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여러 이름; 연(蓮)의 사랑
西陵行 • 2
錢塘江上是儂家 전당 강가에 바로 내 집이 있어
五月初開菡담花 오월이면 연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半타烏雲睡新覺 검은 머리 반쯤 늘어뜨린 채 졸다가 깨면
倚欄閑唱浪淘沙 난간에 기대어 뱃노래도 불렀지요.
『난설헌집』에 전하는 ‘서릉행’, 두 번째 시다. 허경진의 『허난설헌 시선』에 나온다.
『허난설헌 시선』은 『난설헌집』에 전하는 난설헌 허초희의 시 211수 가운데 76수를 가려 뽑아 엮은 것이다.
함담화(菡담花)라는 연꽃의 이명(異名)에 눈길이 간다.
난설헌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 속에는 그녀의 호가 말해 주듯 난(蘭)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허난설헌 시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은 연꽃이다.
그 다음이 버들 → 오동나무 순이고, 매화, 난, 살구꽃, 파초, 도화, 담쟁이, 사시나무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가장 많이,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연꽃의 이명(異名)은 거의 다 언급되고 있다.
우선 가장 흔한 연(蓮)이 있고, 부용(芙蓉), 하(荷), 우(藕), 그리고 함담화(菡담花) 등이 골고루 쓰이고 있다.
『산림경제』「양화(養花)」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잎은 하(荷), 그 열매는 연(蓮), 그 뿌리를 우(藕), 그 꽃봉오리를 함담, 그 꽃을 부용(芙蓉)이라 하고, 총칭해서는 부거(芙蕖)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辭書) 『이아(爾雅)』에는
‘하(荷)는 부거(芙蕖)이다. 그 줄기는 가(茄), 그 잎은 하, 그 본(本, 수중경)은 밀, 그 꽃은 함담(菡담), 뿌리는 우(藕), 그 열매는 연(蓮), 그 속은 적(菂), 적의 속은 의(薏)라 한다.’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식물에 대하여 이렇게 그 부위에 따라 각각 다른 명칭으로 상세히 나누어진 예가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은 연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지만, 연(蓮)은 다만 열매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식물 전체를 하(荷) 또는 부거(芙蕖)라고 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 부용. 갯아욱, 무궁화, 닥풀, 수박풀 등과 더불어 아욱과 무궁화속에 속하는 반목본형 식물이다. 중국 원산이며, 주로 관상용으로 심어 가꾼다. - 8월, 유네스코 옥상공원 작은누리
부용은 연꽃의 별명이기도 하지만 잎떨어지는작은키나무인 목본 ‘부용’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땅 위에서 연꽃을 닮은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 연꽃을 ‘부용’, 혹은 ‘수(水)부용’이라 하고, 부용을 ‘목(木)부용’이라 하여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 신촌 봉원사의 연꽃(2008년 8월)
연꽃이라 하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불교를 떠올린다. 백합이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는 하지만 그 합일성에 있어서 불교를 표상하는 연꽃에 미치지 못한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진흙 속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결코 더럽혀지는 일 없이 청정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 불교의 교리를 함축하고 있는 꽃이면서, 구품연지(九品蓮池), 극락세계를 상징하며,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 그대로가 부처님의 모습을 표상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의 광휘를 닮은 꽃이라, 신화체계에서 그것은 또한 사바와 불(佛) 세계를 잇는 통로요 사다리이기도 하다.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성품으로 인해 연꽃은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정우(淨友), 또는 정객(淨客)으로 불리며, 군자의 꽃으로 사랑과 귀함을 받았다. 연꽃이 군자의 꽃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북송시대의 유학자 때 주돈이(周敦이)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수중이나 지상에 있는 풀과 나무의 꽃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晉)나라의 도연명은 오직 국화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홀로 연을 사랑하리라. 연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 줄기의 속은 허허롭게 비우고도 겉모습은 반듯하게 서 있으며, 넝쿨지지도 않고 잔가지 같은 것도 치지 않는다. 그 향기는 멀리서 맡을수록 더욱 맑으며, 정정(亭亭)하고 깨끗한 몸가짐, 높이 우뚝 섰으니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가까이서 감히 어루만지며 희롱할 수 없도다.
그래서 나는 국화는 꽃 가운데 은사(隱士)라 할 수 있고,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富貴者)라 할 수 있는데 대해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로는 듣기가 어렵다. 나처럼 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을까? 모란을 사랑한다는 속인들만이 너무 많구나.
