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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한민족 소멸 시나리오

醉月 2010. 2. 2. 08:58

아, 사람이 그립고 그립다
저출산 초고령 2040년 코리아, 강희생 씨의 어느 하루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사회를 이어가고 있다. 매해 출생아 수도 평균 50만명에 불과하다. 한 세대 전인 1970년대의 평균 출생아 수 100만명의 절반 수준. 그렇다면 한 세대 후인 2040년, 지금의 아이들이 핵심 노동계층이 됐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1명의 핵심 노동인구가 2명의 부모는 물론, 2명의 조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 있지 않을까. ‘주간동아’는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나 2040년을 살아가는 ‘강희생’ 씨의 하루를 가상으로 만들어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 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 경제정보센터 소장, 한국조세연구원 최준욱 선임연구위원, 미래학자 최윤식 교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에게 도움말을 받았다. 각종 국내 연구소의 저출산, 고령화 관련 보고서와 유엔미래보고서도 참고했다.
 
 

물컵을 집어든 ‘무자녀’(60) 장관 후보자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장관에 오를 수 있냐?”면서 야당 의원들은 핏대를 올리며 그를 다그쳤다. 청문회가 열리는 국회 밖에선 일부 과격논자들이 “아이가 없는 사람이 공직에 오르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법안을 발의하자”며 영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기 2040년 1월19일 오전 8시, 아침식사를 하면서 3D 영상으로 실감나게 펼쳐지는 이 장면을 지켜보던 ‘강희생’(40) 씨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완전히 맛이 갔다”며 혀를 끌끌 찼다.

무 후보자는 국내 최초 베트남 혈통으로 당선된 ‘고세안’(51) 대통령의 오른팔로 꼽힌다. 젊은 이미지를 내세우며 혜성처럼 나타난 고 대통령은 “국민연금 수령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80세로 높이겠다”는 파격적인 공약과 각종 감세안으로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2038년 12월 당선됐다. 그는 현재 생산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혼혈인과 이민자는 물론, 20~ 40대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형제, 자매, 삼촌, 고모가 없는 사회

하지만 그의 공약은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는 60대(1970년대 생)의 거센 반대로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고 대통령 역시 결단력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고, 그를 지지하던 세력도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고 대통령은 ‘무자녀’인 무 후보자를 제1부처인 ‘감세정책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것. 저출산, 초고령 사회인 2040년 한국에선 자녀를 일부러 가지지 않는 건 최악의 ‘매국 행위’로 여겨진다. 최근 무 후보자가 허위 ‘불임증명서’를 요구한 적이 있다는 병원 측 폭로가 이어지면서, 언론은 연일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영상을 보던 강씨는 TV를 끄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그는 학교가 있는 몇 안 되는 동네에서 다섯 살 어린 아내와 초등학교 2학년인 딸 희망(8)이와 함께 살고 있다. 2000년대에 태어난 강씨 부부는 모두 형제, 자매가 없다. 희망이는 삼촌, 이모, 고모란 말은 알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1개 동에 100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에서 강씨처럼 아이를 키우는 집은 다섯 가구밖에 없다. 10대 청소년부터 20대 초반 청년은 10명 정도 보인다. 반면 50대 이상 장·노년층 부부가 사는 집은 50여 가구나 된다. 그중 15여 가구는 부부의 평균 나이가 65세 이상이다.

그래도 이곳은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많은 편이다. 한국은 40년 전인 2001년 초저출산 사회가 시작된 이래, 10년간 단 한 해도 출산율 1.3명을 넘어선 적이 없다. 2010년 처음으로 서울시내 2개 초등학교가 줄어든 학생 수 탓에 통폐합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10년간 순차적으로 초·중·고교와 대학이 학생 수 부족으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강씨는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학교가 있는 동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학교가 있는 동네로 몰려들었기 때문. 학교가 없어진 곳에는 사람들도 사라졌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이, 서울에서도 학교가 있는 인구 과밀지역과 학교가 사라진 과소지역으로 확실히 나뉘었다. 인구가 줄었는데, 사람들은 더 빽빽이 모여 산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강씨 역시 과소지역에서 과밀지역으로 옮겨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월급의 40%, 세금과 사회보험료

강씨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지하철은 여전히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30년 전만 해도 출근 시간대 이용객이 매우 많아 ‘지옥철’이라고 불렸다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출근 시간대 이후 노인 이용객이 더 많아졌다. ‘배려석’ 개념이었던 노약자석도 사라진 지 오래.

오늘은 월급날이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은 월급날이 가장 즐겁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강씨는 컴퓨터를 켜고 월급명세서를 확인했다. 기쁨도 잠시. 한숨부터 나온다. 세금,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으로 월급의 40%가 이미 빠져나갔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감세정책을 꾸준히 펴서 줄인 게 이 정도다.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을 받고 병원진료가 많이 필요한 노인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를 부담하는 젊은이는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 쉽게 말해 30년 전인 2010년에 비해 2040년의 노인 인구(65세 이상)는 대략 3배 늘어났고, 핵심 노동인구(25~49세)는 3분의 2로 줄었다. 즉, 노인 부양 부담이 약 5배로 늘어난 셈. 국민연금, 장기요양, 건강보험 등 노인 부양 관련 공공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이른다.

그래도 강씨는 ‘이 돈이 저 멀리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 간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하긴 돌이켜보면 어릴 적 그는 부모는 물론, 조부모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를 키운 건 일하는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였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들어간 ‘엄청난’ 학원비는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 사랑이 세금이 되어 돌아온 게 씁쓸하고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강씨가 다니는 회사는 3D 입체 화상진료기계를 만드는 기업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환자의 장기 내부 영상을 찍어 의료진에게 전송하는 기계로, 세계 각지의 의료인들로부터 화상으로 진료나 시술,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세일즈팀장을 맡았다.

오늘 오후엔 신의주에서 바이어와 미팅이 있다. SUKTX (Super Ultra KTX)를 타면 1시간밖에 안 걸리는 거리다. 점심을 먹고 서울역에서 신의주행 SUKTX를 탔다. 문뜩 지난해 초 신의주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혹한기 예비군 훈련’이 떠올랐다.

2020년 저출산의 여파로 군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다급해진 군당국은 예비군을 통해 전력을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예비군 훈련기간을 만 39세까지로 대폭 늘린 것. 동원 예비군과 정예 예비군으로 체제를 분리했고, 정예 예비군의 경우 현역 군인 못지않게 훈련해 유사시 바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2030년 남북통일이 이뤄진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전방 초소가 휴전선에서 중국과 맞닿은 국경선으로 옮겨졌을 뿐. 정예 예비군이었던 강씨는 지난 15년간 신의주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영하 30℃, 칼바람이 부는 날 전방 보초를 서다가 초소에 잠시 들러 마시던 따뜻한 보리차가 정말 맛있었는데….”

지긋지긋한 훈련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아련하게 아쉬움이 남았다.

   

오후 3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인 인도인 크리슈나(48) 이사와 만났다. 압록강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던 중 크리슈나 이사는 “당신네 회사가 중국이나 인도로 이전한다는 말이 들리던데, 사실이냐”며 넌지시 묻는다. 사실 그는 최근 회사의 이전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2020년부터 주요 소비 계층인 젊은 인구가 줄면서 한국 내수시장의 규모가 급속히 작아졌다. 2040년 현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한국 시장만을 위해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대형 공장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40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인구수는 4500여 만명. 수만 놓고 보면 30년 전인 2010년과 큰 차이가 없지만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먹고 마시고 놀고 소비하고, 그리고 이를 위해 일하고 저축하는 인구(25~49세)는 27.6%로 급감했다(2010년 41.3%). 근로자의 평균 연령도 약 42세로 높아졌고(2010년 약 39세), 평균 저축률은 15%로 떨어졌으며(2010년 30%), 잠재성장률은 1%대(2010년 5%대)에 머물러 있다.

