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핀란드 북극권에서 만난 '오로라'

醉月 2016. 1. 27. 20:36

영하 40도의 추위에도 얼어붙지 않은 저수지의 눈 쌓인 침엽수림 뒤로 오로라가 나타났다. 오로라는 처음에는 회색 구름 띠처럼 보이다가 전선을 연결한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혹은 막 그은 성냥처럼 초록으로 불붙어 타들어 가며 너울거렸다.


여행자들을 사로잡는 강력한 판타지 중의 하나가 바로 북극권의 하늘을 초록과 붉은빛으로 물들이며 일렁이는 ‘오로라’일 겁니다. 눈 덮인 침엽수림이 가득한 평원 저 너머의 차가운 하늘을 물들이며 머리 위로 지나가는 오로라야말로 여행자들이 꿈꾸는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오로라를 만나러 핀란드 북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진짜 ‘북극 한파’의 땅. 이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 혹한의 땅에서 나흘 동안 머물며 만났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앞에서 서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오로라는 절대로 혼자 보는 게 아니란 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오로라의 경험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입니다.

▲ 당당한 뿔을 가진 순록이 썰매를 끌고 있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도 순록은 흰 입김을 내뿜으며 힘차게 썰매를 끌었다.

# 동토의 땅으로 오로라를 만나러 가다

영하 31.4도.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서 출발한 핀에어 AY559편이 키틸라 공항의 얼어붙은 활주로에 착륙했다. 키틸라는 핀란드 북극권(圈)에서 170㎞ 더 북쪽으로 올라간 지역의 소도시. 인구 6000명의 이 도시에 핀란드에서 가장 큰 스키리조트가 있는 마을 ‘레비’가 있다. 거기가 여정의 목적지였다.

비행기가 키틸라 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오후 7시 15분. 북극권의 짧은 겨울 해는 이미 다섯 시간 전쯤에 지고 난 뒤였다. 겨울에 이곳은 낮이 네 시간, 그리고 밤이 스무 시간이다. 침엽수림의 설원 속 공항은 푸른 어둠으로 빛났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냉기가 엄습했다. 마치 전류에 감전된 듯했다. 콧속은 금세 얼었고, 드러난 맨살은 차갑다 못해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걱정스러웠던 건 레비에 머무는 나흘 동안 점점 더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였다. 예보는 정확했다.

이 춥고 먼 북극권의 끝으로 이끌었던 건 오직 ‘오로라’를 보겠다는 열망 하나였다. 북극권의 차가운 대기를 초록빛과 붉은빛으로 휘감는다는 오로라. 어떤 때는 커튼처럼, 또 어떤 때는 너울처럼, 별 총총한 북극의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물들인다는 그 오로라 말이다. ‘본다는 것’에 대한 열망이 오로라만큼 강력한 게 또 있을까. 천둥이나 번개, 혹은 무지개도 비슷한 기상현상이지만, 오로라는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기상현상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움이 오로라에는 있다.

오로라가 생기는 과학적인 원리를 옮겨 보면 이렇다. ‘태양에서 날아온 전하를 띤 입자(플라스마)가 대기의 입자와 충돌하면서 자기장의 영향으로 입자는 남쪽과 북쪽으로 흘러가고 전기에너지가 방전, 소진하면서 빛을 발한다.’ 몇 번이고 되짚어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냥 구형 TV에서 전자들이 브리운관에 부딪쳐 빛을 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하는 정도의 이해만 가능하다. 어쩌면 오로라는 그래서 더 신비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오로라를 보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을 머물러도 한 번도 못 보기도 하고, 하루 만에 오로라를 만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단 운은 좋지 않다. 몇 개의 오로라 관련 웹사이트들이 오로라 활동 지수를 1부터 9까지 나눠 발표하는데, 여기 머무는 내내 오로라 활동지수 예보는 2였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이 이곳을 떠나는 날에 지수가 3으로 오르고, 그 다음 날은 4까지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관광안내소의 가이드가 ‘지수는 지수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날이 흐리면 볼 수 없고, 너무 추워도 안 되며, 잡광이 어지러운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조건은 여럿이지만, 결론은 하나. 그저 운에 맡길 따름이었다. 풀 죽은 모습을 보이자 가이드가 ‘행운을 빈다’고 어깨를 툭 쳤다.

