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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가야할 길

醉月 2008. 11. 26. 07:40
  [기고] 국정원이 가야할 길 - 국정원 개혁은 이스라엘 모사드가 최상의 모델
 정보기관은 國益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정보기관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교가 아니다. 개정될 국정원법은 國益을 위한 진정한 魂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개정하라는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李鍾贊
⊙ 1936년 중국 출생.
⊙ 경기高·육사 16기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육군 소령 예편, 중앙정보부 총무국장·기획조정실장, 민정당 원내총무, 제11·12·13·14代 국회의원,
    정무1장관, 새한국당 대표, 국민회의 부총재, 12代 안기부장, 1代 국가정보원장,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원, 現 우당기념관 이사장.
李鍾贊 우당기념관 이사장

 

<지난 10월 1일 김성호 국정원장과 최병국 국회 정보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국정원 원훈의 제막식 장면.>

현재 국회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직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對共(대공)·對정부전복·방첩·對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관련 보안정보 수집으로 한정한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에 즈음해 한때 국정원에 몸을 담았고, 정보기관의 개혁 때마다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경험담과 아울러 몇 가지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요컨대 국정원은 魂(혼)을 가진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의 존엄을 지키는 ‘애국적인 혼’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정보기관을 꼽으라면 단연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일 것이다. 정보의 세계에서 미국의 CIA는 B급에 불과하다. 세계 최고의 국가인 미국의 정보기관이 이처럼 낮게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립군 조직이 모체가 된 모사드
 
  최근 CIA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이 발간됐다. 이 책에는 CIA 60년의 실패와 거짓의 역사가 담겨있다.
 
  CIA는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하에 쿠바를 침공하는 ‘피그만 사건’(1961년 쿠바 정권이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하자 CIA가 쿠바 망명자 1500명으로 2506 공격여단을 창설해 쿠바를 침공한 사건)에서 실패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정보의 오판으로 참담한 패배를 한 치욕의 유산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우방의 협력 없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늪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를 감추어 두고 있는 것처럼 잘못된 정보판단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정보기관이 객관적인 정보를 근거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네오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라크를 응징해야 한다는 결론부터 내고, 정보를 꿰어 맞춘 것에 불과했다. 실로 치명적인 과오였다.
 
  필자는 국정원 재직 중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곳의 VIP 응접실에는 초상화가 하나 걸려있었다. 안내요원이 농담으로 “이 방에서는 모두 금연이지만 이분만은 담배를 피워도 좋다고 허용했습니다”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초상화의 주인공은 시오니스트 운동의 창시자 데오도르 헤르즐이었다. 줄담배를 즐겼던 그의 손가락에 담배 한 개비가 끼여 있었다. 데오도르 헤르즐은 1897년 8월 세계에 흩어져 핍박을 받고 있던 유대민족이 나라를 가져야 한다고 최초로 주창한 시오니즘의 元祖(원조)다. 그의 정신에 따라 오늘의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모사드의 모체는 시오니스트들이 건국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하가나(Haganah)’라는 독립군이 중심이 된 조직이다. 독립군들이 아랍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한 정보기구가 모사드인 것이다. 그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주변세력의 위협에서 ‘정보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멸한다’는 철저한 신념 속에 활동했다. 그 결과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이 된 것이다.
 
  유대인 출신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뮌헨’을 보면 모사드의 비밀공작 실력을 대강 알 수 있다. 이는 유대인 사회에서 공론을 모아 제작한 영화다. 1972년 9월 뮌헨올림픽에 출전한 이스라엘 선수를 집단 살해한 아랍 게릴라 13명을 7년 동안 추적해 보복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그 과정에서 빈틈없는 모사드의 활동이 잘 묘사되었다.
 
