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FX사업 스텔스기 도입 논란, 그 허구와 진실

醉月 2011. 4. 27. 08:30

 “F-35 민다고? 청와대 본심은 따로 있다”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방아쇠 당긴 기종 경쟁, 모두들 앞서가지만…
● 김정일 별장 위협할 ‘보이지 않는 힘’과 적극적 억제
● 쏟아져 나온 F-35 내정설, 그러나 “MB는 스텔스기 확신 없다”
● 조속한 도입 추진 강조는 대미(對美)용 립서비스?
● “왜 지금 60대가 필요한가”…확산되는 회의론과 대안론
● “대선국면 절정일 때 기종 결정? MB는 그런 선택 안 할 것”
● ‘국방예산 효율화’의 임기 말 향방이 상황 가를 진짜 열쇠


  2009년 6월6일 경기도 평택시 공군작전사령부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F-15 전투기에 장착된 무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 공군은 내 집만 지킬 것인가, 상대에게 위협이 될 것인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두고 여러 기종이 각축을 벌인다지만, F-15SE는 전투행동반경이 짧아 주변국은커녕 북한의 미사일기지도 타격할 수 없고 공대지 무장도 제약이 크다.

 

반면 F-35는 충분한 행동반경과 스텔스성, 공대지 폭탄 장착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투입예산이 늘어나고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서 미 의회에서도 F-35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다. 공동개발국인 캐나다에서는 관련논쟁이 총리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변수가 됐을 정도다. 절충교역을 이용해 F-35를 저렴한 비용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들 하는데, 그간의 경험으로 봐도 이는 신뢰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4월7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차세대 전투기 도입 관련 토론회. 정복을 차려입은 공군 고위인사들과 국방부, 국회 국방위원회 등 관련기관 주요 인사들이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이 ...   

 

 FX사업의 주요 후보기종들. 록히드마틴의 F-35, 보잉의 F-15SE,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왼쪽부터)

 

같은 시기 공군 관계자들의 입장 역시 첨예하게 갈려나갔다. 노후 전투기를 대체해 전력부족분을 하루빨리 메우려면 청와대가 무게를 실었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2016년에야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 F-35로 섣불리 방향을 잡았다가는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던 것. 서두에서 밝힌 토론회 축사와 관련해 박 공군참모총장이 당초 배포된 원고의 ‘스텔스 전투기 전력화’를 ‘차세대 전투기 전력화’로 막판에 급히 수정한 해프닝도 “특정 기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노파심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상황은 이미 결과가 나온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청와대 핵심 당국자들의 최근 입장이 외부의 시선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는 사실. 기종과 관련해서는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는데 언론이 지나치게 앞서 나간 것뿐이고, 기존에 도입하려던 기종에 스텔스 기능이 추가되는 형식으로 구매하는 차원에서 결정될 공산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듣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F-15SE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한발 더 나아가 초기에 청와대가 스텔스기 도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워싱턴에 대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 협상과 서해 합동군사훈련 진행 등 그간 미국이 ‘배려’해준 안보분야 협력과제를 의식해 스텔스기 도입을 공론화했을 뿐, 실제로 막강한 기능을 갖춘 스텔스기 도입에 대해 전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는 아니라는 관측이다. 청와대가 스텔스 도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F-35를 구매하기 위해서라는 그간의 추측보도와는 정반대의 시각이다.

 

‘다른 저렴한 대안’

이렇듯 청와대 내부에서 여전히 유보적인 태도가 힘을 얻는 배경에는 비용문제가 깔려 있다. 현재 상황에서 비용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당 가격이 1350억원가량인 유로파이터 타이푼뿐이다. F-15SE의 경우 기존의 F-15와 큰 차이가 없는 1100억원 내외에서 결정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스텔스 기능이 단연 압도적이라는 F-35다. 개발 초기 600억원가량으로 상정됐던 가격은 이미 두 배 이상으로 뛰었고 앞으로도 1600억원 이상으로 추가로 인상될 수 있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 일각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T-50 고등훈련기의 대미(對美) 판매 연계나 국내 업체들이 록히드마틴의 파트너로 참여하는 사실상의 절충교역을 통해 실질적인 도입가격을 낮출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는 다른 경쟁기종에도 적용될 수 있을뿐더러 실제로 이행될지 여부도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주요 당국자들이 예산문제를 핵심쟁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감지되자, 가격경쟁력이 장점인 보잉 측의 행보도 사뭇 빨라졌다. 2월 하순 주요 언론사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초청해 일주일간 시애틀 공장을 중심으로 진행한 홍보투어가 대표적이다. 3월 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제히 활자화된 현지취재 기사는 어김없이 F-15SE를 FX사업의 주요 후보기종으로 소개했다. F-35로 굳어진 것 아니냐던 세간의 인식이 순식간에 보잉과 록히드마틴의 경쟁구도로 바뀌는 계기였다.

