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을 총체적으로 대표하는 명소인 탁상곰바.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이상하게도 납작한 평면적 풍경으로 보여 감흥이 떨어지는데, 실제로 가서 보면 ‘우와∼’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탁상곰바의 해발고도는 3120m. 딛고 선 직벽의 높이만 북한산 인수봉보다 높은 900m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불교를 따라… 순례하듯 걷는 부탄 <下>
부탄 대표하는 명소 ‘탁상 곰바’
불교 전파자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 타고와 100일 명상한곳
차에서 내려 고도 520m 등반
중간전망대까지 조랑말 타기도
막판 깎아지른 계단 올라 도착
부탄노선 운항 항공사 두곳뿐
비행기 창으로 히말라야 감상
입국때 보는 경치 훨씬 감동적
파로·팀푸·푸나카 3대 관광지
건축미·경건함 더한 푸나카종
팀푸의 타쉬초종 등 둘러볼만
부탄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에베레스트 산을 목격하는 기분
부탄의 파로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에베레스트(8848m)를 봤다. 에베레스트 왼쪽에는 눕체(7861m)가, 오른쪽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로체(8516m)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목적어로 쓰는 서술은 ‘보았다’보다는 ‘목격했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한 듯하다. 그래서 다시 쓴다. 부탄항공의 에어버스 A319 여객기에서 에베레스트산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구름 위로 솟은 만년설 뒤덮인 히말라야 준봉은 ‘지도의 영역’이 아닌 ‘지구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에베레스트를 지나자마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 칸첸중가(8586m)가 다섯 개의 거대한 산군(山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만년설로 뒤덮인 7000∼8000m급의 산봉우리 능선이 선명했다.
비행기가 부탄 영공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양날의 칼처럼 생긴 조몰하리(7326m)가 마중 나왔다. 흰 눈으로 뒤덮인 봉우리 아래로 고산준봉의 능선이 첩첩이 겹쳐졌다. 조몰하리는 부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부탄 여행의 시작과 끝에는 히말라야가 있다. 부탄을 들고 나는 비행기는 ‘세상의 지붕’ 위를 날아간다. 이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는 딱 두 개. 드루크에어와 부탄항공이다. 두 곳 모두 부탄 국적 항공사. 비행기 안에서 히말라야를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최적기는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그러니까 딱 지금쯤이다. 맑고 건조한 이 시기에 가장 또렷하게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
히말라야를 보겠다면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부탄으로 들어간다면 왼쪽 창가 자리를, 부탄에서 나온다면 오른쪽 창가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쪽 자리를 배정받으려면 공항에 일찌감치 나가야 한다. 에베레스트산을 내려다보는 감흥에 대면 그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다.
첨언하자면 ‘부탄에서 나올 때’보다 ‘부탄으로 들어갈 때’ 보는 히말라야가 훨씬 더 감동적이라는 것. 당연히 ‘여행을 시작하는 기대와 흥분’ 때문이다. 같은 이유 때문에 부탄에서 나올 때는 오른쪽 창가 자리 확보가 쉽다.
식자재 등을 조랑말에 실어 중턱의 전망대 겸 카페까지 나르는 모습.
# 가장 위험하지만 안전한 공항
부탄 공항은 수도 팀푸가 아니라 팀푸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파로’에 있다. 산지 협곡의 지형 탓에 팀푸에는 공항을 건설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낫다는 파로에 건설한 공항도, 비행기 이착륙의 난도가 높기로 악명 높다. 산과 산 사이로 파고들어서 고도를 낮추다가 마치 자동차가 드리프트하듯 오른쪽으로 급선회하자마자 착륙한다. 지상과 점점 가까워지는데, 창밖으로 산등성이가 스치듯 지나갈 때의 아찔한 기분이란….
