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필과 방상이 조가(은나라)에 반역하다
▲ 삽화 권미영
조전과 조뢰 장군이 자객 姜環강환을 압송하여 서궁으로 데려와 무릎을 꿇렸다.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형벌을 받은 강 황후가 하나 남은 눈을 부릅뜨고 꾸짖는다.
“너 이 도적놈아! 누구에게 매수되어 너는 나를 함정에 빠뜨렸느냐? 네가 감히 나를 임금을 시해하려고한 주모자라고 무고했느냐! 하늘과 땅 조차 너를 돌보아 주지 않을 것이다”
강환이 대답했다.
“마마께서 소인에게 시키셨는데, 소인이 어찌 감히 마마의 뜻을 거역하겠습니까? 마마께서는 더 이상 변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황 귀비가 크게 노했다.
“강환, 이 필부 같은 놈아! 네 놈은 강 황후가 이처럼 참혹한 형벌을 받고, 무고하게 목숨이 끊어지게 되신 것을 똑똑히 보아라! 천지신명께서도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한편, 서궁에서 강 황후가 모진 고초를 겪고 있는 동안 東宮동궁에 있던 태자 殷郊은교와 둘째 전하 殷洪은홍 형제는 한가롭게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동궁을 관장하는 태감 楊容양용이 나타나 아뢰었다.
“전하! 환난이 생겼는데, 그 재앙이 적지 않습니다!”
태자 은교는 이때 나이가 14세였고, 둘째 전하 은홍은 12세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 한창 놀이를 탐할 때였으며, 그 말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양용이 다시 아뢰었다.
“전하! 바둑과 장기를 그만 두십시오. 지금 재앙이 궁궐에서 일어나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전하가 황급히 물었다.
“무슨 큰일이 발생하여 재앙이 궁궐에 까지 미치게 되었습니까?”
양용이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전하께 아뢰옵니다. 황후 마마께서 누군가에게 모함을 받았는데, 천자께서 진노하시어 서궁에서 황후마마의 한쪽 눈알을 도려내었고, 두 손을 불에 지져 태우는 포락의 형벌을 가했습니다. 지금 자객을 데려와 대질신문을 하고 있는데, 전하께서 속히 황후마마를 구원하시기를 바라옵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 은교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동생 은홍과 함께 동궁을 나와 서궁으로 갔다. 서궁에 들어와 전각 앞에 도착했다. 눈앞에는 황후인 어머니의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고, 양손은 불태워지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찢겨지는 듯하며 몸이 떨렸다.
태자 은교는 강 황후의 신변으로 바짝 다가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다. “어머님, 무슨 일로 이런 참혹한 형벌을 받았사옵니까? 어머님, 당신이 비록 큰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황후인 中宮중궁인데, 어찌 가벼이 여겨 이렇게 형벌을 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강 황후가 아들의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그 어미가 아들을 보자,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내 아들아! 내가 보다시피 내 눈알이 도려내지고 손이 불태워지는 등 사람을 죽게 하는 처참하고 모진 형벌을 받았다. 이것은 강환이라는 자가 내가 역모를 꾸몄다고 음해하였고, 달기가 참언을 하여 나의 손과 눈을 해치게 하였다. 너는 마땅히 어미를 위해 원통함을 밝혀주고 원한을 씻어다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키운 보람이 아니겠는가!” 말을 마치고 “원통하게 죽는구나!”하며 소리를 크게 지르며 목이 메어 울다가 숨을 거두었다.
태자 은교는 눈앞에서 모친이 죽는 것을 보았고, 또 한쪽에는 자객 강환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자가 황 귀비에게 물었다.
“누가 강환 입니까?” 황 귀비가 강환을 가르치면서 말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저 나쁜 자가 바로 너의 어머님과 대질 신문한 그 원수이다.”
노기충천한 태자의 눈에 서궁 문 위에 보검 한 자루가 걸려있는 것이 들어왔다. 태자가 그 보검을 꺼내 손에 들고
“이 도적놈아! 너는 자객질을 하고 네 양심을 속여, 감히 국모를 음해하여 함정에 빠뜨렸다!”
말을 마친 태자가 바로 검을 날려 강환을 두 토막 내었는데, 피가 솟구치면서 땅이 붉게 물들었다. 태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먼저 달기를 죽여서 모친의 원수를 갚겠다!” 검을 들고 서궁을 나오는데, 발걸음이 나는 듯하였다.
조전·조뢰 장군은 태자가 검을 들고 나오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곧장 몸을 돌려 수선궁으로 뛰어갔다.
황 귀비는 태자가 강환을 죽이고 검을 들고 서궁을 나가자 놀라서 말했다.
“이 원수 놈이 죽었으니 일의 내막을 알 수가 없게 되었구나!”
은홍에게 말했다.
“빨리 쫓아가 형님을 불러 오시오, 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하시오!”
은홍이 명을 받고 서궁을 나와 형을 쫓아가면서 고함을 지른다. “형님 전하! 황 귀비 마마께서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빨리 돌아오라 하십니다!” 태자 은교는 이 말을 듣고 서궁으로 되돌아 왔다.
황 귀비가 말했다.
“태자 전하는 노여움에 너무 조급했습니다. 이제 강환을 죽였으니, 사람이 죽어 대질할 수도 없습니다. 태자는 내가 숯불에 달구어진 구리 통으로 강환의 손을 포락의 형벌로 불태우고, 또 엄격한 형벌로 문초하여 강환이 스스로 자백해서, 누가 주모자인지 밝혀지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지를 잘 받들 수 있었습니다. 태자가 또 검을 들고 서궁을 나가 달기를 죽이겠다고 달려갔으니, 아마 조전·조뢰장군이 수선궁으로 가서 어리석은 임금을 만난다면 그 화가 적지 않을 것이오!”
