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봉건과 함께하는 차문화 산책

醉月 2009. 3. 31. 11:19

차 달이기
홀로 차를 달인다는 것은 진정한 차맛을 알아가는 일, 포은 정몽주도 그 즐거움을 시로 남겨
단지 끓여내는 일이 아닌 사물 이치에 다가서는 것


 

 
  차 한 잔 들고 음미하고 싶은 고즈넉한 빈 자리가 마음을 끈다. 제공=사진가 이경순


차 달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릇을 씻고, 물을 준비하고, 불을 피우고, 그리고 단정히 앉아 천천히 차를 달인다. 차를 달이는 일은 매우 간단한 일이고, 필경에는 소소한 물일에 불과한데도 이 일이 그렇게 즐거운 까닭은 무엇일까? 차를 마시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니까 그런 보건 기능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서일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고려 말의 포은(圃隱) 정몽주는 '돌솥에 차 달이며'(石鼎煎茶)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를 보면 그도 얼마나 차 달이는 일을 즐겼던 가를 알 수 있다.

'나라에 보답할 공도 없는 늙은 서생/ 차 마시는 버릇만 들어 세상 물정 모르고/ 구석진 방에 홀로 누워 눈보라 치는 밤/ 즐겨 듣노니 돌솥의 솔바람 소리(報國無效老書生 喫茶成癖無世情 幽齋獨臥風雪夜 愛聽石鼎松風聲)'.

포은이 왜 나라에 공이 없는가. 그는 고려 왕조의 마지막 한 시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왕조와 자신의 명운을 함께 했던 이가 아닌가. 그러한 대재상 정몽주도 집에 들어서는 혼자 차 달이는 일을 즐겼던 모양이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구석진 방에서 눈 오는 밤 홀로 돌솥에 물을 끓여 차를 달이는 모습, 이것이 바로 정몽주라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면모가 아닐까. 차가(茶家)에 "차는 홀로 마시면 신령스럽고, 손님이 둘이면 뛰어나고, 서너 사람이면 아취가 있고, 대여섯 사람이면 범범하고, 일고여덟 사람이면 그저 베푸는 일쯤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 비추어 본다면 정몽주는 차를 제대로 마실 줄 아는 양반이다.

차를 달이면 사물의 진면목에 다가가게 된다. 차를 달여 보면 물이 그냥 물이 아니고, 불이 그냥 불이 아니다. 사물에는 깊은 내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의 맛을 어떻게 하면 잘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많이 달이다 보면 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차의 맛이란 것이 달거나 쓰거나 하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한 맛일 뿐이다. 이러한 담미(淡味)에서 제대로 된 맛을 알아 볼 수 있으려면 역시 드러나지 않은 맛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온갖 맛이 다 갈무리 되어 있는 담담한 맛 이것이 바로 진짜 맛이다.

중국 남송대(南宋代) 나대경(羅大經)의 '약탕시'에는 "주위 사람 모두 잠들기를 기다려, 한 사발 끓인 춘설차는 제호(醍醐)보다 낫다(待得聲聞俱寂後 一 春雪勝醍醐)'는 표현이 있다. 고작 맑고 담담한 춘설차(春雪茶) 한 잔을 우유로 가공한 요구르트나 치즈 보다 맛이 진하다고 한 나대경의 감식안 또한 범상하지 않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전쟁이 잦았다. 무사들은 전투가 있는 날 아침 어전에서 작전회의를 마치고 말차 한 잔씩을 했다. 전투에 임하면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한 잔의 차에는 아마도 생명을 확인하는 의미가 들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당대(唐代)의 노동(盧仝)은 차를 한 잔 두 잔 하다 일곱 째 잔쯤에 이르면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솔솔 일어난다고 한다. 저절로 날개가 돋아 상천계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대(淸代) 양주(楊州) 팔괴(八怪)의 한 사람 정섭(鄭燮)은 "강물 길어 햇차를 달이고, 청산을 병풍으로 삼았네"(汲來江水烹新茗, 買盡靑山當畵屛)라 하고, 조선말의 차승(茶僧) 초의(草衣)는 "오직 흰 구름과 밝은 달만을 두 손님으로 허락한다(惟許白雲明月爲二客)"고 했다. 유자(儒者) 추사(秋史)도 "명선(茗禪)"이라는 말을 썼다. 모두 차 달이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제대로 본 양반들이다.

