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뇌 전문가 박문호

醉月 2013. 4. 22. 01:30

“인문학에 속지 마라 인간의 답은 자연과학에 있다”

뇌 전문가 박문호씨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이 사람 진짜 괴물이다. 4월 8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코리아나호텔 건물 1층의 한 커피 전문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박문호 박사를 인터뷰하는 중이다. 그는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이라는 783쪽짜리 두툼한 책을 냈다. 박씨는 뇌 관련 베스트셀러의 저자. 그가 2008년에 쓴 ‘뇌, 생각의 출현’은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뇌과학 최고의 책’ 순위 1위에 올라 있다. 뇌 전문가로서 이름을 올린 그가 5년 만에 수없이 많은 그림이 들어가 있는 뇌과학 책을 또 낸 것이다.

불과 몇 주 전 ‘뇌, 생각의 출현’ 책을 읽어본 필자는 그의 새로운 뇌 책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뇌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대학(경북대)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미국에서도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엄청난 뇌과학 책을 낸 전자공학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인터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박 박사가 “저는 빠른 걸 좋아한다. 속도 느린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필자의 속도가 자신의 속도보다 느리단다. 핵심을 빨리 물으라고 했다. 성격이 급하다. 말도 빠르다.

- 왜 속도가 빠른가. “속도가 핵심이다. 칭기즈칸이 어떻게 세계를 제패했나? 속도다. 우리나라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너무 많다. 사회적으로 어떤 집단이든 조직이든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전체 비용에서 30% 이상이 넘어가면 붕괴가 되게 돼 있다. 저는 누구하고 만나도 인사부터 안 한다. 바쁜 사람들끼리 만났는데 핵심부터 말해야 한다. 전문가끼리 만나면 ‘네 거 내놔 봐라’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니까 빨리 내놓아 봐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괴짜가 분명하다. 그리고 뭔가 필자에게 불편한 게 틀림없다. “저는 당당하다. 에둘러 이야기 안 한다. 이 책을 넘겨봤으면, 제가 느낌을 물었더니 ‘뭐 어려운 책이네’ 이것밖에 없었다. 근데 그건 아니잖나, 제가 봤을 때. 근데 만약 이걸 넘겨보면 ‘앗, 이게 ~이네. 뭐 이런 시도가 있어? 이 놈 봐라’ 이런 게 나와야 한다. 툭 건드리면 툭 나와야 한다.”

그의 속내가 일부 드러났다. 책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본 모양이다. 화두를 슬쩍 바꿔 본다. ETRI 책임연구원인데, 어떤 분야에서 일하느냐고 물었다. ETRI는 대전 대덕에 있는 국내 최고의 연구기관 중 하나다. 이동통신 CDMA 원천기술을 개발한 곳으로 유명하다. 박 박사는 “20년간 반도체를 했다. 반도체, 레이저 다이오드 등. 5년 전에 바이오 쪽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반도체 관련해서 박사 논문을 썼다. 박 박사는 “박사학위는 반도체에다가 메탈을 장착해서 메탈에서 반도체 인터페이스 일어나는 것을 했다”고 했다. ETRI는 1987년 대학을 졸업한 뒤 들어갔다. 그는 1959년생이다.

박 박사는 반도체 전문가인데, 지금은 뇌·우주·생물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자연과학 대중화운동을 하고 있다. 공부가 왜 다른 분야로 흘렀느냐고 물었다.

“좋아서 하는 거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내가 직장인이라는 사회적 역할보다 자연인으로서 자연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우선시한다. 그런 다음에 행성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해 관심이 있는 거다. 그건 내 직급이나 내 종교나 내 무엇보다 우선한다.”

박 박사는 ‘뇌과학의 모든 것’의 서문에 이 부분과 관련해 약간 설명을 해놓았다. “과학에 익숙해지면 자연의 구조가 보이지요. 그런 본연의 자연을 일생 동안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공부이지요. 공부 목표: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이라는 현상 규명.” 그는 이어 “자연은 세포, 원자, 시공을 통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세포의 춤 배경에는 원자의 춤과 시공의 춤이 있지요. 이 책은 신경세포의 춤을 통해서 본 인간 현상입니다”라고 썼다.

그는 자연과학의 매력에 빠지기 전에는 철학과 종교에 관심을 기울였다. 책의 ‘지은이의 말’에서 “감정과 기억, 그리고 의식의 실체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대학 시절에는 철학적 내성과 종교적 체험이 이런 뇌 작용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로 분자생물학, 세포학, 생리학, 뇌과학이 정답에 이르는 길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종교, 철학과의 만남은 어땠을까?

