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머지 않았다. 젊은이 못지 않게 건강하고 활발하게 사는 경기 용인의 한 실버타운 노인들이 활짝 웃고 있다. |김정근 기자 |
수명 100세를 넘나드는 장수인이 늘어나고 있다. 유명한 장수국가 일본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겼고, 우리나라도 못지 않다. 불과 100년 전 평균수명이 50세 남짓하던 것에 비하면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인간 수명이 얼마나 더 길어질 지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다.
장수인의 증가는 충분한 영양 섭취와 운동, 질병치료술 발전, 위생 증진, 건강 관련 과학의 발달 덕분일 것이다.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 성격 등이 장수와 상관성이 더 큰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장수인들의 삶이 관심을 모으는 배경이다.
규칙적이면서 일정량의 식사, 솔직한 감정 표현, 적극적인 사회활동, 외식 안 하기…. 교과서에 나오는 ‘바른생활 습관’을 나열한 것 같지만 서울 지역 90세 이상 장수인들의 특성이다. 서울시가 ‘9988 어르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 의뢰,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90세 이상 초고령 어르신 총 88명을 방문조사를 통해 심층조사한 결과다.
서울의 9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지난해 기준으로 3310명으로, 전국 95세 이상 인구의 17.3%를 차지했다. 그동안 지방 거주 장수인에 대해서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지만 서울 지역의 경우 빠르게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데 비해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서울시는 서울형 장수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서울대 고령노화연구소에 연구용역을 줘 국내 최초로 ‘서울 100세인 연구’를 실시했다. 서울시 복지국 노인복지과 노인정책팀 유시영 팀장은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초고령자에 대한 건강상태, 생활 여건 및 환경 등을 조사해 건강장수 요인을 제시하고 사회적 관계, 삶의 질 조사를 통해 관련 시책의 목표와 방향 설정에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표1~3 참조>
초고령자 평균 75%, 사교적 성격
조사 결과 서울의 초고령 노인들은 성격이 사교적이고, 감정 표현에 솔직하며, 사회활동이 활발한 경우가 많았다. 남자의 80.0%, 여자의 69.4%가 ‘사교적인 성격’이라고 답했다. 쾌활한 성격이 ‘장수 요인’으로 꼽힌 것이다. 또 남자의 72.0%와 여자의 51.6%가 ‘감정 표현을 많이 한다’고 말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장수에도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장수학 권위자인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교수는 “장수인들의 특징은 사람과 잘 만나고, 어울리고, 스트레스 있으면 잘 풀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사 대상 가운데 우울증 의심 증세를 보이는 남자 노인은 한 명도 없었으며, 여성은 4명(8.0%)에 그쳤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탑골 대동제에서 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
규칙적인 식사, 일정한 양, 우유·수박·새우깡 즐겨
규칙적이면서 늘 일정한 양을 섭취하는 식생활과 간식, 다양한 식품 섭취 등도 서울 거주 초고령자들의 특성이었다. 남성의 88%, 여성의 76%가 ‘매우 규칙적으로 식사를 한다’고 대답했다. ‘식사 때마다 일정한 양을 먹는다’는 응답도 비슷한 비율이었다.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는 경우 남성은 한 달 평균 2.3회, 여성은 0.9회에 불과했다. 지방의 노인들이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우유나 유제품에 대해 서울의 초고령 노인은 쌀밥 다음으로 즐긴다고 응답해 다소 차이를 보였다. 좋아하는 과일로는 수박·복숭아·사과가 꼽혔다. 과자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새우깡’을 가장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4~6 참조>
음주, 흡연율 전국 100세인보다 낮아.
