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하는 통도사엔 마지막 용 한 마리가 살도록 배려한 연못이 바로 대웅전 앞 구룡지와 영산전 앞의 구룡지라고 한다. 사진은 영산전 앞의 구룡지.
수행자의 첫 단계가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계율을 안 지키면 성스러운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불교이다.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 때부터 이어져온 계율 의식이 보존된 곳이 통도사이고, 통도사의 핵심은 금강계단이다. 금강계단은 한국불교의 성지(聖地)이다. 성지는 종교적 영험을 간직한 곳이다. 영험은 어떤 장소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장율사는 왜 여기에 금강계단을 설치했을까?
전설에 의하면 이 금강계단 자리는 원래 늪지대였다고 한다. 늪지대를 흙으로 매립해서 금강계단을 만든 것이다. 한국 불교사찰의 창건 설화를 보면 늪지대를 메워 그 위에 절을 지은 경우가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익산의 미륵사지도 원래 물이 고여 있던 늪지대였고, 김제의 금산사 터도 늪지대였다. 장흥의 보림사, 치악산 구룡사도 그렇다. 늪지대를 메워 그곳에 절을 지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통도사인 것이다. 왜 물이 고여 있는 자리에 성스러운 절(금강계단)을 지었을까?
우리가 보통 집터를 잡을 때는 지하로 물이 흐르는 수맥(水脈)자리는 피하고 본다. 물이 흐르는 곳은 금기에 속한다. 수맥이 흐르는 자리에 집터를 잡고 살면 우선 건강이 나빠진다. 물이 흘러가면서 파생시키는 그 어떤 에너지 파장이 인체의 고유한 생체 리듬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왜? 고대 불교사찰 창건 설화에 보면 이런 늪지대에는 용(龍)이 살고 있었던 곳으로 설명된다. 고승과 용은 이 터를 두고 서로 대결한다. 자장율사도 도력을 써서 구룡신지(九龍神池)에 살고 있던 아홉 마리 중 여덟 마리의 용들을 쫓아내고 절을 짓는다. 그 용들 가운데 마지막 한 마리는 남아서 자장율사에게 항복하고 절을 지키는 신장으로 남는다는 설화다.
통도사 대웅전 앞에도 둥그런 모습의 작은 연못이 있고, 영산전(靈山殿) 앞에도 작은 연못이 있다. 마지막 남은 용 한 마리가 살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이기도 하다. 대웅전 앞의 구룡지(九龍池)가 용이 들어가는 입구라 한다면 약간 떨어진 거리의 영산전 앞의 구룡지는 용이 빠져 나오는 출구에 해당한다. 구룡지가 한 개가 아닌 두 개, 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용은 지상에 없는 동물이다. 열두 띠 가운데 지상에 없는 상상의 동물이 바로 용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고대신화와 불교 사찰에는 용에 관한 전설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허구의 동물을 위해서 이렇게 연못도 두 개나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허구라면 왜 이렇게 광범위하게 동양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가?
서양은 용이 사악한 괴물… 동양은 물에 사는 靈物
서양신화에서는 용이 사악한 동물로 묘사된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이다. 그래서 서양신화에서는 용을 때려잡는 인물이 영웅이 된다. 서구는 날개 달린 용들이 많다. 이 날개 달린 거대한 괴물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인간을 잡아채거나, 가축을 물어가고 인간에게 피해를 끼친다. 서양 영화에 묘사되는 용들의 이미지가 대개 그렇다. 그러나 동양에서 용은 사악한 동물이 아니다. 제왕 또는 군왕의 이미지다. 그 모양도 서양과 다르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모습이 아니다. 대개 물에서 사는 영물로 묘사된다.