레비 스키리조트 정상의 설원 위에 가득한 ‘스노 몬스터’. 스노 몬스터는 나무에 눈이 얼어붙으면서 만들어진 형상이다. 눈 괴물이라는 이름답게 기괴하면서도 우주적인 느낌의 풍경을 빚어낸다.


# 오로라를 기다리다 만난 ‘라이트 폴’

영하 31.9도. 레비에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레비툰드리 호텔의 단열은 완벽했다. 차가운 공기가 단 한 줌도 새어들지 않는 호텔 객실은 훈훈했다. 영하 36도의 바깥 기온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호텔 현관을 나서면서 바뀌었다. 바깥의 대기를 한 번만 심호흡하고 나면 이번에는 객실의 훈훈함이 비현실적이었다. 해 뜨는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쯤.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여전히 어두웠다. 어둠 탓에 날씨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주위는 온통 분홍빛이다. 늦게 뜨는 해는 느릿느릿 올라왔고, 여명의 기운도 오래 이어졌다. 잠깐 타오르듯 붉은빛이 비치기도 했지만, 해가 뜨는 앞뒤의 기운은 분홍빛에 가까웠다. 순백의 눈벌판과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색을 그렇게 만드는 듯했다. 햇살이 비껴 닿는 눈 쌓인 침엽수림의 끝부터 나무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척박하고 추운 겨울이 지나가는 땅이었지만, 발그레하게 달궈진 설원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짧은 낮 시간에는 순록을 보러 가기로 했다. 거대한 뿔을 가진 순록이 흰 입김을 뿜으며 썰매를 끌고 얼음이 꽝꽝 언 호수를 건너가는 모습이야말로 북극권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다. 가혹한 추위를 견디는 순록 썰매는 한때 주민들의 쓸모있는 이동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스노타이어와 차체자세제어장치를 장착한 승용차들이 눈 덮인 길쯤은 문제없이 질주하는 지금, 순록 썰매는 관광객을 위한 체험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야생의 툰드라 설원을 무리 지어 이동하는 순록떼도 없다. 간혹 순록이 눈에 띄더라도 모두 귀에 주인이나 농장의 표식을 매달고 있는 방목 가축일 따름이다.

순록 목장은 140㎞ 떨어진 작은 마을 헤타에 있다고 했다. 머물고 있는 레비보다 훨씬 더 북쪽.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과 국경이 멀지 않은 곳이다. 공항에서 빌려둔 차량의 운전석에 앉았다. 영하 36도의 기온에 과연 시동이 걸릴까 걱정스러웠지만, 시동은 단숨에 걸렸다. 도로 위로 나서자 공포가 엄습했다. 눈으로 덮인 도로는 꽝꽝 언 얼음처럼 보였다. 이런 길을 과연 차량으로 달리는 게 가능할까. 그러나 극지에 가까운 이곳의 눈은 달랐다. 습기가 없는 눈은 미끄럽지 않았다. 좀 과장하자면 흙이 깔린 도로나 거의 진배없었다. 시속 100㎞를 넘나들며 달리는 현지인의 차량 뒤로 붙어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오로라를 기다리다가 만난 ‘라이트 폴(Light Poles)’. 라이트 폴은 대기 속에 떠다니는 얼음 알갱이들이 달빛에 반사돼 마치 커튼과 같은 빛 기둥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헤타에는 순록 사육 목장마다 써 붙인 ‘썰매 타기 체험’ 간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여행사와 연계해 이국적인 체험을 바라는 관광객들에게 썰매를 태워주고 돈을 받는 곳이다. 목장의 설원에서 흰 입김을 뿜어대고 있는 순록은 당당했다. 체구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제멋대로 길게 자란 뿔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네 마리가 끄는 네 개의 썰매에 도합 여덟 명이 탔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순록은 거침없이 썰매를 끌었다. 침엽수림 광활한 설원을 내달리는 장면을 예상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육상경기장 트랙 정도의 거리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체험은 끝났다. 헤타의 관광안내소쯤 되는 ‘비지터센터’에서 북극권 지역의 자연환경과 순록을 기르는 유목부족인 사미족의 생활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순록은 동토의 땅에서 삶을 이어온 사미족의 생계였다. 목장의 순록 썰매는 ‘유기시설’이 아니라, 거친 자연환경을 이기며 생존해온 사미족의 고단하고 경이로운 삶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레비로 돌아와 저녁 시간에는 오로라를 보러 나갔다. 마을을 관통하는 79번 국도 옆에 제법 큰 호수가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꽝꽝 얼어붙은 이 호수 위를 오로라 목격의 최적지로 추천했다. 오후 8시. 중무장한 채 눈 덮인 호수 위에 섰다.