가장 많은 질병은 남자는 고혈압, 여자는 골(骨) 관련 질환
흡연율과 음주율은 지난 2005년에 실시된 ‘전국 100세인 조사’와 비교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초고령 노인의 질병은 남자는 고혈압(56%), 골 관련 질환(44.0%), 전립선 질환(24.0%) 순으로 나타났다. 여자는 골 관련 질환(44.6%), 고혈압(34.4%), 치매(21.3%) 순으로 많았다. 교육 수준은 남성 초고령자의 15.4%가 무학이었다. 여성 초고령자는 무학인 경우가 61.3%로, 남성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읽기 및 쓰기가 가능한 초고령자 비율은 남성의 경우 88.5%였지만 여성은 37.1%에 그쳤다.<표7-1, 2 참조>
84.1% 배우자 없어, 부양가족 평균연령 63.3세
초고령 노인의 대다수(84.1%)는 배우자가 없었다. 남성의 경우 배우자가 있다는 응답이 46.2%, 없다는 응답이 53.9%이었으나 여성은 96.8%가 배우자가 없는 상태였다. 초고령 노인들의 동거가족수는 평균 2.23명이었고, 가족 구성은 초고령 노인과 자녀로 구성된 가구가 38%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초고령자와 그 자녀와 손자·손녀로 이뤄진 3세대 가구(34.2%), 초고령자 부부 가구(11.4%) 등 순이었다. 배우자가 초고령자를 돌보기보다는 며느리 등 가족이 부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부양가족의 평균 연령이 63.6세로 노인이 초고령 노인을 부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가족’도 많았다. 주 부양자의 평균 연령은 며느리 61.2세, 아들 67세, 딸 62.4세였다. 초고령 남성의 부인의 경우 평균연령은 79.7세였다. 한편 부양자의 42.9%(33명)는 전반적으로 초고령 노인을 부양하는 일을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고, 80.0%가 초고령 노인이 부양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데 대해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또 부양 활동으로 인한 사생활 부족(46%), 사회생활의 원활한 수행이 힘든 점(37.5%)을 부담으로 지각하고 있었다. <표8 참조>
나이는 숫자일 뿐 ‘활기찬 노년’
ㆍ서울 지역 100세 어르신 4인의‘장수 비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인간의 비원이다. 비록 고령화사회 문제가 시대적 화두로 등장하면서 장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소 퇴색된 점은 있지만 그래도 오래 사는 것을 소원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소식(小食)과 지속적인 운동, 남과 잘 어울리는 쾌활한 성격, 몸에 좋은 각종 음식, 유전적 요인 등이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숱한 장수 관련 책자가 주장하는 장수 비법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겠지만 그러나 ‘10인 10색’이라 할 만큼 장수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천차만별이기에 이를 일반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100년을 넘나드는 세월을 건강하게 살아 온 이들에게는 수명이 평범한 이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
<Weekly 경향>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사는 100세 장수인 4명과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공통점과 개별성을 밝혀냈다. 공통점은 4명 모두 160~165㎝ 안팎의 키에 약간 마른 체형이라는 점이다. 키는 이들이 태어난 1세기 전과 지금의 평균 키가 크게 차이 나는 만큼 장수와의 상관성이 다소 떨어질 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두 소식을 하고 있었고, 자극적이고 짠 음식을 싫어하는 대신 맑은 장국과 야채 등을 선호했다. 술·담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한 명이 담배를 피우고 소주를 하루 반 병 정도 마시고 있었다. 4명 모두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인병을 앓은 적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한 할머니는 93세까지 경제활동을 했다. 느긋한 성격의 두 할아버지는 클래식음악 감상, 시조 암송 등 취미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머지 한 할아버지는 99세의 나이에 자전거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치매를 앓는 부인을 돌보고 있었다. 이 같은 <Weekly경향>의 취재 결과는 지방의 장수마을 거주자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 인터뷰를 보면 장수 비법이 나올 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대목도 있다.
1. 철저한 소식에 클래식음악 심취
101세 장영진 할아버지
일러스트 이영아 |
“아, 경향신문사? 아마 이 박사(이승만 대통령)가 살았던 경교장 건너편에 있지?” 지난 2월 2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자택에서 만난 장영진 할아버지(101)는 정확한 기억력을 자랑했다. 장 할아버지가 “내가 1909년 12월생이야. 이 근처 양촌(지금의 강서구 가양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지”라고 하자 곁에 있던 부인(1927년생·83)은 “저 양반은 나이를 줄여서 말해요. 절대 나이 더 먹었다고 얘기 안 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태어난 뒤 바로 호적에 올리지 않고 한 3, 4년 있다 올렸지. 실제 나이는 105살 정도일텐데, 정확한 나이를 얘기 안 해요. 나이 많은 게 뭐 자랑이라고”고 덧붙였다.
외관상 장 할아버지의 건강상태는 놀랄 만큼 좋았다. 거실 온도가 다소 낮았지만 내복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채 인터뷰 내내 소파에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는 체력을 과시했다. 청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기억력은 또렷했으며,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다. 불편한 곳은 없을까. “어렸을 적에 병을 한 번 앓았는데 그때 이후에 한 쪽 팔을 잘 못 써. 그거 빼 놓고 아픈 데는 없어”라는 게 답이었다. 불편한 한 쪽 팔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장년 시절에 미군부대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통역도 하고 부대 장교클럽에서 행정 업무를 했다. 이때 클래식 음악을 접했으며, 이후 소문난 ‘클래식음악 마니아’가 됐다. ‘장수의 비결’은 클래식음악이라고 말할 정도다.
