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말도 안되는 배들 4S

醉月 2013. 5. 1. 01:30

 

 말도 안되는 배들 4S




작년 울산의 여러 산업체를 견학하고 돌아온 고등학생 아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이 뭐냐고 물었다. 아들은 주저없이 현대중공업에서 본 대형 선박을 꼽았다. 선박이 그렇게 큰 물체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현재의 선박들, 특히 대형 상선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최근 들어 선박은 더욱 더 커지고 있고, 석유나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해양 플랜트도 더욱 큰 규모로 건조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까.

말도 안되는 크기

최근 국내에서 건조되는 대형 선박의 길이는 300m~350m 정도가 일반적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대 선주회사의 주문을 받아 건조할 초대형 컨테이너 운반선은 길이가 400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심해에서 천연가스를 채취할 부유식 해양플랫폼도 길이가 조만간 500m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 타이틀을 차지했던 63빌딩은 249m 정도다. 2010년 인천 송도에 건설된 트레이드 타워도 305m로 알려져 있다(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인 니미츠(Nimitz)급 항공모함의 길이는 320m 정도다).

그래도 실감하기 어렵다면 잠실 주경기장과 비교해 보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잔디구장은 110×75m다. 3개 정도를 합쳐야 하나의 대형 상선 길이에 근접한다. 현재 건조중인 1만 8000 TEU 운반선을 살펴보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TEU는 컨테이너의 기본 단위로 길이가 20피트(약 6m)다. 배 하나에 실려있는 컨테이너 1만 8000개를 하나씩 쭉 연결하면 약 109km, 서울에서 청주까지 경부고속도로 길이가 된다.


[일본에서 연구한 초대형 해양구조물 (Mega-Float). 초대형 해양구조물에 대한 연구는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길이 1km 선박, 수에즈 운하 통과할 수 있을까

선박은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 1km에 이르는 선박이 등장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세계적인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선박에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 길이는 최대 약 60m이다. 20피트 컨테이너 10개를 한번에 실을 수 있는 길이다. 컨테이너 운반선이 더 커지려면 항만 시설이 더욱 커져야 한다. 또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처럼 지구의 좁은 지점도 통과해야 한다. 초대형 선박의 건조는 기술과 함께 경제성, 환경 등에 좌우받는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선박의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선박은 20~40mm의 두꺼운 철강판으로 선체를 만든다. 쇄빙선 등 특수선은 국부적으로 매우 두꺼운 강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선체 두께가 증가하면 선박 전체의 무게도 늘어나고 구조적 안전성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선박이 길어지면 바다위에서 휘청거리는 정도가 심해진다. 선박은 바다에서 파랑을 만나면 상하좌우로 움직이거나 비틀어진다. 선박이 커질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15cm와 30cm 길이의 플라스틱 자를 비교해보면 외부 힘에 의해 휘어지는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선박의 저항이 증가하면서 추진 장치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최근 건조되고 있는 대형 선박은 대개 2개의 엔진과 프로펠러를 장착한다. 선박 엔진을 더 크게 만들 수는 있지만 엔진이 공간을 지나치게 차지하면 적재공간이 급격히 줄어든다. 선박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선박의 깊이와 폭도 증가하기 때문에 운항 경로와 이용할 수 있는 항만도 제한된다. 1km 이상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려면 이같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즐거운 과학적 상상

그렇다고 이러한 초대형 선박이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쉽게 생각하면 다수의 추진기를 사용하고 운항속도를 낮추면 현재의 기술로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구조적 안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바로 다수의 배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조립식 대형 선박의 등장이다.

이런 초대형 선박은 경제성이 문제지만 군사적인 목적이라면 다르다. 선박은 아니지만 미국 해군은 여러 부유체를 이어서 단기간에 대형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쉽게 해체할 수 있는 MOB(mobile offshore base)를 오래 연구했다. 일본에서 연구한 약 3km 길이의 초대형 부유체(VLFS)도 선박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초대형 해양구조물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도쿄 근해에 1km 정도의 해양구조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또 최근 선박 건조의 화두는 친환경이다. 그린쉽테크놀로지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선박이 한번 운반하는 화물의 양을 늘려 운항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선박의 대형화는 이런 관점에서 필연적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400m 길이의 1만 8000 TEU 컨테이너 선박의 이름은 ‘Triple-E’. 여기서 ‘3개의 E’란 Economy of scale, Energy efficient, Environmentally improved를 의미한다.

