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전남 신안 "12개 예배당 순례길"

醉月 2019. 10. 12. 07:50

썰물 때면 노둣길이 드러나 서로 이어지는 전남 신안의 작은 섬,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등에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단 열두 개의 작은 예배당이 지어지고 있다. 사진은 대기점도 방파제 겸 선착장과 그 끝에 들어선 첫 번째 예배당 ‘베드로의 집’. 순백의 건물과 파란 지붕이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한다.


전남 신안에는 썰물 때만 드러나는 노둣길로 이어지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기점·소악도’입니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그래서 빈 도화지 같던 섬에는 오는 11월 초쯤 ‘기적의 순례길’이 완성됩니다. 하루 두 번 바다 위로 길이 드러나니 ‘기적’이고, 그 섬에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열두 곳을 지어 ‘순례길’입니다. 길이 다 놓이길 손꼽아 기다리다가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다녀온 길입니다. 교회이기도 하고, 성당이기도 하고, 암자이기도 한 작은 예배당 열두 개를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이 기도처럼 짓고 있는 모습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왔습니다.


# ‘못생긴’ 섬이 동화가 되다

신안군은 섬으로 이뤄진 행정구역이다. 신안이 가진 섬의 숫자는 들쑥날쑥하다. 유인도와 무인도를 합쳐 적게는 830개라는 주장도 있고, 많게는 1025개라는 얘기도 있다. ‘1004개’라는 신안의 주장은, ‘천사(天使)’를 연상케 하려는 유치한 억지다. 어떤 숫자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 두 가지는 신안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섬이 많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의 섬 4개 중 하나가 신안에 있다는 것이다.

전남 신안의 서남해안 연안은 전체가 거대한 펄밭이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바다는 아득하게 물러가고, 얕은 수심의 바다는 펄밭이 된다. 드러난 개펄은 때로 섬과 섬을 잇는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건너기 위해 섬사람들은 드러난 펄밭에 돌을 던져넣었다, 돌이 잠기면 다시 넣고, 다시 잠기면 또 넣었다. 그렇게 섬과 섬 사이로 이어진 징검다리 같은 길이 ‘노둣길’이다.

섬과 섬을 잇는 노둣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곳이 바로 병풍도다. 병풍도는 물이 빠지면 어미 섬인 병풍도부터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까지 노둣길로 이어져 하나가 된다. 노두의 길이만 14㎞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섬은 병풍도를 빼고, 병풍도가 거느린 그만그만한 크기의 새끼 섬인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4개 섬이다. 섬사람들은 노둣길로 이어지는 이 작은 섬 네 곳을 한꺼번에 일러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기점·소악도는 ‘못생긴 섬’이다. 경관도 내놓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땅이나 바다가 비옥한 것도 아니다. 네 개의 섬은 눈을 씻고 봐도 외지사람들을 불러들일 만한 매력이 없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아무 보잘것없는 이 섬이, 전남도가 5년에 걸쳐 40억 원을 지원하는 ‘가보고 싶은 섬’ 사업 공모에 덜컥 당선된 것이다. 필시 ‘아무것도 없는 섬’이란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보라는 뜻이었을 게다. ‘못생긴’ 섬에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까. 대체 이 돈을 어디에다 써야 할까. 섬은 2년이 넘도록 고심했다.

지금부터는 보잘것없던 섬이 기획자의 예술적 상상력과 예술가들의 헌신으로 얼마나 매혹적인 섬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동화의 결말은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기점·소악도의 스토리는 과연 ‘신데렐라’ 혹은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 열두 개 작은 예배당의 의미

▲ 스테인드글라스가 영롱한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네 번째 예배당 ‘요한의 집’.

기점·소악도가 선택한 것은 ‘작은 예배당’이었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을 잇는 12㎞의 길에 예수의 12사도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작은 예배당을 짓기로 했다. 삶에 지치거나 위안이 필요한 뭍사람들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섬에서 때로 기도하며 순례처럼 걷도록 하자는 계획이었다. 모티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져왔다. 기독교인 비율이 자그마치 90%가 넘는 기점·소악도 주민들이 이런 계획에 흔쾌히 동의했던 건 물론이었다.

