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심의 비법으로 역사를 배우고
… 전심의 비법으로 선도를 배운다
신진사! 소승이 꿈에 관해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괴이하고 허탄해 보이지요?
어이구, 대사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노상 꿈을 꾸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연기같아 보이는
꿈의 실체가 조금은 붙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은 울나라 고려적의 대문호이신 백운거사의 꿈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옛날 뙤나라의 주관(周官)에는 꿈을 점치는 여섯
가지의 방법이 있었고, 또 오경이나 자(子) 사(史)에도 꿈에 관한 해석이 많습니다.
유고치로야! 한림별곡을 외워 보겠느냐?
원순문 인노시 공노사륙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
중기대책 광균경의 양경시부
위 시장 경 긔 엇더하니잇고
금학사의 옥순문생
위 날조차 몃 부니잇고
당당당 장노자 한유문집
이두집 난대집 백낙천집
모시상서 주역춘추 주대예기
위 주 조쳐 내 외온 경 긔 엇더하니잇고
대평광기 사백여권
위 역람 경 긔 엇더하니잇고
진경서 비백서 행서초서
전주서 과두서 우세남서
양수필 서수필 빗기 드러
위 딕논 경 긔 엇더하니잇고
오생유생 양선생의
위 주필 경 긔 엇더하니잇고
황금주 백자주 송주예주
죽엽주 이화주 오가피주
앵무잔 호박배예 가득 부어
위 권상 경 긔 엇더하니잇고
유영도잠 양선옹의
위 취한 경 긔 엇더하니잇고
홍목단 백목단 정홍목단
홍작약 백작약 정홍작약
어류옥매 황자장미 지지동백
위 간발 경 긔 엇더하니잇고
합죽도화 고온 두 분
위 상영 경 긔 엇더하니잇고
아양금 문탁저 종무중금
대어향 옥기향 쌍가야고
금선비파 종지해금 설원장고
위 과야 경 긔 엇더하니잇고
일지홍의 빗근 적취
위 듣고야 잠드러지라
봉래산 방장산 영주 삼산
차삼산 홍누각 작작 선자
녹발액자 금수장외 주렴반권
위 등망오호 경 긔 엇더하니잇고
엽 녹양녹죽 재정반에
위 전황앵 반갑두세라
당당당 당추자 조협남긔
홍실로 홍글위 매요이다
효고시라 밀오시라 정소년아
위 내 가논 데 남 갈셰라
삭옥섬섬쌍수 길헤
위 휴수동유 경 긔 엇더하니잇고
지금 유고치로가 외운 이 노래가 그 유명한 고려 고종 3년(1216) 한림의 여러 선비들이 모여 공동으로 지은 한림별곡이라는 경기체가
올시다. 현존하는 경기체가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사 악지(樂志)와 악장가사에 전하고 있습니다. 모두 8장으로 되어 있는데, 문인
귀족층의 호화롭고 향락적인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화공국의 표현을 빌린다면 부루죠아적 퇴폐주의 작품이랄 수 있겠죠.. 한자어가 섞여 있어 이해에 어려운 점이 다소 있기에 그 내용을
살펴보면,
1장 시부(詩賦) : 문장가 시인 등의 명문장 찬양
2장 서적(書籍) : 지식 수련과 독서에의 자긍 찬양
3장 명필(名筆) : 유행서체와 필기구 등 명필 찬양
4장 명주(名酒) : 상층 계급의 주흥 노래
5장 화훼(花卉) : 화원의 서경을 노래
6장 음악(音樂) : 흥겨운 주악의 의취를 노래
7장 누각(樓閣) : 후원의 서경을 노래
8장 추천(推薦) : 그네뛰기의 즐거운 광경 노래
여기에 보면 고려 시대의 문장들이 총망라 되어 있는데 그 면면들을 살펴 볼짝시면…
유원순(兪元淳)의 문장, 이인로(李仁老)의 시, 이공로(李公老)의 46병려문, 이규보(李奎報)와 진화(陣華)의 쌍운주필, 유충기(劉沖基)의
대책문, 민광균(閔光鈞)의 경서 해의, 김양경(金良鏡)의 시와 부 등이 유명했습니다.
이 문장들 중에서도 고려를 대표하는 문호가 이규보 선생이다. 시를 좋아하고 술을 즐겼을 뿐 아니라 거문고를 좋아하여 스스로 삼혹호(三
酷好)선생이라고 호를 지었으며 백운거사(白雲居士) 또는 지지헌(止止軒)이라 불렀다.
