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제조 대가 심재혁 레드캡투어 사장
- 국내 중견 여행사인 레드캡투어 심재혁(62) 사장은 그를 아는 주당(酒黨)들 사이에서 ‘폭탄주의 대가(大家)’로 통한다. 그가 한자리에서 만들 수 있는 폭탄주 종류는 20여가지에 이르며, 그가 술자리에서 제조하는 갖가지 모양의 폭탄주들은 서로 마시려고 경합이 벌어질 정도다.
지난 3월 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1층 블러쉬(Blush)바에서 그가 시연한 ‘분수주’ 물줄기는 3~4m 높이까지 치솟아 천장에까지 닿았다. 분수주 폭탄주는 일반 폭탄주(맥주에 위스키)를 만들어 랩으로 여러 번 맥주잔을 봉한 뒤 이쑤시개로 구멍 1개를 내면 일단 준비가 끝난다. 그 다음은 손 기술이다. 손 스냅을 이용, 맥주잔을 돌린 뒤(일명 회오리주) 식탁에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치면, 미리 내놓은 랩의 작은 구멍을 통해 술이 분수처럼 치솟는 모습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일명 ‘미사일주’라고도 하며 사정주(射精酒)라고도 한다. 이밖에 태권도주, 다이아몬드주, 월드컵주, 금테주, 비아그라주, 수류탄주, 타이타닉주, T자주, 무지개주 등 그가 만드는 폭탄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다채롭다. 그가 폭탄주를 만드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기도 하지만, 갖가지 폭탄주의 종류를 특유의 달변으로 설명함으로써 술 자리 분위기를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는 기자를 만나기에 앞서 “나이 60이 넘어서까지 폭탄주를 잘 만드느니 하는 인터뷰 기사는 사양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폭탄주를 몇 년째 마셔온 기자와의 ‘안면’은 당해내지 못했다.
- 술 약한 사람에겐 ‘티코주’… 주량 고려해 제조, 사무실 책장 절반이 ‘술 책’, 은퇴 후 출간 계획
또 하나 언급할 점은 그가 오랫동안 ‘폭탄주의 대가’ 자리를 내놓지 않는 이유가 상대방의 술 실력을 고려해 폭탄주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술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아예 폭탄주를 권하지도 않고, 맥주 정도 마시는 사람에게는 ‘티코주’를 권한다. 대우자동차의 경승용차 티코의 이름을 딴 티코주란 위스키 스트레이트 잔에 맥주를 가득 채운 뒤 위스키를 두세 방울만 떨어뜨린 것으로,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쓰러질 정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나 여성을 위해 만드는 미니어처 폭탄주다. 심 사장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폭탄주를 권하는 것과, 비싼 위스키는 절대 ‘뇌관’으로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숙성 12년 이상의 프리미엄급 이상의 고급 위스키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습니다. 몇 백 년을 내려오며 위스키를 만들어온 명문 위스키 양조장들이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지켜가며 오랜 기간 오크통 속에서 숙성시킨 고급 위스키를 맥주와 혼합해 마신다는 것은 위스키 장인(匠人)들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27일 찾아간 레드캡투어 사장실 책장에는 절반 가까이 술 관련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대부분은 국내외에서 직접 산 책들이고, 그가 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걸 알고 있는 지인들이 선물로 보내온 책들도 적지 않다. 이 중에는 2005년 프랑스 보르도 비넥스포(국제와인박람회)에 갔을 때 직접 산 와인 관련 만화집 ‘LEVIN’을 비롯해 ‘Wines of the world’, ‘문화로 풀어본 와인이야기 WINE & CULTURE’, ‘세계의 명주 사전(2008~2009년)’, ‘건배-칼럼니스트 심연섭의 글로벌 문화탐험기’ 등도 눈에 띄었다.
그는 기자에게 신간이라며 ‘와인의 철학’(티에리 타옹 지음)을 보여줬다. “아영(와인업체)의 우종익 사장이 어제 인편으로 보내줬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며 “외국 출장을 가더라도 꼭 서점에 들러 술 관련 새 책들을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심 사장이 술 관련 책자를 모으는 이유는 본인의 술 강의에 자료로 쓰기 위해서다. 현역 은퇴 후에는 강연 자료들을 모아 책으로 펴낼 욕심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외형적 경력만으로는 그를 ‘술 전문가’로 대우하기 어렵다. 연세대 상대를 졸업해 곧바로 1972년 GS칼텍스 입사, 1994년 LG회장실 전무(그룹 홍보팀장), 1998년 LG텔레콤 부사장, 1999년 인터컨티넨탈호텔 사장, 2007년부터 레드캡투어 사장을 맡고 있는 이력만 보면 그가 10년 남짓 대학을 돌며 ‘술 문화 강연’을 해왔다는 데 의아심이 들 수밖에 없다. 30년 이상 LG그룹에 몸담았을 뿐 술 회사 근무 경력이나 술 관련 공식 업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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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인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심재혁 사장은 2007년 비넥스포에서 와인 기사작위를 받았다.
