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醉月 2009. 8. 19. 15:38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다른 한편으로 몰라보게 수척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북한의 급변사태, 나아가 한반도의 급변사태를 예고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러시아는 어떤 역할을 할까. 이 문제는 러시아 이야기이면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맹점에 대한 이야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자폭한 러시아 해군의 후예들이 100년 만인 2004년 2월10일 인천항을 찾았다.

1860년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차지했다. 조선으로선 잘 지내온 청나라 대신 낯선 서양의 열강과 접경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1891년 러시아는 시베리아철도를 부설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 소리?” 유라시아대륙의 끝과 끝을 철도로 잇는다는 건 동양의 전(前)근대체제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철도로 실어 나른다는 물동량은 어마어마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개국하던 해, 러시아는 마침내 그 일을 해냈다. 한국의 개화파 지식인들은 한반도 턱밑까지 펼쳐진 지구적 구조물을 보고 경악했다.

‘그 철도로 한반도의 인력과 물자가 모두 빨려들어갈지 모른다’는 공포감. 이는 개화파 지식인들이 일본의 ‘동양주의’(동양의 일본 중국 한국이 힘을 합쳐야 러시아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다)로 기우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그런데 구한말 언론사들은 개화파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한국언론사’, 나남) 이들의 생각이 신문의 논조로 표출되고 그 신문의 논조는 대한제국의 집권층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었다.

 

구한말 신문들의 反러 논조

구한말의 ‘메이저 신문’ 격인 ‘독립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매일신문’에서는 반(反)러 정서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자주독립 성향의 ‘독립신문’조차 러시아에 대해선 “동북의 강산을 수중에 농락코자 하여”(1899년 1월17일 논설)라고 적대적으로 썼고 일본에 대해선 “대동 합방하는 높은 의리로”(1899년 11월16일 논설)라고 치켜세웠다. ‘황성신문’은 1900년 8월8일 잡보에서 “주한 러시아 공사가 일본 공사에게 한반도를 나눠 점유할 것을 제의했으나 일본이 거절했다”는 일본 신문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러시아는 음모를 꾸미는 침략국, 일본은 불의를 뿌리친 정의로운 국가라는 인상을 줬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함대의 패전.

신문들의 반러 논조는 제국의 외교정책을 변화시켰다. ‘매일신문’은 1898년 5월16일 ‘외교문서’를 입수하여 “러시아가 진남포항과 목포항의 토지를 구매하려 한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 보도의 파장은 컸다. 러시아에 대한 여론의 감성적 저항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날 일본인이 서울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한성신보’도 같은 외교문서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일본 당국이 외교문서를 빼내와 한국인이 발행하는 ‘매일신문’과 일본인이 발행하는 ‘한성신보’에 넘겨 보도하도록 한, 일종의 ‘언론 플레이’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후 대한제국과 러시아는 커다란 제약을 받았다.

만약 목포에 러시아 해군기지가 설치되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수년 뒤인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한국에 거의 발도 못 붙인 반면 일본은 한국 전역을 병참기지, 보급로로 활용했다. 구한말 러시아는 일본만큼이나 한반도에 영토적 욕심이 강했는지, 본국 중심부와의 거리로 인해 실제 통치할 능력은 있었는지 등에 대해 대한제국의 여론주도층이 좀 더 균형 잡힌 정세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구한말 지식인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편견과 무시라는 실책을 범했으며 이는 국가 역량을 더욱 약화시킨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편견과 무시의 결과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대한제국의 신문들은 일본의 ‘동양주의’는 허구이고 자신들의 정세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황성신문’은 1905년 11월20일 을사조약을 탄식하는 ‘시일야방성대곡’ 논설을 실었다. ‘대한매일신보’는 ‘동양주의’에 대해 “동양을 소멸케 하는 주의”(1908년 12월17일자 논설)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이어 한국이 나아갈 바는 오로지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주의뿐”(1909년 5월28일자 논설)이라고 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대한제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9년 현재까지 러시아는 남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일원으로 남아있다. 구한말이나 미·소 냉전시대의 위세에 비하면 그 위상은 축소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관심과 담론은 너무 빈약한 수준이다. 그 원인은 러시아가 아닌 우리 탓일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유용한 협력대상인데 한국은 이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러시아의 비중이 낮아 보인다는 관점이다.

