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조중전쟁 (朝中戰爭)
중부전선에서는 북한군 1개 연대 병력이 한국군에 투항해온다.
이동일은 송아현과의 통화에서 북한 반란군을 ‘혁명군’으로 표현하는데…. <편집자>
2014년 7월26일 토요일 14시, 개전 27시간10분25초 경과.
전화기를 귀에 붙인 심양군구사령관이며 조선진주군사령관 후성궈가 두꺼운 눈꺼풀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예, 제4장갑사단은 전멸했습니다. 사단장 왕이안 중장 이하 참모들까지 모두 전사했습니다.”
후성궈의 말끝이 떨렸지만 계속한다.
“곽산에 파견했던 제4장갑사단의 전차 268대 중 살아 돌아온 전차는 없습니다.”
상황실 안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후성궈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통화 중이다. 그때 수화구에서 시진핑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 상황은 어떻습니까?”
“425군단은 방어태세를 갖추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후성궈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주석동지, 그러나 이대로 둔다면 해방군의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재공격의 우려도 커집니다. 따라서…….”
“기다리시오.”
차갑게 말을 자른 시진핑이 한 마디씩 차분하게 말한다.
“북한군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소.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시오.”
“알겠습니다. 주석동지.”
그때 통신이 끊겼으므로 허리를 편 후성궈가 길게 숨을 뱉는다.
“425군단은 39집단군을 투입하면 다섯 시간 안에 궤멸시킬 수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참모장 양훙이 말했지만 외면하고 있다. 그도 시진핑의 지시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김정일은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윤국순과 친분이 있는 425기계화군단의 대좌 한 명이 비밀리에 연락을 해온 것이다.
“전멸한 장갑사단은 제16집단군 제4장갑사단입니다. 곽산에서 빠져나간 전차는 단 한 대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치 전공을 보고하는 것처럼 말했다가 힐끗 김정일의 눈치를 살핀 윤국순이 헛기침을 했다.
“지금 425군단은 중국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전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중국군은?”
김정일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윤국순의 목소리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20분 만에 1개 장갑사단이 전멸했으니까요.”
김정일은 시선을 돌려 벽에 붙은 상황판을 보았다. 425기계화군단이 위치한 평안북도 정주에는 검은 등이 켜져 있다. 김정일의 지시로 김경식 일당의 군부대가 위치한 지점에는 검은 등을 켜라고 했기 때문이다. 윤국순이 김정일의 시선 끝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위원장 동지, 저 등빛을 바꿀까요?”
평양 주변 군부대의 등은 모두 붉은색이다. 4군단이 위치한 해주시에도 붉은 등이 반짝이고 있다. 이윽고 김정일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흰색으로 해.”
그렇다면 중립이다. 황해북도 봉산 근처에 흰 등이 외롭게 켜져 있다. 바로 12군단인 것이다. 김정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주변 장성들은 다 들었다.
“박정근이가 역사에 애국자로 기록될지도 모르겠군.”
7월26일 14시20분, 개전 27시간30분25초 경과.
막사 안으로 들어선 이동일이 도열해 선 해병들을 둘러보았다. 1소대장 황찬우 중위가 보고했다.
“총원 39명, 부상 8명, 현재원 31명. 집합 끝.”
46용사가 이제 39용사로 줄었고 그중 부상으로 누워 있는 병사가 8명, 이제 전력은 31명이다. 전사자는 7명. 조한철만 막사 뒤쪽의 공터에 매장했고 나머지는 이곳저곳의 전장에다 버려놓고 왔다. 매장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시신은 낯선 땅에서 비바람에 시달릴 것이었다.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평안북도 정주에 주둔한 북한군 425기계화군단이 중국군 1개 전차사단을 공격, 전멸시켰다.”
그 순간 병사들이 동요했다. 생기 띤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본다. 다시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이로써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국군과 북한군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거야, 그래서.”
목소리를 낮춘 이동일이 다시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12군단 특수정찰대와 함께 북상, 반란군과 합세해 적진을 교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동일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가 떠올랐지만 모두 숨죽인 채 주시하고 있다.
“그래, 난 안다. 우리가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꼭 죽는 생명체, 국민으로서 남자로서 이렇게 멋지게 죽을 기회가 또 있겠냐? 그렇게 생각하고 같이 떠나자꾸나.”
그러고는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나가버렸지만 남은 30명은 몇 초 동안 숨소리도 내지 않고 서 있었다.
“자, 준비.”
그래도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황찬우다. 소리친 황찬우가 뒤에 선 이용섭 하사한테 투덜거리며 물었다.
“중대장 연설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어?”
이용섭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황찬우가 대답까지 했다.
“영화에서 말야, 무슨 장군이 한 것 같은데.”
7월26일 15시, 개전 28시간10분25초 경과.
최기상 앞으로 다가온 사내가 경례 대신 손을 내밀었다.
“난 10군단 산하의 92교도사단 회천 군수공장 교도대 소속의 백한성이요.”
군복의 어깨에는 대위 계급장이 붙어 있었지만 나이는 최기상보다 대여섯 살 아래로 보였다. 백한성의 손을 쥔 최기상이 뒤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병력은?”
“2개 중대쯤 되오. 350명 정도.”
“나도 2개 중대, 380명이요.”
“그럼 1개 대대가 되겠군.”
쓴웃음을 지은 백한성이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회천 서남방 부산리에는 이제 1개 대대급의 반란군이 모인 셈이었다. 접근해온 백한성 부대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고 양쪽 부대원은 뒤섞였다. 그때 백한성이 물었다.
“회천 보위부 건물에 중국 제40집단군 사령부가 설치된 것 아시오?”
“온 것은 아오.”
“회천 서남쪽 제82군수공장에 40집단군 병참본부가 자리 잡았소. 그곳 창고에 양곡과 온갖 물자, 탄약과 기름까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지.”
“… ….”
“내가 이곳까지 오면서 두 군데 적위대부대를 만났는데 오늘 밤 같이 중국군 병참 창고를 습격하기로 합의했소. 같이 가지 않겠소?”
놀란 최기상의 표정을 본 백한성이 빙그레 웃었다.
“아시오? 곽산에서 425기계화군단이 중국군 제16집단군 소속의 제4장갑사단을 전멸시켰소.”
“라디오에서 들었소.”
“중국군은 아직 425군단에 보복도 못하고 있소. 그렇게 되면 중국군과 조선군의 전쟁이 되니까.”
“좋소. 합시다.”
마침내 최기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우린 양곡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오.”
중국군 제16집단군은 3개 보병사단과 1개 장갑사단, 그리고 1개 포병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곽산에서 궤멸된 제4장갑사단이 바로 제16집단군 소속이다.
“절대로 도발하면 안 된다.”
하고 사단참모 장샤오 중교가 말했으므로 위푸 상위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끌려들면 안 된단 말야.”
다시 수화구에서 장샤오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 위푸가 마침내 폭발했다.
“참모님, 놈들이 공격해도 당하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다.”
이제는 장샤오가 달래듯이 말한다.
“그때는 여지없이 박살을 내도록.”
통신이 끝났을 때 위푸가 무전기를 무전병에게 건네주며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장갑사단이 전멸했는데 꼼짝 말고 있으라니. 우리가 외교관이야?”
“어느 놈이 적인지 모릅니다.”
소대장 타오다스가 쌍안경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은 16집단군 소속의 제46보병사단 직할 수색중대다. 16집단군은 진주군 사령부 직속이어서 사령부가 박천에 같이 있다.
“아냐, 다 적이다.”
역시 쌍안경을 눈에 붙이면서 위푸가 말했다. 수색중대는 지금 정주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야산 기슭까지 진출해온 것이다.
“저놈들은 반란군 같습니다.”
하고 타오다스가 말했으므로 위푸가 쌍안경을 그쪽으로 돌렸다. 30여 명의 인민군 병사가 길을 건너고 있다. 거리는 400m 정도였는데 복장이 엉망이고 모두 갖가지 물건을 등에 메거나 손에 쥐었다. 약탈물 같다.
“노농적위대, 교도대까지 합하면 600만 대군이 된다고 입만 열면 자랑하더니 이젠 600만 반란군이 되었구만.”
그들을 보면서 위푸가 말했다.
“도대체 산에 나무 하나 없고 말라비틀어진 이 땅이 뭐가 좋다고 군대까지 보내는 거야?”
“글쎄 말입니다.”
맞장구를 치던 타오다스가 와락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시 방향! 북한군입니다!”
두 시 방향으로 쌍안경을 돌린 위푸가 개울을 건너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북한군을 보았다. 이열횡대로 다가오는 북한군과의 거리는 300m 정도. 조금 전 길을 건넌 북한군과는 다른 부대 같다. 쌍안경에서 눈을 뗀 타오다스가 위푸를 보았다.
“중대장 동지, 이대로 두면 우리하고 부딪칩니다. 어떻게 할까요?”
위푸는 심호흡을 했다. 물러나려면 뒤쪽 산을 넘어야 한다. 옆으로 피한다면 북한군에게 송두리째 노출될 것이었다. 그때 타오다스가 말했다.
“놈들은 반란군입니다. 모두 나이 들었고 장비도 소총뿐입니다.”
그 순간 위푸는 마음을 굳혔다.
“타타타타타타!”
“꽝! 꽈꽝! 꽝!”
요란한 총성과 폭음이 울렸으므로 질색을 한 주위 병사들이 흩어졌다. 그러나 모두 10년 이상 군 생활을 해온 노병(老兵)이다. 즉각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기 때문에 서 있는 병사는 보이지 않는다.
“뭐야?”
역시 바위 뒤에 엎드렸던 고일중이 버럭 소리쳤다. 총성과 포성도 더 격렬해졌다. 그러나 뒤쪽에서 울리고는 있었으나 이쪽을 향한 것은 아니다. 거리는 500m 미만. 군 생활을 18년간 한 터라 제대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듣기만 해도 그쯤은 안다. 그때 뒤쪽에서 이천승이 허리를 굽힌 채 달려왔다. 이천승은 중위 출신으로 부대의 후위를 맡은 부지휘관, 청정노농적위대 부대장이었다가 고일중의 부대로 합류한 지 세 시간이 되었다.
“대장! 중국군이요!”
“뭣이?”
놀란 고일중이 눈을 치켜떴다.
“중국군이 뭘?”
“적위대를 공격합니다!”
“어느 적위대?”
“그건 모르겠소.”
자리를 차고 일어난 고일중이 뒤쪽으로 내달렸다. 정규군이 적위대를 공격했다면 이렇게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7월26일 15시30분, 개전 28시간40분25초 경과.
오산의 한미연합사 지하 상황실에 모인 지휘관들이 모두 벽에 방영되는 위성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처음에 탄성과 함성이 일어났지만 10분쯤 지난 지금은 흥분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날씨가 맑아서 화면은 생생하다. 중국군이 발사하는 기관총 탄피가 튀어 오르는 것까지 다 보인다. 우두커니 그것을 보던 육본작전참모부장 박진상이 문득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해병사령관 정용우 옆으로 다가가 섰다.
“기무사령관은 어디 갔소?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나갔어. 저것 때문에.”
정용우가 턱으로 앞쪽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중국군은 300명 가까운 반란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중이었다.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저 소식을 삐라로 날린다는 거요.”
“그 양반이 제일 바쁘구만.”
“기무사 역할을 제대로 하는 셈이지.”
그때였다.
“와앗!”
화면 앞에서 다시 함성이 일어났으므로 박진상과 정용우는 시선을 돌렸다.
“아앗!”
둘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이제는 중국군이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중국군 앞을 지났던 반란군 같다. 멀리 떨어지기에 화면에서 제외되었던 부대가 중국군에게 되돌아와 양쪽에서 공격하고 있다.
“잘한다!”
정용우가 소리쳤고 박진상이 다시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기무사 장교를 찾는 것이다. 이 정보가 삐라에 추가되어야 한다.
트럭에서 내린 부대원들은 재빠르게 일렬횡대를 지어 도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선다. 앞장을 선 것은 12군단 특수정찰대원이다. 이동일이 인솔하는 해병 30명은 후미에 배치되었다. 총원은 80명, 트럭 3대에 분승해 황해북도 황주 근처까지 북상했다가 이제 트럭을 버리고 도보로 산길을 타려는 것이다. 걸으면서 이동일이 손목시계를 본다. 오후 15시40분, 개전 28시간50분25초가 경과한 시간이었지만 이동일은 그 계산까지는 못하고 있다. 뒤를 따르던 황찬우가 바짝 다가붙더니 이동일에게 말했다.
“윤 중위가 조 중위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된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동일은 대답하지 않았고 황찬우는 말을 잇는다.
“만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
“전쟁 중이라 그럴까요?”
“그런 것 같다.”
마지못한 듯이 이동일이 대답하자 황찬우가 다시 묻는다.
“중국군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지요?”
“당연하지.”
대열 선두는 산길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이젠 뒤쪽 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군 장갑사단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궤멸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후에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동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한테 이롭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때 황찬우도 혼잣소리처럼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구만요.”
그러고는 문득 정신이 난 듯 쓴웃음을 짓더니 이동일에게서 떨어졌다.
7월26일 15시50분, 개전 29시간25초 경과.
무전기를 귀에서 뗀 참모장 양훙이 사령관 후성궈를 보았다. 표정이 굳다.
“사령관, 제46사단이 직할 수색중대를 구출하려고 1개 연대를 현장으로 출동시켰습니다.”
후성궈가 잠자코 상황 스크린만 보았고 양훙의 보고가 이어진다.
“남한에서는 조금 전부터 수색중대와의 전투 상황을 라디오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위성으로 찍은 영상을 퍼뜨리고 있으니 곧 삐라로도 뿌려질 것입니다.”
“도대체, 당에서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마침내 버럭 목소리를 높인 후성궈가 양훙을 노려보았고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다. 구석 쪽에서 참모들과 의논을 하던 16집단군 사령관 우저우징이 머리를 돌려 후성궈를 보았다. 눈을 부릅뜬 후성궈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전문을 쳐! 평양으로 진군하는 수밖에 없다고! 김정일이, 김경식이는 우리 안에 갇힌 돼지들이야! 놈들은 반란군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고! 이때 평양으로 내려가는 거야!”