기점·소악도를 비롯한 신안의 섬들은 기독교 성결교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60년 전쯤 보따리를 이고 노둣길로 작은 섬을 건너다니던 한 여 전도사의 헌신적인 전도와 그의 비극적 순교가 섬 주민들의 신앙의 바탕이다. 그 기록이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에 남아있다. 신안 암태도 출신인 문 전도사는 한 해 고무신이 아홉 켤레나 닳을 정도로 선교에 앞장서 신안에만 100여 곳의 교회를 개척하다가 6·25 전쟁 중에 순교했다.

이쯤에서 꼭 강조해야 할 이야기 하나. 이런 연유로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지만, 기점·소악도에 지어진 예배당은 ‘절대로’ 기독교 교회만은 아니다. 구태여 분류하자면 천주교의 공소에 가깝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불교 신자에게는 절집에 딸린 암자일 수도 있고, 이슬람교도들에게는 기도소일 수도 있다.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다리 쉼을 하면서 고요히 묵상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성소일 수도 있겠다. 종교를 떠나서 모두에게 필요한, 그런 공간이란 얘기다.

섬 안의 예배당이 ‘기독교 교회가 아님’을 이렇듯 강조하는 것은, 예배당을 다 짓기 전부터 일부 대형교회가 ‘자신들이 관리하겠다’며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 안의 예배당은 특정 종교의 공간이 될 수 없다. 주민 열에 아홉이 기독교 신자인 대기점도에서 몇 명 안 되는 무신론자인 김영근 이장은 “예배당이 기도의 공간뿐만 아니라 젊은 연인들의 기념사진 명소가 되거나, 웨딩 촬영의 스튜디오처럼 쓰이는 것도 흔쾌히 반긴다”고 했다. 기독교인 주민들도 마찬가지 의견이다.


# 산토리니의 푸른색을 품다

이제 기점·소악도의 예배당을 하나하나 보러 가보자. 기점도로 건너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무안의 해제반도 끝에서 연륙교로 연결된 섬, 송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병풍도까지 간 뒤 노둣길을 건너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륙교가 놓인 신안의 압해도 송공항에서 배를 타고 바로 대기점도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기점·소악도를 걸으며 예배당을 보겠다면 압해도 송공항에서 바로 대기점도로 들어가는 것이 순서에 맞기도 하거니와 걷기에도 좋다.

기점도행 여객선이 뜨는 압해도 송공항 일대의 바다에서는 지주식 김발을 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주대가 촘촘히 박힌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간 어민들이 김 씨앗(포자)을 붙인 김발을 바다에 넣고 있었다.

송공항을 출항한 배는 완행버스처럼 이 섬, 저 섬 다 들러가며 1시간 20분여 만에 대기점도에 닿는다. 섬에 닿기도 전에 예배당의 모습이 보인다. 대기점도 방파제 끝 선착장에는 12사도의 이름을 딴 열두 개 예배당 중 첫 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이 세워져 있다. 길게 바다로 밀고 나온 제방 끝에 순백의 벽에 파란색 원형 지붕을 이고 있는 베드로의 집은, 배 위에서도 한눈에 확 들어온다.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배당 배경으로 짙푸른 바다에 뭉게구름이 걸리면, 그냥 그대로 엽서 속의 풍경이다. 선착장까지 마중 나와 방문객을 맞고 있는 베드로의 집은, 나머지 열한 개 예배당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드는 데 모자람이 없다.


프랑스의 작가 장미셸 후비오가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둑 끝에 지은 예배당 ‘작은 야고보의 집’에 설치한 물고기 형상 스테인드글라스. 물고기 등 쪽을 나무로 덧대 지붕을 마치 배의 밑바닥처럼 보이도록 했다.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인 야고보가 어부였음을 드러낸 설계다.


#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다

기점·소악도의 예배당은 작다. 섬 안의 열두 개 예배당은 모두 두 평 미만이다. 겨우 한 평이 될까 말까 한 곳도 있다. 한 명이, 혹은 두어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정도의 크기다. 작은 예배당은, 그러나 작아서 특별하다. 무엇보다, 작은 예배당은 온전한 ‘혼자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혼자 혹은 둘이라면, 이보다 더 큰 공간이 무어 필요할 것인가.

기점·소악도의 열두 개 예배당을 다 여기서 소개하는 건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다. 기점·소악도의 12㎞ 순례길에서는 1㎞에 하나씩 만나는 예배당에 대한 기대가 걷는 힘이 돼 준다.