이륙도 마찬가지다. 파로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예외 없이 1시간 안에 다른 공항에 착륙한다. 이륙할 때, 연료를 가득 채우면 급상승이나 급선회를 할 수 없어 최소한의 연료만으로 우선 이륙한 뒤에 내려서 연료를 다시 채우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파로 공항에서 태국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가 손님이 별로 없는 인도의 콜카타 공항을, 마치 시외버스 정류장처럼 들렀다가 가는 이유다.
파로 공항을 흔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그렇게 위험하다면야 비행기가 취항할 리 없다. 결정적으로 파로 공항에서는 단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다. ‘파로 공항을 이착륙할 수 있는 기장이 전 세계를 통틀어 딱 25명뿐’이란 얘기도 비슷한 경우다. 이 이야기는 버전에 따라 기장 숫자가 15명으로, 9명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큰 의미 없는 얘기. 파로 공항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기장의 숫자는, 그저 부탄의 두 항공사 조종사의 합계 숫자일 따름이다.
‘지구의 지붕’ 위를 날아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에 내리는 경험은, 부탄 여행이 가장 먼저 선사하는 ‘원 투 스트레이트’다. 여행하다 보면 부탄에는 이것 말고도, 더 많은 펀치가 있다.
부탄의 수도 팀푸를 한눈에 굽어보는 자리에 높이 54m의 ‘도르덴마 좌불상’이 있다. 좌불상 주위에 빙 둘러 세워진 황금색 보살상 너머의 구름에 잠긴 협곡 아래가 팀푸 시내다.
# 부탄 여행에서 종교를 이해하는 법
부탄의 중심에 종교가 있으니, 부탄 여행의 중심에도 종교가 있다. 부탄은 스님이 개국한 불교국가다. 불교국가라면 익숙한 듯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부처를 믿는다는 건 같지만, 종파에 따라 수행 방식이나 의례 등이 같은 종교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부탄이 국교로 삼은 건 대승불교의 발전된 형태인 ‘금강승 불교’다. ‘티베트 불교’나 ‘밀교(蜜敎)’라고도 부른다. 종교적 스승인 ‘라마’를 모신다고 해서 ‘라마교’라고도 한다.
대뜸 종교 얘기부터 꺼낸 건, 부탄의 관광지나 유적 대부분이 ‘종교 공간’이어서다. 부탄에서는 사찰과 유적지는 물론이고, 도시 속 삶의 공간이나 심지어 자연경관에까지 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부탄의 금강승 불교는, 우리가 아는 불교와는 사뭇 다르다. 스승과 제자 간 구전을 통해 전수되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밀교의 전통부터가 낯설다. ‘비밀스럽다’는 점에서 밀교는 곧잘 ‘컬트(cult)’쯤으로 오해받곤 하는데, 비밀스럽게 전수되는 까닭은 기괴하거나 이상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심오하고 소중해서’ 그렇단다.
금강승 불교에는 8개의 수행 법맥이 있으며, 법맥마다 다시 10여 개씩의 분파로 나뉜다. 그걸 다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분파 간 차이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하기야 불교의 가르침의 방식이 ‘팔만사천’이나 된다니, 어찌 그걸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어디서든 종교적 경건함을 지키고 수행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만 갖추자. 출가하거나 거기 살 것도 아니고. 여행하는 데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부탄의 절이나 사원에 가기 전에 알아둘 게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두 ‘절’이나 ‘사원’이 되겠지만, 부탄의 절은 ‘종(Dzong)’과 ‘라캉’ ‘곰바’,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 먼저 ‘종’은 행정기관과 사찰이 한 몸을 이룬 곳이다. 종교와 정치·행정이 한 몸을 이루던 시절의 유적이다. 보통 높은 성벽과 해자 등으로 둘러싸인 자리에 있다.
‘라캉’은 우리의 사찰과 가장 비슷하다. 스님들은 법당에서 수행하거나 기도하고, 신도들은 자유롭게 드나든다. ‘곰바’는 깊은 계곡이나 접근이 어려운 곳에 세상을 등지고 들어선 수행의 공간이다. 부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곳으로, 충만한 상상력과 상징으로 가득한 신화가 새겨져 있다.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 가는 길의 풍경. 부탄의 소는 대부분 주인이 없다. 부탄은 불교 교리에 따라 살생이 금지돼 육류를 이웃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의 소도 인도로 데려가 도축한다.
