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風水 2009년의 해석

醉月 2009. 3. 24. 00:01
風水 2009년의 해석
재벌 3명이 거쳐간 서울 가회동 집…, 정도전 집터에선 구설 끊이지 않고…, 특급호텔에 돌탑이 세워진 까닭은…
▲ 일러스트 이철원
윤달이 들어있는 2009년 기축(己丑)년, 관가(官街) 인사철이 겹치면서 풍수론(風水論)이 고개를 들고 있다. “누구누구가 선친의 묘를 이장한다고 좋은 자리를 찾고 있더라”거나 “누구누구는 조상 묏자리를 잘 썼다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솔솔 새나오고 있는 것이다. 풍수가 사람을 미혹시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 왕궁의 자리를 놓고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논쟁을 벌였다거나, 풍수의 대가인 신라의 도선국사가 ‘비기’를 남기며 나라의 앞날을 예견했다는 이야기는 익숙해진 지 오래다. 역대 대선주자의 선조들 무덤을 실사해 ‘권력과 풍수’란 책을 쓴 우석대 김두규 교수(풍수학)는 “직접 확인해 보니 김대중, 이회창, 김종필, 이인제, 한화갑, 고건 등 대권에 뜻을 뒀던 사람은 예외 없이 선친 또는 조상의 묘를 좋다는 터로 옮겼더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선거철이 되면 주자들의 마음이 약해지는지 뭐라도 하나 잡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는 것 같다”며 “무덤만 잘 쓰면 후손이 잘된다는 이론은 술사(術士)들이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미신 아니냐”며 멀리하면서도 이야기가 나오면 은근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 풍수. 사람까지 복제가 가능하다는 과학의 21세기에도 풍수는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풍수의 흔적을 추적했다.


명품 골프장 안 위령비의 비밀

공사 중 잇단 사고… “백두대간 맥 끊어 신령이 노했다”
“명당터이니 땅 위로해야” 풍수가 말에 비석 세우자 순조


춘천의 J골프장. 이곳의 15번홀 그늘집 옆엔 특이한 비석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위지령비(慰地靈碑). ‘땅의 신을 위로하는 돌기둥’이란 의미의 이 비석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삼가 아뢰옵건대 우리 인간들의 이기와 방종을 용서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이곳에 쉼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일들이 지령의 신기를 괴롭히는 짓인 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세상살이의 고단과 슬픔이 너무 과하여 이 터의 지령에게 심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중략)… 훼손된 부분은 치유해 드리고 불편한 심경을 다독여 드릴 것입니다. 지령이시여! 이곳의 품에 들인 저희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모쪼록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이 골프장은 서울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소수 회원만을 대상으로 운영한다는 점, 세계적 골퍼의 설계에 따른 독특한 코스 등으로 인해 골퍼들 사이에 ‘명품’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느닷없이 ‘위지령비’가 들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 ‘위지령비’가 세워진 춘천의 J골프장. 공사 중 사람이 다치자 산이 훼손돼 그렇다며 인부 들이 동요했다. ‘위지령비’는 이같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 (photo 조선일보 DB)
이 골프장은 ‘한북정맥(漢北正脈)’ 줄기에 자리잡고 있다. 한북정맥이란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추가령(楸哥嶺)~한강 강구(江口)에 이르는 산줄기를 가리키는 말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뻗쳐 이뤄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다. 삼악산, 칼봉산, 불기산, 봉화산 등 600~900m급 산으로 둘러싸인 골프장 인근은 ‘고려 왕건에 패한 궁예가 은신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산세가 험준하고 수려한 곳이다.