미래에는 얼마나 큰 선박을 바다에서 볼 수 있을까. 열차처럼 긴 꼬리를 문 선박들이 떠다니지는 않을까. 아니면 스스로 해체되고 결합하는 트랜스포머 선박이 나오지 않을까. 과학적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친환경기술의 핵심 개념이다. 한번에 많은 양의 화물을 운반해 에너지 이용량을 줄일 수 있다.]


가장 빠른 배는 얼마나 빠를까. 자동차에 경주용 자동차가 있듯이 선박에도 경주용 선박이 있다. 초기 경주용 보트의 일반적인 속도는 약 70~90 노트 다. 시속 130~160km의 속도다. 기껏 해야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수준이다. 이보다 더 빠르게 바다 위를 달리는 선박은 없을까. 아니, KTX와 비슷한 시속 300km로 달리는 선박을 만들 수는 없을까.




경주용 보트·위그선은 이미 시속 200km 돌파


이미 시속 200km를 넘는 보트는 존재한다. 최근 경주용 보트의 속도는 130노트를 넘는다. 시속 250km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초기 경주용 보트가 날렵한 로켓 모양이었다면 130노트의 속도를 내는 경주용 보트는 선체 2개를 나란히 붙인 쌍동선 구조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경주용이지 여객용이나 화물용은 아니다.

시속 수백km(200~600km)를 거뜬히 낼 수 있는 위그선도 있다. 선박 형태에 날개를 달아 수면과의 양력을 높여 마치 물 위를 떠서 간다. 이런 원리를 지면효과라고 한다. 그러나 위그선은 배인지 항공기인지 헷갈린다(국제해사기구와 국제민간항공기구가 ‘공식적으로’ 배로 분류하지만 물 위를 떠서 간다는 점에서 이번 기사에서는 제외하자).


[특수 목적의 초고속정 ‘어스레이스(Earthrace)’. 초고속 선박들은 이미 100노트가 넘는 속도로 달릴 수 있다.]

[150노트(약 278km)로 달릴 수 있는 선박의 콘셉트 디자인. 삼동선 형태를 기본으로 비행접시를 닮아 물의 저항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비행접시와 닮은 삼동선, 150노트로 달린다

사람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더 빠른 배를 만들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비로소 150노트(시속 약 278km)로 달리는 선박을 디자인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의 논문과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세계적 출판그룹 테일러&프랜시스그룹은 지난 2009년 비행접시를 닮은 삼각형 모양의 선박 디자인(왼쪽 그림)을 공개했다. 아직 상용화하지는 않았지만 구조 설계와 몇가지 테스트를 통해 조용한 바다에서 운항할 경우 150노트의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 초고속 선박은 더 빨리 항해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선체를 만들었다. 미국 최신예 연안전투함인 ‘LCS-2 인디펜던스’가 채택한 ‘삼동선 선형’이다. 삼동선 선형은 메인 선체 앞부분을 뾰족하게 만들고 2개의 작은 선체를 메인 선체 양쪽의 버팀대에 연결한 구조다. 선형 자체가 분산되면서 파도의 저항을 적게 받아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다. 배 하나하나는 마치 날개처럼 생겼다. 결국 이 배는 날개 모양의 삼각형 선체가 3개 연결된 형태다.

