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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호수.’ 일본 아키타(秋田)현의 다자와 호수를 그렇게들 부릅니다. 그 호수 옆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늦은 밤 도착한 호숫가 캠핑장.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너도밤나무 숲 속에 타프(그늘막)를 치고 모닥불 불씨를 뒤집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늦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거울처럼 고요한 다자와 호수 앞에 섰습니다. 아침 햇살이 이제 막 번져 가는 호반에서 그곳이 왜 ‘신비의 호수’라 불리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다자와 호수는 화산 분출로 주위의 산들이 융기하면서 푹 꺼진 자리에 만들어진 칼데라 호수입니다. 최고 수심 423m. 믿어지시는지요.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호수의 물 깊이가 그랬습니다. 아침 햇살에 호수는 일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푸른 하늘을 거울처럼 비춰냈고 다시 잉크빛 청색으로 빛났습니다. 둘레의 산들은 모두 흰 구름을 이마에 이고서 호수의 푸른빛을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호수에는 한 마리 용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늙기를 거부한 채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빼어난 미모의 여인. 전설에는 그가 덧없는 욕망을 좇다가 용이 되어 호수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호수 위에 카약을 띄워 놓고 뱃전에 하늘을 보고 누웠습니다. 끝 모르는 깊이와 청색 물빛, 그리고 용의 전설까지 모두 다 신비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아키타현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트램핑’을 권합니다. 트램핑이란 트레킹과 캠핑을 조합한 신조어입니다.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고지대의 평화로운 숲과 호수의 캠핑장에서 트레킹과 함께 캠핑을 즐기는 여정입니다. 여기다가 삐걱대는 마루를 가진 오래된 온천장과 우윳빛 유황온천에서 노천욕까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아키타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은 예외없이 ‘좀 더 늦게 오지 그랬냐’며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북위 40도선이 지나는 아키타의 위도를 직선으로 이으면 신의주와 함흥쯤입니다. 그러니 그곳에는 가을이 더 빠릅니다. 10월로 접어들면 아키타의 산은 모두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 주쯤 뒤에는 온 산이 불붙듯 단풍으로 황홀하게 물든답니다. 가을이 지나면 아키타는 이번에는 설국의 세상이 시작됩니다. 한 해 중 아키타가 가장 아름다운 시즌이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 아키타, 그 자체로 우람한 자연인 곳 우선 일본 아키타(秋田)현에 대한 예습.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아키타현은 일본에서도 가장 청정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소외돼 온 지역이다. 우리로 치자면 동쪽 지역은 강원도를, 서쪽은 전라도를 닮았다. 동쪽으로는 해발 2000m에 육박하는 고산 준봉들로 이뤄진 산맥을 등뼈로 삼고 있으며, 서쪽에는 바다를 끼고 너른 논이 펼쳐진다. 고산지대는 수백 년 묵은 우람한 너도밤나무와 삼나무들이 원시림의 숲을 이루고 있고, 들로 나가면 소박한 농촌마을마다 잘 익은 황금빛 벼들이 물결치는 논이 그득하다. 어디 이뿐일까. 고산 준봉들은 맑은 계류와 그 아래 거울 같은 호수를 빚어내는가 하면 흰 김을 내뿜으며 솟는 협곡의 노천온천도 도처에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숲처럼 느껴지는 아키타현이야말로 자연 속에서 즐기는 캠핑의 최적지다. 캠핑만으로 아무래도 아쉬우니 여기다 트레킹을 더한다. 트레킹과 캠핑을 합친 이른바 ‘트램핑’이다. 트램핑의 목적지로 아키타현을 꼽는 것은 자연의 그늘 속에서 걷기에, 또 머물기에 좋다는 뜻이다. 여행의 시기로 보더라도 아키타현은 이즈음이 최적기다. 아키타는 가을의 초입부터 겨울까지 한 해 중 최고의 풍경을 보여준다. 아키타의 위도는 북위 40도쯤. 위도를 직선으로 한반도까지 긋는다면 신의주와 함흥으로 이어진다. 