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록히드마틴|21세기 전투기 시장 장악한 방위산업 절대강자

醉月 2008. 7. 28. 08:15

월 최대생산량 F-16 25대, F-35 21대.

웬만한 제3세계 국가의 전체 전투기 수량을 한 달이면 만들어낸다는 록히드마틴은 방위산업부문 매출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절대강자다.
1990년대 초반 냉전종식에 따른 방산시장 규모 축소 위기를 지속적인 생산혁신과 인수·합병으로 극복한 록히드마틴은 무기생산업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내고 시스템통합 전문기업이라는 후광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① 텍사스 포트워스에 있는 록히드마틴 항공부문 생산라인.

② 세계적 베스트셀러 F-16.

③ 록히드마틴 항공부문 본사 사옥.

④ 차세대전투기 F-35 JSF.

⑤ 정찰기의 대명사 U-2.

⑥ ‘꿈의 전투기’ F/A-22.

노이로제에 걸린 거인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 록히드마틴 항공이 자리잡고 있는 텍사스 포트워스로 향하기 위해 국내선 항공기로 갈아타는 동안 기자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공항의 국내선 보안검색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노이로제’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행기 출발 1시간30분 전 발급받은 기자의 탑승권에는 전에는 볼 수 없던 ‘SSSS’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검색요원이 티켓에 찍힌 ‘SSSS’를 보더니 한쪽 검색대로 보낸다. 검색대 앞에 서자 TSA(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교통보안청) 소속 검색요원이 가방을 열어 속옷 한장까지 내용물을 뒤지기 시작한다.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봉투를 열어 속에 든 우편엽서까지 확인하는 식이다. 육안검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집게로 솜을 집어 가방 속 깊숙이 집어넣어 닦아내더니 한쪽에 있는 기계에 솜을 넣고 결과를 기다린다. 폭발물 반응시험이란다. 맙소사, 시계는 어느새 비행기 출발시간. 솟아오르는 화를 주체하기 어렵다.

 

결국 기자는 비행기를 놓쳤고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권부터 다시 끊어야 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검색과정을 고스란히 거친다. 항공사 직원에게 SSSS가 무슨 뜻인지 묻자 “정확하진 않지만 ‘Special Security Search…’가 아니겠느냐”고 답한다. 주로 편도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에게 자주 찍히는 사인이란다.

 

드러내지 않는 ‘방산매출 세계1위’

록히드마틴과의 첫 접촉은 이렇듯 반갑지가 못했다. 5만5000명에 이르는 TSA 검색요원들을 훈련시키고 429개 민간공항의 검색장비 및 시스템을 현재 수준으로 점검한 것이 바로 록히드마틴이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TSA와의 계약에 따라 진행된 이 사업 이외에도 록히드마틴은 국토안보청, 해안경비대, 세관 등과 함께 이른바 ‘국토안보(Homeland Security)’ 사업에서 82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 공식자료에는 2003년 매출총액의 16%가 국토안보 및 비군사 정부부문에서 나왔다고 돼 있다. 심하게 말하면 ‘거인의 노이로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첫인상은 록히드마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평범한 시민들에게야 낯선 이름이지만, 록히드마틴은 세계 최대의 방산분야 매출을 자랑하는 거대기업인 까닭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02년 7월18일자에 따르면 록히드마틴이 2000년 방산분야에서 올린 매출은 180억달러로, 2위인 보잉을 10억달러 정도 앞섰다. 회사의 전체 매출로 따지면 보잉은 물론 노스롭 그루만, 심지어 일본의 미쯔비시 중공업에도 밀리지만, 방산 매출만 따지면 단연 선두라는 것이다(2001년 기준).

 

다른 방위산업체와 비교해도 방산분야의 매출비중이 특히 높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나 진보진영에서는 이 회사를 ‘군산복합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간주하곤 한다. 쉽게 말해 ‘평화가 오면 경영이 어려워지는, 따라서 평화를 바라지 않는 회사일 것’이라는 인식이다. 여기에는 ‘막대한 로비자금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군비증강을 부추길지 모른다’는 음모론이 결합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록히드마틴의 공식자료는 방위산업분야 매출만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 및 정보당국, 국토안보, 해외판매가 2003년 총매출 318억달러의 96%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업용 내수매출은 4%라는 통계로 유추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참고로 한국의 2005년도 국방예산은 총 20조8226억원으로 록히드마틴 2003년 총매출의 60%다).