- LG그룹서 30년 대외업무 덕에 ‘술 전문가’로, 술 특강 10년 경력… 교재는 온갖 종류의 술
그러나 그는 직장생활 대부분을 술을 가까이 하며 지냈다. LG그룹 근무 중 대부분의 기간을 홍보 등 대외업무를 맡은 인연으로 거의 매일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업무의 연장이었다. 덕분에 술, 특히 와인이나 폭탄주에 관한 한은 어느 CEO보다 ‘한 수 위’를 점하고 있다.
“1999년에 인터컨티넨탈호텔 사장이 되면서 호텔경영이나 호텔관광학과를 둔 대학에서 ‘CEO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왔어요. 호텔 일반에 대한 강의보다는 대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술 문화’를 소개하는 게 더 나을 듯해서 ‘세계의 술 문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술 강의’가 입소문을 타면서 최고경영자과정 같은 특수대학원, 지방대학, 기업체, 무역협회 등의 정부기관에서도 강의 요청이 몰려와 10년 동안 수백 번의 특강을 했다. 컴퓨터에 내장돼 있는 그의 강의교재를 잠시 읽어보았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중 와인만큼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은 없다’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되는 그의 술 강의에는 술의 역사, 양조기술, 술의 종류, 발효주의 세계, 와인 레이블 읽는 법, 와인 잔의 종류 등을 다룬다. 와인 이외에도 맥주 및 위스키, 브랜디, 진, 보드카, 데킬라, 중국 술, 일본 술 등 온갖 종류의 술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있다. 호텔 사장을 그만둔 지금도 술 강연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술 강연 교재는 ‘한 짐’이다. 강연 때마다 와인은 물론 위스키, 데킬라, 진, 보드카 등 30여종의 술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직원의 도움 없이는 교재를 강의장으로 다 옮길 수도 없을 정도다. 강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술 맛을 다 보여주진 못해도 술 모양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술뿐만 아니다. 와인잔도 부르고뉴잔, 보르도잔 등 20 여종, 심지어 디캔터(decanter·와인의 향과 맛이 잘 우러나도록 미리 와인을 따라놓는 술병의 일종)까지 갖고 다닌다. 그의 수첩에는 3월 강연 일정도 3개나 잡혀 있었다. 연세대 외식 최고위 과정 특강, 경희대 관광경영학과 특강, LG계열사 OB임원모임까지.
논문으로 ‘주당(酒黨)’ 공인… 인터뷰 요청 쏟아져, 폭탄주 강의, 유튜브 동영상 타고 세계적 유명세
심재혁 사장이 술 업계에서 알아 주는 ‘주당(酒黨)’으로 인정 받게 된 계기는 폭탄주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01년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의 최고 엔터테인먼트 과정을 수료하면서 ‘폭탄주에 대한 소고(小考)’란 제목의 논문을 썼다.
이 논문에는 폭탄주의 유래, 폭탄주의 알코올 함량(실제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는 10도 내외), 폭탄주의 배경, 폭탄주를 마시는 이유, 폭탄주의 제조법까지 망라돼 있다. 그는 “이 논문이 공개되자 난리가 났다”며 “신문, 잡지, 방송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사양하느라 혼이 났다”고 말했다. “2001년만 해도 아직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때였어요. 호텔 사장이라는 작자가 서민들은 구경도 잘 못하는 비싼 술로 각종 폭탄주를 만드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의 ‘폭탄주 강의’는 2006년 4월 24시간 뉴스채널 YTN의 돌발영상을 통해 중국, 미국에까지 유튜브 동영상으로 번졌다. 심 사장은 당시 국내 CEO, 주한 외국기업인, 외교사절들이 함께 한 모임에서 국회 폭소클럽(폭탄주를 소탕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임) 박진 회장과 함께 폭탄주를 놓고 찬·반 토론을 벌였다. 박 의원은 물론 폭탄주 반대론을, 심 사장은 예찬론자 입장에서 각자 의견을 펼쳤다. 마침 현장에 나와 있던 YTN 중계팀이 이 간담회를 돌발영상으로 올렸고, 이를 중국과 미국 네티즌들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리는 바람에 그는 폭탄주에 관한 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영광(?)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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