이명박 정권은 5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이전에도 북한과 대립만 해왔다. 북측도 문제지만 남측의 내부 혼선, 정제되지 못한 발언, 인간미 결핍이 빚어낸 측면도 컸다. 남북관계는 이미 ‘전면 대결태세’(1월17일) 국면에 들어서 있었고 남북한 합의사항은 ‘무효화’(1월30일)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핵실험이라는 극단적 상황변화는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권에 숨통을 터준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 파탄’의 정치적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핵실험 이후 이명박 정권은 대북 강경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7월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에 강하게 해서 회담에 나오도록 하는 전략이다” “북한 제재에 협력해달라고 하는데 다른 소리를 내면 안 되지 않느냐” “세계가 다 강한 견제를 하고 있는데 한국만 원론적인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의 오래된 논쟁이 결론에 이른 것으로도 비친다.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남북관계를 올 스톱할 것이냐”였다. 지금의 상황전개는 ‘올 스톱’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금기시돼온 논의들

이러한 네오클래식(neo-classic·신고전주의) 대북정책은 일견 선명해 보인다. 대신 북한이 버티어내는 한 실질적 진전도 없다. 남북관계는 필연적으로 더 악화된다. 우리에게 숙명과 같은 문제는, 북한은 핵을 가진 위협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함께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이중적 지위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선 동족애와 인도주의가 사라졌다. 10년간 해오던 인도적 지원은 끊겼다. 수많은 사람이 기아로 고통 받고 죽어간다는데 어떤 제스처도 없다.

중병설 이후 수척해진 북한 김정일 위원장. 미국 한 언론은 “1년 정도밖에 못 살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쌀 비료는 한국 정부가 북한 내부에서 민심을 얻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은 김정일 위원장 측근세력뿐 아니라 ‘인민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점은, 북한정권이 정말로 핵을 끌어안고 붕괴했을 때 이런 최악의 불신과 증오로 점철된 남북관계에서 남측은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통일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북한 핵과 관련해 금기시돼온 또 다른 논의도 있다. 왜 한국에 북한 핵만 위협이고 중국 핵은 위협이 되지 않느냐는 점이다. 미국 부시 정권 시절 주한미군 정책을 총괄해온 리처드 P. 롤리스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2007년 7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자국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이는 직간접적으로 한국, 일본을 포함한 주변 이웃국가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나라는 중국이 군사력을 키워나갈 때 그것을 자국을 향한 위협으로 보지 않고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만 본다. 그것은 한국이 동맹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흥미로운 상황이다.”

위구르와 티베트에서 벌어진 유혈충돌은 중국의 완강한 변방정책의 단면을 보여줬다. 중국이 두 지역을 복속한 건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중국군이 북한에 주둔한다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미국과 유엔(UN)이 어떤 이유에 의해 미온적이라면 ‘핵을 가진 중국’과 ‘비핵 한국’의 비대칭 상태에서 한국은 어떤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한국이 대략 구상해둔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한 대비책’은 사실은 롤리스가 냉소한 ‘동맹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라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을 뿐이다.

명분과 실리는 외교에서 모두 중요하다. 이 때문에 직접 대면이 부담스러우면 중개인을 동원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남북관계는 중개인, 우회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역할의 최적임은 러시아로 보였다. 러시아는 중국을 제외하면 북한 지도부와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이고 한국, 북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매개는 한반도의 장래와 관련해 유용한 ‘중도적 해법’이 될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접경지인 두만강 하구.

윤성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남-북-러 철도연결’과 ‘천연가스의 한반도 공급’은 러시아가 내심 희망하는 사업이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철도 연결에 2억2000만달러가 들지만 매년 5000만달러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동해를 따라 부산에서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철도가 연결될 경우 물류·관광 등 다양한 성장동력이 파생될 수 있다. 2007년 고려인인 블라디미르 차 러시아 대통령보좌역 일행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러 철도가 연결되면 금강산 관광사업을 북한 동해 연안을 지나 러시아 바이칼 호까지 가는 철도관광사업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2007년 사할린 1가스전에서 바다를 건너 연해주 인근 하바로프스크까지 연결되는 502km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완성했다. 중국은 석탄 중심 전력체계이므로 러시아는 북한을 경유해 최다 소비처인 한국까지 공급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국도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저렴한 수송비용 등 이익이 크다. 북한은 철도통행료와 가스관의 통관료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3국 경제결속의 정치적 폭발력

철도-가스관은 커다란 정치적 폭발력을 갖고 있다. 남북한과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지방이 경제적으로 결속되어 어느 한 국가가 임의로 이탈하기 어렵게 된다. 러시아 개입이 갖는 유용성이다. 또한 그 틀 속에서 도시-항만 건설, 자원개발 등 다양한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남북 경제의 동반성장, 교류 상설화, 일체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공통의 물적 기반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한민족 중심의 한반도 안정화에 기여하는 효과를 낸다.

