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산의 철학, 산의 미학

醉月 2009. 8. 7. 08:58

산의 철학, 산의 미학
출처 : http://jungmin.hanyang.ac.kr/

산중에 뭐가 있길래
왜 산을 오르냐는 물음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대답한 것은 영국의 멀로리 경이다. 그저 무작정 산이 좋은 사람에게 왜 오르냐고 묻는 사람도 딱하지만, 막상 그 자신 뭐라 꼬집어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왜 산에 오르냐니, 무슨 그런 질문이 있단 말인가?
남북조 시대 도홍경(陶弘景)은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하며 수차례에 걸친 황제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 어느날 황제의 조서(詔書)가 그에게 이르렀는데, 펼쳐보니 "산중에 대체 뭐가 있길래. 山中何所有"라 한 다섯 자가 내용의 전부였다. 산속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임금의 부름에도 한 번 들고는 나오질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도홍경은 한 수 시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산중에 도대체 뭐가 있냐고
산마루엔 흰구름이 많기도 하죠.
저혼자 기뻐서 즐거워할뿐
가져다 님께는 드리지 못합니다
.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산중에 있기는 무엇이 있나. 산마루를 넘어가는 흰구름 뿐입니다. 가만히 바라보면 마음이 기쁘지요. 왜 기쁘냐구요. 다만 마음으로 기뻐 즐길뿐 말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끝내 흰구름을 벗하며 산을 나서지 않았다.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 묻길래
웃고 대답 아니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 가거니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閒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산 속에 묻혀 사는 나에게, 왜 답답하게 산 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묵묵부답,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한들 그가 내 마음을 어이 헤아릴 것이랴. 또 낸들 무슨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소월처럼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라 할 밖에는. 김상용이 그의 시에서 "왜 사냐건 웃지요."라 한 것도 꼭 같은 심정이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복사꽃이 물 위로 떠 가니, 상류 어디엔가 무릉도원이 있지나 않을런지.
손일원(孫一元)이 서호(西湖)에 은거하고 있을 때 일이다.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가 지나는 길에 그를 방문하였다. 손일원이 그를 전송하러 나와서는 청산만 바라볼뿐 한 번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벼슬아치가 의아하여 물었다. "산에 뭐 좋은 것이라도 있나요?" 그러자 그는 "산에 뭐 좋은 곳이 있을라구요. 하지만 청산을 마주하는 것이 속인과 마주하는 것 보다는 낫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왜 산에 사는가? 산은 왜 오르는가? 산에 무슨 좋은 것이 있는가? 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궁금한 화두이다. 산은 저만치 그 자리에 우뚝 솟아 인간 세상의 변화하는 것들을 물끄러미 굽어 본다. 그 산, 그 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은 삶의 원기를 얻고,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는다.
두보(杜甫)는 〈강정(江亭)〉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물은 흘러도 마음은 바쁘잖코
구름 떠가니 생각조차 더뎌지네.
水流心不競 雲在意俱遲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는 물,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랬거니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했던가. 바쁘게 흘러가는 그 물을 보면서도 마음은 한가로와 바쁘지 않다. 하늘 위에 유유히 떠가는 구름, 그 구름 바라보다 내 마음도 느긋해진다. 이백은 또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에서 산이 주는 삶의 위안을 이렇게 노래한다.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서로 보아 둘다 싫증나지 않는 것은
경정산 너 뿐이로구나.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높은 산 마루에 사려 앉으니, 불어오는 일진의 바람에 흉중에 아무 거칠 것이 없다. 골짜기 아래서 무엇에 놀란 새 떼들이 왁자지껄 높이 날아 저 등성이 너머로 사라진 자리, 아까부터 외론 구름 하나가 뉘엿뉘엿 한가롭게 하늘에 배를 깔고 누워 있다. 그 구름 아래 높이 솟은 산,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나지 않는 산. 왁자지껄 떠들다 사라진 새 떼들처럼 속세에서 지고 올라온 티끌의 번뇌와 시름도 어느새 한가로운 구름의 마음이 된다. 새들은 그다지도 바쁘게 어디로 사라져 간 것일까. 왁자지껄 무리를 지어 들끓다가 사라진 새 떼는 사실 시인이 산 아래에서 지고 올라온 욕망과 번뇌의 찌꺼기는 아니었을까. 산 위에 올라선 시인은 그러한 번뇌와 시름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느새 정처도 없고 집착도 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의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산은 언제나 인간사에 지친 나를 이렇듯 감싸안고 어루만져 준다.
다음은 김부식(金富軾)의 〈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題松都甘露寺次惠遠韻)〉이다.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 지네.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강 물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히 떠가네.
부끄럽다. 달팽이 뿔 위에서
功名을 찾아다닌 나의 반 평생.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속객의 자취가 끊어진 곳을 속객이 홀로 찾았다. 산 마루에 올라 툭 터진 시계에 서니, 함께 짊어지고 온 속된 생각도 말끔히 씻어진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 여름 날의 화려에 견주면 보잘 것 없어야 할 그 모습은 조찰해서 더욱 좋다. 밤이면 빛을 잃고 검게 흐를 강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신비한 밝음을 간직하고 있다. 헐벗어 더욱 좋은 산, 밤이건만 오히려 맑은 강물빛은 집착과 욕망을 벗어 던져 더욱 투명해진 시인의 마음과 등가적 심상을 이룬다. `텅빈 충만`의 세계다.
깊은 밤, 색채의 대비도 선명하게 포물선을 그으며 시계를 벗어나는 해오라비. 홀로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사라지는 돛단 배. 모두 얽매이고 집착하며 아웅다웅하던 속세에서는 생각치 못할 정경들이다. 그제야 시인은 새삼 功名에 얽매여 시비를 다투고 영욕에 집착하던 삶이 얼마나 구차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던가를 깨닫는다. 돌아보면 그것은 달팽이 뿔 위의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높이 날아가 `스러진` 것은, 또 홀로 가볍게 `가버린` 것은 해오라비도 돛단 배도 아니고, 반평생 공명을 향해 있던 부끄러운 집착일 터이다. 이제야 그는 속객으로 들어온 가을 산사에서 속객의 태를 벗고, 거듭남의 정화감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 준다. 일상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소생의 원기를 불어 넣어 준다. 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때의 고금을 떠나서 자연이 예술의 변함 없는 경배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산 좋고 물 좋으니
산이 좋고 물이 좋은데 별도의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孔子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 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고 말씀하셨다. 朱子는 이 말을 풀이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은 점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은 점이 있는 까닭에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보면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 군자가 큰 강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저 물을 군자는 덕(德)에 비유한다. 두루 베풀어 사사로움이 없으니 덕과 같고, 물이 닿으면 살아나니 인(仁)과 같다. 그 낮은 데로 흘러가고 굽이치는 것이 모두 순리에 따르니 의(義)와 같고, 얕은 것은 흘러가고 깊은 것은 헤아릴 수 없으니 지(智)와 같다. 백길이나 되는 계곡에 다달아도 의심치 아니하니 용(勇)과 같고, 가늘게 흘러 보이지 않게 다다르니 살핌과 같으며, 더러운 것을 받아도 사양치 아니하니 포용함과 같다. 혼탁한 것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하여 내보내니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킴과 같다. 그릇에 부으면 반드시 평평하니 정(正)과 같고, 넘쳐도 깎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법도와 같고, 만갈래로 구비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꺾이니 의지와 같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큰 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 것일 뿐이니라."