공사가 시작된 때는 1997년. 준공은 2004년 9월로, 공사기간은 7년에 달했다. 적잖은 공기가 말해주듯 공사 과정은 험난했다. 인근 지형이 5억~25억년 전 퇴적된 규암(硅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었다. 규암은 흔히 ‘차돌’이라 불리는 암석으로 옛 사람들은 “단단하기가 쇠와 같다”며 부싯돌로 사용해 왔다. 그러니 공사가 수월할 리 없었다. 이 골프장 코스 곳곳에 천연암석과 폭포, 절벽 등이 조성된 데엔 이 같은 자연환경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땅을) 파고 또 파도 계속해서 돌이 나왔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단단해서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해요. 게다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지맥을 끊는다’는 비판이 거셌어요.” 공사 과정을 안다는 한 주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사 중 다친 사람이 생겨서 인부들이 불안해 했던 것으로 안다”며 “당시 공사 때문에 산이 훼손돼 신령이 노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골프장 측은 이 같은 여론을 간과하지 않았다. 풍수지리가인 최창조(59) 전 서울대 교수를 찾아가 자문을 구한 것. 골프장 측은 이렇게 말했다. “2001년 최 선생을 모셔와 현장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 일대가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 명당이라는 겁니다. ‘자라(또는 거북이)가 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훌륭한 터란 얘기죠.”

풍수지리가들은 자라(거북이)가 쇠(金)의 기운을 갖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라(金)가 물(水)에 들어가는 형상’은 금생수(金生水), 즉 쇠(金)와 물(水)이 서로 돕는 ‘상생’의 형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골프장 측은 “그런데 최 전 교수가 ‘그런 좋은 터에 그냥 토목공사를 하면 자연 속에 있는 나무, 풀, 벌레 등이 노할 수 있으니 사정을 밝히고 자연을 위로하는 글을 하나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그곳에 ‘위지령비’를 세우게 됐다”고 답했다.

비석 때문인지 몰라도 이후엔 사고가 나지 않았고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골프장 측은 “개장 이후 지속적으로 영업이 잘되고 있다”며 “최근의 경제한파로 다른 골프장들은 회원권 가격이 줄줄이 반토막 났지만 (이 골프장은) 오히려 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월 1일 국세청이 고시한 골프회원권 기준시가에 따르면 이 골프장 회원권 가격은 5억8900만원에서 7억6000만원으로 최근 6개월 사이 29%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구입수형 명당’이란 곳에 위지령비를 세운 것이 과연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박흥식·정주영·정태수의 가회동 집

화신 창업주 박흥식, 명당 수소문 끝 매입… 몰락 후 경매
정주영 회장, 55억에 구입… 정태수는 전세로 입주


박흥식, 정주영, 정태수.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재계 대표선수’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겐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서울 가회동 177-○번지’란 지번이다.

▲ 박흥식·정주영·정태수씨 등 재계 거인들이 거쳐간 가회동 177-○번지.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정태수씨의 사무실이 있었던 은마아파트 한보상가. 정씨는 이 자리가 재복을 갖다줬다고 믿었다 한다. (photo 조선일보 DB)

