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중이 계략으로 강 황후를 폐위시키다
▲ 삽화=권미영
姜강 황후는 한밤중에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주왕과 달기가 잔치를 벌이는 곳에서 들려오는 것을 알고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며 탄식하면서 내뱉는다.
“천자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니 만백성이 바탕을 잃었는데, 이것은 어지러움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어제 바깥 신하가 간언을 하여 마침내 비참한 죽음을 맞았는데, 이 일을 어찌 좋은 일이라 하리오? 눈앞에서 成湯성탕의 천하가 변하고 있는데, 나는 황후가 된 몸으로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이 어찌 이치에 합당하리오!”
강 황후는 輦연을 타고 양쪽으로 궁인들을 배열시켜 따르게 하고, 붉은 등을 번쩍이면서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길을 나섰다. 행렬이 壽仙宮수선궁에 도착하자 가마를 호위하던 관리가 주왕에게 아뢴다.
“황후마마께서 오셔서 어지를 기다립니다.”
이때 주왕은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 취한 눈에 실눈을 비껴 뜨고 말한다.
“소미인, 그대가 당장 나가서 황후를 영접하라.”
달기는 주왕의 명령을 받고 궁을 나와 황후를 영접했다.
달기는 황후를 향해 절을 하며 예를 행하자 황후는 답례를 하고 몸을 바로 한다. 달기가 황후를 인도하여 수선궁에 도착하자 황후가 주왕에게 예를 올린다. 주왕이 좌우에 명하여 자리를 만들게 하고, 황후를 청해 앉게 한다.
강 황후가 은혜에 감사를 표하고 주왕의 우측에 앉는다.
강 황후는 주왕의 元配원배이고, 달기는 美人미인이므로 앉을 수가 없어 옆에 시립해 있었다. 주왕은 正宮정궁인 강 황후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주왕이 말했다
“황후가 오늘 수선궁을 방문하니 짐이 기쁘고 즐겁소.” 이어 달기에게 명한다.
“蘇美人소 미인, 궁녀 鯀捐곤연에게 박자 판(檀板)을 가볍게 두드리라고 하고, 미인이 직접 노래와 춤을 한판 추어 황후가 감상할 수 있도록 하시오”
그때 곤연이 박자 판을 가볍게 두드리자 달기가 일어나 노래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무지개 색 채색 치마가 일렁이고 수놓은 허리띠가 바람에 나부끼는데, 가벼운 치마에 티끌조차 묻지 않고, 하늘하늘한 허리는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과 같았다. 목청은 맑고 깨끗하여 마치 달 속에서 신선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한 점 붉은 입술은 앵두가 비를 맞아 젖은 듯하다. 섬섬옥수 가녀린 열 손가락은 마치 봄에 막 돋아 나오는 죽순과 같았다. 살구꽃 얼굴에 복사꽃 같은 뺨은 흡사 목단이 처음 꽃술이 터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바야흐로 아름다운 옥으로 만든 하늘나라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것 같아, 월궁의 姮娥항아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에 못지않았다.”
달기의 허리는 날씬하고 아름다웠고, 노래의 여운은 가볍고 부드러웠으니 흡사 가벼운 구름이 고개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고, 부드러운 버들가지가 연못에서 물위에 스치는 것 같았다.
그때 곤연과 양쪽에 시립해 있던 궁녀들이 갈채를 보내면서 무릎을 꿇고 일제히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보인다. 강 황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눈으로 코끝을 보고, 코가 마음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이때 갑자기 주왕은 강 황후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웃음을 띠우면서 묻는다.
“이보시게, 황후. 光陰광음은 순식간이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은데, 좋은 경치는 많지 않으니 정히 이런 기회를 타서 즐깁시다. 달기의 노래와 춤은 천상의 奇觀기관이요, 인간세상에서는 드문 것이니, 가히 진짜 보배라 할 만하오. 황후는 어찌 기뻐하는 기색이 없고, 얼굴을 바로 하여 바라보지 않으니 무슨 일이오?”
강 황후가 일어나 자리에서 나와 무릎을 꿇고 아뢴다.
“달기의 가무와 같은 것을 어찌 稀奇희기하다 하겠습니까? 또한 眞寶진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주왕이 말했다.
“이러한 즐거움이 기이한 보배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奇寶기보라 한단 말이오?”
강 황후가 대답했다.
“첩이 듣기로는 임금이 도가 있으면,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을 귀하게 여기며, 아첨을 배제하고 여색을 멀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임금이 자신을 성찰하는 보배라 합니다. 만약 하늘에 보배가 있다면 日月星辰일원성신이고, 땅에 보배가 있다면 五穀百果오곡백과입니다. 나라에 보배가 있다면 忠臣충신과 휼륭한 장수이고, 가정에 보배가 있다면 孝子효자와 어진 자손입니다. 이 네 가지야말로 바로 천지와 나라가 소유한 보배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주색에 빠져, 노래를 구하고 기술을 물리치며, 사치를 궁구하고 하고자하는 대로 하며, 남을 헐뜯는 말을 듣고 아첨하는 말을 믿으며, 충성스런 어진 신하를 죽이고, 바른 선비를 쫓아내며, 노신을 버리고, 그릇된 사람을 가까이 하는 등 이것은 오직 부녀자의 말을 따르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암 닭이 수 닭을 대신해서 새벽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니 가정의 법도도 서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배로 삼는다면, 곧 가정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보배가 될 것입니다.”
▲ 삽화 권미영
강 황후는 주색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는 주왕에게 바른 소리를 계속이어 간다.