그렇다. 장갑사단이 궤멸된 지 2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김정일은 물론이고 김경식 측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김씨는 이제 북한 땅에서 지도력을 상실했다. 아무도 이 난국을 수습할 수 없다는 증거였다. 그때 양훙이 머리를 들고 후성궈를 보았다.
“사령관 동지, 425기계화군단하고 제12군단이 걸립니다.”
두 김씨 집단 외에 중립적 위치의 군부세력이다. 후성궈의 시선이 상황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이윽고 스크린을 노려보던 후성궈가 잇사이로 말했다.
“저놈들은 한국과 통하고 있어. 격파하는 수밖에 없어.”
전화기를 넘겨받은 김정일은 심호흡을 했다. 주석궁 지하 깊숙한 전시 상황실 안에는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덮이고 있다. 옆쪽 테이블에 앉은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 등 지휘관은 외면하고 있었지만 귀는 활짝 열어놓고 있을 것이었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김정일이 말했다.
“박정근 대장, 나 국방위원장이요.”
그러나 저쪽은 응답이 없다. 이미 국방위원장 전화라고 밝혔는데도 그렇다. 헛기침을 한 김정일이 다시 말했다.
“박정근 대장, 듣소?”
“예, 듣습니다.”
그 순간 김정일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제425기계화군단장 박정근은 지금까지 대여섯 번 만난 기억이 있다. 군단장급이니 자동차나 시계,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명절이면 온갖 선물을 받았을 터였다. 언젠가 자신이 건네준 술잔을 받으면서 감격한 얼굴로 충성을 맹세하던 장면도 떠올랐다. 그것은 김경식도 마찬가지였다.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던 놈이 김경식이다. 다시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중국군을 왜 공격했소?”
그러자 박정근은 또 침묵했다. 상황실 안은 더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터라 수화구에서 울리는 박정근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정적을 깨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그쪽 상황은 어떻소?”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야 박정근이 차분하게 말했고 옆쪽 테이블의 전백준과 윤국순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김정일이 묻는다.
“중국군하고 말이오?”
“그렇습니다.”
“당할 수 있겠소?”
“그땐 다 죽지요.”
“박정근 대장.”
부르고 난 김정일이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고 나서 묻는다.
“내 명령을 듣겠소?”
“거부합니다.”
차분하게 말한 박정근이 덧붙였다.
“나는 위원장께 충성하려고 중국군을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알겠소.”
심호흡을 한 김정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동무하고 대화를 하고 나니 내 마음이 가벼워졌소. 고맙소.”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정일이 전백준과 윤국순을 둘러보며 웃었다.
“박정근이가 남자로군.”
“김경식 일당이었습니다.”
뱉듯이 말했던 전백준이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그런데 지금은 이기준하고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분 후인 16시5분(개전 29시간15분25초 경과).
오산 한미연합사령부 벙커에서 김정일의 마지막 말이 통역되었을 때 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가 참모장 모건 해리슨에게 묻는다.
“설득하려던 것일까?”
그들은 한국군 지휘부와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으므로 대답은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 했다.
“아니, 떠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해리슨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박정근이 김경식 무리에서 벗어난 건 확실합니다.”
“12군단장 이기준의 설득이 효과를 본 것이죠.”
다시 장세윤이 말했고 잠자코 있던 육참총장 조현호도 거들었다.
“어쨌든 박정근이 김정일을 궁지에서 구해낸 건 사실이죠. 이것으로 김정일을 망명시키려던 공작은 쑥 들어간 것 아닙니까?”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우드워드가 쓴웃음을 짓는다.
“이거, 수시로 전황이 변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군.”
그러나 우드워드의 태도는 드라마틱한 영화를 보는 관객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은 전혀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북쪽만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기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보았다. 100m 앞쪽의 건물 3동은 본래 회천의 제82 군수공장이었다. 그러나 군용 차량의 부품을 생산하던 저 공장도 다른 군수공장처럼 폐쇄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 지금은 어제 진주한 중국군 제40집단군의 병참본부가 된 것이다.
“2개 중대 병력은 되네.”
옆에 엎드린 박장서가 말했다.
“하지만 해볼 만해. 저기 왼쪽에 쌓인 건 쌀 아닌가?”
“밀가루 같소.”
“쌀이건 밀가루건 다섯 포대만 집에다 갖다놓고 와야겠네.”
“그건 나중 일이요.”
친척뻘이 되는 박장서를 향해 눈을 흘겨 보인 최기상이 손에 든 AK-47을 고쳐 쥐었다. 백한성의 교도중대와 적위대, 2개 부대는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쪽에서 총성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최기상의 노농적위대 2개 중대가 중국군 병참본부를 공격할 것이었다.
7월26일 16시15분, 개전 29시간25분25초 경과.
“앗!”
위성사진을 살펴보던 연합사 측 장교 하나가 외친 탄성이 상황실을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벽에 확대된 북한 측 위성사진으로 모아졌다.
“중국군 진지입니다!”
사진을 더 확대시키면서 장교가 외쳤다. 그 순간 모두 번쩍이는 섬광과 폭발하는 건물을 보았다. 재빠르게 위치와 부대를 파악한 다른 장교가 소리쳐 보고했다.
“평안북도 회천, 중국 제40집단군 병참본부가 기습을 받고 있습니다.”
“와앗!”
몇 명이 함성을 뱉는다. 곽산의 제16집단군 4장갑사단에 이어서 수색중대, 그리고 이번에는 제40집단군이 공격받는다. 세 번째다.
“어느 부대야? 2개 대대는 되겠는데.”
참모장 해리슨이 소리쳐 묻자 장교가 대답했다.
“반란군 같습니다!”
“그런가?”
해리슨의 목소리가 다소 맥이 풀린 것처럼 들렸다. 그때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이 큰 소리로 말했다.
“북한 제10군단에서 떨어져 나온 교도사단이나 적위대인 것 같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이제 중국군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싸우든지 돌아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겠지요.”
“저 뉴스도 방송해! 얼른!”
육참총장 조현호도 거들었다.
“당장 한국과 북한에다 터뜨려!”
“잠깐, 장군, 자꾸 그러지 마시오.”
하고 해리슨이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말투가 거칠지는 않다. 입맛을 다신 해리슨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자꾸 먼저 나가면 곤란합니다. 연합사 체계를 지켜주시오.”
“아, 물론이죠.”
조현호가 목청을 높여 말하고는 자리에 다시 앉았을 때 박진상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있다. 손발이 잘 맞는 팀이다.
“타타타타!”
달리면서 쏘아댄 총탄에 중국군 병사 두 명이 팔다리를 내저으면서 쓰러졌다.
“꽝! 꽝!”
이쪽에서 던진 수류탄이 건물 안에서 폭발하면서 파편과 불기둥이 문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겼다!”
저도 모르게 소리친 최기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 번째 건물 현관 앞에 멈춰 섰다. 이제 총성은 점점 잦아들고 있다.
“끝냈어!”
소대장 오대길이 왼쪽에서 소리치며 달려왔다. 뒤를 대여섯 명의 적위대가 따르고 있다. 삼면에서 기습 공격을 받은 중국군은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전멸했다. 병참기지 근무병으로 중화기도 소지하지 않은데다 불시에 기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쪽은 병력도 많다. 3개 중대 가까운 중국군은 전멸했고 도망친 병사는 몇 명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뒤쪽에서 일단의 병사를 이끈 백한성이 다가왔다.
“자, 가져갈 건 양곡뿐인데, 갖고 떠납시다!”
“무기도 챙겨야지!”
그렇게 대답했지만 모두 10년 이상씩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다. 낡은 총은 바꿀 것이고 실탄도 주워 챙길 것이었다. 최기상은 서둘러 양곡이 쌓인 곳으로 휩쓸려 간다. 이제는 총성이 뚝 끊긴 병참기지 안에서는 무수한 발걸음 소리만 울리고 있다. 전투에서 대승을 했는데도 함성은커녕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대원들은 양곡 야적장 쪽으로 한 무리가 되어서 내달리고 있다. 그들과 함께 뛰던 최기상이 문득 머리를 돌려 좌우를 살폈다. 그러고는 소리쳐 부른다.
“박장서 동무!”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전사했소!”
놀란 최기상이 눈만 치켜떴다. 걸음을 늦춘 그의 등을 몇 사람이 밀면서 앞질러 뛴다. 다시 이번에는 옆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막사에서 발사된 총탄을 맞아 바로 죽었소! 내가 보았소!”
그 사이에 최기상은 산더미처럼 쌓인 양곡더미 앞에 와 섰다. 수백 명의 적위대, 교도대원은 흰색 포대를 두 개, 세 개씩 어깨에 메고 등에다 진다. 그러나 다섯 포대를 집에다 갖다놓겠다던 박장서를 떠올린 최기상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저곳부터 평양이오.”
턱으로 앞쪽을 가리킨 강성일 중좌가 말을 이었다.
“평양방위사령부 구역이지. 저놈들은 잘 먹고 장비도 최고급이요.”
둘은 야산 기슭의 바위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부대원들은 흩어져 쉬는 중이다. 이곳은 평양특별시 경계선 남쪽 지역으로 옆쪽으로 20호가량의 마을이 있지만 텅 비었다. 그래서 강성일은 마을에 감시조를 파견해놓았다. 머리를 든 강성일이 이동일을 보았다.
“이 대위는 전황이 어떻게 될 것 같소?”
“중국군이 공격받는다니 상황이 변할 것 같습니다.”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한테서 정보를 들은 터라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뭔가 희망이 보입니다.”
“통일 말이오?”
그러더니 강성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형기와 김경식은 도발 후의 여러 변수까지 고려했겠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 못한 것 같소.”
누가 봐도 지금 가장 곤경에 빠진 세력이 김경식 일당이다. 끌어들인 중국군까지 중립군과 반란군의 협공을 받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전쟁만 일어나면 남으로 밀고 들어가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지요.”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강성일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어서 전쟁이 일어나기만 바란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소. 나뿐 아니라 인민군 병사 대부분이 그랬을 거요.”
“그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따라 웃은 이동일이 되물었다.
“남쪽 국민은 열심히 일을 해서 잘 먹고 잘살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건 강도짓 아닙니까?”
“그걸 따질 정신이나 있습니까?”
입맛을 다신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인민군도 굶어서 죽게 생겼는데 말이오. 자식을 내다 팔고 중국으로 종살이를 하러 가는 형편인데 강도짓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죠.”
“내가 궁금하기보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잠깐 말을 그쳤던 이동일이 굳어진 표정으로 강성일을 보았다.
“지금까지 북한 군인이나 국민이 그런 머저리 같은 정권을 갈아치우지 못한 것이 그래요.”
강성일의 얼굴도 굳어졌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자유나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누구한테 빼앗아 가질 수도 없는 것이고요. 남한 국민은 스스로 쟁취했고 북한도 그래야 자유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강도처럼, 더구나 같은 민족을 공격해서 뺏다니요. 그렇게 만든 놈들도 나쁜 놈들이지만 따르는 사람들도 못나고 한심하지 않습니까?”
“이 대위는 잘 몰라요.”
쓴웃음을 지은 강성일이 천천히 머리를 내저었다.
“이곳은 이 대위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세상이오. 이곳은.”
주위를 둘러본 강성일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을 잇는다.
“북조선 전체가 감옥 같은 세상이오. 민중은 태어났을 때부터 세뇌되어서 짐승처럼 길들었소.”
문득 말을 멈춘 강성일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그러다가 이제 둑이 무너진 거죠. 그놈들의 오판 덕분에 기회가 온 것이지.”
강성일의 목소리가 떨렸으므로 이동일은 외면했다. 기회는 맞다. 그러나 이것 또한 민중이 일어나 만든 기회는 아닌 것이다. 손목시계가 16시35분을 가리키고 있다. 개전 29시간45분25초가 경과했다.
“발사!”
제16집단군 제21포병사단장 마오융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직접 명령을 내렸다. 상황판 아래쪽 시계가 16시36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마오융은 포병사단에 북한군 제425기계화군단의 우측면에 위치한 제17, 제18 2개 기계화보병여단에 대한 발사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제425기계화군단은 기계화보병여단 5개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반면 중국군의 21포병사단은 5개 포병연대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1개는 미사일 연대다. 각 연대는 또 5개의 포병대대로 구성되었고 1개 대대는 155㎜ 자주포 18문과 125㎜ 자주포 18문씩을 보유하고 있어서 사단 전체의 화력을 집중하면 가공할 공격력이 된다. 그때 사령부 벙커에까지 포성과 함께 진동이 전해져 왔으므로 마오융이 머리를 들고 상황판을 보았다. 북한군 2개 여단은 집중 공격을 받으면 10분을 배겨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부대 좌표는 입력된 상태였고 거리는 50㎞ 미만이다. 노출된 북한군은 거의 궤멸될 것이다.
“바라지 않던 상황이 발생했군.”
상황실의 무거운 분위기가 거슬렸던지 마오융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북조선군의 자업자득이야.”
“425군단은 북조선군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참모장 리젠성이 거들었다.
“반란군입니다. 우리는 반란군의 공격을 받고 대응한 것입니다.”
그때 상황군관이 무전기를 귀에서 떼고 보고했다.
“적은 대응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하고 리젠성이 응답했을 때 군관이 말을 잇는다.
“목표의 65%가 파괴되었습니다.”
이곳은 오산의 한미연합사 전시상황실 벙커 안이다. 위성 화면을 응시하는 수십 명의 지휘관은 이제 침묵하고 있다. 적위대가 중국군을 공격할 때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지금 모두의 표정은 굳어 있다. 중국군 포병 사단의 위력은 엄청났다. 정주 외곽에 주둔한 제17, 18기계화여단의 포병 진지가 먼저 파괴되더니 장갑차부대, 보병 진지 순으로 포격을 당하고 있다. 북한군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육참총장 조현호가 문득 머리를 들고 물었다.