현대그룹 계동 사옥 뒤편, 1525㎡(461평)의 땅에 연건축면적 451㎡(137평) 규모의 2층 저택이 한 채 있다. 화신백화점 창업주이자 재계의 거물이었던 박흥식씨가 살았던 곳이다. 박씨는 서울에서 명당이라 소문난 곳을 두루 물색하다가 이곳을 찾아 거금을 주고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신산업’의 부도로 1973년 박씨가 몰락하고 15년 뒤인 1988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이 집은 그 해 5월 경매를 통해 무역업을 하는 박모씨에게 넘어갔다. 무역업자 박씨는 2000년 2월 16일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에게 이 집을 넘겼다. 당시 ‘좋은 집터’를 구하고 있던 정 명예회장은 그때 돈으로 55억원을 지불하고 이 집을 샀다고 한다. 당시 정 명예회장에게 이 집을 권한 사람은 풍수지리가 유모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이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아들인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마찰을 빚으면서 일주일 만에 ‘가회동 177-○번지’를 포기, 원래 살던 청운동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01년 3월 21일 타계했다. 이 집의 명의는 부인 변중석 여사에게로 넘어갔다가 2001년 9월 부동산업을 하는 정모씨에게 다시 넘어가 현재까지 그의 소유로 돼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한보그룹 회장을 지낸 정태수(86)씨가 2003년부터 약 2년가량 이 집에 전세를 살았다는 점이다. 당시 전세금은 10억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태수씨는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풍수지리나 사주팔자 등 초자연적 요소를 참고해 온 인물로 알려져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그는 당시 사업적 재기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박흥식~정주영으로 이어지는 재계 거목들의 거처를 ‘전세로라도’ 고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정씨는 자신의 사업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이른바 ‘한보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1980~1990년대 초까지도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의 허름한 사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곳이 자신에게 재물운을 갖다 줬다고 믿었기 때문”이란 것이 주변의 시각이었다. 정씨는 강남 개발 붐이 일었던 1978년 자신이 지은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히트를 치면서 사업 기반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재기를 위해 이 집에 전세를 들어갔다”는 주변의 관측대로 정태수씨는 이 집에 입주한 지 1년 만인 2004년 5월 채권단에 한보철강 입찰 자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재기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씨는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뒤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화신’의 부도, ‘현대’의 난, ‘한보’의 몰락을 차례로 지켜본 서울 가회동 177-○번지. 이 땅은 우리 재계의 거인들에게 재복(財福)을 갖다 준 길지(吉地)였을까 아닐까.


정도전의 집터

“천자만손할 길지” 궁궐 가까운 종로구청 앞에 터 잡아
국세청도 이 자리… 풍수 고려해 청장실 옮겼다가 구설


지금의 서울 종로구청 앞 수송동~청진동~미국대사관 일대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1337~1398)의 개인 집터다. 그의 아버지 정운경(鄭云敬)은 고려 말 형부상서를 지낸 권문세족이었지만 어머니 영천 우씨의 외할머니는 종이었다. 신분제의 모순을 갖고 태어난 그는 ‘세상은 뒤집어져야 한다’는 혁명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가 즐겨 읽었던 책은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벌을 줄 수 있다”는 대목이 있는 ‘맹자’였다. 관료가 된 정도전은 1383년 함경도에 주둔하고 있던 동북도 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가 ‘혁명’을 권한다.

▲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집터에자리한 국세청. 하지만 이곳에선 최근 20년간 10명의 청장 중 6명이 구속되거나 심각한 구설에 오르는 불미스런 일이 이어졌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정도전은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의 자리는 물론 조선의 종묘 사직과 경복궁 등 궁궐의 위치도 그가 정했으며 전각의 이름도 상당수 직접 지었다. 그는 궁궐 가까운 종로에 자신의 집터를 정하면서 “천자만손(千子萬孫)할 길지”라며 누대(累代)에 걸친 영화를 장담했다. 그러나 조선 건국 후 노비 해방을 역설하며 각종 개혁정치를 주도하던 그는 1398년 음력 8월 26일 밤 이방원의 습격을 받아 참수되면서 한(恨) 많은 생을 마쳤다.

정도전 집터의 중앙 어귀, 지금의 수송동 104번지에 자리한 관공서가 국세청이다. 이곳은 최근 20년간 10명의 국세청장 중 무려 6명이 구속되거나 구설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었다.

‘터’가 영향을 미쳤을까. 국세청과 관련된 풍수지리설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원래 국세청장 집무실은 본청 14층에 있었다. 그런데 2008년 5월, 한상률 당시 청장이 12층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 구설이 불거졌다.