클래식음악이 장수의 비결? 선뜻 믿기지 않았다. 어쨌든 장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차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한다. “베트벤과 모차르트를 좋아해요. 집에 CD도 많아. 매년 KBS에서 하는 <송년음악회> 하고 외국 연주자들이 오는 클래식음악회에는 빼놓지 않고 가지. 지난해에도 갔어.”
외출 땐 지하철을 이용한다. “아, 길 아는데 지하철 타고 가면 되지. 난 아직도 지하철 갈아타면서 잘 다녀요. 환승도 헷갈리지 않고 잘하고.” 할머니는 “난 이 양반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린 데도 지하철 타면 힘들어 죽겠어. 아픈 데도 많고. 이 양반은 숨 한 번 헐떡거리지 않고 잘 다녀. 이번에 복지관에서 어디 나갈 때 넘어지지 말라고 지팡이를 줬는데 쳐다도 안 봐”라며 웃었다. 좋아하는 성악가는 조수미와 정명훈씨다.
“조수미? 노래 잘하지. 정명훈도 알고.”
자녀는 1남3녀. 약사인 아들은 미국에서 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단 둘이 사는 이유다. 최근 아들 내외가 부친의 ‘100세연’(지난해 12월 16일)을 위해 한국에 왔다 갔다.
장 할아버지만의 장수 비결은 뭘까. “비결이 뭐 있어. 그냥 자기 좋아하는거 하면서 맘 편히 사는 거지. 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니까. 그냥 타고난 거 같아.”
술, 담배는 배우지 않았다. 식사는 철저한 소식이다. 할머니는 “다섯살 애기가 먹는 양도 안 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커피도 좋아한다. 하루 평균 네다섯 잔 마신다.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할머니는 “가리지 않고 다 잘 드시지. 된장국은 잘 안 드셔. 맑은 장국을 잘 드시지”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타고난 것 같아. 저 양반 선친도 잔병치레 없이 80세 이상 사셨어. 몇 년 전에 울릉도를 갔는데 난 멀미하고 힘들었지만 할아버지는 힘든 내색 한 번 안했다니까. 몇 년 전에는 미국의 아들집에도 비행기 타고 두 번 갔다왔어”라고 전했다.
장 할아버지는 “살아 있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 나 혼자 사는 거지 뭐. 할망구하고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듣고 그냥 사는 거야”라면서 커피와 과자를 권했다. “커피 좀 더 들어. 커피는 식으면 맛이 없지. 과자도 좀 더 먹고.”
나이 101세(호적상 1909년생)
호적을 몇 년 늦게 신고해 3, 4세 더 많은 것으로 추정
거주지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고향 서울 가양동
배우자 할머니 생존(1927년생 83세)
자녀 1남3녀 있고 부부끼리 생활
(수년 전 증손자가 결혼해 5대가족 탄생 눈앞)
2. 4대가 한 지붕, 공원 산책 즐겨
97세 조병석 할아버지
일러스트 이영아 |
“까꿍. 아이고 예뻐라.” 조병석 할아버지(97)는 2개월 된 증손자를 안고 어린아이처럼 연방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버님이 청력도 좋고 무척 건강하셨는데 지난해 말부터 기력이 많이 쇠잔해지셨어. 재작년까지 혼자 지하철 타고 놀러도 다니셨는데 지금은 외출은 자제하는 편이고.” 60대 중반인 조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전했다.
충남 부여 출신인 조 할아버지는 90년 가까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10여 년 전 할머니와 사별 후 서울 양재동으로 옮겨와 산다. 60대 중반인 아들 집이다. 최근 손자며느리가 출산해 4대가 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공원산책을 좋아한다. 외출할 때는 꼭 한복과 두루마기를 걸치고 훈장모자를 쓴다. 조 할아버지는 부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서당 훈장을 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일제시대 때 “왜놈들에게 배우기 싫다”며 진학을 포기한 뒤 농사를 지으며 독학했다. 지금은 기력이 다소 떨어졌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조나 창을 좔좔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자주 산책하는 곳은 독립문공원, 파고다공원, 동묘공원이다. 동정을 단 한복과 훈장모자를 쓰고 공원에 나가면 ‘스타’가 된다. 가끔 대학생들이 사진을 찍어서 집으로 보내 준다고도 한다. 공원에서 다른 할아버지들을 만나 술을 한잔 하고 귀가하는 것이 소일거리이자 건강 유지법이다. 지금도 웬만한 길은 걸어 다닌다. 가족들이 “지하철 타세요”하면 “급하면 너나 차 타고 가라”고 한단다.