 

상당수 전력이 미국 방산업체 생산품으로 되어 있는 한국은 록히드마틴의 주요고객 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국이 구매한 프로젝트 목록이 15개에 이른다. 큰 것만 훑어봐도 공군 주력기종인 F-16 전투기, 해군의 한국형차세대구축함(KDX-3)에 장착될 이지스 전투체계와 P-3 해상초계기, 조기경보레이더인 FPS-117,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대포병 전력의 핵심인 육군의 MLRS(다련장로켓발사시스템)와 ATACMS(전술지대지미사일)가 모두 록히드마틴 제품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함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공동 개발중이기도 하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

 

다소 살벌한 배경지식을 안고 록히드마틴 항공이 있는 포트워스로 날아갔다. 댈러스와 인접해 있는 인구 80만 규모의 포트워스는 중심가가 반경 1km나 될까 싶은,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시골 분위기다. 그러나 속내를 알고 보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BAE 등 대형 기업들이 줄줄이 위치해 있는 만만찮은 도시다.

 

공군기지와 활주로를 공유하고 있는 까닭일까. 건물로부터 수백 미터 떨어진 회사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겹겹이 쳐진 바리케이드와 경비원의 어깨에 걸린 AR-15 자동소총이다. 깔끔해 보이는 미색의 본사건물 앞에 서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히 보니 100m는 족히 될 듯 길게 뻗은 건물벽에 로비말고는 창문이 없다.

 

로비에 들어서니 곳곳에 CCTV 카메라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경비원의 허리에는 여지없이 육중한 9mm 권총이 매달려 있다. 경비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CCTV는 몇 대나 있는지 혹시나 하고 물으니 역시나 “보안 방침상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144개에 달하는 건물배치도는 물론 89만평 규모의 단지 전체를 찍은 항공사진도 보안 규정상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홍보담당부장 조지프셉 스타우트씨의 말이다.

 

미로처럼 복잡해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건물을 돌아보고 나니 창문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건물과 전투기 생산공장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B-24 폭격기를 생산하기 위해 처음 건립된 이 생산단지는, 당시 붙여진 ‘공군 제4공장(Air Force Plant 4)’이라는 이름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공장의 역사를 기록한 안내판에는 참전한 남자들을 대신해 전폭기를 조립해냈던 2차대전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사진이 자랑스레 걸려 있다. 25만명의 종업원이 7000대의 비행기를 생산해냈다는 기록만으로도 기가 죽는다.

 

냉전이 끝나자 찬바람이 불다

포트워스의 생산라인이 록히드마틴의 핵심 사업부문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일부에 불과하다. 록히드마틴이 전세계에 걸쳐 13만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는 거대기업인 까닭이다. 전체 회사(corporate)는 5개 사업부문(company)으로 나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3년 매출액 102억달러를 기록한 항공사업, 전자시스템사업(90억달러), 항공우주사업(60억달러), 통합시스템솔루션사업(34억달러), 정보기술지원사업(32억달러) 등이다.

 

이렇듯 방대한 사업부문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회사의 인수·합병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록히드마틴의 첫 역사는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던 시절인 1909년, 글렌 L. 마틴사가 설립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 1932년 설립되어 1991년 제너럴다이내믹스의 항공부문을 인수했던 록히드사가 글렌 L. 마틴사의 후예인 마틴마리에타와 1995년 합병하면서 지금의 록히드마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에도 1996년 로랄사를 추가로 인수하는 등, 총 18개의 독립회사가 인수와 합병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인수합병의 역사, 특히 1990년대 초중반에 거듭된 초대형 합병은 사실 냉전 종식 이후 방산업계가 처했던 위기상황의 결과였다. 이 시기 대략 15개에 이르던 미국 내 대형방산업체들은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4~5개로 재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구체적인 내용은 404쪽 표 참조).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 만들어진 포트워스 생산라인은 1953년 제너럴다이내믹스에 인수됐다. 이후 40년 동안 제너럴다이내믹스는 군용기 생산부문의 강자로 군림했지만 1990년대 초반 미 국방부가 냉전 종식에 따라 A-12 폭격기 등의 개발 및 구매계획을 갑작스레 취소·축소하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다. 초대형 감원, 대대적인 생산합리화 조치, 비장한 자구계획에도 끝내 벽을 넘지 못한 포트워스 생산라인은 끝내 1993년 록히드사에 인수되었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록히드마틴 포트워스 생산라인에 설치돼 있는 F-35 JSF 조종사용 사뮬레이터(위)와 지상요원용 시뮬레이터.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미국 방위산업계의 1990년대를 상징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이제 막 개발을 끝내고 올해 비로소 양산체체에 들어선 F/A-22다. 록히드마틴과 보잉, 프랫앤휘트니사가 미 공군과 공동으로 개발한 F/A-22는 속도, 체류시간, 작전반경, 순간기동성 등 항공역학 성능이 압도적인 데다 스텔스, 고성능 통합항공전자시스템 등을 두루 갖춰 말 그대로 ‘완벽한 전투기’로 불린다. 현존하는 어느 전투기와 맞붙어도 절대적인 승률을 자랑하는 이 전투기는 당초 미 공군이 F-15의 후속으로 개발을 추진한 모델이었다.

