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봉건과 함께하는 차문화 산책

醉月 2009. 3. 21. 14:14

 다례(茶禮)
茶를 통해 수준 높은 정신문화에 이르다
일본 茶道는 수행을 통한 정신적 희열을…중국 茶藝는 정치적인 합의의 산물

 
  사진=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차문화는 예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문화 일반에 걸친 사안들을 모두 습관적으로 다례(茶禮)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들은 '다예(茶藝)'라 부르고, 일본 사람들은 '다도(茶道)'라 부른다. 모두 나름대로 민족 정서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호칭이다. 이러한 호칭들의 개념을 좀은 구별해 두는 것이 차문화를 쉽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편일지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다도는 물론이고, 검도(劍道), 식도(食道), 서도(書道) 등 매사에 도 자를 붙이기 좋아한다. 여기서의 도(道)에는 세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는 통하는 길이다. 또 하나는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수단, 혹은 수행의 방법이다. 세 번째는 그 일을 숙달했을 때 얻는 정신적 희열이다. 이것은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한반도로부터 전수받은 대륙의 선진문화와 관련이 있다. 첫 번째 도는 대륙의 선진문화에 접속하는 통로를 말한다. 선진문화에 통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두 번째 도는 전래된 문화를 잘 익힐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다. 세 번째 도는 앞의 두 과정이 잘 이루어졌을 때 오는 정신적 희열을 말한다. 물론 세 번째의 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이는 앞의 두 가지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과정을 철저히 하고 장인정신에 투철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원래 차문화의 발상지이지만 긴 시기 공산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차문화의 원형을 잃어버렸다. 1970년대 말 대만에서 일군의 차인들이 '다예협회'를 창립하여 중화차문화의 복구에 착수했을 정도이다. 이때에도 차문화의 명칭을 '다도'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설왕설래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다도'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더 컸다. 반대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다도'라는 말은 비록 중국에서 먼저 이루어진 용어이긴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에서 더욱 번창하고 있으므로 만약에 지금 중국에서 '다도'라는 말을 쓰게 된다면 이는 차문화를 일본에서 대만으로 반입해 들여오는 꼴로 비치기 십상이라는 우려였다. 둘째는 '다도'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또 중국인들은 '도' 자에 대해 그것이 높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라 여겨 특별한 존중의 염을 품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으리라는 우려였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다예'로 부르기로 합의했다. 대만에서 먼저 이루어진 다예라는 호칭이 대륙으로 전파된 것은 1988년에 이르러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다례'로 부르는데 이는 다분히 유교의 영향이 짙다. 다례는 일본에서처럼 특별히 전래 문화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처럼 인위적인 의견수렴에 의거하여 창조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다례'라는 말에는 매우 수준 높은 정신문화로서의 의미가 내재해있다. 다만 차문화의 영역에서 하위개념에 속하는 다사(茶事)나 다의(茶儀)나 다법(茶法)과 같은 개념과 분명히 구별되었을 때에 다례의 상위개념으로서의 의미가 도드라진다.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차나 물이나 불, 혹은 그릇 등을 다루는 일거리들은 아직 다사(茶事)이다. 차 도구의 배열이나 행다인(行茶人)의 복식(服飾), 행다의 순서나 동작 등은 모두 다의(茶儀)에 속한다. 그리고 차를 우리는 각종의 방식은 다법(茶法)이다. 다례는 이 세 영역이 모여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때 원만하게 성취되는 정신적, 사회적인 이차적 가치에 대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 가운데에서 많은 경우 혼동되고 있는 것은 다의(茶儀)와 다례의 관계이다. 다의의 의(儀) 자는 '거동'이라는 뜻이다. 행다에 적합한 옷을 입는 일이나 다기의 진설(陳設)에서 다실의 분위기를 갖추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것들은 아직 물질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거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다의라고 하는 것이다. 차인들은 다례에 적절한 옷을 입고 다례를 행하긴 하지만 그러나 옷 잘 입는 것을 다례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물을 끓여 다례를 행하기는 하지만 물 끓이는 일을 다례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와 같이 다례와 다례의 여러 요소들에 대한 의미 구분이 분명해질 때에 다례가 가지는 높은 정신적 가치가 분명하게 인식될 것이고, 아울러 수준 높은 정신문화로서의 면모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칫 번잡하고 형식 일변도로 치닫는 다례 경계해야, 고대중국 주대 '허례허식' 진통 진정성 결여된 겉치레 버려야

