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 호수 면적 3만1500㎢에 최대 수심 1742m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7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면적만 남한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초승달 모양의 호수는 남북으로 636㎞, 동서로 평균 48㎞가량 뻗어있다. 러시아 전체 담수의 90%, 전세계 얼지 않은 담수의 5분의 1이 담겨있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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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칼호를 끼고 있는 이르쿠츠크 근교 리스트뱐카 마을.
- 수심 1742m… 전세계 담수의 20% 보유
호수 주변의 336개 크고 작은 하천에서 물이 흘러 들어오지만 이르쿠츠크를 가로지르는 앙가라강 한곳으로만 빠져나간다. 짙고 푸른 자작나무숲으로 뒤덮여 있는 앙가라강에는 강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도 들어섰다. 바이칼이란 이름은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를 뜻하는 ‘바이쿨’이란 말에서 나왔다. 풍요로운 호수라는 말처럼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까지 이르는 70㎞가량의 왕복 2차선 도로변은 울창한 자작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다. ‘바이칼스카야’라고 불리는 이 도로는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건설한 도로로 알려져 있다.
7~8월 두 달간의 여름철에는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나갈 수 있다. 100여명이 승선할 수 있는 바이칼호 유람선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1시간쯤 나가면 그야말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호수라기보다는 끝없는 수평선만 계속되는 바다에 가깝다.
남북 길이만 636㎞에 달하는 호수는 동해 바다를 연상시킨다. 다만 하얀 포말과 거친 파도가 없을 뿐이다. 유람선 위의 선원들은 두레박으로 호숫물을 길어서 바로 마시기도 한다. 아직 노란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선원이 두레박으로 호숫물을 길어서 승객들에게 쑥 내민다. 그냥 호숫물을 마셔도 되냐는 질문에 이 선원은 “바이칼 호숫물은 자체 정화능력이 뛰어나고 주변에 오염원도 없어 마시는 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먼저 물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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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망망대해와 같은 바이칼호와 유람선. 2 바이칼호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의 낚시꾼. 3 바이칼호 근교에선 하이킹족들을 만날 수 있다. 4 앙가라강과 자작나무숲. 5 오물구이
- 명물 오물(Omul)구이와 보드카
실제 바이칼호는 여타 호수에 비해 산소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심 깊은 곳까지도 산소가 충분히 공급돼 바이칼호 아래는 2500여종이 넘는 수중 동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오물(Omul)’이란 민물고기다. 바이칼호에서만 자라는 물고기로 성인남자의 팔뚝만 한 길이에 겉모습은 바다에서 나는 조기를 빼닮았다. 바이칼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르쿠츠크 시민들은 주말이면 차를 타고 바이칼호 선창가로 와서 오물로 만든 생선요리를 즐겨먹는다. 선창가 옆에 형성된 노점에는 부슬부슬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오물을 구워내는 열기로 후끈거린다.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이 훈제 연어구이와 비슷하다. 바이칼호를 끼고 있는 리스트뱐카 마을에는 줄잡아 수십 개가 넘는 오물구이 노점들이 늘어서 있다. 훈제연기를 이용해 잘 구워낸 오물구이 옆에는 대개 러시아의 명물 ‘보드카’가 곁들여진다. 무색무취의 보드카는 ‘물’을 뜻하는 러시아어 ‘보다’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드카는 알코올 도수 40~50도를 웃도는 독주(毒酒)다. 보드카를 한 잔 입에 털어넣자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린다. 선창가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감돈다. 동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사람들은 특히 겨울철에 보드카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이다. 보드카를 마시는 것은 이르쿠츠크 사람들이 시베리아의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신혼부부들의 필수 코스
바이칼호는 이르쿠츠크 신혼부부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바이칼호 북안에 자리잡은 리스트뱐카 마을에는 이르쿠츠크의 신혼부부들이 신랑신부의 들러리들과 함께 이곳으로 와서 호수를 배경으로 결혼 사진을 찍는다. 신부는 순백색의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양복 정장을 입는다. 신혼부부의 ‘허니문카’는 우리와 같이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다. 선창가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오물구이를 즐기던 사람들도 신혼부부를 보자 박수를 치며 결혼을 축복해준다. 주변 사람들이 ‘모이카, 모이카(키스해)’를 연거푸 외치자 신혼부부들은 진한 키스를 나눈다. 선창가 사람들은 바이칼호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먹거리를 팔고 유람선을 태워주며 생계를 유지한다. 우리나라 여느 선창가와 마찬가지다. 선창가 옆에는 주로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허름한 모텔과 재래시장도 자리를 잡고 있다.
바이칼호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자작나무 숲에는 딸찌마을이란 과거 러시아인들의 정착촌이 있다. 러시아인들은 울창한 자작나무를 이용해 뾰족한 목책과 러시아식 교회당을 만들고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민속촌으로 변했다. 마을 곳곳에서는 자작나무를 깎아 만든 각종 민속공예품을 판다. 그중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로시카다. 자작나무로 만든 휴대폰 크기만 한 목각인형 속에는 최대 10개의 작은 목각인형이 들어있다. 바깥 쪽의 목각인형을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작은 인형들이 차례로 나온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마트로시카를 파는 점원은 어설픈 영어로 “바이칼 자작나무로 만든 아름다운 인형”이라며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라”고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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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바이칼 인근의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신혼부부. 2 자작나무로 만든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로시카. 3 딸찌마을에서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인. 4 러시아 초기 정착촌 딸찌마을.
- 가라앉은 금괴 500톤을 찾아라
- 평화로운 바이칼호도 한때 25만명의 피로 뒤덮인 적이 있다. 구 소련의 공산혁명 발발 이후다. 레닌이 일으킨 공산혁명 이후 혁명파(적군파)와 반혁명파(백군파)는 시베리아 전역에서 세력다툼을 벌였다. 당시 영국과 미국, 일본은 공산혁명을 타도하기 위해 백군파를 지원했다. 이르쿠츠크를 비롯한 동시베리아 일대에서 백군파를 이끌던 사람은 콜차크 장군이다. 하지만 혁명파의 공격에 패퇴를 거듭, 바이칼호를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로 퇴각하다 모조리 괴멸했다. 콜차크 장군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몰래 받아 군자금으로 사용하던 화차 28대 분량의 금괴도 수심 1742m 바이칼호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콜차크가 잃어버린 금괴는 500줖가량으로 알려졌다. 콜차크의 이야기는 지난 4월 한국에서도 개봉한 러시아 영화 ‘제독의 연인’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때문에 바이칼호 근처 마을에는 콜차크 장군과 금괴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도시 곳곳에는 공산혁명 적군파의 수괴 레닌과 반혁명 왕당파의 장군 콜차크의 동상이 나란히 서있다. 일부 러시아 탐험가들은 콜차크의 금괴를 찾는 데 혈안이 됐다. 최근 러시아 정부도 잠수함을 동원해 바이칼호의 아래를 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2일에는 푸틴 러시아 총리가 러시아제 잠수정 미르 1호를 타고 바이칼호 아래 1400m 지점까지 직접 들어갔다. 러시아 정부 측은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찾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불타는 얼음’이라고도 불리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미래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광물자원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모험을 즐기는 푸틴이 콜차크의 금괴를 찾기 위해 내려갔을 것”으로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