공사 이유는 “집무실 화장실에 물이 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건물은 2003년 1월 준공됐다. 따라서 △당시 기준으로 지은 지 5년밖에 안 된 새 건물이란 점 △7억1000만원이 들었다는 국세청 해명과 달리 실제 공사비는 12억원으로 책정됐다는 지적 △여기에 3억원가량의 추가 공사비가 더 편성돼 ‘호화 집무실을 꾸민 것 아니냐’는 의혹 △화장실만 고치면 되지 굳이 집무실을 옮길 필요가 있느냐는 추궁 등이 겹쳐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국세청은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의문의 시선이 모인 곳은 풍수지리였다. 서울 청담동에서 J역학원을 운영하는 풍수지리가 김모씨가 배경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거액을 받고 재·관계 인사들의 자문에 응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국세청 안팎에선 “김씨가 국세청을 꼼꼼히 살펴본 뒤 ‘집무실 이전’을 권했고 한상률 당시 청장이 이를 받아들여 공사를 벌였다”는 말이 나왔다.

공사 이후 국세청 12층 청장 집무실의 내부 벽면 한쪽은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 유리로 교체됐다. 당시 국세청은 “투명행정을 펼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후 이 벽엔 대형 블라인드가 설치됐다. 게다가 투명유리는 이 벽면에만 설치된 것이 아니었다. 청와대가 있는 쪽을 향해 북향(北向)으로 대형 통유리창을 내고 그 앞에 집무용 책상을 놓아 의자를 뒤로 돌리면 국세청장이 정면으로 청와대를 바라볼 수 있게 내부 구조를 바꾼 것이다.

원래의 14층 집무실은 청와대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창밖을 바라보면 국세청장이 위에서 아래로 대통령을 내려다보게 돼 있었다. 풍수 논리에 따르면 이는 ‘신하가 임금을 하대(下待)하는 격’이 돼 순리에 어긋나는 역(逆)의 형상이 된다. “역대 청장이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된 것은 풍수가 역으로 흘렀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 것은 그래서였다.

국세청 안팎에선 “청와대와 눈높이가 맞는 12층으로 집무실을 이전한 뒤 수시로 청와대를 바라보며 그 기운을 받으면 국세청장으로서 장수(長壽)하리라는 풍수가의 조언이 있었다”는 말이 은밀히 퍼졌다. 소문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내사에 착수했고 일부 언론은 취재에 나섰다. 당시 국세청은 사진촬영을 막기 위해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사 8개월 만인 2009년 1월 한상률 청장은 ‘인사 청탁’ ‘그림 로비’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퇴진해야 했다. 정도전의 한(恨)이 5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악영향을 끼친 것일까.


신라호텔의 돌탑

“남산 훼손, 산신이 노해 호텔 적자” 소문… 탑 쌓아 액땜
리움미술관은 입구 바닥에 기원문 적은 동판 깔아


한국의 대표적 고급 호텔인 서울 신라호텔엔 ‘비보탑(裨補塔)’이라 불리는 돌탑이 하나 있다. 무심히 지나치면 발견하기 어렵겠지만 눈밝은 이용객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찰의 일주문(一柱門)을 연상시키는 호텔 정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구석에 어른 키만한 돌탑이 서 있다. 산길이나 옛 서낭당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돌무덤의 형태다. ‘나그네의 안녕’을 기원했던 전통적 돌무덤이 왜 5성급 고급 호텔 입구에 서있는 것일까.

발단은 남산 2호 터널이었다. 신라호텔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이 터널은 1971년 개통된 이후 1977년 재개통, 2001년 재재개통, 2005년 확대개통 등을 거치면서 덩치가 커졌다. 그런데 엉뚱한 소문이 생겼다. “터널이 확대될 때마다 호텔엔 적자가 생겼는데 그 이유가 남산 2호 터널에서 사기(邪氣)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소문은 엉뚱했지만 꼬리가 달려 있었다. “서울을 보호하는 산인 남산을 훼손해 산신(山神)이 노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얘기가 은밀하게 하지만 빠르게 확산됐다.