2010년 선심성 돈쓰기, 2040년 대재앙으로

이렇다 보니 가뜩이나 작았던 내수시장이 더 작아졌다. 기업은 더욱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글로벌 기업의 몇몇 해외법인 매출이 국내 본사 매출의 10배를 넘어선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거대 인구를 자랑하는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다. 2030년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로 넘어왔다. 특히 17억,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와 중국은 아시아 경제의 ‘핵’이다. 일부 과격파 학자들 사이에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통합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30년에 있었던 남북통일 역시 인구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통일이 되기 전 일부 학자들은 “통일이 되면 인구가 대략 30% 이상 늘어 인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먼저 5000조원에 이르는 통일비용이 고스란히 부채로 남아, 가뜩이나 세금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만일 통일이 1970년대처럼 GDP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고성장 사회에서 이뤄졌다면, 국가 부채를 털어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2020년부터 저출산, 초고령화로 저성장 사회에 들어섰다. 당시 북한 역시 고령 인구의 비율이 남한 못지않게 높았다. 젊은 인구의 생산성은 남한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으며, 그만큼 교육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또 통일 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최근 북한 주민들은 아이를 거의 낳지 않고 있어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으로 오는 이민자 수는 급증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지역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민자는 과거처럼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부류와 고학력 엘리트 출신으로 대기업 등 고급 직종에 포진한 부류로 나뉜다. 최근 정부는 이민정책을 고급인력 중심으로 바꿨다.

크리슈나 이사 역시 비슷한 경우다. 일부 보수 우익단체에서는 “이민자들이 한국의 부를 본국으로 빼간다”고 비난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들에게 고마워한다. 이들이 들어와 생산과 소비량을 조금이라도 높여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행 SU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禪)사랑 회원들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적 진보를 거듭해 첨단 사회로 갈수록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성’에 몰입했다. 강씨 역시 매주 선사랑 지부에서 수행을 한다. 부양해야 할 노인만 가득한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주말엔 산촌에 가서 농사를 짓는 등 ‘원시’적 생활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내세운 영성단체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영성’이라는 이름을 달면 상품이 되어 팔려나간다.

   

“2100년엔 삼국시대, 2200년엔 부족국가?”

삐리리~! 희망이에게서 영상전화가 왔다. 강씨에게 희망이는 유일한 희망이다. 중국이나 인도로 유학 가는 친구들과 매일매일 작별해야 한다고 슬퍼하는 희망이를 바라볼 때면 강씨의 마음은 무척 아팠다. 그래도 희망이는 항상 밝다. 오늘도 한국 현대사 시험에서 95점을 받았다며 자랑이다.

“아빠, 현대사 주관식 문제가 ‘2010년부터 2020년 사이를 무엇이라고 일컫느냐’였거든요. ‘잃어버린 10년’이 답이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이것만 맞혔으면 100점인데. 그런데 왜 이때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해요? 선생님도 자세한 설명은 안 하고 그냥 외우라고 하세요.”

예나 지금이나 주요 인물들이 생존해 있는 ‘현대사’는 민감하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는 2000년에 시작된 저출산의 문제가 싹을 틔웠고,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고령화 사회의 전조를 보이던 시기다. 2020년엔 부동산 버블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부동산에 자산이 몰린 베이비붐 세대는 순식간에 빈민 노인층으로 전락했다. 노동인구(15~64세)는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핵심 노동인구(25~49세)는 더 빠르게 감소했다. 소비와 투자가 줄자 경제성장률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드라마틱한 변화의 전초가 바로 이 시기에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그때까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기에 앞으로 다가올 폭풍을 애써 외면했다. 정부에겐 ‘표’가 되지 않는 ‘강씨’ 세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2020년 이후 급속도로 늘어날 정부 지출을 고려한다면, 당시 정부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최대한 많이 지니고 있어야 했지만, ‘선심성’ 돈쓰기는 계속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비싼 사교육에 자녀를 맡겨야 했다. 집값도 비쌌고 직장은 불안했다. 정부가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출산율이 가장 낮았던 중산층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구조적 변화였지만 정부의 대책은 표면적이고 일회성 도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출산율 제고를 외쳐대도, 국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의 폐해는 2040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했다. 예를 들어, 강씨의 부모 세대인 1970년대에는 매해 100만명씩 아기가 태어났지만, 강씨 세대인 2000년대에는 매해 태어나는 아기가 50만명도 안 됐다. 강씨 세대가 모두 2명씩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이제 매해 태어나는 아기는 50만명에 불과하다. 이 세대 역시 1명씩만 낳는다면, 강씨의 자녀 세대는 25만명으로 줄고, 그 자식 세대는 12.5만명으로 줄 것이다.

‘이러다 2100년엔 삼국시대, 2200년엔 부족국가시대의 인구로 돌아가겠군.’

강씨는 코웃음을 친다. 방긋 웃는 희망이를 보면서 지금이라도 활기 넘치고 기회가 남아 있는 중국이나 인도로 이민을 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진다. 2010년 우리 부모는 왜 한 명만 낳았던 것일까. 왜 그때의 사회는 우리의 부모로 하여금 한 명씩 더 낳게끔 대처하지 못한 것일까.

돈만으로 아이 낳게 할 수 있을까?
주간동아 설문조사 48.7% “경제적 부담” … 여성에게 출산·육아 전담도 한 원인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조가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법학과 3학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간한 ‘2009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출산율은 1.19명으로, 조사대상 186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다.

2명의 부부 사이에서 1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있는 것. UN은 2050년 한국의 인구가 700만명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저출산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텅 빈 요람-저출산이 불러올 전 지구적 재앙과 해법’의 저자 필립 롱맨은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중에서 급속히 다가오는 인구의 고령화를 예방하기에 충분할 만큼 아이를 낳는 나라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데다, 저출산과 그로 인한 고령화의 속도가 유난히 빠르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미 고령화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 7%)에 진입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2026년엔 인구 5명 중 1명 이상(20.8%)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2050년엔 노인인구가 38.2%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온갖 출산장려책 국민들은 차가운 반응

저출산이 문제인 건 핵심 노동인구(25~49세)가 급감하면 성장잠재력 또한 잠식된다는 데 있다. 노동인구가 고령화되고, 청년 노동력이 줄어들면 전체 노동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2015년에는 63만명, 2020년에는 152만명의 노동력이 부족해진다.

여기에 노인인구가 늘면서 각 가정의 저축률이 급속히 떨어지고, 기업 활동의 기반인 자본 축적도 어렵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 원장은 “2050년엔 현재 저축률의 3분의 1 수준인 10%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연금, 건강보험 등 고령 관련 정부 지출은 늘어나는데, 세수를 감당할 노동인구가 줄어 재정 부담이 커지는 것도 문제.

