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봉건과 함께하는 차문화 산책

醉月 2009. 3. 25. 12:12

다의(茶衣)
옷은 오염물질을 차단 … 천연염료로 생명의 氣 불어넣어, 쪽염 들이면 간과 눈에 좋고 오리나무 흑색은 신장에 좋아
홍화 붉은색 여성질환에 특효

 
  사진 제공 = 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옷은 인간에게 있어서 제2의 피부이다. 다른 동물들도 모두 인간과 같이 먹고 산다. 많은 동물들이 집도 짓고 산다. 그러나 인간 같이 옷을 입고 사는 동물은 없다. 인간의 몸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털이 없어서 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의 피부는 호흡도 한다. 땀도 흘리고 피부에 닿은 물질을 흡수하는 특이한 기능도 갖고 있다. 피부로 흡수한 물질은 잘 배출되지 않는 특징도 아울러 갖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환경은 많이 오염되어 있어서 먹는 것, 마시는 것이 중금속이나 독성 물질들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먹어서 흡수한 오염물질은 대부분 배출되고 일부분만이 축적되는데 비해, 피부로 흡수된 중금속은 대부분 몸속에 축적되고 일부분만이 배출된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옷은 우리의 몸을 추위와 더위에서 보호하고, 불필요한 외부 물질과의 접촉과 마찰을 최소화해 준다. 또 체내에서 피부로 배출되는 땀과 분비물을 흡수하여 인체의 대사 기능을 도와주기도 한다. 화학 섬유로 된 옷은 추위나 더위는 막아줄는지 모르지만 땀이나 분비물은 잘 흡수하지 않는다. 게다가 화학염료로 염색한 천은 그 자신 엄청난 오염물질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피부는 오히려 무방비로 오염물질들에 노출되어 있는 형편이다.

우리의 몸에서 피부는 외부의 환경과 맞닥뜨리는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다. 무명이나 명주, 삼베나 모시와 같은 천연 섬유들은 그 성질에 한서(寒暑)의 차가 있어서 계절에 따라 우리의 몸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원군이 되어 준다.

천연염재에서 채취한 다양한 색(色)은 식물이 가지고 있던 생명의 기(氣)가 응결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운은 동양의 오래된 과학인 오행(五行)의 덕성과도 대개 부합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 염색에서 대표적인 청색인 쪽염을 들인 옷을 입으면 동방에 속하는 목(木) 기운의 장기인 간(肝)과 눈에 좋다. 또 우리 산야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오리나무나 시딱나무로 염색을 하면 검은 색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북방에 속하는 수(水) 기운의 신장(腎臟)에 좋으며 남자의 아래쪽 부위의 옷에 적합하다.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우리 농촌에서 오리나무의 푸른 열매를 공출 받아가서 자기네 군인들의 군복을 염색했다 하니 오늘날 이 분야에 있어서의 우리의 문화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하나 더 예를 들면, 붉은 색의 다양한 간색(間色)을 나타내는 홍화, 소목, 꼭두서니 등으로 염색한 옷을 입으면 여성의 비뇨기과 질환이나 갱년기의 호르몬 부조화를 개선하는 데에 특별한 효능을 가지므로 권장할 만한 일이다. 이 외에 칠해목 치자 황련 율피 등은 황색을 내고, 개망초 죽순 찻잎 등은 겨자색을, 칡넝쿨 때죽나무 등은 카키색을, 쑥 머위 등은 아련한 녹색을, 닭의장풀, 물푸레나무 등은 푸른색을 내는 등 우리 산야의 거의 모든 초목에서 이와 같이 아름다운 색이 나오는 줄은 나도 직접 천연염색을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일이다. 그 중에서도 땡감이나 황토 등은 재료가 흔하기도 하려니와 그 효능이 천연 약재를 대신할 정도이니 그동안 우리는 이런 것들을 곁에 두고도 보지 못한 까막눈들이었던 셈이다. 또 하나의 염재에 의한 단일 염색이 아니라 몇 가지 염재를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복염을 하게 되면 색채와 효능 면에서 훨씬 다양한 효용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약리적인 면에서나 예술적인 면에서 무궁무진한 세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찻자리의 옷은 천연섬유에 천연염색을 한 옷이 아니면 재미없다. 차인들은 본능적으로 천연섬유의 느낌을 좋아한다. 그리고 천연염색의 태깔을 사랑한다. 옷을 지은 맵시가 좀 일그러져도 그런 것은 상관없다. 나는 차문화의 큰 의의를 생명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볼 때에도 천연 섬유에 천연 염색을 한 다의(茶衣)는 오늘날 우리들의 의생활 문화에 이미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화려한 복식보다 천연염색 옷 직접 지어입는 기풍이 어떨까
해어지면 기워 입고 색이 바래면 한 번 더 염색하는 다의가 더 기품있어