우리 나라 『화암수록』의 「화품평론」은 더욱 완곡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의 연지(2008년 8월)
깨끗한 병 속에 담긴 가을 물이라고나 할까, 비 갠 맑은 하늘의 달빛이라고나 할까, 훈훈한 봄볕과 함께 부는 바람이라고나 할까. 논하되 홍백련(紅白蓮)은 강호에 뛰어나서 이름 구함을 즐기지 않으나 자연히 그 이름을 감추기 어려우니, 이것은 기산(箕山), 영천(潁川) 간에 숨어 살던 소부(巢父), 허유(許由)와 같은 부류라 하겠다.
소부와 허유는 중국 요나라 때 살았다는 전설상의 은사들이다. 허유는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도망하여 기산 아래 영수 물가에 숨어 살았는데, 다시 구주(九州)의 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영수의 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소부는 산 속의 나무 위에서 살며 가지를 서로 얽어 거처를 만들어 그 곳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소부’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세상의 영리를 등지고 살면서 허유가 영수의 물에 귀 씻은 사연을 듣고는 그 물이 더러워졌다 하여 허유가 귀를 씻은 곳보다 더 위쪽으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사랑의 고백; 연(蓮)의 사랑
꽃이 먼저 피고 진 후에라야 열매를 맺는 것이 일반적인 식물의 생리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연꽃은 꽃과 열매가 거의 동시에 생장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게다가 연밥 속에는 많은 수의 씨앗이 들어 있다. 그 씨앗들은 풍요와 다산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하여 민화 속에서 씨앗을 쪼는 새는 생명의 근원을 획득한다는 것(孕胎)을 암시한다. 옛 혼례복이나 부인들의 의복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연꽃 문양은 부부의 금슬과 많은 자손을 바라는 기원에서 비롯된 일종의 주술이었던 것이다.
연(蓮)의 생명력은 또 어떠한가. 연밥은 그 껍데기를 벗기지 않으면 땅 속에서 무려 삼천 년을 견딘다고 할 만큼 생명력이 매우 강하다. 1951년 일본의 연꽃연구가 다이카 이치로는 일본의 한 지방 3.9미터 지하 이탄층에서 무려 2천년이나 휴면한 것으로 판명된 세 개의 연(蓮) 씨앗을 발견한다. 그 씨앗을 심어 발아시킨 결과 꽃을 피우고 결실을 보는 데 성공했다.
▲ 연 그늘 사이에서 노니는 흰뺨검둥오리. 뙤약볕이 내려도 연이 무리지어 자라는 습지엔 늘씬한 줄기 끝에 달린 널따란 잎들로 하여 물위에 어둡고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진다. 수많은 줄기와 연잎들이 만들어 내는 미로 같은 물길, 그리고 어둡고 시원한 그늘은 연못을 찾아오는 새와 물고기들에게 더없이 좋은 은신처이자 놀이터이다.
연(蓮)은 연(戀)과 발음이 같다. 청아하고 고귀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간에서 연꽃은 다소 농염하고 낭만적인 인상을 풍겨 활달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표현한다든가 남녀간의 사랑이나 그리움을 형상화하는데 자주 이용되었다.
강남가채련(江南可采蓮)
▲ 비바람에 쓰러지듯 눕는 연잎들.
江南可采蓮 강남으로 연꽃 따러 가세.
蓮葉可田田! 연잎이 얼마나 퍼들퍼들한가!
魚戱蓮葉間. 물고기 연잎 사이에서 노닐고 있네.
魚戱蓮葉東, 물고기 연잎 동편에도 노닐고
魚戱蓮葉西, 물고기 연잎 서편에도 노닐고
魚戱蓮葉南, 물고기 연잎 남편에도 노닐고
魚戱蓮葉北. 물고기 연잎 북편에도 노닐고 있네.