“첩은 폐하께서 잘못을 고치는데 주저하지 마시고, 그 德덕을 닦으시고, 황제를 보좌하는 관리를 가까이 하고, 여색과 환관들을 멀리하시고, 기강을 바로 세우고, 잔치와 유희를 쫓지 말고, 술에 빠지지 말고, 여색에 빠져 방탕하지 말며, 날마다 부지런히 정사에 임하고, 스스로 거만하게 굴지 않기를 바라옵니다. 나아가 천심을 가히 회복하여 백성이 편안하게 되고, 천하가 가히 태평하기를 바라옵니다. 첩은 아녀자로서 금기를 모르고, 망령되게 천자께서 들으시기를 요구 하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앞서의 허물을 통쾌하게 고쳐서 힘써 시행하시기를 바라옵니다. 첩이 이런 말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다행이라 여겨지며, 나아가 천하 또한 매우 다행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강 황후는 상주를 끝내고,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바로 연을 타고 환궁했다. 주왕은 이미 술에 만취했는데, 강 황후의 한 바탕 직언을 듣자 몹시 화가 나서 말한다.
“그 천한 사람이 보살펴 주는 것을 몰라보고, 짐이 미인(달기)더러 한바탕 노래와 춤을 추게 하여 그녀에게 즐기고 감상하게 하였는데, 도리어 이런저런 불손한 말을 듣게 되었다. 만약 황후가 아니었다면 金瓜금과(무기의 일종)로 쳐서 죽여야 나의 노여움을 풀릴 텐데. 몹시 사람을 언짢게 하는 맹랑한 존재로구나!”
이때는 이미 삼경이 다 지나간 시간이었다. 술에 만취한 주왕이 다시 명한다.
“미인, 지금 짐이 골치가 몹시 아프니, 그대가 다시 한 번 춤을 추워서 짐의 우울함을 풀어다오”
달기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첩은 이제부터 감히 歌舞가무를 할 수 없나이다.”
주왕이 말했다. “무엇 때문인고?”
달기가 대답했다.
“강 황후가 첩을 몹시 꾸짖었는데, 가무는 집안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잃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황후가 매우 바르다고 보아야 하지만, 첩이 성은을 입고 총애를 받아 감히 잠시라도 폐하의 좌우를 떠날 수 없습니다. 만약 황후가 궁궐에 나서서 賤妾천첩이 성총을 미혹시켜 천자를 유혹하고, 어진 정치를 펴지 못하게 했다고 소문을 퍼뜨려서, 바깥의 신하들이 이를 감찰하여 책임을 묻기라도 하면 첩이 머리털이 다 뽑힌다 해도 그 죄를 갚기가 부족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주왕은 달기의 말을 다 듣고 크게 노해서 말했다.
“미인은 오로지 짐을 모시기만 하라. 내일 그 천한 사람을 황후에서 폐하고, 너를 황후로 삼을 것이다. 짐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미인은 근심하지 말라.”
이 말에 달기는 주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다시 음악을 연주하고 술을 마시고 즐기는데 밤낮을 구분하지 않았다.
어느 초하룻날 아침, 강 황후가 있는 중궁에서 각 궁의 妃嬪비빈들이 황후에게 하례를 하였다. 西宮서궁의 黃貴妃황귀비(黃飛虎황비호의 누이), 馨慶宮현경궁의 楊貴妃양귀비 등도 모두 중궁에 있었다.
그때 궁인이 와서 아뢴다.
“수선궁의 소 미인이 황후의 명을 기다립니다.” 황후가 들라고 한다.
달기가 중궁으로 들어오자 강 황후가 보좌에 앉아있고, 황 귀비가 좌측에 있고, 양 귀비가 우측에 있는 것이 보였다. 달기가 중궁에 들어와 하례를 마쳤다. 강 황후는 특별히 미인에게 몸을 일으켜 꼿꼿이 서게 하였다. 이에 달기가 한 쪽 옆으로 가서 똑바로 섰다.
두 귀비가 물었다. “이 사람이 소 미인입니까?”
강 황후가 대답했다. “그렇다.”
이어서 소 미인을 꾸짖으며 말했다.
“천자께서 수선궁에 계시면서,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음란한 짓을 하고 향락을 즐기며, 조정을 돌보지 않고, 법과 기강이 헛갈리게 되었는데도, 너는 한마디 권고나 간언조차 없었다. 천자를 미혹시켜 아침에는 노래 부르고 밤에는 춤을 추고, 술과 여색에 푹 빠져, 간언을 거절하고 충신을 죽이며, 成湯성탕의 큰 典範전범을 파괴하고, 나라의 다스림을 그릇되게 하는 등등 모두가 너로 인해 말미암은 것들이다. 지금부터 만약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그대를 끌어내어 법도에 따를 것이다. 이전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군다면, 중궁의 법도로서 이를 처벌하겠다! 너는 잠시 물러가도 좋다.”
이 말에 달기는 화를 참고 울음을 삼키면서 절을 하고 중궁을 물러 나왔다. 얼굴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하고, 가슴이 답답한 채로 수선궁으로 돌아왔다. 그때 시녀 곤연이 달기를 맞이한다.
달기는 궁 안으로 들어와 도자기로 만든 북 모양의 걸상에 앉아 길게 탄식을 한다. 시비 곤연이 물었다.
“낭낭, 오늘 정궁에서 하례를 마치고 돌아와 무엇 때문에 짧게 탄식하고 길게 한숨을 쉽니까?”
달기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나는 천자의 총애하는 비가 되었는데, 강 황후는 자신이 元配원배임을 믿고, 황·양 두 귀비 앞에서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치욕을 주었다. 이 한을 어찌 갚지 않을 것인가!”
곤연이 말했다. “주왕께서 전날 낭낭을 정궁으로 삼겠다고 친히 허락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복수하지 못할까 근심하십니까?”