 
  사진 제공 = 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차회(茶會)에 있어 복식은 큰 의의를 지닌다. 개인이 혼자서 차를 마실 때에는 어떤 옷을 입고 마셔도 상관할 바 없겠으나 차회를 이루어 사회성을 지니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다의에는 크게는 차인이 입는 옷이라는 의미가 있고, 거기에 다시 그 차회의 특수한 성격이 반영되어야 한다. 차회의 복식은 그 단체의 지도자나 혹은 구성원의 미적 안목에 따라 색채나 형태가 채택됨이 보통이지만 이 문제는 좀 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좀 거창하게 논하면, 고대에는 한 왕조가 새로 일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정월 초하루를 고치는 일(改正朔)과 관복의 색조를 바꾸는 일(易服色)이었다. 이 둘은 그 왕조의 정치적 이념을 가장 뚜렷하게 천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월 초하루를 고치는 일은 천문에서 어느 별자리를 중심자리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은 역수(曆數)에 반영되어 농사일에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복색을 바꾸는 일은 그 왕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오행(五行)의 어떤 덕에 기조를 두느냐 하는 데 따른다. 한 왕조의 복색의 주조를 어떤 색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한 정치적 의미가 깔려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대 중국의 경우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과 '삼통설(三統說)'이 있었는데 오덕종시설은 수·화·목·금·토의 오행의 덕이 왕조마다 달리 하여 교체된다는 것이고, 삼통설은 흑통(黑統)과 백통(白統)과 적통(赤統)이 새로이 일어나는 왕조에 의해 순환된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민주제도가 아직 실현되기 전이었으므로 새로운 정권의 획득은 반드시 혁명의 방식에 의거하였다. 그러므로 신왕(新王)은 자신의 정권에 명분의 장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은(殷) 왕조는 하(夏) 왕조의 수덕(水德)이 다하여 자신이 금덕(金德)의 백통을 열었다 하고, 주(周) 왕조는 다시 은 왕조의 백통이 그 덕을 다하여 자신이 화덕(火德)의 적통으로 이었다고 하는 식이다.

이러한 역복색(易服色)의 이론은 견강부회의 의미가 짙으나 한편으로는 왕조로 하여금 건강한 도덕성을 유지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즉 '천명은 하나의 왕조만을 돌보지 않는다(天命不于常)'는 생각으로 천명을 두려워하는 외경심을 갖게 하고, 동시에 문제가 있을 때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하는 의미가 컸던 것이다. 오늘날 차회의 복색을 선정하는 일을 과거 왕조의 역복색의 관념에 전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무리이겠으나 그러나 한 번쯤은 되돌아봄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다의에는 또 어떤 복식(服飾)으로 짓느냐의 문제가 있다. 우리의 전통 복식 가운데에는 크게 신라복 고려복 조선복의 세 가지 복식을 참조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각 시대복에서도 왕실 사대부 서인계층 등의 복식이 있다. 오늘날 승복(僧服)은 대개 신라복을 표방한 복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있어 한복(韓服)이라 하면 대개 조선복을 손익(損益)한 것을 이르는 것이다.

각 다회들이 어느 시대복을 자신들의 다의(茶衣)로 표방하느냐 하는 문제는 나름대로의 이념과 안목에 의거할 일이다. 다만 한 가지 권고하고 싶은 것은 다의에 왕실의 복식을 채용한다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복색을 표방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어쩌다 여러 다회들이 공동 참여하여 개최하는 차행사 같은 데에 들러보면 우리의 다의들이 대체로 너무 화려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좀 낡고 수더분한 다의를 더욱 기품 있게 여기는 그런 기상은 어디로들 갔을까. 어떤 다회에서는 조선조 왕실 내명부의 공식 의상인 당의(唐衣)를 단복으로 채용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또 어떤 다회에서는 그 당의를 입고 사대부 다례를 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도대체 왜들 그렇게 화려한 옷들을 입고 싶어 할까. 몸에는 그런 옷을 입고, 입으로는 언필칭 다선일미(茶禪一味)와 화경청적(和敬淸寂)을 얘기하는데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다도인가.

