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FX 3차’ 사업에 누가 날까
김종대│D&D포커스 편집장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겨냥한 나토 다국적군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공습이 시작된 3월18일부터 1주일째 나토는 작전지휘권 문제로 큰 혼선을 빚고 있지만, 자국이 자랑하는 주력 전투기를 경쟁적으로 출격시키는 데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한때 한국 공군이 탐내던 유럽의 미라주2000, 라팔, 유로파이터, 토네이도와 같은 전투기가 총 출동한 것은 물론, 미국의 F-15E, F-16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전투기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몸매와 최신 성능을 뽐내는 이 전투기들은 마치 미인 대회 출전자들처럼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3월24일 기준으로 이들의 총 비행 시간은 6백 시간을 넘기고 있고, 1천 시간 돌파도 시간문제이다. 21세기 초에 한국의 전투기 시장에서 유럽 전투기와 미국 전투기의 메이저리그가 벌어지던 치열한 마케팅 전쟁이 이제는 리비아에서 실전 검증 전쟁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리비아에서의 전투기 향연은 차기 전투기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짐작케 한다.
형형색색 전투기들의 활약상이 드러난 3월21일 밤 11시33분(현지 시각), 리비아 공습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F-15E 전투기 한 대가 반정부군의 거점인 동부 도시 벵가지 인근 고트 술탄 지역에 추락했다. 한국 공군이 운용하는 F-15K 전투기와 거의 같은 레벨의 전투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건이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는 “전투기가 기기 고장을 일으켰다”라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리비아군의 대공화기에 추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 기종에 비해 개발 시점이 가장 오래된 이 전투기는 한때 ‘노쇠한 헐크’로 불릴 정도로 이제는 한물간 전투기로 알려졌으나, 2002년 한국과 싱가포르에 판매가 성사된 이후 생산 라인이 기사회생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보잉 사는 지난해에 F-15E에다 레이더 반사 면적(RCS: radar cross-section)을 감소시킨 5세대 전투기 기술을 사용한 F-15SE를 선보인 바 있다. 기존 F-15E에다 내부에 무장을 적재할 수 있는 컨포멀 연료 탱크(CFT)를 도입하고 수직 꼬리 날개를 15˚ 외각으로 기울여 레이더 반사 면적을 줄였다. 또한 레이더 흡수 재질을 사용해 스텔스 성능을 향상시켰다. 사일런트 이글은 한국, 일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F-15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에게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F-35·유로파이터·F-15SE 등 ‘3파전’
한국 공군의 ‘FX 3차’ 사업에 반드시 진출하려고 다짐하던 보잉 사의 입장에서는 이번 리비아에서의 추락이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경쟁사인 F-35 생산업체 록히드마틴 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F-35는 경쟁 기종에 비해 스텔스 기능이 가장 탁월한 제5 세대 전투기임에 틀림없지만, 개발이 지연되고 있고 가격도 예상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어 미 공군도 현재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이 기종을 도입하기로 했던 이스라엘도 올해 도입 시기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진출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하는 록히드 입장에서 F-15E의 추락은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역시 한국 진출을 노리는 유로파이터 타이푼 생산업체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역시 표정 관리를 하느라 조심하는 눈치이다. 유로파이터 개량형은 공중전 능력은 물론 초정밀 대지 타격 능력이 한층 강화된 기종으로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4개국이 자국의 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공동으로 개발한 기종이다. 기체의 중량을 줄이기 위해 탄소섬유 복합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무장 능력은 한층 강화되었다는 평이다. 2002년에도 한국에서 라팔, F-15K와 함께 3파전을 벌였던 바로 그 기종의 개량형이다. 당시 공군시험평가단은 유로파이터를 가장 선호했으나 그때까지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대상 기종에서 일찌감치 탈락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리비아에서 그 성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한국 진출을 노릴 만한 상황이 되고도 남았다.
