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풍류는 '바람이 부는 것'

醉月 2009. 4. 4. 11:03

 무대와 객석이 평면으로 만나는 풍류방 문화에 빠지다

 ▲ <천년만세> <천년만세>는 능청거리면서도 경쾌한 계면가락도드리, 한결 흥취를 돋우는 양청도드리, 다시 느려지는 우조가락도드리로 이어지는 기악합주곡이다.

"첫 번째 곡은 <천년만세>입니다. 처음에 계면조로 거뜬거뜬 나가다가 다음에는 조가 바뀌면서 아주 빠르게 나가는 양천도드리로 연주하고 다시 우조가락도드리로 넘어가 끝나는 곡입니다. 자, 그럼 연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3월 27일, 마산 무학산 한 자락에 위치한 '가곡전수관'(마산시 회원2동 631-6번지 소재, 관장 조순자) '지음실(음악감상실)'은 50여명의 관객들과 전통음악의 향기로 가득 찼다. 늦은 7시 30분에 시작한 공연은 연주가 무르익으면서 빽빽이 둘러앉은 사람들의 발그레 달아오른 볼처럼 서서히 달아올라 10시경에야 끝이 났다.

 

이날 공연은 줄풍류 <천년만세>에서 시작해 △거문고 산조 <한갑득류> △현대 속의 시조 <청풍명월> △피리독주 <상령산> △영제사설 시조 <명년 삼월 오시마더니> △반우반계 반엽 <동각에> △태평가 <이려도>로 이어졌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은 일반인들에게 우리 음악을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와 같은 무료상설공연 '차와 음악이 함께하는 금요풍류'를 2007년부터 해마다 열어 오고 있다.

 

클래식 공연에서 부족한 느낌, 우리 공연 찾게 돼

 

하지만 이번 공연처럼 50여명의 관객이 몰린 것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대개는 20명 남짓한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는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 지나가다 들렀다는 사람, 신문에 난 기사를 오려두었다가 큰마음을 먹고 찾아온 사람 등 찾아온 동기도 가지가지다. 지역도 마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가까이는 김해, 창원부터 멀리는 진주에서까지 찾아오는 관객도 있다.

 

대체로 전통 음악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나, 평소 갖고 있던 관심을 공연장을 찾으면서 해소하는 경우다. 공연이 해를 더해가면서 매회 공연장을 찾는 마니아 관객도 생겼다. 마산에 거주하는 정길영 씨(46)가 그런 경우다. 문화공연장을 즐겨 찾는다는 그는 "클래식 공연을 많이 들으러 다녔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더라. 마산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는데 와보니 편안하고 좋다. 늦은 나이지만 노래나 악기를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음악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얼마 전부터 영화 O.S.T.나 연극, TV 등에서 간간이 정가나 해금, 가야금 연주곡 등이 나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지만 최근 높아진 서양 클래식에 대한 대중적 관심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느새 우리 음악은 '우리 음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대인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그 무엇이 된 것이다.

 

우리 음악에 대한 무관심은 흔히들 '단조롭다'든가, '지루하다'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계속 반복해 들으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는 사람들조차도 우리 음악은 한두 번 듣고 속단해 버리기 일쑤다. 이는 평소 접하기 쉬운 서양음악에 비해 찾아듣지 않으면 한 번 들어보기조차 어려운 우리 음악을 너무 성급히 평가해 버리는 게 아닌가 한다. 우리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기 이전에 얼마나 들어봤는지, 또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질문해 봐야하지 않을까. 

 

 

우리 가곡에 대한 오해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가곡이라고 하면 흔히 <선구자>라든가 <그리운 금강산>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서양음악이 들어와서 서양음악 기법에 의하여 우리말 가사를 붙여 만든 곡이다. 보통은 그것을 가곡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가곡은 시조시를 관현의 기악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곡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누구나 들어봤을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도 실제로는 악보집이어서 책에 수록된 시 하나 하나가 노래로 불렸던 것들이다. 가곡의 전승이 잘 되었더라면 옛 선조들이 부른 노래를 국어교과서가 아니라 음악교과서에서 만나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대인에게는 낯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주목

 