“425군단 전차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군 장교 하나가 소리쳐 대답했다. 425기계화군단의 5개 여단에서 소집된 전차 150대를 말한다. 기동훈련 중이던 그 전차대가 중국군의 막강한 제4장갑사단의 최신형 99식 전차 270대를 궤멸시켰다. 그런데 그 전차대가 각 부대로 복귀했는지 어쩐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조현호 옆에 서 있던 작참부장 박진상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얘들은 지하 대피소가 너무 많아서 땅속에 박힌 것 같습니다.”
그때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각 지휘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옆쪽 위성 화면에는 불꽃이 일어나는 생생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음소거 장치를 누른 것처럼 그림만 움직인다. 모두 자리에 앉았을 때 우드워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이 다시 급박하게 변해가는 것 같소. 중국군이 425군단만 제압할 것 같지가 않아요.”
“화천의 40집단군 병참본부가 피습당하면서 중국군은 인내의 한계를 넘은 겁니다.”
해리슨이 말하더니 힐끗 상황판을 보았다.
“중국군은 기계화보병사단을 중심 전력으로 하는 제39집단군을 앞세우고 평양으로 남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평양만 장악하면 북한을 먹게 되니까요.”
맞는 말이다. 거기에다 김정일과 김경식 양대 세력은 서로 견제하느라고 중국군에 대한 대응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중국군을 끌어들이려고 경쟁을 벌일 것이었다. 그때 합참의장 장세윤이 말했다.
“그렇다면 12군단이 다시 키를 쥐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모두 머리를 돌려 상황 스크린을 보았다. 그 옆쪽 위성화면에는 여전히 섬광이 번쩍이고 있었지만 일방적이다. 북한 측 진지에서는 발사 섬광 대신 폭발 화염만 일어나고 있다. 박진상이 머리를 돌려 옆에 앉은 해병사령관 정용우를 보았다.
“걔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이동일과 해병들을 묻는 것이다.
7월26일 16시50분, 개전 30시간 25초 경과.
중부전선 제26사단 참모장 이익순 준장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서서 소리쳐 묻는다.
“뭐야? 똑바로 말해! 부대라니?”
이익순은 말끝마다 ‘똑바로’를 붙였기 때문에 별명이 ‘똑바로’다. 그때 전방 GOP를 맡은 제1연대 2대대 1중대장 홍석호 대위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렸다.
“예, 지금 1개 부대 병력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비무장이고 선두에 선 인민군은 장대에 백기를 매달고 있습니다! 1개 부대 이상입니다!”
“야, 똑바로…….”
했다가 흥분한 이익순이 말을 바꿨다.
“투항해온단 말이냐?”
“예, 참모장님.”
“도대체 몇 명이나…….”
“그게 수백 명입니다. 아니, 1개 연대 병력쯤 됩니다!”
했다가 부하 보고를 받는지 5초쯤 말이 끊기더니 이어졌다. 이제 소리친다.
“선두에 장군이 있답니다! 소장이라는데요! 그 뒤로 대좌가 두 명, 중좌가 세 명, 병사들은 수를 세지 못하겠답니다! 무더기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까요?”
“받어!”
버럭 소리쳤다가 중대장이 ‘똑바로’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서 목소리를 더 높였다.
“통과시켜라! 내가 연대장한테 따로 지시는 할 테니까 받아들여!”
GOP 긴급사항은 사단에 직보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익순이 다시 소리쳤다.
“1연대장 바꿔라! 2대대장도 함께 듣도록 같이 연결해!”
이제 인민군의 대량 투항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군이 세 세력으로 나뉘면서 끊임없이 투항병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한국군 지휘부는 이런 대규모 투항을 예상하고 있었다. 세 세력으로 나눠지면서 각각 장악력과 견제가 약해진 반면에 단위 부대장의 결정권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민군 정규군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볼 만한 사안이다. 그때 정보참모가 다가와 소리치듯 보고한다.
“2군단 소속 제43사단 3연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남북전쟁의 주모자 김경식의 군단이다. 눈을 치켜뜬 이익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시발놈, 이제 곧 제 몸뚱이는 다 떼어져 나가고 주둥이만 제55호위대 벙커에 남게 되겠구만.”
“남하합니다!”
위성 스크린을 점검하던 장교가 소리쳤을 때는 17시10분, 개전 30시간20분25초가 경과했을 때였다. 모두의 시선이 위성 스크린으로 모이면서 상황실 안은 조용해졌다. 예상한 대로 제39집단군의 2개 기계화보병사단인 제116, 119사단이 남진을 시작한 것이다. 그 뒤를 제3장갑여단이 따르고 115보병사단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스크린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
“빌어먹을.”
잇사이로 욕설을 뱉은 사내는 평소 점잖던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다. 영어로 욕설을 했으므로 미군 지휘관들도 장세윤을 보았다. 장세윤이 머리를 돌려 육참총장 조현호를 보았다.
“우리가 저놈들하고 결국은 붙어야 하는 게 아뇨?”
“그래야 될 것 같은데.”
바로 말을 받았지만 조현호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침묵했다. 이제 40집단군의 뒤를 따라 39집단군과 16집단군이 움직일 것이다. 각각 10여만명의 병력과 장비를 갖춘 30만 대군이 남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할 공군, 해군력이 배후에 있다. 랴오닝성 군구의 5개 항공사단, 그리고 칭다오의 북해 함대에는 수십 척의 구축함과 상륙함, 거기에다 잠수함 전대까지 대기 중이다. 그때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삐라가 북한 땅에 수백 톤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삐라로 도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웬일인지 한국군 지휘관들의 굳어진 표정이 조금 풀린 것 같다. 그러나 한국말을 못 알아들은 미국 지휘관들은 그대로다.
“투항자는 즉결처분해!”
버럭 소리쳤지만 김경식의 말끝이 흔들렸다. 얼굴도 상기되어 있다. 전화기를 고쳐 쥔 김경식이 잇사이로 말했다.
“그 공간을 2연대로 메워! 서둘러!”
그러고는 상대방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이제야 43사단 3연대 병력 2700여 명이 한 놈도 빠짐없이, 그것도 무기를 모두 내팽개친 채 맨몸으로, 거기에다 부사단장의 인솔로 분계선을 넘어 투항해버렸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이제 전연지대 한쪽은 뻥 뚫렸다. 제2연대 병력으로 메우라고 했지만 그쪽도 위험하다. 호흡을 가누고 있는 김경식의 옆으로 무력부 부부장 심철 상장이 다가와 섰다. 그도 김경식 휘하의 1개 연대 병력이 투항했다는 것을 안다.
“사령관 동지, 중국군이 남하합니다.”
심철이 낮게 말하자 김경식은 머리를 들었다. 이곳에 위성 스크린은 없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연락망이 잘 짜여져 있어서 첨단 장비를 이용한 한미연합군 측보다 결코 늦지 않다. 심철이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39집단군이 일제히 움직였습니다. 이제 나머지 2개 집단군도 따라오겠지요.”
이미 425기계화군단을 공격했을 때부터 이쪽에서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잘되었어.”
어깨를 늘어뜨린 김경식이 길게 숨을 뱉는다.
“어서 이 난국을 수습해야지. 때맞춰서 움직여주는구만.”
“위원장이 저항하지는 않겠지요?”
“그럴 리가?”
쓴웃음을 지은 김경식이 힐끗 벙커 안쪽을 보았다. 이틀간의 철야 근무에 지친 나이 든 장군들이 벽 근처의 소파에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김경식이 말을 이었다.
“중국군이 평양에 진입하면 위원장의 존재 가치는 사라져. 인민뿐 아니라 인민군, 그리고 중국 측에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
“반란군은 소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상황판으로 시선을 돌린 김경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먼저 반란군을 소탕한 후에 저 12군단의 머리부터 자르고.”
김경식의 시선이 상황 스크린의 평양 쪽으로 옮겨졌다.
“위원장을 중국으로 보내면 나머지는 모두 다시 뭉치게 될 거야.”
“중국군 남진.”
TV화면에 커다랗게 뜬 글씨는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서울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가 TV에서 시선을 떼고는 앞쪽 책상에 앉은 송아현을 부른다.
“송 기자, 나 좀 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송아현이 다가가 섰을 때 홍동수가 묻는다.
“이 대위는?”
“실종.”
외면한 채 대답한 송아현을 보자 홍동수가 입맛을 다셨다.
“이봐, 내가 해병대 고위층한테서 들은 정보인데 이 대위하고 해병대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어.”
놀란 송아현이 바짝 다가서자 홍동수는 말을 잇는다.
“임무 수행 중이라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임무가 중요해진다는구만.”
“… ….”
“46용사가 많이 줄었다고 했어. 물론 이 대위는 살아 있지만 말야.”
“연락은 안 돼요?”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심호흡을 한 홍동수가 지그시 송아현을 보았다.
“내가 그랬다는 말 말고 해병대 사령부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한테 매달려봐. 그 작자가 이 대위하고 연락을 하는 모양이야.”
그러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또 모르지. 다시 이 대위를 매스컴에 띄워서 분위기를 전환할 수도 있으니까 말야. 그래서 21세기 전쟁은 전자 게임 같다니까.”
7월26일 17시30분, 개전 30시간40분25초 경과.
시계를 내려다본 이동일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딱 한 시간을 꿈도 꾸지 않고 잔 것이다. 바위 밑에서 쪼그린 채 잠이 들었지만 온몸의 피로가 풀리면서 활력이 솟아나고 있다. 그때 옆으로 강성일이 다가왔다.
“이 대위, 중국군이 남하하고 있어요.”
옆으로 다가와 앉은 강성일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3개 집단군이 모두 평양을 향해 남하하고 있다는 거요.”
이동일의 시선이 앞쪽으로 옮겨졌다. 3㎞ 전방이 평양이다.
“425군단은 중국군의 포격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전력을 대부분 상실했다고 합니다.”
강성일이 말했을 때, 비탈길로 특수정찰대 상사가 올라오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장동지, 마을 주민들이 옵니다.”
다가선 상사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씻으며 말을 잇는다.
“모두 나이 든 노인들인데 어린애도 대여섯 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야?”
“노인들이 제각기 양곡 자루를 들고 옵니다. 아마 이곳 적위대로 나간 가족들이 약탈해온 것 같습니다.”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강성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동일에게 말했다.
“대위, 내려갑시다.”
그 시간에 산본장 지하 상황실에서 대통령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면서 말한다.
“위원장님, 접니다.”
이번 전화는 박성훈이 요청을 했다. 그러자 스피커를 통해 김정일의 목소리가 상황실 안에 울린다.
“예, 대통령 각하.”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거북합니다만.”
전화기를 귀에 붙인 박성훈이 앞쪽 테이블에 둘러앉은 각료들을 훑어보았다.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 국방장관 임기태다. 박성훈이 말을 이었다.
“중국군이 남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대한민국에 위협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미연합사와는 달리 중국군 진주와 남하는 명백한 위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원장께서 중국군 진주와 남진을 요청하셨는지를 확인해야만 되겠습니다.”
박성훈이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말했다. 박성훈의 앞쪽 책상 위에는 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다. 말이 끝났을 때 방안은 조용해졌다. 김정일이 몇 초간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성훈은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뗀 채로 기다렸고 모두 침묵을 지켰다. 그때 스피커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이며 지도자인 내 요청을 받지 않고 진주했습니다. 반역자이며 매국노, 인민의 적인 김형기, 김경식 일당이 요청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영토에 발을 디딜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정간섭은 물론이고 침략이나 같습니다.”
김정일의 목소리에 열기가 감돌았다. 다시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김경식 일당과 중국 군부가 사전에 공모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북조선을 중국 영토에 귀속시키려는 음모인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각하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어느덧 박성훈의 얼굴도 상기되었다. 박성훈이 묻자 김정일은 차분하게 말했다.
“없습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다시 연락을 할까요?”
“다음에는 제가 연락을 드리지요.”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그러고는 통화가 끝났을 때 먼저 국방장관 임기태가 말했다.
“이 내용을 세계 각국 뉴스에서 방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성훈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고 이제는 안보수석 주명성이 말했다.
“대특종입니다. 이것을 저녁 방송에 내고 녹음해서 북한 주민한테도 들려주도록 해야 됩니다.”
다시 머리를 끄덕인 박성훈이 심호흡을 두 번이나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결국 김정일씨가 중국보다는 한국을 선택하는 것인가?”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배신자.”
하고 말했지만 시진핑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랐다. 시진핑은 방금 박성훈과 김정일의 대화 내용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들은 것이다. 둘의 통화가 끝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러자 옆쪽에 앉아 있던 해방군총사령관 진양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김정일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북조선을 떠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군이 평양에 진주하면 김정일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먼저 김정일의 수족을 잘라야 합니다.”
정색한 진양의 시선이 앞쪽에 앉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 펑훙위에게로 옮겨졌다.
“공작은 잘 진행되고 있소?”
진양이 묻자 펑훙위가 몸을 굳혔다.
“예, 사령관들이 모두 주석궁 벙커에 모여 있기 때문에 사단장, 연대장급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눈치를 살핀 펑훙위가 말을 잇는다.
“평양방위사령부 산하 2개 사단장이 포섭되었고 호위총국의 전차 여단장 한 명도 전향 의사를 밝혔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진양이 다시 시진핑에게 말했다.
“주석 동지, 이 과업만 성공하면 주석 동지는 5000년 중국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되시는 겁니다.”
그 시간에 일본 총리 히라타(平田)는 방위청장관 하야시(林)가 가져온 녹음테이프를 다 듣고 나서 둘러앉은 각료들을 보았다. 이곳은 총리 집무실 안이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고 히라타가 묻자 하야시가 먼저 대답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반전되고 있습니다. 중국군이 진주했을 때는 조선성이 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중국군이 공격을 당하면서 김경식 일파의 세력이 흔들리다가 이젠 김정일이 한국과 밀착하려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설명이 길었기 때문인지 그동안 두 번이나 헛기침을 한 히라타가 관방장관 미우라(三浦)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미우라씨, 우리끼리 털어놓고 이야기합시다. 마침 우리 셋이 있으니까 말인데.”
