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인생샷 포트캐닝, 빛나는 인공나무… 도시가 예술이네요

醉月 2025. 5. 16. 15:01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건축 이야기

 

세계 건축가들의 격전지

건축 거장 이오밍페이가 남긴

원통 래플스시티·더게이트 웨이

 

유리 돔 폭포수 ‘레인 보텍스’

식물 덮인 ‘클라우드 포레스트’

독창적 형태·다양한 질감으로

비현실적이고 압도적 경관 선사

 

이색 관광지 ‘타이거 밤 가든’

호랑이 연고로 돈 쓸어담은 가족

민속신화 재현해 만든 테마파크

촌스럽지만 이국적 매력에 인기

싱가포르 도심 언덕에는 사진 촬영 명소로 꼽히는 포트캐닝 공원의 트리 터널이 있다. 녹음이 우거진 숲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독특한 분위기를 빚어내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늘 길게 줄을 서는 곳이다. 본래 군사요새였던 포트캐닝 공원에는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가 살았던 관저가 있었다.

싱가포르=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만병통치약으로 만든 테마파크

지난주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빈탄 소개에 이어지는, 빈탄으로 건너가는 길에 징검다리로 디뎠던 싱가포르 여행 이야기다. 징검다리라고 했지만 싱가포르는 최종 여행목적지로 삼기에도 버거울 만큼 명소가 많은 다채로운 여행지다. 먼저 오래전, 싱가포르 여행의 추억 얘기부터 시작하자.

 

싱가포르의 ‘호파 빌라’를 아시는지. 모른다면 ‘타이거 밤 가든’은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이곳은 한 세대 전쯤 싱가포르 여행에서 가장 ‘핫’한 목적지였다. 지금이야 1980년대풍의 싸구려 테마파크 취급이지만, 그때는 싱가포르에서 내로라하는 여행지였다. 싱가포르를 찾는 한국 여행자들도 빠뜨리지 않고 들렀다. 근처의 지하철역 이름이 ‘호파 빌라 역(驛)’인 것만 봐도 당시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호파 빌라는 몰라도, 이건 다들 알지 않을까. 오래전에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던 ‘호랑이 연고’ 말이다. 한때 동남아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선물로 꼭 챙기던 작은 6각형 병에 담긴 박하 향의 호랑이 연고. 맞다, 만병통치약으로 일컬어지던 바로 그거다. ‘만금유(萬金油)’란 정식 이름이 따로 있지만, 다들 호랑이 연고 혹은 호랑이 기름이라 불렀다.

호랑이 연고를 개발한 건 1870년대 청나라의 본초학자 후즈친(胡子欽)이다. 궁중 한의사였던 그는 중국을 떠나 미얀마 수도 양곤에 정착해 ‘영안당(永安堂)’이란 작은 약국을 열고 갖은 약재를 섞어 연고를 만들어 팔았다. 열대계절풍 기후로 덥고 습한 데다 모기와 해충이 많은 곳에서 필요한 피부치료제였다. 그게 바로 호랑이 연고라 부르는 만금유였다.

후즈친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형 후원후(胡文虎)와 동생 후원바오(胡文豹).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형제는 1926년 싱가포르로 사업을 이전한 뒤 싱가포르와 중국, 동남아 일대에 공장을 세워 호랑이 연고를 대량 생산했다.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과 중국 여러 도시에서 호랑이 연고는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호랑이 연고를 진짜 호랑이 기름이나 뼈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호랑이와 관련한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왜 ‘호랑이 연고’일까. 형제의 이름에 해답이 있다. 형제는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기고 자신들의 이름 끝 자를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호표행(虎豹行)’. 형의 ‘범 호(虎)’ 자에 동생의 ‘표범 표(豹)’ 자를 썼다. 호표(虎豹)의 중국 푸젠(福建)성 사투리 발음이 ‘호파’다. 이런 연유로 연고 포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졌다. 기업을 이끌었던 형이 홍콩으로 건너가면서 만금유의 영문 이름도 ‘타이거 밤(Balm·연고)’이 됐다.

