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이어령의 다시 읽는 한국시_16

醉月 2009. 8. 10. 09:04

     윤동주「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1941년 11월 20일)


  개화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를 화기(花旗)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 별 모양을 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의 성좌도(星座圖)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한국의 별은 단추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먹는 별사탕에서 장군들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그 별표 모양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해졌지만 그것이 인체(人體)를 도안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생소한 것같다.

 

펜터그램(☆표)은 위로 솟은 머리와 수평으로 올린 두 손, 그리고 양쪽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人體와 天體(별)를 동일시하고자 한 인간이 비원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별표 밑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싱앙이나  별 하나 나 하나 라고 노래한 우리 민요의 정서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윤동주의  별 (시) 읽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틀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면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이었지만,

실제로 그  서시 나  별 헤는 밤 에 나타난 것들은 그보다 훨씬 고태형(古態形)을 지닌 별이다. 

서시 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의 인유(引喩)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전을 들출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다짐하거나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은 특정한 종교성보다는 소박한 민간신앙의 경천(敬天)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神보다도 하늘-땅으로 대응해 온 신화적 공간의 무대에 가까운 그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1-2행의 하늘 다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 의 3-4행이 짝을 이룬다.
하늘은 땅,  우러러 보다는  굽어보다 로 그 공간을 교체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를 때의 그 무구한 마음(부끄러움이 없기를)이 땅을 향할 때에는 그 잎새에 이는 바람을보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땅에서 하늘로 공간을 바꾸면 그 잎새는 별이 되고 그 괴로움 역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반전된다.

이렇게 하늘-땅으로 교체되는 윤동주의 시선과 마음은 마치 정교한 대위법(對位法)으로 구성된 음악처럼  하늘의 별 과  땅의 잎새 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그래서  하늘은  별로 응축되고,  잎새는  모든 죽어가는 것 들로 대치되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5-6행)라는 새로운 하늘-땅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괴로워했다가  사랑해야지 로 바뀐다. 

 

잎새 와  모든 죽어가는 것 들은 동격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드라마는 지금까지 하늘과 땅, 별과 잎새의 대립항을 이룬 병렬구조를 통사축의 사슬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지금까지 관계없이 보였던

①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다 

②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 

③별을 노래하다 

④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다 가 일련의 계기성(繼起性)을 지닌 사슬구조로 연결되는것이다.

 

  그래서  서시 의 공간구조가 하늘, 땅, 바람의 삼원구조로 되어 있듯이 그 시간구조 역시 과거(1-4행 괴로워했다 ),

미래(5-8행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 그리고 현재(9행  스치운다 )로 삼등분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7-8행)는 직설적인 산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길은 바로  서시 의 병렬구조와 통사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항으로 공간(하늘-땅)과 시간(어제-내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공간에 속해 있지만 화살표와 같이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 이라고 할 때는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걸어가야겠다 라고 할 때의 그 길은  사랑해야지 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출현한다.
  그 길은 공간성으로 볼 때에는 땅(잎새)에서 하늘(별)로 오르는 언덕길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시간성으로 볼 때에는 과거(괴로움)에서 미래(사랑해야지)로 향하는 그 도상(途上)의 현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시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로 끝맺고 있다. 일행으로 단독 연(聯)을 이루고 있는 이 시행은 본문으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나가 앉은 섬처럼 보인다. 앞의 시들이 과거나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서 이 마지막 연(聯)만이  스치운다 로 현재형이다.

그냥 현재가 아니라  오늘밤에도 라는  도 의 조사가 의미하듯이 그것은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오늘 인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밤과 바람, 그리고 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ㅂ 음으로 시작되어 있는 이 세가지 단어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어둠과 빛은 대립된 개념이지만 별빛은 밤의 어둠없이는 빛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별빛과 결합된 어둠은 부정축에서 긍정축으로 그 의미의 화학변화를 일읕키기도 한다.
  바람 역시 그렇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 기도 한 것이다. 

일다 와  스치다 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길 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이의 바람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오늘 이라는 그 도상성(途上性)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 가  노래하다 로,  노래하다 가  사랑하다 로, 그리고  사랑하다 가  걷다 (실천하다)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낮은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를 반전시키는 감도높은 인화지인 것이다.   만약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잎새 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이 될 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壓制)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은 광복의 별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 에 대한 사랑은 민족애(民族愛)로 축소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 역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들린다.
  반대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 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랑해야지 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博愛) 정신과 직결되고 그 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 결과로 종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가  서시 에서 읽는 그 별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인체의 모양이 그대로 빛나는 천체(별)의 모양과 하나가 되는 펜터그램이 그 도형처럼 작은 잎새들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빛나는 신화의 마당에서는 그런 모순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시 는 정치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 

별을 노래하는 마음 의 시론(詩論)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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