“철학하고 종교는 지난 3000년 동안 인류한테 질문만 던졌다. 그리고 대답은 감당하지 못했다. 전 인류에 통용되는 종교나 철학은 없다. 근데 과학은 300년밖에 안 됐는데도 에러를 계속 수정하면서 지금은 거의 90% 이상 인류에게 통용되고 있다. 간단하다. 그러면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택할 거냐 이거다. 철학이나 종교도 항상 자신들이 절대라고 이야기한다. 맞느냐? 오케이. 그런데 그 맞는다는 이야기가 당신들의 집단 이외에도 적용되느냐고 물어보자. 안 되지 않느냐. 그러면 게임 끝난 거다.”

그는 “대부분 인문학과 종교를 계속 기웃거리다가 40·50대쯤 거기에 많이 속고 난 후에야 자연과학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안개가 확 걷히면서 ‘너무 헷갈리는 길을 갔었구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박 박사가 말하는 자연과학이 뭐길래, 종교와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부분집합이라고 하는 걸까?

“모든 게 우주, 자연 안에 있다. 자연 현상에는 생명 현상과 무생물 현상이 있다. 무생물 현상을 다룬 게 물리, 화학이다. 인간인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연한 게 20만년밖에 안 됐다. 언어가 아무리 길어야 20만년 됐다는 얘기다. 인류가 침팬지에서 갈라진 지 600만년밖에 안 되고, 물고기에서 나온 건 5억년 됐다. 지구에 인간밖에 없나? 나는 인문학자에게 묻고 싶다. 인간이 있기 이전에 당신들은 뭘 합니까? 인문학은 다시 정의하면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문이다. 근데 지구는 인간밖에 없는 게 아니지 않나. 지구에는 천만 종의 생명체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인간이라는 생명체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왜 그렇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는 게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다. 우주 전체를 보면 인간은 극히 일부다.”

나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사람 자체의 문제도 잘 풀지 못하고 어려워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그렇기에 공부를 못한다. 사람한테 매달렸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인간을 동물의 한 종으로 봐야 한다. 이 책은 철저히 그런 관점으로 쓰여 있다”고 말했다.

▲ 박문호 박사 수첩 속의 수많은 물리 수식들. 파란 상자 속의 수식은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는 식이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그는 이어 “인간을 공부하면 안 된다. 인간하고 다른 걸 비교해야 한다. 인간하고 침팬지, 인간하고 파충류, 이렇게 비교해 보면 동물로서 인간이 보인다. 이 책 전체는 동물로서 인간을 설명하는 거다. 인간이 뭐가 특이한가?”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을 알고 싶어서, 인문학에는 솔루션이 없다고 봤고, 그래서 다른 차원으로 가야만 인간을 볼 수 있다고 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과학에서도 세 가지 공부를 하고, 가르친다.

“자연이 우리한테 나타날 때는 대략 세 가지 플랫폼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시공력. 일반 상대성 이론이 얘기하는 시공(時空)의 플랫폼이다. 시공은 결국 에너지의 변환 과정이다. 그걸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게 원자요, 그 원자가 모여서 된 게 세포다. 시공의 춤, 원자의 춤, 세포의 춤이다. 이번에 낸 책은 바로 세포의 춤에 대한 책이다. 다음에 나올 책은 원자의 춤, 그 다음은 시공의 춤 책이다. 이 3부작 중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것들을 먼저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알 것 같아서 세포의 춤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궁극적인 질문이 하나밖에 없다.”

- 뭔가. “자연이다. 자연 속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게 대칭이다. 대칭이 붕괴되어 우주에 네 가지 힘이 나오는 거다. 그중 우주의 전자기 상호작용이 이 뇌를 만든다. 그거밖에 없다.”(우주의 네 가지 힘이란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을 말한다.)

- 아 그렇군요, 전자기 상호작용. “대칭의 붕괴 얘기 들어봤죠? 그게 왜 그러냐면, 보세요. 힉스 보존 이야기 들어봤나? 이게 힉스 보존 수식이다.”