정부는 2005년 9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고, 2006년 6월 ‘새로마지 플랜 2010’을 내놓았다. 그리고 2020년까지 출산율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 수준인 1.6명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현재 저출산 장려책은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정책국에서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대통령직속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도 2009년 11월 취학 연령을 앞당기고, 셋째 아이부터 여러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저출산 대책 마련’을 2010년 5대 중점 과제 가운데 하나로 택했다. 이렇듯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그렇다면 국민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1월11~12일 ‘주간동아’가 ‘마크로밀코리아’와 함께 20~4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양육비,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경제적 부담 외에 ‘아이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 때문에’라는 대답도 많았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이재경 교수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육비와 교육비를 줄이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반면 한국 정부의 보육지원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표1 참조). 이 교수는 “공교육이 부실하다 보니 사교육을 많이 시키게 되고, 그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아 잘 키우려 한다”고 말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는 주택비용도 아이를 가지려는 신혼부부에겐 큰 부담이다. 실제로 집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을 못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둘째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도 20대 응답자들은 주택 마련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나타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지원 정책 중에서 확대됐으면 하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 20대 50.4%가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지원 확대’를 꼽았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은 “부동산 거품 때문에 결혼은 물론, 출산을 미루는 부부도 많다”면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 높을수록 출산율 올라가

여성에게만 출산과 육아를 전담케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출산율을 낮추는 주요 원인이다. 문형표 원장은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남성이 육아 및 가사에 참여하는 시간과 출산율은 정비례 관계에 있다. 한국 남성은 참여율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가사 분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특히 일하는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혼 여성들은 결혼을 꺼리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31) 씨는 자아실현 때문에 결혼을 미룬다. 박씨는 “어렵게 공부해서 회사에 들어온 만큼 가정보다 일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혼한 친구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만 몰두하는 모습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힘든 것도 문제다. ‘워킹맘’ 김모(35) 씨는 “직장에서 육아를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적으로 아이를 낳은 직장여성은 육아휴직을 1년간 쓸 수 있다. 김씨는 3개월을 신청하고도 눈치가 보여 2개월 만에 복귀했다. 그는 “아무리 집에 일이 있어도, 인사고과에 불리할까봐 회식자리에도 빠질 수 없다”며 한숨지었다.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과 최숙희 교수는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회사 내에서 전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기업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특히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를 강화하고 혜택을 많이 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출산비, 보육비를 지원해주는 것만으로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참여연대 변금선 간사는 “단순한 현금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정부는 사회적, 구조적 차원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에 대한 남녀의 생각 차이는

남자는 3명도 좋아, 여자는 안 낳거나 딱 1명만

‘무자녀’나 ‘한 자녀’를 원하는 남성은 ‘양육비,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자녀를 낳지 않거나 1명만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72.3%). 반면 여성은 경제적 부담(32.4%) 외에도 ‘아이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27.9%),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 때문에’(11.8%) 자녀를 낳지 않거나 1명만 낳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는 ‘마크로밀코리아’와 함께 전국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20~40대 남녀 500명(남성 266명, 여성 234명)을 대상으로 1월11~12일 설문조사를 실시해 ‘자녀를 갖지 않거나 1명의 자녀만 두려는 이유’를 물었다.

또 ‘몇 명의 자녀를 낳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미혼 여성 중 42.5%는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18.6%), 단 1명만 낳겠다(23.9%)고 답했다. 반면 미혼 남성은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이 21.2%에 불과했다. 오히려 ‘2명을 낳겠다’가 59.9%, ‘3명을 낳겠다’도 13.1%나 됐다. 여성이 출산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지원 정책 중에서 확대됐으면 하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선 남녀 응답자 모두 ‘보육료, 양육수당 확대’(69.9%)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 ‘두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한 지원 확대’(39%),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37.4%), ‘맞벌이 여성 지원 확대’(34.2%),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지원 확대’(32.8%)를 선택했다(복수응답 가능). 재미있는 사실은 20대의 경우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지원 확대’(50.4%)를 상대적으로 많이 꼽아 주택 마련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실제 육아를 담당하는 30대는 ‘보육료, 양육수당 확대’(74.7%)를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해 눈길을 끌었다.

저출산이 계속되면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저출산이 지속돼 고령화가 진행되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58.8%가 ‘노동인구 감소로 인한 생산성 및 국가경쟁력 저하’를, 22.6%가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의 확대로 인한 세금 부담 급증’ 등을 꼽았다.

통일에 대한 기대치도 높지 않았다. ‘남북통일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통일 비용의 급증으로 국가 부채가 늘어나 오히려 큰 부담이 될 것’(56.2%)이라고 답했다. ‘젊은 층의 유입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답변은 24%에 불과했다.

또 상당수 응답자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남녀 모두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의 보육 지원 확대’(3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정시 퇴근, 육아휴직 장려, 탄력적 근로제 도입 등 가족 친화적인 기업 분위기 조성’(29.4%)과 ‘사교육 개혁을 통한 교육비 절감’(26.4%), ‘남성의 양육 및 가사 참여 확대를 통한 가족 문화 개선’(11.4%)이 그 뒤를 이었다.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온라인 리서치업체 ‘마크로밀코리아’는 일본 온라인 리서치업계 1위 마크로밀의 한국 법인으로 2009년 5월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해 리서치 패널을 20만여 명 확보하고 있다.

 

아이 낳으면 혜택이 뭐냐?
임신과 출산 장려정책, 저소득층 위주 … 중산층 지원책 필요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산을 타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 쳐놓은 밧줄을 잡으면 한결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정부의 저출산 지원은 ‘양육’이라는 산을 타는 부모에게 밧줄이 된다. 밧줄이 튼튼할수록 산행은 수월하고, 등산 인구는 많아진다.

2008년 국내 합계 출산율은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대로 가면 2015년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4세 미만 어린이 인구보다 많아진다. 정부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정책국을 통해 다양한 출산지원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책은 크게 ‘임신·출산 지원’ ‘보육 지원’ ‘일·가정 양립 지원’으로 나눌 수 있다. 2010년 아이를 낳은 부부들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지원책의 내용을 낱낱이 살펴보고,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임신·출산 지원 정책

●2인 가구 기준 소득 월 481만원 이하인 난임 부부에게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비 최대 3회(회당 150만원 한도)까지 지원.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총비용의 90%인 270만원씩 최대 3회 지원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 150%(591만원) 이하의 난임 부부에게 인공수정 시술비 3회까지(회당 50만원 내) 지원
●산전진찰비(고운맘 카드)를 30만원으로 확대
●민간병원에서 영유아 예방접종 시 비용의 30%(평균 8000원) 지원
●만 6세 미만 영유아에게 총 6회 무료 검진 제공
●미숙아(4인 가구 기준 소득 월 523만원 이하)에 대해 입원 수술 및 치료비 등 최대 1000만원 지원. 선천성 이상아에 대해서는 최대 500만원 지원
●출산 당사자는 90일간 유급 휴가 제공. 배우자는 3일의 무급 휴가 제공. 16주 이후 유산, 사산한 경우 기간에 따라 30~90일 유급 휴가 제공
●청소년(만 25세 미만) 미혼모 자립 지원(예산 121억원 편성)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원은 주로 저소득층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는 중산층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가구 소득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지원하는 항목은 많지 않다. 산전진찰비(고운맘 카드)를 지난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확대한 것과 예방접종 비용의 30%(평균 8000원)를 지원하는 것, 만 6세 미만 영유아에게 제공하는 무료 검진을 5회에서 6회로 늘린 게 전부다.