이렇게 록히드마틴 사의 F-35,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보잉 사의 F-15SE 등 3개 기종은 한국 공군의 차기 전투기 사업, 즉 FX 3차 사업의 유력한 기종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대다수 언론은 지난 3월8일 국방부가 국방 개혁 과제를 확정하면서 “FX 3차 사업으로 스텔스 전투기 전력화 계획을 2015년 이전까지 앞당길 계획이다”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만난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반드시 현 정부 임기 중에 구매 계약서에 서명한다는 일정으로 가는 것 같다. 정권 핵심부의 구매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의 경우에도 애초 목표로 했던 2015년보다 더 이른 시기에 도입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2015년 이전 스텔스 전투기 도입’ 그 시점이 기존의 예상을 앞지른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특히 F-35의 경우 향후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은 현재 스텔스 전투기 개발 수준, 가용 예산, 미국 내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절대 맞출 수 없는 전력화 시점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합참의 5년 주기 기획 문서인 ‘2013~2017 중기 군사 전력 목표 기획서(JSOP)’와 ‘2014~2018 기획서’에서는 똑같이 2020년까지 총 60대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합참의 기획서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는 2015년 두 대, 2016년까지 여덟 대, 나머지 50대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도입할 장기 소요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당초 기획 문서에서 제시한 일정보다 전력화를 앞당기려면 아직은 개발 중이어서 실체가 없기 때문에 ‘깡통 비행기’로 알려진 F-35는 자동 탈락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유로파이터와 F-15E의 경쟁이 될 것이지만, 최근 국방부 안팎에서는 이와 달리 ‘F-35가 가장 유력한 기종’이라는 아리송한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와 같은 말이 나오는 가장 확실한 논거는 합참의 기획 문서에서 ‘차기 전투기의 핵심 성능은 스텔스 기능’이라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스텔스 기능이 가장 뛰어난 F-35가 유력 기종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유로파이터나 F-15E는 정면에서나 일부 스텔스 기능이 발휘될 뿐, 애초부터 스텔스로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방위에서 스텔스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종이 아니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국방부는 ‘적극적 억제 전략’을 향후 군의 새로운 작전 개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북한의 핵심 목표를 정밀 타격하는 스텔스기의 도입에 대해 정권적 차원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당사자는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스텔스기 도입에 관심을 급격히 고조시킨 계기는 지난 1월14일, 중국과 일본을 순방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데서 비롯되었다. 게이츠 장관은 정오 무렵 서울에 도착해 국방부에서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40여 분간 회담한 뒤 청와대로 가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게이츠 장관의 방한은 ‘스텔스 전투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말한다. “게이츠 장관이 청와대에서 이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1월11일 방중 당시 있었던 중국의 J-20 스텔스 전투기 시험 비행을 언급하면서 ‘한국도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가 꼭 필요하다’라며 도입을 권고했다. 이에 이대통령이 ‘(미국제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면) 그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고 묻자, 게이츠 장관은 ‘FMS(대외 군사 판매)는 가능하지만 그 외의 것은 돌아가 검토해보아야 한다’라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게이츠 장관이 다녀간 직후 미국 록히드마틴 사 관계자들이 급히 한국을 방문해 방위사업청 관계자와 한국우주항공(KAI) 관계자들을 접촉했고, 이 자리에서 우호적인 F-35 판매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가격과 도입 시기, 기술 이전에 대한 파격적 제안이 있었고, 이에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측의 파격적 제안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군 당국이 이를 제대로 검증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계속되는 개발비 상승과 성능상의 문제로 미 공군도 F-35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파격적 제안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국방부 “차기 전투기 핵심 성능은 스텔스”
한국군의 ‘적극적 억제 전략’, 즉 북한의 방공망을 돌파한 정밀 타격 능력 확보라는 안보 논리도 F-35를 밀어붙이는 논거이다. 전장의 종심이 짧고 조밀한 방공망을 자랑하는 북한의 핵심 목표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텔스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스텔스 기능은 레이더 반사 단면적(RCS)을 얼마나 축소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F-15K의 RCS에 비해 F-35는 100배 이상, F-22(록히드마틴 사)는 1천 배 이상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투기끼리의 1 대 1 가상 교전에서 F-22는 F-15·F-16과 맞붙어 1백44전 전승의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합참의 기획 문서에 명기된 ‘차기 전투기의 핵심 성능’인 스텔스는 차기 전투기 선정에서 가장 명확한 지침이 된다.
이러한 록히드마틴의 독주를 그냥 보고만 있을 보잉 사가 아니다. 당장 보잉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미국 현지 공장으로 초청해 언론 플레이를 전개했고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보잉 사의 논리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스마트 무기와 무인항공기 등 스텔스기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는 새로운 무기 출현도 예견되는 상황에서 스텔스 전투기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러 출처의 감시 정찰 자산(ISR), 예컨대 이지스레이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EW&C), 무인항공기와 제4 세대 전투기가 융합된 네트워크 작전이 스텔스 전투기를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F-15SE가 훌륭한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EADS 역시 영국 대사관을 전면에 내세워 정치권을 접촉하고 있다. 거의 보잉 사와 같은 논리로 F-35의 한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국방부는 예정했던 60대 도입은 무리라고 보고 현재 FX 3차 사업을 쪼개서 1차로 20대를 구매하는 ‘미니 FX 사업’으로 변형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전투기의 경쟁은 한국에서도 똑같은 모양의 로비전으로 재현되고 있다.