다회에 새 식구가 들어오면, 하루 날을 잡아서 천연섬유에 천연염색을 하는 것을 도와주고, 직접 바느질하여 다의를 짓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 옷 해어지면 기워 입고, 색이 바래면 한 번 더 염색해 입는 그런 다의의 기풍을 지금이라도 살려 가는 것은 어떨까.
다식(茶食)
정성 다해 만들고 음미하며 먹는 대표적 '슬로푸드'
과자·떡·양갱 등 차와 함께 내는 먹을거리 함축된 모양·색·맛 지향


 
  사진 제공=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누리는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이요 또한 생명이 이루어지는 무진장(無盡藏)의 세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도(食道)의 깊이는 무궁하다고 할 것이다. 다도는 행태면에서 보면 식도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다도는 식도 가운데에서 매우 특이한 형태의 식도이다. 다도는 단순히 맛이나 향을 음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차를 마실 때는 차 외에도 약간의 먹을거리가 동반된다. 이것을 다식(茶食)이라 한다. 보통은 과자나 떡, 양갱 등이 이 일을 한다. 차가 약간은 찬 물건이고 보면 속을 보호하고 또 미각을 활발하게 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다식을 만드는 데에 다인들은 매우 애를 많이 쓰고 시간도 많이 들인다. 다식을 만드는 데에 쓰이는 재료들도 밤, 송화 가루, 살구, 오미자, 다시마, 각종 꽃, 열매의 씨앗이나 씨앗 속 등과 같이 평소의 식생활에서 잘 대하지 않는 것들을 쓴다. 다식은 그 크기는 작지만 모양과 색, 그리고 맛에서 극도의 함축성을 지향하며, 차인은 이 다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다.

차 마시는 시간이 몇 시간 지속되다보면 식사 시간을 맞는 수도 있는데 이때에는 식사가 될 정도의 음식을 내기도 한다. 일본의 차인들은 이 식사에서의 음식을 가이세키(懷石) 요리라고 부른다. 대개는 일즙삼채(一汁三菜), 즉 국 하나와 세 가지의 반찬을 내는 정도를 법도로 한다. 가이세키라는 말은 선가(禪家)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선가에서는 납팔접심(蠟八接心)이라 하여 섣달 초여드레인 석가모니의 성도일(成道日)을 기하여 불을 넣지 않는 방에서 음식도 먹지 않고 밤새 용맹정진에 임하는 의식이 있다. 회석(懷石)이란 이때에 졸음과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부뚜막 가에 놓아둔 따뜻한 돌을 가슴에 품는 것을 말한다. 따뜻한 돌을 하나 품는다고 해서 온몸이 따뜻하게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찻자리의 음식도 이와 같이 마음에 점을 하나 찍는 정도라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일본의 다인들은 다도를 행할 때에 각각의 모서리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찻자리에서의 음식은 배부른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말에 나도 절대로 공감한다.

1989년 11월 9일, 파리의 코믹오페라하우스에서 전 세계의 각국 대표들이 모여 '슬로푸드 파리 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 모아졌다. 골자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산업혁명의 이름 아래 우리의 세기에 처음으로 기계가 발명되었고,/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식생활에서도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패스트 라이프'라는 음흉한 바이러스에 굴복되어 가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 인류는 이제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고, 우리의 환경과 자연을 위협하고 있는 데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슬로푸드'이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패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고, 현대인들은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 빠름만 추구하는 '호모스피디언'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슬로푸드 운동의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인 경남대학의 김종덕 교수는 100년 전의 사람들은 100~120종류의 음식을 먹었는데 우리는 지금 10~12종류를 먹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세계인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으며 지역의 토속 음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식(茶食)이나 회석은 모두 적은 양에 다양한 재료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다는 점에 공통성이 있다. 나는 천천히 오랜 시간 동안 정성 들여 만드는 다식과 그것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차 문화는 그 자체로서 이 시대의 식문화에서 슬로푸드(Slow-food)를 선도하는 모범이 된다고 생각한다

 

제철재료로 모양보다는 영양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한국식
거의 모든 식재료 사용하는 중국식, 화려한 먹을거리와 까다로운 절차의 일본
한·중·일 다식문화 비슷하면서도 달라


 
  사진 제공=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동양 삼국의 차 문화는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면이 많다. 그것은 다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다식은 재료가 매우 풍부해서 거의 모든 식재료를 다 쓴다. 육류도 쓴다. 그러나 정종(正宗)의 다식은 대개 마른 과일을 위주로 한다. 땅콩이나 호박씨도 좋아하는 품목의 하나이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다식에는 매실을 가공한 것도 많다. '일충양건(一忠兩件)'이라 하여 대개는 한 접시에 두 종류의 다식을 담아낸다. 다식 가운데는 단단한 견과류도 많아서 찻자리에는 견과류를 깨는 도구도 비치할 정도이다. '대목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그 연장을 예리하게 한다'(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는 고대의 어진 이의 권고에 따라 공구도 다양하게 갖춘다. 심지어 십팔반 병기 모양의 공구를 진열하여 흥취를 돋우기도 한다. 중국인들다운 발상이다. 중국인들은 "차를 마시고 호박씨를 까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면 빈주(賓主) 사이에 그 즐거움이 융융(融融)하다"고 한다. 소박한 다식 관념이다.