한국여성단체협회 남윤인순 상임대표는 “초음파 검사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정도 받아야 하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회당 3만5000원에 이른다. 고운맘 카드는 초음파 검사만 받으면 끝난다. 지원비용을 늘리든가, 아니면 초음파처럼 필수적인 산전진찰비는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젊은 부부 7쌍 중 1쌍이 임신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올해부터 소득 기준이 완화됐기 때문에 2인 가구 기준 소득 월 481만원 이하인 난임 부부는 최대 450만원까지 체외수정 시술비를 지원받는다.

난임 부부를 지원하는 박춘선 ‘아가야’ 대표는 “지원 대상이 늘어난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난임 여성의 물리적, 심리적 상황까지 배려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주 기초적인 난임 시술인 과배란주사(배란유도제) 같은 경우엔 보통 열흘 동안 계속 맞아야 해요. 하지만 직장 여성의 경우 소수의 난임 전문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주사를 맞기란 무척 힘들죠. 과배란주사 같은 간단한 난임 시술은 전문병원이 아닌 지역 보건소에서 담당하면 좋겠어요.”

미혼모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권희정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코디네이터는 “미혼모 자립 정책이 생겨 다행이지만, 지원 대상이 25세 미만으로 한정돼 있는 게 문제”라며 “실제로 상당수 미혼모는 25세 이상이라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아이를 낳은 ‘아빠’의 경우 출산휴가를 유급이 아닌 무급으로 받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도 많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이재경 교수는 “아이를 낳은 아내를 보살펴야 하는 남편의 휴가를 유급도 아닌 무급으로 설정한 것만 봐도 우리나라의 성 평등지수가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며 “배우자의 출산휴가 역시 최소 일주일 유급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육 지원 정책

●‘4인 가족 기준 소득 258만원’ 이하 가구에 대한 보육료 전액 지원
●‘4인 가족 기준 소득 436만원’ 이하 가구의 둘째 자녀 이상에 대한 보육료 전액 지원
●세 자녀 이상 가구의 영유아에게 국공립 보육시설 우선 입소권 제공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차상위계층 이하 가정의 0~1세 아동에 대해 매달 10만원의 양육수당 지원

소득 하위층은 대체적으로 보육료(어린이집 비용)를 면제받는다. 4인 가구 기준 소득 258만원 이하 가구는 보육료를 전액 면제받고, 같은 소득의 맞벌이 가정의 경우 친인척이 와서 아이를 돌보면 ‘아이돌보미’로 인정해 매달 57만~69만원을 지원받는다.

올해부터는 둘째 아이부터 보육료 전액을 지원받는 대상이 4인 가구 소득 기준이 339만원에서 436만원 이하로 늘어난다. 세 자녀 이상 가구의 영유아는 국공립 보육시설에 갈 때 우선 입소권을 갖는다.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차상위계층(4인 가족 기준 소득 163만원) 이하 가정의 0~1세 아동은 매달 1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원받는다.

여성단체연합 경실련 등이 여성의 보육문제를 민간에 맡기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로 서울 YMCA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하지만 양육수당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송지 사무총장은 “차상위계층 이하 가정은 10만원을 받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육료, 양육비 등 현금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문제다. 변금선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당장 보육료를 쥐어주는 근시안적인 정책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민간 보육시설을 준공영화해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010년 보육 예산에서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및 보육시설 환경개선 지원에 배정된 예산은 지난해 211억원에서 55.4% 감소한 94억원이다. 2008년 6월 현재 3만2149개의 보육시설이 있지만, 5세 이하 아동 중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은 29.8%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시 국공립 보육시설의 대기아동 수는 5만여 명에 달한다.

이송지 사무총장은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는 국공립 시설이 전체 보육시설의 5~6%도 안 되다 보니,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다”며 “보육을 해결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부모가 공동으로 출자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보육 문제에 부담을 덜 느끼기 때문에 회원들 중 두 자녀 이상을 낳은 비율이 70%가 넘는다.

보건복지부 저출산고령사회정책국 저출산인구정책과 김용수 과장은 “점차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세 자녀 이상에서 두 자녀 이상의 가구로 혜택 대상을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5일 서울 광진구 서울여성능력개발원에서 열린 미래기획위원회 제6차 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

●만 6세 미만 자녀 양육을 위한 육아휴직 실시(부모 각각 1년까지). 월 5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 제공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집중근로시간제 등 탄력근무제 확산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통한 인센티브 부여
●직장 내 보육기회 확대를 위해 직장보육시설 설치비 지원 확대(융자 지원 7억원, 시설전환비 2억원). 직장 내 부설 유치원 설치 기준 완화해 위탁 운영도 허용

일·가정 양립 정책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게 바로 육아휴직제다. 만 6세 미만의 아동을 가진 부모는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육아휴직자는 지원비를 월 50만원씩 받고, 사용자는 육아휴직자 장려금 월 20만원과 대체인력 채용장려금 월 20만~3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노동부가 조사한 2008년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 비율은 42.5%로 2006년 27.9%, 2007년 36.3%보다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추세다. 변금선 간사는 “육아휴직 사용자 중 법적으로 보장된 1년을 다 쓰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말한다.

지난해 출생아는 46만6000명이었지만 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직장인은 2만9145명이었다. 부모 중 자영업자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부모가 10%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럽의 육아휴직 활용률은 80%를 웃돈다.

한국청년연합회 회원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파파쿼터제 도입과 육아휴직제도 개선을 위한 출산파업’ 기자회견을 열고 파파쿼터제 도입을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자들의 육아휴직제를 우선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숙희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남자들의 육아휴직제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하다 보면 여성들도 더 편하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것. 최 교수는 “남성들이 육아휴직 기간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정 내 성 평등지수도 올라간다”며 “회사 복귀 후 가정 친화적인 기업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다른 출산장려책에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장시간 근로를 제한하고 남자의 육아휴직 비율을 늘리면서 출산율이 올라갔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5년 208명이던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06년 230명, 2007년 310명, 2008년 35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중은 1.4%밖에 안 된다.

이재경 교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성 평등지수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일본이 많은 지원책을 써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건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과 일본보다 더 불평등한 구조죠. 노동시장 내 성차별이 심한데, 어떤 여자가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 할까요?”

성 평등지수를 높이기 위해선 가족친화기업인증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부터 육아휴직제, 부양가족지원제, 교육지원제, 탄력적 근무시간제 등을 평가해 가족친화 기업을 인증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서’ 외에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은 거의 없다. 또 인증 절차가 까다롭고, 인증기업이 되어도 홍보가 잘 안 돼 그다지 이미지 제고 효과가 없다는 것도 한계다. 남윤인순 상임대표는 “가족친화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도 성 평등지수를 높이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은 드물다. 영유아보육법 제14조 및 시행령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이를 설치한 사업장은 3분의 1(155곳)도 채 되지 않는다. 이송지 사무총장은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며 “처벌 규정을 만들거나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 중 현재 정부가 가장 집중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은 탄력근무제 확산이다. 재택근무제, 집중근로시간제 등 탄력근무제를 확산시켜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모가 아이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것. 보건복지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문위원이기도 한 최숙희 교수는 “탄력근무제 등을 통해 양질의 파트타임제가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력근무제가 잘만 시행되면 일과 가정의 양립은 물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부부가 6시간씩 일함으로써 부부 중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소득이 1.5배 늘었다. 육아는 물론 개인의 여가활동에 전념할 여유도 생겼다고 한다.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

●만 6세 미만 자녀 양육을 위한 육아휴직 실시(부모 각각 1년까지). 월 5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 제공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집중근로시간제 등 탄력근무제 확산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통한 인센티브 부여
●직장 내 보육기회 확대를 위해 직장보육시설 설치비 지원 확대(융자 지원 7억원, 시설전환비 2억원). 직장 내 부설 유치원 설치 기준 완화해 위탁 운영도 허용

일·가정 양립 정책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게 바로 육아휴직제다. 만 6세 미만의 아동을 가진 부모는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육아휴직자는 지원비를 월 50만원씩 받고, 사용자는 육아휴직자 장려금 월 20만원과 대체인력 채용장려금 월 20만~3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노동부가 조사한 2008년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 비율은 42.5%로 2006년 27.9%, 2007년 36.3%보다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추세다. 변금선 간사는 “육아휴직 사용자 중 법적으로 보장된 1년을 다 쓰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말한다.