또 이 배에는 두 가지 초고속 기술이 적용됐다. 먼저 ‘웨이브피어싱(wave-piercing)’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파도를 만났을 때 선체가 파도 위를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관통해 나아간다. 웨이브피어싱 기술은 선체의 수직 운동을 줄여 파도를 뚫고 지나가게 하는데 선체가 수직운동이 줄어들면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두 번째 기술이 ‘플레이닝(planing)’이다. 플레이닝은 선박이 속도가 어느 정도 빨라지면 물 위에서 약간 떠올라 활주하는 현상이다. 웨이브피어싱과 플레이닝을 결합하면 선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물의 저항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디자인을 제안한 러시아 크릴로프 선박연구소는 유사한 형태를 지닌 테스트용 선박을 건조해 실험했다. 그 결과 파도가 높지 않은 바다에서는 150노트, 파도가 거친 바다에서는 80노트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었다.

[▶최고 130노트에 달하는 속도로 달리는 경주용 보트. 속도는 빠르지만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박 본연의 역할을 하기엔 부족하다.
▼미국 최신예 연안전투함 ‘LCS-2 인디펜던스’. 메인 선체 앞쪽은 뾰족하게 만들고 2개의 작은 선체를 메인 선체 양쪽 버팀대에 연결한 삼동선 구조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바다 속을 초음속으로 날아가다

사람이 탈 수 있는 선박은 아니지만 바다 속에서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어뢰도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다.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물의 마찰저항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때문에 유선형으로 만들거나 추진에너지를 높여야 했다. 그러나 초공동 현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물속을 다니는 어뢰를 공기를 가르는 미사일처럼 쏠 수도 있다는 개념이 나왔다.

초공동 현상은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주변을 기포로 감싸는 것이다. 유체 역학에서 기포는 물체의 움직임을 방해하지만 기포로 물체를 감싸면 물체가 공기 중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 공기저항만 받으면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대기 중에서 날아가는 미사일과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속도는 당연히 더 빠르다.

독일은 초공동 현상을 이용해 최근 시속 약 800km의 바라쿠다(Barracuda) 어뢰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이 완료되면 이 어뢰를 피할 수 있는 잠수함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바다에서 타는 것 중 일생에 한번 타볼까 말까 한 것이 잠수함이다. 심해를 빠른 속도로 유유히 돌아다니면서 군사 작전을 펼치는 잠수함은 물 속에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서 대잠초계기나 대잠헬리콥터가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런데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을 찾을 수가 없다면 대잠초계기는 무용지물이다. 바로 그런 잠수함이 보이지 않는 잠수함, 즉 ‘스텔스 잠수함’이다. 과학자들은 해양군사과학기술이 가장 뛰어난 미국 해군연구소(ONR)가 꽤 높은 수준까지 완벽하게 모습을 숨기는 스텔스 잠수함을 연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고려해 볼 수 있는 기술은 투명망토에도 적용되고 있는 메타물질이다. 최근에는 잠수함이 지나갈 때 발생하는 물 흐름의 움직임까지 없앨 수 있는 기술도 거론된다. 스텔스 잠수함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메타물질, 프로펠러 음파 차단 가능

투명망토를 만들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노력은 메타물질을 발견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메타물질은 빛을 굴절시키지 않고 바깥쪽으로 흘려보내는 물질이다. 메타물질로 물체를 감싸면 빛이 돌아나간다. 이 때문에 가시광선에 노출되지 않아 모습을 숨길 수 있다.

메타물질은 빛의 굴절률을 0에 가깝게 하거나 마이너스(-)로 만든다. 빛의 굴절률은 진공보다 물질 속에서 느려지므로 항상 1보다 크다. 물의 굴절률은 1.33, 유리의 굴절률은 1.45~1.92다. 다이아몬드는 훨씬 큰 2.42다. 굴절률이 크기 때문에 빛이 큰 각도로 굴절돼 영롱한 빛을 낸다. 메타물질은 분자가 빛을 받아들일 때 생기는 전자기장에서 핵과 전자의 움직임을 조작하는 회로를 만들어 쌓는다. 굴절률을 0에 가깝게 하거나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메타물질로 망토를 만들면 투명망토가 된다.

메타물질과 투명망토 개념을 잠수함에 적용하려면 빛의 파동을 음파의 파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빛이 투과하지 않는 바다 속에서는 소리로 물체를 식별해 내기 때문이다. 바다 속에서 육상의 레이더 역할을 하는 것이 음향표정장치인 소나(Sonar)다.

