붙잡는다. 스카이워크에서 보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전망도 훌륭하지만, 스카이워크 자체의 조형미도 빼어나서 저절로 발길이 간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와 200m쯤 걸으면 해발 1458m의 발왕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평창 평화봉’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가 천년주목숲길의 출발 지점이다.

천년주목숲길은 구간 대부분이 계단이 없는 무장애 나무 덱 길이다. 발왕산 정상부 주목 군락을 둘러보는 길인데 전체 거리가 3.2㎞ 남짓이어서 다 걷는 데 1시간쯤 걸린다. 발왕산 정상 주변에서 자라는 주목은 크고 나이도 많다. 1997년 산림청이 이곳의 주목 260그루를 보호수로 지정했을 정도다. 다만 안내판에 적어둔 ‘최고 1800년’이란 수령은 과학적 측정이 아니라 나무 두께와 서식 환경으로만 추산한 것이라 과장이 섞인 듯하다.

천년주목숲길의 나무에는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이름이 붙여져 있다. 속이 텅 빈 채 살아남은 주목은 가진 것을 다 비웠다고 해서 ‘철학의 나무’고, 고통스러운 듯 가지를 뒤틀며 자라는 주목은 ‘고뇌의 주목’이다. 가지 하나가 숫자 8자를 닮은 주목은 ‘8자 주목’이고 서울대 정문의 조형물과 닮은 건 ‘서울대 나무’다. 다소 장난스럽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나무를 통해 삶을 은유하는 스토리텔링이 나무를 보는 시선을 바꿔준다.

천년주목숲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유목’이 특히 그렇다. 마유목은 나무 종류가 아니라 ‘어미 마(마)’ 자에 ‘오직 유(唯)’ 자 ‘나무 목(木)’ 자를 써서 작명한 이름이다. 이 나무는 야광나무와 마가목이 기묘하게 붙어서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자란다. 속이 비어가던 야광나무의 품속에서 50년 전쯤 마가목이 싹을 틔웠는데, 마가목이 자라서 보답이라도 하듯 몸을 빌려준 야광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천년주목숲길의 스토리텔링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건 ‘태도’와 ‘관계’다.



■ 태기산의 풍력발전단지

양구두미재를 넘어가는 태기산에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포스코건설과 일본의 풍력개발회사 유러스에너지 재팬의 합작 투자로 조성한 곳이다. 능선을 따라 20개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기둥 높이만 80m, 날개의 한쪽 길이가 40m다. 풍력발전을 한다는 건 이곳이 ‘바람의 통로’이기 때문. 양구두미재에서 태기산 정상까지 풍력단지를 건설하면서 포장도로를 놓았다. 거리는 4㎞ 남짓. 근사한 전망을 즐기고,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