황 귀비의 말을 듣고 은교와 은홍 형제는 후회막급이었다.
▲ 삽화 권미영
조전·조뢰가 뛰어서 수선궁 문 앞에 도착하여 서둘러 궁 안으로 들어가 천자께 아뢰었다.
“두 분 전하가 검을 들고 뒤쫓아 옵니다!”
그 말에 크게 노한 주왕이 “이 역적 같은 놈들! 강 황후가 역모를 하여 나를 죽이려고 한데 대해, 아직 법을 집행도 하지 않았는데, 이 역적의 자식이 감히 검을 가지고 궁으로 들어와 아비를 죽이려고 하다니! 종래 역적의 씨이니, 가히 살려둘 수 없도다.
조전·조뢰는 龍鳳劍용봉검을 가지고 가서 두 역적 놈의 머리를 베어와 국법을 바로 잡으라!” 하였다.
조전·조뢰가 용봉검을 가지고 수선궁을 나와 서궁으로 갔다. 그때 서궁의 봉어관이 와서 황 귀비에게 보고한다.
“조전·조뢰가 천자가 내린 검을 받들고 두 전하를 죽이러 옵니다.”
황 귀비가 급히 서궁 대문에 가서 보니 조전·조뢰 형제 두 사람이 천자의 봉명검을 받들고 다가온다. 황 귀비가 물었다.
“당신들 두 사람은 무슨 연고로 다시 이곳 나의 서궁으로 왔는가?”
조전이 대답했다.
“신 조전이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두 분 전하의 首級수급을 취하려고 합니다. 이로써 아비를 죽이려한 죄를 바르게 다스리고자 합니다.”
황 귀비가 한마디로 크게 꾸짖었다.
“이 필부 같은 자들아! 마침 태자가 너희를 뒤따라 서궁을 나갔는데, 너는 왜 동궁에 가서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어찌 나의 이 서궁에 와서 찾으려고 하느냐?
내가 보기로는 너희 필부 같은 놈들이 천자의 뜻을 빙자하여, 內院내원을 두루 살피고 있는데, 이는 깊은 궁궐의 귀비를 농락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구나! 너희들, 임금을 기만하고 윗사람을 속이는 이런 필부 같은 놈들에 대해 만약 천자가 내린 검이 아니라면, 바로 너희들 필부의 머리를 베어 버렸을 것이다. 속히 물러가지 않고 무얼 꾸물거리느냐!”
이 말에 조전 형제 두 사람은 놀라서 간담이 서늘한 채 연거푸 예예 하면서 물러가는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급히 동궁으로 갔다.
황 귀비는 두 사람이 물러가자 서둘러 궁 안으로 들어가 은교 형제 두 사람을 불렀다. 황 귀비가 울면서 말을 잇는다.
“우매한 임금이 아내를 죽이고, 자식까지 죽이려 하는데, 귀비인 나 이 서궁이 전하들을 구할 수 없으니, 전하들은 馨慶宮형경궁 楊 貴妃양 귀비가 계시는 그 곳으로 가서 하루 이틀 피해 있도록 하시오. 만약 대신들이 간언하여 구해줄 수 있다면 그때는 목숨만은 보전할 수 있을 것이오.”
두 분 전하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마마를 외치면서 말했다.
“귀비마마, 이 은혜를 어느 날에 갚을 수 있으리오! 다만 어머님이 돌아 가셨고, 시체가 이슬을 맞고 있사오니, 마마님께 바라옵건대 천지와 같은 열린 마음으로 어머님이 억울하게 죽었음을 염두에 두시고, 저희를 대신하여 한 조각 판자로 시체라도 가릴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이 은혜는 하늘 같이 높고 땅처럼 두터울 것인데, 어찌 감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황 귀비가 대답했다.
“두 분 전하는 속히 가도록 하시오, 이 일은 내가 처리 하겠소. 내가 천자에게 고하면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오.”
두 분 전하가 서궁을 나와 곧 바로 형경궁으로 갔는데, 마침 양 귀비가 궁문에 기대어 있으면서 강 황후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두 분 전하가 앞으로 다가와 울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양 귀비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두 분 전하, 황후 마마의 일은 어떻게 되었소?”
▲ 삽화 권미영
양 귀비에게 형경궁에서 쫓겨난 조전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할까?”
조뢰가 말했다.
“태자 형제가 세 궁에는 없는데, 궁전 내부가 생소하고, 내궁의 지리도 잘 모른다. 수선궁으로 돌아가 천자를 알현하고 어지를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하면서 두 사람은 돌아갔다.
양 귀비는 형경궁 안으로 들어가자 태자 형제가 다가왔다. 양 귀비가 말했다.
“이곳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더 이상 태자 형제가 머무를 곳이 아니오. 임금이 어리석어 신하를 살해하고, 자식과 아내를 죽이므로, 기강과 상규가 크게 변하였으며, 인륜이 이미 없어졌소.
두 분 전하가 九間殿구간전으로 가면 조정의 문무백관이 아직 해산하지 않고 있을 것이니, 태자가 황족인 미자·기자·비간·미자계·미자건·무성왕 황비호 등을 만나 전하의 아버지가 두 분 형제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시면, 대신들이 두 분 전하를 보호해 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태자 형제 두 전하는 양 귀비에게 머리 숙여 절을 하고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를 표시하였다. 태자 형제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양 귀비는 두 분 전하가 형경궁에서 나가는 것을 배웅하고 돌아와 등받이가 없는 수놓은 의자 위에 앉아서 스스로 탄식조로 내뱉는다.