며느리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초고추장에 달콤하게 버무린 양파를 특히 좋아하세요. 오징어회도 좋아하시고. 국물 있는 거는 된장찌개보다 뽀얗게 끓인 뼛국을 좋아해요. 우리는 한 번 먹으면 못먹겠더만 아버님은 열흘을 계속 드려도 맛있게 잘 드세요”라고 답했다. 가족들은 장수 비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소식이다. 술 빼고 드실 만큼 드시면 한 숟가락 남아도 안 드신다. 식사 때 물도 많이 안 드신다. 밥도 절대 물에 말아서는 안 드신다.”
커피와 술을 즐기고, 담배도 피운다. 담배는 환갑 때까지 이틀에 한 갑 피우다가 요즘은 사흘로 줄어 들었다. 상당한 애연가다. 소주는 네다섯 잔. 우유도 좋아한다. 건강은 타고났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병원을 출입한 적이 거의 없다. 큰 부상도 입지 않았다. 40세 때 밭에서 일하다 갈고리에 무릎이 찍혔다. 병원에서는 다리를 절단해야 살 수 있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다리 절단을 거부하고 산에 올라가 산약을 캐 쑥뜸을 뜨고 약초를 달여 먹으면서 말끔하게 고쳤다. 아들은 “젊을 때부터 집념이 대단하셨다. 또 엄격해 내가 2대독자지만 회초리도 많이 맞고 자랐다”고 회고했다.
조 할아버지의 선친과 누이도 장수인이다. 며느리는 “시할아버님도 90세까지 사셨다. 고모님(할아버지 누이동생)도 92세다. 장수 체질 가족인 것 같다”고 전했다.
나이 97세
거주지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
고향 충남 부여
배우자 10여 년 전 사망
자녀 2남1녀/최근 증손자 출생(4대가 한 집에 함께 거주)
3. 치매 아내 돌보는 자전거 마니아
99세 이원준 할아버지
일러스트 이영아 |
“욕심을 버리고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 자연스레 마음이 편해지고 나처럼 오래 살지.” 올해 99세인 이원준 할아버지가 밝힌 장수 비결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꾸준한 운동이 태어난지 한 세기를 1년 앞둔 이 할아버지의 원동력이다. 젊어서부터 재산과 명예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한때 술도가(술을 만들어 도매하는 집)를 운영하면서 재산을 모은 적도 있다. 그러나 돈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변을 많이 도와줬다. 이 때문에 지금은 물적 재산은 없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이라는 더 큰 재산이 남았다. 이 할아버지는 9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 지난해 가을까지 매일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약수터로 가 물을 떠 왔다. 낮에 요양보호사가 와서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 이길자 할머니(가명·90)를 돌보는 시간에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탔다. 하루에 2, 3시간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돌았다. 자전거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주변 사람들은 100세가 다 된 할아버지가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것에 놀라워했다. 동호회에서는 고글과 시계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허리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으면 앉아 있는 것도 버겁다. 허리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허리 통증으로 인해 몇 차례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 1월 수술을 선택했다. 이 할아버지는 “요즘은 보호대 없이 생활하기 힘들다. 그래도 금방 툭 털고 다시 자전거를 탈 것”이라며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할아버지도 선천적으로 건강한 체질이다. 잔병치레도 하지 않았고, 허리 수술을 빼면 병원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건강관리도 열심히 했다. 젊어서는 유도나 권투를 했다. 물론 취미다. 술도가운영 초기에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술을 끊었다. 손가락이 누렇게 될 정도로 한때는 끽연도 심했지만 70세 때쯤 끊었다. 이 할아버지는 “의식적으로 건강을 챙긴 것이 아니라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아내를 돌보며 산다. 아내 이 할머니는 10년 전에 갑자기 건강이 악화됐고, 2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다. 이 할아버지는 그런 아내를 10년 동안 정성스레 돌보고 있다. 식사 수발은 물론 매일 몸을 닦아 준다. 지난해 8월 동네 복지관에서 파견된 요양보호사 조길자씨의 도움이 있기 전까지 고령의 몸으로 혼자 아내의 온갖 수발을 다 들었다. 아직까지 아내의 식사는 직접 요리한다. 조씨는 “고령에 힘들 법도 한데 내색 없이 아내를 돌보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호박껍질을 벗겨서 푹 삶아. 이걸 채로 쳐서 찹쌀가루를 넣고 죽을 쒀. 이 사람이 이걸 참 좋아해.” 이 할아버지는 잠든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씨가 “아내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이라고 옆에서 거들자 이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껄걸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아내에 대한 정성 역시 이 할아버지에게 있어 건강 유지의 큰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 99세
거주지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
고향 강원도 인제
배우자 할머니 생존(90세)
자녀 1남1녀
4. 왕성한 경제활동, 취미는 독서
97세 이복순 할머니
일러스트 이영아 |