▲ 신라호텔 정문 어귀에 세워진 비보탑. 돌무덤 형태인 이 탑은 산신이 노했다는 흉흉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세워졌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호텔 경영진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경영진에 묘수를 던진 것은 삼성그룹 고위층이라고 한다. 이 고위층은 “호텔에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비보탑’을 쌓아 민심을 진정시키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돌탑이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동요하던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젠 돌탑의 존재마저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 리움미술관이다. 이 미술관 정문 입구 바닥엔 동판이 하나 깔려있다. 이 동판 역시 무심결에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눈여겨보면 다음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우리는 대지모신(大地母神)의 혜려(惠慮)에 힘입어 문화창달(文化暢達)을 위해 미술관을 세웠습니다.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이 일에 참여하였고 앞으로 참여할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내려주시옵소서.’

현대적 양식의 리움미술관에 ‘대지모신’을 향한 기원문이 왜 있는 것일까. 남산 자락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2004년 10월 문을 열었다. 약 4년6개월 전의 일이다. 하지만 공사에 걸린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인 12년이 소요됐다. 전시 면적만 4297㎡(1300평)으로 사설 미술관으로는 국내 최대규모다. 공사는 쉽지 않았다. 공기(工期)가 오래 걸리면서 “남산을 너무 심하게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인부들 사이에서 “신령(神靈)을 노하게 해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나왔다.

▲ 공사기간 12년, 전시면적만 429.7㎡(130평)인 ‘리움미술관’. 입구엔 대지모신을 향한 기원이 담긴 동판이 놓여있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삼성그룹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 동판을 설치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고 말했다.  “공사를 담당했던 인부들과 일반인들의 걱정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여론 무마용”이란 것이다. “아무튼 동판을 설치한 뒤로 우려의 목소리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동판에 적힌 기원문으로 인해 산신(山神)의 노여움이 풀린 것일까.

 

풍수 전문가의 말


“풍수는 모든 게 자연 그대로일 때 만든 옛 이론일 뿐

제 맘에 드는 장소 골라 만족하며 살면 그곳이 명당”

 

우리는 인공위성을 쏘고 우주 여행을 얘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주변엔 아직도 풍수지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홍콩에선 풍수가의 말 한마디에 집값이 요동치고 주가가 몸부림치기도 한다. 풍수는 과연 설득력이 있는 이론일까.

첫째 사례로 든 춘천의 J골프장은 정말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이란 명당일까. 이 골프장에 대해 풍수지리가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항공 사진을 보면 부근의 지형이 ‘거북이가 물을 먹으러 가는’ 형태를 띠고 있다”며 “풍수 이론에 따르면 이런 땅에 집을 지으면 재물이 늘고 자손이 번창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 전 교수는 “하지만 그것은 자연이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만들어진 옛 이론”이라고 덧붙였다. “오늘날처럼 개발과 보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1000년 전의 이론을 무작정 신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 전 교수는 “(J골프장 건설) 당시 불안해 했던 인부들이 있었고 그들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위지령비’를 세운 것일 뿐”이라며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골라 집이나 사무실을 짓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예로 든 ‘서울 가회동 177-○번지’는 명당일까 흉당일까. 풍수가 김성수(75)씨는 이 터에 대해 “기운이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곳”이라며 “아파트와 달리 개인 주택엔 일반적으로 대문을 하나만 내는 것이 좋은데 대문을 두 개로 냈기 때문에 기운이 더 흩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풍수학)는 정도전의 집터에 대해 “지기(地氣)가 뭉치는 곳이 아니라 흘러가는 곳”이라고 평했다. 풍수 이론상 “기운이 흘러가는 곳은 빨리 흥하고 빨리 망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수씨는 국세청 본청에 대해 “옆에 부속건물(국세박물관)이 달려 있어  ‘나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형국”이라며 “자하문 터널을 지나온 바람을 여과없이 맞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수년 주기로 구설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풍수지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인데 일부 풍수가들이 신비주의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것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자 명당은 따로 있는가 풍수지리로 본 재벌들 집터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 총수들. 재물에 관한 한 ‘천운’이 따른다는 그들 일가가 살고 있는 자리는 과연 ‘명당’일까? 주간조선은 풍수 특집을 기획하면서 풍수가를 동반, 2차례에 걸쳐 재계 총수들 자택 10곳을 살폈다. 도움을 준 풍수가는 ‘영목풍수지리연구소’의 김성수(75) 소장과 ‘신안계물형학연구소’의 박민찬(52) 원장. 대상으로 삼은 재계 인사들은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 이 전 회장의 누나 이숙희씨(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 이 전 회장의 여동생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10명이다. 취재진은 풍수가들이 혹시라도 선입견을 가질까 우려해 대상으로 삼은 집이 누구 소유인지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 이태원·한남동