“강 황후는 본처인데도 간신에게 모함을 받아 이 같은 모진 형벌을 받았는데, 하물며 정궁이 아닌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제 달기가 임금의 총애를 믿고, 어리석은 임금을 더욱 미혹되게 하였다. 만약 두 분 전하가 이곳 형경궁에 숨어 있다가 도망간 것을 발설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는 나에게 그 죄가 돌아올 것인데, 또한 나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내가 그 참혹한 형벌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하물며 나는 어리석은 임금을 여러 해 모셨지만, 자식 하나도 없다.
동궁 태자는 바로 자신이 친히 나은 자식이며, 부자간은 천륜인데도, 자식을 죽이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三綱삼강이 이미 끊어졌고, 멀지 않아 반드시 화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후에는 반드시 무슨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양 귀비는 반나절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처량함이 몰려와 슬픔에 빠졌다. 상심 속에서 형경궁의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목매어 자살했다.
궁전의 관리가 수선궁에 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주왕이 양 귀비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그 연고도 모른 채 어지를 전했다.
“棺槨관곽을 준비하여 백호전에 안치하라”
막 조전·조뢰가 수선궁에 도착했을 때, 황 귀비가 수레를 타고 와서 폐하께 고하고 있었다.
주왕이 물었다.
“강 황후는 죽었는가?”
황 귀비가 아뢰었다.
“강 황후가 목숨이 끊어질 즈음 크게 울부짖으며 몇 마디 하였습니다. ‘첩이 임금을 모진지 16년, 두 아들을 낳아 하나는 동궁이 되었고, 스스로 황후로서 책무를 다했는데, 조심하여 삼가고 근신했으며,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게으르지 않았으며, 임금을 모시면서 질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나를 시기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자객 강환을 매수하여 나에게 대역무도한 죄명을 뒤집어 씌었다.
이러한 처참한 형벌을 받아서 열 손가락이 다 탔고, 근육과 뼈가 바삭바삭하게 부수어졌다. 자식을 낳은 것도 뜬 구름 같고, 임금에게 은애를 받은 것도 흐르는 물처럼 사라졌는데, 지금 죽게 되는 이 몸은 禽獸금수만도 못하다. 이 한바탕 억울함을 설욕할 방법이 없으니, 다만 천하의 후세에 전해지면 자연히 공론이 있을 것이다.’하면서 신첩에게 이러한 뜻을 폐하께서 듣도록 전해 달라고 천만번 간절히 희망하였습니다.
강 황후는 말을 마치고 기절하여 죽었으며, 그 시체는 서궁에 누워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강 황후가 본처이고 태자를 낳은 정을 헤아려 관곽을 하사하시고 시체를 백호전에 안치하라 하시옵소서. 그러 하오면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문무백관들도 의론이 없을 것이오며, 또한 군주의 덕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주왕이 어지를 내려 그렇게 하도록 하였고, 황 귀비는 서궁으로 돌아갔다.
그때 조전이 돌아와 알현하자 주왕이 물었다.
“태자가 어디에 있던가?”
조전 등이 아뢰었다.
“동궁을 두루 찾아보았사오나 전하의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주왕이 말했다.
“설마 서궁에 있지는 않겠지?”
조전이 대답했다.
“서궁에도 없었고, 형경궁에도 없었사옵니다.”
주왕이 말했다.
“세 궁에 없다면, 대전에 있을 것이다. 반드시 사로잡아 국법을 바르게 해야 한다.”
조전이 어지를 받고 수선궁을 물러나왔다.
한편 은교․은홍 등 두 분 전하가 長朝殿장조전으로 가니, 문무양반이 모두 해산하지 않고, 궁궐 내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성왕 황비호가 허둥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공작병풍 사이로 바라보니 두 분 전하가 당황하여 안절부절 하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여, 황비호가 나가 맞아들이며 물었다.
“전하, 어찌하여 이렇게 허둥대는 것이옵니까?”
태자 은교가 무성왕 황비호를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황장군, 우리 형제의 목숨을 구해주세요!”
은교가 울면서 아뢰었다.
“부왕이 달기의 말을 믿고, 누군가가 자객 강환을 매수하여 사건을 날조하여 무고하게 음해한 것을 모르고, 어머님의 눈알 하나를 도려내었고, 두 손을 지져 불태우는 포락의 형벌을 가하여 비명에 죽었습니다. 이제 또 달기의 참언을 듣고, 저희 형제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작은 어머님께서 부디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십시오!”
양 귀비는 은교를 말을 듣자, 눈물이 흘러내려 온 얼굴을 가렸다. 오열하면서 말을 잇는다.
“전하, 당신들은 빨리 궁 안으로 들어오시오!” 두 분 전하가 형경궁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양 귀비는 문득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조전·조뢰가 동궁에 갔다가 태자를 찾지 못하면, 반드시 이곳으로 찾아 올 것이다. 내가 이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난 후, 그때 가서 다시 방도를 찾아보아야겠다!”
양 귀비가 형경궁 앞에 서있는데, 조전 형제가 먹잇감을 찾는 이리나 호랑이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양 귀비가 명령을 내렸다
“형경궁 관리는 나와 함께 이 두 사람을 잡아들이라! 이곳은 깊은 궁궐 내부인데, 바깥 관리가 어찌 감히 이곳으로 들어오는가? 법으로 처리하면 멸족해야 마땅하도다!”
조전이 양 귀비의 말을 듣고, 귀비를 향해 마마를 외치면서 말했다.
“귀비마마! 신 등은 조전· 조뢰라고 하오며, 천자의 어지를 받들어 두 분 전하를 찾으러 왔습니다. 천자가 내린 봉명검을 뫼시고 있어 신 등은 감히 예를 올릴 수 없사옵니다.”