빛의 커튼이 드리워져 여러 색깔로 빛났다. 이게 오로라일까. 빛의 무리가 살아있는 듯 넘실거린다던데…. 서서히 떠오른 빛의 커튼은 색감만 달라졌을 뿐 한 시간 넘게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그걸 오로라로 믿기로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건 오로라가 아니었다. ‘라이트 폴(Light Poles)’. 오로라만큼, 아니 오로라보다 더 드물지도 모르는 기상현상이었다. 라이트 폴이란 극한의 추위에 도시의 불빛과 지평선 뒤의 햇빛 혹은 밝은 달빛이 대기에 떠다니는 작은 얼음 결정에 반사돼 빛의 기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게 오로라였는지, 라이트 폴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두워가는 동토의 호수 위에서 밤하늘에 커튼처럼 빛의 기둥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으니 말이다. 다만 보기 드문 기상현상인 라이트 폴을 보았음에도, 그게 ‘본다는 것’의 열망의 정점에 있는 오로라를 감히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체험프로그램이 됐지만, 순록이 끄는 썰매는 북극권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 중의 하나다.


# 눈 괴물…현기증 나는 미지의 풍경

영하 36.1도. 레비에는 짧은 낮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겨울 레포츠 관광상품이 있다. 그중에서 관광객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이 ‘스노모빌 사파리’다. 눈 쌓인 침엽수림의 숲길과 평원이 된 호수 위를 스노모빌을 타고 내달리는 체험이다. 총 25㎞의 코스를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2시간에 걸쳐 달린다.

눈밭을 거침없이 달리는 스노모빌은 최고 시속 90㎞를 넘나들었다. 레저업체에서 나눠준 방한복과 헬멧, 장갑과 신발로 중무장했지만,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스노모빌 위에서 느껴지는 추위는 가공할 만했다. 헬멧의 투명 아크릴은 입김을 내쉴 때마다 곧바로 얼어붙었다. 겹쳐 낀 장갑에도 손끝이 저릿저릿하게 시렸다. 일행의 마스크와 모자에 입김이 얼어붙어서 거의 눈사람의 형국이다. 그럼에도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풍경 속을 거침없이 달리며 느끼는 짜릿한 스릴과 재미만으로도 이 정도 추위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마침 붉은 해가 설원 너머의 지평선에 걸리면서 사위를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자연도, 그 위를 달리는 스노모빌도 함께 풍경이 됐다. 함께한 일행 모두, 심지어 길을 잘못 들어 숲을 빠져나오다가 전복사고를 낸 이까지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해발 500m가 넘는 레비 스키리조트 정상의 레스토랑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레스토랑 외벽이 눈이 강추위로 엉겨붙었다. 이곳의 눈은 습기가 없는 건설인데다 좀처럼 녹지않아 차로 여기까지 오를 수 있다.


레비 스키장 중턱에 자리 잡은 레비 파노라마 호텔에는 ‘스노 돔’ 레스토랑이 있다. 호텔 마당에 이글루를 짓고 그 안에 테이블이며 의자 따위를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 들여놓은 곳이다. 올겨울 시즌에 처음 문을 연 곳이라는데, 이런 추위에 얼음으로 만든 레스토랑이라니…. 게다가 후식은 아이스크림이다. 뜨거운 수프는 금세 식었고, 얼음 의자의 한기로 몸이 떨렸다. 관광객들이나 찾아올 곳이었다. 호텔 주인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게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레비 스키장의 정상에서 오로라를 기다렸다. 19개의 곤돌라와 42개의 슬로프를 갖춘 핀란드 최대의 스키리조트. 레비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상 사면에서 눈보라와 추위로 만들어진 괴물을 만났다. ‘스노 몬스터’라고 했다. 우리말로 풀자면 ‘눈 괴물’이다. 설원 위에서 드문드문 자라는 나무에 눈이 달라붙어 만들어진 기괴한 형상인데 아닌 게 아니라 그 모습이 꼭 괴물 같았다. 스노 몬스터가 외계의 행성에서 온 한 무리의 군단처럼 무리 지어 서 있는 모습은 이국적이다 못해 ‘우주적인 풍경’이었다. 눈 괴물이 줄지어 늘어선 스키장 정상에는 눈으로 지어진 것 같은 레스토랑이 고대 겨울 왕국의 유적과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삽시간에 몰려든 구름으로 오로라를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게 그리 아쉽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서 오로라 대신 현기증 나는 미지의 세상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덮인 설월은 달리는 차량. 길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뒤덮였는데도 현지 주민들은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평스럽게 운전한다.