리비아 공격에 나선 다국적군, 토마호크에서 B-2까지 총동원
양욱│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3월19일 오후 5시45분께 정체 모를 전투기들이 리비아 벵가지 상공에 나타났다. 반군 진압을 위해 파죽지세로 달려들던 리비아군 전차 4대가 커다란 폭발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라팔 여덟 대와 미라지2000 네 대로 구성된 프랑스 공군 전투기 편대가 등장한 것이다. 한편 미국 해병대의 AV-8B 해리어 수직 이착륙기들도 벵가지 상공으로 날아와 리비아군 장갑 차량들을 공격했다.
밤 9시가 되자 전혀 다른 차원의 전략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중해에 배치되어 있던 미·영 해군의 잠수함과 구축함대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무려 1백24발이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은 수백 km를 날아 카다피 정권의 방공 시스템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타격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의 토네이도 전투기들은 영국 본토에서 이륙한 후 4천8백km를 비행하며 스톰섀도우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미 수주 전부터 리비아에 침투해 있던 영국 특수부대 SAS(육군 공수특전단)와 SBS(해군 특수부대)가 이미 목표 지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 미·영 연합군의 정밀 폭격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미·영의 효율적인 공격으로 개전 1일차의 성과는 양호했다. 미스라타, 시르테 등 지중해 해안 도시에 배치된 카다피 정부의 방공 시설과 레이더 기지 20여 개소가 파괴되었다. 토마호크 공격으로 리비아는 트리폴리와 시르테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레이더 탐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4개국이 참가한 리비아 군사 개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작전은 그 자체가 묘하게 시작되었다. 리비아를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호가 통과된 후에 각국은 느슨한 공조 체제를 유지하며 자국의 전력을 해당 지역으로 보냈다. 작전에 붙은 명칭조차 제각각이었다. 미국, 이탈리아, 덴마크 및 노르웨이는 ‘오디세이의 새벽(Odyssey Dawn)’, 영국은 ‘엘라미(Ellamy)’, 프랑스는 ‘아르마땅(Harmattan)’, 캐나다는 ‘모바일(Mobile)’ 등 통일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독일은 아예 군사 개입을 배제한 상태이다. 다국적군을 통합할 중앙 사령부조차도 없었다.
이튿날인 20일, 미군은 본격적으로 공군력을 투입해 카다피의 공군력을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작전의 주체인 아프리카 사령부는 미국 본토로부터 B-2 스텔스 전투기까지 불러들였다. 일단 비행하면 1시간에 9천만원씩 비용이 들어간다는 B-2 폭격기는 시르테 공군 기지의 리비아 군용기 격납고 등 군사 목표 45개소를 공격했다. 이와 동시에 EA-18G 그라울러 전자전 항공기가 적 레이더를 교란하는 가운데, F-16C 팰콘과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 등 총 15대가 투입되어 본격적인 항공 세력의 지상 공격이 시작되었다. 민사심리전에 활용되는 특수전 항공기인 EC-130J 코만도솔로III는 리비아의 해군 함정들에게 항구에 머무르지 않으면 격침될 것이라는 경고 방송을 실시했다. 이에 질세라 프랑스도 공군기를 투입해 11회의 임무 비행을 실시했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는 툴롱으로부터 샤를르 드골 항공모함까지 불러들였다.
전투기 세일즈 같은 군사 작전 펼쳐
▲ B-2 폭격기 (위부터) ⓒ로이터
▲ MV-22 ⓒAP연합
▲ 라팔 ⓒEPA
▲ 타이푼 ⓒEPA
▲ F-15 ⓒ로이터
작전 3일차인 21일부터는 지상 방공 무기, 즉 대공 미사일에 대한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SA-2, SA-3, SA-5 등 옛 소련에서 도입했던 대공 미사일들은 줄줄이 다국적군 공군의 표적이 되었다. 프랑스 공군은 55회의 임무 비행을 실시했고 리비아군 전차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미 해군은 토마호크 미사일 12발을 추가로 발사하면서 리비아군의 지휘부와 방공 시설을 무력화시켰다. 공격은 트리폴리, 사브하, 시르테 등 리비아 전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토마호크 한 발이 카다피의 관저인 ‘바브 알-아지지야(Bab Al-Azizia)’ 요새를 타격했다. 이후 다국적군은 재차 이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켰지만, 카다피 지지자들이 시설 주변에 늘어서서 인간 방패를 자처하는 바람에 폭격을 하지 못하고 귀환했다. 한편 벵가지 탈환에 실패한 리비아군은 이제 목표를 서부 지역으로 돌려 진탄과 미스라타 등 주요 도시의 반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3월22일 전투에서는 새로운 국면을 나타냈다. 전날 밤 F-15E 한 대가 벵가지 남서쪽 40km 지점에서 추락했기 때문이다. 조종사와 후방 무기 관제사는 모두 탈출에 성공했지만, 지상에 흩어져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군 아프리카 사령부는 지중해에서 대기 중이던 제5 원정타격전단에 구출 임무를 부여했다. CSAR 임무를 위해서 제26 해병 원정대를 태우고 MV-22 오스프리 틸트로터 항공기와 CH-53E 헬리콥터 두 대가 출동했다. 이들의 엄호를 위해 AV-8B 수직 이착륙기 두 대가 호위 임무에 나섰다. 구출 부대는 조종사를 회수하고, 군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F-15E 전투기의 잔해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한편 같은 날 프랑스 해군의 항모 샤를르 드골 호가 도착해 추가로 라팔 전투기와 쉬페르 에땅다르 공격기가 임무에 투입되었다. 또한 영국 공군의 타이푼 전투기가 최초로 전투 임무에 나서기도 했다.