열두 개 예배당은 모두 11명의 예술가에게 맡겨졌다. 한국 작가가 여섯 명이고,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외국인 작가가 다섯 명이다. 이들이 지은 예배당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프랑스 공공조각 설치예술가인 장미셸 후비오(63)의 작품인 다섯 번째 예배당 ‘필립의 집’이었다. 기점도에서 소악도로 건너가는 노둣길 입구에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형태로 지었다는 예배당은 한눈에도 특별해 보였다. 붉은 벽돌로 세운 벽체의 무게감과 비늘 같은 지붕의 기이한 형태의 곡선이 어우러져 특별한 경건함이 묻어났다. 촉박한 배 시간 때문에 그러지 못했지만, 예배당 안의 촛대에 불을 밝혀 두 손을 모은 뒤에 나와서 예배당 앞에 서서 소악도 너머로 지는 해를 보고 싶었다.

후비오는 여기 말고도 두 개의 예배당을 더 맡았다.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둑 끝에 지은 ‘작은 야고보의 집’은 물결모양의 청동 지붕과 물고기 형상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독특했다. 섬 안에서 주운 바위를 벽에 끼웠고, 부서진 돌절구를 처마 아래 물받이로 썼다. 예배당 천장을 마치 배 밑바닥 모습으로 설계한 것도, 내부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대청마루로 짠 것도 신선했다.

이런 예배당의 건축이 놀라운 것은 건축물들이 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섬 전체의 경관에 탄력과 긴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진 경관도 예배당 창으로 내다보면 전혀 달라 보였다. 허름한 농가 뒤 구릉에 쓴 묘를, 의도적으로 건축물 창에 담아내니 그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 섬에서만큼은 건축이 풍경에 스미는 게 아니라, 반대로 건축이 풍경을 이끄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건 섬의 경관이 너무 밋밋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빈 도화지 같은 섬의 경관이 건축미술로 비로소 색과 빛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썰물 때면 물길이 닫히는 작은 섬에다 지은 열두 번째 예배당 ‘가롯 유다의 집’(사진 왼쪽). ‘기점·소악도’의 열두 개 성당 중 가장 이국적인 다섯 번째 예배당 ‘필립의 집’.


# 지어지지 않은 예배당에 대한 기대

예배당 중에서 가장 기대되는 건 ‘아직 지어지지 않은’ 예배당이다. 열두 개의 예배당 중에서 열 개는 이미 다 지었거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나머지 두 개는 후비오가 섬 안의 작은 저수지 물 위에 짓는 여섯 번째 예배당 ‘바르톨로메오의 집’과 이번 프로젝트의 총감독인 김윤환 작가가 노둣길 위에 짓는 여덟 번째 예배당 ‘마태오의 집’이다.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섬 안의 저수지 물을 빼고 예배당을 지은 뒤에 물을 다시 채워 열두 개 예배당 중 유일하게 출입할 수 없는 예배당으로 짓는다. 작은 섬과 거울 같은 저수지의 물을 후비오는 어떤 상상력으로 어떻게 요리해낼까. 후비오가 짓는 예배당이 저수지의 물 위에 지어진다면, 대기점도 선착장에 첫 번째 예배당 ‘베드로의 집’을 지은 김윤환 작가의 ‘마테오의 집’은 노둣길 위에 지어 밀물 때면 바다 한가운데 떠 있게 된다. 물이 들면서 차츰 잠겨가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예배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어진 열 개의 예배당은 하나하나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소악도 노둣길 삼거리에 눈부신 흰색과 코발트색, 반짝이는 타일로 지어낸 열 번째 예배당 ‘유다 타태오의 집’이며, 소악도에 딸린 작은 섬에다 지은 뾰족지붕과 붉은 벽돌, 둥근 첨탑으로 지은 열두 번째 예배당 ‘가롯 유다의 집’, 지붕과 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영롱하게 빛을 끌어들이는 네 번째 예배당 ‘요한의 집’도 매력적이다.

기점·소악도의 예배당을 도는 순례길의 또 하나 매력은, 섬과 섬을 잇는 노둣길이 늘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둣길은 하루 두 번 열리고, 또 두 번 물에 잠긴다. 조금 때는 물이 조금 덜 들어오고, 사리 때면 물이 더 많이 들어온다. 물 들어오는 시간은 매번 다르다. 닫혀 있는 시간보다 열려 있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언제든 밀물에 길이 잠겨 섬에 갇힐 수 있다. 섬을 찾아온 이들은 물론이고, 예배당을 짓는 작가들도 수시로 갇혔다. 노둣길이 막히면 멍하니 바다를 보며 서너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섬에서 외지인이 물때를 일일이 확인하긴 어렵다. 그러니 한눈 좀 팔다가 섬에 갇히는 일도 예사다. 기점·소악도에서라면 섬에 갇히는 건 낭패가 아니라 어쩌면 ‘다행’일 수 있다. 할 일없이 작은 섬에 갇히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 생각해 보면 순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 혹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끼는 시간 말이다.