지지헌이라 한 것은 그가 개성 동쪽 봉향리 서촌에서 초당을 수십간 짓고 당호를 지지헌이라고 붙인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그 뜻은
주역의 능지기소지이지지자야(能知其所止而止之者也) -능히 그칠 바를 알아 그치다. 에서 따온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호를 백운거사라 함에 대하여 묻기를, 장차 청산에 들어 백운에 누우려 하느뇨? 어찌 스스로 호하기를 그리하였느뇨?
하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오. 백운은 내 그리워하는 바요. 그리워하면서 배우면 그 실實)은 얻지 못하더라도 아마
그 언저리는 갈 것이요. 그 구름이라 하는 것이 용용하고 한가롭고 산에 걸리지도 않고 하늘에 매이지도 않고 표표하게 떠다니며 형적이 구애됨이 없소. 경각에 변화하여 끝간 줄 모르고 유연히 퍼지매 군자의 나오는 것과 같고, 염연히 거두어 고사(高士)의 숨는 것과 같소.
비를 내려 서늘함을 살리니 인(仁)함이요, 오래 머무르지 않고 가매 연연하는 바도 없으니 통(通)함이라. 구름빛의 청황적흑색은 구름의 정색이 아니오. 오직 흰빛만이 빛이 없으니 구름의 상색이외다.
덕이 이미 저와 같고 색이 또한 이같으니 그리워하여 배우고자 하노라. 나와서는 물(物)을 윤택케 하고 들어서는 마음을 허하게 한다.
그 흰 곳을 지키고 항상 오묘한 이치를 깨우친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 내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나됨을 알지 못하겠노라.
그리고 그는 또 일컫기를… 금(琴)을 뜯되 아직 정(精)치 못하고 시(詩)를 짓되 공(工)치 못하며 술을 먹되 아직 약(弱)하다. 라고 하였다.
고려 최대의 문장가요 국상(國相)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백운 선생이 평생에 꾸었던 3가지의 신이한 꿈,
백운삼몽(白雲三夢)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는 황려현(黃驪縣-여주) 사람이나 자세한 세계(世係)는 알 수가 없다. 그의 아버지 이윤수는 개성 서교에 살았는데 경치 좋은 곳에 약
간의 농토를 갖고 있었고, 뽕밭도 있어 살림은 윤택한 편이었으며 종도 7∼8인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출생 석달만에 악종이 온몸에 퍼져서 백약천의(百藥千醫)가 무효하였다. 모든 의원들은 고개를 흔들며 돌아갔고 어떤 의원
은 이 병은 문둥병이라고 단언하였다. 심지어 이 병을 고친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하고 돌아간 의원도 있었다.
아버지 이윤수(李允綏)는 고민하다가 의원이 포기한다면 마지막에 신명에게 맡기리라 다짐하고 자기가 관리생활을 하고 있던 개성지방
의 송악사우(松岳祠宇)에 나아가 수명관장신인 칠성님께 지극히 치성을 드리고 아이의 생사를 점쳤다. 그랬더니 칠성의 대답은 죽지 않으
리라는 것이었다.
너무 기뻐서 약리(藥理-치료약)를 물었더니 무약이 특약이라는 대답이었다.(No medicine is special medicine.) 그래서 그때부터 일체 약
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왠일인지 병은 더욱 심하여 피부는 다 뭉개지고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정말이지 문둥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버쩍 들었다. 유모도 그냥은 아이를 안을 수가 없어서 흰솜으로 아이를 싸야만 안을 정도였다.
하루는 유모가 그를 안고 밖으로 나가니 한 노인이 지나가다 아이를 보고, 이 아이는 천금같은 아들인데 어찌 버림을 이같이 하느뇨?
마땅히 잘 양육하라. 타이르며 사라지는 것이었다. 유모가 달려와 이공에게 알리니 노인이 신인(神人)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급히 노복들을 풀어 뒤쫓게 하였다.
그런데 마침 세 갈래 길이 있어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일행을 세 패로 나누어서 추적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패도 그 노인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조급해진 이공은 자신이 직접 세 갈래 길에 나가 보았다. 거기서 잠시 생각하다 손바닥에 침을 뱉
아서 탁쳐서 튀겨 보았다. 침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니 거기엔 거적을 뒤집어 쓰고 왠 걸뱅이가 누워 있었다.
아니, 웬 걸뱅이지? 너희들 아까 이 걸뱅일 못 보았었냐? 예, 아까는 없던 걸뱅인데… 언제 나타난 거지?