 

이 전투기의 기본 컨셉트는 이미 1980년대 중반 완성되었고 기반이 되는 기술은 1970년대 이미 구축된 상태였다. 문제는 대당 2억5700만달러에 달해 ‘나르는 다이아몬드’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F/A-22의 가격. 존재하는 최고기술을 모두 집적해 무적의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예상치 못한 냉전종식으로 인해 ‘강력한’ 전투기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자 미 공군의 수급계획이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었다.

 

이러한 F/A-22의 사연은 한때 기술집적산업의 총아로 불리던 미국의 방산업계가 처해 있는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술적인 진보는 이미 1970~80년대 냉전기에 정점에 달했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은 90년대 이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이 시기 산업기술 발달의 주도권 또한 IT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 등 민간 부문으로 넘어갔다.

 

록히드마틴 항공이 1990년대 초반 ‘린(lean) 생산방식’ 같은 강도 높은 생산합리화 방안을 도입한 것은 이러한 배경과 관계가 깊다. 더 이상 제너럴다이내믹스 시절의 ‘고투자 고이윤’ 방식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무렵 강력한 성공사례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던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생산시스템을 벤치마킹 했다는 것이 생산기획 및 개선을 담당하는 마이클 D. 패커 부장의 설명이다.

 

안내에 따라 전기자동차를 타고 둘러본 F-16 생산라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작업방식도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기체(機體) 몸통을 한 곳에 세워두고 날개 등 다른 부분이나 전자장비를 ‘갖다 붙이는’ 방식일 거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컨베이어벨트는 아니지만 공장 전체를 몇 개의 공정으로 나누어 한 곳에서 공정이 완료되면 기체를 이동해 다음을 진행하는 ‘흐름이 있는’ 방식이었다.

역시 도요타에서 벤치마킹한 ‘섀도 박스’라는 자재 및 작업도구 관리방식도 눈여겨볼 만했다. 해당공정에 필요한 자재와 작업도구를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이즈에 맞춰 이미 홈(shadow)이 파여 있는 상자(box)에 일괄적으로 담아 배급함으로써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효율을 극대화하고 재고나 인력, 설비의 여유분을 최소화하는 도요타식 생산혁신 프로그램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6시그마’처럼 우리에게도 낯익은 30~40개 분량의 세부프로그램을 통해 각 부문에서 수십%의 작업시간 단축 및 효율증가를 이뤄냈고, 그 결과 생산혁신 부분에서 수 차례 수상기록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해도 만들어내는 물량은 어마어마하다. 안내를 맡은 톰 게스키에르 과장의 말에 따르면 포트워스 생산라인에서만 한 달에 최대 F-16 25대, F-35 21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웬만한 제3세계 국가 공군을 역내 최강으로 만들 만한 전투기들이 한 달이면 생산되는 것이다.

 

공장을 돌아나오는 길에 그때까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복도에 줄지어 걸려 있는 성조기가 그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걸었다는 이 성조기는 록히드마틴의 방위산업체로서의 특성이나 종업원들의 정서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록히드마틴 항공은 매년 전국의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인재사냥’을 펼친다. 제품 개발을 담당할 전문기술자로 양성하기 위해 MIT 등 유수 공대 졸업생들을 상대로 취업설명회도 연다. 반면 조립라인의 단순 노동자들은 포트워스나 댈러스 등 텍사스 현지 주민으로 채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들이다. 방위산업체 관련법상 외국인은 록히드마틴에서 일할 수 없다.