 

# 싱가포르에서만 살아남다

호랑이 연고를 팔아 번 돈으로 싱가포르 최대 부호가 된 형은, 동생에게 거대한 정원이 딸린 별장(빌라)을 지어줬다. 그게 바로 ‘호표별서(虎豹別墅)’ 즉 ‘호파 빌라’이고, ‘타이거 밤 가든’은 그 빌라에 딸린 정원이다. 별장은 일본 침략으로 허물어져 사라졌고, 지금은 정원만 남았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호파 빌라가 아니라, 타이거 밤 가든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기업의 사회책임에 일찌감치 눈떴던 형은, 마땅히 여가를 보낼 곳이 없던 당시 싱가포르 국민을 위해 타이거 밤 가든을 테마파크로 꾸몄다. 넓은 정원에 권선징악을 모티브로, 인형으로 중국의 신화나 민속신앙 속 장면을 재현해놓은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텔레비전과 PC게임, 대형 쇼핑몰이 없었던 시절, 이곳은 싱가포르 국민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테마파크였다.

이후 타이거 밤 가든은 후원후가 사망한 뒤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싱가포르관광청에 팔렸다. 이곳을 ‘아시아의 디즈니랜드’로 만들고자 했던 관광청은 1988년 ‘호파 빌라 드래곤 월드’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1990년에는 호파 빌라의 이름을 떼어냈다. 내부를 개조하고 놀이기구를 설치해 유료 테마파크인 ‘드래곤 월드’로 재개장한 것. 이 무렵의 모습이 해외여행 자유화 초기 싱가포르를 찾았던 한국 관광객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드래곤 월드는 높은 입장료 탓에 방문객이 줄면서 적잖은 손실을 내다가 1998년에는 다시 무료입장으로 돌아갔고, 2001년에는 공원 이름을 다시 ‘타이거 밤 가든’으로 바꾸고 놀이기구를 철거해 본래 정원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호랑이 연고에서 시작한 타이거 밤 가든의 파란만장한 역사다.

타이거 밤 가든은 이곳 싱가포르 말고도 홍콩에도, 중국 푸젠성에도 있었다. 홍콩의 타이거 밤 가든은 2000년에 폐쇄됐고, 푸젠성의 ‘호표별서’도 정원이 아닌 박물관이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싱가포르의 타이거 밤 가든뿐이다.

매립지를 공원으로 조성한 가든 바이 더 베이에 세워놓은 슈퍼트리.

 

# 비주류 여행지의 ‘키치’ 이야기

싱가포르 여행 얘기를 비주류가 된 여행지인 ‘타이거 밤 가든’으로 다소 장황하게 시작한 건, 이런 ‘키치’적 경관과 문화가 싱가포르 도시경관의 한 축을 이루고 있어서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세계 4위(9만3956달러)의 부유한 도시국가지만, 누추한 사원이나 북적이는 시장 뒷골목 풍경 등 시간이 지체된 듯한 경관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고층건물 가득 휘황한 도시풍경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들이다.

싱가포르에서는 휘황한 도시 풍경이나 이름난 관광지는 잘 보인다. 국토 면적이 서울보다 작은 도시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워낙 좁은 곳이라 잘 보이는 관광지는 귀띔 없이도 쉽게 찾아다닐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잘 보이는 것’은 일단 뒤로 미뤄두기로 하고, 과거 싱가포르의 추억이 먼지처럼 앉아 있는 장소를 골라서 찾아간 이유다.

중년의 싱가포르 택시기사는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왜 타이거 밤 가든에 가냐”고 물었다. 진작에 발길이 끊어진 철 지난 관광지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잠깐 회상에 잠기는가 싶더니 “우리는 이제 그곳(타이거 밤 가든)은 결코 가지 않는다”며 힘주어 ‘네버(Never)’를 강조했다. 싱가포르 유명 관광지 이름을 몇 곳 대고는 “타이거 밤 가든 대신 이런 곳들을 가보라”고 했다.