소나에는 액티브 소나와 패시브 소나가 있다. 액티브 소나는 음파를 발사해서 물체에 맞고 돌아오는 것을 계산해 물체의 모양이나 위치, 거리 등을 탐지한다. 패시브 소나는 물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분석한다. 현재 최첨단 패시브 소나 기술은 잠수함의 추진체인 프로펠러 소리만 듣고도 어떤 기종의 잠수함인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메타물질을 이용한 스텔스 잠수함은 가능할까. 이삼현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는 “잠수함에서 가장 음파가 심하게 발생하는 프로펠러 장치 정도는 메타물질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뢰의 프로펠러 음파만이라도 메타물질로 완벽하게 차단한다면, 소리나 흔적도 없이 나타나 공격하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한계도 있다. 현대과학이 만들 수 있는 메타물질은 빛이든 소리든 단일 주파수에만 대응할 수 있다. 다양한 주파수를 갖고 있는 빛과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투명망토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다양한 주파수 대역(브로드밴드)에 대응할 수 있는 메타물질이 연구되고 있으며 배나 잠수함이 지나가면서 만드는 물결이 내는 소리(웨이크음)를 차단하는 메타물질도 지난해 발표됐다”고 말했다.

[잠수함의 프로펠러를 메타물질로 감싸면 음파를 차단해 탐지를 피할 수 있다. 메타물질의 원리. 파동의 굴절률을 (-)나 0으로 만들어 빛이나 음파의 파동이 지나가도록 만든다.]

지나간 흔적까지 없앤다

도대체 어떻게 바다 속을 지나간 흔적까지 없애줄까. 정확하게 말하면 지나간 흔적을 적에게 들키지 않는 기술이다. 미국 듀크대 데이빗 스미스 교수팀은 잠수함의 흐름을 제어해 숨기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즉 잠수함이 물 속에서 움직일 때 발생시키는 물결의 움직임을 없애 잠수함이 차지하는 물 속 부피를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연구팀이 고려하고 있는 방안은 이렇다. 잠수함 표면 전체를 수많은 워터제트로 이뤄진 껍데기로 감싼다. 추진기가 뿜어내는 워터제트가 잠수함이 지나갈 때 만드는 물결을 없애 준다. 잠수함이 지나갈 때 앞쪽에서 만나는 물결은 가속시키고 지나간 후에 발생하는 물결은 감속시켜 잠수함이 지나가기 전의 물 속 상태와 똑같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물 속에서 이동할 때 잠수함의 앞쪽이 볼록해지는 현상도 없앨 수 있다.

이 기술을 해류와 조류로 변화무쌍한 바다 속에서 적용하려면 매우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메타물질과 함께 물 흐름까지 제어하는 기술이 완성되면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최강 스텔스 잠수함이 탄생할 것이다.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뉴올리온즈는 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수해를 입었다.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물에 잠긴 도시에서 제대로 작동했던 시설은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한 척의 선박만이 허리케인의 파도를 견디며 뉴올리온즈의 앞바다에서 꿋꿋하게 버티면서 황폐해진 도시에 가스를 제대로 공급하고 있었다. 이 선박은 벨기에의 엑스마사가 소유한 LNG-RV로 대우조선해양공업이 건조한 선박이다. LNG-RV는 LNG 운반선에 실린 액화천연가스(LNG)를 육지에 있는 저장탱크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기체로 만들어 하역작업을 할 수 있게 한 선박이다.
[가공할 위력의 허리케인이나 태풍에도 부서지지 않는 선박, 해양구조물 설계는 해양과학자들의 영원한 과제다. 2005년 발생해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리타에 의해 선박이 파괴돼 육지로 올라왔다.]