- ▲ 한국 불교의 성지로 불리는 양산 통도사를 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
동양에서 용은 물을 지배하는 수신(水神)으로 묘사된다. 바다, 호수, 강물에서 사는 동물이 용이다. 그래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도 용신에게 제사 지내는 게 아시아의 고대 제의(祭儀)였다. 가뭄이 들어서 사람이 전부 죽게 생겼을 때 이 가뭄을 해결해 달라고 빌었던 대상이 용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양의 용과 동양의 용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아시아는 농경사회였다는 점에 그 비밀이 있다. 농사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가 바로 물이다. 수경농법인 벼농사가 그 대표적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쌀농사는 불가능하다. 쌀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
서양은 동양처럼 농경사회가 아니었다. 물론 서양도 곡식은 필요하다. 그러나 목축의 비중이 동양보다 컸고, 무역을 해서 먹고 사는 교역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농경사회인 아시아에서 쌀은 물에서 생산되고, 이 물을 지배하는 고대의 신은 용이었다. 용신(龍神)이 밥줄을 쥐고 있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운석충돌로 인해 다른 공룡들이 대부분 멸종된 상황에서 물속에 살던 공룡인 수룡(水龍)들은 늦게까지 살아남았고, 이 수룡들이 아마도 고대사회에서 신격으로 숭배되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다면 불교가 생기면서 이 용신의 역할이 부처로 전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우리 고대어에서 용을 ‘미르’라고 불렀다. ‘미리내’는 용천(龍川)의 뜻이다.
물을 의미하는 고대어가 ‘미’다. ‘미역’, ‘미나리’, ‘미숫가루’, 그리고 일본어의 ‘미즈’가 모두 물과 관련 있다. 미르도 마찬가지이다. 한자의 미륵(彌勒)도 그렇다. 그 발음이 공교롭게도 ‘미르’와 비슷하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미르’가 ‘미륵’으로 대치된 것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미륵불교가 들어오면서 용이 살던 늪지대에 미륵불을 모시는 법당이 들어선 것이 그러한 추측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미르가 미륵이 된 셈이다. 통도사의 구룡신지에 살던 용들을 쫓아내고 자장율사가 절을 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 ▲ 1 통도사의 대웅전 격인 금강계단의 웅장한 모습.
통도사는 지형이 특수하다. 영축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이다. 그런데 영축산 아래로는 200~300m의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와 언덕들이 포진한 형국이다. 이 봉우리 중간 중간에서 물이 솟는다. 고지대에서 물이 나오는 지형이 통도사 전체 지형이다. 이 점이 특이하다. 산 중턱쯤의 높은 지대에서 자연적으로 물이 솟기 때문에 산중에서도 농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통도사 경내에는 이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넓이가 600마지기 정도 된다고 한다. 600마지기의 농토는 통도사가 자체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충분한 농토에 해당한다. 외부 조달을 할 필요가 없다. 가뭄에도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나오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흉년이 들지 않는다.
통도사 지형이 지닌 이러한 특수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사례가 바로 구룡신지라고 보면 된다. 구룡신지의 물도 지하의 수맥을 통해서 솟기 때문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통도사 경내에 전체적으로 이렇게 농사지을 수 있는 자연샘물이 풍부하다는 점이 용과 관련 있다고 본다. 농사지을 수 있게 해주는 물을 지배했던 수신이 용이라 하면, 통도사 터는 용이 지배하는 터인 것이다.
그러다가 불교가 들어오고 자장율사가 터를 잡으면서 그동안의 토착신앙이었던 용신앙에서 불교의 부처신앙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나 싶다.
따라서 용이 살던 지점에 법당을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환이다. 즉 용이 살던 늪지대에 절을 짓는 것은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와는 관련이 없다. 토착신앙의 대상인 용이 살았다는 점이 더 중요한 사실인 것이다. 고대적 사유에서 보자면 용이 거처하던 곳이 신령한 장소인 것이다. 이 신령한 장소에 부처가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자장암 동굴 속 개구리는 금와보살로 신격화
통도사의 구룡신지 전설과 관련해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대목은 개구리다. 통도사 산내의 자장암(慈藏庵)에는 금와보살(金蛙菩薩) 전설이 전해진다. 자장암 법당 뒤편의 커다란 바위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고, 이 바위 구멍 속에는 금개구리가 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300여 년 전부터 자장율사가 기르기 시작했다는 개구리다. 실제 금개구리 사진이 촬영되어 있다. 이 금개구리가 금와보살로 거의 신격화되다시피 했다. 개구리는 종교적 영험의 사례이자 신도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다.