▲ 삽화 권미영
달기가 시비 곤연의 말에 대답했다.
“비록 폐하께서 나를 황후로 삼겠다고 하였으나 강 황후가 여전히 황후자리에 있으니 어떻게 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반드시 기이한 계책을 세워 강 황후를 해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百官백관이 불복할 것이고, 옛날처럼 이런저런 간언이 많아 편안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해야 마음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너에게 시행할 무슨 계책이라도 있느냐? 그렇게 되면 너에게 돌아가는 복록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곤연이 대답했다.
“저는 아녀자이며, 하물며 奴婢노비로서 하나의 종년에 불과할 뿐이 온데, 무슨 깊고 치밀한 계책이 있겠습니까? 노비인 저의 생각에 의하면 바깥 신하 한사람을 불러 계책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달기가 한참동안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外官외관을 어떻게 하면 불러들일 수 있느냐? 하물며 이목이 많은데, 또 심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으랴!”
곤연이 대답했다.
“내일 폐하께서 다행히 花園화원을 방문하시면, 낭낭께서 낭낭의 밀지를 은밀히 내려주십시오. 宣中諫大夫선중간대부 費仲비중이 궁궐에 도착하면 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하나의 교묘한 계책을 내어서 만약 강 황후를 해치운다면, 그에게 관직을 더 높이고, 지위와 녹봉을 더해 주겠노라고 하겠습니다. 비중은 본래 재주와 이름이 있으니, 스스로 마음을 써서 만에 하나 실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달기가 말했다.
“이 계책이 비록 교묘하기는 한데, 만약 비중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곤연이 대답했다.
“비중 이 사람은 주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신하이온데, 이 말을 들으면 이 계책에 따를 것입니다. 하물며 낭낭께서 궁전에 들어오신 것도 그가 추천한 것입니다. 이 노비가 생각하기로는 그가 반드시 힘을 다해 따를 것입니다.”
이 말에 달기는 몹시 기쁠 뿐이었다.
다음날 주왕이 다행스럽게 화원으로 행차를 하였으므로, 곤연이 달기의 밀지를 비중에게 은밀히 전달하자 비중이 수선궁으로 왔다. 비중이 수선궁 문밖에 이르니, 곤연이 궁을 나와 비중에게 물었다.
“비중 대부 나으리, 낭낭께서 당신에게 내린 밀지를 전달하오니, 대부께서 가지고 가셔서 열어보십시오. 그 기밀을 잘 지켜야 하오며,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일이 성사된다면, 소 낭낭께서는 절대로 비중 대부님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눈이 많으니 서둘러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오며,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말을 마친 곤연이 수선궁 안으로 들어간다.
비중은 밀서를 품에 넣고 급히 정문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조용한 밀실로 들어가 편지를 개봉하니, 달기가 강 황후를 모해하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밀서를 다 읽고, 여러모로 생각해보아도 우려와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스스로 자문해본다.
“강 황후는 주왕의 본 부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東伯侯동백후 姜桓楚강환초이며, 東魯동로지역에 웅거하여 사나운 군대가 백만이며, 휘하의 대장이 천명이다. 장남 姜文煥강문환 또한 용맹하여 삼군의 으뜸이며, 그 힘이 만 명과 대적할 만한데, 어떻게 그를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그 해로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망설이다가 시행하지 못하면, 달기는 또 천자가 총애하는 여인이므로 이것으로 인해 원한을 품고 있다가 베개 밑의 송사라도 하고, 술좌석 뒤에 헐뜯는 말이라도 하면, 나는 죽더라도 내 몸을 장사지낼 땅 한 조각조차 없을 것이다!”
비중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무겁고 앉으나 누우나 불안한 것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숙고하였으나 한 가지 계책은 고사하고 시행할만한 어떠한 계책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대청에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서성이고 있는데, 정신조차 온전치 못한 듯,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멍청한 것 같기도 하여 제정신이 아니다.
마침 대청마루에 앉아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없어 갑갑해 하던 차에 마당을 지나가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키가 보통사람보다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상중하체가 발달하여 우람하고 용맹스러워 보였다.
비중이 그 사람을 불러 세우고 묻는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 사람이 서둘러 비중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소인은 姜環강환이라고 하옵니다.”
비중이 그 말을 듣고는 묻는다. “너는 내 집에서 얼마나 있었느냐?”
강환이 대답한다.
“소인이 東魯동로를 떠나 이 댁에 머문 지가 오년입니다. 줄곧 어르신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 은덕이 산과 같으나 가히 갚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 어르신께서 고민에 빠져 앉아 계시는 것도 모르고 이 자리에 나타나 번거롭게 하였는데, 어르신께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비중이 이 사람을 한번 보자, 계책이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이이서 묻는다.
“너는 고개를 들어라, 내가 너를 써야 할 일이 있구나. 내가 기꺼이 마음을 써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해준다면 장차 너에게 돌아가는 부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강환은 비중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만약 어르신께서 분부만 내려주신다면, 어찌 감히 전력을 다해 시행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소인은 어르신이 저를 알아주시는 은혜를 받았사오니, 설사 소인더러 끓는 물과 타는 불에 뛰어들라 하여 만 번 죽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비중이 강환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한다.
“내가 종일 생각에 빠져 있었으나 시행할 계책이 없었다. 어찌 너의 몸에 그 계책이 있으리란 것을 알았으랴! 만약 일이 성사 된다면 金帶금대를 허리에 두르게 되고 그 복록도 자연히 적지 않을 것이다.”
강환이 대답한다.