타이거 밤 가든에 도착하자마자 왜 택시기사가 말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테마파크에는 불교 경전과 도교, 설화와 소설 속의 장면들을 인형을 비롯한 수많은 조형물로 재현해놓았는데, 그 분위기가 ‘촌스러움’과 ‘엽기’ 사이의 어디쯤엔가 있다. 서툰 솜씨에서 느껴지는 유머부터 적나라한 묘사의 괴기스러움도 있다. 유머는 판타지로, 괴기는 공포로 이어진다. 스모 선수와 자유의 여신상이 있고, 하다 하다 바다 생물과 인간의 혼종 같은 형상까지 만들어놓았다. 지옥도를 묘사한 공간은 더하다. 피 묻은 심장을 꺼내는 장면도 있고, 끓는 솥에 사람을 집어넣는 끔찍한 묘사도 있다.

 

# 추억의 여행지가 가진 독특한 매력들

택시기사의 얘기 중에서 틀린 게 하나 있다. “거기 가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웬걸, 일요일 낮의 타이거 밤 가든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다. 관람객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대부분 인접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 다른 하나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서양 관광객이다.

싱가포르에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의 노동력을 별 죄의식 없이 값싸게 활용한다. 한 한국 공기업의 싱가포르 주재원의 설명. “싱가포르는 고급주택에도 가장 더운 주방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주방을 가정부가 쓰기 때문이지요.” 이국의 노동자를 대하는 윤리적 태도가 우리와는 다르다. 싱가포르는 부자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난하다. 복지도 열악하다.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 그럴까. 타이거 밤 가든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관람객의 또 한 부류인 서양인들은 이국적이고 기괴한 전시물을 둘러보느라 아주 신이 났다.

이곳은 2023년에 온라인여행사 트립어드바이저의 ‘여행자의 선택(Travellers’ Choice)’으로 선정됐다. ‘여행자의 선택’이란 칭호는 전체 관광지 중 상위 10%쯤에 달아준다. 타이거 밤 가든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만한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한때 국내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누렸던 ‘문 닫은 놀이공원’의 정서와 어쩐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애잔하면서 그로테스크하고, 정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섬뜩하기도 한….

싱가포르에는 타이거 밤 가든 같은 공간들이 꽤 있다. ‘주롱 새공원’도 비슷한 경우다. 이곳 역시 한때 싱가포르를 대표했던 관광명소였다. 싱가포르의 한 관료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했다가 그곳에 있는 거대한 새장을 보고 착안해 공업단지였던 주롱 타운을 자연공간으로 변모시킨 곳이었다. 이곳은 특히 새들이 보여주는 ‘버디 앤 버디스 쇼’가 명물이었다. 이곳은 아쉽게도 시설 노후와 관람객 격감으로 2023년 문을 닫았다.

열대과일 두리안을 닮은 복합문화공간 에스플러네이드.

 

# 싱가포르 여행 첫 번째 주제는 건축

이번에는 싱가포르에서 ‘잘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싱가포르에서 ‘딱 하나의 주제’만 가지고 여행해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무엇을 주제로 삼아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다. 역사도, 미식도 아니다. 정답은 ‘건축’이다. 싱가포르는 건축가들의 격전지다. 독창적인 형태의 다양한 질감의 건물들이 도시에 가득하다. 그 건물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를테면 스위소텔 더 스탬퍼드 호텔이 들어있는 원통형의 건물 래플스시티는 중국 출신의 미국인 건축가 이오밍페이가 디자인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20세기 건축계의 거장이다. 그는 싱가포르 중심업무지구에 OCBC은행 본사 건물과 부기스 역 근방의 업무용 빌딩 ‘더 게이트웨이’도 남겼다. 더 게이트웨이는 두 개의 쌍둥이 타워가 대칭을 이루며 서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한쪽 건물이 2차원 평면의 칼날이나 종잇장처럼 보인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건물이다.

시내 외곽의 난양(南洋)기술대학의 다목적 건물인 ‘하이브’는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게 할 만큼 독특한 건물이다. 외관은 대나무로 만든 딤섬바구니를 쌓은 듯한데, 내부는 둥글둥글한 원형으로 비정형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 성화대와 뉴욕 허드슨야드의 랜드마크 ‘베슬’을 디자인한 영국의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의 작품이다. 싱가포르 도심의 라셀대학 건물도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 유명 건축회사인 RSP건축이 디자인했는데,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건물부문을 대표했으며 싱가포르 건축협회의 올해의 건물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리나베이의 멀라이언 파크와 멀라이언 동상.