원래 《순자(荀子)》〈유좌(宥坐)〉에 실려 있던 것을 부연한 내용인데, 물의 여러 속성을 들어 인간이 지녀야 할 삶의 덕목과 견주었다.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사사로이 경중을 두어 차별하지 않으니 덕 있는 군자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물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언제나 낮은 곳에 처하며 골짜기를 만나면 거세게 흘러가고 평지를 만나면 천천히 흘러간다. 순리를 지키는 의(義)의 삶이 아닌가. 얕은 것은 흘러가도 깊은 것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는 바로 지혜의 모습이다. 백길 계곡에 다달아도 의심치 않고 폭포가 되어 떨어지니 참 용기를 예서 배운다. 가늘게 흘러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침내 강물에 다달으니 목표를 정해 놓고 늘 성찰해 마지 않는 군자의 자태가 여기 있다. 아무리 더러운 것도 물은 모두 받아들여 이를 정화시키니, 군자가 소인을 감싸 안는 모습이 아닌가. 일찍이 노자도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으뜸 가는 선을 물에 견준 일이 있다. 물은 언제나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므로, 노자는 물에서 ‘유약겸하(柔弱謙下)’의 교훈을 읽은 것이다. 또 유향은 계속해서 지자요수(智者樂水)와 인자요산(仁者樂山)의 이유에 대해 부연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인자요산의 변은 다음과 같다.

"대저 어진 자는 어째서 산을 좋아합니까?"
"산은 높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만민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초목이 그 위에서 생장하고, 온갖 생물이 그 위에 서 있으며, 나는 새가 거기로 모여들고, 들짐승이 그곳에 깃들이며, 온갖 보배로운 것이 그곳에서 자라나고, 기이한 선비가 거기에 산다. 온갖 만물을 기르면서도 싫증내지 아니하고 사방에서 모두 취하여도 한정하지 않는다. 구름과 바람을 내어 천지 사이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라를 이룬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우뚝 솟은 산은 만민이 우러러 본다. 온갖 날짐승 들짐승이 그곳에 터전을 잡고, 풀과 나무 꽃들이 거기서 자란다. 만물을 길러내면서도 귀찮아 하는 법이 없고, 모두가 그 혜택을 누려도 마다하지 않는다. 구름과 바람이 그곳에서 일어나 천지의 쌓인 기운에 숨통을 열어준다. 그렇다면 군자의 삶이란 높은 산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의연히 제 자리에 지켜 서서, 그 표양으로 만인의 우러름이 되고, 그 가르침으로 만인을 감화시키며, 세상의 막힌 기운을 소통시켜 주는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넉넉한 품일지라도 산은 결코 그의 품안에 아무나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소창청기(小窓淸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세상 밖의 사귐은 오직 산이 있을 뿐이다. 모름지기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과 승지를 찾아갈 장비와 오래 머물러 맺은 인연이 있어야만 산은 비로소 막역의 사귐을 허락한다.