지난해 출생아는 46만6000명이었지만 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직장인은 2만9145명이었다. 부모 중 자영업자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부모가 10%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럽의 육아휴직 활용률은 80%를 웃돈다.

전문가들은 남자들의 육아휴직제를 우선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숙희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남자들의 육아휴직제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하다 보면 여성들도 더 편하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것. 최 교수는 “남성들이 육아휴직 기간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정 내 성 평등지수도 올라간다”며 “회사 복귀 후 가정 친화적인 기업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다른 출산장려책에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장시간 근로를 제한하고 남자의 육아휴직 비율을 늘리면서 출산율이 올라갔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5년 208명이던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06년 230명, 2007년 310명, 2008년 35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중은 1.4%밖에 안 된다.

이재경 교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성 평등지수를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일본이 많은 지원책을 써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건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과 일본보다 더 불평등한 구조죠. 노동시장 내 성차별이 심한데, 어떤 여자가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 할까요?”

성 평등지수를 높이기 위해선 가족친화기업인증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부터 육아휴직제, 부양가족지원제, 교육지원제, 탄력적 근무시간제 등을 평가해 가족친화 기업을 인증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서’ 외에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은 거의 없다. 또 인증 절차가 까다롭고, 인증기업이 되어도 홍보가 잘 안 돼 그다지 이미지 제고 효과가 없다는 것도 한계다. 남윤인순 상임대표는 “가족친화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도 성 평등지수를 높이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은 드물다. 영유아보육법 제14조 및 시행령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이를 설치한 사업장은 3분의 1(155곳)도 채 되지 않는다. 이송지 사무총장은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며 “처벌 규정을 만들거나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 중 현재 정부가 가장 집중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은 탄력근무제 확산이다. 재택근무제, 집중근로시간제 등 탄력근무제를 확산시켜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모가 아이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것. 보건복지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문위원이기도 한 최숙희 교수는 “탄력근무제 등을 통해 양질의 파트타임제가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력근무제가 잘만 시행되면 일과 가정의 양립은 물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부부가 6시간씩 일함으로써 부부 중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소득이 1.5배 늘었다. 육아는 물론 개인의 여가활동에 전념할 여유도 생겼다고 한다.

 

수당 천국… 아버지의 달… ‘출산 우등국’ 부럽다
프랑스, 생애주기별로 현금 수당 지원 … 스웨덴, 부모가 같이 자녀양육에 참여
이설 기자 snow@donga.com
 
 
프랑스와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출산 우등국’으로 통한다. 한발 앞서 인구문제를 고민한 저력으로 2008년 현재, 2명에 가까운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였던 두 나라의 탈출 비결은 뭘까. 국내 저출산 해법을 찾기 위해 선진국 사례를 연구해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도움으로 스웨덴과 프랑스의 가족정책을 분석했다.
 
 

두 나라는 아이 낳기를 강요하거나 권유하지 않았다. 출산 기피를 금지하거나 비판하지도 않았다. 대신 여성이 일과 양육 모두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했고, 그 고민을 담은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 결과 프랑스는 2007년 출산율 2명을 돌파하며 ‘유럽 출산율 꼴찌국가’의 꼬리표를 뗐고, 스웨덴은 ‘엄마들의 천국’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한국에서 셋째는 ‘부의 상징’이지만 프랑스의 상황은 반대다. 그곳 부모들 사이에는 ‘아이 셋을 낳으면 일하지 않고도 먹고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간다. 허리가 휘는 게 아니라 놀고도 먹고산다니, 우리로서는 어리둥절한 이야기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가족정책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는 부모가 낳지만 기르는 건 국가가 한다’는 게 프랑스 가족정책의 모토예요. 임신부터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주기별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죠. ‘워킹맘’을 위한 보육 인프라도 튼튼하고요.”(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

일단 낳기만 하면 30가지 수당으로 현금 지원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저출산을 고민한 나라다. 아무도 저출산에 대해 고민하지 않던 1917년에 출산장려 수단으로 가족수당제도를 도입했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1970년대부터. 68혁명 이후 불어닥친 성해방운동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꾸준히 낮아져 1995년에는 1.71명까지 떨어졌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프랑스 정부는 강력하고 주도면밀한 가족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현재 프랑스의 가족정책 예산은 GDP(국내총생산)의 4.7%인 880억 유로(약 150조원)에 이른다.

프랑스의 가족정책은 다양하고 포괄적이다. ‘일하는 여성에 대한 육아 지원’을 목표로 현금 지원, 보육 지원, 조세 혜택, 탄력적 근무제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 중 무려 30가지에 이르는 현금 지원은 ‘프랑스 가족정책의 꽃’이다.

“프랑스의 가족정책은 수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당 천국’이에요.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생애주기별로 갖가지 수당이 마련돼 있죠. 출산 기피의 가장 큰 이유인 경제적 부담을 나라가 해결해주는 겁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문희 연구위원)

수당 혜택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 임신 6개월 이상인 산모는 누구나 모든 치료와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임신 7개월이 되면 임신수당 800유로(약 140만원)가 나오고, 첫아이를 낳으면 격려금 855유로(약 150만원)를 준다. 공립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병원비도 무료다.

#시나리오 1

파리에 사는 주부 A씨는 세 살, 8개월 된 딸을 둔 엄마다. 그의 통장에는 매달 정부로부터 약 16만원이 입금된다. 아이 둘을 낳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이 가족수당은 아이가 11세가 되면 약 4만원, 16세가 되면 약 7만원이 더해진다.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에는 매달 약 69만원의 육아수당도 나온다.

A씨가 받는 수당은 아이가 2명인 가정에게 주는 2자녀 수당. 아이가 3명이면 약 45만원, 4명부터는 1명당 약 25만원이 추가된다. 프랑스는 가족형태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유자녀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동거부부, 미혼모는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도 혜택 대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은 학용품 구입 등 실질적으로 수당을 활용하고, 중산층은 저축을 하거나 다른 용도로 쓴다”고 말했다.

아동수당을 기본으로 자녀의 수나 소득형태 등에 따라 추가 수당이 더해진다. 월소득 약 560만원 미만에 3세 이하의 자녀를 둔 가정에 매달 지급하는 영유아 수당(약 22만원), 매년 9월 개학마다 지급하는 개학 수당(약 30만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저소득층 수당, 주택 수당, 입양 수당, 육아휴직 수당, 편부모 수당 등이 있다. 이 중 셋째 자녀 출산을 대상으로 하는 수당이 풍부하다.