# 오로라…누군가와 함께하는 경험

영하 40도. 레비에 머무는 마지막 날. 드디어 수은주가 영하 40도를 찍었다. 0도와 영하 20도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영하 40도는, 영하 20도와 그만큼 차이가 난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조금이라도 습기가 있는 것이라면 금속 물체에 쩍쩍 달라붙었다. 방한복 외투는 언 빨래처럼 서걱거렸고, 전기 코드는 빳빳하게 얼더니 부러져 버렸다. 내쉬는 숨마저 다 얼어버릴 것 같았다.

혹독한 추위여서 예약해둔 시베리아허스키 사파리도, 핀란드 말타기 체험도 모두 취소됐다. 동토의 땅에서 당당하게 제 몸보다 훨씬 더 큰 썰매를 끈다는 시베리아허스키도 영하 35도 이하에서는 맥을 못 춘다. 북극권의 핀란드에서 사는 말도 영하 25도 이하로 내려가면 탈 수 없다. 시베리아허스키와 말을 구경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개썰매나 말을 못 타서 아쉽다기보다는, 그 추운 겨울에 개와 말이 야외에서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비록 사람을 태우지는 못했지만, 시베리아허스키와 말은 연신 흰 입김을 뿜어내며 우리 안에서 추위를 몸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이 영하 40도의 추위에도 얼어붙은 호수 위를 노르딕 스키를 타고 트레킹하고 있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들에게 전해진 반가운 소식. 이날 당초 2로 예보됐던 오로라 예보지수가 4까지 올랐다는 것이었다. 날은 맑았고, 기대는 부풀었다. 레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오로라의 출현 사실을 알린 것은 현지 가이드였다. 가이드와 헤어지고 저녁 식사를 할 때 가이드가 상기된 표정으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 오로라가…’. 마침 생일을 맞은 일행 중의 한 명이 소박한 생일 케이크에 켠 촛불을 불어 끄곤 ‘오로라를 보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한 직후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먹던 밥을 놔두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오로라가 하늘 가득 펼쳐졌다. 흰 연무 같은 것이 떠돌다가 일순 낡은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초록빛이 달아오르며 휘감았다. 달궈진 필라멘트처럼 오로라는 초록으로 불붙어서 일렁거렸다. 일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야말로 ‘진짜 오로라’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일행은 호수 쪽으로 뛰었다. 두 시간 동안 침엽수림의 숲 저 너머로 초록빛 오로라가 너울거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거대한 오로라를 볼 수는 없었지만 별이 총총한 하늘 위로 오로라의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일행들은 저마다 손가락질을 하며 ‘여기다’ ‘저기다’를 외쳤다. 그걸 바라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오로라는 꼭 ‘누군가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한의 동토에서 누군가와 함께 오로라를 본다는 건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평생 기억할 만한 순간을 기다렸다가 함께 맞이한다는 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오로라가 가진 ‘판타지’의 중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영하 40도의 혹한의 추위 속에 그곳까지 날아간 보람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설피모양의 신발을 신고 트레킹을 하는 스노슈잉. 오전 10시30분. 해가 뜨면서 주위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100일간의 폴라…’ 참가
한국인 사진작가 케이 채


핀란드 북쪽의 작은 마을 헤타에는 지금 한국인 사진작가 케이 채(한국명 채경완·37·사진) 씨가 중국, 일본, 독일, 영국 등에서 온 대표 탐험가들과 머물고 있다. 채 씨는 이들과 핀란드 관광청과 핀에어가 공동주최하는 ‘100일간의 폴라나이트 매직’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다. ‘폴라나이트 매직’은 탐험대장인 핀란드의 탐험가 파시 이코넨의 지휘를 받으며 90일 동안 핀란드 전역에서 18가지 임무를 완수하는 프로그램이다. 채 씨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 참여자 모집에 응모해 한국대표로 선정됐다.

“스노모빌을 타는 게 가장 재미있었어요. 침엽수림 가득한 그림 같은 북극의 설원을 달리는 맛이 훌륭하더라고요. 체력에 부치는 임무들도 있지만 각국에서 온 대표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이겨 나가는 데 성취감도 느낍니다.”