올해 97세의 이복순 할머니는 책읽기와 왕성한 사회활동을 건강비결로 꼽았다. 이 할머니의 취미는 독서다. 매일 신문을 정독하며, 틈이 나면 책을 읽는다. 시력이 좋아 안경도 필요 없다. 이 할머니는 “책을 읽으면 재미있고 기억력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다. 막내딸 신승자 할머니(71)는 “지난해 병원에서 치매 테스트를 했는데 기억력이 30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서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부터 기억력이 감퇴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이 할머니는 “뒤돌아서면 잊는 일이 잦아졌다”면서 속상해 했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메모하고 책을 읽고 있다. 이 덕분인지 최근 들어 기억력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이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 상황과 장소, 시간, 심지어 증손녀의 대학교 졸업연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 포목상을 하며 자녀를 키웠다. 그리고 30년 전 막내 딸 부부가 사는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는 수의제조업을 했다. 사업은 꾸준히 번창했다. 그렇게 93세까지 가게 일을 도맡아 했다. 이 할머니는 “가게 관리는 물론 주판으로 직접 계산해 물건 값을 치렀다”면서 “요즘도 가끔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남은 수의를 판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97세의 고령에도 경제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막내딸 신 할머니는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해 온 것도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외출 때 지팡이를 이용한다. 10년 전 길에서 지나가는 차를 피하다가 넘어져 대퇴부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서다. 이 할머니는 “그때 수술해 기력이 많이 쇠했다”면서 “요즘도 항상 몸이 피곤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은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치매, 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이 없다. 젊어서부터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타고난 ‘강골’이다.
이 할머니 가족 가운데는 장수인이 많다. 언니는 99세까지 살았다. 여동생은 현재 87세다. 막내딸 신 할머니도 71세이지만 무척 건강한 편이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가족력보다는 운명이라고 믿는다.
가톨릭 신자인 이 할머니는 “내가 오래 사는 것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모두 하느님이 정해 준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기자의 인사말에 이 할머니는 “오래 살았으니 빨리 가야지”라면서도 “증손녀가 결혼할 나이가 됐으니 고손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나이 97세
거주지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
고향 충남 공주
배우자 40여 년 전에 사망
자녀 1남 2녀(막내 딸과 거주)
ㆍ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교수, 고령사회 ‘제2차 의무교육’ 강조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잘 어울려라. 긍정적 사고와 활발한 대외 활동이 ‘장수’의 지름길이다.”
국내 장수학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교수는 강연하면서 뭘 먹어야 장수한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절제하되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라고 강조한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총인구 중 65세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들어섰으며 2018년에 고령 사회, 2026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식단보다 한국 식단이 더 건강”
박 교수는 애초 장수에 관심이 없었다. “장수에 관심을 가진 건 10년쯤 됐어요. 그전에 노화를 주로 연구했지요. 노화를 연구할 때 나에게 있어 장수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니었어요. 관심이 없었던 거죠.” 박 교수는 노화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전에는 생화학교실에서 주로 기초 암 연구를 해 왔다. 1980년대에는 국립암센터 원장인 박재갑 교수와 이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암 연구를 하던 중 생쥐 실험은 그를 장수학자로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 “생쥐 실험에서 독성실험을 하니 젊은 쥐가 더 잘 죽더군요. 거기에서 느낌이 왔어요. 아, 노화는 죽자는 것이 아니라 살자는 것이구나. 생존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다. 즉 노화는 생존이라는 것이죠. 그럼 장수는 뭐냐. 생존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죠. 100세 장수인이 고민도 없이 세상 편하게 살았겠어요? 다들 광복이 되고 6·25 격변기를 겪으면서 힘든 세월을 보냈지요. 한 장수 노인은 6·25 때 눈앞에서 아들이 죽창에 찔려 죽었다고 해요. 한이 얼마나 맺혔을까. 이런 사람들은 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밥도 굶으면서 이런것을 다 이겨낸 사람들이에요. 즉 장수는 바로 생존이란 게 내 결론이에요.”