“소인이 어찌 이러한 것을 감히 바라겠습니까? 어르신께서 분부를 내려주시면 소인은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비중이 강환을 몸 가까이 불러 그의 귀에다 대고 이런 저런 계책을 알려준다.
“만약 이 계책이 성공하면, 너와 나는 부귀가 무궁할 것이다. 절대로 이 계책을 누설하지 마라. 누설될 때에는 그 미치는 화가 예사 일이 아닐 것이다!”
강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받고 물러갔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을바람이 불지 않아도 매미는 먼저 알았으나, 몰래 불어오는 것이 변화무상하여 죽게 되었는데도 몰랐다. 이에 관해 시가 남아있어 증명한다.
“강 황후는 충성스럽고 어질어 주군에게 하기 어려운 말을 낱낱이 아뢰었는데, 누가 알았겠는가? 평지에 파란을 일으킬 줄이야! 수년 동안 쌓아온 부부로서 鴛鴦원앙의 단꿈이 가련하구나!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는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구나!”
비중이 은밀히 계책을 적어서 곤연에게 전달하였다. 곤연은 밀서를 받아 달기에게 조용히 아뢰었다. 달기는 기쁨에 사로잡혀 암암리에 正宮정궁자리에 오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어느 날 하루, 주왕이 수선궁에서 그날따라 특별한 일도 없이 한가로이 있는데, 달기가 주왕에게 절을 하며 아뢴다.
“폐하께서 이 첩을 돌보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어 여러 달이 되어도 어전에 오르지 않았사온데, 폐하께서 내일 조정에 오르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문무관원들이 바라는 바를 저버리지 마시옵소서.”
주왕이 대답한다.
“미인이 하는 말이 진실로 얻기 어려운 말이로다! 비록 옛날의 어진 비나 성스러운 황후라도 어찌 이에 미치리오! 내일 조정에 나가 밀린 국사를 처리하여 어진 그대의 아름다운 뜻을 저버리지 않겠소.”
아시다시피 이것은 비중과 달기의 간교한 계략인데, 어찌 호의라고 하겠는가?
다음날 천자가 조회에 나가는데, 좌우에서 임금을 호위하며 수선궁에서 황제의 가마가 출발하여 용덕전을 지나고 분궁루에 이르는데, 붉은 등이 떨기를 이루어 빛나고, 향기가 자욱이 퍼져나간다.
정전으로 가는 사이 분궁루 문 앞 모퉁이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키가 우람하고, 머리에는 두건을 매고, 손에는 보검을 잡고, 행동은 민첩하여 호랑이나 여우와 같았다.
그 사나이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어리석은 임금이 무도하여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므로, 나는 황후마마의 명을 받들어 어리석은 임금을 찔러 죽이고, 오직 成湯성탕의 천하가 타인의 손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할 것이며, 나의 주인을 보위하여 임금으로 모시려 한다!”
말을 마치고 바로 보검을 겨누어 왔다.
임금의 가마 양쪽에는 적지 않은 관리들이 있어 이 사람이 가마 앞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여러 관리들에게 사로잡혔다. 포승줄로 꽁꽁 묶인 채로 끌려와 땅바닥에 무릎이 꿇려졌다.
주왕은 놀라고도 화가 난 채로 가마가 대전에 도착하여 보좌에 오르자 문무관원들이 알현의 예를 마쳤는데, 관원들은 주왕이 화가 난 그 연유를 몰랐다.
주왕이 “무성왕 황비호, 아상 비간은 앞으로 나오시오”
두 대신이 자리에서 나와 엎드려 절을 하며 황제 폐하를 외친다.
주왕이 말한다.
“두 분 경들은 들으시오. 오늘 대전에 오르는데,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났소.”
비간이 물었다.
“폐하,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까?”
주왕이 대답한다.
“분궁루에 자객이 한 명이 있다가 보검을 들고 짐을 찌르려 하였는데,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겠소?”
황비호가 주왕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급히 물었다.
“어제 누가 궁궐의 숙직을 섰습니까?”
관원들 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데, 封神榜봉신방에 이름이 올라있는 總兵총병 魯雄노웅이다. 앞으로 나와 절을 하면서 “신이 어제 숙직을 하였는데, 궁궐에 침입한 첩자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새벽 오경에 문무백관들을 따라 섞여서 분궁루 안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연고로 이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황비호가 분부한다.
“자객을 끌어내 오너라!”
여러 관리들이 자객을 물이 떨어지는 처마 앞까지 끌고 왔다. 천자가 어지를 내렸다.
“이 자리에 있는 경들 여러분, 누가 짐을 위해 이 사람을 조사 심문하여 그 연유를 명백히 밝혀주겠소?”
▲ 삽화 권미영
도열해 서있는 관리 중에서 한 사람이 선뜻 자진해서 앞으로 나와 황제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아뢴다.
“臣신 費仲비중이 재주가 없사오나 심문해서 내막을 밝히어 어지를 받들겠습니다.”
비중이 원래 심문관이 아닌데도, 姜강 황후에게 올가미를 만들어 모함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진정한 내막을 밝혀낼까 염려되어 비중이 스스로 조사관을 자청하여 심문할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비중이 자객을 끌어내어 오문 밖에서 심문을 했는데, 따로 형벌을 가할 필요가 없었고, 이미 역모가 드러나 있었다. 비중이 대전으로 들어가 천자를 알현하고, 엎드려 아뢰었다.
문무백관은 이것이 본래 계략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모른 채 아뢰는 내용을 조용히 들었다. 주왕이 묻는다.
“자객을 심문하니 무슨 말을 하던가?”
비중이 아뢰었다.
“신이 감히 들은 바를 아뢸 수 없사옵니다.”
주왕이 다시 물었다.