양 귀비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전하는 당연히 동궁에 계시는데, 너희들은 어찌 형경궁으로 왔느냐? 만약 천자의 명령이 없었다면, 너희들을 붙잡아 바로 賊臣적신으로 문초했을 것이다. 그래도 속히 물러가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에 조전 등은 감히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 삽화 권미영
태자 은교가 황비호에게 구해달라는 말을 끝내고 통곡했다. 한손으로 황비호의 옷을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을 이었다.
“부왕께서 달기의 말을 믿고, 흑백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 어머님의 눈알 하나를 도려내었고, 구리로 만든 말 통을 불에 달구어 두 손을 포락하여 불태웠으며, 결국 황후는 서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황 귀비가 모친의 죄를 심문하였으나, 조금도 거짓이 없었습니다. 저는 나를 낳은 모친이 이런 참혹한 형벌을 받는 것을 보고, 그 자객 강환이 대질 심문하기 위해 앞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자, 다급한 마음에 깊이 헤아려볼 겨를도 없이 강환을 죽였습니다.
내가 다시 검을 가지고 달려가 달기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뜻밖에 조전이 부왕께 이 사실을 상주하여 부왕이 우리 형제 두 사람을 죽이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여러 황실의 어른 여러분, 저의 모친이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 은교를 구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면 成湯성탕의 일맥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두 분 전하가 목을 놓아 통곡한다. 문무양반은 일제히 눈물을 머금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국모가 무고를 받았는데, 우리들이 어찌 그냥 앉아서 보겠는가? 종과 북을 두드려 천자께서 대전에 오르게 하시고, 그 일에 관해 의견을 밝힙시다. 그리고 죄인을 붙잡아 황후의 억울함을 씻도록 합시다.”
이런 말들이 오고가는데, 대전의 서쪽 머리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공중에서 벽력이 치는 것같이 큰소리로 외쳤다.
“천자가 실정을 해서 처와 자식을 죽이고, 炮烙포락의 형구를 만들어 충성스런 신하들의 간언을 막고 무도함을 자행하고 있는데, 대장부가 능히 황후의 원통함을 씻어 주지도 못하고, 태자를 위해 복수하지도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슬피 울기만 한다면 아녀자의 작태를 본받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옛말에 이르기를 ‘훌륭한 새는 나무를 가려서 깃들고, 어진 신하는 임금을 가려서 벼슬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자는 무도하여 삼강이 이미 끊어졌고, 대의가 어그러졌으므로 지금 천자는 천하의 주인이 될 수가 없으니, 우리 역시 그의 신하됨이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조가(은나라)를 반역하여 다른 새로운 주군을 선택하고, 이 무도한 임금을 떠나 사직을 보전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여러 관원들이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그들은 鎭殿진전대장군 方弼방필·方相방상 형제였다. 그 말을 들은 황비호가 큰 소리로 꾸짖는다.
“당신들은 높은 관리로서 감히 이러한 허튼 소리를 하는가! 조정에 가득한 많은 대신들이 어찌 너의 주장을 받아들이겠는가! 마땅히 너희들 난신적자는 끌어내야 하거늘,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그 말에 방필·방상 형제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예예할 뿐 감히 대답하지 못한다.
황비호는 국정이 무너지고, 겹쳐서 나타나는 상스럽지 못한 일들을 보고, 또한 하늘의 뜻과 인심에 모두 난리의 조짐이 있음을 알고는 마음속으로 침울하고 즐겁지 않아 탄식할 뿐 말이 없었다.
또 미자·비간․기자 등 황실 어른들도, 만조한 문무관원들도, 사람마다 이를 갈며 장탄식을 하는데, 딱히 무슨 계책이 없었다.
그때 몸에 대홍포를 걸치고 허리에 보석 띠를 차고 있는 관리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여러 황실어른들을 향해 고했다.
“오늘의 변고는 바로 終南山종남산 雲中子운중자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주가 바르지 않으면,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가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자는 태사 두원선을 억울하게 참수하고, 포락의 형벌로 간관 매백을 다스렸고, 오늘은 또 이러한 이상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황상은 푸른 것과 흰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처와 자식을 죽이는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것은 간신이 꾸미고, 역적이 일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 역적이 곁에서 몰래 웃고 있는 형국입니다.
가련하구나, 成湯성탕의 사직이여! 하루아침에 폐허로 되니, 우리들은 머지않아 다른 사람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상대부 楊任양임이었다.
황비호가 장탄식을 하더니 “대부의 말이 옳다!”
백관들은 묵묵부답이었고, 은교․은홍 등 두 분 전하는 슬퍼서 울고 있는데,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이때 방필․방상 형제가 여러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와 방필이 은교를, 방상이 은홍을 옆구리에 끼고 큰소리로 외쳤다.
“주왕은 무도하여 자식을 죽이고 종묘를 끊어지게 하고, 처를 죽여 삼강과 윤리가 어그러졌다. 오늘 두 분 전하를 보호하여 東魯동로로 가서 군대를 빌려서 어리석은 임금을 제거하고 다시 成湯성탕의 후사를 세우겠습니다. 우리들은 조가에 반역하노라!”
두 사람이 이렇게 외치고 은교와 은홍을 등에 업고 곧장 조가 남문을 나와 떠나갔다. 많은 관원들 중 가로막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문무관원들이 방필과 방상 형제가 반역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황비호만 홀로 모른 체했다. 아상 比干비간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황대인, 방필이 모반했는데, 대인은 어찌하여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오?”
황비호가 대답했다.
“문무관원들 중 방필 형제 같은 사람이 한분도 없는 것이 가히 애석합니다.”
▲ 삽화 권미영
무성왕 황비호가 방필의 반역에 대한 아상 비간의 물음에 대답했다.