소악도 노둣길 삼거리에 지어진 열 번째 예배당 ‘유다 타태오의 집’(사진 왼쪽). 마태복음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표현한 일곱 번째 예배당 ‘토마스의 집’.




■ 예배당 짓는 佛예술가 후비오

전남 신안의 소악도의 방파제 끝에서 아홉 번째 예배당 ‘작은 야고보의 집’의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프랑스 공공조각 설치예술가 장미셸 후비오(56)를 만났다. 그는 지난 4월 기점도로 들어온 이래 6개월째 섬에 머물며 두 개의 예배당을 거의 다 지었고, 이제 물 위에다 지을 여섯 번째 예배당 ‘바르톨로메오의 집’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2년 전 한국을 처음 다녀갔다는 후비오는 그 뒤로 부산 비엔날레, DMZ 아트레지던시, 제주 페스티벌 등에 초대돼 참가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다른 두 명의 프랑스 작가와 함께 프랑스환경 조각가 그룹 ‘아트북 콜렉티브’의 일원으로 한국에 들어와 경남 통영의 강구안에 이중섭 화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은빛 물고기 조형물을 세웠다.

그가 6년 만에 전남 서남해안의 작은 섬까지 오게 된 건 기점·소악도의 작은 예배당 건축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윤미숙 신안군 가고싶은섬 사업 TF 팀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후비오가 통영에서 물고기 조형작업을 할 때, ‘강구안골목살리기’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이가 바로 윤 팀장(당시 푸른통영21 사무국장)이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후비오는 기점·소악도에 3개의 예배당 설계와 건축을 맡게 됐다.

“흥미로운 주제의 작업을 통해 ‘건축적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섬마을이 본래 갖고 있던 것들을 예배당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그런 점에서 건축이란 어떤 운명 같은 것이에요. 관람객들이 제 건축물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빵집은커녕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없는 손바닥만 한 섬에서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까. 그는 “스파게티를 손수 만들어 먹는다”며 웃었다. 작가들 숙소로 제공된 컨테이너에는 모기도 들끓는다. 이쯤이면 생활한다기보다는 ‘버틴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듯한데, 정작 그는 “섬에서 생활이 행복하다”고 했다. 번잡스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게 즐겁다는 얘기다. 마음을 다해 예배당을 짓고 있지만, 정작 그는 종교가 없다. 그는 “숭고한 건축적 미감이 사람을 감동케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 작은 예배당은 교회일까?

건축미술로 지은 작은 예배당은 개신교 교회가 아니다. 천주교의 공소와 유사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믿음에 따라 기도하거나 쉬어가는 곳이다. 예배당은 불교 신도에게는 암자가 되고, 종교가 없는 이에도 기꺼이 열려 있다.


■ 여행정보

열두 개 예배당이 있는 ‘기점·소악도’로 가는 배는 전남 신안의 압해도 송공항에 있다. 신안의 송도선착장에서도 여객선을 타고 병풍도까지 가서 노둣길을 건너 기점도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압해도 송공항에서 대기점도까지는 하루 세 번 오전 7시 40분, 오전 10시 30분, 오후 3시에 출항한다. 송도선착장에서는 오전 7시, 오전 9시에 병풍도행 배가 뜬다. 주민 수가 100여 명에 불과한 기점도와 소악도에는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없다. 이달 말쯤 대기점도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마을식당이 문을 연다.

기점·소악도에서 알아주는 음식은 삶은 배추를 낙지와 함께 매콤하게 무쳐내는 ‘배추연포’다. 배추에 낙지의 식감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이다. 김을 풀어 새큼하게 내놓는 김초국 맛도 좋다. 섬에 흰다리새우 양식장이 여러 곳이어서 싱싱한 새우로 담근 간장새우장 역시 알아준다. 마을 식당개업을 앞두고 주민들은 이런 메뉴를 중심으로 섬마을 밥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민들이 직접 특산물과 기념품 등을 제작해 판매할 계획도 있다. 이 모든 사업을 마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은 섬 개발의 이득이 섬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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