“卿경은 이미 심문을 통해 내막을 명확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비중이 답변한다.
“신의 죄를 용서하신다면, 가히 답변을 올리겠습니다.”
주왕이 “경을 용서하여 죄가 없도록 하겠노라.”한다.
그때서야 비중이 아뢰었다.
“자객은 성씨가 姜강이고, 이름은 環환이며, 東伯侯동백후 姜桓楚강환초 가문의 장수입니다. 중궁 강 황후의 뜻을 받들어 폐하를 살해하려 하였으며, 천자 자리를 찬탈하여 강환초를 천자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행스럽게 종사에 영험함이 있고, 천지신명이 비호하고, 폐하의 크나큰 복이 하늘과 같이 나란히 하여 역모가 발각되었으므로 바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청하옵건대 폐하께서는 九卿구경 문무관원과 폐하의 인척들을 소집하시어 상의하셔서 가부를 결정하시옵소서.”
주왕은 비중이 상주하는 내용을 다 듣고 책상을 치면서 크게 노했다.
“강 황후는 짐의 본부인인데, 감히 무례하게 무도한 역모를 꾸몄다. 그런데 귀한 인척들과 무슨 상의를 하라고? 하물며 궁궐의 폐해를 없애기도 어려운데, 재앙이 깊은 궁궐내부, 지극히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미연에 방비하기도 어렵다. 속히 西宮서궁의 黃貴妃황비귀로 하여금 심문토록 하여 짐에게 보고하게 하라!”
주왕의 노여움이 벽력과 같았다. 이어서 수레를 타고 달기가 거처하는 수선궁으로 돌아갔다.
여러 대신들은 의론이 분분하였으나 어떤 것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때 상대부 楊任양임이 무성왕 황비호에게 말했다.
“강 황후는 바르고 조용하며 맑은 덕성을 겸비하였고, 慈祥자상하고 어질어 궁중 내부를 다스림에 법도가 있습니다. 아래 관원들의 중론에 따르면, 이러한 일이 발생한데는 밝게 드러나지 않은 자세한 내막이 반드시 있을 것이며, 궁중내부에서 아마 밀통이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 전하, 많은 대부 여러분, 퇴궐하지 마시고 서궁의 황귀비의 소식을 들어보고 난 후, 정론을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문무백관들은 퇴궐하지 않고 모두 구간전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백관들이 이러고 있는 동안 봉어관이 어지를 가지고 중궁에 도착하자, 강 황후는 어지를 받들기 위해 무릎을 꿇고 봉어관이 낭독하는 어지를 들었다. 봉어관이 어지를 읽어 내려간다.
“조칙을 내리노라. 황후의 지위는 바로 中宮중궁이고, 덕은 곤원(坤元 : 대지)과 짝할 만하고, 귀하기로는 천자와 필적한다. 그런데 밤낮 조심하고 공경하여 그 덕을 닦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여자의 가장 윗자리로서 모범이 되거나 내조를 조화롭게 잘 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대역을 저질렀다.
무사 姜環강환을 길러서 분궁루 앞에서 천자의 목숨을 노렸으나 다행히 천지에는 신령함이 있어 무도한 대역 죄인을 붙잡았다. 궐문 밖에서 심문한 결과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황후와 그 부친 강환초가 무도하게 공모 하였으나 다행히도 천자의 자리에 운이 남아 있었다. 이미 변치 않는 도덕이 어그러졌고, 三綱삼강이 다 끊어졌다. 봉어관은 서궁으로 끌고 가서 엄정한 형벌로 심문하고, 엄하게 죄를 심의하여 결정토록 하라. 사사로운 인정에 얽매어 죄인을 풀어주지 말라. 죄에는 반드시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이에 특별히 조칙을 내리노라.”
강 황후는 조칙을 듣고 나자 목을 놓아 울면서 말한다.
“원통하구나! 원통하구나! 그 어떤 간사한 도적이 일을 꾸미어 나 이 사람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명을 씌어 음해를 하구 있구나!
가련하구나! 오랜 세월 궁궐생활에 지극히 勤儉근검하였고,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잤으며, 감히 가볍게 망령된 짓을 하지 않았으며, 여자의 가장 윗자리로서 모범이 되었다. 지금 폐하께서 깊은 내력을 살피지 않으시고, 나를 서궁으로 끌고 가서 심문하려 하는데, 살고 죽는 것도 보증할 수 없구나!”
강 황후가 슬피 우는데, 떨어지는 눈물이 소매를 적신다. 봉어관이 강 황후와 함께 서궁에 도착했다. 황 귀비는 천자의 어지를 머리 앞에 놓고, 국법을 받들 준비를 했다.
강 황후가 무릎을 꿇고 말한다. “나 강 씨는 본디 타고난 성품이 충직하고 어질어서, 하늘과 땅조차 나의 마음을 비춰줄 것이오. 지금 불행히 다른 사람의 모함을 받았는데, 현명한 황 귀비께서 나의 평소 소행을 비추어 보아 이 죄인을 대신하여 주관자가 되어 이 원통함을 풀어주시오!”
▲ 삽화 권미영
황 귀비가 말했다.
“聖旨성지에서 황후께서 姜環강환을 시켜 임금을 살해하고, 나라를 東伯侯동백후 姜桓楚강환초에게 바치기 위해 成湯성탕의 천하를 찬탈하려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의 사안이 중대한 것으로, 예의를 거슬리고 인륜을 어지럽혔고, 부부의 대의를 잃었으며, 본 부인의 은혜와 정분을 끊은 것입니다. 만약 그 실정을 논한다면 마땅히 九族구족을 멸해야 할 것입니다!”
강 황후가 대답했다.