23일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 다국적군의 항공 활동은 급격히 증가했다. 전체 비행 임무의 55% 이상을 다국적군에서 담당하게 된 것이다. 미스라타 등지에서 반군에 대한 기갑 공격을 감행하던 리비아군은 다국적군의 폭격이 있자 도시 외곽으로 후퇴했다. 작전 6일차인 24일에도 공습은 계속되었다. 영국 해군은 트라팔가 잠수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실시했고, 프랑스 전투기들은 미스라타에 착륙한 리비아 공군기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현재까지의 작전만으로도 일단 비행 금지 구역의 설정이라는 임무는 충분히 충족된 셈이다. 다만 리비아 시민의 학살 방지, 더 나아가 카다피 정권의 교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통일된 군사 작전이 필요하다. 다국적군을 통합할 수 있는 중앙 사령부가 필요하다. 비록 독일과 터키의 반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도의 ISAF(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국제 안보 지원군) 모델이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투는 각국의 첨단 무기 시험 무대이다. 특히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프랑스는 라팔을 앞세워 그 기량을 한껏 자랑하며 세일즈 같은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다. 카다피 정권과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던 프랑스는 새로운 역학 구도를 만들고자 전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미국의 태도는 상당히 유보적이다. 미국은 12억원짜리 토마호크 미사일을 1백50여 발이나 발사했고, 비행 금지 구역을 유지하는 데만도 매주 1천억원 이상의 비용을 써야 한다. 하지만 리비아에서는 이미 많은 미국 기업이 성공적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사태 개입을 통해서 크게 얻어낼 국익은 없다. 미국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다.
동북아 ‘스텔스 전투기’ 삼국지
2021년께 독자 개발機 모두 선보인다
中 ‘J-20’으로 달리고, 日 ‘ATD-X’로 걷고, 韓 ‘KF-X’로 걸음마 시작해…
한·중·일 3국이 적에 노출되지 않는 ‘스텔스(stealth) 전투기’ 개발에 몰두한다. 선두주자는 중국이다. 1월 초 젠(殲)-20(J-20)을 선보이며 치고 나왔다. 말로만 스텔스 전투기 개발능력이 있다고 떠든다고 해도 실제로 전투기를 만들어 하늘에 띄웠느냐 안 띄웠느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행보는 주변국을 잔뜩 긴장시켰다.
특히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혼신을 쏟아온 일본으로서는 가슴이 쓰릴 일이다. 실물 크기 모형(mock-up)은 물론 실증 엔진과 첨단 항공전자장비 등도 개발 완료했다니 말이다.
1·2차 핵실험과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으로 갑자기 커져버린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은 정밀타격무기로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서두른다. 또 국내에서 생산한다는 독자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런 세 나라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 의지 뒤에는 나라마다 복잡한 속내가 숨어 있다. 각국이 스텔스 전투기에 ‘필 꽂힌’ 사정을 들여다봤다.
■중국의 포효, J-20 띄우다
중국에서 스텔스 전투기는 ‘은형전투기(隱型戰鬪機)’로 불린다. 뜻 그대로 ‘숨어버린 전투기’다. 1월 11일 중국이 독자 개발한 차세대 은형전투기 젠(殲)-20(J-20)의 비행 사실이 중국 언론과 중국 내 민간 군사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관련 동영상도 돌았다. 도면상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J-20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물론 이전에도 J-20 시험비행 정보와 사진 등이 일부 노출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서방은 물론 러시아조차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회의적이었다. 중국의 항공우주기술력이 아직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할 단계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국 기술로 우주인을 지구궤도에 올려 보내고 다시 귀환시켰음에도 말이다.