위도가 높으니 가을이 빠르고 겨울은 깊다. 10월 초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아키타의 황홀한 가을 단풍은 단풍명소가 많은 일본에서도 알아준다. 겨울철에는 내내 폭설이 내리는데 그때의 그림 같은 설경도 못지않다. 아키타로의 여행을 지금 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숲 트레킹으로 찾아가는 온천순례 아키타현 주민들에게 ‘자랑할 만한 명소’를 묻는다면 십중팔구 ‘뉴토 온천’을 꼽을 게 틀림없다. 뉴토는 한자로 ‘유두(乳頭)’라고 쓴다. 온천의 이름은 마을 뒤쪽의 뉴토산(乳頭山·1478m)에서 나왔다. 젖가슴 모양이고 정상 부위가 유두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뉴토 온천이란 뉴토산 아래 일곱 개 온천을 모아서 부르는 말이다. 산 속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이들 온천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선 온천이 있는가 하면, 수질이 서로 다른 4개의 탕을 두고 있는 온천도 있다. 삼나무 껍질을 지붕으로 이은 곳도 있고, 현대식 건물도 있다. 모두 빼어난 노천탕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곱 개의 온천은 제법 운치 있는 계곡을 낀 숲길로 이어진다. 너도밤나무 숲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면서 온천을 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온천을 정기순환하는 셔틀버스가 운행하니 꼭 걸을 필요는 없다. 일곱 개 중 여섯 개 온천은 서로 이웃해 있다. 걸어서 1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트레킹은 차로 계곡 최상류의 구로유(黑湯) 온천까지 가서 걸어 내려오면서 즐기는 것이 편하다. 나머지 하나의 온천만 홀로 뚝 떨어져 있는데 여기야말로 아키타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전역에서도 최고의 온천으로 꼽히는 곳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건 한편으로 불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은 3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욕실과 화장실을 따로 쓰는 방도 있고, 다다미를 깔고 오래된 화로만으로 난방을 하는 방도 있다. 담쟁이 넝쿨이 휘감은 건물과 삐걱거리는 마룻장과 손때 묻은 가구들이 허름한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격조 있다. 숙박비는 10년 전과 다름없이 하루 1만 엔(약 11만 원). 아침과 저녁식사가 포함된 금액인데, 성수기나 비수기 가릴 것 없이 똑같은 금액을 받는다. 온천 주변은 단풍이 드는 10월 무렵의 경치가 가장 빼어난데, 이때의 숙소 예약은 6개월 전 예약이 개시되자마자 1분 만에 다 마감된다. 굳이 쓰루노유 온천에 묵지 않아도, 인근의 뉴토 캠핑장에서 숙박하면서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 쓰루노유 노천온천만 이용하는 요금은 500엔. 이 돈으로 온통 단풍으로 불붙은 일본 최고의 노천온천에서 운치 있는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온천 인근의 뉴토 캠핑장은 자연공원이라고 할 만큼 규모가 크고 시설도 좋다. # 비현실적인 호수에 배를 띄우다 다자와 호수도 아키타현이 자랑하는 명소 중의 하나다. 화산 폭발로 일대의 산들이 솟아오르며 지각이 함몰돼 만들어졌다는 다자와 호수는 수심이 423m로 일본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호수가 위치한 자리가 해발 249m. 그러나 호수 밑바닥은 해수면보다 174m 아래다. 일본에서 수심이 두 번째로 깊은 호수의 수심이 167m라니 다자와 호수의 깊이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알 만하다. 호수 둘레가 20㎞에 달하니 크기도 매머드급이다. 그러나 호수에는 물고기가 거의 없다. 온천에서 흘러드는 산성수 탓. 한겨울에도 호수가 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도 캠핑장이 있다. 호수에 바짝 붙어 있어 이름은 그냥 다자와코 캠핑장. 민간이 운영하는데 통나무집이 8개이고, 텐트를 칠 자리가 제법 넓은 편이다. 통나무집은 그나마 손님이 좀 있는 편이지만, 텐트는 성수기나 주말에도 기껏 서너 동이 쳐지는 경우가 고작이란다. 캠핑 사이트에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화장실을 비롯한 부대시설이 잘 관리되고 있다. 10월 중 문을 연다는 샤워실 공사도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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