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호랑이처럼 행동한 ´포정´
새해는 경인년(庚寅年)으로서 60년만에 좋은 행운을 가져오는 백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좋은 의미를 심어서 긍정적으로 해석 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느 해든 나름의 의미없는 해가 있던가?
백호랑이 해라는 것은 곧 경인년을 한국적 의미의 해석에 다름아니다. 경(庚)자는 방위로는 서쪽, 오행으로는 금(金)에 해당하고 이 금은 하얀색을 의미하며, 인(寅)은 곧 호랑이띠이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호랑이는 우리민족의 탄생신화에도 등장하는 동물이기도 하거니와 민담과 속담에 흔하게 등장하여 우리와 아주 친숙하기에 88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동북호랑이란 단어는 곧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말인 듯 같기도 하고……
중국에서도 호랑이는 범치 못할 동물로 여겼기에 이를 그려서 집안에 걸어두면 액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호랑이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화가는 위진(魏晉)시기의 장승요(張僧繇)를 시작으로 당(唐)대 오도자(吳道子)․이점(李漸), 송대의 포정(包鼎)부자, 원대의 포채(包寀), 명대의 조렴(趙廉)․대진(戴進)․상희(商喜), 청대의 구천민(丘天民)․석문경(席文卿), 근현대의 장선자(張善孖)․고검부(高劍父)․고기봉(高其峰)․유규령(劉奎齡) 등이 유명하다.
필자는 예술, 특히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호랑이그림을 보다보면 고양이같기도 하여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막상 호랑이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앞발과 뒷발의 발가락이 몇 개인지, 앞니와 송곳니가 몇 개인지, 산을 오를 때의 모습과 산을 내려올 때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궂은 날이나 맑은 날에 움직이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백수의 제왕으로 컸을 때와 새끼를 가졌을 때의 표정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어서 이를 표현해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몇몇 화가들은 깊은 산속에 움막을 짓고 호랑이를 자세히 관찰하여, 호랑이의 행동과 표정을 살아있듯이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청대 구천민(丘天民)은 산속에 들어가 10여년을 살면서 호랑이를 관찰하고서 벽에 호랑이를 그리면 개가 놀라 도망갔다는 일화와 또한 조용한 저녁에 등불을 의지하여 호랑이처럼 펄쩍 뛰는 모습을 취하여 이를 그리면 마치 살아있는 호랑이 같았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근현대 화가 장선자(張善孖)는 아예 자신의 집안에 호랑이를 기르며 호랑이를 관찰했다고 한다.
송대 포정은 부친 포귀(包貴)와 함께 호랑이그림으로 유명했는데, 진사도(陳師道)의 ≪후산총화(後山叢話)≫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포정이 호랑이를 그리기 전에, 늘 방을 치우고, 인기척이 들리지 않게 문을 막고 창문을 가리는데, 동굴같은 방의 창문에 구멍을 뚫어 호랑이굴처럼 만든다. 그런 다음 술 한 되를 다 마시고 옷을 벗고 바닥에 의지하여, 눕기도 하고 일어나서 움직이기도 하며 자신을 진짜 호랑이처럼 여겼다. 다시 술 한 되를 마시고 붓을 잡고 휘둘러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내면 그림이 곧 완성되었다.”
옛 서적을 통해 보면 예술가는 많은 경우 술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듯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이 영감을 얻어서 창작활동을 펼치기 전, 수년 동안 혹은 수십 년 동안의 뼈를 깎는 피나는 연습을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지 않고 정상에 오른 예술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높은 경지에 오르려면 그것에 미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단련(鍛鍊)․절차탁마(切磋琢磨)․마저성침(磨杵成針)․마저작침(磨杵作針)․마부성침(磨斧成針)․철저마침(鐵杵磨鍼)․철봉마성침(鐵棒磨成針) 등의 성어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위에서 인용한 포정의 경우가 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호랑이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신의 거처를 호랑이굴처럼 꾸미고, 그런 다음 술을 마신 뒤 반쯤 취한 상태에서 호랑이같은 행동을 취해 본다.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시고 거의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그때 떠오른 호랑이의 모습과 표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작행위를 하기 전에 그가 그림공부는 물론이거니와 호랑이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요즘 메스컴을 통해 보는 퍼포먼스와는 분명 차이가 나는데, 퍼포먼스가 작품의 완성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코메디같은 행위예술에 가깝다면, 위의 경우는 술로 인해 자아를 망각한 상태에서 완전한 작품을 얻기 위한 일련의 행위라고 하겠다.
아쉬운 것은 그의 호랑이 작품이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60년만에 온다는 백호의 해를 맞이하여, 포정이 행한 눈에 보이지 않은 마부성침(磨斧成針)같은 노력을 한다면 분명 좋은 운이 찾아오리라 확신한다.