이건희·이숙희·이명희·정용진·김준기·구본무·정몽구…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 모여 사는 ‘배산임수형’ 지세


풍수가들은 서울에 대해 “청계천과 한강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며 명당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청계천은 서·동쪽으로 흐르며 ‘내수(內水)’ 역할을 하고, 한강은 동·서쪽으로 엇갈리게 흐르며 ‘외수(外水)’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이는 천혜의 터전”이란 것이다.

그런 서울에서도 이태원·한남동 일대는 “특히 좋은 자리”로 꼽힌다. “북쪽으로는 남산~서빙고동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마을을 품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한강이 도도히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이란 것이다. 한강의 ‘한’자와 남산의 ‘남’자를 따서 이 일대를 ‘한남동’이라 불렀다는 속설도 있다. “남산에서 뻗어 나온 용맥의 기운이 응집됐다”는 이 동네엔 누가 살고 있을까.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자택
“재물 들어오는 자리에 아늑하게 들어서”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은 2004년 8월 현재의 집으로 이사했다. 이 집은 2132㎡(645평) 면적에 지하 3층, 지상 2층 구조에 연건축면적 3414㎡(1033평) 규모의 저택으로, 부동산 업계에선 15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왼쪽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자택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오른쪽 삼성 창업자 이병철 선대회장의 신당동 자택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이곳은 얼핏 보기에도 ‘아늑하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담장에 빼곡히 늘어선 폐쇄회로 카메라는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느끼게 했다. 풍수가 김성수씨는 이 집에 대해 “햇살이 비치는 남쪽을 바라보며 포근하게 들어섰다”고 평했다. 그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신당동 자택을 함께 언급하면서 “그곳에서 강하게 흐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며 “삼성이란 대기업을 세운 창업자의 자택다웠다”고 말했다.

풍수에서 물(水)은 재물을 뜻한다고 한다. 풍수가들은 그런 점에서 “이 전 회장 자택이 있는 이태원·한남동 일대는 한강이 둥글게 감싸고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물이 흘러 들어오는 형세를 갖췄다”고 말한다. 박민찬씨는 “남산 자락이 좌우에서 감싸고 있고, 그 복판에 오목하게 집이 자리잡고 있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를 취했다”며 “이 일대가 양택지(집터)로선 최고의 자리”라고 말했다.

▲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부인 이숙희씨의 자택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이건희 전 회장 누나 이숙희씨 자택
“좌우로 남산이 감싸 안은 온화한 길지”


이건희 전 회장의 누나 이숙희씨(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는 이 전 회장 자택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외벽엔 사설 경호업체의 보안 마크만 붙어있을 뿐 집 안팎이 모두 조용했다. 패철(佩鐵·풍수가가 사용하는 나침반)을 꺼내들고 집을 살피던 김성수씨는 “평온하게 안정적인 형세를 취했다”며 “이런 집에 사람이 살면 대체로 온화한 성품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박민찬씨는 “좌우를 남산이 감싸고 있는 데다 뒷집이 기운을 받쳐주는 ‘현무’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무척 좋은 터”라고 평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자택
“살(煞) 찾아볼 수 없는 손꼽히는 명당”