이른바 대관(大觀)의 안목이란 무엇인가? 인간 세상 잗단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만고상청(萬古常靑)의 불변을 닮아가는 것이다. 승지를 찾으려면 마음의 준비 뿐 아니라 여러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단 한 번 산에 올라 산을 안다할 수 있는가? 오래 머물러 바라보며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물아일체의 호흡이 있어야 한다. 그때 산은 비로소 가슴을 열어 나를 전신으로 받아 들인다. 산을 안다는 것, 산과 만나 막역의 사귐을 맺는다는 것이 그리 쉬울까? 북송의 위대한 산수화가 곽희(郭熙)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산은 가까이서 보면 이렇지만, 몇 리 떨어져서 보면 또 이렇고, 십여 리 떨어져 보면 또 이러하니, 멀어질 때마다 달라진다. 이른바 산의 모습은 걸음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산의 정면은 이러하고, 옆면은 또 이러하며, 뒷면은 또 이러하니 볼 때마다 달라진다. 이른바 산의 모습은 면마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도 수 십백 가지의 형상을 아우르고 있으니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 하나의 모습이 이렇듯 천변만화일진대, 여산의 진면목을 어찌 안다 하겠는가? 다만 외경과 사랑을 담아 산을 바라고, 산을 그리며, 산과 닮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또 구양수(歐陽修)는 〈부사산수기(浮槎山水記)〉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천하의 온갖 물건을 다 끌어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보는 것은 부귀한 사람의 즐거움이다. 장송 그늘에서 다북한 풀을 깔고 앉아 시내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다가 돌샘의 물을 떠 마시는 것은 산림에 사는 사람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산림에 사는 선비는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간혹 마음으로 하고싶은 것이 있더라도 힘을 헤아려 얻을 수 없어 그만둔 자는 물러나 이곳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저 부귀한 사람은 능히 온갖 물건을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아우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오직 산수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부귀한 사람의 즐거움이 있고, 산에 사는 사람의 즐거움이 있다. 부귀로도 권세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산에 사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자연은 겸허로 자신을 비우고, 고요로 내면을 가득 채워,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볼 줄 아는 사람의 몫이다.

산아, 우뚝 솟은 산아
선인들에게 산은 이렇듯 경배와 찬미의 대상으로 존재해왔다. 좋은 글을 지으려면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즉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어 가슴 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어야 한다. 그제서야 천지산하의 정기가 폐부에 스며들어 강산의 도움을 받게 되니 그 글에 그윽한 향기가 있고, 상쾌한 솔바람 소리가 울려나오게 된다. 가슴 속에 한폭의 구학(丘壑)을 품어야만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산을 보아야만 글도 지을 수 있다. 이제 산과 그곳의 삶을 예찬한 선인들의 시를 몇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천 석 들이 저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두드려도 소리 없네
만고에 우뚝한 천왕봉
하늘이 울려도 울리질 않네
請看千石鐘 非大구無聲
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

조식(曺植)의 〈천왕봉(天王峰)〉이란 작품이다. 큰 종은 거기에 맞는 공이가 있어야 한다. 젓가락으로 두드려 범종의 소리를 어찌 들을까. 큰 시루를 엎어 놓은듯, 엄청난 종을 구름 위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천왕봉은 오늘도 만고상청(萬古常靑)의 자태로 언제나 거기 서 있다. 누가 저 종을 소리나게 울릴 수 있으랴. 하늘이 천둥 번개로 공이 삼아 꽝꽝 울려 대도 산은 요지부동,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산 기슭 정자에 앉아 산을 보며 나는 호연지기를 기른다. 산을 닮아간다. 산을 종으로 유비하여 바라본 발상도 재치 있거니와, 선비의 의연한 마음 가짐이 범접할 수 없는 기상으로 압도해 온다.

금강산 일만하고 이천 봉우리
높고 낮기 제각금 같지 않구나.
보게나 아침해 떠오를제면
높은 곳이 제일 먼저 붉어지나니.
一萬二千峯 高低自不同
君看日輪上 高處最先紅

성석린(成石璘)의 〈풍악(楓岳)〉이란 작품이다. 동해 위로 떠오른 아침 해가 일만 이천의 묏부리 위로 일제히 부서진다. 높이가 제각금이니, 가장 높은 봉우리부터 햇살을 받기 시작하여 점차 금강산의 진면목이 차례로 눈앞에 펼쳐진다. 장엄한 광경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산의 장엄만을 예찬하지 않는다. 마치 산이 제 높이에 따라 햇살을 먼저 받고 나중 받음이 있듯, 삶의 이치를 깨닫는데도 사람의 자질에 따라 선후가 있고 심천이 있기 마련인 때문이다.