 

이를 두고 한 안보 관련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사업을 조속하게 추진하려는 공군의 욕심과 각 업체의 행보가 맞물려 필요 이상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라고 촌평했다. 정권 핵심 일각에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 바로 “왜 지금 스텔스기 60대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적극적 억제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북한 수뇌부 은신처를 타격할 수단이 필요하다지만, 말만 추가됐을 뿐 사실상 슬램(SLAM)-ER 공대지 미사일이나 합동원거리공격탄(JASSM)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논리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열린 창문으로 뚫고 들어갈 만큼 정밀하다는 슬램-ER은 이미 실전에 배치됐고, 자체 스텔스 기능을 갖춘 JASSM의 경우 미국에서의 개량일정 지연으로 도입이 미뤄졌지만 스텔스 전투기보다는 빨리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게 아니라면, 북한 수뇌부가 스텔스기에 더 강한 공포를 느낄 거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부족해 스텔스기 60대가 필요하다는 건지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훨씬 저렴한 대안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에서 검토한 바 있는 이른바 ‘3축 체제’가 대표적이다. 지상과 공중, 수중에서 모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플랫폼을 확보해 다량의 탄도미사일을 추가로 배치하면 스텔스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 이상의 억제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중형잠수함이나 추가 미사일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은 스텔스기 사업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그간의 국방개혁 논의에 정통한 한 인사는 “1년 이상 운영돼온 논의기구에서 명확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각 군의 이해관계에 흔들린 것”이라고 평했다. 적극적 억제라는 개념이 나왔으면 그에 부합하는 교리와 작전계획을 구상한 뒤 필요한 무기체계가 무엇인지 검토해야 할 텐데, 말만 앞세우고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보니 이왕이면 최고급 기종을 갖고 싶어하는 공군의 요구와 맞물려 스텔스기 도입으로 타협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위력이 입증된 무인항공기를 도입해 정밀타격능력을 늘리는 방안이 공군의 반대에 부딪혀 채택되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으냐는 것.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비대칭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애초의 콘셉트는 사라지고 도리어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대규모 예산투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시절 참모그룹에 해당하는 인사들에게서도 비교적 광범위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60대나 되는 스텔스기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청와대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북한 수뇌부의 은신처를 타격하는 게 목적이라면 앞서 설명한 ‘다른 저렴한 대안’이나 훨씬 적은 수의 스텔스기로도 충분치 않으냐는 것.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통령 본인 역시 스텔스기 도입 필요성을 확신하는 상태는 아니라는 핵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속한 도입 추진’이라는 언급은 외부용이었을 뿐, 본심은 아직 유동적이라는 말로 읽히는 대목이다.

 