이건희 전 회장의 여동생인 이명희 회장 자택은 이건희 전 회장 옛 집 뒤편에 위치해 있다. 그의 앞집은 외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살고 있다. 박민찬씨는 이 집에 대해 “좌향(坐向·집이 향한 자리)이 좋다”며 “서향으로 대문을 내서 기운이 빠져나갈 법하지만, 앞집(정 부회장의 집)이 그것을 막아주니 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대에 대해 “아무리 찾아봐도 살(煞)이 없다”며 “양택으로는 서울에서 손꼽을 만한 자리”라고 말했다.

김성수씨는 이명희 회장 자택에 대해 “평평한 대지에 안정적으로 자리했다”며 “서쪽의 언덕이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기 때문에 더 좋다”고 평했다.

▲ 왼쪽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자택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오른쪽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자택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김준기 동부 회장 자택
“산맥이 내려오면서 뭉친 혈(穴)자리”


김 회장 자택은 조용했다. 집 안에서 청소를 하는지 졸졸거리는 수돗물 소리만 들려왔다. ‘으리으리할 것’이란 예상은 기우였다. 파르라니 깎은 정원 잔디와 깔끔한 집 외부는 단정하지만 소박한 인상을 풍겼다. “부자는 검소하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박민찬씨는 “집의 좌향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맥이 내려오면서 뭉친 곳, 즉 사람으로 치면 관절 같은 곳이 사람들이 말하는 혈(穴·풍수지리에서 정기가 모였다고 보는 자리)”이라며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 기운이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양택(주택)은 재물과 관련이 있고, 음택(무덤)은 권세·명예와 관련이 있다”며 “좋은 자리에 집을 지으면 효과가 빠르지만 상대적으로 약하고, 좋은 자리에 묘를 쓰면 효과가 늦지만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풍수 이론”이라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 자택
“남산 기운이 뻗쳐 강한 추진력 발휘”


구본무 회장 자택은 남산자락 위쪽, 하얏트호텔과 엇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대지 1322㎡(400평), 건축면적 661㎡(200평) 규모의 구 회장 자택은 밖에서 건축물 윤곽을 짐작하기 어려운 특이한 구조로 돼 있다. 구 회장 자택을 아는 한 인사는 “2층 구조로 돼 있으며, 내부엔 영빈관과 주차시설 등을 갖췄다”고 말했다.

박민찬씨는 “이 집에는 특이하게 좌청룡도 우백호도 없다”며 “하지만 남산 위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이 힘차게 뒤를 밀어주고 있어, 집 주인이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집은 한강물의 기운을 받고 있는 데다 산맥의 끝자락에 있어 재물운도 매우 강하다”고 평했다.

▲ 왼쪽 구본무 LG 회장 자택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오른쪽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자손들 모두 잘되고 재운도 강한 곳”


대지 1123㎡(340평)의 정 회장 자택은 범상치 않았다. 언뜻 보기엔 외부로 활짝 개방된 것 같았지만, 나무와 담이 절묘하게 내부를 가리고 있어 안을 살피기 힘들었다. 대문엔 집 주인이 누구인지, 문패는 물론 번지수도 쓰여있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인 만큼 주민들도 어느 집이 누구의 집인지를 함부로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 그 집이 정 회장 자택임을 어렵게 확인했다. 집은 조용했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적막감을 더욱 짙게 했다. 정 회장의 집 내부는 두 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관계자는 “한 채는 주택으로, 또 한 채는 생활시설 공간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박민찬씨는 이 집에 대해 “남산의 산맥이 이중으로 집을 감싸고 있다”며 “이런 집에서는 아들뿐 아니라 딸들까지 모두 다 잘된다”고 말했다. 그는 “금전을 뜻하는 물이 부드럽게 집 왼쪽을 감싸고 돈다”며 “재운 역시 무척 강한 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