점점 비싸지는 선박, 안전성 확보는 필수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한 척의 LNG-RV 건조 비용은 2억 5000만~3억 달러 정도다. 3000억 원이 넘는다. 만일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견딜 수 없다면 소유주든 보험회사든 누군가 3000억 원을 물어내야 한다. 최근 국내 조선 업체들의 새로운 주력제품인 LNG-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의 경우 가격이 1~2조 원 정도이며 심지어 5조원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해양플랫폼은 최근 자원의 고갈 및 에너지원 가격 상승에 따라 더욱 깊은 심해저에서의 채굴과 생산을 위해 건조되고 있다. 결국 플랫폼의 크기가 커지고 가격도 높아진다. 따라서 값비싼 해양구조물이나 고부가가치 선박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데 있어 극한 해양 환경에 대한 안전성 확보는 필수적이다.

1000년에 한번 오는 파도에 대비하라

불행하게도 안전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가진 힘은 너무나 위대해 인간이 생각하고 예측하는 상황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어 지나간 허리케인 리타는 멕시코만에 설치된 3000여 개의 석유생산 해양플랫폼과 시설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줬다. 그동안 해양구조물을 설계할 때 100년에 한번 겪을 수 있는 정도의 극한 해양 환경을 기준으로 삼았다. 100년에 한번 만날 확률이 있는 극한 파도에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를 경험한 이후 해양구조물의 설계기준이 1000년에 1회 일어날 확률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1000년에 한번 정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극한적인 해양환경을 견딜 수 있도록 선박과 해양 플랫폼을 설계해야 한다.

1000년에 한번 만날 확률은 (평균 해양파 주기)/3.1536×1010과 같이 표현된다. 3.1536×1010는 1000년×365일×24시간×3600초를 의미한다. 해상의 평균파주기가 5~10초 정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면 그 확률은 1.59×10-10~3.17×10-9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15~30억 번의 해양파를 겪을 때 이 중 한 차례 일어날 확률이 있는 정도의 큰 파랑에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비하는 데도 자연의 힘은 대단해 해양구조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도 한다.

바다의 파도는 예측이 어렵다. 파도로 인한 손상은 허리케인 등과 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파도가 낮은 수면에서 갑자기 큰 파도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상 파랑(Freak wave 혹은 Rogue wave)’이 대표적이다. 이상 파랑이 발생하면 높이 20m가 훨씬 넘기 때문에 운항 중이던 선박을 덮치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받는다. 발생 원인은 아직도 분명하지 않고 여러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는 결국 현재의 기술수준에서는 정확한 예측모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쓰나미는 시속 730km로 몰려온다

극한 해양환경의 또 다른 문제는 지진해일(쓰나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사례에서 본 것처럼 복구가 힘들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다. 해저 지진 등과 같은 이유로 넓은 지역에서 파도가 갑자기 만들어지면 연안에 도달할 때 대단히 큰 높이를 형성하기도 한다.
특히 쓰나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진행 속도다. 쓰나미는 수천 m나 되는 대양의 수심이라도 마치 얕은 수심처럼 느끼며 진행한다. 이론적 진행속도는 (중력가속도)×(수심)이다. 예를 들어 평균 수심이 4200m 정도인 태평양에서 쓰나미의 진행속도는 약 초속 200m, 시속 730km 이다. 이는 소형 제트 여객기의 속도와 버금 간다. 실제로 2004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쓰나미는 인도네시아 근처 해양에서 발생한 후 인도양을 건너 인도 남쪽의 주변 국가들을 덮치는 데 3시간도 넘지 않았다.

인간이 바다를 정복하는 것은 오랫동안 불가능할 듯 하다. 인간은 현재 기술에서 10억 분의 1~100억 분의 1의 확률을 가지는 극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선박과 해양플랫폼을 만들지만 바다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시간에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거리 44만 4000km가 넘는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처음 남긴 것은 1969년이었지만, 인간이 직접 바다 속으로 들어가 두 눈을 통해 5km 수심의 바다 속을 본 것은 2011년이 처음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상 파랑(Freak wave)이 덮치는 모습. 높이 20m가 훨씬 넘는 이상 파랑은 선박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시킨다.]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의학은 과학인가?  (0) 2013.05.06
된장 맛의 비밀  (0) 2013.05.04
BEYOND SCIENCE_03  (0) 2013.04.30
별박사 이태형의 별별 낭만기행_04  (0) 2013.04.29
NEO DNA  (0) 2013.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