박 박사가 검은색 캘린더 노트와 같은 수첩을 꺼내 열어 보인다. 수첩 페이지 가득 물리학 수식이 쓰여 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걸 왜 이렇게 써서 다니나? 이 사람 진짜 제대로 공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아 그런가. “힉스 보존 나오는 질량은 이렇게 구한다. 이 많은 가정을 다 수식을 전개해 나가야 힉스 보존이 나온다. 이거 다음 시간에 강의할 내용이다. 일반인들, 가정주부들, 미분 적분 다 모르는 사람들이 입자 질량 구하는 것을 공부한다. 이건 밥벌이하고 아무 관계 없다. 이거 입자 물리학 하는 사람들밖에 모른다.”(박문호 박사는 매주 일요일 서울 건국대에서 네 시간씩 강의를 한다. 사단법인 ‘박자세(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다.)

- 왜 물리학 수식까지 일반인이 공부해야 하나. “난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올라온 거다. 난 이쪽 전문가가 되는 거다.”

- 전자공학 분야 전문가인데 뇌과학은 어떻게 공부하나. “깡그리 암기해버린다. 너무 단순하다. 저는 단순한 걸 좋아한다.”

- 국내, 해외에 나와 있는 좋은 책을 갖다가 공부를 하나. “다 암기해버린다. 주로 원서를 보는데 이거 보라.(‘뇌과학의 모든 것’ 책을 열어 보여준다. 수백 개의 직접 그린 그림들이 책에는 나와 있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직접 책을 보시면 안다.) 이 그림들 다 암기한 거다. 이런 수첩이 40권이 있다.”

- 근데 공부하는 방법이 굉장히 재밌다. 대단히 꼼꼼하고 치밀하다. “만나 보니까 성질이 급하고 듬성듬성하지 않나? 공부에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바깥에선 대충대충 이야기한다. 근데 공부는 인파이팅(infighting)해야 한다. 아웃복싱(outboxing)하면 안 된다. 공부는 바늘 갖고 하나하나 파서 우물 만들듯이 해야 한다.”

- 책 읽고, 그 다음에 또 공부할 게 있으면 국내 전문가 찾아가서 물어보나. “저는 안 물어본다. 왜 물어보나. 책, 논문이 있는데. 어디 가서 질문하는 거 싫어한다. 그렇게 공부하는 거 아니다. 다 있다. 전문가 찾아가서 물어보면 다 알 것 같지만, 그게 가장 느린 방법이다.”

-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사이트를 보니 회원 수가 2166명인데, 내가 2166번째다. 오늘 가입했다. 일요일에 건국대에서 회원 100여명 대상으로 강의하던데, 수강자는 누군가. “공부에 미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교모임이 아니다. 목적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는 독재자가 있다. 저는 회원들에게 독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모임을 10년 해보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모임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공부 이야기 아닌 거는 잘라 버린다.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너무 많이 쓴다. 커뮤니케이션을 다 없애버린다.”

- 공부라는 핵심에 집중하는 건가. “공부만 하는 거다. 끽소리 하지 말고 배우고 가라는 거다. 내 방식이 껄끄러운 사람은 나가, 필요 없어라고 한다. 왜? 내가 다 주는데 무슨 소리야.”

- 반응은 어떤가. “폭발적이다.”

- 강의는 언제부터 했나. “한 10년 됐다. 작년 12월에 공익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30년 동안 공부하자. 다섯 개 분야 박사학위 만들어주겠다. 그 대신 끽소리 말고 내 방식을 따르라. 그것밖에 없다. 철저한 복종을 하고, 싫으면 나가라는 거다.”

- 박 박사의 공부는 어디까지 되어 있나. “뇌 분야는 충분히 됐고, 이제 입자물리학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주론 쪽은 벌써 5년 전에 들어가고 있고. 지질학 같은 부분은 간단간단히 3년이면 끝나는 부분이 많다. 그거 가서 정면승부하고, 그 다음에 궁극적으로 인문학도 들어간다.”

1시간30분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박문호 박사는 주말 건국대 강의에 오라고 필자를 초청했다. 필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6월에 예정된 서호주 해외탐사에도 참여할 걸 권했다.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은하수를 보고 싶었지만, 올해에는 다른 일 때문에 안 된다며 사양했다. 그가 이끄는 ‘박자세’는 지난 3월 ‘몽골’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박자세의 전공 분야인 자연과학은 물론 몽골 초원의 역사, 종교까지 놀라운 정도로 깊숙이 공부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호모 아카데미쿠스, 즉 공부하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박문호와 그와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은 놀라운 호모 아카데미쿠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