한나라 때 지어진 악부시(樂府詩)이다. 한 무제(武帝) 때 설립된 기관 중에는 조정에서의 연회나 도로에 행차할 때 음악을 관장하는 곳이 있었는데, 민간의 시가나 악곡도 채집하였다. 이 기관에서 채집한 시가나 창작한 노래들, 또 이를 모방한 시가를 악부시라 한다. 악부시 「강남가채련」은 연잎 사이를 드나들며 노니는 물고기떼와 민첩하며 건강한 체태미(體態美)가 흐르는 젊은 여인들의 웃음꽃 활짝 핀 정경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 수련 봉오리. 물밖으로 잎자루가 길게 올라와 그 끝에 널따란 잎을 펼치는 연꽃과 달리 수련은 잎사귀 뒷면과 꽃받침 뒷면이 직접 물에 닿아있는 부엽식물이다. | ||
▲ 수련의 말린 잎사귀 뒷면. 늘 물에 닿아있기 때문에 수련의 잎사귀 뒷면은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지 못해 붉으스레한 색깔을 띠며, 잎의 윗면은 자외선으로부터 잎몸을 보호하기 위해 반들반들 광택이 난다. 낮에 꽃이 피었다가 밤이면 꽃잎이 오므라드는 특징으로 인해 `잠 자는 연꽃`이란 뜻에서 수련(睡蓮)이라 부른다.
연밥을 따는 행위를 채련(採蓮)이라 한다. 중국 전통에서 연밥, 혹은 연꽃을 따서 던지는 행위는 마음에 드는 연인을 골라 정하는 일종의 러브 헌트(Love Hunt) 풍속이었다.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은 이제 내 사람이다, 내가 당신을 점 찍었다, 뭐 이런 뜻이었다고 한다. 이 풍속은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던가 보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이 내 품에 잠자다오.
원래는 경상도 상주지방에서 모심기 때 부르던 농요(農謠)였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널리 애창되면서 점차 유흥요로 발전, 여러 형태의 변이를 보인다.
이 외 연(蓮)과 원앙을 주제로 한 조선시대의 그림들은 보다 분명하게 부부화합과 길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녀, 채련곡(採蓮曲)을 짓다; 연(蓮)의 사랑
채련곡차대동루선운(採蓮曲次大同樓船韻)
蓮葉參差蓮子多 연잎은 들쑥날쑥 연밥은 많은데
蓮花相間女郞歌 연꽃 사이에서 아가씨 노래 부르네
歸時相約橫塘口 돌아갈 때 횡당 어귀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辛苦移舟逆上波 애써 배를 저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네
연꽃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며 연밥을 따는 아가씨, 노래를 부르며 흥에 겹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에 둔 님과 횡당 못 어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때가 되매 서둘러 물을 거슬러 노를 저어 간다.
황당은 강소성 양주(지금의 남경) 교외에 있는 둑이다. 오나라 때 양자강 어귀에서 회수 연안을 따라 제방을 쌓을 때 만들어 졌는데, 주변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절강성 항주 전당 강가에 서릉(西陵)이란 이름난 유흥가가 있었듯이, 유명한 환락가 장간리가 이곳 횡당에 있어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악부체의 「횡당곡(橫塘曲)」이 많이 나왔다.
난설헌 허초희와 그녀의 아우 교산 허균이 손곡 이달에게서 시를 배웠다. 손곡은 난설헌의 오라비 하곡 허봉의 글벗이었다. 양반의 아들이었으나 미천한 기첩에게서 태어났기에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쓰임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아다닌 불우한 시인이었다. 유일하다시피 따뜻하게 받아준 곳이 난설헌의 집안이었고, 그의 뛰어난 재주와 세상에 대한 불만, 반항의식은 하곡의 남매들과도 뜻이 통하였다.
橫塘曲 • 2
紅藕香殘風雨多. 비바람 잦아지자 연꽃 향내도 스러지고
吳姬爭唱竹枝歌 아리따운 아가씨들만 사랑 노래를 부르네.
歸來日落橫塘口, 해 저무는 횡당 어귀로 돌아오자니
煙안蘭燒響軋0 안개 속에 삐거덕 노젓는 소리만 들리네.
손곡이, 연꽃 핀 강가에서 연인을 만나기로 약속한 연밥 따는 아가씨의 설레임과 조바심을 노래한 반면, 난설헌의 시에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횡당의 두 가지 정경이다.