"이 곡은 독주곡도 되고 합주곡도 되고 무용 반주곡도 되고, 하나가 여러 형태로 연주될 수 있는 곡입니다. 피리가 주선율을 이루고 대금이 음정자 노릇을 하면 거문고와 가야금이 서로 무늬를 넣고 장구가 박을 넣어주면 해금은 그 음악 사이를 접착제처럼 이리저리 수 놓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악합주곡, <천년만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관객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대부분 처음 공연을 접한 관객들은 중간 중간 이어지는 관장님의 곡 소개와 우리 음악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유인물을 꼼꼼히 읽어보기도 하며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이 없다. 그래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이 평면으로 만나는 풍류방 공연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늘 공연 못지않을 정도로 길어진다. 공연이 끝난 후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고 긴 시간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여느 공연장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처럼, '차와 음악이 함께하는 풍류방'이라는 이름을 내건 금요풍류는 현대인에게는 낯선, 새로운 형태의 공연문화이다. 하지만 풍류방은 우리의 옛 선조들이 예와 함께 꼭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꼽았던 악(樂)을 익히고 나누었던 일상적 공간이며, 문화였다. 이러한 악(樂)에 대해 정약용은 "예로는 행동을 절제하고 악(樂)으로는 마음을 화평하게 한다. 절제는 행동을 바르게 하고 화평은 덕을 기르는 것이니,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쪽도 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와 음악이 함께하는 풍류방, 금요풍류는 오는 4월 10일 봄맞이 세 번째 공연을 한다.   풍류는 '바람이 분다'는 뜻이다. 각박한 현실의 짐은 잠시 내려놓고 바람 쐰다는 기분으로 한번 들러보자. 혹시 모를 일이다. 풍류를 좋아하고 여유를 즐겼던 옛 선조들의 유전자가 내 안에서 서서히 깨어날지도.

 

<2009 가곡전수관 금요풍류 공연일정>

4월10일                     새 봄, 매향(梅香)을 즐기며

5월8일                       어버이 날 낳으실제

6월12일, 7월10일       도화뜬 맑은 물에

8월14일                     한산섬 달 밝은 밤에

10월9일                     나랏말씀이 듕귁에 달아

9월11일, 11월13일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12월4일, 12월18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장소 : 마산시 회원2동 631-6번지 가곡전수관 지음실

시간 : 늦은 7시 30분

문의· 예약 : 055 - 221 - 0109 / www.igagok.org 

※ 관람은 무료.

 

[3월 27일 금요풍류]   관객과의 대화

 

"이 좋은 걸 왜 방송에서는 들을 수가 없죠?"

 

관객) 박자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곡전수관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 이하 관장)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맞추어 가면 되는 것이지요. 박자를 좀 넣어주세요. 자, 이렇게...(어깨춤을 추며) 얼쑤! 그렇지! 하면서 즐기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다들 해보세요.

 

관객) 장구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관장) 장구는 서양음악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다 알아야만 장구를 잡을 수 있는 거예요. 옛날에는 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장구를 쳐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 실력이 다 같으면 연장자가 장구를 잡았고, 동년배이면 음악의 빛깔이 가장 좋은 사람, 가장 실력 있는 사람이 장구를 잡았습니다. 요즘 대학에서는 장구만 따로 뽑아요. 장구 전공이라고 장구만 하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여러 장르의 악기와 음악을 다 섭렵해야 옳은 장구잽이가 되는데 말이에요.

 

관객) 그럼, 서서 연주하는 것 한 번만 들려주세요.

관장) 서서 연주하는 걸 '선반'이라고 하고 서서 설친다 해서 '설장구'라고도 합니다. (웃음) 지금 보시는 장구는 장단장고라고 해서 장단을 맞추는 장구에요. 서서 연주하는 장구는 장구놀음이라 하는데 이 장구는 보시다시피 앉아서 연주하는 장구라 서서 연주하는 것보다 크기가 더 큽니다. 그래서 서서 연주하기는 힘들고, 앉아서 연주하는 걸 잠깐 들어볼까요? 장구 연주 잠깐 들려주세요. (장구 연주)

 

  
▲ "잡는 게 생각보다 힘든데요." 대금은 손이 닿아서 입에까지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관객) 대금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대금 연주자의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관장) (웃음) 연세씩이나요. 대금 연주자에게 직접 들어보시죠.

대금/ 오영숙) 햇수로 8년째입니다.

관장) (대금을 손에 들며) 이렇게 손이 닿아서 입에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제가 국립국악원 최초의 여자 대금잽이인데요. 손에 쥐고 소리가 나는 데만 해도 몇 개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해서 대금을 불면 성난 파도도 가라앉힌다고 하지 않습니까? (관객에게 건네며) 한 번 잡아보세요. (잡는 게 생각보다 힘든데요.) 그렇지요? (웃음) 이런 대금 말고 산조대금이라는 것도 있어요. (꺼내 보이며) 정악대금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럼 산조대금으로 대금산조 한 번 들어볼까요? (대금 연주) 대금 연주자가 오늘 필 받은 모양입니다. 다른 질문은 없으신가요?

 

관객) 가곡 부를 때는 앉아서 부르는데 왜 <청풍명월>은 서서 부르는 건가요?