중국은 J-20을 통해 세계 3번째 스텔스 전투기 개발국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됐다. 이제 서방세계와 러시아는 원하든 원치 않든 중국의 항공우주기술력이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J-20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구체적 성능이나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역시 J-20의 실전배치에는 앞으로 수년의 시간과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중국은 정보 부족에서 비롯한 서방 언론의 과대평가, 나아가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는 현상을 내심 반기는 눈치다.
J-20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았다. ‘스텔스’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 미국은 F-117을 통해 스텔스가 전장에서 얼마나 유용한지 입증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더욱 성능을 강화한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Raptor)와 스텔스 폭격기 B-2A 스피릿(Spirit)을 실전배치했다.
중국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1997년 미 해군정보국(ONI)이 이런 사실을 처음 포착했다. 이후 중국은 J-XX·J-X·XXJ·J-14 등 다양한 이름의 5세대급 스텔스 전투기 개발계획을 진행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J-20 외에 중국이 개발 중인 스텔스 전투기가 2~3종 더 존재할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스텔스 전투기 개발과 관련한 최첨단 항공우주기술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스텔스 기술 보유국인 미국의 기술을 훔치거나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J-20은 고등전술전투기(ATF) 사업에서 패배하고 군축의 광풍에 휩쓸려버린 YF-23의 제작사 노스롭·맥도널더글러스의 핵심 기술이 상당 부분 녹아들어 있다고 평가된다.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을 “미국의 군사기밀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거대한 블랙홀”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러시아 역시 자국의 최첨단 기술을 중국에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 한 군사전문가는 “중국이 J-20 개발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미국에서 훔쳤다면, J-20 비행에 필요한 실용지식은 러시아에서 훔쳤다”고 분석했다.
과거 옛 소련은 ATF에 대항하고자 1980년대 후반부터 ‘다목적전선항공전투기(MFI)’ 개발을 시작했다. 이렇게 완성한 미코얀-구레비치설계국(OKB Mikoyan-Gurevich)의 미그(MiG)-1.42(프로젝트명으로 시제기는 ‘미그-1.44’)가 J-20의 직계조상이라는 말이다.
미그-1.42는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자마자 옛 소련이 붕괴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미코얀설계국은 이후 ‘차세대 전투기(PAK FA)’ 사업에서도 수호이설계국의 T-50에 완패했다. 결국 미그-1.42는 사장됐다.
핵심 기술 미·러에서 반출
높은 기술적 완성도에도 정치적 이유로 버림받은 이 계획은 당시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중국에는 더할 나위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후 거의 대부분의 핵심 기술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J-20은 많은 부분에서 시제기 미그-1.44와 공통점을 보인다. 일부 기체장비의 경우 장착 위치가 같을 정도다.
J-20은 언급한 YF-23과 미그-1.44의 특징을 두루 갖췄다. 모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비운의 존재들이지만 그 기술적 완성도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이런 기술력이 J-20에 고스란히 계승됐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J-20이 심각한 안보위협이라는 주장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실전배치까지 최소 5년 더 걸리리라 예상되며, 어느 정도의 성능을 발휘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한 전문가는 “발전 가능성 못지않게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 일각에서는 2020년께에야 J-20을 군사적 위협으로 분류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평가에 선을 긋는다.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 군부가 그렇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자 인민해방군 소장인 주허핑(朱和平) 공군지휘학원 부원장은 3월 3일 인민대회당에서 신화통신 기자와 만나 J-20에 거는 중국 군부의 지지와 믿음을 재확인했다.
반면 중국 역시 J-20이 동북아시아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결과를 낳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시험비행 성공 이후 중국은 “J-20 개발은 공격 목적이 아닌, 오직 중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중국위협론’을 불식하려는 자구책이다. 이런 자위권 차원의 대응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 군부는 “향후 J-20을 자국 내에만 배치해 영공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J-20의 개발 요인으로 미국이 F-22를 일본을 비롯한 자국 영토 인근에 배치한 점을 상기시킨다. 한마디로 동북아 군비경쟁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셈이다. 그 대표 논객이 국방대학 전략문제연구소장인 양이(楊毅) 해군 소장이다. 그는 1월 13일자 <인민일보> 기고문을 통해 “중국은 영원히 패자(覇者)를 자처하지 않겠으며, 어떤 국가와도 군비경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협 위원인 인줘(尹卓) 해군 소장 역시 최근 “J-20 스텔스 전투기는 제공권 확보에 쓰인다”면서 “이는 다른 국가가 우리 영공을 침범할 때 J-20을 사용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런 공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가는 없다.