하야시의 시선이 말석에 앉은 총리 비서실장 다나카(田中)에게로 옮겨졌다.
“그렇지. 넷이군. 그러면 우리 일본국에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뭡니까?”
“당연히 남북한 통일이죠.”
당연한 일 아니냐는 표정을 짓고 미우라가 대답했다. 머리를 든 미우라가 히라타와 하야시, 다나카를 훑어보고 나서 말을 잇는다.
“그럼 통일한국은 자연스럽게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되는 겁니다. 이건 중국한테도 턱밑에 칼을 들이댄 꼴이 될 겁니다.”
“허, 그럼 우리는.”
“배에 칼끝이 닿은 꼴이죠.”
하고 하야시가 말을 받았으므로 히라타는 입맛을 다셨다.
“그 빌어먹을 김정일놈.”
“이대로 가면 한국은 잭팟을 터뜨리게 됩니다.”
미우라의 말에 하야시가 다시 말을 받는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유동적입니다. 중국군이 평양에 진주하고 나서 김경식 세력과 함께 반란군을 소탕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김정일 세력을 회유하거나 설득해서 끌어들이면 조선성으로 굳어집니다.”
“그것이 우리한테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요.”
미우라가 말했을 때 히라타도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이 미국 측에도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7월26일 18시 정각, 개전 31시간10분25초 경과.
“저기 오는군.”
강성일이 말했지만 이미 이동일은 그쪽을 보고 있었다. 마을을 향해 7, 8명의 인민군 병사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100m쯤 떨어져 있었어도 노농적위대인 것이 드러났다. 나이 든 태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적위대원 앞을 노인 둘이 앞장서 오고 있다. 마을 노인들이다.
“이쪽 부대는 150명 정도라던데.”
하고 강성일이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가 이동일에게 말했다.
“자, 가봅시다.”
강성일과 이동일, 그리고 서너 명의 병사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마을로 돌아온 노인들을 설득해서 적위대원으로 보낸 것이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의심했던 노인들은 곧 자신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이라면 이렇게 설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쪽에서 다가가자 적위대는 주춤거렸지만 곧 물도 없는 개울가에서 양측이 마주쳤다. 적위대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는 50대쯤으로 군복에 중위 계급장을 붙였다. 중좌 복장의 강성일을 보더니 사내가 경례를 했다. 그것을 본 강성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맙시다. 동무. 난 군복은 입었지만 이제 김정일의 인민군은 아니오.”
그러고는 적위대원을 둘러보면서 말을 잇는다.
“꼭 이름을 붙인다면 조선해방군이지. 중국의 인민해방군하고도 다릅니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개울가에 둘러앉자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10여 명의 인민군 정규군과 노농적위대, 노인 둘에다 한국 해병대인 이동일과 최 하사까지 개울가 자갈 위에 둘러앉았다. 그때 강성일이 중위에게 묻는다.
“나머지 병력은 어디 있습니까?”
“이곳에서 3㎞쯤 떨어진 반월산에 숨어 있습니다.”
경계심이 풀린 사내가 고분고분 대답했다.
“중화에 평방사 기갑여단이 있지만 자체방어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활동은 자유로운 편이지요.”
“그렇다면 각 마을의 적위대는 모두 흩어져 있습니까?”
강성일이 묻자 사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예, 몇 개 부대는 뭉쳤지만 대부분은 흩어져서 양곡이나 약탈하는 형편입니다.”
사내의 이름은 천윤보, 중위 출신으로 협동창고 관리인이었는데 이번 전쟁 때 편성된 825 노농적위대장을 맡았다가 오늘 오전에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다. 이곳에서 12㎞ 떨어진 중화군 군당 보급창고를 840노농적위대와 함께 공격해서 양곡을 약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을 불러 약탈한 양곡을 나눠준 것이다. 천윤보가 말을 이었다.
“제가 인솔한 병력은 현재 150명 정도이고 840부대는 200명쯤 됩니다. 그리고.”
천윤보가 눈을 깜박이며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강성일을 보았다.
“중화 근처의 교도대, 노농적위대 반란군만 합쳐도 수천 명은 될 겁니다.”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이며 지도자인 내 요청을 받지 않고 진주했습니다. 반역자이며 매국노, 인민의 적인 김형기, 김경식 일당이 요청한 것입니다…….”
TV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리고 있다. 국방부의 지하 상황실도 마찬가지다. 벽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군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영토에 발을 디딜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정간섭은 물론이고 침략이나 같습니다… ….”
송아현은 상황실 앞쪽을 둘러보았다.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어서 마치 시장통 같다.
“이거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화장실도 못 가겠네. 모두 정신이 나갔어.”
안면이 있는 동화일보 기자가 투덜대면서 옆을 지났는데 시선을 마주쳤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도 정신이 나가 있는 것이다. 그때 송아현이 찾던 사람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다가갔다.
“대령님.”
“아이구, 송 기자.”
놀란 최재창이 쓴웃음을 짓고 나서 다시 몸을 돌리려고 했으므로 송아현이 가로막았다.
“대령님, 이 대위하고 통화하게 해주세요.”
“글쎄, 이 대위는 지금.”
“연락하고 계신 줄 알고 있어요.”
그 순간 최재창의 눈썹이 모아졌다.
“도대체 언놈이.”
“지금 상황에선 이 대위하고 다시 연결해도 상관없지 않겠어요?”
“아냐. 지금 대단히 중요한 상황이야.”
불쑥 말을 뱉었던 최재창이 입맛을 다셨을 때 다시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것은 북조선을 중국 영토에 귀속시키려는 음모인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각하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해설자의 말이 이어졌을 때 송아현이 바짝 다가섰다.
“절 이용하셔도 돼요. 어떻게든 이 대위하고 통화하게 해주세요.”
그러고는 똑바로 최재창을 보았다.
“부탁드려요. 대령님, 그 사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검토해볼 테니까.”
시선을 내리면서 최재창이 발을 떼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이 근처에 있으라고.”
7월26일 18시30분, 개전 31시간40분25초 경과.
라디오 주위에 몰려 앉은 적위대, 교도대 출신 반란군들의 표정이 굳어 있다. 최기상은 군복 주머니에서 피우다 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때 라디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러분, 뭉치십시오. 그래야 힘이 강해집니다. 부근의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병사를 모아 편제를 갖추십시오. 그리고 지휘관과 참모를 선출하여 군부대의 체제를 갖춰야 삽니다. 이제 여러분의 적은 분명해졌습니다. 중국군과 중국군을 끌어들인 김경식 일당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 상황이 끝나면 남조선과 유대해 새로운 조선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여러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뒤에는 남한이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여러분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세상으로 나오게 되실 것입니다. 새 세상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실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주인인 것입니다. 부대를 만들어 각지에서 중국군을 격파하십시오. 독립전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중국인의 노예가 된단 말입니까?”
그때 라디오의 스위치를 끈 최기상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좋아. 늑대한테 시달려왔는데 쥐새끼한테 죽어지낼 수는 없지. 해보자!”
“해보자!”
교도대 출신의 백한성이 따라 소리쳤고 모여 앉은 대원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대원들이 흩어지고 둘이 남았을 때 백한성이 말했다.
“그래. 우리가 주인이라고 그랬지? 지금은 김정일이 편을 들겠지만 그건 중국 놈들 몰아낼 때까지라고.”
서해안 지역 전연지대를 맡은 4군단장 우장선은 강골(强骨)이다. 평소에 과묵하고 무뚝뚝해서 김정일의 측근 그룹과 떨어진 인상을 받았지만 이번 전쟁 때 본색을 드러냈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보다 의리를 보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우장선이 눈을 부릅뜨고 4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황해남도 해주시 외곽의 지하 벙커에 앉아 있다. 우장선도 방금 한국에서 방송한 김정일과 박성훈의 통화 내용에 이어서 여자 아나운서의 격한 분위기의 선동까지 들은 것이다.
“군단장 동지, 개성 근처의 부대에서 이탈자가 심각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에 선 참모장 박명호가 말했지만 우장선은 눈만 껌벅였다. 상황실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 있다. 그것은 우장선이 일부러 남한 방송을 그대로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박명호가 말을 이었다.
“2군단 지역은 1개 연대에 이어서 1개 대대 병력이 또 투항한 것 같습니다. 투항병과 총격전이 일어나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 ….”
“이대로 가면 반란군과 중국군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미 평안남도에서는 10여 건의 조·중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반란군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투를 치르고 있어서 아직 남하하는 중국군 대부대에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그때 대좌 하나가 무전기를 쥔 채 서둘러 다가왔으므로 박명호는 말을 그쳤다.
“군단장 동지, 12군단장입니다.”
“12군단장?”
우장선의 입이 터졌다. 눈썹을 치켜 올린 우장선이 대좌의 손에 쥔 무전기를 노려보았다. 12군단장 이기준은 김경식 일당에 등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위원장과의 의리를 지킨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남조선과 내통한 흔적이 있다. 이윽고 우장선이 손을 뻗쳐 무전기를 받아 쥐었다. 남조선 대통령과 위원장의 통화 내역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기준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적의 적은 동지인 것이다. 지금은 김경식과 중국군이 적이 되어 있다. 무전기를 귀에 붙인 우장선이 대뜸 묻는다.
“무슨 일이오?”
“같이 중국군을 칩시다.”
이기준도 불쑥 대답했으므로 우장선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금방 작전지도가 펼쳐졌다.
“815기계화군단하고 820전차군단을 김경식이가 쥐고 있는데?”
“815군단은 우리한테 가담하기로 했소.”
“뭐? 조영근이가?”
815기계화군단장 조영근 대장은 처음부터 김형기, 김경식 측에 붙은 반역자다. 눈을 크게 뜬 우장선의 귀에 이기준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 대장이 계산이 빠른 사람이라 나한테 붙기로 했소.”
“당신한테 말이지?”
우장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럼 남조선 측에 붙었다는 말인데.”
“지금 우리들의 적은 중국군이요, 우 대장.”
이기준의 목소리도 딱딱해졌다. 다시 이기준의 말이 이어졌다.
“815군단이 합세하면 우리 3개 군단이 남북을 견제할 수가 있소. 그렇지 않소?”
맞는 말이다. 남쪽 김경식의 2군단은 좌우의 4군단과 5군단, 그리고 위쪽 12군단에 막혀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유일한 남쪽 탈출구는 남조선, 지금도 2군단 병사들의 탈북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3개 군단은 북쪽 평양을 견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이기준이 말했다.
“어떻소? 우리는 제3세력이 되는 것이오. 남조선과 연합할지도 모르는 위원장 세력과 중국군을 끼고 있는 김경식 세력, 그리고 남조선과도 유대를 맺되 새로운 북조선을 추구하는 우리가 바로 제3세력이 되겠소.”
“흠, 그렇게 조영근이를 끌어들였고만.”
“당신이 그런 식으로 820전차군단을 끌어들여 보시오.”
그렇다면 명실 공히 제3세력으로 굳어질 것이었다. 한동안 눈만 껌벅이던 우장선이 이윽고 잇사이로 말했다.
“검토해봅시다.”
전쟁 이틀째로 접어든 오후부터 한국 사회는 평상시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라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와 검문소가 세워졌고 군인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긴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급락했던 증시는 가파르게 회복되는 중이었으며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증시의 외국 자본도 만 하루 만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전시라지만 북한 땅에 일어나는 전쟁인 것이다. 북한 군부가 세 세력으로 갈라지고 반란군으로 뒤덮였으며 중국군까지 진주해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남한에는 총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정부와 계엄군은 이 기회를 이용해 친북 세력을 소탕하고 있었으니 일석삼조, 일거삼득의 행운이나 같았다.
“이게 도대체.”
노동민족당 국회의원 임민희가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더니 남편 오종구를 보았다. 눈을 치켜떴고 어금니를 악문 모습이다. 저녁을 먹던 중이어서 오종구가 힐끗 옆에 앉은 아들 오연수의 눈치를 보고는 낮게 묻는다.
“무슨 일인데?”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방송은 계속해서 특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남쪽은 가만있는데도 북한 땅이 격동하는 중이었다. 전국이 반란군으로 뒤덮여 있으며 군부는 세 세력으로 나뉘었다. 김정일은 한국 대통령 박성훈에게 진주한 중국군을 침략자로 성토했으며 휴전선에서는 인민군이 수천 명 단위로 투항해오고 있다. 몇 시간 전까지 조선성으로 편입될 것 같았던 북한 땅이 이제는 남북한 통일이 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그 주모자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다.
“걱정 마. 중국군이 어디 바지저고리야? 곧 평양을 장악하고 북한 땅을 평정할 테니까.”
“김정일이 문제야.”
임민희가 잇사이로 말했다. 김정일과 박성훈의 대화가 방송되었을 때 화가 난 임민희는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던져 박살을 냈다. 그래서 지금 TV는 손으로 만져서 작동한다. 힐끗 오연수의 눈치를 살핀 임민희가 소리죽여 말을 잇는다.
“한국 주도의 통일은 우리한테 최악의 시나리오야. 김정일이의 미친 짓을 어떻게든 막아야 할 텐데 큰일 났어.”
“글쎄, 두고 보자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오종구의 표정도 어둡다. 그때 밥을 삼킨 오연수가 문득 머리를 들고 임민희와 오종구를 번갈아 보았다.
“엄마, 김정일이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 때문에 통일이 되는 거야?”
방송에서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초등학교 5학년인 오연수가 그 정도로 감을 잡을 만했다. 그때 임민희가 대뜸 말했다.
“아니, 배신자, 반역자야. 그놈 때문에 아주 나쁜 통일이 될지 모른단다.”
홧김에 뱉은 말이어서 그렇게 말한 임민희 자신도 무슨 소린지 아리송했다.
7월26일 19시, 개전 32시간10분25초 경과.
“나야.”