산과 구름 모두 다 희고 희거니
구름인지 산인지 분간 못하네
구름 가자 산만이 홀로 섰구나
일만이야 이천봉 금강이라네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峯

송시열(宋時烈)의 〈금강산〉 네 수 가운데 첫 수이다. 천인(千仞) 절벽 위에서 바윗돌을 굴리는 기상이 느껴진다. 개골(皆骨)이라 산도 희고 구름도 희다. 시인은 ‘불변용(不辨容)’의 상태에서 ‘운귀(雲歸)’로 미망(迷妄)을 걷어냄으로써 일만 이천 멧부리의 특립독행(特立獨行)을 돌올하게 펼쳐 보인 것이다. 군자의 삶도 마땅히 이러해야 하리라. 우리 삶을 에워싸고 있는 자질구레한 집착과 욕망, 이런 것들을 활짝 걷어 젖힐 때 비로소 본체의 길은 환히 열리게 되리라. 이때 산은 단순히 他者로서 존재하는 자연물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삶의 이치를 일깨우는 거울이 된다.

옛길은 적막해라 솔 뿌리 얽혀
낮은 하늘 북두.견우 손뻗으면 닿겠네.
뜬 구름 흐르는 물, 절 찾은 나그네
붉은 잎 푸른 이끼, 스님은 문을 닫고.
가을 바람 싸늘히 지는 해 불어가자
산 달이 떠오더니 잔나비 울음 우네.
기이쿠나.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긴 세월 시끄러운 세상 꿈 꾼 일 없네.
古逕寂寞縈松根 天近斗牛聯可捫 
浮雲流水客到寺 紅葉蒼苔僧閉門
秋風微凉吹落日 山月漸白啼淸猿
奇哉호眉一老衲 長年不夢人間喧

정지상(鄭知常)의 〈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이다. 솔뿌리를 밟으며 태고 속으로 나그네는 걸어 들어가고, 청청한 하늘은 머리를 누를듯 낮게 내려와 반짝반짝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사는 일 하릴 없어 절을 찾은 나그네를 맞이 한 것은 발목을 덮는 낙엽과 푸른 이끼 낀 빗장 질린 산문이다. 아웅다웅 토닥대며 살아온 삶이 굳게 닫힌 산문(山門) 앞에서 무연하다.

세상 일 어지럽다 옳다 그르다
십년 세월 붉은 먼지 옷을 더럽혔도다.
꽃 지고 새 우는 봄 바람 속에
어디메 청산에서 사립 닫고 계신고.
十年紅塵汚人衣 世事紛紛是與非
落花啼鳥春風裏 何處靑山獨掩扉

고려 말 김제안(金齊顔)의 〈기무열사(寄無說師)〉란 작품이다.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다투는 시비의 싸움으로 세상은 언제나 떠들썩 조용할 날이 없다. 홍진 세월 십년에 남은 것은 더럽혀진 옷뿐이구나. 언제나 보고픈 무열(無說) 스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 어느 곳 산사에서 문 닫고 선정삼매(禪定三昧)에 잠겨 계실까.

밭갈며 세월을 그리 보내고
약캐다 청춘은 지나가리라.
산 있고 흐르는 물이 있는 곳
영화도 치욕도 없는 몸일세.
耕田消白日 採藥過靑春
有山有水處 無榮無辱身

신숙(申淑)의 〈기관귀향(棄官歸鄕)〉이다. 고려 의종이 환관에게 벼슬을 내리자, 다들 침묵 하는 중에 그 혼자 들어가 그 불가함을 간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의 벼슬을 빼앗자,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지은 시다. 언제나 푸른 산이 있고, 변함 없이 흘러가는 시내가 있다. 그 속에서 밭갈고 약초캐며 남은 세월을 보내리라. 그곳에는 부귀영화를 향한 헛된 꿈도 없고, 헛된 꿈에 팔려 욕을 보는 치욕도 없을테니까. 그렇게 돌아온 산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침해 희미하다 흐렸다간 밝아지고
하늘 끝 누워 보니 조각 구름 피어나네.
어느새 구름 모여 비 되어 뿌리더니
골짝마다 무너지듯 여울소리 뿐이로다.
朝日微茫翳復明 臥看天末片雲生
須臾遍合飜成雨 萬壑崩湍共一聲

성수침(成守琛)의 〈산거잡영(山居雜咏)〉이다. 아침해가 희부옇기에 흐린 날인줄 알았다. 이따금 햇살이 비치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부자리에 그대로 누워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 저편에서 조각구름이 피어난다. 저 구름이 해를 가려 밝았다 어두웠다 한 것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달콤한 아침 잠을 더 즐기려는데, 어느새 조각구름은 먹장구름으로 변해 온 산에 자욱하게 비를 쏟아 붓는다. 갑작스런 비에 놀라 삽시간에 골짝마다 콸콸콸콸 여울물 쏟아지는 소리 뿐이다. 귀가 멍해진다. 패연히 쏟아지는 빗소리 물소리가 티끌 삶의 흔적을 자취 없이 씻어버린다. 통쾌하다.

초록 나무 그늘 아래 꾀꼬리 울제
푸른 산 그림자 속 띠로 엮은 집.
이끼 낀 길 한가히 거니노라면
비갠 뒤 그윽한 향 풀꽃 위에 진동하네.
綠樹陰中黃鳥節 靑山影裏白茅家
閒來獨步蒼苔逕 雨後微香動草花

최기남(崔奇男)의 〈한중(閒中)〉이다. 꾀꼬리 우는 봄날 푸른 산 자락에 흰띠로 얽은 집이 한채 그림처럼 놓여 있다. 이끼 낀 길은 숲속으로 이어있고, 뒷짐 지고 거니는 한가로운 산보에 비갠 뒤라 싱그런 향기가 코 끝에 전해온다.