숨어 있는 핵심쟁점

방위사업청은 4월13일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에서 FX사업과 관련해 “오는 6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을 심의한 뒤 내년 10월 기종을 결정하고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도입일정을 공식화했다. 이날 방사청 측은 “계약 체결 이후 전력화까지 4년 이상 소요돼 애초 계획한 2015년 전력화는 어려울 테지만 기종은 스텔스 수준, 구매비용, 국내조립 물량 등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대선 국면이 절정에 오른 시점에 기종이 결정되는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방부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정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 국내정치 분위기가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임기 말 대통령이 과연 이처럼 정치적 폭발력을 가진 이슈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관측에는 앞서 언급한 대통령 본인의 ‘의구심’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 군 고위관계자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하긴 했지만 그 직전까지 군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도 높은 국방예산 감축을 추진했던 이 대통령이 과연 마지막 순간에 본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정을 하게 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방개혁이라는 난제를 두고 군과 청와대가 마주 선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의구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예비역들과 군 일각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개혁 추진이 결과물을 내지 못하게 된다면 내년 이후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 한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무현 정부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주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국방개혁2020’을 밀어붙였지만 이명박 정부는 절대로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계획물량 60대 가운데 극히 일부만 도입하는 식으로 방향이 바뀌거나, 아예 다음 정부로 결정이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내년을 넘길 경우 대선의 향방에 따라 FX사업 일정이 어떻게 변할지 확신할 수 없는 공군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먼저 스텔스 이야기를 꺼낸 현 시점에서 어떻게든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상황을 진척시키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간에 놓인 국방부에서 사뭇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될 정도. 한 국방부 관계자는 “내년 말이면 김 장관이 자리에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도 아닌데 굳이 적극적으로 총대를 멜 이유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양한 비판과 관련 주체들의 복잡한 속내에도 불구하고 추진일정은 공식화됐고, 사업은 일단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킬 국내정치 일정의 향방과 누가 최종결정권자를 설득해내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셈이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예산 효율화’라는 애초의 생각을 관철해내며 임기를 마치게 될까, 아니면 레임덕을 의식해 군심(軍心)을 달래는 선택을 하게 될까. FX사업의 가장 큰 변수는 스텔스 성능도 적극적 억제전략도 아닌 이 뜻밖의 질문에 숨어있는 셈이다.

 

스텔스기 개발과 폭발하는 동북아 군비경쟁
서로가 서로를 명분 삼는 악순환의 상승효과


중국이 개발중인 스텔스기 젠-20.

공군이 제시하는 FX사업의 또 다른 이유는 주변국의 스텔스기 개발 경쟁이다. 지난 1월 스텔스기 젠(殲)-20의 시험비행에 성공한 중국은 2017년 이후 이를 전력화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고, 일본은 2014년 첫 시험비행을 목표로 심신(心神)이라는 이름의 스텔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2016년까지 50대 내외를 해외에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러시아 또한 2010년 1월 시험비행에 성공한 스텔스기 PAK-FA를 2016년 전력화할 예정. 개발 경쟁의 근본배경이 F-22와 F-35로 상징되는 미국의 압도적인 스텔스 전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눈여겨볼 것은 이들 주변 강대국이 자체적으로 스텔스 기술을 개발해 2016~17년 전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해외에서 직수입해 2015년까지 배치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미국의 압도적 능력이 중국의 개발을 압박하고, 중국의 개발이 다시 일본의 개발과 도입을 압박하고 있지만, 유독 한국은 조기 해외도입을 유일한 선택지로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기술개발과 해외 도입의 의미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것.


실패할 수도 있고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 확률도 높지 않은 자체개발에 비해 해외 도입은 대부분 계획시점까지 전력화가 가능하다. 한국은 중국의 스텔스기 개발을 의식해 도입을 결정한다지만, 중국은 거꾸로 일본과 한국의 해외도입 사업을 의식해 더욱 강도 높은 군비증강 계획을 마련하려 할 공산이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미군의 최첨단 항공전력이 배치돼 있는 한국과 일본의 추가 공군력 강화를 중국 군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명약관화하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참모였던 한 전문가의 말이다.


“주변국 때문에 스텔스기 도입을 추진한다는 논리는 국제정치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1차적으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을 강화하고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봉쇄를 의식해 군비투자를 늘리지만, 동시에 중국과 한국, 일본 군 당국이 서로의 의도를 과대평가해 자국의 군사력 강화논리로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최근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폭발적인 군비증강의 한 배경이다.”


주변 강대국 때문에 스텔스기를 도입한다면, 다른 무기체계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답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장거리 지대함 미사일 개발이나 항공모함 건조 등 중국의 대규모 전력 확충이 줄줄이 예정돼 있지만 한국이 이를 일대일로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군 일각에서조차 악순환의 연쇄 고리를 끊어낼 좀 더 ‘스마트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데는 이러한 고민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공격자산을 구매해 전체 전력지수를 높이려는 재래식 사고방식을 벗어나 감시정찰자산 확충과 효율적인 C4I체계 구축으로 기존 자산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새 패러다임을 추구하면 주변국과의 상승효과를 최소화하면서도 한국군 전체의 통합전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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