일본의 다식은 정치한 솜씨로 빚어진 화과자와 떡이 주가 된다. 대개 고이차(濃茶)에는 떡을 먹고 우스차(薄茶)에는 화과자를 먹는다. 일본의 화과자는 매우 다양한 모양과 색을 자랑한다. 꽃 모양이나 과일 모양, 물고기 모양 등 형태가 매우 앙증맞은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다회의 격식은 새벽에 하는 다회나 낮에 하는 다회, 또 저녁에 하는 다회 등 시간상으로도 다양하고, 또 계절 별로, 유파 별로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대개는 일동이 자리를 하면 먼저 떡 종류로 된 다식을 먼저 먹고 고이차를 나누어 마신다. 그리고는 차실을 나와 가이세키(懷石) 식사를 하고 다시 차실에 들어 화과자 다식을 먹고 마지막으로 우스차를 마신다. 다식을 먹을 때는 하나씩 덜어 다식 종이에 놓고 손에 들고 먹는다. 다식이 한 입에 먹기 어려우면 다식 나이프로 잘라 먹는다. 다식종이와 나이프는 각자가 지참한다. 다회가 진행되는 동안 극도의 긴장감이 유지되며 다식을 먹는 동작이나 자세 또한 매우 엄숙하다. 만일 그러한 다회의 예도나 격식을 모르는 사람이 찻자리에 임하다 보면 매우 당황되거나 국외인이 되는 수가 많다. 이들은 외국의 원수가 일본을 방문하면 곧잘 다회에 초대하여 자기네들의 차 문화의 예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자랑하기도 한다.

차를 마시는 동안 중국인들은 많은 대화를 하며 다식을 먹는 데에도 특별한 격식이나 행동의 제한이 없다. 일본의 차회에서는 엄격히 정해진 격식에 따라 임하며 말수도 제한된다. 어느 것이나 다 그 민족의 정서와 문화적 특색을 담고 있어서 다채로울수록 볼 만하다. 다만 역설인지는 모르지만 방만함 속에도 고도의 질서가 깃들 수 있고, 엄격함 그 자체가 곧 야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다식은 떡이나 양갱, 그리고 각종 버무림이 대종이다. 다식은 그 모양새가 너무 정교하지도 않고 먹는 분위기 또한 너무 긴장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다식의 정신 또한 자연스러움이 바탕이라고 본다. 떡에는 각종의 잡곡을 넣고 또 밤이나 잣 등의 견과류도 섞어 보기도 아름답고 영양도 풍부하다. 계절의 정취에 맞추어 봄에는 화전이나 쑥 털털이, 여름에는 송화다식, 가을에는 밤이나 대추 비빔, 겨울에는 흑임자나 용안다식 등 종류도 무궁무진이다. 또 계절과 찻자리의 분위기에 맞추어 그에 맞는 각종 떡이나 양갱을 함께 낸다.

내가 즐겨 내는 다식 중에는 밤다식이 있다. 밤을 쪄서 으깨어 꿀과 함께 비빈 것이다. 한입에 먹을 정도의 크기로 조물락거려 마지막에는 올이 굵은 삼베로 싸서 둥글게 뭉친다. 밤을 으깰 때 너무 곱게 으깨지 않는다. 삼베는 올 사이가 성근 것이 나중에 무늬가 더 좋다. 또 밤, 대추, 석이버섯을 곱게 썰어 꿀이나 조청에 버무려 내는 것도 씹는 맛이 있어 괜찮다.

가을과 겨울밤 찻자리에서 내가 즐겨하는 요리는 단호박죽이다. 단호박을 쪄서 껍질을 벗기고 믹서에 갈거나 숟가락으로 으깨어 물을 넣고 끓인다. 대충 끓으면 찹쌀가루를 찬물에 개어 천천히 저으면서 넣는다. 그리고 소금과 설탕 간을 적당히 하고 다 되었다 싶을 때 생크림을 조금 넣고 마무리한다. 특별히 무겁지도 않고 먹기에 부담스럽지도 않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요리는 이 외에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