■일본, 실증기 ‘신신’ 개발 중
동북아 국가 중 스텔스 전투기가 가장 필요한 국가는 다름 아닌 일본으로 지목된다.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서쪽의 북한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력은 일본 단독으로 대응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쿠릴 열도(일본명 ‘북방 4도’)에 사정거리 300km급 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인 야혼트를 장착한 이동식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할 계획이다. 향후 S-400 지대공미사일과 신형 공격헬기도 배치한다. 병력은 감축하되 장비는 최신형으로 교체하는 형태다. 실제 전력은 오히려 더 강해지는 셈이다.
그나마 남쿠릴 열도의 상황은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尖閣)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최근 들어 이 지역에서 일·중 간 충돌이 더욱 빈번해졌다. 지난해 9월 일본 순시선의 중국 어선 나포사건 때는 심각한 외교분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3월 2일에는 최초로 중국 전투기 2대가 센카쿠 열도에 접근해 오키나와(沖繩) 나하(那覇)기지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긴급 발진하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연출됐다.
최근 일본은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응해 주요 전력을 북부에서 남부로 재배치 중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옛 소련의 군사적 대응에 집중하던 일본의 방위정책이 중국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한 군 관계자는 “일본이 평화헌법 제약 속에서도 지역 내 군사력 균형을 맞추려고 국가안보 전략을 수정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오키나와 열도의 군사력 강화계획에 따라 나하 기지에 12대의 F-15J를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자위대 수뇌부의 중론이다.
설상가상 현 전력으로도 버거운데 러시아와 중국 모두 스텔스 전투기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두었다. 북한 역시 일본 전역을 사정권에 둔 지대지 탄도미사일 ‘무수단’을 지난해 11월 군사 퍼레이드에서 공개했다. 일본은 여기에 핵탄두나 화학탄두를 탑재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결국 현 상황을 극복하는 비대칭 전력은 현실적으로 스텔스 전투기뿐이라는 생각이 자위대 내에서 지배적이다.
물론 일본 국내 사정도 있어 보인다. 예전 같지 않은 일본의 경제력은 군사력 증강의 발목을 잡는다. 또 최소한의 자위권만 인정하는 평화헌법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군사전문가들은 “결국 전체 자위대 규모는 감축하면서도 전력은 배가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풀이한다. 스텔스 전투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자 하토야마(鳩山) 정부 출범 당시 잠정적으로 유보했던 일본의 차기전투기사업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 중국의 J-20 공개가 직격탄을 날렸다. 3월 7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이 “차세대 주력 전투기 선정과 관련해 필요한 성능과 운용 경비 등을 명시한 제안요구서(RFP)를 해외 전투기 제조업체에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물망에 오른 기종은 미국·영국 등 9개국이 공동 개발 중인 F-35, 영국·독일 등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로파이터, 미국의 F/A-18E/F와 F-15SE(Silent Eagle) 등이다. 일본의 차세대 주력 전투기는 지속적인 개량사업에도 2014년 퇴역을 앞둔 F-4EJ 카이(改)를 대체하게 된다. 현재 항공자위대는 차기 전투기 40대를 도입해 2개 비행대대를 편성할 예정이다. 2011∼2015년도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는 우선 12대를 구입한다는 계획을 포함해놓았다.
실증 엔진 시험 완료해…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의 차기전투기사업은 스텔스 능력에 거는 기대치 혹은 가중치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도입 대수도 40대에 불과하다. 사실상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못박은 한국과 다르다.
이는 현재 일본에 독자적인 스텔스 전투기 개발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한 일본의 안보전문가는 “가장 필요한 기종은 F-22인데, 2015년은 돼야 도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반면 자체 개발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속내를 밝혔다. 일본의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최소한 F-22 수준은 돼야 중국·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다는 말이다.
기존 F-2 전투기를 대체할 스텔스 전투기 개발은 순항 중이다. 결국 현재 진행 중인 차기전투기사업은 국산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즉 선진기술실증기(ATD-X) ‘신신(心神)’ 개발의 가교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3월 8일 항공자위대 중장이자 방위성 항공시스템개발국장인 요시오카 히데유키(吉岡秀正)는 “2014년에는 개발 중인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가 시험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2009년 이후 390억엔(4억7300만 달러)을 투자한 스텔스 전투기 개발은 순조롭다”고 말했다.