 
  모사드와 CIA의 차이점
 

모사드 출신인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

  미국 CIA는 여러 번 모사드의 신세를 졌다. 1956년 흐루시초프 공산당서기장이 20차 당대회에서 비공개로 스탈린 격하 운동에 관한 중요한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문을 가장 먼저 입수한 것이 모사드였다. 미국은 그 연설문을 제공받고 나서야 소련 지도부 내 권력상황과 정세변화를 감지했다.
 
  1966년 소련이 신예 전투기 MIG-21機(기)를 개발했을 때였다. MIG-21은 성능 면에서 미국의 주력기인 F-104는 물론이고 새로 개발한 F-4팬텀보다 우수한 전투기였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관은 이 전투기의 제원을 전혀 몰랐다. CIA는 모사드에 전투기 정보를 부탁했다. 얼마 안 되어 모사드는 이 전투기 1기를 통째로 미국에 제공했다.
 
  이 같은 모사드의 실력을 감안한다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여부를 모사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의 무기개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고 관련 정보를 꾸준히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10월 14일자 뉴욕타임스는 “시리아가 북한형의 핵 원자로를 건설 중이었는데 이스라엘 전폭기가 급습해 박살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무기개발을 그대로 보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이라크에 대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던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차기 총리로 떠오르는 리브니 외무장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는 모사드 출신이다. 그녀는 시오니스트 무장조직 ‘이르군(Irgun)’의 지도자 에이탄 리브니의 딸이다. 이르군은 이스라엘 독립전쟁에서 가장 용감한 민병대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치하의 독립군이나 광복군과 같은 존재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아랍과 싸웠고,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영국과도 싸웠다. 테러ㆍ폭파ㆍ암살 모든 험악한 활동을 다했다. 이르군 요원들이 영국군 군법재판에서 사형당한 수도 많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리브니는 20대에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80년부터 4년간 모사드에서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법학을 전공해 10년간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1999년 보수우파 리쿠드당 소속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녀는 모사드에 근무할 때 파리를 무대로 아랍기관들과 死線(사선)을 넘는 지하투쟁을 훌륭히 수행한 戰士(전사)였다. 생명을 걸고 싸운 그녀의 강직한 투쟁 경력이 있었기에 그녀가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평화에 대한 온건한 정책을 국민들은 신뢰하고 있다.
 
  모사드는 신념의 조직이므로 정권이 교체되어도 큰 변화가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의 이익을 지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CIA는 행정부 기능의 일부분이다. 모두가 대통령과 직결된다. 자연히 정치바람을 탄다. CIA 초기 국장이었던 앨런 덜레스는 당시 국무장관으로 막강한 지위에 있었던 존 포스터 덜레스와 형제지간으로 정보공작을 좌우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 그의 동생이며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는 본인의 직무도 아닌 CIA 정보공작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도 이런 정보공작의 후유증이라는 설이 있다.
 
미국 CIA 본부 전경.

 
  독립정신 못 살린 우리의 정보기관
 
  한국의 정보기관은 어느 쪽을 모델로 삼아야 할까? 우리의 주변환경은 이스라엘에 못지않게 强國(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은 민족의 생존을 보전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보기관은 태생부터 일제 폭압기구의 유산을 많이 안고 출범했다. 독립운동과정에서 일제에 저항했던 인적 요소나 기구는 전혀 전수되지 못했다. 자연히 독립군들이 갖고 있던 애국심, 민족을 사랑하는 의지가 정보기구에 반영되지 못하고, 냉전의 반대세력, 즉 공산주의자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임무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기능위주의 정보기구 운영은 필연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각종 국내 상황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단기적으로 개혁을 부르짖어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유습이 되살아나곤 했다.
 