“방필은 거칠고 경솔한 사내이지만 그래도 국모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것과 태자가 억울하게 죽는 것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감히 간언조차 할 수 없음을 알고, 두 전하를 등에 메고 가버렸습니다.
만약 성지를 내려 뒤쫓아 가서 붙잡아오라고 하면, 두 전하가 죽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충성스런 신하도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 일은 오직 죽음만 있고 삶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으나 다만 가슴 하나 가득한 충의를 피박하여 이러한 죄를 짓게 하였으니 심히 가엾게 여겨질 뿐입니다.”
이 말에 백관들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대전 뒤편에서 분주히 다가오고 있는 발자국 소리가 들여왔다. 여러 관리들이 바라보니 조전 형제 두 사람이 보검을 받들고 대전 앞에 이르러 말을 건넸다.
“여러 대인 여러분, 은교 태자와 은홍 두 분 전하가 九間殿구간전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황비호가 대답했다.
“두 분 전하가 방금 구간전에 올라와 울면서 국모가 억울하게 문초를 받아 죽음을 당하였고, 또 태자에게 죽음을 내리게 하였다고 호소하였다.
鎭殿진전대장군 방필 · 방상 형제는 이 말을 듣고, 그 억울한 사정을 보고 참지 못하여 두 분 전하를 등에 업고 조가를 반역하고 도성을 떠났는데,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신들은 천자의 어지를 받들었으니, 속히 뒤쫓아 가서 붙잡아 돌아와 국법을 바르게 하시오.”
조전 ·조뢰 형제는 방필 형제가 반역하였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혼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알려진 대로 방필은 신장이 3장 6척이고, 방상은 키가 3장 4척이나 되는 巨漢거한인데, 조전 형제가 어떻게 감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주먹도 당해낼 수 없는 상대였다.
조전은 혼자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것은 황비호가 명백히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속셈인데 나에게도 계책이 있다.”
조전이 말했다.
“방필이 이미 반역을 하였고, 두 분 전하를 보호하여 도성을 떠났습니다. 末將말장은 궁으로 돌아가 어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조전이 수선궁으로 돌아와 주왕을 알현하고 아뢰었다.
“신이 어지를 받들어 구간전에 도착하였을 때 문무관원들이 해산하지 않고 있었으며, 은교 태자 형제 두 분 전하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관들의 말을 들어보니 두 분 전하가 문무관원들에게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진전대장군 방필 ·방상이 두 분 전하를 보호하여 조가에 반역을 선언하고 도성을 떠나 외가인 東魯동로에 의탁하여 군대를 빌리기 위해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주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방필이 반역을 하였다고, 조전은 속히 쫓아가 잡아 오시오. 결코 법을 집행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마라!”
조전이 다시 아뢰었다.
“방필이 힘이 대단하고 용맹한데, 신이 어찌 능히 잡아올 수 있겠습니까? 방필 형제를 붙잡아 오기를 원하신다면, 폐하께서 속히 황제의 친필조서를 내려 무성왕 황비호를 시키면 가히 성공할 수 있사오며, 전하 역시 놓치지 않을 것 입니다.”
주왕이 말했다.
“속히 친필 조서를 내려, 황비호에게 신속히 태자 형제를 잡아오도록 하라!”
이로써 조전은 방필 등을 붙잡는 책임을 벗어났고, 황비호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였다. 조전이 황제의 친필조서를 받들고 대전에 와서 무성왕 황비호에게 반역한 방필·방상 형제를 속히 사로잡고, 두 분 전하의 머리를 베어오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황비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이것은 조전이 나에게 책임을 밀어버린 것이로구나!”
곧 보검과 조서를 받고 오문을 나왔다.
황명·주기·용환·어염 등이 “소제들도 뒤 따르겠습니다.”한다.
황비호가 대답했다.
“당신들은 갈 필요가 없다.”
하면서 五色神牛오색신우에 올라 달리기를 재촉한다. 이 神牛신우는 양 머리 사이로 해를 보며 쉬지 않고 팔 백리를 달릴 수 있다.
한편, 방필과 방상 형제는 두 분 전하를 등에 업고, 단숨에 삼 십리를 달려간 뒤에 등에서 내려놓았다.
전하가 말했다.
“두 분 장군, 이 은혜를 어느 때에야 갚을 수 있으리오!”
방필이 대답했다.
“신은 전하께서 이러한 억울한 모함을 받은 것을 참을 수 없었사오며, 이 마음속 가득 분개한 생각이 일어나 일시에 조가(은나라)를 반역하였습니다. 지금 함께 의론하여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이 어려움을 벗어 날 것인지를 생각해 볼 때 입니다.”
한창 탈출 방법을 상의하고 있는 사이에 황비호가 오색신우를 타고 나는 듯이 뒤쫓아 오는 것이 보였다.
방필·방상 형제는 당황하면서 급히 두 분 전하께 말했다.
“소장 등 두 사람은 한 순간 경솔하였고, 스스로 깊이 생각하지 않아 이제 여기서 목숨이 끝나게 되었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삽화 권미영
태자 은교가 말했다.
“장군이 우리 형제의 생명을 구해주신 것에 대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하시오?”
방필이 말했다.
“황 장군이 우리를 붙잡으러 왔으니, 이번에 잡혀가면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은교가 급히 돌아보니 황비호가 얼굴 앞까지 다가왔다. 태자 은교와 은홍 형제 두 분 전하가 길가에서 무릎을 꿇고 황비호에게 말했다.
“황 장군께서 이곳에 왔는데, 설마 우리를 체포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황비호는 두 분 전하가 길가에 꿇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신우에서 내려와 역시 땅에 무릎을 꿇고 전하를 외치면서 말을 잇는다.