ATD-X는 미 의회가 최첨단 군사기술의 기밀 유지를 이유로 F-22의 해외 수출을 불허함에 따라 등장한 일본식 대안이다. 현재로서는 2016년 완성될 이 전투기가 현 계획처럼 기존 F-2 전투기를 완전히 대체할지, 이름 그대로 선진기술실증기에 머무를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ATD-X를 미국으로부터 F-22 수출 승인을 얻어내려는 일종의 ‘협상 카드’로 평가하기도 한다.
요시오카 중장 역시 이를 일부 인정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비행하더라도 곧바로 양산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어디까지나 고급 기술을 테스트하려는 실증기로, 향후 정부가 어떻게 할지는 2016년에 결정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공식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핵심 군사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해 해외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각각 PAK-FA T-50과 J-20을 공개적으로 개발하는 시점에서의 ATD-X 개발은 일본 정부의 포기하지 못할 노력으로 인식된다.
애당초 ATD-X는 1991년에 구상됐다. 여기에는 기체·엔진·항공전자장비 등 첨단기술 개발이 포함됐다. 이 구상에 따라 일본은 스텔스 성능과 고(高)기동성을 실현하는 비행제어시스템, 그리고 실증엔진 연구를 진행했다.
기술실증기라고 해도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ATD-X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우선 레이더반사면적(RCS) 측정을 목적으로 제작한 실물 크기의 ATD-X 모형은 길이 약 14m, 날개 너비 약 9m, 높이 약 4m이며, 자체중량은 약 9t으로 F-16 전투기에 버금간다.
ATD-X의 RCS는 ‘작은 새’ 정도로, 미국 5세대 전투기인 F-22와 F-35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RCS가 낮다고 알려졌다. 또 한눈에 스텔스 전투기임이 구분되는 외부 형상은 스텔스성과 기동성을 고려해 설계했다.
2020년께에는 동북아 최강
실증엔진은 이미 시험 완료했다. 사실상 비행실증단계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알려졌다. 이런 외적 특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눈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항공전자체계다. ATD-X에 장착될 AESA 레이더는 기존 AESA 레이더보다 탐지 능력을 배가했다. 여기에 더해 AESA 레이더를 이용해 출력을 높여 고주파 전자공격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첫 비행이 예정된 ATD-X가 이런 기대 이상의 성능을 실제로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이런 ATD-X 개발을 놓고 볼 때, 일본의 상황이 꼭 불리하지만은 않다. 우선 러시아의 PAK-FA T-50이나 중국의 J-20은 현존하는 위협이 아니다. 이들 스텔스 전투기가 실전배치되려면 최소 5~7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또 만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F-22를 도입하기 힘들다면 일본은 ATD-X 사업을 더욱 확대해 F-2가 아닌 F-15J를 완전히 대체할 F-22급 스텔스 전투기로 개발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F-22가 도입되면 ATD-X는 기존 계획대로 F-16급으로 완성해 F-2를 대체한다.
이와 별도로 일본은 스텔스 전투기를 요격할 방공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방위성은 올해부터 5년간 39억엔(약 526억원)을 이 계획에 투입한다. 스텔스 전투기를 포착하는 ‘레이더와 적외선 복합센서’ 연구개발에도 5년간 98억엔(약 132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쟁국에 뒤처져 보이지만 일본은 2020년께에는 동북아에서 가장 강력한 스텔스 전투기와 스텔스 전투기 탐지능력을 함께 갖추리라 예상된다. ‘창’과 ‘방패’를 모두 갖는 셈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한국
한국도 중국·일본과 격차를 만회하려고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발 벗고 나섰다. 직접적 원인은 J-20의 등장이다. 스텔스 전투기 전력화에 가장 미온적 반응을 보였던 한국 정부는 J-20 시험비행 후 최우선 전력증강사업으로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서두르는 눈치다. 각종 전력증강사업이 경제논리로 혹은 예산상의 이유로 순연되거나 재조정된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3월 초 국방부는 전력증강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307계획’에 따르면 2015년 전력화를 목표로 스텔스 전투기를 조기 도입하게 된다. F-15K급 전투기 60대를 확보하는 3차 차세대전투기(F-X)사업을 통해 스텔스 전투기 60대를 직도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사업 추진 여건 미성숙을 이유로 대부분의 예산을 삭감했다. 하지만 이번 조정으로 다른 전력증강사업 예산을 축소·전용하는 형태로 예산을 확보했다.