- ▲ 2 스님이 되기 위해선 계율을 받는 의식을 치르는 곳이 있는데, 통도사에선 금강계단에서 수행자의 첫 단계가 이뤄진다. 3 통도사 자장암의 조그만 동굴에 사는 개구리는 금와보살이라 불리며, 1,300여 년 전 자장율사가 기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통도사에서는 왜 개구리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가? 다른 절에는 이런 사례가 없다. 이 점도 흥미로운 사실 아닌가? 나는 구룡신지의 용과 자장암 바위구멍의 금와보살은 하나의 대구(對句)라고 본다. 대구(對句)는 반대이면서도 공통점이 있다. 용과 개구리의 공통점은 물과 관련 있다는 점이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 존재가 용이라 한다면, 지상에서 그 비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먹는 존재는 개구리다.
몇 년 전에 중국 장가계의 소수민족 왕이 살았던 궁궐을 답사했던 적이 있다. 그 궁궐 지붕의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밑에는 용의 모습이 조형되어 있었고, 아래 땅에는 용의 입을 통해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먹으려고 개구리가 하늘을 향해서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용의 입을 통해 하늘에서 빗물을 떨어트리면 땅에서는 개구리가 입을 벌리고 이 물을 받아먹는 구조였다. 용과 개구리는 세트였다. 이 세트를 통도사에 대입하면 그대로 적용된다. 구룡신지의 용이 내리는 빗물을 자장암의 금개구리가 받아먹는 구조가 아닐까? 고대 신화에서 하늘에 있는 수신이 용이었다고 한다면, 땅에 있는 수신을 개구리로 상정할 수 있다.
고대 신화에선 하늘엔 용, 땅엔 개구리가 수신
불교가 전래되면서 용은 고승에 의해서 제압된다. 말 안 듣는 용을 쫓아내고, 말 잘 듣는 용은 데리고 쓴다. 이를 조복(調伏) 받는다고 표현한다. 용은 부처를 지키는 신장, 즉 보디가드가 되는 것이다. 용이 보디가드가 된 대표적인 사례가 무엇인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갈 때, 사람이 죽어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때는 물을 건넌다고 생각했다.이집트 신화에서도 하늘의 강, 즉 은하수를 건너게 된다고 생각했다. 물을 건널 때는 배를 타야만 한다. 배가 시원찮으면 가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안전한 배가 무엇인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가장 안전하게 망자를 건네다 주는 배가 어떤 배인가? 불교에서는 그 배를 ‘지혜의 용이 끄는 배’라고 생각했다. 물을 담당하는 수신인 용이 이끄는 배가 가장 안전할 것 아닌가. 더구나 그 배는 불교의 이치를 공부해서 지혜를 터득한 용이다. 멍청한 용이 아니다. 그게 ‘반야용선’이다. 이 반야용선을 타면 가장 안전하게 저승길을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용이 불교의 사상체계 속에 가장 자연스럽게 포섭된 경우이다. 토착신앙과 불교의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대목이 바로 이 반야용선으로 용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통도사 극락전 벽에는 이 반야용선 그림이 잘 그려져 있다. 극락으로 가는 뱃길을 용이 인도하는 배에 중생들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의 어느 사찰에 있는 반야용선도보다 크고 잘 그려진 불화이다. 뱃머리 앞은 용의 머리로 장식되어 있다. 앞부분에는 인로왕보살이 타고 있고, 배의 뒷부분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가운데에 철없는 중생들이 타고 있다.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앞뒤에서 돌보고 있다.
가운데 조그만 크기로 그려져 있는 무명 중생들을 보호하면서 위험한 파도를 헤치며 물을 건너는 형국이다. 생사의 파도 아닌가. 그 생사의 파도를 헤치며 무사하게 극락으로 인도해 주는 운송수단인 배는 용이다.
통도사 구석구석에 용의 신화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