박 교수는 생쥐 실험 결과를 세계적인 권위지 <네이처>에 2002년에 발표했고, ‘젊은 세포와 노화 세포 실험’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당시 의학계에 새로운 충격을 줬다. 이 연구는 노화에 대한 기존의 개념과 세간의 인식을 수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박 교수는 이후 ‘장수’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노화의 종적관찰’을 250명을 대상으로 7년 동안 했어요. 결론은 몇 년 동안 40대에서 70대까지 추적하니까 몸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데 인간의 수명이 100세 되면 마지막 생존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떨어져 있을까를 연구하다 장수 연구로 이어진 겁니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의 장수 원인에 대해 묻자 박 교수는 별로 특별한 게 없다고 단언했다. “우리 식단과 일본 전통식단을 비교하면 영양학적 면에서 일본 식단은 형편없어요. 우리가 훨씬 건강 식단입니다. 우리는 나물도 있고 여러가지 발효식품도 있는데 일본은 나물은커녕 발효식품이라 해 봐야 낫토 말고는 없어요. 일본은 패전 후에 식단을 육식으로 바꿨어요. 그 전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일본 연구진이 개발한 게 스키야키와 돈가스, 이런 겁니다. 고기를 먹이려고요. 우리나라는 1960대 이후부터 고기를 먹었지요. 일본보다 20년 뒤진 거죠. 우유도 그렇고요.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50세였어요. 일본은 1945년에 딱 50세였고요. 일본의 장수 비밀을 굳이 든다면 부지런함 정도로 보고 싶네요.”
과학이 좀 더 발전하면 몇 살까지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지금까지 통계상 프랑스의 잔 칼망 할머니가 122년 6개월을 산 것이 최고기록입니다. 그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세계 최고는 115세 정도입니다. 영국의 오브리 드 그레이라는 학자는 ‘무시할 수 있는 노화 요인을 극복하면 사람의 수명은 무한대다’라고 말을 했지만 나는 보편적인 상황에서 평균 90세 시대는 곧 온다는 입장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만의 장수 특징이 있는 것일까? “한국의 100세인은 분명 서양과 패턴이 달라요. 서양에서 연구한 결과 장수유전자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우리나라 장수인들에게는 그게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인 남자만의 장수유전자는 있지요. 바로 알코올 분해효소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장수인, 특히 남자 장수인은 술을 잘 마십니다. 앞으로 연구가 더 진척되면 공통적인 유전자 요소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장수학 권위자인 박 교수의 건강관리는 어떨까. “내가 예전에 말 한 번 잘못해 곤란해진 적이 있어요. 언젠가 TV에서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물어오기에 ‘나는 걸어다녀요, 차를 팔아 버렸소’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 차를 못 사! 하하. 괜히 말 한번 잘못 해 가지고….”
박 교수가 즐겨 먹는 음식도 긍금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지만 한식을 좋아합니다. 특히 시원한 무국을 좋아해요. 반찬으로는 항상 김이 나와야 하고. 감을 좋아해요. 감은 하루에 한두 개 꼭 챙겨 먹어요.”
“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 필요”
초고령 사회가 되면 우리사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고령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다 외로워져요. 자식들도 부모를 안 챙기고. 자식도 늙으니까 못 챙기는 거지요. 이제 옛날처럼 가족공동체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어요. 그럼 누가 가족을 대신할 것이냐? 바로 이웃과 지역사회예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중요해요. 요즘은 인터넷 동호회 같은 것도 많잖아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것, 만남과 어울림의 장이 확대돼야 해요. 이게 마음의 장벽을 부수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교육이에요. 새로운 인생을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제2차 의무교육을 실시해야 해요.”
박 교수는 현재 전국에서 10만여 명의 노인들이 즐기고 있다는 ‘장수춤’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 구상은 그가 탑골공원에 자주 들르면서 비롯됐다. 그곳에서 쪼그려 앉아 시간을 죽이는 노인들을 보면서 그들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게 하자’는 취지로 만든 운동프로그램이 ‘장수춤’이다. 박 교수의 교육 열정은 대단하다. 서울대에서 ‘인생대학’을 개설한 것을 필두로 ‘미니매드스쿨’과 ‘장수과학최고지도자과정’에서 노인들에게 의학 상식을 가르치고 전북 순창군의 노인장수연구소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박 교수는 장수인이 되려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당당하게 함께하는 노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또한 “고령 사회 진입을 10여 년 남겨 두고 누구든지 원하면 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고령화 사회는 무엇일까. “노인이 하릴없이 누워 지내지 않는 세상”이라고 박 교수는 힘주어 말했다
“거가 살 때가 좋았어. 어디든지 다 왔다 갔다 하면서 내 맘대로…. 친구들 있응께 서로 오가고 그라면서 사는디…. 여기서는 뭐 아무데도 갈 데 올 데가 없잖여. 여그 와서 혼자여.” 조남옥 할머니(95)는 부천에 살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의 일자리를 따라 7년 전 서울 강남구로 올라왔다. 구순이 넘은 조 할머니에게 강남이란 곳은 노년기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더욱 배가시키는 환경이었다. 젊은 사람들의 생산 활동을 돕기 위해 기획된 강남구라는 환경이 지닌 특성은 할머니가 하루 종일 집안에서 고립된 채 가족 외의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서울 종묘공원에서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조 할머니는 거동이 가능함에도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하러 나가거나 일주일에 한 번 교회로 외출 나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바깥 출입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지하철을 타고 딸을 만나러 가고 싶지만 복잡한 지하철 노선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농촌서 서울로 이주… 스트레스 심해
초고령 노인 인구의 증가는 전국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시의 초고령 노인 인구 급상승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현재 인구 대비 초고령 노인의 상대적 비율은 농촌지역이 높으나 절대적 숫자는 서울시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통계청의 2009년 3분기 구별· 연령별 인구 자료에 따르면 8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만7372명으로 서울시 인구의 0.6%를 차지한다. 이는 1995년의 0.2%에 비해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95세 이상 서울시의 남성 초고령 노인 인구는 전국 대비 21.6%, 여성 초고령 노인 인구는 18.6%인 것으로 타나났다.