# ‘부탄에는 탁상곰바가 있다’
부탄을 대표하는 명소는 단연 ‘탁상곰바’다. 부탄 사람들도, 관광객들도 모두 동의하는 얘기다. 탁상곰바는 총체적으로 부탄을 대표한다. 부탄의 대표 경관이면서, 대표적인 종교적 상징이고, 정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고,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부탄에는 탁상곰바가 있다.
‘탁상’은 부탄 말로 ‘호랑이 둥지’를 뜻한다. ‘곰바’는 앞에서 말한 대로 ‘수행처’다. 여기뿐만 아니라 부탄의 명소를 여행하다 보면 자주 튀어나오는 이름이 있다. ‘파드마 삼바바’. 서기 8세기쯤 부탄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이다. 연꽃에서 환생했다고 해서 ‘연화생(蓮花生) 보살’이라고도 하고, ‘구루 린포체’라고도 부른다. 린포체란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 전생에 수행하다 죽은 자가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환생한 것이 증명된 사람을 말한다. 앞에 붙은 ‘구루’는 소중하다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파드마 삼바바는 서기 746년 암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부탄으로 날아와 잡신을 차례로 굴복시킨 뒤 동굴 속으로 들어가 100일 동안 명상에 들었다. 부탄에 불교가 전해지는 최초의 장면이다. 탁상곰바는 바로 그 자리에 지어졌다. 부탄 사람들이 탁상곰바를 경배해 마지않는 이유다.
탁상곰바를 신성시하는 이유는 또 있다. 파드마 삼바바가 다녀간 900년쯤 뒤에 부탄을 통일한 영웅 ‘샤브드롱’이 탁상을 방문했다가 동굴에서 보물 ‘테르마’를 발견한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다시 파드마 삼바바 얘기로 돌아가 보자.
파드마 삼바바는 생전에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1000권이 넘는 경전을 썼다. 다 쓴 경전을, 그는 비밀에 부치고 공개하지 않았다. 세상이 그 내용을 이해할 준비가 안 됐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비밀의 경전을 히말라야 산중의 동굴 속에 한 권씩 숨겼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후에 환생해 숨겨둔 경전을 찾으라는 사명을 맡겼다. 믿거나 말거나 지금까지 찾아낸 비밀의 경전이 65권에 이른단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티베트 북부 지방 동굴에서 찾아냈다는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다.
탁상곰바에서 발견했다는 보물은 파드마 삼바바가 불교 박해를 예감하고 동굴 속에 숨겨놓은 비밀의 경전이었다. 그는 죽었으되 죽지 않았다. 끊임없이 발견되는 ‘비밀의 경전’으로 그는 불자들의 마음에서 되살아나 메시지를 전한다. 탁상곰바뿐만 아니다. 부탄의 사찰과 사원 어디에든 윤회와 환생 이야기가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태어나 윤회한다는 가르침. 죽음이란 허물처럼 벗어놓는 껍질일 따름이라면, 그래서 지은 업보에 따라 내세에 환생한다면, 욕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부탄이 ‘행복의 나라’로 불리는 건, 그렇게 욕망의 크기를 줄인 결과가 아닐까.
# 탁상곰바, 봉정암과 겹쳐지다
탁상곰바는 파드마 삼바바가 명상에 들었던 까마득한 벼랑 위 동굴 자리에 1692년 세워졌다. 33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사원에는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 1951년에는 사원 일부가 불탔고, 1998년에는 큰불로 본당 전체가 다 타버렸다. 지금의 모습은 2004년 대대적인 복원 공사로 다시 일으켜 세워진 것이다.