난민촌에서 탈출한 걸뱅인가?
이씨는 그를 두드려 깨웠다. 노인은 눈도 뜨잖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너와 나는 그 동안
은유 속에서 한몸이었으나
실은 나는 비의(秘意)인 너희를 해독하는
기쁨에 취해
그런 주정뱅이의 자로 세상을 재어온지라
나는 아마 취중득도했는지
인제는 전혀 구별이 안 가느니…
누가 거지고
누가 광인인지
- 정현종, <거지와 광인>
노인이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느냐 고 이씨는 물었다. 배가 고파 말할 기운도 없으니 먼저 기아와 도탄에 빠진 민생고부터
해결해 달란다. 하인들에게 한 상 차려오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없고 막걸리나 한 말 받아달란다. 왜 하필 막걸리냐니까,
흐흐, 주성(酒星)의 병액을 고치는 일인데 막걸리 없이 되겠느냐고. 그러면서 막걸리론에서부터 막걸리 타령까지 나오는 거였다.
유알(誘軋-유혹과 알력)에 대비하고 신토불이하자면 패수보두(悖愁報痘-머리에 통증을 심하게 준다는 양주)나 십하소리갈(十河沼痢葛-
열군데 오염된 하천물로 만들어서 복통을 심히 준다는 양주) 섬신수패살(殲腎手佩煞-졸심을 죽이고 손을 떨게 한다는 양주)을 마실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막걸리엔 살아있는 효모가 있고 흰자질이 12.6分이나 들었는데 흰자질 중에서도 몸 안의 조직합성에 기여하는 라이신(喇利辛) 간 질환을
예방하는 메티오닌(梅雉梧吝) 등이 들었고 새콤한 맛을 내는 유기산 성분은 장수효과까지 지니지 않았느냐?
또한 막걸리는 다섯 가지 덕을 갖춘 술일지니…
첫째 취기가 심하지 않고,
둘째 취기가 길지 않고,
셋째 추위를 덜어주고,
넷째 일하기 알맞게 해주고
다섯째 허기를 달래주는 것이기에 신인 결합의 신주(神酒)로 쓰이는 것이니라.
또 막걸리는 반골정신이 강하게 스며있는 술이니라.
막걸리는 고대광실 다락방에선 제대로 발효가 안되고 토방에서야 제맛을 내니 반귀족적 서민지향의 성깔이 있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
는 사람이 마시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고약한 트림만 나고 숙취를 일으키지만 일꾼에게는 요기도 되고 흥도 나고 기운도 돋아주니 반유한
적 근로지향의 성깔이 있고, 한 술항아리에 더불어 담가 용수를 박아 선별하여 뽑아내면 상류층이 마시는 술은 약주요, 선별없이 막 걸러
하류층이 마시면 막걸리이니 반계급적 평등지향의 성깔을 갖고 있는 것이니라.
소의 쓸개주머니에 이레 동안 소주를 담가놓으면 구멍이 나고 약주를 담가놓으면 얇아지고 막걸리를 담가놓으면 오히려 두꺼워지니, 이
아니 좋은 술이더냐? 먼 훗날 게다국놈덜은 우리의 김치를 기무치(きむち)로 막걸리를 마꼬리(まこり)로 개명하여 온누리에 장사를 해 쳐
먹을 것이니라. 달고(甘), 시고(酸), 쓰고(苦), 떫은(澁) 네 가지 맛이 잘 어울리고 감칠맛과 청량미가 고루 갖춰진 막걸리 한 말만 어여 가져
오게. 아니 먹진 못하리라.
이공이 포천 이동면에서 담근 막걸리를 한 말 갖다 올리자 열무 김치를 버적버적 안주해서 게 눈 감추듯 마시고 나더니 흥얼흥얼 타령까
지 뽑는 것이었다.