이번 ‘서울 100세인 연구’를 보면 서울지역 초고령 노인의 경우 조 할머니 경우처럼 시골에서 서울로 이주한 비율이 56.3%이다. 그것도 시골에서 대부분을 살다 60대 이후에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농촌에서 살다가 미로 같은 거대도시인 서울에 오는 경우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대 아동복지학과 한경혜 교수는 “농촌은 기본적으로 열린 공간이다. 노인들이 마을 어귀에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형성이 가능하지만 서울은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며 동네커뮤니티를 형성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은 농촌처럼 가족 부재시 돌봐 줄 이웃도 거의 없는 것이 문제다. 한 교수는 “이 때문에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웃의 역할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농촌보다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도시형 초고령 노인의 경우 ‘건강하고 행복한 장수’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초고령층 ‘老老케어’에 맡길 것인가
ㆍ60대 부양자에 육체·경제적 부담…
ㆍ장수 지원 ‘사회적 보살핌’ 절실
한국인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으면서 장수 인구도 늘고 있다. 장수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사회적 문제를 파생시키기도 한다. 특히 장수 인구의 삶을 보장할 제도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장수는 이중성을 보인다.
고령화 시대에서 초고령자 복지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사진은 서울대에서 장수 관련 강의를 수강하는 노인들의 모습이다. |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생명표’에 따르면 2008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0.1년으로 2007년 대비 0.5년, 1998년 대비 5.3년 늘어났다. 기대수명은 해당 연도에 태어난 신생아의 평균 생존 연수로서 평균수명으로 봐도 무방하다.
통계청은 기대수명에 영향이 큰 60~70대 고령자의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기대수명이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또 우리나라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 다음으로 빠르다고 밝혔다. 즉 우리나라 인구의 수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고령인구, 특히 85세 이상의 초고령 인구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
“실버타운에 모실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씻는 것은 물론 식사까지 제가 없으면 안됩니다. 모든 일에 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담이 되죠.” 노환 때문에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86세 어머니’를 생각하면 ‘68세 아들’ 김동의 할아버지(가명·서울 도봉구)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령의 부모를 모시기엔 70세에 가까운 자신의 건강과 시간이 부담이다. 다행히 경제적 여력이 있어 조만간 노인전문요양시설에 어머니를 맡길 생각이다.
평균 수명이 급속히 늘어난다는 것은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1%를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85세 이상 장수하는 초고령 인구도 당연히 증가한다. 이로 인해 김 할아버지 경우처럼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초고령 가정도 늘고 있다. 초고령 가정의 증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인 셈이다. 문제는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일인 ‘노노(老老)케어’가 부양자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서울 100세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95세 이상의 초고령 노인을 부양하는 이들의 경우 며느리·자식·아내 등이 대부분이며, 이들(표본 80명)은 평균나이 63.6세의 노인 연령대로 조사됐다.
초고령 노인을 부양하는 이들 가운데 42.9%는 부양활동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본인에 대한 노인의 의존성’이 80%(복수응답)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개인시간 부족(46%)’ ‘노인 행동에 대한 곤혹감(45%)’ ‘부양과 집안일, 직업 사이의 스트레스(43%)’ 순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과 부양자 건강 악화도 각각 25.3%와 20%로 나타났다.