탁상곰바 해발고도는 3120m다. 한라산보다는 1170m가 더 높다. 게다가 사원이 딛고 선 자리는 900m 높이의 깎아지른 암벽 위다. 숫자만 보면 입이 딱 벌어지지만, 오르기 쉽지 않을 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출발 지점인 주차장 해발고도가 이미 2600m여서 올라야 하는 고도차는 520m쯤이다. 난이도는 서울 근교 산 등반과 비슷한 정도. 다만 고산지대라 빨리 숨이 차 속도를 늦춰야 하고, 사람에 따라서 걷는 게 좀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탁상곰바 가는 길의 중간쯤에는 전망대가 있다. 20달러를 내면 여기까지 조랑말을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전망대부터는 누구나 걸어서 올라야 한다. 고비는 마지막에 만나는 가파른 내리막과 오르막 계단이다. 코앞의 허공 너머로 사원이 빤히 보이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가파른 내리막 계단을 딛고 저 아래까지 내려간 뒤 계곡을 건너서 다시 깎아지른 오르막 계단을 올라야 한다.
탁상곰바는 본당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사원 이름을 가진 부속 건물이 옆으로, 또 위로 잇대서 지어졌다. 4개 사원이 하나의 집합건물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어두운 통로와 계단을 지나니 법당의 스님이 파드마 삼바바가 암호랑이에서 내린 자리와 그가 명상했던 자리를 손짓으로 가리켜 주었다. 좁은 통로 끝 법당에는 파드마 삼바바 형상의 불상도 있었다. 탁상곰바 어디서든 간절한 기도와 절이 이어졌다.
탁상곰바의 사원을 둘러 보다가 떠올린 건 설악산 봉정암이다. 탁상곰바에 파드마 삼바바가 있다면, 봉정암에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있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기도 도중 출현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의 사리와 옷을 받아들고 귀국해 찾아낸 자리에 세운 암자가 봉정암이다. 탁상곰바와 봉정암이, 파드마 삼바바와 자장율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순례하듯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이며 법당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도 닮았다. 따져보니 자장율사가 파드마 삼바바보다 100년쯤 앞서서 먼저 왔다 갔다.
협곡의 다랑이 논. 벼가 익어가고 있다.
# 부탄 여행의 중심지 세 곳
부탄은 크지 않은 나라다. 전체 면적은 3만8394㎢. 남한의 40%쯤 된다. 경남·북에다 충남을 합친 정도의 크기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부탄에서 보통 세 곳의 도시를 본다. 국제공항과 탁상곰바가 있는 ‘파로’와 부탄의 수도 ‘팀푸’, 그리고 팀푸로 수도를 옮기기 전, 250년 동안 부탄의 수도였던 ‘푸나카’다.
세 곳은 모두 부탄 서쪽에 몰려 있다. 크지 않은 나라지만, 여행자의 발길이 닿는 건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이라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부탄에는 더 많은 경관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뜻도 된다. 부탄에서 여러 곳을 가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로 사정’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험악한 지형’ 탓이다. 부탄에서는 3000∼4000m급 산이 보통이다. 이런 산에다 놓은 길은, 말 그대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인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곧은길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터널을 뚫지 않는다. 터널 굴착이 곧 자연 훼손이라 생각해서 그렇다는데, 가만 보면 부탄 사람들은 ‘빨리 갈 생각’ 자체가 별로 없어 보인다.
부실한 도로는 여행자에게 여간 불편한 요소가 아니다. 여행 지형이 험준하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으니, 하루 종일 멀미 나는 길을 차로 오가면서 딱 한두 곳만 보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푸나카종’을 보고 온 날이 그랬다.
수도 팀푸에서 옛 수도 푸나카까지 거리는 76㎞ 남짓. 이 정도의 거리가 편도 3시간쯤 걸린다. 왕복하면 6시간이다. 도로의 경사는 가파르고 길은 갈 지(之) 자로 휘었다. 차량의 평균 주행 속도는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최고 속도’인 시속 30㎞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이 길의 이름이 ‘동서 하이웨이’다. ‘시속 25㎞로 달리는 고속도로’다.