하고 이동일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앞쪽 스크린에 얼굴이 떴다. 휴대전화의 영상화면이었지만 선명하다. 이동일의 깎지 않은 수염도 생생하게 드러났다. 송아현은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먹먹해졌고 목이 멘다. 그리고 눈에 불티가 들어간 것처럼 뜨겁게 따끔거린다. 송아현이 꾸물대는 것이 불안했는지 뒤에 선 군 홍보 관계자들이 부스럭거렸다. 다시 46용사의 현장 화면이 방영되는 것이다. 송아현이 물었다.
“오빠, 몸은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응, 그래. 난 괜찮아.”
화면에 비친 이동일의 표정이 어둡다. 다시 숨을 들이쉬며 송아현이 묻는다.
“46용사는?”
“7명 전사, 8명 부상, 현재 전력은 31명이다. 이제 31용사가 되었어.”
그 순간 송아현보다 뒤쪽 군 당국자들이 놀란 듯 수선거리는 소리가 커졌다가 그쳤다. 그때 옆쪽에 서 있던 최재창 대령이 계속하라는 손짓을 한다.
“오빠, 그쪽 상황은 어때?”
“인민들이 모두 총을 들고 일어난 것이나 같아. 군부대를 제외한 모든 곳이 노농적위대, 교도대, 청년근위대 등의 혁명군으로 뒤덮여 있다.”
화면에 비친 이동일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목소리도 떨렸다. 이동일은 지금 반란군을 ‘혁명군’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이들은 군부대나 보위부, 당의 창고를 약탈해서 인민들에게 분배해주지만 질서를 지켜가고 있어. 각 혁명군끼리 연합을 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는 중이야. 이젠 ‘인민혁명군’의 새로운 세력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동일이 열띤 목소리로 말했을 때 옆쪽 벽에 붙어선 최재창이 번쩍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주먹을 쥔 손의 엄지가 이쪽으로 솟아 올라가 있다.
“저런, 31명이 되었어.”
일산 호수공원 앞쪽 대호식당 안에서 사장 김대호씨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그는 손님들과 함께 TV를 보는 중이다. 저녁시간이어서 식당 안에는 손님이 가득 찼지만 모두 TV를 보느라 조용했다.
“아이고, 어쩌끄나. 일곱 명이 전사했고 여덟이 부상이라네.”
손바닥으로 카운터를 두드리는 김대호씨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이고, 저 대위도 살어 돌아와야 헐틴디.”
그때 화면이 바뀌었으므로 손님들은 제각기 머리를 돌렸지만 김대호의 사설이 이어졌다.
“그려, 인민혁명군이라고 했지? 잘 헌다. 참말로 북한 사람들이 자랑스럽네. 잉?”
혼잣소리였지만 옆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 두 명이 제각기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안쪽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자, 31용사 허고 인민혁명군을 위하여 건배합시다!”
10장 인민혁명군
이동일 대위는 한국군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생존한 해병 21명을 남쪽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평양의 주석궁으로 향한다.
김정일은 이동일을 ‘남북한 비공식 특사’라며 곁에 두는데…. <편집자>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전 10시.
개전(開戰) 8일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남북한 간 전면전 상황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고 북한군의 기습 도발에 반응한 한국군 해병 기동단이 북한령 옹진반도에 상륙함으로써 시작된 국지전이다. 따라서 전장(戰場)은 북한 땅에 국한되었다. 김정일과 김경식군(軍)의 대결에서 이탈한 중립군 세력의 등장. 거기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개입으로 북한 땅에는 선양군구(軍區) 소속의 3개 집단군이 투입되었으며 김정일군과의 교전이 일어났다. 거기에다 북한 전국에서 봉기한 노농적위대, 교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의 예비군 세력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혼란 상태가 되었다. 개전 8일째 되는 현재 북한 전국의 ‘인민혁명군’은 차츰 조직화, 집단화되어가는 중이었으며 중국군 주력은 평양 북방의 순천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평양을 포위한 형국이다.
“중국군만 개입하지 않았으면 북한은 해방이 되는 건데 아쉽구먼.”
평양시 남쪽 중화군의 제31협동농장 창고가 제45인민혁명군의 본부다. 창고 옆쪽 벽에 기대서서 강성일이 말했다.
“그때는 우리가 인민혁명군과 손을 잡고 북한을 해방시킬 텐데 말이요.”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중국군이 없다면 김경식 세력은 깨진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흩어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쪽은 이기준의 12군단과 조영근의 815기계화군단, 거기에다 개전 사흘째 되던 날 전격적으로 우장선 대장의 4군단과 최기백 대장의 820전차군단이 합류했으니 이미 북한의 제2세력이 되어있는 것이다. 우장선은 이기준의 제의를 받자 개성 북방까지 진출했던 820전차군단까지 끌어들여 합류한 것이다. 거기에다 인민혁명군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 제45인민혁명군도 이기준, 우장선이 주축이 된 중립군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때 군관 하나가 다가와 강성일에게 말했다.
“평양 시내에서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시내에 잠입한 정보원의 보고입니다.”
강성일의 시선을 받은 군관이 말을 이었다.
“호위총국 소속의 전차여단 내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사령부 건물이 폭파되고 전차 간 교전으로 전차 몇십 대가 파괴되었으며 20분쯤 지나고 그쳤답니다.”
“내부 반란인 것 같군.”
쓴웃음을 지은 강성일이 머리를 돌려 옆에 선 이동일을 보았다.
“중국군이 바로 머리 위에 있으니 단속이 어려울 거요.”
“사령부에서는 북한군 내부의 이탈이 심해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김정일 측 군부에서 중국군 쪽으로 돌아서는 부대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사흘 전에 평양 좌측 3군단 산하 2개 사단이 중국군과 합류했다. 노골적으로 중국군 부대를 옆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김정일을 배신한 것이다. 지금 2개 사단 옆에는 중국 제40집단군 소속의 119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그때 그들 옆으로 제45인민혁명군 부대장으로 선발된 백동석이 다가왔다. 노농적위대장 출신으로 52세에 인민군 대위로 제대하고 중화군 소재 축사 관리인을 지낸 인물이다.
“무전기 24대를 획득했습니다. 이젠 통신 문제는 해결되었소.”
백동석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을 편 백동석이 말을 잇는다.
“연산의 62인민혁명군과도 연락이 됩니다. 연산에서는 함경남도 덕성 부근의 제178인민혁명군까지 통신을 했다고 한단 말입니다.”
나흘 전부터 남한에서는 풍선에 소형 무전기를 넣어 북한 전역을 향해 띄웠는데 엄청난 효력이 발생했다. 첫째 인민혁명군 부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12군단, 4군단 등 중립군 참모부 지시가 무전기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전역에 조직된 인민혁명군 부대는 200여 개, 부대원 숫자는 10만명 가까이 되는데 계속 증가하고 있다. 모두 무전기가 대량으로 살포된 덕분이다. 강성일이 머리를 들고 이동일을 보았다.
“전연지대 서쪽이 비어 있는데 왜 남조선군이 머뭇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렇다. 사흘 전부터 4군단장 우장선은 서해안 4군단 지휘하의 모든 부대에 한국군과의 교전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한국군과의 연합이나 같다. 따라서 남해 근처에 잔류했던 해병부대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졌으며 해군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까지 지원받아 교두보를 굳혔다. 이제 한국군은 4군단 지역을 통과해 북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성일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머리를 기울였다.
“그건 지휘부에서 조처하겠지요. 난 해병 중대장일 뿐입니다.”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전 11시, 개전 8일째.
“이해가 안 되는군” 하고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말했다. 이곳은 오산 시내 중심가의 해장국집 안이다. 전쟁 8일째여서 국민의 긴장감은 많이 느슨해졌지만 여전히 군은 전시상황을 유지했으며 계엄도 해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산 연합사벙커에 상주하다시피 했던 지휘관들은 3교대 체제가 되었다. 다 모여 있는 것보다 8시간씩 교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 전부터 정용우는 상황실을 나오면 오산 시내 해장국집 남원옥에서 해장국을 먹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지금 밀고 올라가면 통일이 되는 거야. 각 인민혁명군 부대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할 것이고 4군단, 12군단이 장악한 황해남북도는 이미 우리 땅이나 마찬가지란 말야. 이건 도무지.”
수저를 내려놓은 정용우가 앞에 앉은 참모 최재창을 쏘아보았다. 이것은 닷새 전부터 한국군 일각에서 나왔던 의견이지만 연합사 지휘부에서 묵살되었다. ‘확전을 피하고’ ‘놔두면 상황이 더 이롭게 될 테니 기다리자’는 것이 한미 양국 정상 간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군은 군인이 지휘해야 돼. 정치가들한테 맡기면 군이 시위대 정도가 되어버린단 말야.”
정용우가 투덜거렸을 때 최재창이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중국군을 몰아내려면 인민혁명군이 나서야 됩니다. 김정일군은 물론이고 중립군도 나서지 못할 테니까요.”
이미 그것도 지휘관들 사이에 논의된 사항이어서 정용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전력상 숫자가 많을지 몰라도 북한군의 전의가 약해지고 있다. 이런 군대로 전쟁을 치르면 백전백패다.
“빌어먹을 중국 놈들.”
정용우가 혼잣소리처럼 투덜거렸다. 중국군이 진입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마른 모래성처럼 이미 허물어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인민혁명군과 중립군이 연합해 전연지대를 개방해버리면 한국군은 무혈 북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립된 김정일군과 김경식군은 무기력해져서 저항 한번 못하고 흩어지게 된다. 이것이 전략가들의 예측이었다.
“하지만 현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최재창이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인민혁명군이 바로 북한 인민이니까요.”
“제88전차여단은 이정국 대좌가 장악했습니다.”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이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주석궁의 지하 상황실 안이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윤국순이 말을 이었다.
“반란자 윤기열, 고동수, 그리고 참모 두 명과 연대장 하나, 탱크 중대장 넷을 즉결처형했습니다.”
상황실 안은 조용해서 옅은 기계음 소리만 울린다. 호위총국 소속의 88전차여단이 중국군과 합류했다가 하루 만에 반란 지휘부가 소탕된 것이다. 중국군과 합류했던 여단장 윤기열 중장, 참모장 고동수 소장 등은 제3연대장 이정국 대좌가 일으킨 역(逆)쿠데타에 의해 처형되었고 다시 호위총국 소속이 되었다. 머리를 든 김정일이 벽에 펼쳐진 상황판을 보았다. 순천 주위에 수십 개의 노란색 등이 켜져 있다. 그리고 평양특별시 위에도 3개의 노란색 등이 깜박이고 있다. 중국군 부대다. 그러나 평양특별시 안은 동요하지 않는다. 88전차여단 한 곳만 반란을 일으켰다가 소탕되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철저한 충성심으로 뭉쳐져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상황판 앞쪽에서 깜박이는 전광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10분이다. 개전 8일째.
“서울로 전화 연결해.”
김정일이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졌다. 그러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명령을 받은 부관 서너 명이 소리 없이 움직이더니 곧 전화기를 들고 다가와 김정일에게 내밀었다.
“남조선 대통령입니다.”
서울이란 곧 박성훈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 김정일이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였다.
“대통령님, 저올시다.”
“예, 위원장님.”
그동안 10여 차례 통화를 했다가 요즘 닷새 동안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전선도 형성되지 않은 채 북한 영토가 전장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협조를 구할 것도, 타협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치고는 이런 악수(惡手)가 없다. 일을 일으킨 김형기, 김경식 일당도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전처럼 그대로 꽁무니를 빼거나 대응하는 시늉만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다. 겁쟁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겁쟁이들이 즉각 밀고 올라와 북한령에 상륙하다니, 해안 기지가 초토화되고 군부대가 이탈하고, 반란군이 비온 후의 잡초처럼 솟아나더니 중국군 진입, 그리고 이젠 북한 전국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김정일은 평양특별시와 아직도 충성을 다하는 대여섯 개 군단을 장악하고 있는 소말리아 군벌이나 같다. 김정일이 말했다.
“4군단, 12군단은 황해남북도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815, 820군단이 개성과 중부전선까지 닿아 있어서 서쪽 방면은 휑 뚫렸습니다.”
‘휑’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주위 장군들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갑자기 찬바람을 맞은 것 같다. 박성훈도 긴장했는지 가만있었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김경식의 2군단이 옆에 있지만 부대 단속하느라 급급해서 주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
“더구나 우측에 위치한 제5군단은 내 지휘를 받는 충성스러운 부대여서 움직이면 옆구리를 찔릴 것입니다.”
“위원장님,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고 박성훈이 용건을 말하라는 듯 재촉했을 때 김정일이 말했다.
“한국군을 서쪽 통로로 진입시켜 주시지요.”
놀란 박성훈이 다시 입을 다물었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평양 이남의 황해남북도를 한국군이 통제해주십시오. 아마 이기준과 우장선이 지휘하는 이른바 중립군은 한국군과 합류할 것이고 인민군들도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면 자연스럽게 김경식의 2군단과 그 추종 세력은 앞뒤가 막혀 말라죽을 것입니다.”
“……”
“그 상태가 되면 중국군과 북남 연합군의 대치 국면으로 상황이 정리되겠지요. 이것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대표한 내 제의올시다.”
“알겠습니다.”
박성훈의 말끝이 조금 떨렸다.
“검토 후에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정확히 35분 후인 2014년 8월1일 오후 2시15분.
산본장의 지하 벙커에서 전시 비상 각료회의가 열린다. 이번 회의에는 오산 연합사벙커에서 합참의장과 3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기무사령관까지 다 불려왔다. 장방형 원탁에는 20여 명의 각료, 군 지휘관이 둘러앉았다. 회의가 시작되자 먼저 대통령이 직접 김정일과의 통화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모두 숨소리까지 죽이고 듣는다. 이윽고 말을 마친 대통령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연합사령관과 미국 대통령에게도 통보해야겠지만 먼저 의견을 듣겠습니다. 기탄없이 말해주세요.”