“어진 황 귀비께서도 알다시피 나 강씨는 강환초의 여식으로 아버지 강환초는 東魯동로지역을 다스리는 2백 鎭진 제후의 우두머리이고, 벼슬은 지극히 높아 그 위치가 三公삼공을 누르고, 몸은 나라의 척족이고, 그 딸이 중전으로 있어 4대 제후 중 가장 위에 있습니다.
하물며 내가 낳은 자식 殷郊은교가 이미 東宮동궁이고, 성상께서 세월이 흘러 나중에 승하하고 나면, 나의 자식이 임금의 자리를 이를 것이고, 나는 당연히 太后태후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천자가 되어 그 딸이 太廟태묘에 받들어 모셔지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내가 비록 아녀자라고 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천하의 제후가 저의 부친 한사람만 아니고, 만약 천하가 일제히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키면, 어떻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겠습니까? 어진 황 귀비께서 상세히 살펴서, 이러한 원통함을 설욕해 주시고,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저의 진심을 천자께 전달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 은혜는 결코 얕지 않을 것입니다!”
강 황후가 말을 막 끝내는데, 천자가 어지를 내려 결과를 재촉한다.
이에 황 귀비가 가마를 타고 수선궁에 이르러 어지를 기다렸다. 주왕이 황 귀비에게 수선궁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주왕이 물었다.
“그 천한 사람이 자백을 했습니까?”
황 귀비가 아뢰었다.
“어지를 받들어 강 황후를 엄히 문초하였는데, 결코 반점의 사사로움도 없었고, 진실로 곧고 정숙하며 어질고 유능한 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황후는 본 부인로서 임금을 모신지 여러 해이고, 폐하의 은총을 받았으며, 태자 전하를 낳아 이미 동궁에 계시며, 폐하께서 萬歲만세(승하)후면, 황후는 태후가 되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감히 양심을 속이고서 이러한 멸족의 화를 자초하겠습니까!
하물며 강환초는 그 벼슬이 동쪽의 우두머리인 東伯동백이고, 천자의 친척이며, 제후로서 千歲천세라 칭하여 조례를 받으며, 신하로서 가장 높은 품계인데, 자객을 보내 감히 천자를 시해하려 했다는 것은 반드시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강 황후는 지금 골수에 미치는 아픔에 처해있고, 동이를 엎은 쓴 것처럼 억울한 누명을 함빡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설사 강 황후가 지극히 어리석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천자가 되면 그 딸이 태후가 될 수 없고, 조카가 천자의 대통을 잇게 된다는 것쯤은 알 것입니다.
귀함을 버리고 천한 곳에 몸을 던지거나, 멀리를 취하고 가까운 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자도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강 황후는 중궁에 앉은 지 여러 해이고, 본래 禮敎예교에 밝은 사람입니다!
신첩은, 폐하께서 억울함을 살피어서 풀어주시고, 황후가 무고를 받아 성덕에 어긋나는 점이 없도록 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다시 간청하오니, 태자를 낳은 어미임을 감안하시고, 불쌍히 여겨 이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러 하오면 이 신첩에게 매우 다행이듯이 강 황후의 온 집안도 매우 다행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주왕은 황 귀비의 말을 다 듣고, 스스로 생각해본다.
‘황 귀비의 말이 몹시 명백하다. 과연 이런 일이 없다면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주왕이 바야흐로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달기가 주왕의 곁에서 미미한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왕은 달기가 미소 짓는 것을 보고 물었다.
“미인은 미소만 짓고 말을 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인가?”
달기가 대답했다.
“황 귀비가 강 황후에게 현혹 당하였습니다. 종래 일을 꾸미는 사람은 잘한 것은 자기가 했다고 선전하고, 나쁜 것은 타인에게 미루어 버립니다. 하물며 무도한 역모를 꾸민 것은 사안이 중대하므로 강 황후가 어찌 쉽사리 시인하겠나이까?
또 자객 강환은 황후의 부친이 부리던 사람으로 이미 공모했음을 자백하였는데, 한사코 잘못을 부인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세궁(三宮)의 后妃후비중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연루시켜 끌어들이지 않고, 다만 강 황후를 지목하였는데, 그 가운데 어찌 무슨 관련이 없겠나이까? 아마 무거운 형벌을 가하지 않으면 어찌 그 죄를 순순히 인정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상세히 살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주왕이 말했다.
“미인의 말에 이치가 있소”
곁에 있던 황 귀비가 말했다.
“소 달기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황후는 천자의 본부인이고, 천하의 국모이며, 귀하기가 지존과 필적합니다. 비록 三皇삼황이 세상을 다스리고, 五帝오제가 임금이 된 이래, 설사 황후에게 큰 허물이 있다 해도 다만 지위를 강등시켰지 결코 정궁을 죽이는 법은 없었습니다.”
▲ 삽화 권미영
황 귀비의 말을 다 듣더니 달기가 말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를 위해 만들어졌고, 천자가 하늘을 대신하여 집행하는 것으로서, 역시 이기적으로 자기 편리한 대로 적용할 수 없사오며, 하물며 법을 어긴 자는 천자의 가까운 친척이나 빈부귀천을 불구하고 그 죄는 마찬가지입니다.
폐하께서 다시 어지를 내리셔서, 만약 강 황후가 자백하지 않으면, 그녀의 눈 하나를 도려내십시오. 눈은 마음의 근원이라 하였으니, 황후가 눈을 도려내는 고통을 두려워한다면, 자연히 자백할 것입니다. 만약 문무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하면, 이것은 역시 법의 공평한 집행이며, 심히 가혹한 처사라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주왕이 말했다.
"달기의 말이 옳도다.”