 
  사진=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예전부터 우리네 동양의 옛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과 차이가 나는 까닭을 예(禮)를 할 줄 아는 것쯤으로 여겼었다. 동물적 본능대로가 아닌 사회적 배려를 할 줄 아는 마음을 인간의 특징, 즉 문화정신의 시작이라고 본 것이다.

예는 인간사의 여러 구비에서 가장 원만한 삶의 모습이 객관화한 것이다. 아주 고대에는 인간의 혼례에 있어서도 약탈혼이나 매매혼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문화정신이 싹터 그것이 부자유스러운 것임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친영(親迎)이나 납채(納采)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친영이라고는 해도 신부가 신랑 집으로 옮겨가서 산다는 사실에는 약탈혼에서 바뀐 것은 없다. 혼례식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보내는 납채도 그 함 속에 금은붙이나 곡식의 씨앗, 육포나 피륙 등을 넣어 보낸다는 점에서 매매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를 예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그것들이 바로 인류의 내면에 흐르는 다른 동물과는 다른 보편적 심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의 근본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원래 인간의 삶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또 주관적인 것이다. 철학적, 혹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각 개인은 엄밀히 말해서 각자 자기 혼자만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고, 또 세계도 자신의 주관이 보고 있는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살다간다고 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참모습이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같은 상황에 처한 여러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통적으로 용인되는 보편적 견해가 있다. 예는 이런 보편적 견해의 토대 위에 구축된 객관적 삶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문화관념이 일단 확립되자 오늘날과 같이 성문법이 없던 시절에는 예는 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교의 5경 가운데 하나인 '예기(禮記)'에는 예(禮)와 악(樂)을 병칭하여 '악은 천지를 조화롭게 해 주는 것이다. 예는 천지를 질서 있게 해 주는 것이다(樂者天地之和也, 禮者天地之序也)'고 하여 예가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기제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문화 일반에 대해서 다례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은연중에 예가 가지는 이와 같은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크게 여기는 정서가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예라는 것이 일단 객관화되고 그것이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니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잡해지고 또 자칫 객관적인 형식 일변도로 치닫는 사회적 속성을 발휘하기 시작할 수 있다. 차인들은 차문화에 있어서 이러한 현상을 극력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대 중국에서는 주대(周代)에 이미 이러한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주나라 초기에 발명한 예의전장제도(禮義典章制度)가 대략 춘추말기 쯤에 이르면 그것이 너무나 번잡해져서 여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실행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허례(虛禮) 문화에 대해서 당시의 지식분자들이 저마다 처방전을 내 놓았는데 그 치료법이 바로 각 학파간의 특징으로 연결되었다.

서민계급을 대변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던 묵가(墨家)는 이와 같은 사람 잡는 번다한 허례허식을 당장 집어치우자고 부르짖었다. 초월주의자들인 도가(道家)는 현실에서의 그와 같은 현상에서 정신적으로 초월하라고 가르쳤다.

