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고수를 찾아서 <2> 이도윤 대한고무도협회 회장

醉月 2010. 2. 7. 11:30

고수를 찾아서 <2> 이도윤 대한고무도협회 회장
"자기 방어 위해 무술 연마… 이젠 용서를 배워 "
무술 단수만 33단 내공 대단 민족정신 깃든 무술 '고무도' 교통사고 후에도 전수 계속


키 162㎝에 불과한 단구의 사내가 장병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겠다고 하자 일순 장내가 술렁거렸다. 급기야 덩치가 산만한 흑인병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투선수 출신이라는 이 병사는 다짜고짜 '한판 붙기'를 원했다. 험악한 인상과 힘깨나 쓸법한 흑인병사를 본 사범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제는 관장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흑인병사의 주먹에 맞아 죽더라도 피할 수는 없는 자리였다. 미군들은 앞다퉈 내기를 걸었다. 역시 권투는 무서웠다. 날카로운 잽과 주먹이 연방 날아들었다. 제대로 맞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정도. 순간 단구의 사내는 빈틈을 노려 상대의 무릎을 찍어 눌렀다. 이어 몸의 중심을 잃은 병사의 목에 번개같은 발차기가 가해졌다. 이불을 찬듯한 푹신한 느낌. 거구의 흑인이 그대로 쓰려졌다. 넘어진 상대에게 수도로 결정타를 가하려는 찰라, 미군들이 뛰어들며 말렸다. 사내는 큰 소리로 외쳤다. "죽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를 도와주려 왔으니 살려 주겠다"라고.

   
이도윤 대한고무도협회 회장(오른쪽)이 제자에게 한 수 지도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고무도 9단 등 합계 33단의 무술 단수를 가진 고수다.

# 실전무술만이 살아 남는다

이도윤(69) 대한고무도협회 회장이 미군 하얄리아 부대에서 겪은 일이다. 이 회장은 왜소한 체격이다. 언뜻 봐서는 전혀 무도인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회장은 태권도 고무도 합기도 각 9단, 검도 4단, 유도 2단 등 무술단수만 33단에 달하는 놀라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 가족들도 무술에 능하다. 다섯 형제 가운데 최하가 5단 실력이다. 이 회장은 손자 손녀들까지 합하면 200단은 될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회장의 무술은 철저한 실전용이다. 그건 자신의 체구에서 비롯된다.

"몸이 작다보니 크고 화려한 동작보다는 한번의 타격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살아 남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거죠. 파라과이에서 키가 2m가 넘는 거한과 겨룬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상체보다는 하체를 차는 기술로 이겼습니다. 지금 K-1 등 실전무술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저는 40여년 전에 이미 그런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평북 용천 출신인 이 회장은 한국전쟁 때 피란을 오면서 부산에 정착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계속했지만 본격적으로 무술에 빠져들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고학을 했던 이 회장은 그 때 '주먹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국제신보를 팔면서 학비를 벌던 이 회장은 똘똘한 학생이었다. 판매 실적은 늘 1등이었다. 작은 몸으로도 신문 잘 팔고, 돈 많이 번다고 '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던 중 상사에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혼이 났던 이 회장은 주먹으로 복수하리라 다짐을 하고 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체구는 작았지만 재빨랐던 이 회장은 스무살이 되기 전인 1957년 부산 범일동에 자신의 도장을 세울만큼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당시 범일동에는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득실거렸던 곳. 어린 나이에 도장을 차린 풋내기(?) 사범을 그냥 둘리 없었다. 허구한 날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범일동에는 16개 조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에 수차례씩 싸움이 붙었습니다. 언제 싸울지를 몰라 신발을 벗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때 서모 씨라는 당시 꽤 유명했던 인물을 이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나면서 도장문이 미어터졌습니다. 하루에 500여 명이 제 도장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이 회장은 전설적인 싸움꾼인 시라소니, 자유당 때 명동파의 일원이었던 정팔 등과도 친분이 있다. 이 회장의 선친과 동향인 이들은 이 회장을 아주 귀여워해줬다. 아저씨라는 호칭 대신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허용했다. 어쩌다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갈라치면 이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 회장이 보는 시라소니는 싸움에 타고난 인물이었다. "저처럼 키가 작았던 시라소니는 특히 박치기로 유명했지요. 들어갈 때 한번 박고, 나올 때 또 한번 박는데 전부 나가 떨어졌습니다."