“프랑스에서 1, 2명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셋째를 장려하기 위한 수당 혜택이 발달했어요. 셋째를 낳으면 휴가비, 이사비, 주택보조금 등 특별수당을 받을 수 있어요. 대중교통비 30% 할인에 영화관이나 식당에서도 25% 할인 혜택이 주어집니다.”(홍승아 연구위원)

#시나리오 2

파리에 사는 의사 B씨는 출퇴근길마다 10분 거리에 있는 탁아소에 들른다. 일하는 동안 두 살배기 아들을 맡겨둔 곳이다. 출근이 이르거나 퇴근이 늦은 날에도 걱정이 없다. 24시간 전문 보육인이 상주하기 때문. 일이 있는 주말에도 간혹 아이를 맡긴다.

출산 직후 프랑스 직장여성에겐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육아휴직(최장 3년)을 내고 직접 아이를 돌보거나, 국가가 운영하는 탁아소(크래시)에 맡기거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이든 비슷한 정도의 지원을 받기에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선택과 다양성’ 보장하는 보육정책

직장 눈칫밥에 시달리는 한국 직장여성과 달리 프랑스는 양쪽 부모 모두에게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육아휴직 기간 내내 매달 500유로(약 60만원)의 육아수당이 나온다. 셋째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주어지는 육아수당은 매달 750유로(약 90만원)다.

프랑스 보육정책의 핵심은 ‘선택과 다양성’으로 요약된다. 각자 판단에 따라 일과 육아의 균형을 정하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출산 후 바로 복귀하는 ‘워킹맘’과 전업주부 모두 수당 혜택을 받기에,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도 많아졌다. 보육료는 가정의 수입에 연동해 정해지는데, 자녀 수가 많을수록 가격이 내려간다. 한 자녀 가정은 월수입의 12%, 두 자녀는 10%, 세 자녀는 7.5% 선이다.

“여러 보육 형태 중 탁아소나 베이비시터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프랑스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탁아소가 혈관처럼 퍼져 있어요. 보육 교사와 시설이 우수해 질적으로도 믿을 만하죠. 최근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탁아소보다 안전하고 교육의 질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베이비시터 바람이 불기도 했어요. 외국어 조기교육 붐이 일면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언어를 구사하는 보모가 특히 인기를 끌었죠.”(홍승아 연구위원)

   

‘엄마들의 천국’ 스웨덴 스톡홀름 근교의 울릭스달 유아학교.

#시나리오 3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C씨는 두 달째 육아휴직 중이다. 직장일로 바쁜 아내 대신 아기 돌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남녀가 똑같이 자녀양육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휴직에 대한 불만은 없다.

‘복지 1등국’ 스웨덴의 가족정책은 더욱 선구적이고 혁신적이다. 스웨덴은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1921년부터 ‘모든 노동 인력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임금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에 따라 여성의 자립을 적극 지원해왔다. 특히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함께 책임지는 보육문화는 좋은 역할모델.

“스웨덴은 1995년부터 ‘아버지의 달’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요. 육아휴직 기간 480일 중 아버지가 두 달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죠. 부모가 동등하게 육아휴직을 배분해 쓰면 추가 보너스를 제공하는 ‘성 평등 보너스’도 남녀가 똑같이 양육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입니다.”(이삼식 실장)

‘시간단축 육아휴직’과 ‘부모휴가’ 제도

부모휴가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크다. 휴가기간 480일 중 390일은 부모 수입의 80%를, 나머지 90일은 매일 60크로나(약 1만원)를 지급한다. 저소득층 가정은 매일 150크로나(약 2만5000원)를 받는다.

#시나리오 4

얼마 전부터 D씨의 퇴근시간은 오후 4시로 앞당겨졌다. 일찍 퇴근해 다섯 살 난 아들을 돌보며 집에서 잔무를 처리한다. ‘시간단축 육아휴직’ 제도에 따라 8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는 평소 근로시간의 4분의 3만큼 근무시간을 줄인 것이다.

8세 미만 자녀의 부모는 ‘시간단축 육아휴직’ 제도와 함께 언제든 16개월간 휴가를 낼 수 있다는 내용의 ‘부모휴가’ 제도도 쓸 수 있다. 아이가 아프면 최장 120일간 쉴 수 있다. 서문희 연구위원은 “노동시간의 유연성 없이는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은 지나친 일 중심 사회예요. 노동시간이 변해야 가족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일과 양육 사이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죠. 스웨덴은 돌봄 노동이 필요한 시기에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어요. 우리도 비슷한 법이 있지만 사용률이 ‘제로’에 가까운 반면, 스웨덴에서는 보편적이죠.”(서문희 연구위원)

출산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세계 꼴찌’인 한국의 출산율은 아이가 짐이 돼버린 사회 시스템에서 비롯한다. 그 시스템의 바탕에는 전통적 가족관과 가부장적 문화, 일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입시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렇기에 유럽 ‘출산 우등국’에서 들여온 제도가 정착하는 데는 여러 한계가 있다. 이삼식 실장은 “프랑스와 스웨덴이 50년, 100년에 걸쳐 출산율을 끌어올린 것처럼 우리도 길게 내다보고 가족정책의 뿌리를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2005년에야 저출산을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간 경제계발 어젠다에 밀려 복지는 사후대책 정도에 머물러 있었죠. 저출산 문제는 여러 사회 문제와 맞물려 있어요. 프랑스와 스웨덴 부모들이 안심하고 공보육에 자녀를 맡기는 것은 입시경쟁이 없기 때문이죠. 양성평등에 대한 마인드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고요. 시대가 변한 만큼 아버지 중심으로 굴러가는 가족문화를 고집하기보다 유연하게 제도를 보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이삼식 실장)

 

“임산부 아끼는 회사 믿고 셋째도 낳았어요”
출산 장려 두 팔 걷어붙인 기업들 남다른 배려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지난 2005년 개원한 아모레퍼시픽 용인 어린이집. 엄마는 업무 효율이 높아졌고 아이는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워킹맘’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알게 모르게 주어지는 직장 내 눈칫밥이다. 201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마음 편히 출산휴가를 가거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기업은 무척 드물다. 1년 육아휴직은 ‘책상 뺄 각오’ 없이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하나라도 더 낳자’며 친가족 정책을 펼치는 기업들이 있다.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거나 사내 어린이집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원들의 출산을 장려하는 회사들을 찾아가보았다.

건강식품 전문기업인 천호식품은 2007년부터 출산장려금 정책을 펼쳤다. 금액도 파격적이다. 직원이 첫째와 둘째를 낳을 경우 각각 100만원, 셋째를 낳을 경우 5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한다. 게다가 셋째를 낳으면 2년 동안 매달 30만원씩 총 720만원의 육아지원금을 준다. 출산장려금과 육아지원금 외에 교육비도 지원한다. 전 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중학생은 기성회비, 고등학생은 등록금 전액, 대학생 자녀는 매 학기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사실 셋째는 계획에 없었어요. 회사에서 나오는 출산장려금과 육아지원금 유혹에 넘어가 낳은 거죠.(웃음)”

유난히 많은 주부 직원 “신이 내린 직장”

천호식품 김현주(37) 계장은 2007년 8월 셋째 아이를 낳고 회사로부터 출산장려금 500만원과 육아지원금 720만원 등 총 1220만원을 받았다. 회사가 자녀를 낳고 키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 것. 사내 출산장려 분위기도 큰 도움이 됐다.

“직장 여성이 임신을 하면 위기감을 느껴요. 진급은 물 건너가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다녀오면 내 책상이 없어지진 않을까 불안해하죠. 실제 그런 일도 빈번하고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오히려 임신하면 더 대우를 받아요. 그러다 보니 ‘셋째 가져볼까’ 하는 말이 사내 유행어가 됐죠.”