산이 좋아 산에 갔더니
옛 선인들의 산수 자연을 향한 예찬은 유별나다 못해 유난스럽기까지 하다. 옛 선인들의 문집을 들춰 보면 으레 한두편의 산수유기와 만날 수 있다. 산수유기란 글자 그대로 고인이 직접 산수 간을 노닐며 견문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연도의 풍정과 눈앞의 경관을 꼼꼼히 옮겨내는 섬세한 관찰의 기록이 있고,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마치 솜씨 좋은 사진 작가의 필름을 마주 한듯 가보지 않은 봉우리와 골짝을 안방에 누워 유람하는 와유(臥遊)의 청복(淸福)을 누릴 수도 있다.
또 글을 읽어 보면, 이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인지 메모만 하고 다녔던 것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한 기록 정신과 만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 백년 전 그 산 속 어딘가에 있었던 절간의 규모나 유적의 보존 상태를 알 수 있고, 골짜기 조그만 암자에서 솔잎만 먹으며 용맹정진 하던 눈 맑은 승려도 만날 수 있다. 봉우리의 이름이 지어진 유래가 적혀 있고, 산 비탈의 모습 능선의 굴곡을 눈 앞에 선히 그려볼 수 있다. 예전의 등산로와 장비가 어떠했으며, 산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잘 나타나 있다. 산수유기는 말하자면 옛 선인들의 답산기(踏山記)인 셈이다.
유종원의 유명한 〈영주팔기(永州八記)〉는 그가 좌천되어 영주(永州) 땅에 쫓겨 와 있던 시절, 울적한 심회도 달랠 겸, 공무의 여가에 틈만 나면 주변의 산수간을 소요하며 노닐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의 일절이다.

금년 9월 28일에 법화사(法華寺) 서정(西亭)에 앉았다가 서산을 바라보고 비로소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하인을 시켜 상강(湘江)을 건너 염계(染溪)를 따라 잡초 덤불을 찍고 무성한 풀을 살라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만 두게 하고, 더위 잡고 올라가 걸터 앉아서 노닐었다. 무릇 여러 고을의 땅이 모두 깔고 앉은 자리 아래로 펼쳐져 있어 그 높고 낮은 형세의 솟아오르고 움푹한 것이 개미둑 같고 구덩이 같았다. 척촌에 천리를 빽빽히 쌓아 놓은듯 가리워 보이지 않음이 없었다. 푸르고 흰 빛으로 둘려 있어 멀리 하늘 가와 더불어 사방을 둘러봐도 한결 같았다. 이 뒤에야 이 산이 특출하여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 같은 작은 산과는 유(類)가 되지 않고, 유유하게 맑은 기운을 갖추었으나 그 끝간 데를 얻을 수 없고, 아득히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되 그 다함을 알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술잔을 당겨 가득 따르고 거나히 취하여 해가 지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푸르스름한 땅거미가 먼데로부터 밀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았다. 마음은 엉겨 붙은듯 형체는 놓여 사라진듯 만화(萬化)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

서산의 정상 위에서 영주의 여러 고을을 굽어 보면 지금껏 보아왔던 산들은 모두 흙무더기를 쌓아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 천리의 시야를 尺寸에 압축시켜 놓은듯, 산은 개미둑 같고 골짝은 구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호연한 경계 앞에 그는 돌아옴을 잊고서 저 멀리서 땅거미가 밀려와 눈 아래 펼쳐진 경물을 지워 버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지워 버릴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심응형석(心凝形釋)’ 마음은 그대로 엉겨붙어 찾을 길이 없고, 형체는 그대로 기화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만화명합(萬化冥合)’ 하는 물아의 일체감을 황홀하게 맛보았던 것이다.
산은 이렇듯 우리에게 호연한 기상을 품어준다. 김일손(金馹孫)은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에서 천왕봉 일출을 마주한 감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신해일 여명에 해가 양곡에서 돋는 것을 보았다. 맑은 하늘은 닦아논 거울 같아, 서성대며 사방을 바라보니 아득한 만리에 대지의 숱한 산들은 모두 개미 둑일 뿐이었다. 묘사는 곧 한창려가 남산시(南山詩)를 지을 때와 같고, 마음은 공자께서 동산에 오르심에 부합하였다. 두서없는 회포가 일어나 티끌세상을 굽어 보니 감개가 뒤따른다. 산의 동남쪽은 옛 신라의 땅이요, 서북쪽은 옛 백제의 땅이다. 어지러운 모기떼가 항아리에서 일어나 스러지듯, 애초부터 꼽는다면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이곳에 뼈를 묻었던가?
명나라의 오정간(吳廷簡)은 일찍이 황산을 유람한 뒤, "반생 동안 본 산들은 모두 흙더미, 돌무더기였을 뿐이다"라고 했다는데,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맑게 개인 하늘 위로 해가 뜨자 발 아래 늘어선 많은 산들은 모두 개미 둑같이 보일 뿐이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가 작은 것을 알았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좁은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저 발아래 티끌 세상에서 옛 신라 백제의 싸움이 벌어지고, 그 오랜 세월에 수도 없는 영웅호걸들이 뼈를 묻는 동안에도 산은 언제나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우뚝 솟아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영웅호걸이란 것도 항아리 위를 앵앵거리다 마는 모기 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연 앞에 선 인간은 언제나 왜소함을 느끼게 될 뿐이다.