아무리 도시의 아파트 숲속에 마련한 작은 찻자리일지라도 차를 달이는 그때만은 "청산녹수가 나의 집"(靑山綠水是我家)이 된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치는 차를 달여 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다도(茶道)는 심도(心道)이다. 차 달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차와 물
돌이 많은 산에서 솟는 샘물이라면 더없이 좋아, 산 물이 으뜸 강물이 가운데 우물물은 下다

 
  경남 고성 옥천사(玉泉寺)의 오래된 샘.
"차는 물의 마음이요, 물은 차의 몸이다. 참다운 물이 아니면 그 정신을 드러낼 수 없고, 정채한 차가 아니면 그 몸을 꿰뚫어 채울 수 없다." 명대(明代) 장원(張源)의 '다록(茶錄)'에 있는 유명한 말이다. 차를 달이는 데 있어서 물의 중요성을 적확하게 파악한 명구이다.

차를 달이는 데 좋은 물은 어떤 물일까? 다성 육우는 "산의 물이 으뜸이요, 강물이 가운데, 우물물은 하(下)"라 하고, 또 그 "산의 물이 돌 사이로 느리게 흐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요즈음에야 대부분 수돗물을 정수기에 거른 깨끗한 물을 좋다고 쓰고 있지만 깨끗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그렇듯이 물도 그 태생이 중요하고 걸어온 과정이 중요하다. 산에서 솟아나 돌 사이로 오래 흐른 물은 그 몸이 정갈하고 기운이 성(盛)하다.

중국 서진(西晉) 시기의 저작인 '박물지(博物志)'에 보면 "돌은 금의 근본이요, 돌에서 흐르는 정기는 물을 낳는다"하고, 또 "산의 샘은 땅의 기운을 끌어당긴다"는 말이 있다. 돌이 많은 산에서 솟는 샘은 대개는 좋고 이런 물로 차를 달여 보면 역시 다르다. 국토가 오염되어 자연수를 긷기가 께름칙하지만, 그렇다고 차인들까지 진수(眞水)를 외면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혹시 한 차회에서 한 샘 돌보기 운동을 펴보는 건 어떨까? 그리되면 그 샘의 수원을 돌보게 될 것이고, 국토 살리기에도 일조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져 본다.

찻물이 가져야 할 내적인 덕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물은 음의 기운이 쌓여서 된 것이므로 맑고(淸) 차가워야(寒) 한다. 좀 더 바란다면 달고(甘) 향기로워야(香) 한다. 명대(明代) 전예형(田藝衡)의 '자천소품(煮泉小品)'에서는 "샘이란 맑아지기는 어렵지 않지만 차가워지기는 어렵다"고 했다. 맑음을 능사로 삼는 요즘의 과학적 안목이란 것이 역시 하수라는 생각이다. 차가움은 물의 정체성이다. 긍지이고 절개이다. 퇴계 선생은 차인은 아니었지만 도산서원 앞의 우물을 '주역'의 정괘(井卦)에서 따 와 열정(冽井)으로 불렀다. 얼음처럼 차가운 샘이란 뜻이다. 선생은 아마도 그 찬물을 마시며 도학자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었을 것이다. 물이 여러 대상들과 어울리면서 어질고 조화된 품덕을 갖추었을 때 달다. 그리고 사람도 인품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듯이 물도 최고의 상태가 되면 향천(香泉)이 된다. 물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당대(唐代) 모문석(毛文錫)의 '다보(茶譜)'에는 "몽산(蒙山)의 중간 언덕에서 나는 차를 한 냥 얻어서 그 자리의 물로 달여 마시면 곧 능히 묵은 병을 물리친다. 두 잔이면 그 자리에서 병이 없어지고, 세 잔이면 환골(換骨), 네 잔이면 지선(地仙)이 된다"는 말이 있다. 찻물은 멀리서 길어 오는 것보다 제 고장의 물을 쓰는 것이 신선해서 좋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내가 먹어 본 우리 부산의 샘으로서는 영도 복천사(福泉寺) 물을 제일천(第一泉)으로 친다. 달고 가볍다. 언젠가 이 물로 차를 한 번 달였더니 같이 마시던 다우가 깜짝 놀라며 "차가 왜 이래요?" 하고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가끔 지인들의 찻자리에 초청을 받으면 짐짓 차 맛을 도울 양으로 이 물을 아침 일찍 가서 한 통 떠 가지고 가는 버릇이 있는데 그 차 모임에서 아무도 물맛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다음부터는 그 차회에는 안 간다. 다음으로 통도사(通度寺) 옆 계곡의 이름 없는 샘을 제이천(第二泉)으로 친다. 복천사 물 보다 조금 무거우며 그냥 마시면 더 맛있다. 다만 차를 달이면 덜 달다. 수백 년 되었을 그 샘을 근자에 공사를 하여 너무 잘 다듬어 놔서 정이 덜 가는 것이 조금 아쉽다. 다음으로 금정산 석불사(石佛寺) 물을 제삼천(第三泉)으로 친다. 화강암 산 아래 물이라 차의 맛을 많이 도운다. 기이하기로는 금강공원의 금어암(金魚庵) 샘을 첫손에 꼽는다. 어떻게 바위를 파서 그렇게 샘을 만들었는가싶다. 부근에 음기가 너무 치성한 것이 조금 흠이다.