“신은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전하께서는 일어나십시오.”
태자 은교가 말했다.
“장군이 이곳에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황비호가 말했다.
“명을 받들어 파견되었습니다. 천자께서 龍鳳劍용봉검을 내리셨습니다. 청하옵건대 두 분 전하께서 자결하시면, 신이 감히 그 결과를 폐하께 고할 것입니다. 신이 감히 전하를 핍박하여 시해할 수 없사오니 전하께서 속히 시행하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태자 형제가 다 듣고 나더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장군은 우리 모자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사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모친 강 황후께서는 참혹한 형벌을 받았는데, 이 억울한 누명을 씻을 길이 없습니다. 다시 그 어린 아들을 죽이면 한 가문이 끊어집니다.
장군께서 억울한 죄를 쓴 이 고아를 가련히 여기시고, 천지의 인자한 마음을 베풀어 한 줄기 재생의 길을 열어 주시기를 비옵나이다. 만약 손바닥만 한 작은 땅을 얻어 가히 안주할 수 있다면, 살아서도 은혜에 보답할 것이고 죽어서도 결초보은 하겠나이다. 이 세상 다할 때까지 감히 장군의 크나큰 덕을 잊지 않겠사옵니다!”
황비호가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신이 어찌 전하의 억울함을 모르겠사옵니까? 임금의 명이므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신이 전하를 놓아드린다면, 곧 임금을 속이고 국법을 어기는 죄를 얻게 됩니다.
또한 전하를 놓아드리지 않으면, 사실 이 몸은 억울한 멍에를 짊어지게 되는데, 신의 마음인들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가 여기서 무사히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내보는 등 재삼 심사숙고하였으나 별다른 계책이 없었다.
태자 은교가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이번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 좋습니다. 장군은 이미 임금의 명령을 받았고, 감히 법을 어길 수 없습니다. 다시 드릴 말이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장군께서 이번에 덕을 베풀어 한 가문 일맥의 활로를 두루 온전히 하는 방법을 아시는지요?”
황비호가 말했다.
“전하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은교가 말했다.
“장군은 나 은교의 목을 베어 首級수급을 가지고 도성으로 돌아가 어지에 답하시오. 나의 어린 아우 은홍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가 다른 나라로 도망가도록 놓아주시오.
만약 은홍이 다음에 장성하여 혹 병사를 빌려 원한을 갚는 다면, 우리 어머님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드릴 수만 있다면, 나 은교가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될 것이오. 장군께서 가련히 여기시기를 바라옵니다!”
은홍이 앞으로 나가 급히 이를 그치게 하고 말했다.
“황장군, 이 일은 불가합니다. 형님께서는 동궁의 태자입니다. 저는 일개 군왕에 불과합니다. 하물며 저는 또 나이가 어리고, 크게 드러내 보일 것도 없습니다. 황장군께서는 이 은홍의 목을 베어 수급을 가지고 돌아가 어지에 회답하시오.
태자 형님께서는 혹 東魯동로로 가거나, 西岐서기로 가서 한 무리의 군사를 빌리십시오. 만약 어머님과 이 아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이 아우의 이번 한번 죽음이 어찌 애석하겠소!”
태자 은교가 앞으로 나와 동생 은홍을 끌어안고, 목을 놓아 통곡하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이 어린 동생이 이러한 참혹한 형벌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있으리오!”
이어서 두 사람은 통곡을 하면서 먼저 죽겠다고 나서는데 서로의 주장을 밀고 당기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방필 ․ 방상 형제는 이러한 비참한 처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보게 되자,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사람을 고통으로 말려 죽이는 모진 일이구나!”
눈에는 눈물이 바가지를 뒤집은 듯이 줄줄 흘러내린다.
황비호는 방필에게 이러한 충성심이 있음을 보게 되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심히 처량하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방필에게 울지 말라고 하고, 두 분 전하도 상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황비호가 말했다.
“이 일은 오직 우리 다섯 사람만 알고 있는데, 만약 비밀이 누설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나의 온 일족이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방필은 전하를 보호하여 동로로 姜桓楚강환초를 찾아 가도록 하고, 방상은 南伯侯남백후 鄂崇禹악숭후를 찾아가시오.
내가 중도에서 전하를 놓아주어 동로로 왔다고 말하고, 남백후에게 전갈을 보내어 두 곳에서 군대를 파병하게 한다면 간신을 처단하고 원통함을 씻을 수 있을 것이오. 나 황비호도 그때가 되면 스스로 조치할 방도가 있을 것이오.”
▲ 삽화 권미영
방필이 무성왕 황비호에게 말했다.
“우리 두 형제는 오늘 이른 아침에 이러한 뜻밖의 일이 있을 줄을 몰랐으며, 조정에서 전하를 호위하고 나올 때 노자조차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누어서 동남 두 길로 가려 하는데,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황비호가 대답했다.
“이 일은 당신이나 나나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황비호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내가 몸에 차고 다니는 장식품인 寶玦보결을 줄 테니 가는 길에 팔아 노잣돈으로 충당하시오. 위에는 황금으로 새긴 문양이 있으므로 百金백금의 가치가 있을 것이오. 두 분 전하께서는 앞길에 부디 몸 보중 하시옵소서! 방필 ․ 방상 당신 형제는 마땅히 각별한 마음을 써서 전하를 모시도록 하시오. 장차 그 공이 적지 않을 것이오. 신은 궁궐로 돌아가 復命복명토록 하겠습니다.”
황비호가 오색신우를 타고 조가로 돌아갔다.
황비호가 조가로 돌아오니 이미 해가 기울고 저물었는데, 문무백관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고 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황비호가 신우에서 내리자 比干비간이 물었다.