유가(儒家)는 달랐다. 예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화정신과 직결된 것이어서 그것을 그만두거나 버리고 달아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당신의 예문화가 껍질만 남고 내용이 쏙 빠져 달아난 것이라면 그 달아나고 없는 자리에 다시 진정신을 다시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근인 웅십력(熊十力)은 "묵가는 인문(人文)에 미치지 못하였고, 도가는 인문을 넘어가 버렸다"고 평가했다. 유가의 사상이 중국에서 이천년 넘게 정통 사상의 지위를 유지해온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예 문화에 대한 온건한 자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들의 차문화는 과연 어떠한가? 아직 제대로 된 몸과 마음을 갖추기도 전에 너무 겉모습이나 형식에 치우친 감은 없는가? 그 속에 진정신이 깃들어 있기는 하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차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먼저 묻고 다례를 행하라, 禮는 거창한 의식이나 절차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다

 
  사진 = 이경순(사진가·영광갤러리 관장)
'논어'에는 임방(林放)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예의 근본을 물은 기사가 있다. 공자는 이 질문에 대해 "크도다. 물음이여!"라고 탄사를 붙였다. 그리고 대답하기를 "예는 아무리 번드르르해도 차라리 검소함만 같지 못하고, 상례를 아무리 성대하게 하더라도 차라리 슬퍼함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예의 모습 보다 속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자는 또 다른 곳에서 "예라 예라 하나 어찌 옥과 비단만이겠는가? 악이라 악이라 하나 어찌 종과 북만이겠는가?"(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라고 하였다. 음악은 북이나 장구를 두드리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듯이 예에 있어서도 성대하게 정장을 차리는 일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예의 진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옛 사람들은 이를 '의(義)'라고 불렀는데 곧 마땅함(宜)이라는 것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모자 쓰는 예와 인사하는 예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썼다. 사치하다. 요즘 사람들은 검은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쓴다. 검소하다. 나는 모자 쓰는 일은 요즘 예를 따르겠다. 옛날 사람들은 남의 집을 방문하면 단 아래에서 주인에게 읍하고 인사했다. 공손하다. 요즘 사람들은 단 위에 올라가서 주인과 같은 자리에서 인사한다. 교만하다. 나는 절하는 법은 옛 예를 따르겠다."

이것을 보면 공자는 옛날 예라고 해서 그것을 전통이라 여겨 무조건 답습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대중에 유행하는 예라고 해서 요즘의 예를 함부로 따르지도 않았다. 그는 먼저 '무엇이 마땅한가'를 살펴보고 행하였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일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마땅한가를 자각할 수 있는 주체가 먼저 서야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도덕적 가치의 자각 주체'라고도 하고, '문화정신의 줏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의 용어를 빌리면 바로 '인(仁)'이다.

지하철을 타 보면 가끔씩 동냥을 얻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도시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러나 차 안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반드시 측은한 마음을 일으켜 적은 돈이나마 보태주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일은 어떤 사람이 행하는 것일까? 이런 일은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꼭 재산이 많은 사람의 순서대로 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곧 마음속에 측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예(禮)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예란 반드시 거창한 거동이나 의식이나 절차에서 발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이 미미한 불씨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불씨는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해치지만 않으면 커지고 또 커져서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본래적으로 있는 것이어서 내가 하고자 하면 이에 곧 나에게서 일어나는 것이다.

'효경(孝經)'에 보면 고대의 각신분상의 효에 관한 설명이 있는데, 거기에는 천자(天子)가 행하는 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자신의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남에게 오만하지 못한다. 사랑(愛)과 공경(敬)을 부모에 다하면 이것이 곧 덕의 가르침(德敎)이 되어 백성들이 본받아 온 세상의 법이 되나니, 이것이 바로 천자의 효이다."

여기서 천자의 효(孝)는 의(儀)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덕교(德敎)로 나타난다.

큰 차 모임에 가보면 여러 가지 다법(茶法)을 시연하는 것을 종종 본다. 시연자가 다법을 시연하는 것은 다의(茶儀)이다. 이 다의가 보는 이의 마음속에 문화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때 다의는 곧 다례가 된다. 예(禮)는 의(儀)가 이차적으로 사회적·정치적, 혹은 교육적 기능을 드러낼 때에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반드시 다의(茶儀)를 행하는 자의 마음속에 인(仁)의 불씨가 살아있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차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자각 의식 말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차문화는 완전히 빈 껍데기 문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