천부경 천부경 울나라 책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책책책
신선도 신선도 울나라 도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도도도
무궁화 무궁화 울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꽃꽃꽃
태극기 태극기 울나라 기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기기기
백두산 백두산 울나라 산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산산산
두만강 두만강 울나라 강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강강강
광개토 광개토 울나라 왕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왕왕왕
방위병 방위병 울나라 군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군군군
제주도 제주도 울나라 섬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섬섬섬
초가집 초가집 울나라 집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집집집
사랑방 사랑방 울나라 방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방방방
가마솥 가마솥 울나라 솥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솥솥솥
두루막 두루막 울나라 옷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옷옷옷
남대문 남대문 울나라 문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문문문
불국사 불국사 울나라 절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절절절
다보탑 다보탑 울나라 탑 삼천리 강사에 울나라 탑탑탑
에밀레 에밀레 울나라 종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종종종
소나무 소나무 울나라 띵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띵띵띵
호랑이 호랑이 울나라 범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범범범
거북선 거북선 울나라 배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배배배
시사랑 시사랑 울나라 시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시시시
짚새끼 짚새끼 울나라 신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신신신
빈대떡 빈대떡 울나라 떡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떡떡떡
심청이 심청이 울나라 딸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딸딸딸
짜앙돌 짜앙돌 울나라 돌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돌돌돌
조랑말 조랑말 울나라 말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말말말
진돗개 진돗개 울나라 개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개개개
누렁이 누렁이 울나라 소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소소소
오골계 오골계 울나라 닭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닭닭닭
막걸리 막걸리 울나라 술 삼천리 강산에 울나라 술술술
노래를 부르고 난 걸뱅이 노인은 품 속에서 <만병통치부>라 쓰인 이상한 부적을 한 장 꺼내 주고선 타루비 타루비 하면서 다리 밑으로
내려가더니 붙잡을 새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타루비라니 타루비가 무엇일까? 고루비는 알겠어도…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공은 속절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담날은 날씨가 몹시도 후덥지근하였다. 송악사우에나 가서 치성이나 더 드려보자… 신당의 정문을 들어서는데 문앞의 비석이 눅눅한 날씨
때문인지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흑의의 저승사자가 오똑서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때 이공의 머릿속에 번쩍하며
스치는 한 생각이 있었다. 아항! 타루비(墮漏碑)가 바로 저거로구나!
이공은 얼른 사발을 가져와서 비석이 흘리는 눈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다 문드러져 가고 있는 이규보의 살에다 발랐다.
이삼일이 안 되어 이규보의 병은 언제 그랬느냔 듯 처녀 속살처럼 나았다. 상처가 아물고 흉터가 가샌 다음의 이규보는 얼마나 예쁜지 날
아가던 암기러기가 보고 반하여 떨어질 정도로 준수하였다고 한다.
… 역사를 알려 나라의 나아갈 길을 밝히고
… 선도를 알려 겨레의 나아갈 길을 밝힌다
이규보는 9세에 능히 글을 지을 줄 알았다. 11살 되던 해(1178) 숙부인 직문하성(直門下省) 이부(李富)가 성랑(省郞)들에게 자랑하였다.
내 조카가 나이는 어리지마는 글을 끝내 주게 짓는다오. 결코 펑이 아니니 의심나면 불러서 태수토(態修討)를 해 보시오.
이래서 여러 낭관들이 기꺼이 이규보를 불러 연구(聯句) 짓기를 명하고 운을 지(紙)로 하였다. 이규보는 망설임없이 그대로 일필휘지 연
구를 지었다.
지로장행모학사 紙路長行毛學士 종이 길에 모학사(붓)는 가고
배심상재국선생 盃心常在麴先生 잔속에 항상 국선생(술)은 계시다
시를 읽은 낭관들은 모두 탄복하여 일제히 혀를 빼물고 메~~롱~~하였다.
이규보는 14세에 최일류서당인 문헌공도(文憲公徒)에 입학하여 거기에서도 영재수굴(英材秀窟)이라고 소문난 성명재(誠明齋)에서 공부
하였다. 거기에서 더욱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경사백가(經史百家)는 물론 불서(佛書)까지도 달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불선 삼교에 대하
여 청년시절부터 남다른 소양을 지니게 되었고 그의 문집에도 선도사상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의 선도사상이 절정을 이룬 작품이 바
로 대민족서사시 <동명왕편>이다.
.... 김부식이 쓴 역사를 보면 울나라의 오래된 이야기를 많이 생략해 놓았다. 아마 후세 사람들에게 하찮은 것은 전하지 말자고 생각한 모
양이지만, 동명성제만은 고구려 건국의 대영웅으로서 그 신화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생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학의 영향을 받아 신화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구삼국사 를 몇 번이고 읽어 보니 동명성제의 건국신화만은 우리 민족이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임을 통감했다. 이것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써서 전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문장을 한번 읽으면 바로 기억하고 시문을 짓더라도 옛사람의 투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왕공대인들이 어려운 운을 놓고 지으라 해
도 바로 붓을 들어 고시(古詩)나 사율(四律)을 이루었다. 그의 천재성이 소문나자 명유들이 그와 교유하려 하였다. 죽림칠현을 본딴 해좌칠
현(海左七賢)의 한 사람인 오세재는 30년이나 연상이면서도 망년지우(忘年之友)로 대했다. 어이 그리하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춘경(春卿-이
규보의 자)은 비상한 사람이므로 후에 반드시 대성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런 천재 이규보가 16세 때 사마시에 응시하여 낙방하고 18세에 다시 실패하고 20세에 또 낙방하였다. 결국 이규보는 4수생이 되었다.