산수(泉石)를 즐기는 것도 정도에 지나치면 병이 된다. 이 병이 명치끝에 맺혀 고칠 수 없게 된 지경을 천석고황(泉石膏黃)이라 한다. 천석고황은 신의(神醫)도 고칠 수 없다. 나는 일찍이 이 병에 걸려 발걸음 닫는 곳마다 멈추어 샘물과 바위를 품상(品賞)하였지만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차를 우려낼 물을 얼마동안 끓이느냐를 두고 논쟁 이어져
완전히 끓이지 않으면 제 기운을 발휘 못하고, 너무 끓이면 물이 쇠어 기운을 잃어버린다


 
  차인이 돌솥에 끓는 물을 뜨고 있다. 사진제공=사진가 이경순


차를 달이는 데에 있어 어떤 물을 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물을 어떻게 끓이느냐 하는 것이다. 당대(唐代)의 소이는 그의 '탕품(湯品)'에서 "끓인 물은 차의 목숨을 맡는 것"(湯者茶之司命)이라 했다. 물 끓이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찬물로는 차를 우려낼 수가 없으며, 뜨거운 물이라고 해도 어떻게 끓였느냐에 따라 차의 모습이 천양지차가 된다. 조금 과장하면 차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물을 끓이는 데에는 법도가 있다. 바로 중화(中和)이다. 물을 완전히 끓이지 않으면 제 기운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차(茶葉) 속에 있는 차의 마음을 다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소이는 이를 '영탕'이라고 불렀다. 어린아이와 같다는 뜻이다. 물이 간신히 끓기 시작하였을 때 얼른 그 물로 차를 달이면 이는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에게 사내구실을 바라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반대로 너무 끓여도 물이 쇠어 기운을 잃어버린다. 소이는 이를 '백수탕(百壽湯)'이라 불렀다. 이는 마치 백 살 먹은 늙은 노인이 활로 과녁을 쏘아 맞히거나 높은 곳을 활달하게 걷는 것을 바라는 것과 같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는 둘 다 못 미치거나 지나치거나 해서 중화를 이루지 못했으며 이런 물로는 차 달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어느 정도 끓이면 적당할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 한결같지 않다. 당대(唐代)의 육우는 '세 번 끓음'(三沸)이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 육우는 물이 끓는 형상을 세 가지 모습으로 형용했다. 처음 얼마간 물을 끓이면 마치 고기의 눈알과 같은 기포가 올라오고 가느다란 소리를 내는 데 이것을 첫 번째 끓음(一沸)이라 불렀다. 더 끓이면 솥의 가장자리 쪽이 솟아오르는 샘과 같고 구슬이 이어진 것과 같이 기포가 올라오는 데 이것을 두 번째 끓음(二沸)이라 했다. 물을 더욱 세차게 끓이면 물결이 뛰어오르고 파도가 솟아오르는데 이것을 세 번째 끓음(三沸)이라 했다. 육우는 이때가 가장 적당하게 물이 끓은 때라 하고 그 이상 끓으면 물이 쇠어서 못 먹는다고 했다.