정약용은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에서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마치 거인위사(巨人偉士)가 말없이 웃지도 않으면서 조정에 앉아 있어, 비록 움직이는 자취는 볼 수 없어도 그 공화(功化)가 사물에 널리 미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벼락과 번개, 구름과 비의 변화가 항상 산 허리에서 일어나 자욱히 아래로 향해 내려가지만, 산 위는 그대로 푸른 하늘일 뿐이니 그 산의 높음을 알 수 있겠다고 하였다. 이어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 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가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고락은 마음에 둘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며 산위에서 느끼는 호연한 기상을 술회한 바 있다.
또 백두산 유람에 오르는 신광하(申光河)를 전송하는 글에서는 대지는 언덕과 평지와 늪지가 섞여 이루어진 덩어리일 뿐으로, 혹 우뚝히 웅장하게 솟아 수천리에 서리어 뭉쳐 있는 뛰어난 산이 그 사이에 있으니, 그 까닭은 이로써 한 지방을 진압하고, 온갖 영이하고 기괴한 것들을 간직하여 만물이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게 하고자 함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같이 중요한 산을 일반 백성들은 관심밖에 두고서 한 번 돌아보지도 않으며 "저것은 무엇하는 것이냐"고 말하니, 이는 또한 양충(壤蟲) 즉 버러지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였다.
일찍이 사마광(司馬光)은 "등산에도 도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튼튼한 땅을 딛으면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산을 오르는 도는 곧 인생을 살아가는 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조식(曺植)은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등산과 하산의 일을 두고

당초 위쪽으로 오를 적에는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기가 어렵더니,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올 때에는 단지 발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흘러 내려가는 형국이었다. 이것이 어찌 선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을 좇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명심보감》의 ‘종선여등(從善如登), 종악여붕(從惡如崩)’의 말을 새삼 환기함으로써 산을 오르내림에 있어서도 자기성찰의 고삐를 놓지 않는 진지한 삶의 자세와 만나게 된다. 또 함께 산을 오른 동행이 말을 타고 혼자 채찍을 휘둘러 먼저 정상에 올라 부채질을 하고 있자, 한 걸음 한 걸음 비오듯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른 조식이 "그대는 말 탄 기세에 의지하여 나아갈 줄만 알고 그칠 줄은 모르니, 훗날 능히 의로움에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남보다 앞서게 될 것이다. 참으로 좋지 않은가?"라며 은연 중에 나무라는 대목은 이들의 산수유기가 단지 거나한 유산(遊山)의 흥취만을 예찬코자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음은 우리나라 산수유기의 걸작인 박제가(朴齊家)의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의 한 대목이다.

고목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 보는 것 같고,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는데,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 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 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내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듯 하였다. (중략)
우러러 토령(土嶺)을 보니 오리 쯤 되겠는데, 잎진 단풍 나무는 가시와 같고 흘러내린 자갈 돌은 길을 막아선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덮였다가 발을 딛자 비어져 나왔다. 벌렁 나자빠질 뻔 하다가 일어나느라 손을 진흙 속에 묻고 말았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웃을까봐 부끄러워 단풍잎 하나를 주어 들고서 그들을 기다리는 체 하였다.
만폭동에 앉으니 석양이 얼굴에 비추인다. 거대한 바위는 산 마루 같은데 긴 폭포가 바위를 타넘고 흘러 내려온다. 물굽이는 세 번을 굽이쳐서야 비로소 바닥을 짓씹는다. 물줄기가 움푹 들어갔다가 소용돌이를 치며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고사리 순이 주먹을 말아 쥔 것 같고, 용의 수염 같기도 하며 범의 발톱 같기도 하여 움켜쥘 듯 하다가는 스러진다. 내뿜는 소리가 흘러 내려 하류로 서서히 넘치더니, 주춤하다가는 다시금 내뿜는데 마치 숨을 헐떡이는 것만 같다. 한참을 가만이 듣고 있으려니까 나 또한 숨이 차다. 이윽고 잠잠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듯 하더니 조금 있자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바지를 정갱이까지 걷어 부치고 소매는 팔꿈치 위로 말아 올리고 두건과 버선을 벗어 깨끗한 모래 위에 던져 두고 둥근 돌에 엉덩이를 고여 고요한 물가에 걸터 앉았다. 작은 잎이 떳다 가라앉는데 배쪽은 자짓빛이고 등쪽은 누런 빛이었다. 이끼가 엉겨 돌을 감싸니 이들이들 한 것이 마치 미역 같았다. 발로 물살을 가르자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양치질 하니 비는 이빨 사이로 쏟아졌다. 두 손으로 허위적 거리자 물빛만 있고 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꼽을 씻으며 얼굴의 술기운을 깨노라니,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실감나다 못해 황홀한 묘사가 아닌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볼 길 없는 묘향산의 구비구비가 마치 눈 앞에 펼쳐진듯 생생하다.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요, 한편의 시가 아닌가. 다시 한 대목을 보자.