즉 개인적 자유의 속박과 육체적·경제적 스트레스로 인해 노노케어는 부양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구팀은 “부양자 노령화 추세가 현저하고, 부양자가 경제활동 중단이나 건강 악화 등 노년기 어려움에 직면한 경우가 많다”면서 “가정의 노노케어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것이 초고령 가정의 문제”라고 밝혔다.
서초구립 양재노인종합복지관 강은경 부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가정 노노케어는 현실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초고령 가정의 부양자가 복지관을 찾아 상담하는 일이 많다. 강 부장은 “대부분 부양자의 건강 악화나 경제적 부담감 등 노노케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양자의 부담을 덜어 주는 실질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득보장·요양보험 개선 시급
노노케어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노후연금 등 초고령 노인에 대한 실질적 소득 보장과 장기요양보험의 보완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노인복지진흥재단 홍미령 회장은 “초고령 노인에 대한 실질적 소득보장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기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연금과 질병에 대한 보험체계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됐다.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으로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사람에게 요양·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2009년에는 약 28만명의 고령자가 혜택을 받았지만 이는 전체 노인 인구의 5.3%에 불과한 수치다.
홍 회장은 “실제적으로 홀로 거동이 어려운 중증질환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도록 돼 있어 치매에 걸린 초고령 노인은 심사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혜택 대상을 확대하고 초고령 노인을 위한 맞춤형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고령 노인은 소득도 불안정하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국민연금을 받는 비율은 22%(2009년 기준)로, 실질적 소득이 없는 이가 상당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는 2008년부터 소득 수준 하위 70%의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한 달에 2만~8만8000원에 그쳐 실질적 생활비로는 턱없는 부족하다.
한국사회보건연구원의 정경희 저출산·고령사회 연구위원은 “실질적 생활비 지급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사각지대가 없는 제도 개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요양보험이나 기초노령연금 대상자의 확대와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초고령 노인이 없도록 또 다른 복지제도의 활용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건강 수준을 판단해 적용하는 장기요양보험에 경제적 수준까지 감안하는 방식이나 노인 돌보미 시스템 확대로 가정 노노케어의 부담감을 덜어 주는 방식 등이 있다. 정 연구위원은 “예산 등을 고려해 점진적이되 누수 없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한계수명 120세 벽 깨질까
ㆍ미국 대학 두 교수 130세·150세 가능 주장
‘인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물음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대부분이 성장기간의 6배 이상 살지 못한다. 이를 근거로 그동안 약 20세까지 성장하는 인간의 한계수명은 120세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세계 최장수자인 잔 칼망(프랑스·여)도 122년 164일을 살았다. 그러나 한계수명 120세의 벽을 넘어설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며 많은 이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물음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경남 남해군 장수마을 노인들의 건강한 모습이다. |
장수 가능케 하는 유전자 발견 발표
인간수명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내기가 있다. 지난 2000년 노화 연구 분야의 저명한 학자 스티븐 오스태드 미국 아이다호대 교수는 한 학술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인간 수명은 150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에 이 소식을 들은 스튜어트 올샨스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오스태드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기를 제안했다. 내기 시점에서 149년 뒤인 2150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150세 이상 생존한 사람의 유무를 따지기로 했다.
오스태드 박사는 “획기적인 생의학 발전이 10~20년 안에 일어나 현재 인간의 수명이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샨스키 박사는 “혁신적 발전이 이뤄져도 이미 DNA와 인체의 여러 부분이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인간이 150세까지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매년 10달러를 신용기금에 적립하고, 두 사람이 사망한 이후에는 후손들이 적립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모인 5억 달러는 내기에서 이긴 사람의 후손들에게 주어진다.
수명기간에서 의견이 엇갈렸지만 두 학자 모두 인간의 노화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발전 가능성을 낙관했다. 오스태드와 올샨스키는 각각 150세와 130세를 한계수명이라고 주장했다. 수치는 다르지만 한계수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는 이어졌다.
평균 100세 장수를 가능케 하는 3개의 유전자가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2월 2일자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 앨버트아인슈타인의대 노화연구소장 니르 바질라이 박사는 평균연령 100세인 유대인 500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3개의 유전자가 과잉 발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유전자는 심장병·당뇨 등 질병에서 인간을 보호해 준다. 바질라이 박사는 이 유전자의 활동을 모방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된다면 수명 연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장수’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된다. 그리고 ‘건강하게’라는 전제가 당연하게 붙는다.
“장수 사회는 100세 인구의 건강 여부에 따라 변할 것이다. 100세인이 건강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병약한 100세인이 급격히 증가하면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로버트 버틀러 국제장수센터 소장의 말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장수의 의미는 퇴색된다. 결국 ‘인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인 물음은 ‘무병장수’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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