명대(明代)의 장원(張源)은 오비(五沸)를 거론했다. 그는 물이 끓는 모습을 대단히 세밀하게 묘사하여 이른바 '3대변(大辨)'과 '15소변(小辨)'으로 나누었다. 즉, 크게는 끊는 모양과 소리, 그리고 기포의 세 측면에서 살피고, 그 각각에 다시 다섯 가지의 진행과정이 있다고 하여 물 끓이기를 매우 번쇄하게 분석했다. 끓는 모양은 제일 먼저 새우 눈알 같은 것이 나고, 이어 게 눈알, 물고기 눈알, 구슬꿰미 같은 것이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이들은 모두 제대로 익지 않은 물(萌湯)이며, 곧 이어 솥 안의 물 전체가 솟구쳐 오르고 파도치듯 넘실거리는 상태에 이르는데 이때가 바로 제대로 익은 물(純熟)이라고 했다. 소리는 처음 '솨~'하는 소리가 나고, 이어 바퀴 구르는 소리, 진동하는 소리, 말 달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들은 모두 맹탕이고, 곧 이어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가 바로 순숙이라는 것이다. 김은 처음에 한 올이 오르고, 이어 두 올, 서너 올, 어지럽게 얽혀 오르게 되는데 이는 모두 맹탕이다. 곧 이어 기운이 곧장 전체를 꿰뚫어 오르면 이때가 바로 순숙이라는 것이다.

장원은 물 끓이는 단계를 매우 세밀하게 논하였지만, 이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였던 것 같다. 즉, 비슷한 시기의 허차서(許次紓)는 "게눈 같은 거품이 난 뒤에 탕수에 가는 물결이 있으면 이때가 적당한 때이고, 크게 파도가 솥에서 솟구치다가 곧 소리가 자자지면 이때는 지나친 때이다. 지나치면 탕은 늙고 향기는 흩어지니 결코 쓰기에 알맞지 않다"했고, 라름(羅廩)은 육우의 두 번째 끓음에서 세 번째 끓음 사이가 적당하다고 했다. 황용덕(黃龍德)은 "탕의 표면에 구슬이 떠오르고 끓는 소리가 소나무 숲에 바람 부는 소리가 나게 되면 이것이 바로 제대로 탕이 끓은 시기"라고 하여 이들 모두 장원 보다 덜 끓인 물을 권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들은 모두 하수(下手)이다. 물을 여전히 대상으로 여기고 있어서 아직 물의 본진(本眞)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을 이 정도로 대해서야 어디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송대(宋代) 원오극근(圓悟克勤)의 벽암록(碧巖錄)에 보면 "옛날에 16명의 보살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목욕할 때 평상시처럼 욕실에 들어갔다가 문득 물의 인연(因緣)을 깨달았다. 여러 선덕들이여! 저네들의 미묘한 감촉 또한 또렷이 빛나며, 부처님의 아들이 되었네"라는 말이 있는데,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제대로 물을 대할 줄 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차와 불
숯불에 끓인 물로 달여낸 차, 그 맛이 진짜, 전기 포트로 간단히 끓이는 물 진정한 차문화 즐길 수 없어