그러자 국방장관과 시선을 마주쳤던 합참의장 장세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북진해야 됩니다, 대통령님.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육참총장 조현호와 해참총장이 동시에 말했고 안보수석 주명성까지 거들었다. 박성훈의 시선이 국정원장 윤태섭에게로 옮겨졌다. 그러자 윤태섭이 말했다.
“중국군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러나는 순간에 한반도는 반중(反中) 국가가 됩니다. 이것으로 조선족 자치구는 물론 기타 자치구의 연쇄 독립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변 열강도 그것을 지원할 것이고요. 따라서 중국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한 연합을 막을 것입니다.”
“김경식이란 역적의 이용가치가 높아지겠군.”
박성훈이 혼잣소리처럼 말을 받았을 때 말석의 장군이 헛기침을 했다. 해병사령관 정용우다. 헛기침 소리에 시선을 받은 정용우가 말했다.
“김정일에게 일단 승낙을 하시고 한편으로 인민혁명군을 동원해서 중국군과 김경식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앞이었기 때문인지 정용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고 얼굴도 조금 붉어져 있다.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현재 북한은 300여 개의 인민혁명군이 조직되었고 계속해서 솟아납니다. 이건 엄청난 게릴라 부대입니다. 더구나 북한땅 전역에 퍼져 있어서 관리만 잘하면 이동도 필요 없습니다. 이건 마치 벌떼 속에 들어간 꼴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만.”
말이 길어지고 있었으므로 합참의장 장세윤이 손을 들어 막았다. 정용우가 벌렸던 입을 다물었을 때 장세윤이 박성훈을 보았다.
“해병사령관 작전이 최선입니다.”
군부 쪽은 모두 입을 다물었는데 그것이 군의 입장이라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시간 후, 한국 시간으로는 8월1일 금요일 오후 3시30분. 미국 워싱턴 시간은 오전 1시30분이다. 백악관 침실에서 나온 오바마가 가운 차림으로 서재의 벽에 붙여진 화면 앞에 앉는다. 화상 회의를 하려는 것이다. 주위는 조용하다. 마악 잠에서 깨어난 터라 얼떨떨한 상태지만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았더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회의는 이런 방식으로 각각 떨어져서 편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버튼을 누르자 대형 화면이 여섯 조각으로 분리되면서 각각 참석자 모습이 드러났다. 오바마처럼 자다가 깬 가운 차림은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 제임스 코넬 국방장관은 셔츠 차림이고 합참의장 마크 핸슨은 정복을 갖췄다. 그때 오바마가 말했다.
“자, 한국의 미스터 박과 북한의 크레이지 김의 중요한 대화 이야기를 합시다.”
이미 비서실장 어윈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터라 오바마가 화면을 훑어보며 말을 잇는다.
“만일 그렇게 되었을 경우인데 득과 실을 따진 후에 우리 방침을 결정해야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각하, 한국의 미스터 박이 제의를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아래쪽 화면에서 CIA국장 리처드 번스가 먼저 말했다. 번스가 잿빛 눈으로 오바마를 쏘아보았다. 번스가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끝난 미스터 박과 최고위층 회의에서도 미스터 김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오바마가 화면 전체를 향하고 묻자 국무장관 스튜어트가 먼저 말했다.
“북진하면 안 됩니다. 막아야 합니다.”
그러자 CIA국장 번스가 말을 받는다.
“일본 고위층도 그런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각하.”
“그리고.”
화면에 쓴웃음을 짓는 국무장관 스튜어트의 얼굴이 보였다. 스튜어트가 말을 잇는다.
“베이징의 맥마흔이 조금 전에 중국 지도부의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중 양국의 친선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현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맥마흔은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 아서 맥마흔을 말한다. 오바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빌어먹을 중국 놈들.”
“이번 요청을 받아들이면 중국은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급했군.”
오바마가 말했을 때 잠자코 있던 제임스 코넬 국방장관이 말했다.
“각하, 한국은 60년 동맹국입니다. 동북아 역학관계는 대학 신입생도 다 아는 바이지만 이 기회에 통일되도록 놔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제임스, 이 회의 테이프도 보관될 것이니까 당신 의견도 역사에 남을 거요” 하면서 오바마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빌어먹을. 내가 그 발언을 했어야 되는데, 안타깝군.”
“자, 제임스. 당신도 착한 발언 한번 했으니까 이제 현실 이야기를 합시다” 하고 국무장관 스튜어트가 말했다.
전문을 내려놓은 후성궈가 참모장 양훙을 보았다.
“연합사는 북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지만 한국군 단독행동 가능성이 있다는군.”
그는 방금 베이징 군사령부에서 온 암호 전문을 읽은 것이다. 2014년, 첨단 병기와 통신 수단이 발달했지만 그와 동시에 도청과 방어 기술도 향상되었기 때문에 후성궈는 60년 전 6·25전쟁 때 사용했던 암호 전문을 읽는다. 입맛을 다신 후성궈가 말을 이었다.
“8일 전에 한국군 해병이 치고 올라왔을 때처럼 말야.”
“그땐 김경식이를 내세워야지요.”
정색한 양훙이 후성궈를 보았다.
“2군단을 서부지역에 넓게 배치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 뒤에 우리 군으로 2차 전선을 구축하지요.”
“그렇게 하도록.”
“먼저 김경식에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참모장 양훙이 돌아섰을 때 후성궈는 쓴 것을 맛본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양훙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노련한 양훙이어서 일부러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인민혁명군의 존재다. 이제 300개 이상으로 늘어난 곳곳의 인민혁명군은 조직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거대한 게릴라 부대나 같았다. 게다가 전국 도처에 깔려 있어서 북한 땅이 마치 뱀굴처럼 느껴진다. 후성궈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뱀이다.
‘이런 빌어먹을.’
한미연합군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잇사이로 욕을 했다. 8월1일 오후 4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오산의 연합사 지하 벙커 안 사령관실에서 우드워드와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 둘이 회의 중이다. 키다리 해리슨이 앉아 있었고 우드워드가 주위를 서성대면서 말을 잇는다.
“방법은 많아, 모건. 뻥 뚫린 서부 DMZ 지역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야. 지금 남해에서 정비 중인 해병 연대를 북상시킬 수도 있고, 한국 놈들, 머리가 좋으니까 별놈의 핑계를 다 대겠지. 귀순하는 북한군을 보호한다느니, 또는 총격전을 꾸미고 북상할 수도 있겠지.”
“장군, 장군.”
주위를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정신이 사나워진 해리슨이 불렀지만 우드워드는 멈추지 않았다. 참다 못한 해리슨이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머리통 하나보다 더 낮은 우드워드가 내려다보인다. 해리슨과 시선이 마주친 우드워드가 서둘러 의자에 앉는다. 다시 자리에 앉은 해리슨이 입을 열었다.
“장군, 한국 속담에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드워드의 시선을 받은 해리슨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강력히 경고하는 겁니다. 연합사령관 명령을 어기면 즉시 징계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무리한 억제는 하지 맙시다.”
“무리한 억제라니?”
“각 부대 앞을 차단한다든지 감시관을 파견한다든지 하는 조치 말입니다. 역효과를 보게 될 겁니다.”
“빌어먹을.”
“그러니까 대세에 맡깁시다. 이건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장군.”
“그런데 그 빌어먹을 워싱턴에서는.”
“아, 그놈들이야 머리 쓰는 일이 본업 아닙니까? 지금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겠지요. 남북한이 통일되면 핵을 보유한 거대한 군사대국이 탄생할 테니까 말이요. 일본이 지금쯤 오바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을 거요. 시진핑도 열심히 베이징 미국대사관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것이고, 그래서 결국 우리한테 한국군을 꼼짝 못하게 잡아놓으라고 했지만…….”
“대세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강력히 경고합시다.”
“놈들이 우리가 워싱턴 지시를 받고 북상을 저지하려는 의도인 줄 알겠군.”
“김정일이나 박성훈이 통화를 하면서 자신들의 대화가 세계만방으로 다 도청이 될 줄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 그 두 남북한 대빵 놈은 워싱턴의 반응도 예상하고 그 수작을 부린 것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수군거리라는 것도 예상했을지 모릅니다.”
“닥쳐, 해리슨.”
이맛살을 찌푸린 우드워드가 의자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그럼 우리 오바마도 그쯤은 예상하고 있겠군 그래. 우리가 지금 대세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도 말야.”
“국무부의 스튜어트나 CIA 번스가 몇 개씩 방비책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오바마한테 내놓겠지요.”
그러자 한동안 해리슨을 바라보던 우드워드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자, 한미연합사령관 명령으로 한미양국군은 사령관 허가 없이 이동할 수 없다는 작전명령을 내려.”
“예, 사령관.”
그러자 우드워드가 입맛을 다셨다.
“그것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군.”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후 4시45분, 개전 8일째.
한국군 제105 기갑사단장 차봉호 소장이 사단장 지휘차인 장갑차 안에서 컴퓨터 화면에 뜬 작전명령을 읽는다. 옆에는 작전참모 윤상기 중령, 뒤쪽에서 참모장 안대길 준장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연대장들과 통신을 하는 중이다. 이윽고 화면에서 시선을 뗀 차봉호가 윤상기에게 말했다.
“사령관의 지시가 강력하군. 세 번이나 월경금지를 강조했어.”
윤상기가 앞쪽의 레이더 스크린을 본 채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차봉호가 몸을 돌려 안대길을 보았다. 그때 마침 통화를 마친 안대길이 보고했다.
“각 부대 출동준비 완료했습니다.”
“시동 건 것도 다 위성으로 잡힐 거야, 그렇지?”
“무전 내용도 실시간으로 다 듣고 있을 겁니다, 사단장님.”
차봉호는 10분 전에 합참의장 장세윤한테서 북진하라는 비밀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작전참모 윤상기의 휴대전화를 통한 지시여서 원칙을 생명처럼 여기는 차봉호가 시궁창에 빠진 표정을 지었지만 내용을 듣더니 의기충천했다. 그때 윤상기가 갑자기 레이더 화면을 보고나서 소리치듯 말했다.
“820이 좌우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출발! 선두는 3연대!”
마침내 차봉호가 지시했다.
“고속도로로 곧장 진입한다!”
북진이다. 한국군의 선봉이 되어서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를 타고 북진하는 것이다. 윤상기가 다시 명령을 복창했고 지휘 장갑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북방에 진입해 대기한 지 7일 만에 떠나는 셈이다.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차봉호가 차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런 명예가 없어! 이제 전차 안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 시간에 오산 한미연합사 지휘상황실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진다. 그것은 놀람의 탄성이라는 표현이 맞다. 위성 화면에 생생하게 비친 전차들의 전진은 장관이었다. 개성공단 북방에 7일째 포진하고 있던 한국군 제105기갑사단이 일제히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사령관으로부터 월경금지 명령이 세 번째 내려온 다음이었으니 이것은 명백한 명령불복종이다. 그러나 보라. 위성화면 위쪽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북한군 제820기갑군단이 동시에 좌우로 벌어지면서 통로를 비워준 것이다. 연합사 지휘관들의 탄성은 820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했다.
“중지시켜!”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의 참모 하나가 버럭 소리쳤지만 호응하는 장군은 없다. 그러고 보면 소리친 본인도 곧 입맛을 다시면서 외면하고 있다.
“어, 빠른데.”
공군 제복을 입은 한국군 소장 하나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감동을 이기지 못해서 뱉는 말이다.
“820이 좌우에서 지원하면 무적 기갑군단이 되겠다.”
화면에 박혀 있던 한국군 장성들의 얼굴에 자부심의 기색이 덮였다. 그때 해리슨이 소리쳤다.
“어쨌든 공군은 대기시켜!”
한미연합사 전폭기는 이미 한반도 영공에서 24시간 선회하는 중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해리슨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면서 말을 잇는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공중 지원을 하도록, 다만 영공을 침범하면 안 된다!”
그러나 위에서는 다 내려다보인다. 한국군 KF-24 기종에 탑재된 공대지, 공대공 미사일 사거리는 한반도 상공에서도 평양까지 닿는다. 해리슨의 시선이 한국군 육참총장 조현호하고 우연히 마주쳤다.
“갓뎀.”
했지만 조현호가 외면하는 바람에 혼잣말처럼 뱉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해리슨의 표정도 덤덤하다. 화난 것 같지가 않다.
“막아!”
김경식이 상황 스크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105기갑사단을 가리키는 검은 줄이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 그려져 있다. 위치는 개성 북방 금천을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위협적이다.
“42사단! 141경보병사단! 그리고 제65경비여단이 막아라!”
김경식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참모들이 제각기 분주하게 무전기를 잡고 부르고 소리치는 통에 상황실 안의 분위기는 급박해졌다. 그러나 뒤쪽에 모여선 원로급 장성들의 표정은 무겁다. 무력부장 성종구와 부부장 심철 상장 등은 입을 다물고 스크린을 본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평산 아래쪽 고속도로다. 그곳에 주둔했던 820기갑군단이 좌우로 벌려 105기갑사단에 길을 터주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다. 2군단 소속 42사단과 141경보병사단, 제65경비여단은 105기갑사단이 북상하는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 치기다. 820전차군단이 붙어도 105기갑사단을 깰 확률이 낮은 상황인데 둘이 연합한 것이다. 그때 김경식이 버럭 소리쳤다.
“북침이야! 제2항공사단을 출동시켜!”
그 순간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다. 제2항공사단은 함경남도 덕산에 있는데 그곳만이 김경식이 장악한 항공사단이다. 제1, 제3 항공사단은 김정일이 지휘한다.
“공군은 놔둡시다.”
잠깐 정적을 깬 사내는 무력부장 성종구다. 성종구가 김경식을 향해 똑바로 섰다.
“지금도 남조선 상공에 전투기가 떠 있는데 떴다간 다 당하게 될 테니깐.”
그러고는 성종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그냥 활주로에 놔 보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오, 동무.”
“중국군 쪽에 연락해!”