# 고무도(古武道)에는 민족정신이 있다

    고무도는 낫과 도리깨 등 농기구를 이용, 무술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한고무도협회의 한 사범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선친에게서 고무도를 배웠다. 독립군 출신의 선친은 중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고수들을 만나 고무도의 체계를 갖췄다. 고무도는 일종의 농민무술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지금처럼 상비군이 없었던 예전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농민이 곧 군인으로 변신해야 했다. 따라서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은 농민들은 농사에 사용하는 낫이나 곡괭이, 쇠스랑 등을 무기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농기구를 활용한 이런 싸움 기술은 생활무술로 발전하는데 고무도는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범 한 명이 낫 두 자루를 들고 시범에 나섰다. 공간을 휙휙 가르는 소리가 전율스럽다. 약속대련에서는 길게 찔러 오는 봉을 막으며 낫으로 정확하게 상대의 목을 겨냥한다.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현대사회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는 없는 법. 고무도에는 무기술말고도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맨손기술이 많다. 하지만 이 회장은 고무도의 기술보다는 내면에 숨겨진 면을 더 강조한다.

"저는 고무도의 정신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농부들이 농기구를 들고 전쟁터로 나갈 때 살아서 돌아온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했습니다. 중국의 100만 대군도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이유로 저는 고무도가 현대 무술 가운데 가장 강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귀한 것일 수록 어렵게 얻어라'는 선친의 가르침에 따라 피나는 수련을 했다. 방학 때면 여름에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 추풍령의 멧돌봉에 올라 지독한 훈련을 했다. 이 회장의 이런 훈련방침은 제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겨울에도 서슴없이 찬 바다에 빠뜨렸다. 제자들이 밖에서 두들겨 맞으면 그냥 두지 않았다. 자신도 어린 나이와 단신인 탓에 '애기 관장'이라 불렸지만 거구들을 사정없이 때려 눕혔다. 그래서 그가 운영하던 충무관은 '악질도장'이라는 악명을 전국적으로 떨쳤다.

이 회장의 무술 실력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는 중국 조선족대학 체대 명예교수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 곳에서의 일화도 재미있다. 현지 신문에 무술의 고수가 왔다는 보도가 나가자 15명가량의 중국 무술인들이 한수 배우기를 청했다. 제자들이 보고 있는 상태여서 점잖게 거절의사를 밝혔으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이 회장은 싸움을 피할 요량으로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손목꺾기로 가볍게 제압했다. 이 회장의 동작 한 번에 동료가 일어나지 못한 것을 본 그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수년 전 당한 교통사고로 이 회장은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그렇지만 자신의 기술을 100% 전수하지 못한 까닭에 여전히 현역을 고집하고 있다. 아직도 대한고무도협회 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교회 일에 열심이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건대 수많은 싸움에도 한번도 지지않고 살아남은 이유가 하나님이 지켜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힘듭니다. 무술을 해서 나 자신을 이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과거에 저는 용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한번 싸움이 붙으면 철저하게 이겼습니다. 체구가 작으니 그렇지 않으면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용서 안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맘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고무도는?

- 맨손·농기구 활용한 무예

- 현존 격투기술 모두 포함

고무도는 크게 맨손무술과 농기구를 사용하는 무기술로 나뉜다.

맨손무술은 다시 조르기 꺾기 비틀기 메어치기 등의 유술과 주먹치기 팔굽치기 등의 권법, 후려날리기 등 장법으로 분류된다. 무기술은 낫 삼지창 도리깨 철퇴 봉 등을 사용한다. 품세와 겨루기 등도 있다. 현재 존재하는 격투기 기술이 모두 들어 있다. 일종의 종합무술인 셈이다. 이도윤 회장이 고무도가 철저한 실전무술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일반인들에게 고무도는 다소 생소한 무술이다. 그것은 낫 삼지창 수리검 등 다소 섬뜩한(?) 무기를 다루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느냐는 선입관에서 비롯된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 고무도 도장이 있으나 수련 인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회장의 수제자인 이영천 진주 충무관 관장은 "낫 삼지창 등 위험한 무기는 3단 이상이나 18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며 항간의 우려에 대해 해명했다.

대한고무도협회는 지난 1991년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부산 동구 범일동에 본관이 있었으나 곧 수영구 남천동 쪽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대한고무도협회는 고무도 홍보를 위해 시범단을 운영하고 있다. 시범단은 여러 방송국의 사극에 출연하거나 기술적 자문을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