황 귀비는 강 황후의 눈을 도려내겠다는 말을 듣고, 놀래서 마음만 바쁠 뿐 어찌할 도리가 없어 가마를 타고 서둘러 서궁으로 돌아왔다. 가마에서 내려 강 황후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황 귀비가 강 황후에게 말했다.
“우리의 황후님, 달기야말로 당신의 백세의 원수입니다! 임금 앞에서 妬忌투기를 하는데, 만약 황후가 자백하지 않으면 바로 당신의 눈을 하나 도려낸다고 하였습니다. 저를 믿고 황후께서는 자백하십시오! 역대의 군왕으로서, 정궁을 해치는 일은 없었는데, 지위를 강등하여 아마 不遊宮불유궁으로 보내면 그만일 것입니다.”
강 황후는 울면서 대답했다.
“어진 귀비의 말은 비록 나를 위한 것이지만, 다만 나는 평생 동안 자못 예교를 알고 있는 사람인데, 어찌 이러한 대역한 일을 인정하여, 부모님들에게 치욕을 주며, 종사에 죄를 짓겠소!
하물며 아내가 그 남편을 죽인다는 것은 풍속교화에 해가 되며, 삼강오륜을 패괴시키는 것이오. 나아가 나의 부친을 불충불의한 간신으로 만들고, 나는 가문을 욕보여 망하게 하는 천한 무리로 전락하여, 악명을 천년의 역사에 남겨 후세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오.
또 태자가 태자의 자리에 무사히 있지 못하면, 그 관계되는 일이 심히 크다 하겠는데, 어찌 가히 경솔하게 그 죄를 인정 하리오? 내 눈 하나를 도려낸다고 말하지 마시오, 설령 내 눈을 큰 솥에 넣어 삶는다 해도, 또 천 번 능지처참하고 만 번 쇠망치로 내려친다고 하여도, 이것은 생전에 지은 악업 때문에 이번 생애에 갚는 것일 뿐인데, 어찌 대의를 어그러지게 하겠소! 옛말에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수어진다 하여도 두렵지 않으며, 오직 맑고 깨끗한 이름을 인간 세상에 남긴다’ 라고 하였소.”
말이 막 끝나는데, 성지를 전한다.
“만약 강 황후가 자백하지 않으면, 즉시 눈 하나를 제거하라!”
황 귀비가 “황후여, 빨리 자백해 버리소서!”
강 황후가 방성대곡하면서 말을 잇는다.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어찌 함부로 자백할 수 있겠소?”
봉어관이 백방으로 핍박하면서,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데, 바로 강 황후의 눈알 하나를 도려냈다. 도려낸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옷을 적시는데, 충격으로 강 황후는 땅바닥에 혼절하였다. 황 귀비는 좌우 궁인들더러 강 황후를 빨리 부축하여 구하라고 하였으나, 여전히 혼절한 채 깨어나지 못했다. 아! 가련할 뿐이었다. 이 장면을 읊은 시가 남아 있다.
“재앙이 날라 들어 황후의 눈을 도려내는데 그 화를 자신도 몰랐으며, 다만 황후의 간언하는 말 때문에 투기를 불러왔을 뿐이었다. 나라가 망하려 하여 종래 구할 수 없음을 일찍이 알아보았는데, 공연히 西宮서궁에서 피로 옷을 적셨다.”
황 귀비는 강 황후가 이러한 참혹한 형벌을 받는 것을 보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봉어관은 얼굴에서 도려낸 피가 뚝뚝 흐르는 눈알 하나를 쟁반에 담아서, 황 귀비와 함께 주왕의 처소로 왔다.
주왕이 서둘러 물었다.
“그 천한 사람이 모두 자백하였는가?”
황 귀비가 아뢰었다.
“강 황후는 자백할 뜻이 없었고, 엄격히 추궁하였으나 잘못이 없었으며, 눈알을 도려내는 억울한 형벌을 받았사온데, 어찌 큰 대의를 잃겠습니까? 어지를 받들어 이미 눈알 하나를 가져왔나이다.”
황 귀비는 피가 뚝뚝 흐르는 눈알 하나를 받들어 올렸다. 주왕도 강 황후의 눈알을 본 후 그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서로 사랑주고 받은 지 이미 여러 해였다. 이제 와서 스스로 후회해도 소용없었고,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이 없는데, 정리에 어긋났음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주왕은 고개를 돌려 달기를 책망했다.
“방금 전 너의 말을 가벼이 믿어, 강 황후의 눈알 하나를 도려냈지만, 아직 자백하지 않는데, 그 허물을 장차 누구에게 돌리려느냐? 이 일이 모두 너의 경솔한 망동으로 인해 빚어졌다. 만약 백관이 불복하면,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어찌할지 모르겠구나!”
달기가 대답했다.
“강 황후가 자백하지 않으면, 백관들도 자연히 공론이 있을 것인데, 어떻게 이를 그만 두겠사옵니까? 하물며 東伯侯동백후는 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데, 역시 여식의 억울함을 씻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 일은 반드시 강 황후의 자백을 받아서 백관과 만백성의 이러쿵저러쿵 하는 입을 막아야 하옵니다.”
주왕은 망설이면서 말이 없는데, 마음을 졸이면서 마치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가 뿔이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단의 처지였다.
한참 있다가 주왕이 달기에게 물었다.
“이제,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계책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겠느냐?”
▲ 삽화 권미영
달기가 대답했다.
“일이 이미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이제 하지 않으면 그만둘 수 없는 처지이오니, 자백만 하면 조용해지고 이런저런 공론이 없을 것인데, 자백하지 않으면 구구한 의론이 잇달아 터져 나올 것이므로 마침내 편안치 못할 것이옵니다.