 

# 이걸 못 보면 싱가포르 여행은 무효

디자인으로 구현해 낸 경관 중 압권은 싱가포르 창이공항 ‘주얼창이’의 초대형 실내폭포 ‘레인 보텍스’다. 거대한 유리 돔 건물의 지붕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폭포수가 아래로 쏟아지는 경관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미래세계를 그린 과학소설(SF)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마리나베이샌즈를 설계한 모셰 사프디의 작품이다. 주얼창이는 창이 공항에 붙은 상업시설. 1터미널과 이어져 있는데, 입출국 때 다른 터미널을 이용하게 되더라도, 주얼창이는 꼭 가봐야 한다. 이걸 못 보고 간다면 싱가포르 여행은 ‘무효’다.

또 하나의 압도적인 경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마리나베이샌즈의 배후공간에 들여놓은 ‘가든 바이 더 베이’다. 일종의 식물원의 개념으로 조성해놓은 공간인데 인공나무 구조물인 슈퍼트리가 있는 야외정원과 별도 입장료가 있는 플라워 돔과 클라우드 포레스트 등이 시설이 있다.

이 중 추천하는 건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리 온실인 클라우드 포레스트다. 온통 초록의 식물로 뒤덮인 거대한 산을 만들어놓고, 엘리베이터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스카이워크로 빙빙 돌아 내려오며 관람하게 되는데,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공간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가든 바이 더 베이의 야외공간에는 나무를 닮은 구조물인 ‘슈퍼트리’ 18개가 세워져 있다. 인공 나무지만 실제 나무가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를 만들고 빗물을 모아 재사용한단다. 여기는 되도록 저녁 시간에 가도록 하는 게, 매일 오후 7시 45분과 8시 45분에 ‘가든 랩소디’라는 쇼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쇼의 몰입감이 대단하다.

 

# 마주 보는 싱가포르의 두 개의 상징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은 머리는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인 멀라이언이다. 왜 사자이고, 물고기일까. 싱가포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란 뜻이다. 800여 년 전 말레이시아 전설 속의 왕자가 처음 섬에 발을 디딜 때, 사자가 나타나서 나라 이름을 ‘싱가푸라’로 정했다는 얘기. ‘싱가’는 사자를, ‘푸라’는 도시를 뜻한다. 사실 싱가포르에는 사자가 없다. 아무래도 호랑이를 잘못 봤거나 잘못 부른 듯하다는 게 정설이다. 사자는 그렇다 치고, 몸은 왜 물고기일까. 800년 전 싱가포르의 이름은 ‘테마섹’이었다. 지금도 싱가포르 국부펀드의 이름이 테마섹이다. 테마섹은 ‘바다 마을’이란 의미. 사자의 하반신이 물고기가 된 이유다.

멀라이언이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캐릭터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니다. 멀라이언은 사실, 전략적이고 상업적 마케팅으로 현대에 만들어졌다. 싱가포르관광청이 1964년에 관광마케팅 차원에서 만든 캐릭터니까, 이제 막 환갑을 넘겼다. 멀라이언의 당초 임무가 ‘관광객 호객(?)’이라는 건, 1972년 마리나베이에 멀라이언 동상을 세우면서 관광객 환영의 의미로 공항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앉힌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거기가 싱가포르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강력한 국가상징을 만들었으니, 관광청은 이른바 ‘밥값’을 넉넉히 했다.

싱가포르의 두 번째 상징은 래플스다. 싱가포르에서 ‘래플스’란 이름은 최고의 것에만 붙는다. 최고의 병원, 최고의 호텔, 최고의 쇼핑몰, 최고의 명문학교…. 아무렇게나 가져다 쓰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 래플스는 이름이다. 풀네임은 토머스 빙글리 스탬퍼드 래플스. 영국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던 그가 1819년 싱가포르에 영국 항구를 설립하면서부터 싱가포르가 시작됐다. 싱가포르가 수많은 상인이 오가고 차, 향신료, 도자기 등이 거래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무역항으로 발돋움했던 건, 그리고 지금처럼 글로벌 도시국가가 된 건 그의 혜안과 노력에 전적으로 힘입은 것이었다.