관장) 예전 것에 변화를 주는 겁니다. 우리 민족은 그런 걸 잘해요. 한 가지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변화를 줍니다. 밥도 그냥 해먹기도 하고, 끓여먹기도 하고 비벼도 먹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가곡도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관객) KBS 국악 FM에 나오는 시그널은 어떤 거죠?

관장님) 제가 들어본 이 없어서 다른 분이 답변을 해주시겠어요?

노래/ 강숙현) 방송에 나오는 시그널은 시조의 한 부분인데요. 시조가 기본은 초, 중, 종장을 가지고 하나인데, 현대에는 새롭게 초장은 초장대로, 중장은 중장대로 부르기도 합니다. 들으셨던 시그널은 시조의 중장만 잘라서 나오는 거예요.

관장) 그럼 불러봐 주세요.

(시조 한 구절 노래)

 

관객) 저는 가곡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너무 좋아서 켜놓고 잘 때까지 듣기도 합니다. 이 좋은 걸 방송에서는 왜 접할 수가 없나요?

관장) 가곡이 너무 느리다고 잘 안 써줘요. 판소리 같은 것만 틀어줍니다. 가곡 같은 마음을 닦는 음악들은 스폰서가 없어요. 방송국에서는 돈이 안 되면 방송을 안하니까요. 제가 하는 '우리 가락 시나브로'도 제가 진행하지만 가곡은 많이 틀지 못합니다. 5분, 10분짜리 퓨전음악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야 광고가 들어오거든요. 여러분들이 가곡을 들려달라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 좀 남겨주세요. (웃음) 그러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해외공연을 가보니 미국, 프랑스 할 것 없이 다 좋아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만 찬밥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정치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데 예술이 가치를 인정받고 고양되어야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겠어요?

 

관객) 가곡 CD를 구하는데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관장) 저희 전수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전수관에 자주 오세요. 가시기 전에 행정실에 들려서 받아 가십시오. 하나 챙겨드리겠습니다. 

노래/ 강숙현) 참고로 덧붙여 말씀드리면 교보문고 CD 파는 코너에 가시면 다양하게 나와 있습니다.  

 

관객) 여고 2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딸이 피아노 전공인데 우리 악기 하나도 배우려 하고 있어요. 여기 보니 일반인 강좌도 많던데, 보내려는 입장이다 보니 수강료가 제일 궁금합니다. (웃음) 얼마인가요?

관장) 네. 지금 4월에 시작하는 영송헌 아카데미 일반인 강좌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15주에 33만원이에요. 기초부터 가르칩니다. 이것저것 접해보고 어떤 악기를 계속할 것인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관객) 교수님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입니다. 오늘 연주는 아주 좋았습니다. 요즘 TV를 보다보면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트로트를 부르는 여자분 두 분이 나오는데 이런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의 만남을 어떻게 보시는 지 궁금합니다.

관장) 그런 식의 시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청풍명월>도 그런 변화를 준 곡입니다. <청풍명월>을 부른 정마리 씨는 영화 <해안선>에 수록된 노래도 불렀던 분이에요. 이참에 노래도 청해 들어볼까요?

노래/ 정마리) <해안선>에 나왔던 노래인데요. 여주인공 미영의 테마곡입니다. 기구한 인생을 사는 여자인데요. 사랑하던 이가 총에 맞아 죽고 미쳐버립니다. 그 미영이 나올 때마다 배경으로 나오는 노래에요.

(정마리의 노래)

노래/ 정마리) 저는 가곡을 전공한 사람인데요. 가곡이 정말 큰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요즘 노래, 서양 노래에 다 적용이 됩니다. 제가 <해안선>, <4인용 식탁>, <복수는 나의 것> 등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를 여러 번 불렀는데요. 방금 들려드린 미영의 테마도 미영의 안타깝고 비통한 처지를 내지르는 식으로 부르기보다 반어적으로 해석해서 맑고 깨끗하게 불렀어요. 가곡의 속청발성만 적용해서 부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동요 같기도 하거든요. 다양한 곡을 불렀지만 기본적인 소리는 가곡 안에 있는 걸로 몇 개씩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관장) 가곡을 기본으로 잘 연마하고 나야 새로운 것도 나옵니다. 옛 가곡을 가지고 기초를 다진 후에 다음 것이 나오는 거죠. 그런 식의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또 다른 질문이 있으신가요? ... 질문이 없으시면, 3월 27일 금요풍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현대 속의 시조 <청풍명월> 가곡전공자 정마리가

                                                                                                                     "청산리 벽계수야"로 시작하는 <청풍명월>을 현대에

                                                                                                                      맞게 변화를 주어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