 

다른 지역 출신인 경우 취업이 확정되면 당연히 포트워스 지역에 거주하게 된다. 지급되는 임금만 한해 7억달러. 기업이 직접 구매하는 수량까지 따지면 텍사스 지역에만 매년 11억달러의 직접적인 경제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더욱이 최근 포트워스를 비롯한 북부 텍사스의 경제는, 호황을 누리던 IT기업들의 거품이 꺼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어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방위산업체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한국 출신 직원 정 S. 소 과장은 설명했다.

   

록히드마틴 F-16 생산라인의 작업흐름. ①주요부분을 별도로 제작하고 ②이를 조립해 전자장비를 설치한 후 ③조종석 등과 연결하여 ④시험비행을 갖는다.

지역에서 방산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이렇듯 엄청나다 보니 획득사업 공개경쟁이 있을 경우 주 상원의원 등이 나서서 ‘정치력’을 발휘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수요가 없어 공장 라인이 폐쇄되기라도 하면 엄청난 실업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까닭이다. 그간 차기전투기(FX) 사업 등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입찰국가의 정치인이나 당국자, 군 주요지휘관 등이 한국을 찾아와 다양한 방식으로 은근한 압력성 발언을 일삼은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럼에도 록히드마틴의 포트워스 생산라인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F-16이나 군용수송기의 대명사가 된 C-130 등 전통적인 효자 기종과 그 업그레이드 모델이 계속해서 팔려나가고 있는 데다, 미군의 차세대 주력전투기인 F/A-22와 F-35가 모두 이 생산라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경쟁업체에 비하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탄탄한 포트폴리오의 가장 큰 비결은 기종 업그레이드가 성공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회사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1978년 양산에 들어간 이래 20여개국에 4000대 이상 팔려나간 F-16. 구매국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성능을 첨가하거나 가격을 맞추기 위해 몇몇 기능을 제외시키는 등 가변성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F-16이 이제까지 록히드마틴을 버티게 했다면 F-35는 앞으로 회사를 버티게 해줄 전투기다. 미 공군과 해군, 해병대는 물론 영국 공군과 해군까지 합동으로 2008년부터 2040년까지 모두 3000대 이상 2000억달러 규모로 예정돼 있는 통합전투기(Joint Strike Fighter·JSF) 프로젝트 수주경쟁은 당시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될 정도로 화제를 뿌렸던 싸움이었다. F-35는 이 경쟁에서 2001년 10월 보잉의 F-32를 누르고 최종승자로 선정됐다.

 

때문에 통합전투기인 F-35는 미 공군이 사용할 전통적인 이착륙방식의 F-35A, 미 해병대 및 영국 해·공군이 사용할 단거리이륙 및 수직착륙방식의 F-35B, 미 해군이 사용할 항공모함 기종인 F-35C로 구분되어 설계됐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이미 예정돼 있는 물량 이외에도 많은 해외수주를 확보하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들여 조종사 및 지상요원용 F-35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각국 주요도시를 순회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펴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9·11 테러 이후 시작된 국토안보 관련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이 록히드마틴 사업영역 안에 있다는 것도 비즈니스 환경으로만 보자면 긍정적인 일이다. 이른바 ‘대테러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내 주요 방위산업체의 경영지표와 주가가 눈에 띄게 회복세를 나타낸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미사일방어계획 등을 추진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행보도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1989년 4000억달러로 정점에 올랐다가 줄어들기 시작해 1996년 2656억달러까지 축소됐던 국방예산도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꾸준히 상승해 다시 1989년에 가까운 수준이 되기도 했다.

 

거인의 고민

그러나 이 같은 단기적인 환경변화에도 방위산업 자체가 더 이상 미래유망분야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각국의 구매계획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군용기의 경우 정부방침 변경이나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浮沈)이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만 해도 민주당 행정부가 집권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획득계획이 어떻게 변할지 단언하기 어렵다.

 