싱가포르의 과거 여행명소 ‘타이거 밤 가든’에 조성해 놓은 뜬금없는 인어 조형물.

 

# 싱가포르의 역사를 만나는 곳

싱가포르를 여행한다면 마리나 만(灣)의 멀라이언 동상이 서 있는 멀라이언 공원은 필수코스다. 멀라이언 동상과 함께 싱가포르의 강력한 상징이 된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을 볼 수 있어서다. 마리나베이에는 멀라이언 동상과 샌즈호텔, 도시국가를 대표하는 두 개의 강력한 상징이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셈이다.

멀라이언이 싱가포르를 ‘형상’으로 상징한다면, 척박한 늪지대 섬에다 자유무역항을 건설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세웠던 래플스가 상징하는 건 싱가포르의 ‘내용’이자 ‘정신’이다.

싱가포르에는 두 개의 래플스의 동상이 있다. 똑같은 모양인데 색깔만 다르다. 먼저 세워진 건 멀라이언 공원에서 멀지 않은 빅토리아 극장 앞에 있는 동상이다. 188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래플스가 짝 다리를 짚고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다. 청동으로 만든 동상의 색깔은 검은색에 가깝다. 이곳에서 걸어서 2분 거리 싱가포르 강변에 흰색 래플스 동상이 있다. 빅토리아 극장 앞의 검은색 동상을 본떠 틀을 만든 뒤 인공대리석을 부어 똑같이 찍어내듯 만든 것이다. 이 동상은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래플스가 무역항을 건설한 지 150년이 되는 1969년에 그걸 기념해 세웠다.

싱가포르가 무역항이 된 건 영국 식민통치 시절이었고, 래플스도 영국인이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독립 후에도 래플스 동상을 없애지 않았다. 흰색 동상을 세우면서 당시 리콴유 총리가 했다는 말이다. “래플스 동상은 싱가포르가 과거 영국이 남긴 유산을 기억하고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지금의 부국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얘기를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전시실에서 하루 종일 상영되던 1965년 8월 9일 오전 10시에 있었던 리콴유 총리의 기자회견 방송 영상이었다.

1959년 자치국이 된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로 독립해 지내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국가로 합류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조약을 무시하고 강력한 말레이인 우대정책을 펼쳤다. 장학금, 저가 주택, 저금리 대출 등과 관련한 모든 혜택이 말레이인들에게 집중됐다. 특정 인종의 차별적 우대정책은 다민족국가 싱가포르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리콴유가 계속 항의하자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가차 없이 연방에서 쫓아냈다.

연방 퇴출이란 충격적 사건이 벌어지자 리콴유는 TV로 중계된 기자회견에 나와 국민에게 설명했다. 박물관이 보여주는 건 바로 그때의 방송장면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설명하던 리콴유는,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여행자의 눈에도 그 눈물의 의미가 전해진다. 힘없는 작은 나라의 설움. 이웃 나라에 배신당한 억울함. 백척간두에 서게 된 나라의 운명…. 지금도 싱가포르의 주적(主敵)은 말레이시아다. 역사 얘긴 딱 여기까지만.

 

■ ‘마리나베이샌즈’ 왜 비쌀까

싱가포르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비대칭 건물 위에 배 모양의 옥상을 올려놓은 건축미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숙박요금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주말 기준으로 2인 기준 조식 포함 1박 요금은 200만 원쯤. 이 호텔의 객실 수는 2561개인데 며칠 동안 유심히 보니 밤에 불 켜진 객실은 절반 정도였다. 객실 20%를 못 채우면 공실이 자그마치 500실이다. 불 꺼진 객실 숫자로 짐작하건대, 숙박요금이 비싼 건 ‘방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가 정책 탓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