  정부수립 60년이 된 이 시점에서 지난 시대에 대한 자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립투쟁과정에서 이룩한 선열들의 정신을 정보기관의 근본으로 새겨야 한다. 백범 金九(김구) 선생의 지휘하에 尹奉吉(윤봉길) 의사를 배출한 한인애국단이나 의열단의 정신적 지주가 된 단재 申采浩(신채호) 선생의 정신을 따른다면 우리는 모사드와 같이 全(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해외에 뻗어있는 한민족의 협조도 물론 받을 것이다. 국익은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필자가 원장시절 김구 선생과 신채호 선생의 초상화를 요원들이 수시로 볼 수 있는 위치에 걸어 놓았다. 법을 아무리 고치고 기능을 많이 부여해도 애국적인 혼이 없으면 국민적 호응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인적 청산이 수반됐다. 그 틈에 국정원의 역량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언제까지 이런 작업이 반복돼야 할까?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시절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全斗煥(전두환)ㆍ盧泰愚(노태우)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안전기획부로 변경되고 정권의 버팀목 역할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래 새로 대통령이 탄생될 때마다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근본적인 이유는 정보기관 개혁을 기능위주로만 접근했다는 데 원인이 있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정보기관을 私物化(사물화)하려는 것이 타락의 근본원인이다.
 
  이런 폐단은 지금도 멈춰지지 않고 있다. 역대 원장(부장)이나 기획조정실장은 예외 없이 외부인사가 임명됐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국정원장은 기관장이므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하더라도 기획조정실장까지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 직위가 가장 민감한 인사와 정보예산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김기섭 前 국정원 기조실장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교수 출신인 金悳(김덕)씨를 안기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기조실장에는 측근인 金己燮(김기섭)씨를 임명했다. 김기섭씨는 그 후 소위 안풍사건으로 국정원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안기부 개혁을 가장 절실하게 생각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필자를 정보부에 근무했던 경력을 참작해 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기조실장은 역시 측근인 李康來(現 민주당 의원)씨를 임명했다.
 
  盧武鉉(노무현) 대통령도 高泳耉(고영구)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하면서 ‘脫(탈)정치화 脫권력화’란 구호를 내세웠지만, 기조실장에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徐東晩(서동만)씨를 발탁했다.
 
  李明博(이명박) 現 대통령은 金成浩(김성호) 前 법무부장관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했다. 기조실장에는 코오롱그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근무했던 측근 金周成(김주성)씨를 전격 발탁했다.
 
 
  권력의 시녀로 추락한 정보기관
 
이강래 前 기조실장

  정보기관이 권력의 시녀가 되면 자연히 부정비리가 일어난다. 필자는 정권 말기가 되어 기관에서 수집한 자료를 미래의 권력자들에게 사적으로 제공하고, 자기의 신분을 유지한 사례를 많이 봤다.
 
  이런 사례는 노태우 정권 말기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남 출신 간부가 유력한 김영삼 대통령 측에 제공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때도 안기부 內(내) 일부 호남 출신이 당시 국민회의 측과 내통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안기부 내 숙청대상 殺生簿(살생부)를 돌리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고 기구가 개편되면서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될 때 옥석을 구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능력본위보다 親疎(친소)관계가 작용하면 결과적으로 정보기관의 생명인 휴먼네트워크가 깨져버리게 된다. 필자도 국정원장으로 개혁작업을 서두를 때 ‘살생부’가 나돌고 모략중상이나 투서로 인해 피해자가 있었음을 지금도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사가 공정하지 않으면 그 뒤에 반드시 부정이 따르게 되어 있다. 對共(대공)수사에 활용해야 할 도청작업이 국내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상대로 무차별 녹취하고 이를 미끼로 거래하려는 기관원, 利權(이권)이나 게이트에 열중해 권력을 남용하는 기관원, 이런 비열한 배신은 모두 공정하지 않은 인사에서 비롯됐다.
 