금환 스님과 더불어 《법화경》의 화택(火宅)의 비유를 강론하였다. 스님은 오십 여 세로 송경(誦經)은 잘 하지만 사람과 마주하는 것은 꺼리는듯 했다. 그 형인 혜신 또한 중이 되어 극락전에 거처하는데 불경의 조예가 금환 보다 낫다 한다. 내가 물어 보았다.
"중 노릇이 즐거운가?"
"제 한몸을 위해서는 편합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한번 가보았지요. 티끌만 자옥히 날려 도저히 못살 곳 같습디다."
내가 또 물었다.
"대사! 환속할 생각은 없소?"
"열 둘에 중이 되어 혼자 빈 산에 산 것이 40년올씨다. 예전에는 수모를 받으면 분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가엽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칠정이 다 말라버려, 비록 속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으려니와, 혹 속인이 된다 해도 무슨 쓸모가 있답니까? 끝까지 부처님을 의지타가 적멸로 돌아갈 뿐입지요."
"대사는 처음에 왜 중이 되시었소?"
"만약 자기가 원심(願心)이 없다면 비록 부모라 해도 억지로 중 노릇은 시키지 못하지요."
이날 밤 달빛은 마치도 흰 명주 같았다. 탑을 세 바퀴 돌고 술도 한 순배 하였다. 먼데 바람소리가 잎새를 살랑이니 쏴-아 하고 쏟아내는듯 쓸어내는듯 하였다.

객수에 잠을 못 이루던 서울 선비가 탑 둘레를 맴돌다가 초로의 스님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명주를 펼쳐놓은 듯 희고 고운 달빛, 바람은 쏴-아 물결 소리를 내고, 도도한 흥취는 몇 잔의 술로도 잠재울 수가 없다. 먼지만 날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됩디다 하고 스님은 고개를 내젓는다. 환속을 말하는 짓꿎은 농담에는 칠정이 다 말라버렸다고 대답한다. 달빛 아래 담소의 광경이 꿈 속 같이 아련하다. 박제가는 〈묘향산소기〉를 이렇게 맺는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님에 날을 헤이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머물며,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을 뿐이다. 저 어지러이 떠들썩 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대저 속된 자들은 선방(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베푸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는데 과일을 두는 격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내게 와서 묻는다.
"산 속에서 풍악을 들으니 어떻습디까?"
"내 귀는 다만 물 소리와 스님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요."

산의 잠언록
상촌 신흠이 야인으로 묻혀 지낼 때, 옛 선인들의 글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메모해 둔 것이 있는데, 이름하여 ‘야언(野言)’이라 하였다. 다음 인용은 이 어록 가운데 몇 개를 추려 본 것이다. 산 속에 묻혀 사는 야인의 삶이 담백하면서도 청정하게 그려져 있다. 토막토막의 말이 행간으로 이어져 ‘세상을 사는 지혜’를 일깨워 준다.

봄날이 무르익어 숲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 숲속으로 산길이 통해 있고, 소나무 대나무 서로를 비추이고 들꽃은 향기 가득 산새들은 지저귄다. 이러할 때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두 세 곡 연주하면 이몸은 아득히 동중선(洞中仙) 화중인(畵中人)일세.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다. 시내는 흘러가고 돌은 서 있다. 꽃은 나를 맞이하고 새는 노래 부른다. 골짜기는 메아리로 대답하고 나무꾼은 노래한다. 사방이 온통 적막해지니 내 마음 절로 한가해지네.

차 익어 향기 맑을 제 길손이 찾아오니 이 아니 기쁠소냐. 새 울고 꽃이 질 땐 아무도 없다 해도 마음 절로 유유하다.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이 없네.

초여름 원림에서 이끼 낀 바위 앉았자니, 대 그늘엔 해도 어느새 뉘엿하고, 오동나무 그림자 사이 구름이 돌더니만, 산 구름 건듯 일어 보슬비 서늘킬래, 평상에서 낮잠 청하니 꿈 속 또한 상쾌해라.

마음에 맞는 벗과 산 꼭대기 걸터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지치면 바위 가에 하늘을 보고 누워 푸른 하늘 흰구름이 반공에 떠도는 모습 보며 흔연이 유유자적.

대나무 책상 창가에 놓고 부들자리 깔고 앉으니, 높은 뫼엔 구름 들고 그 아래론 맑은 시내. 울타리엔 국화 심고 집 뒤엘랑 원추리를. 언덕 가득 꽃이 피어 지나는 길을 막고, 버들은 대문 앞을 버티고 서있구나. 굽은 길엔 자옥한 안개 주막으로 이어지고, 맑은 강에 해가 지니 어촌에는 고깃배라.

서리 내려 낙엽 질 때 성근 숲에 들어가 나무 뿌리 위에 앉으니, 나부끼는 단풍잎은 옷 소매를 점찍누나. 들새는 나무 가지 사이로 사람을 구경하니, 황량하던 땅이 맑고 드넓어지네.