회사가 많은 배려를 하기 때문에 천호식품에는 유난히 주부 직원이 많다. 보통 주부 직원들은 드나듦이 많지만 이곳 직원들은 한번 들어오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편이 ‘그런 회사가 어디 있느냐’라고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회사가 직원들에게 많이 베풀다 보니 자연히 회사에 대한 믿음과 애착이 커지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아이 걱정 떨치니 업무 효율도 2배

유아복과 유아용품 전문회사인 해피랜드F·C도 출산장려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셋째를 낳으면 최대 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자사 직원은 물론 700여 곳의 판매점 점주와 300여 곳의 협력업체 직원까지 대상에 포함된다. 해피랜드F·C 홍보팀 김용범 과장은 “출산장려금 정책을 시행한 이후 협력업체와 본사의 유대감 및 소속감이 한층 강화됐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해피랜드F·C는 상반기와 하반기 2회에 걸쳐 직원 자녀(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에게 학자금을 지급하고, 출산한 직원들에게는 육아용품을 지원한다. 또 자녀들이 있는 직원들에게는 명절마다 회사 상품권을 지급하며, 직원 자녀들의 방학캠프를 지원한다.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들은 아침이면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느라 발을 동동 구른다. 저녁이면 아이를 데리러 가느라 동료들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다 지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다반사. 직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인 아모레퍼시픽은 다르다. 서울 본사를 비롯해 용인과 수원 사업장에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아모레퍼시픽 서울 본사 고객상담팀의 김민경(38) 씨는 세 살 된 둘째 아들과 함께 출퇴근을 한다. 출근을 하면서 사내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퇴근할 때 데리고 가는 것.

“일반 어린이집은 아침 9시에 문을 열잖아요. 8시 반까지 출근하는 저로선 난감하죠. 저희 회사 어린이집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상 더 일찍 문을 열고 문 닫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침에 일찍 회의가 있거나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할 때도 걱정이 없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점.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상황과 같아서 걱정도 덜하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아들 또한 엄마가 가까이에 있어 정서적으로 훨씬 안정됐다고 한다. 영유아 자녀를 둔 직원들은 마음 편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한다.

“노산이라 둘째 낳을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회사 덕분에 첫째를 수월하게 키워 둘째 낳을 용기가 생겼어요. 나이만 어리면 더 낳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주부 직장인들은 도우미 아주머니를 두지 않는 한 슈퍼우먼이 돼야 하잖아요.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회사의 배려가 고마울 따름이죠.”

아모레퍼시픽 외에도 사내 보육시설을 마련해놓은 기업이 적지 않다. IT서비스 업체인 SK C·C는 2005년 경기 분당으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사내 보육시설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LG전자도 가산동 MC연구소와 평택·창원·구미 등 주요 사업장에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3월 소공동 본점에 사내 어린이집 1호점을 열고 이후 전국 점포로 확대할 계획이다.

셋째를 낳은 직원의 산부인과에 찾아가 출산장려금 500만원을 전달하는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

수유 공간과 탄력근무제 도입하는 기업도 증가

임신하거나 수유를 하는 직원들을 위한 사내 공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보령메디앙스는 수유를 하는 여직원들이 편안하게 모유 유축을 할 수 있게 ‘아이맘룸’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회사 제품인 젖병 전기소독기, 수유 패드, 모유 보관팩, 물티슈 등이 마련돼 있다. 세계적 토털 헬스케어 기업인 한국애보트는 ‘엄마의 방’을 만들어 출산과 모유 수유를 장려한다. 또한 출산을 앞둔 직원들을 위해 모유 수유 강좌도 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서울 본사에는 여성 간호사가 상주해 수시로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출산과 양육 등 생애주기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회사도 많아졌다. 한국애보트는 하루 8시간을 근무하면서 출퇴근 시간을 유동적으로 운용하는 탄력 근무시간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대웅제약 또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할 수 있게 출근시간을 조절한 ‘플렉서블 타임제’를 도입했다. 롯데백화점은 임산부와 아이를 둔 직원을 위해 출퇴근 유동근무제를 실시할 예정.

지난해 11월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보건복지가족부가 주관하는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획득한 롯데백화점은 이 밖에도 난임 직원을 위한 불임휴가제를 도입하고, 10만원씩 지급되던 출산장려금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 기획부문 김세완 이사는 “직원들이 가정생활과 업무를 조화롭게 병행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호띠 아이 정말 훌륭할까
“백호랑이 정기 받자” 군중심리 … 출산 붐 일어나면 치열한 경쟁


30대 중반 주부 김모 씨는 새해부터 울상이다. 시어머니가 “백호랑이해에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 내년 3월까지 둘째를 가져라”는 폭탄 발언을 한 것. 김씨는 첫아이 양육비와 대출이자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 고민에 빠졌다.
1월 하순 출산을 앞둔 30대 초반 주부 천모 씨는 백호랑이띠 아이를 낳게 됐다고 좋아했지만, 입춘일(2월4일)을 기준으로 하면 태어나는 아이가 백호랑이가 아닌 소띠라는 사실을 깨닫고 낙담했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랑이해를 둘러싸고 해프닝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호랑이띠 사주는 정말 좋은 것일까.
해의 명칭은 10간12지의 조합에서 비롯된다. 10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로, 12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로 구성된다. 10간에는 오행별로 해당 색상이 있다. 갑(甲)·을(乙)은 목(木)에 속하며 청색, 병(丙)·정(丁)은 화(火)에 속하며 적색, 무(戊)·기(己)는 토(土)에 속하며 황색, 경(庚)·신(辛)은 금(金)에 속하며 백색, 임(壬)·계(癸)는 수(水)에 속하며 흑색에 해당한다. 경인년(庚寅年)은 흰색에 속하는 경과 호랑이를 뜻하는 인이 만나 백호랑이해가 되는 것.
오행 색상으로 보면 같은 호랑이해라도 청호랑이(갑인), 적호랑이(병인), 황호랑이(무인), 백호랑이(경인), 흑호랑이(임인)의 다섯 종류로 나뉜다. 그렇다면 백호랑이는 나머지 색의 호랑이보다 좋은 것일까? 답은 아니다. 각 호랑이해마다 고유의 장점과 기질을 갖고 있어 경인년 호랑이가 최고라고 할 수 없다. 갑인은 맹호출림(猛虎出林)의 위세당당한 호랑이, 병인은 조림만상(照臨萬象)의 기예특출한 호랑이, 무인은 영지(領地)를 개척하는 태산장엄(泰山莊嚴)한 호랑이, 경인은 백호출림(白虎出林)의 맹위당당한 호랑이, 임인은 북두응산(北斗應山)의 문명개발을 이끄는 호랑이로 통한다. 다만 호랑이가 신성한 동물이라는 점과 백의민족의 특성이 맞물려, 우리 민족이 백호랑이에 친숙한 감정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마케터로서 놓칠 수 없는 호재다. 백호 출산 붐은 이런 상술의 연장선에 있다. 일부 역술계도 “경인년에 태어난 아이는 공직에서 출세한다”라며 출산 붐에 일조하고 있다. 일곱째 천간 경(庚)이 강한 쇠붙이인 금의 속성을 지녔고 금극목(金克木)의 기운이 관운(官運)을 나타낸다는 것. 판·검사, 군인, 경찰, 기자, 의사 등은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다. 출산 붐이 일어나는 것은 “이왕 아이를 가진다면 백호랑이 정기를 받자”는 군중심리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맞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층이 특정 띠에 몰려 있지 않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오히려 권력의 꽃인 대통령과 관련된 사람은 사(巳·뱀띠)생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신사생), 박정희 대통령(정사생), 정동영 대통령 후보(계사생) 등이 사(巳)생이다.
인구학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재복이 좋다 하여 출산 붐을 이뤘고, 실제로도 출산이 많아졌던 2007년 정해(丁亥)생들의 사정을 보자. 예년보다 늘어난 머릿수에 어린이집 등록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승자가 되지 않는 한 황금돼지띠해 출생자들의 재복이 다른 해 출생자보다 크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경인년 출산 붐의 허실을 냉정히 따져야 할 것이다.
장옥경 명리학 연구가·해피올메이트 소장 blog.daum.net/writerjan