≪신선의 아들≫ 애독자들이여 입시에 실패하였다고 결코 낙망하지 말라. 이규보는 4수생이었고 보칠산도 재수생이었다는 사실을 위안으
로 삼으라.
천재 이규보가 낙방한 데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재주가 부족했다기보다 4∼5년 동안 과음을 하고 풍류만을 즐겨 풍월은
잘 하였으나 과거문에는 힘쓰지 않은 탓이었다 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시험관들이 자유분방한 그의 답안
지를 보고 화가 나서 일부러 감점을 주었으리라는 추측이다. 이는 마치 전국큰서당생 학술논문 발표대회에서 70매 규정의 논문 기준을 어
기고 300매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보칠산 김신선의 논문을 최우수에서 떨어뜨린 심사관들의 사고와 같다고 할 것이다.
명종 18년(1188) 21세 되던 해 다시 감시(監試)에 응시하게 되는데, 전날 꿈을 꾸었다. 꿈에 촌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검은 포의를 입은 이
들 스물 여덟 명이 당상(堂上)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이분들은 28수(二十八宿)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이십팔수
란 황도를 중심으로 나눈 천구(天球)의 스물 여덟 자리에 위치해 있는 별자리들로서
동방은 각성 항성 저성 방성 심성 미성 기성
서방은 규성 누성 위성 묘성 필성 자성 삼성
남방은 정성 귀성 유성 성성 장성 익성 진성
북방은 두성 우성 여성 허성 위성 실성 벽성인 것이다.
이규보는 깜짝 놀라서 좌중에 올라가서 공손히 큰절을 하고서 금년 시험에는 소생이 입방(入榜)하겠는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저이가 규성(奎星)이니 그에게 물어 보라 하였다. 다시 그에게 공손히 절하고 물으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반드시 장원을 하리라.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라. 다만 이는 천기이니 소문을 내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고 하였다. 이리하여 과연
감시에 장원급제를 하니 이인저(이규보의 첫이름)라 했던 이름을 규성(奎星)이 알려 주었다 라는 뜻의 규보(奎報) 로 개명하였다.
두번째 꿈.
그가 전주목 사록(史錄)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평소 성황당에 참배한 일이 없었는데, 하루는 꿈에 사당에 이르러 절을 하니 법조(法曹)
에서 절하는 사람과 같았다. 왕이 사람을 시켜 기실(記室-고을 원의 비서, 즉 이규보)은 계단을 올라오라고 하였다. 백운이 마루에 올라 재
배하였다. 왕은 베 모자에 검은 무명으로 된 유의 차림으로 남쪽에 앉아있다가 일어나 답례하시고 그를 끌어 앞으로 오도록 하였다.
조금 있자 어떤 사람이 백주를 가져다 술을 따르니 잔과 그릇 또한 조야하였다. 더불어 술을 마신 지 한참이 되어 목관이,
근자에 새로 12국사를 인쇄한다고 들었는데 그러하냐? 고 백운에게 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어찌, 짐에게 주지 않는가? 짐에게 아이들이 여럿 있는데 그 책을 읽히고자 하니 몇 권을 볼 수 있겠느냐?
그러하겠사옵니다.
또 아전의 수장인 김율영이는 무예에도 뛰어나 검성(劒聖)인 바, 사람됨이 영특하니 이를 보호해 달라기에 백운은 알겠노라고 답하였다.
백운이 다시 화복(禍福)이 어떠냐고 물어보자 왕이 길 위를 달리다 축이 부러진 수레를 가리키면서 백운이 그 수레와 같다고 하면서 금년을
넘기지 않아 전주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갖고 있던 혁대 둘을 주면서 그대는 귀히 될 터이니 이를 노자로 쓰라고 하였다. 너
무나도 황송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다 깨어나니 온몸에 땀이 흘러 축축하였다.