“황 장군, 어찌 되었소?”
황비호가 대답했다.
“추적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하였으며, 다만 어지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이 말에 백관들은 나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였다.
황비호는 그간의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 수선궁으로 갔다.
주왕이 물었다.
“아비를 죽이려는 자식과 반역한 역신을 붙잡았는가?”
황비호가 대답했다.
“신이 폐하의 친필 조서를 받들어 칠십 리를 추적하였는데, 마침 세 갈래 길에 도착하여 길가는 행인들에게 물었으나 하나같이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은 어지에 회답이 늦어 잘못될까 걱정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왕이 말했다.
“추적하지 못했다고, 이런 亂臣賊子난신적자 같은 놈들! 경은 잠시 물러가도록 하시오. 내일 다시 상의합시다.”
황비호는 은혜에 감사하고 궐문을 나섰고, 백관들도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달기는 아직 은교 ․ 은홍 형제를 붙잡아 오지 못한 것을 보자, 다시 주왕에게 진언했다.
“폐하, 오늘 은교와 은홍이 추적에서 벗어나, 만약 姜桓楚강환초에게 몸을 의탁하여, 큰 군사를 일으켜 머지않아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그 화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聞太師문태사는 멀리 원정을 떠나 지금 도성에 있지 않습니다. 속히 殷破敗은파패와 雷開뇌개에게 명령을 내려 삼천 기병을 거느리고 밤새 추적하여 은교 형제를 붙잡는 것이 나을 것이옵니다. 그리하면 마치 풀을 베고 뿌리를 제거하는 것 같아 후환을 없애는 것이옵니다.”
달기의 그 말을 듣고 주왕이 말했다.
“미인의 이 말이 짐의 뜻과 정히 합당하구려!”
급히 황제의 친필조서를 내렸다.
“은파패와 뇌개 장군은 명을 받들라. 날랜 기병 삼천 명을 거느리고, 속히 은교․ 은홍 두 왕자를 붙잡으라, 꾸물거려 일을 그르쳐 죄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은파패와 뇌개는 조서를 받고 황비호의 관사로 가서 군사를 동원하는 표지인 兵符병부를 수령하고 병마를 선발하려 했다.
그때 황비호는 後廳후청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정은 이미 잘못되고 있고, 장래 백성들은 근심하고 하늘을 원망하며, 만백성은 불안에 떨 것이며, 四海사해가 무너지고, 팔방이 어지럽고, 민생은 塗炭도탄에 빠져, 편안한 날이 없을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막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軍政司군정사가 보고를 한다.
“대장군, 은파패와 뇌개 두 장군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비호가 대답했다.
“들라 하라”
두 장군이 후청으로 들어와 군례를 마쳤다.
황비호가 물었다.
“방금 전에 조정을 물러나왔는데, 또 무슨 일이 있는가?”
두 장군이 보고한다.
“천자가 친필조서를 내렸는데, 소장들에게 삼천 날랜 기병을 거느리고, 밤을 새워 두 왕자를 추적하여 방필 등을 사로잡아서 국법을 바로잡으라고 하였사옵니다. 하오니 특별히 兵符병부 발급을 청하러 왔습니다.”
황비호가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 두 장군이 추적하면, 반드시 붙잡을 것이다. 내가 미리 손을 써서 방해를 좀 해야 하겠다.”
이에 은파패와 뇌개에게 명령했다.
“오늘은 이미 늦었다. 병사와 말이 정비되지 않았으니, 내일 오경에 병부를 수령하여 속히 출발하시오.”
두 장군은 감히 명령을 어길 수 없어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황비호는 군대의 통수자이고, 은과 뇌 두 장군은 휘하에 있으므로 어찌 항변을 할 수 있겠는가?
두 장군이 돌아가자 황비호는 周紀주기에게 말했다.
“은파패가 병부를 수령하면, 삼천 날랜 기병을 뽑아서 두 왕자를 추격할 것이다. 너는 내일 오경에 좌군영 중에서 병들고 쇠약하며 무기력한 삼천병사를 뽑아서 그에게 주어 떠나게 하라.”
주기는 명령을 받들고 물러갔다.
다음 날 새벽 오경에 은파패와 뇌개 두 장군이 병부를 발급받았다. 주기가 훈련장으로 가서 좌군영 중에서 삼천 기병을 점고하여 은․뇌 두 장군에게 인계했다. 두 장군이 병사들을 살펴보니 모두 노약하여 견디기 힘들고 질병이 있는 병졸들이었으나 감히 명령을 어길 수 없어 병사와 말을 인계받아 남문을 출발해 추적에 나섰다.
대포 울리는 소리가 삼군의 진군을 재촉하였으나 병들고 노약한 군졸들이라 행군의 속도가 빠를 수 있겠는가? 이를 보고 조급한 마음이 일어났으나 두 장군으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으며, 다만 군사들을 따라 앞으로 진군할 뿐이었다. 이 모습을 비웃으면서 지은 시가 남아있다.
“삼천 기병이 朝歌조가를 출발했는데,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며 북과 징을 울렸다. 그러나 대오가 정비되지 않아 어지럽고 행군조차 더딘데, 길 가던 행인들도 손뼉 치며 하하 웃었다.”
▲ 삽화 권미영
은파패와 뇌개가 태자 은교 형제를 추격할 때 방필․방상 형제는 두 분 전하를 모시고 길을 나선지 하루가 지났는데, 방필이 동생 방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너는 두 분 전하를 보호하여 조가를 반역하고 떠나왔는데, 호주머니는 비었고 노잣돈은 한 푼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비록 황비호 장군이 준 옥패가 있어 너와 내가 이를 처분하여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으나 만약 사람들이 이 옥패의 출처를 캐어 묻는다면 도리어 불편할 것이다. 이곳에 당도하니 마침 동남 두 갈래 길이 나타났는데, 너와 나는 두 분 전하를 앞으로 가도록 인도하고, 우리 형제는 다시 다른 곳으로 찾아 들어가야, 양쪽 다 온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방상이 대답했다.