아무쪼록 가내에 봄햇살같은 훈훈한 기운이 항상 가득하도록 백호가 지켜주기를 빈다.
백호랑이 해라는 것은 곧 경인년을 한국적 의미의 해석에 다름아니다. 경(庚)자는 방위로는 서쪽, 오행으로는 금(金)에 해당하고 이 금은 하얀색을 의미하며, 인(寅)은 곧 호랑이띠이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호랑이는 우리민족의 탄생신화에도 등장하는 동물이기도 하거니와 민담과 속담에 흔하게 등장하여 우리와 아주 친숙하기에 88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동북호랑이란 단어는 곧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말인 듯 같기도 하고……
중국에서도 호랑이는 범치 못할 동물로 여겼기에 이를 그려서 집안에 걸어두면 액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호랑이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화가는 위진(魏晉)시기의 장승요(張僧繇)를 시작으로 당(唐)대 오도자(吳道子)․이점(李漸), 송대의 포정(包鼎)부자, 원대의 포채(包寀), 명대의 조렴(趙廉)․대진(戴進)․상희(商喜), 청대의 구천민(丘天民)․석문경(席文卿), 근현대의 장선자(張善孖)․고검부(高劍父)․고기봉(高其峰)․유규령(劉奎齡) 등이 유명하다.
필자는 예술, 특히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호랑이그림을 보다보면 고양이같기도 하여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막상 호랑이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앞발과 뒷발의 발가락이 몇 개인지, 앞니와 송곳니가 몇 개인지, 산을 오를 때의 모습과 산을 내려올 때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궂은 날이나 맑은 날에 움직이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백수의 제왕으로 컸을 때와 새끼를 가졌을 때의 표정이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어서 이를 표현해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몇몇 화가들은 깊은 산속에 움막을 짓고 호랑이를 자세히 관찰하여, 호랑이의 행동과 표정을 살아있듯이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청대 구천민(丘天民)은 산속에 들어가 10여년을 살면서 호랑이를 관찰하고서 벽에 호랑이를 그리면 개가 놀라 도망갔다는 일화와 또한 조용한 저녁에 등불을 의지하여 호랑이처럼 펄쩍 뛰는 모습을 취하여 이를 그리면 마치 살아있는 호랑이 같았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근현대 화가 장선자(張善孖)는 아예 자신의 집안에 호랑이를 기르며 호랑이를 관찰했다고 한다.
송대 포정은 부친 포귀(包貴)와 함께 호랑이그림으로 유명했는데, 진사도(陳師道)의 ≪후산총화(後山叢話)≫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포정이 호랑이를 그리기 전에, 늘 방을 치우고, 인기척이 들리지 않게 문을 막고 창문을 가리는데, 동굴같은 방의 창문에 구멍을 뚫어 호랑이굴처럼 만든다. 그런 다음 술 한 되를 다 마시고 옷을 벗고 바닥에 의지하여, 눕기도 하고 일어나서 움직이기도 하며 자신을 진짜 호랑이처럼 여겼다. 다시 술 한 되를 마시고 붓을 잡고 휘둘러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내면 그림이 곧 완성되었다.”
옛 서적을 통해 보면 예술가는 많은 경우 술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듯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이 영감을 얻어서 창작활동을 펼치기 전, 수년 동안 혹은 수십 년 동안의 뼈를 깎는 피나는 연습을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지 않고 정상에 오른 예술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높은 경지에 오르려면 그것에 미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단련(鍛鍊)․절차탁마(切磋琢磨)․마저성침(磨杵成針)․마저작침(磨杵作針)․마부성침(磨斧成針)․철저마침(鐵杵磨鍼)․철봉마성침(鐵棒磨成針) 등의 성어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위에서 인용한 포정의 경우가 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호랑이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신의 거처를 호랑이굴처럼 꾸미고, 그런 다음 술을 마신 뒤 반쯤 취한 상태에서 호랑이같은 행동을 취해 본다.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시고 거의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그때 떠오른 호랑이의 모습과 표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작행위를 하기 전에 그가 그림공부는 물론이거니와 호랑이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요즘 메스컴을 통해 보는 퍼포먼스와는 분명 차이가 나는데, 퍼포먼스가 작품의 완성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코메디같은 행위예술에 가깝다면, 위의 경우는 술로 인해 자아를 망각한 상태에서 완전한 작품을 얻기 위한 일련의 행위라고 하겠다.
아쉬운 것은 그의 호랑이 작품이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60년만에 온다는 백호의 해를 맞이하여, 포정이 행한 눈에 보이지 않은 마부성침(磨斧成針)같은 노력을 한다면 분명 좋은 운이 찾아오리라 확신한다.
아무쪼록 가내에 봄햇살같은 훈훈한 기운이 항상 가득하도록 백호가 지켜주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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