와락 몸을 돌린 김경식이 부하 장군에게 소리치는 것으로 제2항공사단의 전투기 출격은 보류되었다. 다시 상황실이 평소의 수선스러운 분위기로 돌아갔을 때 심철이 성종구 옆으로 다가가 낮게 말했다.
“떴다면 다 격추되었을 것입니다. KF-24하고는 미그기가 상대가 안 됩니다.”
“김 대장의 의도는 다른 데 있소.”
팔짱을 낀 성종구가 쓴웃음을 짓고 말을 잇는다.
“김경식은 작은 싸움과 정치에 능한 인간이지. 제2항공사단 전투기가 다 떨어지기 전에 중국 랴오닝성 군구의 중국군 항공사단 전투기들이 벌떼처럼 한반도 상공으로 날아왔을 거요.”
심철은 심호흡을 했다. 랴오닝성 군구에는 중국군 공군 제1, 4, 11, 21, 30의 5개 항공사단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최신예 전투기만 수백 대가 된다. 심철이 잇사이로 말한다.
“김 대장이 중국군을 믿고 저렇게 당당하군요.”
그때 김경식이 다가왔으므로 둘은 긴장했다. 다가선 김경식이 핏발 선 눈으로 둘을 보았다.
“이동 준비를 끝냈으니 갑시다.”
“어딜 말이오?”
성종구가 묻자 김경식이 어깨를 으쓱대다 내리면서 말했다.
“중국군 지휘부와 합류하려는 겁니다.”
그렇다. 제55호위대 벙커는 이제 105기갑사단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무전기를 귀에서 뗀 이동일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후 5시15분이다.
“5시 반에 공격이다.”
그러자 황찬우가 뒤쪽의 이 하사에게 낮게 소리쳤다.
“이 하사! 5시 반에 공격이다!”
지시하는 황찬우도, 복창하는 이 하사의 표정에도 여유가 있다. 이곳은 평양특별시 동쪽의 강동군이다. 이동일과 황찬우가 나란히 엎드려 있는 곳은 물이 마른 개울가의 제방 위였는데 앞쪽 마을에 중국군이 득실거리고 있다. 주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중국군만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옥 사이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포신이 보인다. 대포다. 한동안 옆쪽을 바라보던 이동일이 말했다.
“전국의 인민혁명군이 동시에 중국군과 인민군 부대를 공격할 거야.”
“인민군 부대라면.”
머리를 든 황찬우가 이동일을 보았다.
“김정일 측 부대까지 말입니까?”
“그렇다.”
“그럼….”
“인민혁명군은 이제 북한군에 속하지 않겠다는 표시야. 김정일군도, 그렇다고 김경식군도 아니란 말이지. 이번 공격으로 그것을 분명하게 보이는 거야.”
“… ….”
“한국군과 중립군이 우방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이동일과 해병 31명도 강성일의 부대와 함께 지금 중국군 포병부대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앞쪽에 포진한 중국군은 제39집단군 소속의 포병여단으로 이동일은 우측 끝부분을 맡았다. 지금 인민혁명군 6개 부대 2000여 명이 사방에서 포위한 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망할 자식들. 주민을 총알받이로 삼을 작정이었나? 마을에다 포병대를 풀어놓다니.”
황찬우가 혼잣소리로 투덜거렸다. 주변이 평지여서 포병여단을 배치할 곳을 찾다가 이곳으로 결정한 모양인데 포신이 모두 평양 쪽을 향하고 있다. 이동일이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5시25분이 되어가고 있다. 이동일이 말했다.
“5분 전이다, 준비.”
강동군의 제39집단군 소속 187포병여단 주둔지에서 푸른 섬광이 반짝였을 때 후성궈는 상황실에서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중국 인민군 또한 위성을 통해 작전지역을 훑고 있었는데 담당 군관이 소리쳐 보고하기도 전에 후성궈가 보았다. 마을에 포진한 187포병여단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중이었다.
“인민혁명군입니다.”
참모장 양훙이 잇사이로 말했다. 중국군의 공식명칭은 인민해방군이다. 그 순간 양훙이 북한의 게릴라 부대를 인민혁명군으로 부른 자신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으나 후성궈는 상황 화면에 정신이 팔려 의식하지 못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겠다.”
후성궈가 잇사이로 말했을 때 참모 하나가 건의했다.
“제116기계화보병사단의 제3연대가 가장 가깝습니다. 지원을 보내는 것이….”
“보내!”
던지듯이 말한 후성궈의 시선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개성 위쪽 고속도로다. 후성궈의 시선을 살핀 참모가 위성 각도를 조절해 그쪽을 비췄다. 이제 105기갑사단은 평산을 오른쪽에 두고 북상하고 있었는데 인산 근처에서 2군단 소속 42사단과 부딪칠 것이었다. 거리는 이제 15㎞ 정도로 가까워졌다.
“돌파할 것입니다.”
파죽지세로 북진해오는 남한의 기갑사단을 노려보면서 양훙이 말했다. 위성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탱크의 캐터필러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산 M1A1 전차는 K-1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 세계 최강의 MBT로 인정받았는데 미군의 M-1에이브럼스 전차의 개량형이다. 지금 125㎜ 할강포를 탑재한 M1A1 700여 대가 시속 60㎞의 속력으로 북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장갑차 대열이 따르고 있다. 보병과 지원부대다. 그 뒤쪽에 시선을 준 후성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820기갑군단이다. 5개 전차여단으로 구성된 820기갑군단의 거대한 대열이 마치 105전차사단을 호위하는 것처럼 따르고 있다. 그때 참모 하나가 다가와 후성궈에게 말했다.
“김경식 대장이 오셨습니다.”
후성궈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벙커의 문이 열리면서 김경식을 선두로 성종구, 심철 등 제55호위대 벙커에 진을 치고 있던 북한 반란군 수뇌들이 들어섰다. 모두 20여 명이나 된다. 이제 평양 남동쪽 제55 호위대 벙커는 비었고 중국군 지휘부와 통합된 것이다. 후성궈가 북한군 지휘관들과 차례로 악수를 하면서 웃었다.
“이제 하나씩 통합되는군요. 이건 좋은 현상입니다.”
그것이 조금 전에 화면에 뜬 105기갑사단과 820기갑군단에도 해당되는 말이어서 참모장 양훙은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중국군 사령부는 평양특별시 북방의 평안남도 순천 근처여서 김경식 일행은 서해안 쪽으로 돌아왔다. 김경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후성궈를 보았다. “곧 남조선 전차사단과 부딪칠 테니 동맹군의 공군 지원이 필요합니다.”
후성궈가 힐끗 상황 화면을 보았다. 위성화면은 이제 다시 187포병여단을 비추고 있다. 공격을 받은 여단의 남쪽과 서쪽 방어선이 뚫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섬광이 작렬했고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화면에 가득 불덩이가 덮여 있다. 화면을 본 김경식과 북한 지휘부가 말을 잃었고 참모장 양훙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116사단이 출동했습니다만 30분쯤 걸릴 것 같습니다.”
30분이면 상황이 종료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105기갑사단과 북한 2군단 소속 42사단이 안산 북방의 고속도로에서 충돌하게 된다. 이곳은 인민혁명군이다. 중국군과 북한 반란군 지휘부는 함께 화면을 응시한 채 한동안 침묵했다.
“꽈앙!”
던진 수류탄이 탄약고 안으로 굴러 들어가더니 대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포탄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는데 파편이 포탄처럼 사방으로 쏟아졌다. 폭음이 수십 번이나 계속해서 울리는 바람에 이동일은 105㎜ 곡사포 포신에 몸을 붙인 채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쏟아진 파편이 곡사포에 맞고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튕겨났다. 공격해오던 혁명군도 모두 엎드려 있다.
이것으로 187 포병여단은 궤멸되었다. 사방에서 기습해온 해방군을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은 정예, 정규군이 따로 없다. 북한 매체가 선전해온 대로 전 인민이 군인이며 정예다. 남자가 병신이 아닌 이상 평균 10년의 군 생활을 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
그러니 예비군 중 가장 나이 든 50대 후반의 노농적위대원도 총을 쥐어주면 정예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 순간 혁명군은 새 세상,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의식이 박혀 있다. 그동안 억눌렸고 굶주렸던 시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탄약고 폭발이 그친 순간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돌격!”
“돌격!”
모두 한국말이다. 아우성치듯 누구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이겼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이제는 요란한 소총 발사음이 사방에서 울린다. 몸을 일으킨 이동일이 옆에 선 안 하사를 보았다.
“이긴 것 같구나.”
폭음에 귀가 먼 모양인지 안 하사가 시선만 주었으므로 이동일이 소리쳐 말했다.
“이겼단 말이다, 혁명군이.”
그래도 안 하사는 눈만 껌벅였다.
제42사단 3연대장 이윤성 대좌가 장갑차에 오르면서 소리쳤다.
“포병대대가 먼저 쏠 테니까 그때 공격한다.”
이곳은 고속도로에서 2㎞쯤 떨어진 샛길이다. 주위에는 10여 대의 장갑차가 시동을 건 채 멈춰 서 있었는데 이곳이 연대 지휘부다.
“연대장 동지. 1대대와 3대대, 그리고 대전차대대가 공격준비를 마쳤습니다.”
무전기를 귀에서 뗀 작전참모가 장갑차 안쪽에서 보고했다.
“적 선두와의 거리는 5㎞ , 포병연대가 공격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놈들은 공군을 움직이지 못해.”
철모를 벗으면서 이윤성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8월1일 오후 6시15분이다. 이제 5분쯤 후면 인산 북방의 고속도로에서 남조선의 제105기갑사단과 붙어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다. 고속도로 좌우에 2개 대대와 대전차대대 병력이 포진했고 포병연대는 1대대 뒤쪽 5㎞ 후방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2대대는 예비대로 연대본부 뒤쪽에 배치되었으며 그 2㎞ 후방에는 42사단 소속의 1연대와 2연대, 그리고 사단직할 전차대대와 대공포대대 등이 포진해 있다. 이윤성이 얼굴에 밴 땀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말을 잇는다.
“연합군 공군기가 뜨면 우리 동맹군 공군기도 날아올 테니까 말야. 그때는 세계대전이 일어날 테니 미국 놈들도 꼼짝하지 못해.”
그때 참모가 머리를 들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윤성이 말을 잇는다.
“남조선 땅크들만 저지하면 돼. 그놈들 뒤에 820 반역자 놈들이 따르고 있지만 곧 동맹군 지원군이 올 테니까.”
그때였다. 폭음이 울렸으므로 이윤성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폭발음이다. 이윤성이 무의식중에 옆에 벗어놓은 철모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꽈앙!”
폭발음과 함께 장갑차가 허공에 뜬 느낌이 들더니 이윤성은 장갑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친 순간에 의식을 잃었다. 그래서 장갑차가 뒤집혔을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움직이는 부대는 다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흥분한 참모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이곳은 오산의 한미연합사 사령부 지하 벙커 안. 상황실에는 다시 한미연합사 고위층 장군들과 한국군 수뇌부까지 모여 있었는데 활기찬 분위기다. 상황 화면을 레이저로 가리키며 한국군 합참 소속의 대령이 말을 잇는다.
“2군단의 42사단은 현재 13개 방면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있던 2개 대대와 대전차대대가 혁명군과 교전 중이어서 105기갑사단은 저항을 받지 않고 인산 북방의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위성화면으로 다 보이는 것이다. 구석 쪽에서 짧은 함성이 터졌다가 곧 그쳤다. 한국군 장교들이다. 연합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진격하는 터라 미군 장교들은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밝은 표정은 숨길 수가 없다.
“화면을 올려!” 하고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소리치자 상황화면 통제장교가 평양 서북방으로 화면을 옮겼다. 해리슨의 의도를 아는 터라 강동의 187포병여단 주둔지를 비춘 것이다. 이미 그곳은 폐허가 되었고 사방에서 습격했던 혁명군이 수습하는 중이다. 그런데 동쪽에서 중국군 1개 부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제39집단군의 116기계화 보병사단 소속의 1개 연대다. 장갑차와 탱크, 중화기로 무장한 기계화 보병사단은 기갑부대와 보병의 혼성 부대로 진격 속도가 빠르고 화력이 강하다. 그들은 187포병여단을 응원하려고 투입되었지만 아직 흩어지지 못한 혁명군이 당할 것이었다.
“연락을 해!”
마침내 해리슨이 소리쳤다. 혁명군을 원하는 것이다.
“빨리 저 얼간이들한테 피하라고 해!”
연합사 사령관 명령으로 연합군 이동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혁명군은 해당되지 않는다. 옆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은 못 들은 척했다.
“31㎞ 좌측에서 중국군 1개 기갑연대 병력이 접근한답니다!”
안성욱 하사가 소리쳐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물론이고 옆에 서있던 강성일과 제45인민혁명군 부대장 백동석까지 놀라 시선을 주었다. 안성욱이 무전기를 손에 든 채로 다가와 말을 잇는다. 방금 연합사에서 정보를 받은 것이다.
“10분 거리라고 합니다!”
“어서 흩어져!”
강성일이 먼저 소리쳤다.
“좌측에서 적이다! 모두 흩어져!”
지휘관들이 소리쳤고 주위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이동일도 강성일과 함께 우측 산을 향해 뛰었다.
“다행이오! 정보를 받지 않았다면 마을에서 우리가 포병단 꼴이 될 뻔했소!”
달리면서 강성일이 소리쳤다. 마을 밖으로 나왔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뛰는 혁명군 무리가 황야에 가득 차 있었다. 이동일이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아마 위성으로 다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지금도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동일이 다시 하늘을 보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얼굴을 아군에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기 있다!”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버럭 소리쳤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정용우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다시 열심히 소리쳤다.
“내 부하! 내 부관 놈이 저기서 금방 이쪽을 보았어!”
위성 화면은 다시 작아져서 흩어지는 혁명군이 성냥 끝의 알만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동일은 묻혔지만 모두의 시선을 받은 채 정용우가 아직도 떠든다.