서동만 前 기조실장

  노무현 대통령은 탈정치화를 강조한 나머지 국정원장의 주례보고마저 없애고 모든 정보라인을 측근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李鍾奭(이종석)씨를 통해 총괄하도록 했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직접 통제하지 않으면 정보기능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사회일각에서 對北(대북)정보, 對共수사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의 탈정치화를 부르짖었지만 임기 말 大選(대선)기간 중에 국정원장을 북한에 파견하여 자신이 평양에 심은 나무에 표지석을 확인시켰다는 행동이 과연 순수한 것이었는지 반문해봐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웃음거리가 된 국정원, 이것이야말로 안보태세를 좀먹는 코미디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진행된 치명적인 실수는 ‘국정원의 과거’를 조사한다는 명분하에 극비정보문서를 외부인사들에게 열람시킨 사실이다. 이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상식에도 없는 작태였다.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측근이 공작원의 이름을 대외에 흘렸다는 사실로 형사입건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리크게이트(Leakgate)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통령까지도 조사를 받았다.
 
  그만큼 정보문서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외부 인사가 정보기관의 문서를 열람한 이후, 외국 정보기관은 국가의 기밀을 지킬 능력이 없는 한국의 정보기관을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외국과의 정보 협력에 큰 지장을 초래케 했고, 한국의 정보기관은 우방 정보기관으로부터 고립되게 된 것은 불문가지다.
 
 
  정보기관의 휴먼네트워크를 귀하게 생각하자
 
김주성 現 기조실장

  정보업무에 있어 휴먼네트워크는 핵심기능이다. 유능한 정보관을 선발하고, 훈련시키는데 많은 투자가 소요된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인적 요소를 중요시했다. 그 결과 휴민트(HUMINTㆍ인적 정보)는 세계 최고로 발전했다. 아랍이라는 주변의 거대한 인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인간 관리를 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한 임무를 전 세계 유대인들이 공감하고 있으므로 휴먼네트워크는 모사드의 최대 협력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기본적으로 휴민트가 취약했다. 자연히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기술장비를 통해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휴먼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륜이나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것이다. 혼란기에는 이런 인사관리의 고려 없이 행정적인 관행에 따라 처리된다. 이로 인해 아까운 인재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도태시킨 사례가 허다하다.
 
  정보기관은 우호세력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정보기관의 최대 약점은 우호세력을 일회용으로 활용하는 데 그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전직 직원이나 공작원에 대한 소홀한 관리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한때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 정보활동에 역할을 다했다. 비록 군번은 없지만 그들이 참여한 전쟁은 군인에 못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사후관리는 참으로 인색하다.
 
  모사드는 시리아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공작원 엘리 코엔을 구출하기 위해 총리가 직접 나섰다. 1986년 ‘론 아라드’라는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가 아랍지역에 출격했다가 격추당했을 때였다. 그를 살리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총동원됐다. 그러다가 2004년 1월 아라드 대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요원 1명이 또 붙잡혔다. 이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억류중인 죄수 435명과 교환했다.
 
  모사드는 필요에 따라 퇴직한 요원도 총동원했다. 필자가 1980년 당시 베트남에 억류중인 공관원 3명을 구출하는 사업을 진행할 때, 이스라엘 측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당시 필자를 상대한 사람은 백발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베트남과 거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정원은 국익을 위해 존재해야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보기관은 미래를 향해 준비해야 한다. 근간 한반도 내외의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하고 또 혼돈스럽다. 언제 통일이 다가올지 알 수 없다. 혼돈의 시대에 정보기관은 국민에게 정확한 나침판처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국정원은 院訓(원훈)을 ‘정보는 국력이다’에서 ‘自由와 眞理를 향한 無名의 헌신’으로 바꿨다. 솔직히 원훈을 변경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정보기관은 국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정보기관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교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개혁을 한다는 명분하에 고위직의 60%를 갈아치웠다는 보도가 있었다. 前 정권에 오염된 인물들만 거세된 것이 아니라 전문 인력들까지 물러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전문가와 휴면네트워크를 잃는다면 국정원은 형편없는 약체가 될 것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다.
 
  개정될 국정원법은 국익을 위한 진정한 혼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개정하라는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