윤 연구위원은 “남-북-러 경제체제가 활성화된다면 러시아는 남북통일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는 주변 4강국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으로서는 우방인 미국, 일본의 지지를 기반으로 러시아의 지지를 끌어낸다는 건 통일의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일이며 중국을 보다 잘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이명박 정권 들어 대(對)러시아 관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08년 9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을 경유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선언만 있었지 실행에 옮겨진 건 거의 없었다. 러시아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없다.

북한의 핵실험 등 한반도 불안이 일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2008년 8월13일 러시아는 한국의 러시아 서캄차카 해상광구 개발권을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한국의 가장 큰 해외유전개발사업이었다. 대신 러시아는 이명박 정권이 눈독을 들여온 극동-시베리아의 에너지-자원 개발과 관련해 일본에 180개 사업 33조원의 투자를 요청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밀월시대가 왔다.

지난 4월24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기자회견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비건설적”이라고 말해 정부를 당황하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날인 4월25일 청와대에서 라브로프 장관에게 “북한을 상대로 북한 경유 가스관 사업을 설득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날 사포노프 러시아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27일로 예정된 방한을 취소한다”고 외교부에 통보했다. 한 러시아 소식통은 놀라운 얘기를 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이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는 오히려 극동관구 전권대표의 예정된 방한을 취소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인 고산씨 교체, 러시아 주재 한국 외교관 4명 추방, 러시아 체류 한국인 3명 강제출국, 이재오 대통령당선인 특사의 푸틴 대통령 면담 불발 등 불협화음이 잇따랐다. 푸틴 러시아 총리는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 면담 자리에 5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도와달라면서 집요하게 문제시

이명박 정권과 러시아 정부 사이에 본질적인 문제가 가로막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법하다. 우선 외교노선이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행보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긍정적 성과가 있었지만 너무 도드라져 탈이라는 지적도 있다. 스스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경계를 한반도의 허리에 설정하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본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 북핵 공조, 에너지 공급, 자원 개발, 우주발사체 기술이전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시혜를 주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한국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이권들이다. 동시에 한국 정부는 정권을 바꿔가면서 특정 비리사건으로 러시아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을 집요하게 부정하고 문제시하는 모양새다.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협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인의 거래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다.

검찰은 2006년 러시아 국립음대 총장을 가짜학위 공모 혐의로 지명수배하는 한편 20여 명을 기소했다.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국정원은 주한 러시아대사관 참사관의 가짜학위 유통 연루혐의를 내사했고 검찰은 이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러시아 연방검찰은 “정상적 학위였다”는 수사 결과를 한국에 통보했으나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의 자주외교 차원” “강대국 러시아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정권이 바뀌어 2008년 1심, 2심 법원은 검찰 기소내용을 모두 기각했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4월15일 외교통상부에 “이런 허위사실은 러시아 정부의 한국 정책에 암운을 감돌게 했습니다. 적개심과 당혹감을 키우게 했습니다”라는 내용의 공한을 발송했다.

외연적으로 국가 간 관계에는 특수성이 있고, 외교사안과 사법사안이 별개이긴 하다. 그러나 그 사법사안 속에 상대국에 대한 편견, 무시, 결례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가 간 외교에서도 자존심은 실리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무리 윈-윈 하는 사업이어도 자신을 대놓고 부정하는 상대와는 동업하기 힘들다. 더구나 피내사자였던 러시아 참사관은 한국 업무를 총괄하는 러시아 외교부 한국과장이 됐다. 이명박 정권과 러시아 측의 잇따른 마찰과 관련해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고 대법원은 2008년 중반부터 사건 심리에 들어갔으나 1년째 판결을 내리지 않아 또 다른 억측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국정원 검찰)는 러시아의 학제, 외교관, 검찰 등 공권력 전반을 부정해왔고 한국 최고법원은 맞았는지 틀렸는지 최종 결론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러시아 측에 비쳐졌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이 사건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1년이 다 되도록 판결이 나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 러시아 소식통은 “1, 2심 판결을 뒤엎든 인정하든 결론이 신속하게 나와야 한다. 한반도의 엄중한 시기에 이런 일을 질질 끌어 국력의 진을 빼고 골병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공포의 대상’이던 철도는…

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구한말 때부터 던져진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핵이 지상과제인 듯 말하지만, ‘식견을 갖춘 정책불참자’는 한반도 문제의 더 포괄적인 목표는 남북의 공동번영 내지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북핵 폐기와는 별도의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때 러시아는 우리의 역량에 따라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구한말 ‘공포의 대상’이던 시베리아 철도는 실제로는 좋은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경제단체의 현행 한·러 협의체는 명목뿐이다. 양국의 유력 실세와 경제인이 참여하고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지는 실질적 경제협의체 구성은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외교의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인간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 사소한 인연, 작은 동맹에서부터 역사의 흐름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