 
  숯불이 피어있는 도자기 화로.
다성(茶聖) 육우(陸羽)는 찻일에는 아홉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 네 번째가 불 다루는 일로서 그는 "기름진 나무나 부엌에서 나온 숯은 찻물 끓이는 데에 적당한 땔감이 아니다(膏薪炭, 非火也)" 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보면 이윤(伊尹)이 탕왕(湯王)에게 다섯 가지 맛을 설명하는 가운데 아홉 번 끓여서 아홉 번 변하는 것이 불의 근본이라고 한 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불 다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았던 듯하다. 요즈음에야 대부분 전기 포트를 써서 간단히 물을 끓이고 있지만, 물을 끓인다고 해서 다 물을 끓일 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사진 공부를 할 때의 일이다. 그때 우리를 가르치던 사진가는 당시 모 대학의 강사였는데 그는 한국 대학의 사진학과를 나온 뒤 석사 과정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자 하였더니 부모님이 극력 만류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사진관을 운영하는 삼촌을 내세워 6개월만 자기 밑에서 일하면 사진 기술을 다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한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들었다 한다. "배 쨀 줄 안다고 다 수술할 줄 아는 거가?"

비유가 좀 험했는지 모르지만 무릇 어떤 분야에서든 고수가 되려면 모두 이 선을 돌파해야 한다는 데에는 나 역시 동감이다. 나아가 물의 정갈함을 탁도(濁度)로만 계측하고 물 끓임을 온도로만 재고 있는 현대 문화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찻물 끓이는 데에 가장 알맞은 땔감은 숯이다. 그 다음으로는 단단한 나무이다.

명대(明代) 도융(屠隆)의 '고반여사(考槃餘事)'에는 "모든 나무는 물을 끓일 수 있으므로 물 끓이는 일이 꼭 숯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차의 맛을 조절하는 것은 끓인 물이 맑으냐 어그러졌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끓는 물에는 연기가 가장 나쁘므로 숯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나 사나운 숯이나 기름기 어린 섶나무, 방을 가득 메우는 연기는 참으로 차를 해치는 마귀이다. 혹 부스러기 땔나무의 불, 타다 남은 약한 숯, 바람에 마른 조릿대나 나뭇가지를 태우는 아궁이에다 솥을 걸면 혹 불이 싸서 자못 기분은 상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은 타고난 성품이 천박하고 경솔하여 중화(中和)의 기운이 없으니 이 또한 물 끓이는 데에 참다운 벗이 아니다"고 한 말이 있다. 옛사람들이 찻물을 끓이는 불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었던가를 알 수 있다.

같은 숯이라도 깨끗한 나무로 만든 숯이라야 냄새가 찻물에 배지 않는다. 또 잔가지로 만든 숯은 너무 빨리 타 버려서 물을 진득하게 끓이지 못하고, 참나무나 느티나무와 같은 아주 단단한 나무로 만든 숯은 센 불기운이 물을 쇠게 하기 쉬우므로 이 또한 주의해야 한다. 불을 용이하게 다루려면 풍로가 필요하다. 풍로는 흙으로 된 것도 있고 쇠로 된 것도 있고, 도자기로 된 것도 있다. 어느 것이나 편리한대로 쓰면 된다. 다만 이 풍로 하나에서도 대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는 것이 차인들이다.

'물이 위에 있고, 바람은 밑에 있고, 그 가운데에 불이 있다(坎上巽下離于中)'. 육우가 물 끓이는 풍로의 형상을 주역(周易)의 원리로 풀어 쓴 말이다. 주역에서 감괘와 손괘, 이괘 등이 움직이는 형상에는 더 심오한 원리가 있지만, 적어도 육우의 이 말에서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서야 만이 한 주전자의 물이라도 끓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불을 다루는 일은 아직도 인간만이 가능하다.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요즈음도 차인들은 찻물을 끓이는 데에는 숯과 풍로를 쓰는 것을 정격(正格)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차인들은 풍로 밑의 재를 다루는 데에 만도 30년 정도의 수련을 쌓아야만 제대로 만질 수 있다고 말한다. 희랍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한 죄로 석벽에 매달린 채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인간의 문명은 불을 다룰 줄 알게 된 때부터 싹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은 불의 문화적 의미를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공자는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했지만, 적어도 친구가 도착하기 한 시간쯤 전부터 풍로에 숯불을 피우며 기다린다면 그 즐거움은 훨씬 커질 것은 분명하다. 숯불에 끓인 물로 차를 달이면 확실히 맛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