3차 F-X사업과 별도로 2001년 10월부터 추진해온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KF-X), 일명 ‘보라매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2월 공군은 KF-X와 관련한 제안요청서(RFP)를 국내 개발업체에 전달했다. 2월 16일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설명회까지 열었다. 사업 추진 방식을 둘러싸고 개발업체 간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3월 22일까지 제안서 접수가 마감된다. 4월 초 업체를 선정해 5월 1일부터 탐색개발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2001년 3월 20일 공군사관학교 49기 졸업식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은 “늦어도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이 야심 찬 계획은 고성능 국산 전투기에서 스텔스 전투기 국내개발로 발전했다. 이때만 해도 목표는 F-35보다 한 단계 아래지만, 기존 4세대 전투기보다 우수한 스텔스 능력을 갖춘 국산 전투기 개발이었다. 일부 핵심 기술은 해외업체와 기술협력을 통해 확보하되, 스텔스 기술은 국내에서 개발하기로 했다.
특징은 쌍발엔진에 기체 내 무장 탑재, 작전반경은 한반도 전역이었다. 노후한 F-4와 F-5를 대체할 경우 생산대수는 120대 이상으로 예상됐다. 경제적 측면에서 국산화 타당성 역시 확보됐다. 그러나 KF-X는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쳤다. 예산과 성능의 문제였다.
먼저 예산의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과 제작 사례를 볼 때 16조~19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실제로 현재 개발 진행 중인 F-35는 끝 모르고 치솟는 개발비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KF-X 사업과 관련해 스텔스 능력을 부여할 경우 순수 개발비를 8조~11조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스텔스 능력을 부여하지 않을 경우 순수 개발비는 5조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또 개발을 완료해도 양산에만 7조원 수준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봤다.
성능 역시 논란이었다. 2009년 국방기술품질원(DTaq)은 미국을 100%로 봤을 때 한국의 스텔스 형상설계와 복합재 기술 수준은 각각 49.4%와 56.7%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또 KF-X 개발에 필요한 스텔스 핵심 기술을 확보해도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미국 대비 5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완성한다 한들 F-22는 물론 F-35 수준에도 근접하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전반적으로 항공우주기술을 G7 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이상 KF-X 국산화는 요원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KF-X 사업의 방향을 틀었다. 현재 개발 추진 중인 KF-X는 F-16과 F-35의 중간급 성능을 목표로 한 쌍발엔진 중급(medium) 스텔스 전투기다. 이런 까닭에 ‘F-16+급’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텔스 능력을 제외해도 속도와 무장 장착 능력 등 외형적 성능은 F-16 전투기보다 우세하다. 또 레이더·임무컴퓨터 등 항전장비 역시 최첨단장비를 탑재한다.
틈새시장 노리는 KF-X
해외 수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 양산 목표시점인 2021년이 되면 F-22와 F-35 외에 수출 가능한 서방권 스텔스 전투기가 전무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자 개발하더라도 ‘무기 수출금지 3원칙’에 따라 시도조차 못한다. 소위 틈새시장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러시아·유럽·일본·중국 등 자국이 개발한 전투기를 운용하는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중급 전투기는 약 2600대 수준이다. 2020년을 전후해 이 중 절반인 약 1300대를 새 전투기로 대체해야 하는데 마땅한 대상이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소요분 120대를 제외하더라도 최소 300대에서 최대 500대 이상의 수출이 가능하리라 본다. 공동 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나라도 있다. 인도네시아·터키·싱가포르 등이다. 이들이 KF-X 개발에 참여한다면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정부는 개발도상국들과 컨소시엄 형태로 KF-X 국제협력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미 2009년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KF-X 개발 프로그램 비용의 20%를 분담한다. 또 성공적으로 개발할 경우 50대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터키 역시 KF-X 개발비용 20%를 분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KF-X는 5월부터 탐색개발에 들어간다. 개념설계 과정으로, 전체 개발비의 2~5% 내외 비용으로 2~3년간 수행하는 선행연구다. 이를 통해 개발 형상을 확정하고, 총 개발비와 소요인력 재산정, 부품 공급사업 확정, 기술 성숙도 확인, 핵심설계 등이 이뤄진다. 이런 타당성 재평가 결과 개발이 확정되면 2013~2021년 9년간 약 5조원을 들여 체계개발을 하고 2021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이처럼 한국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 획득은 3차 F-X 사업을 통한 스텔스 전투기 60대 직도입, 그리고 KF-X를 통한 스텔스 전투기 국내 생산으로 요약된다. 전문가들은 3차 F-X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절충교역도 가능하리라 내다본다. KF-X 개발용 스텔스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말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이웃 일본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ATD-X를 개발하듯 KF-X 역시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전투기 개발기술 확보는 국가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한 군 관계자는 “동북아 스텔스 전투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지속적이고 확고한 개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본격적인 3국 간 스텔스 전투기 개발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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