전 세계 50여 개국을 여행하며 개성 있는 사진을 찍어온 전문 포토그래퍼인 채 씨는 머무는 동안 다섯 번의 오로라를 봤다고 했다. 이제 꼭 절반의 일정을 보낸 채 씨는 “오로라를 처음 봤을 때 가슴 뛰는 경험을 했다”며 “앞으로 만나게 될 오로라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고 말했다. 채 씨는 또 “혹독한 기후 속에서도 핀란드가 가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며 “간단하게 응모서를 작성해 제출한 데 비해 과분한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탐험대의 리더인 파시 이코넨은 “케이 채가 누구보다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며 “주어진 임무의 대부분이 라플란드 지역에서 진행되는데 이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도전 등의 메시지를 케이 채의 국가인 한국을 비롯해 참가국 5개국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레비 가는 길 = 레비는 이른바 ‘북극권’에서도 북쪽으로 170㎞ 북쪽에 위치한 도시다. 행정구역상 키틸라에 속한다. 인천∼헬싱키까지는 핀란드항공이 매일 운항한다. 헬싱키까지 10시간쯤 소요된다. 매일 오전 11시 15분 인천을 출발해 헬싱키에 현지시간 오후 2시 15분에 도착한다. 키틸라까지는 국내선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 헬싱키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키틸라를 거쳐 이발로로 들어가거나, 반대로 이발로를 거쳐 키틸라로 들어간다. 키틸라를 먼저 들어가는 경우는 1시간 30분, 이발로를 경유하면 2시간 5분쯤 소요된다. 키틸라에서 레비까지는 차로 15분 거리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릴 수 있다. 공항 한쪽에 유럽카 사무실이 있다. 보유 차량의 다양성이나 관리상태가 단연 뛰어나다. 키틸라 공항 유럽카 렌트 요금은 폭스바겐 파사트급이 하루 13만5000원. 아우디 A4가 15만7000원 정도다. 거의 모든 길이 눈길이지만 습기가 없는 데다 스노타이어가 장착돼 있어 운전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다만 좀 비싸더라도 차체자세제어장치 등이 있는 중형차급을 선택하는 게 좋다. 유럽카는 한국사무소에서 예약할 수 있다. 02-317-8776

◇여행정보 = 레비는 핀란드 최대 스키리조트다. 1964년 첫 번째 스키 슬로프를 개장했으며 1981년 지역 최초의 호텔인 레비툰트리를 비롯해 8개 호텔과 6개 아파트형 호텔, 1개 호스텔 등이 영업하고 있다. 호텔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규모가 커서 총 객실 수가 자그마치 2만4500여 개에 이른다. 레비툰트리 호텔은 1박 17만 원 정도다. 10만 원 안쪽의 펜션이나 아파트먼트도 있다. 스키장 정상은 해발 531m로 여기에 29개의 리프트와 43개의 슬로프를 운영하고 있다. 레비에는 다양한 레포츠 프로그램들이 있다. 스노모빌을 타고 달리는 2시간짜리 사파리는 72유로. 스노슈를 신고 설원을 트레킹하는 스노슈잉은 55유로. 순록이 끄는 썰매 타기는 15유로이고 허스키가 끄는 개썰매는 46유로다.

◇여행 준비물 =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게 보통일 정도의 혹한 지역이니만큼 방한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장갑과 모자, 그리고 안면을 가리는 마스크 없이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외투도 혹한용으로 준비해야 한다. 웬만한 패딩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른바 ‘발열 패딩’이 좋다. 햇볕을 받아 발열하는 제품도 있지만, 배터리로 발열하는 게 효과가 좋다. 블랙야크의 스마트웨어 ‘야크온’을 추천한다. 거위 털 패딩의 탁월한 보온 성능뿐만 아니라 옷 안에 장착하는 배터리로 등 쪽을 따뜻하게 데우는 첨단 발열 제품이다. 스마트 의류의 위력은 영하 40도의 매서운 추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핫팩도 요긴하다. 한쪽 면이 스티커로 된 부착식 핫팩이 좋다. 신발 안쪽에 넣거나 속옷에 붙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다. 카메라는 배터리에 주의해야 한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면 배터리는 금세 방전되고 촬영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침엽수림의 숲 사이를 달리는 스노모빌. 짜릿한 속도로 설원을 누비는 스노모빌 사파리는 가장 인기있는 레포츠다.


레비 스키리조트에는 슬로프를 리프트 대신 차량으로 올라와 스키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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