둘째 아이? 불쑥 내게 온 축복이었네
소설가 김태용의 ‘둘째 키우는 즐거움’ … 직접 키워봐야 그 기쁨과 느낌 알 것
김태용 소설가 maranana@naver.com
 
 

살다 보면 인생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순간 이 삶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혹시 내가 간절히 원하던 삶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이렇게 될 일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희극적 승복의 순간.

내겐 둘째 아이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첫째 아이도 그랬다. 대개의 작가처럼 나 역시 이타심보다는 자의식으로 무장한 채 내면의 공허한 고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멸시하고, 주기적으로 인생의 비극예찬에 빠지는. 그래서 사랑은 하되 나와 닮은 존재를 마주하고 싶지 않고,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은. 한마디로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스무 살 때 한 여자를 만났다.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결혼서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낳지 말자”는 나의 선포에 아내가 조금은 서운해했던 것 같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별 기대 없이 “아이를 낳아볼까”, 장난처럼 대화하다 ‘낳기’로 합의했다.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무도, 아이에 대한 애정의 발로도 아니었다.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이가 있어도 좋겠다’는 다소 무책임한 긍정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출산 시기까지 고려해 계획한 대로 임신이 이뤄졌다.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거꾸로 누워 있어 제왕절개를 했지만, 대체로 성공적인 출산이었다. ‘이왕이면 딸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실현됐다. 그렇게 2004년 4월 첫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바로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것이 결혼인 줄만 알았으나 아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출현은 지구를 통째로 한 바퀴 돌려놓은 것 같았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고, 나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됐다.

내 표정부터 달라졌다는 주변의 반응에 한편으론 쑥스러웠고 한편으론 우쭐했다. 하나의 생명체를 돌본다는 것의 숭고한 피로감은 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새어나오게 했다. 한 아이만 건강하게 잘 키우자는 다짐을 여러 번 했다. 둘째를 낳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했다.

하지만 3년마다 아내와 나의 기운이 맞는지, 전혀 계획에 없던 아이를 3년 만에 또 갖게 됐다. 임신 소식을 듣자 고무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침 작가로, 생활인으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첫째 아이에 대한 육아의 피로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는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를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고개를 심하게 저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토록 아이의 존재는 심각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런 심리의 이면엔 경제적 부담이 크게 자리했다.

 

고무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

아내 역시 둘째의 임신에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엄마는 확실히 아빠와 달랐다. 첫째를 위해서라도 동생이 있는 것이 좋다며 임신을 곧바로 축복으로 여겼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엄마 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랐다. 초음파 사진 속 둘째는 첫째와 무척이나 흡사했다. 첫째는 엄마의 배를 보며 마치 동생이 옆에 있는 듯 조그만 입술로 종알종알 동생을 불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첫째를 보며, 이 아이가 동생 없이 자란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하기도 했다.

2007년 4월 둘째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딸과 아들 남매. 주변에선 200점짜리 아이들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무엇보다 아이의 얼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 부부를 기쁘게 했다. 누구를 닮았나 조목조목 따져보다 다들 엄마, 아빠는 물론, 누나와도 똑같이 닮았다고 얘기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같은 유전자’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외형이 더욱 닮아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두 아이가 비슷한 외형에 비슷한 성격이 아니라, 비슷한 외형에 조금은 다른 성격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이유식과 육아법, 집안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도 둘의 성격은 달랐다.

첫째가 자기 내면에 치중해 상처를 쉽게 받으면서도 스스로 극복하려는 성향의 아이라면, 둘째는 사내아이답지 않게 ‘새처럼 지저귀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누나가 귀찮아서 피할 정도로 졸졸 따라다닌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따지기도 한다. 간식거리가 생기면 꼬박꼬박 누나 것을 먼저 챙겨놓고, 누나에게 가져다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익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부모가 안 보는 사이에 누나가 군기를 잡는지도 모르지만.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 생긴 둘째들

아빠인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르다. 첫째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언제부터 첫째는 나를 ‘자가’라고 부른다. ‘자가’는 ‘자기’의 변형인데, 처음엔 엄마를 따라 한 것이겠지만 이 말이 익숙해지다 보니, 아빠라고 부르기를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하인(?)처럼 부리기도 한다. 반면 둘째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목소리를 꼬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두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지 궁금하기만 하다.

‘둘째 키우는 즐거움’이라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동안 아이, 특히 둘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둘째가 태어난 후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첫째보다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인들이 둘째를 가져 무엇이 좋은지 물으면 명확히 설명할 순 없다. 그냥 ‘예쁘니까’ ‘첫째하고는 달라. 직접 키워보면 알아’라고 막연히 말할 뿐이다. 하지만 이 막연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둘째를 가진 부모들은 알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작업실에 있다. 아이에 대한 글이니 아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집에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첫째가 열이 나고 목이 아프다고 앓아누웠다. 밥도 거르고 약도 잘 먹지 못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고 둘째는 “누나가 아파요. 누나가 울어요” 하며 덩달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면서도 아프다는 이유로 누나가 엄마를 독차지하는 모습을 보고는 더 과장되게 웃으며 논다.

누나 옆에서 낮잠을 잔 둘째도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누나로부터 감염된 것일지 몰라도, 누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아이다운 심리가 감기 증상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둘을 떼어놓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서로 감기약을 먹으려고 다투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하러 작업실에 간다”는 아빠의 말에 첫째는 무심히 손을 흔들었지만, 둘째는 열이 올라 발개진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누나와 내가 아프니까 엄마, 아빠가 다 옆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 같아 애잔했다. 사탕을 꺼내 입속에 넣어주고 나서야 울음이 그쳤다. 아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아이를 울려야 하다니, 작업실로 향하는 발길이 조금은 무거웠다.

이 글이 둘째를 위해서인지, 둘째를 키우는 부모를 위해서인지, 둘째를 포기한 부부를 위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 생긴 둘째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나 역시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내 위로 몇 차례 유산을 해 더 이상 임신과 출산이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우연히 나는 생겨났고 예정보다도 빨리 세상에 나왔다. 세상의 둘째 중에는 첫째보다 부모의 무계획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예상치 않게 태어나 예상치 않게 성장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 역시 어릴 적 막연하게 결혼하면 둘 이상 낳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둘째로서 때로는 부족하게, 가끔은 과하게 받은 사랑을 둘째를 키우면서 배우고 싶은 건 아니었던가. 첫째가 무한한 애정의 대상이라면, 둘째는 나를 돌아보고 부모와 형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다. 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황홀한 희극과도 같다.

그렇다면 셋째와의 시간은 어떨까. 아니, 난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김태용 씨는 2005년 단편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집’으로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2007년 발표한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로 제41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자음과 모음’에 연재한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