난설헌은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혼인하였으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하였다. 시댁은 5대나 문과에 급제한 문벌이었다. 그러나 남편 김성립은 과거에 연거푸 떨어지다 난설헌이 죽던 해에야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죽을 때의 벼슬도 정9품에서 그쳤다. 학식과 재주가 난설헌을 따르지 못했고, 바람기에 성격마저 방탕하여 공부를 핑계로 집밖으로 돌았다. 난설헌은 신혼 초기부터 쓸쓸하고 불행했다. 시어른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여 불화가 잦았으며, 어린 딸과 아들을 차례로 여의고, 나중엔 뱃속의 아이까지 사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설헌은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렸다. 사후 한 해 뒤에 아우 허균이 기억하고 있던 누이의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내었다. 여인으로서 이름다운 이름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난설헌은 떳떳하게 이름과 자와 호까지 가지고 살았다. 그런 그녀가, 혼인 이후 평생 동안 불행했고, 평생 동안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남편 김성립을 원망하며 지은 글들이 많았다.
규원(閨怨) • 2
月樓秋盡玉屛空 가을 깊은 다락엔 달이 떠오르고 구슬 병풍은 비어 있는데,
霜打蘆洲下暮澒 서리 내린 갈대밭에는 저녁 기러기가 내려 앉네.
瑤瑟一彈心不見 마음 기울여 거문고를 타도 님은 오시지 않고,
藕花零落野塘中 들판 연못 위엔 연꽃만 하염없이 떨어지네.
아버지 초당 허엽이 경주 부윤에서 대사성을 거쳐 진하사가 되어 명나라를 드나들었고, 위로 두 오라비도 병조판서를 지내는 등 벼슬길이 순탄하여 난설헌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 집안으로 알려진 초당 집안은 그녀가 죽을 무렵에 이르러 몰락해 갔다. 아버지는 소임을 마치고 상경하던 길에 객관에서 객사하였고, 스승 같았던 오라비 하곡 또한 갑산 귀양길에서 풀려나 금강산 등지를 헤메다 병이 악화되어 역시 객사하였으며, 훗날 난설헌보다 여섯 살 아래였던 교산은 천대받던 서얼 출신 인사들과 뜻을 모으다 당파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쉰 살에 능지처참되었다. 집안이 멸족의 참화를 당한 것이다.
하여... 다음의 채련곡은 지은이가 누구인 줄 모르고 그저 읽었을 때와 지은이가 누구인 줄 알고 읊조렸을 때의 감상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寀蓮曲 연밥을 따면서
秋淨長湖碧玉流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은 구슬처럼 빛나는데,
荷花深處繫蘭舟 연꽃으로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 배를 매어 두었네.
逢郞隔水投蓮子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 따서 던지고는,
或被人知半日羞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연밥을 따서 던진다는 것은 연밥을 던져주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의미한다. 평생을 갈망하고 꿈꾸었으나, 단 한 번도 연인다운 연인을 가져보지 못했고, 단 한 번도 지아비의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패일대로 패인 상처와 한을 어쩌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녀가 당나라 황보송의 시를 차용하여 「채련곡」을 지은 것이다. 오직 상상 속에서만 님을 만나고, 시로서만 애달픔을 고백해야 했던 그녀의 생애가 가슴 한 켠을 울린다.
당나라 시인 황보송이 지었다는 ‘채련자(採蓮子)’라는 시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無端隔水抛蓮子 괜시리 물 건너로 연밥을 던져 놓고
遙彼人知半日羞 멀리서 남의 눈에 띄어 반나절을 얼굴 붉혔네
난설헌의 「채련곡」은 『난설헌집』에 실려 전하지 않는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전한다. 이 밖에 채련곡을 지은 이로 홍만종, 신흠, 이덕무, 김로 등이 있다.
[뱀다리] 불가의 혼인 예식 중에 칠경화 헌공이라는 게 있다. 신랑이 다섯 송이의 꽃을, 신부가 두 송이의 꽃을 함께 불단에 바치는 예식으로 화혼식의 절정을 이룬다. 카필라의 싯달타 태자와 같은 석가족 부호의 딸 고피카(고피, 또는 고파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짐)의 전생 인연에 얽힌 이야기에서 유래된 예식이다.
연꽃을 나누어 주는 조건으로 다음 세상에서 아내로 삼아 달라 했던 간청에 따라 그 인연에 의해 싯달타 태자의 태자비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
고피카가 아닌 야소다라와의 전생이야기였다는 것으로 이야기의 형태가 약간의 변이를 보이고 있지만, 불교 경전에서 연꽃이 깨달음의 이미지로서만이 아니라 사랑의 매개체이자 믿음과 헌신의 증표로도 등장하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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