그때 안렴사 낭장 노공이 목관으로 하여금 새로 12국사를 인쇄하도록 하였다. 또 아전 허성영이 백운의 뜻에 맞지 않는 게 있었으므로 그
를 내치려 하였다. 그러나 왕의 말씀이 생각나 다음 날 그 아전으로 하여금 국사 두 권을 바치도록 하고 그 일로 죄를 용서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해에 백운은 동료의 참소를 받아 파직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수레의 축이 부러졌다는 말을 그는 깨달았다. 그런 뒤에 7년을
한가하게 보내며 관직에 나가지 못하였으므로 곤궁과 좌절이 막심하였으나 다시 그 꿈 속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비록 관직을 지내면서 삼
품에까지 이르렀으나 또한 깊이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상국(相國)이라는 인신이 누릴 최고의 지위에 이르게 되니 비로소 그 꿈의 왕의 예언이 마치 부절(符節)을 맞추는 것처럼 꼭
맞아서 그 꿈의 영험을 믿게 되었다.
아, 신도(神道)도 어두운 가운데 신명의 마음을 움직여 때로 믿을 수 있으니 어찌 모두 허황되다고만 하겠는가.
세번째 꿈.
백운 선생이 3품의 벼슬로 있을 때 늘 같은 꿈을 되풀이해서 꾸었다. 꿈을 꾸면 항상 높은 다락 위에 앉아 있는데 그 밑은 모두 바다였다.
바닷물이 다락 위에까지 밀려 들어와서 잠자리를 적시기까지 했는데 그는 그 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이런 꿈을 6∼7년 동안 계속해서 꾸었
다. 꿈에서 깰 적마다 이상스럽게 생각하여 친구에게 이 꿈 얘기를 했더니 그는 주공몽서(周公夢書)에 의해서 풀어보고 길몽이라고 했다.
백운도 은근히 좋은 꿈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하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경인년에 백운은 별로 죄될 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말미암아 위도(渭島)로 귀양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연로한 사호(司戶)의 집에
우거하게 되었다. 그 집에는 높은 다락이 있었는데 바로 넓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다락은 마치 훨훨 날아갈 듯하게 지었고
바닷물이 들창까지 밀어닥칠 것 같은 것이 왕년의 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꼭 같았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그 꿈의 징험을 현실에서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니 사람이 출세하고 혹은 은퇴하는 것이나 잘 되고 못되는 것이 어
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모두가 자신은 모르는 가운데 이미 예정된 일인 것이다.
위도에 귀양갔을 때에는 꼭 그 땅에서 죽을 것 같았는데 얼마 안되어 유배에서 풀려 개경에 돌아왔고 또 정승에까지 지위가 올랐으니 이
도 또한 하늘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사람이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산다고 하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이 생길 때는 꼭 꿈을 꾸게
되는 법이다. 이는 마치 비가 오려고 하면 개구리가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이치와 같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역시 꿈으로 암시를 받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무심히 지나치나 어떤 사람은 그 암시를 잘 해석하
여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는 것이다. 꿈을 잘 꾼다거나 꿈이 신비하게 잘 맞는다는 사람은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이는 영감이 풍부하고 성
실히 사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다.
신진사! 꿈이란 과연 현실의 모태일까요, 아니면 사유의 우상일까요? 글쎄올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만들고 싶고 그리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꿈과 이상일 것입니다. 어제의 꿈이 오늘의 현실로
다가오고 오늘의 이상이 훗날의 현실로 함께 있기를 늘 갈망하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인간에게 그런 바램이 없다면 그것은 인형의 삶과 진배없으며, 미물의 조롱에도 변화없는 허수아비의 세월과도 같을 것입니다. 오늘의 사
회가 정신적 뿌리도 없이 방향잃은 이상으로 포장된 배금주의와 출세주의에 멍들어가고 있는 것은 꿈의 상실 때문 아닐까요?
지나친 물질적 욕망과 가치관의 혼동 그리고 전통의 해체. 꿈과 이상의 현실은 하나로 통하기에 결국 현실의 모태여야만 하는 이상은 사
유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살아 있음은 꿈과 같고 이상은 꿈과 같아야 하며 희망과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오, 사부님! 소자의 절을 받으시오소서. 유고치로야! 느닷없이 무슨 절인고?
깨달음을 주시니, 그럴 때마다 감사의 절을 올릴까 합니다. 하하, 기특한지고. 그러나 먼저 백운거사께서 꿈 속에서 꿈을 꾸고
지었다는 몽중몽시(夢中夢詩)를 듣고 절을 하더라고 하거라.
꿈나라는 술취한 나라 이웃의 나라
두 곳에서 돌아왔으나 몸은 하나이고
구십 일의 봄은 모두 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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