서리 진 뒤 시내 바위 물 위로 드러나고 못물은 맑고도 고요히 잔잔한데, 깎아지른 바위 절벽 고목엔 덩쿨 지고, 물에 비친 그림자를 지팡이 짚고 서서보니, 내 마음 어느새 해맑아지네.

산에 삶이 비록 좋아도 얽매이는 마음 있으면 시장이나 진배 없고, 서화를 즐김이 우아한 일이지만 탐내는 마음 있게 되면 장사치나 다름 없다. 술 마셔 취함이 즐거운 일이지만 남 하는대로 하면 감옥이나 한 가지요, 친구와 노님이 유쾌한 일이라도 속류(俗流)와 사귄다면 고해(苦海)가 따로 없다.

오직 독서만이 이롭고 해가 없다. 계산(溪山)을 사랑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꽃과 대나무, 바람과 달을 감상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단정히 앉아 고요히 침묵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문 열고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가기,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깊은 산 높은 집엔 화로 香이 필요하지. 물러난 지 오래되면 좋은 것 다 떨어져. 늙은 송백(松栢) 뿌리와 잎, 그 열매를 짓찧어서 단풍나무 기름과 섞어 한 알 씩 태워주면 또한 청고(淸苦)함에 보탬이 있으리라.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에도 선인들의 산수자연을 향한 깊은 애정이 빚어낸 주옥같은 금언들이 실려 있다. 산 속의 삶을 예찬한 몇 대목을 손길 따라 추려본다. 이 어찌 공해에 찌든 우리의 가슴을 시원히 적셔주는 청량산(淸凉散)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지치고 몸이 피곤하면 낚시대를 던져 고기를 잡고, 옷자락을 부여 잡아 약초를 캐며, 도랑물을 터서 꽃에 물을 주고, 도끼를 잡고 대나무를 가르며, 더움을 씻고 손을 닦고, 높은 데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거닐며 노닐면 오직 뜻에 맞으리라. 밝은 달이 떠올라 맑은 바람 불어 오면 가고 멈춤에 얽매임이 없게 되니, 이목과 폐장(肺腸)이 모두 내가 주인이 된다. 외롭고도 아득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다시 어떤 즐거움이 이것을 대신할 지 모르게 된다.

산이 고요하니 낮인데도 밤과 같고, 산이 담백하면 봄산도 가을 같다. 산이 텅비게 되니 따뜻해도 추운 듯 하고, 산이 깊고 보니 개인 날도 비오는 날 같다.

높은 산에 오르고 깊은 숲에 들며 굽이치는 시내를 찾아간다. 그윽한 샘물과 기이한 바위는 아무리 멀어도 가보지 않음이 없다. 가서는 풀을 헤치고 앉아 술병을 기울여 잔에 따른다. 취하면 서로 베고 눕는다. 마음에 지극한 바가 있으니 꿈 또한 같은 운치로 이어진다.

오래된 거문고 하나, 책 한 권을 주머니에 메고 술병을 들고 가고 싶은대로 간다. 마음에 느낌이 일어나면 문득 기쁘게 시를 읊조리고, 흥에 따라 술 마시며, 가고 머묾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지친 새가 둥지에 깃들자 흘러가던 구름은 골짜기를 감싼다. 석양이 산기슭에 걸리고 달이 띠집 위로 떠오르면 사방벽은 고요하고 창문은 환하다. 취해 돌아와서 자재로이 읊조리며, 희황(羲皇)의 거처에 누워 무하유(無何有)의 나라에 노니노라면, 마침내 내가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명아주 지팡이에 나막신 신고 깊은 골짝 큰 시내를 왕래하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소용돌이 치는 여울을 바라보며, 맑은 못을 감상하고, 아슬한 다리 위를 거닐며, 무성한 나무 그늘에 앉았다가 그윽한 골짝을 찾아가며, 높은 봉우리에 오른다. 어찌 이를 즐기지 않고 죽으랴.

이상 옛 선인들의 산을 향한 뿌리 깊은 애호와 사랑의 뒤안을 살펴 보았다. 굳이 어려운 논설보다는 선인들의 따뜻한 육성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결코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겸허가 있었다. 돈벌이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황 폐화시키는 만용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먼발치에서 산을 바라보며 산과 닮아가고, 그 늠름한 웅자(雄姿)에서 삶의 길을 되새기며, 이따금 산에 올라 산의 일부가 되는 물아일체의 삶을 지향했을 뿐이었다.
오늘의 인간은 무섭다. 국토자연은 날로 황폐해 가고, 개발을 앞세운 무분별한 파괴는 백두대간의 허리를 자르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파괴는 인간의 탐욕이 그치지 않는 한 도를 더해갈 모양이니 안타깝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저 청정한 가야산에서는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염불 소리가 끊임 없이 들린다 한다. 황령산 기슭에선 불도저 소리가 요란타 한다. 조상들이 경배하고 사랑했던 이 복지를 다 파괴하고서 훗날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후손들과 마주할 것인가? 노산 이은상 선생의 〈조국강산〉 가운데 두 수를 적어 맺음에 갈음한다.

대대로 물려 받은 조국강산을       언제나 잊지 말고 노래 부르자
높은 산 맑은 물이 우리 복지다     어느 곳 가서든지 노래 부르자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에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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