이제 계책으로 엄한 형벌을 혹독하게 하면 자백할 것입니다. 지금 어지를 내리십시오. 황 귀비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한 말들이 통 하나를 준비하도록 하여, 그 안에다 숯불을 벌겋게 피우도록 하십시오. 만약 강 황후가 그때도 자백하지 않으면, 강 황후의 두 손을 벌겋게 달은 구리 통에 지지는 포락의 형벌을 가하십시오. 열 손가락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니, 통증을 감당할 수 없으며, 강 황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왕이 말했다.
“황 귀비의 말에 따르면, 강 황후는 이 일과 전혀 무관하다. 이제 또 이러한 참혹한 형벌을 사용하여, 황후인 중궁을 굴복시키면, 백관들이 다른 의론을 제기하는 것도 두렵다. 눈알을 도려낸 것도 이미 잘못되었는데, 어찌 다시 형벌을 시행 하리오?”
달기가 말했다.
“폐하께서 틀리셨습니다!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며,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세이온데, 차라리 강 황후를 굴복시킬지언정, 폐하께서는 천하의 제후들과 조정의 문무관원들에게 죄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주왕도 달리 방도가 없는 듯 어지를 전했다.
“만약 다시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두 손을 불에 굽는 포락의 형벌을 가하라. 사사로운 정에 얽매어 가리고 감추지 말라!”
황 귀비는 이 말을 듣고 혼이 떨어지는 것 같았으며, 가마를 타고 서궁으로 돌아왔다. 그때 강 황후는 가련하게도 여전히 땅바닥 티끌과 먼지 속에 누워 있었고, 피가 옷을 흠뻑 적셨는데, 그 정경이 참혹하여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었다.
황 귀비는 목을 놓아 울면서 말했다.
“우리의 어질고 덕이 있는 마마님! 당신은 전생에 무슨 악업을 지었기에, 이제 또 천지에 죄를 얻어 이러한 끔찍한 형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어서 강 황후를 부축하여 위로하면서 말했다.
“ 어진 황후 마마, 마마께서는 그 죄를 인정하소서! 우둔한 임금이 뜻이 어리석고 마음이 독하여, 달기 그 천한 사람의 말을 믿고, 반드시 마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 입니다. 만약 마마님, 당신이 다시 자백하지 않으면 한 말들이 불에 달구어진 구리 통으로 마마의 두 손을 지져 굽는 포락의 형벌을 가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참혹하고 모진 형벌을 가한다면 저는 차마 볼 수 없나이다.”
강 황후는 피눈물로 얼굴을 물들인 채로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네가 생전에 지은 죄가 깊고도 중한데, 한번 죽는 것을 어찌 사양하랴! 다만 황 귀비는 나를 대신해서 이것을 증명해 주어야, 죽어서라도 편안히 눈을 감을 것이오!”
말을 막 마치는데, 봉어관이 벌겋게 달구어진 구리 통을 가지고 나타나서 어지를 전했다.
“만약 강 황후가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즉시 두 손을 구리 통에 지져 굽는 포락의 형벌을 가하라!”
강 황후의 마음은 철석과 같고, 뜻은 굳은 강철과 같은데, 어찌 이러한 무고한 함정에 굴복하여 인정하리요? 봉어관은 다짜고짜로 벌겋게 달구어진 구리 통에 강 황후 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달구어진 구리 통에 두 손이 닿자 근육이 끊어지고 살가죽이 타는데, 뼈가 바로 타서 녹고 연기와 냄새가 진동한다. 열 손가락의 고통이 심장에 전해져, 가련하게도 강 황후는 땅바닥에 혼절하여 죽은 것 같았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서 탄식하였다.
“벌겋게 달구어진 구리 통에서 매서운 火焰화염이 나오는데, 궁녀들은 이때 잔혹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가련하구나! 한 조각 충절과 매운 뜻을, 눈물이 강물이 되어 흐르듯 밤낮 우는 듯 하였다!”
황 귀비는 이러한 광경을 보다가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는 말처럼 황후의 처지를 보고 자기 신세를 헤아려 동류의 슬픔을 서러워하였고, 칼로 에이는 듯 마음이 아프고 기름에 지지는 듯 애가타서 초조할 뿐이었다. 한바탕 통곡을 하고난 후 가마를 타고 다시 어지에 회답하러 갔다.
황 귀비가 수선궁에서 주왕을 알현했다. 황 귀비가 눈물을 머금고 아뢰었다.
“참혹한 형벌과 가혹한 법으로 수차례 엄하게 심문하였으나 폐하를 암살하려는 의도가 진정 없었습니다. 다만 간사한 신하가 안팎으로 서로 통모하여 황후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았을까 두려우며, 앞으로 정세가 변한다면, 그 화가 적지 않을 것 입니다.”
주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대답한다.
“이 일은 모두 소 미인 달기가 짐으로 하여금 어지를 내려 심문토록 하여 일이 이미 이와 같이 되었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달기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폐하! 우려하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자객 강환이 아직 잡혀있으니, 어지를 威武위무대장 晁田조전, 晁雷조뢰에게 내리십시오. 공범 강환을 서궁으로 압송해서 두 사람을 대면시켜 심문하시면, 설마 강 황후가 여전히 핑계를 대서 발뺌하겠습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자백을 받아야 합니다.”
주왕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구나!”
주왕이 어지를 내렸다.
“자객을 압송해서 대질 심문을 벌이도록 하라.”
황 귀비는 서궁으로 돌아갔다. 조전과 조뢰 장군이 자객 강환을 서궁으로 압송하여 대질 심문을 벌이려고 하는데, 강 황후의 목숨이 과연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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