평화운동진영 등에서는 여전히 방산업체에 대해 꾸준히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취재 마지막 날 오후, 브리핑룸으로 사용됐던 회의실에서도 기자와 회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소 날카로운 토의가 벌어졌다. 평화와 방위산업의 관계, 군비축소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생각을 캐물었던 까닭이다. 회사 관계자들의 표정이 잠깐 굳어지는 듯하더니 곧 반론이 쏟아져나온다. ‘군산복합체’ 등에 관한 비판에 대해 데이비드 스콧 아시아담당 부사장이 숙련된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굳이 클라우제비츠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입니다. 록히드마틴의 고객 가운데는 오랫동안 전쟁을 겪지 않았고 주변과의 관계도 원만한 서유럽 국가들도 많습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갖는 것은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산업계를 둘러싼 이처럼 다양한 시선은 록히드마틴이 ‘방산분야 세계 1위’를 자임하는 것이 효율적인 비즈니스 전략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 이미지가 ‘안정적인 성장’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록히드마틴의 공식 홍보자료는 전투기생산 관련내용보다 IT기술 관련설명이 훨씬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NASA 등 각급 정부기관이나 민간기업, 공항, 세관, 항만, 체신 등의 정보처리 및 관리에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라는 이미지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현장에서 만난 임원들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military industry(군수산업)’라는 말 대신 ‘defense industry(방위산업)’라는 말을 고집하는 식으로 ‘military’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록히드마틴의 방산업체 성격’에 관해 물으면 “그렇게 따지면 엄청난 규모의 국방부 사업을 따낸 마이크로소프트가 더욱 방산업체”라는 설명이 돌아온다.

 

취재의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한 시험활주로에는 이스라엘에서 주문한 F-16 비행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취재에 응한 시험비행 조종사 폴 랜달씨는 걸프전 당시 미 해군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베테랑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조종사가 사망하는 일도 있다는 시험비행에 대해 설명을 마친 그에게 참전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처음 이라크를 전투기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니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한 명의 독재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파탄에 빠뜨리는지 절감할 수 있었죠. 물론 내가 누른 단추로 많은 사상자가 생겼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나 나와 내 동료들은 오직 신만이 우리를 심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최대의 방산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무기상’의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방산업체, 한걸음 더 나아가면 ‘무(武)’를 업으로 삼은 이들의 복잡한 심사가 배어나오는 말이었다. 자신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인, 미국의 고민이 담겨 있는 듯도 했다.

 

[인터뷰] 로버트 T. 엘로드 록히드마틴 항공부문 책임부사장

“IT 기술은 항공부문에도 핵심적 역할”


“록히드마틴 항공부문의 책임부사장이자 F-35 JSF 프로그램의 총괄책임자인 로버트 T. 엘로드씨는 전형적인 ‘디펜스 가이(defense guy)’처럼 보였다. 뚝심 있는 표정과 단호한 어투는 제너럴다이내믹스 시절부터 이 공장에서만 30년을 보냈다는 경력만큼이나 강단 있다.

-록히드마틴의 항공부문은 냉전 이후 방산업계의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목할만한 실적을 거둬 왔다. 비결이 있다면.

“시장과 환경의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이다. 운이 좋았던 것은 이미 50년을 넘긴 C-130, 1978년부터 배치된 F-16 등 록히드마틴 항공의 생산품목이 지금도 꾸준히 생산중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한발 앞선 연구개발로 시장을 선점했다. F-35 JSF의 경우,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양한 이착륙 형태로 변환이 가능한 경제적인 전투기의 필요성에 주목했고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실현방법을 검토했다. 기술적인 발전이 즉시 적용될 수 있도록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1년 보잉과의 공개경쟁에서 패배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해도 회사가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웃음) 우리는 여전히 강력하고 다양한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F-35가 졌다면 다른 방향으로 투자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록히드마틴 항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회사가 됐을 것이다. F-35로 인해 우리는 생산설비에 수억달러를 신규로 투자했고 시뮬레이션 설비 등도 완성했으며 5000명 가량의 신규인력을 채용했다.”

-항공부문이 록히드마틴의 캐시카우(Cash-cow)임은 분명하지만, 회사 전체가 방위산업체보다는 정보기술(IT) 전문기업으로 비치기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 자격으로 말하자면, 록히드마틴은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항공사업 부문이 각국 정부의 획득계획에 연결되어 있는 반면 IT 분야는 일반기업이나 FBI, 우체국 같은 정부기관의 정보관리 등 다양한 판로를 갖고 있다. 성장하는 사업분야에 제대로 투자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이미지 변신 노력’이 냉전종식 이후 방위산업시장이 예전만 못한 현실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방산부문에서도 정보관리나 IT기술은 중요한 요소가 된지 오래다. 요즘엔 자동차든 우주선이든 IT기술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도록 도와주는 기술이 IT이기 때문이다. IT의 성장이 방산분야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전투기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보를 조종사에게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교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군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조종석에서 전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변화의 핵심에 IT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항공부문의 임원으로서 IT부문에 강세를 두는 듯한 전략이 썩 반갑지는 않을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록히드마틴의 어떤 사업부문도 다른 부문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 항공부문만 해도 우주산업이나 전자시스템 등과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그러한 연동가능성이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