푸나카에는 푸나카종이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종’이란 행정기관과 사찰이 한 지붕 아래 있는 시설이다. 푸나카종 건축을 둘러싼 이야기 속에는, 탁상곰바에서 익숙해진 이름, 파드마 삼바바가 등장한다.
1200여 년 전 그는 “먼 훗날 이곳에 나타난 사람이 나라를 통일하고 큰 성을 지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900년이 지난 뒤에 나타나 푸나카종을 지은 이가 바로 탁상곰바에서 보물을 발견했던 사람, 샤브드롱이었다.
# 질문하는 여행…부탄 여행의 매력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자리에 지어진 푸나카종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건축적 미감에다 종교적 경건함까지 스며들어 있다. 창 주위를 장식한 부탄식 문양도, 회벽과 목조의 어울림도, 마당 한쪽의 거대한 보리수도 근사했다.
압권은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석양빛에 물든 푸나카종의 모습이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건축이 만든 미감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이걸 보기 위해 왕복 여섯 시간의 멀미나는 여정을 감수해야 했지만, 보람은 충분했다.
푸나카에 푸나카종이 있다면, 수도 팀푸에는 부탄의 사상적 중심이라고 추켜세워지는 타쉬초종이 있다. 화재와 지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1902년 완전히 새로 지었고, 1962년 팀푸가 수도가 되면서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이 건축의 가장 튼튼한 뼈대가 ‘종교적 헌신’이란 게 단번에 느껴질 정도로 타쉬초종은 훌륭했다. 성벽 같은 벽체 위에 목조 창이 덧대지고, 거기에 섬세한 부조와 문양이 그려졌다. 부탄 전통건축 특유의 낮은 경사 지붕 여러 개가 만들어내는 장식미도 근사했다. 타쉬초종에는 유심히 보아 둘 부조가 있다. 나무 옆에 코끼리가 있는데, 코끼리 등 위에 원숭이가, 원숭이 머리 위에 토끼가, 토끼 머리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다. 티베트 불교 경전에 나오는 우화에 깃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나무에 열린 열매를 놓고 동물들이 제 것이라며 다퉜다. 코끼리는 ‘나무를 처음 본 건 나’라고 했고, 원숭이는 ‘열매를 먼저 본’ 권리를 주장했으며, 토끼는 ‘어린 나무 잎을 먹고 자란’ 과거를 들먹였다. 다툼을 단번에 정리한 건 새였다. 새는 ‘내가 뱉은 씨가 자란 나무이니 내 것’이라고 했던 것. 그 말에 수긍한 코끼리와 원숭이, 토끼는 새를 맏형으로 인정하고 의기투합해 나무 열매를 나눠 먹으며 평화롭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투숙했던 팀푸의 호텔에도, 시내의 작은 만두집 벽에도 걸려 있던 네 마리 동물의 이야기는, 행복의 근원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읽혔다. 가진 게 적어도 욕심내지 않고, 서로 나누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은 어디서든 가능한 것일까.
부탄 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건, 여행 내내 이런 질문이 수시로 형태를 바꿔가며 떠올려진다는 것이다. 고요한 수도원의 회랑을 걸으면서, 다랑이 논의 고된 노동을 가늠해 보면서, 거대한 도르덴마 불상 앞에 두 손 모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질문의 답을 생각하게 된다. 답이야 저마다 다를 것이고,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이런 생각도 금세 잊히고 말겠지만 말이다.
■ 해발 3000m에서 올려다 본 별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까지 가려면 해발 3140m의 도출라 고개를 넘어야 한다. 도출라 고개 정상에는 108개 불탑이 있다. 인도 시킴 지역의 반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불탑이다. 푸나카 가는 길에 도출라 고개에서 볼 수 있다는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영봉의 파노라마는 구름이 가득해 보지 못했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 건 돌아오는 길에 도출라 고개 정상에서 본, 밤하늘에 가득한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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