“형님의 말이 몹시 옳습니다.”
방필이 두 분 전하께 청을 올리면서 말했다.
“신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두 분 전하께 보고를 올립니다. 신 등은 한낱 용기만 지닌 필부에 불과하여 천성이 어리석은데, 어제 전하께서 이러한 억울한 죄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보게 되자 일시에 성질이 치밀어 조가를 반역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이 아득히 먼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고, 노잣돈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황비호 장군이 몸에 차는 보배로운 玉玦옥결을 남겨주어 돈으로 바꾸어 사용토록 하였으나 그 출처를 캐어물을까 두려워 도리어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름지기 은밀히 숨어있어야 합니다. 막 신에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는데, 반드시 길을 나누어 각자 남의 눈을 피해 잠행하여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두 분 전하께서 깊이 숙고하셔서 신 등이 모두 온전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태자 은교가 대답했다.
“장군의 말씀이 지극히 합당합니다. 다만 나의 형제가 어려서 가는 길을 모르니 어찌하면 좋겠소!”
방필이 대답했다.
“이쪽 길은 東魯동로로 가고, 저쪽 길은 南都남도로 가는 큰 길인데, 인가가 많이 모여 있으니 이 길을 따라가면 가히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태자 은교가 대답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두 분 장군은 어느 방향으로 가려 하시오? 어느 날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오?”
방상이 대답했다.
“신이 이번에 떠나면 어느 鎭진의 제후에게 잠시 몸을 의탁하던지 관계없이, 전하께서 군사를 빌려 조가로 진격할 때 신은 스스로 전하의 휘하로 찾아가 선두에 서서 말을 타고 앞장서겠습니다.”
네 사람은 눈물을 뿌리면서 각기 이별을 고하였다.
방필․ 방상이 두 전하와 이별하고 작은 길을 택해 떠나자, 태자 은교가 동생 은홍에게 말했다.
“아우야, 너는 어느 길을 택해 가려느냐?”
은홍이 대답한다.
“형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은교가 말했다.
“나는 동로로 가고, 너는 남도로 가거라. 내가 외할아버지를 만나면 울면서 이 한바탕 억울한 죄로 겪은 고통을 호소하여 외할아버지께서 반드시 군대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때 내가 관리를 파견하여 너에게 알릴 것이다. 너도 혹 수만 명의 군사를 빌려 함께 조가를 정벌하여 달기를 사로잡아 어머님의 원수를 갚도록 하자. 이 일은 가히 잊을 수 없구나!”
은홍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 이곳에서 한번 이별하면 어느 날에 다시 재회할 수 있으리오?”
형제 두 사람이 목을 놓아 한바탕 우는데, 서로 두 손을 부여잡고 쉽게 떠나지지 못했다.
후인들이 시로써 이 가슴 아픈 이별 장면을 노래했다.
“여행길에 오른 기러기처럼 형제가 각기 길을 떠나니 진실로 가슴 아픈데, 형은 남으로 아우는 북으로 떠나니 서로 만나지 못하니 고통스럽구나. 모친의 원통함을 생각하니 천 갈래 눈물이 흐르고, 길을 잃었는데 근심은 만 갈래 단장에 더하네. 몇 가닥 피리 부는 소리가 저녁 안개를 재촉하는데, 외로운 구름 한 조각이 푸른 물결을 쫓는구나. 그 누가 나라가 망하고 사람이 흩어지며, 나라가 기우는 것이 여자(달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은홍이 길을 나서는데, 눈물이 흘러 마르지 않아 처량하고 비참하였으며, 근심이 만 갈래로 가슴에서 일어났다. 하물며 나이조차 어리고, 궁궐에서 자랐으니 산 넘고 물 건너는 먼 길을 가는 고생을 알기나 하였을까?
은홍은 길을 떠나서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 앞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발걸음을 가로막아 더디기만 한데, 배속에서는 또 배고픔이 엄습해온다. 왕자라는 신분으로 깊은 궁궐 속에 거처하였고, 옷은 능라 비단을 입었으며, 매일 진수성찬을 먹었던 생각이 떠오르는데, 사람들에게 어찌 구걸을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농촌마을을 지나다가 인가가 있어 바라보니 여러 명이 둘러앉아 집안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은홍이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 下敎하교하듯이 말했다.
“과인에게 먹을 밥을 가져 오너라!”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은홍이 붉은 옷을 입고 있고, 그 모습이 보통 사람 같지 않아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이리로 앉으시오, 밥이 있습니다.”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밥을 가져와 탁자위에 놓는다.
은홍은 주린 배를 채우고 몸을 일으켜 감사를 표시했다.
“밥을 대접하느라 수고했는데, 어느 날에 당신들에게 이 은혜를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말했다.
“어린 도련님께서는 어디를 가시오? 그리고 귀하의 성은 무엇이오?”
은홍이 대답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紂王주왕의 아들 은홍이오. 지금 남도의 鄂崇禹악숭우 제후를 만나러 갑니다.”
이 말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전하를 외친다.
“전하! 어린 백성들은 그것도 모르고, 영접조차 하지 못하였사오니,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은홍 전하가 말했다.
“이 길로 가면 남도로 가는 길이오?”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이 길은 남도로 가는 대로입니다.”
은홍은 그 시골 마을을 떠나 앞을 바라보고 길을 따라 갔는데, 하루에 이 삼 십리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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