“저놈이 이번 전쟁의 영웅이야! 저놈이 끈질기게 이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국말이었으므로 한국군 장성 몇 명이 머리를 끄덕였다. 정용우가 이동일을 발견한 것이 큰 우연은 아니다. 이동일과 해병이 혁명군과 함께 제39집단군 산하의 포병여단을 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지켜보았고 이동일 또한 그것을 의식하고 하늘을 보았던 것이다.
“이봐, 정 중장.”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정용우는 눈부터 치켜떴다. 정용우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명칭이 바로 ‘정 중장’이다. ㅇ자가 다 밑에 있어서 발음하기도 듣기도 거북하지만 자신은 사령관인 것이다. 직책을 불러야지 대한민국 국군에 47명이나 있는 중장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몸을 돌린 정용우는 육참총장 조현호를 보았다. 조현호가 부른 것이다. 그런데 옆에 합참의장 장세윤이 서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 실세 대장들이다. 그런데 조현호 뒤쪽에 육본작참부장 박진상까지 서 있다. 저 여우까지 웬일인가? 그때 조현호가 말했다.
“상의할 일이 있어. 우리, 저쪽으로 가지.”
조현호가 눈으로 문을 가리켰다. 상황실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두 대장이 나란히 앞장을 섰으므로 정용우가 뒤를 따르면서 머리를 돌려 박진상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오?”
“가봅시다.”
박진상이 그렇게만 대답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특급작전이오.”
정용우는 입을 딱 다물었다.
상황실 옆 참모장실은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의 전용실이었지만 이번에 한국군 수뇌부의 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다. 방에 들어와 원탁 주위로 둘러앉았을 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합참의장 장세윤이다.
“거기, 이동일 대위한테 연락을 해요.”
장세윤이 대뜸 말했으므로 정용우가 상반신을 세우며 긴장했다.
“예, 하지요.”
대답부터 하고나서 장세윤의 입을 보았다. 내용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조현호가 말했다. 두 대장이 이렇게 손발이 맞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김정일한테 가라고 말야.”
조현호는 거침없이 반말로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도 허락하셨고 김정일이 먼저 제의한 상황이야. 이건 통일부 쪽이 만든 사설 연락망을 통해 합의된 거야. 이 대위가 김정일 옆에 붙어서 우리 연락관 역할을 하는 거야.”
입을 딱 벌린 정용우는 숨까지 죽인 채 듣기만 했다. 말을 그친 조현호가 숨을 고르는 동안 박진상이 거들었다. 이쪽은 더 호흡이 맞는다.
“지금부터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이에 대해 양국 지도부가 순발력 있게 대응하자는 취지요. 위기를 느낀 김정일이 제의를 해온 것이고 우리도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오. 아직 연합사나 미국 정부의 동의는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알아도 방해할 수는 없을 거요.”
“됐습니다.”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정용우가 앞쪽에 앉은 세 장군을 둘러보았다.
“이 대위 혼자 보냅니까?”
“무인지경처럼 진격하는군.”
잇사이로 말한 양훙이 먼저 후성궈를 보았다. 105기갑사단은 거침없이 인산 북방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위성화면에 잡힌 주변은 초토화되었다. 인민군 2군단 소속의 2개 대대, 대전차대대는 궤멸되었고 그 후방의 연대본부와 예비대대까지 공격을 받아 무력화되었다. 마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아니, 북한 땅 전역이 함정으로 변한 것 같다. 이번 혁명군 공격도 그렇다. 아무리 위성으로 비춘다고 해도 주민과 해방군까지 구분해낼 수는 없다. 도처에 깔린 것이 북한 주민이니 그들을 다 죽이지 않는 한 해방군을 가려내기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그 후방에 있던 42사단의 2개 연대까지 사방에서 달려든 혁명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군 3개 집단군 주둔지는 차츰 고립되어가고 있다. 혁명군이 모기떼처럼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때 중국군 사령관 후성궈가 말했다.
“날이 추워지면 모기는 사라져.”
시선을 든 후성궈가 옆쪽의 김경식을 보았다.
“김 대장 그렇지 않습니까?”
중국어로 묻자 통역장교가 바로 통역했다. 김경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후성궈의 말이 이어졌다.
“비 온 후의 잡초처럼 혁명군이 일어났지만 머리 없는 오합지졸일 뿐이오. 이제 북한 정권이 안정되면 다 말라죽습니다.”
통역을 들은 김경식이 눈으로 상황화면을 가리켰다.
“저놈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북진해오는 105기갑사단을 말한다. 그 뒤를 820기갑군단이 서서히 따르고 있다. 105기갑사단은 이미 2군단 영역을 벗어나 12군단 지역으로 진입해 있는 것이다. 12군단은 이제 ‘중립군’의 핵심이다. 이기준의 12군단은 우장선의 4군단, 820기갑군단과 815기계화군단까지 포함된 강력한 세력이 되어있다. 김경식이 말을 이었다.
“중립군과 김정일군, 그리고 남한군까지 연합하면 우리가 불리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반란군까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자 후성궈가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군이 평양 북방에 주둔하고 있는 것만으로 승부는 절반 이상 끝난 거요, 대장.”
한마디씩 힘주어서 후성궈가 말을 잇는다.
“이 땅이 혼란하면 할수록 우리한테는 유리하단 말요.”
후성궈의 시선이 다시 상황화면의 105기갑사단으로 옮겨졌다.
“저놈들의 목적은 평양과 서울을 잇는 통로 확보요. 이제 12군단 지역에 진입했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지.”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후성궈가 지휘봉을 들어 사리원을 가리켰다.
“아마 105기갑사단은 이쯤에서 멈추고 820은 그 뒤쪽에 배치되겠지. 이것이 남조선 박성훈과 김정일이 합의한 사항이오.”
“합의한 사항이라뇨?”
김경식이 통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치듯 물었다. 눈을 치켜뜬 김경식이 다시 묻는다.
“무슨 합의를 했단 말입니까?”
“중국군과 당신을 몰아내는 합의.”
후성궈가 차분하게 말하고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흥분한 나머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어. 그것은 미국과 일본 측 입장이지. 김정일과 박성훈이 손을 잡는 것을 주변 강대국은 아무도 반기지 않아. 한미연합사 주력인 미국까지.”
이제 중국군 장성뿐만 아니라 북한군 지휘관들의 시선이 모두 모여져 있다. 상황실 안은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때 후성궈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북한 땅이 그 강대국 간의 각축장이 되어 있소. 그리고 상황은 우리에게 이롭단 말요. 남북한 통일은 아무도 바라지 않아.”
이동일은 하나씩 둘씩 다가와 앞쪽에 앉는 부하들을 보았다. 부하들은 눈인사를 하거나 가볍게 경례를 했는데 그때마다 이동일은 빼지 않고 답례를 했다.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후 7시40분, 개전 8일째다. 이윽고 황찬우 중위가 다 모였다고 보고했다. 방금 모두 늦은 저녁을 마친 후여서 아직도 밥 냄새가 주변의 대기에 섞여 있다. 23명이다. 46용사가 절반인 23명이 되었다. 31명으로 참전했다가 다시 8명이 희생된 것이다. 그리고 23명 중에서도 부상자가 넷이다. 이곳은 평양특별시 동쪽 경계선인 송가라는 작은 도시 외곽의 야산 중턱이다. 이제 어둠이 덮인 주위에 둘러앉은 23명의 해병은 숨을 죽인 채 이동일을 주시하고 있다. 이윽고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오늘밤 너희들은 황 중위의 인솔로 남하해 105기갑사단과 합류한다.”
모두 숨을 죽인 채 이동일을 주시하고 있다. 105기갑사단은 지금 사리원 북방에 주둔하고 있다. 평양까지는 고속도로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 우측이 북한 제3군단 지역이지만 김정일의 측근이 장악하고 있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이제 너희들의 임무는 끝났다. 기갑사단에 도착하면 곧 헬기편으로 서울에 간다.”
이동일의 얼굴에 옅게 웃음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46용사로 개전 직후부터 알려진 병사들이야. 이제 21용사가 되어서 돌아가게 되었지만 전 국민의 환영을 받게 될 거다.”
“21용사라니요?”
하고 누군가가 물었으므로 이동일이 정색했다. 황찬우가 잠자코 있는 것은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나하고 안성욱 하사하고 둘이 남는다.”
이동일이 말하고는 덧붙였다.
“난 아직 일이 남았다, 이상이다.”
그로부터 10분 후. 이동일과 안성욱이 각각 인민군 군관 차림으로 야산을 내려간다. 강성일과 부하 세 명이 그들의 안내역을 맡았다. 이미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앞장선 강성일의 부하는 거침없이 전진한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이 대위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소.”
강성일이 그렇게 말한 것은 평지에 내려왔을 때였다. 어둠 속에서 흰자위만 보이는 얼굴로 강성일이 말을 잇는다.
“살아남는다면 꼭 다시 만납시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일이 진심을 담아서 대답했다. 황무지를 걸어 그들은 대로를 향해 다가간다. 이곳은 민가도 없는 외진 곳이어서 인기척도 없고 앞쪽 도로도 텅 비었다. 이동일의 뒤를 따르던 안성욱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더니 짧게 좌표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앞쪽의 이동일에게도 잡음과 함께 응답소리가 울린다. 그때 다시 강성일이 말했다.
“이 대위가 들어가다니, 뭔가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걸음을 늦춘 강성일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는다.
“내가 충성을 바치는 우리 사령관과 남조선군, 그리고 주석궁이 연결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 지금 이동일은 주석궁에서 보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동일은 한국 측 연락관이 되었다. 김정일은 제의한 지 30분도 안 되어서 연락관이 평양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랐을 것이었다. 그때 어두운 길 왼쪽에서 차량의 전조등 빛이 드러났다. 두 대다.
“저 차인 것 같습니다.”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있던 안성욱이 말했다. 안성욱은 이번 임무에 자원했다. 통신병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하사관 셋이 지원했는데 그중 아무도 양보하지 않아서 심지 뽑기로 선발되었다. 이동일이 강성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 중좌님. 통일될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이 대위도.”
강성일이 이동일의 손을 세게 잡고 흔들었다.
벤츠는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중이다. 도로는 잘 정비되었지만 차량 통행이 딱 끊겼고 주위 건물에서는 불빛 한 점 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주민이 모두 철수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동안 세 번 멈춰 검문소를 통과했다. 검문소에는 철제 차단봉이 내려져 있는데다 좌우에 탱크가 서너 대씩, 그리고 대전차포로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언뜻 보아도 규율이 강하고 장비도 우수했다. 평양특별시는 호위총국과 평방사로 불리는 평양방어사령부, 그리고 김정일만을 경호하는 평양경비사령부가 겹겹이 방어하고 있다. 무기도 최우선, 최신형으로 지급되어서 강군인데다 김정일 일가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 지금 북한 전역이 중립군과 반란군 그리고 중국군과 혁명군에 뒤덮여 있어도 평양특별시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동요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평양 주변과 내부에만 1개 기갑군단을 포함한 4개 군단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연지대라고 불리는 휴전선에 4개 군단이 배치된 것과 같다.
이윽고 벤츠는 지하 통로로 진입하면서 다시 세 번이나 검문을 받고 거대한 철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곳은 지하도시처럼 보였는데 곳곳에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되어서 분위기가 삼엄했다. 이동일을 안내한 군관은 대좌였다. 그런데 이곳까지 두 시간 가깝게 옆자리에 앉아 오면서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철문을 통과한 일행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이나 내려갔더니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거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인가를 더 내려갔다가 밖으로 나와 100m쯤 나아가자 경비병이 늘어선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철문 좌우에 기관총좌까지 설치되었고 경비대장은 대좌 계급장을 붙이고 있다. 경비대장이 이동일을 안내한 대좌를 보더니 문을 열라는 신호를 하자 철문은 소리 없이 좌우로 벌려졌다. 이동일과 안성욱은 대좌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주석궁 벙커일 것이다.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은 지난 인생 동안 금연을 3번 했는데 각각 10년, 5년, 그리고 최근의 6년이다. 누가 들으면 참지 못하고 담배를 다시 피운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내키면 끊고 불쑥 생각나면 피웠다. 한 10년 금연 하지 뭐, 하고 끊었다가 10년 되는 날 한 대 피우고 다시 5년을 금연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얽매는 것 같아서 5년 후에 두어 달 피우다가 이번에는 정해놓지 않고 안 피웠더니 이제 6년째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오산 연합사령부 벙커에 참모 대기실이 있다. 참모장용 벙커는 한국군 수뇌부에게 양보하고 지금 해리슨은 참모 대기실에서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과 둘이 마주 앉아 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해리슨이 토드를 보았다.
“이봐, 마이클. 내가 한국 역사를 좀 읽었지. 역사라기보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부터의 자료를 읽었다네. 왜냐하면 6·25전쟁을 연구하고 싶었거든. 우리가 참전할 전쟁이니까 말야.”
토드가 잠자코 해리슨을 보았다. 웨스트포인트 3년 선배인 해리슨은 성적은 별로였지만 육사 시절부터 인기가 좋았다. 후배가 잘 따르고 임관된 후에도 평이 좋았다. 처세를 잘 한다고 평이 좋아지지 않는다. 30년 가깝게 군 생활을 하면 서로 속속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품이며 인격이다.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이 빌어먹을 한국이 왜 남북으로 분단된 채로 60년이 넘도록 정전(停戰) 상태가 되어 있는지 아나?”
“모릅니다.”
곧 기갑부대장으로 승진되어 전출될 예정인 토드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하자 해리슨이 설명한다.
“미국이 북한을 소련에 떼어줬기 때문이야. 그때 루스벨트는 소련군을 대일(對日)전에 끌어들이려고 스탈린한테 부탁하는 형편이었지. 왜냐하면 미군이 일본 본토를 점령하려면 미군 100만은 희생될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으니까.”
“… ….”
“한반도와 일본 본토 위쪽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이 일본을 공격해준다면 한반도쯤은 던져줘도 아깝지 않았어.”
“… ….”
“그래서 소련군은 북한으로 남진했는데 미군은 원자탄 두 발로 일본 항복을 받아냈어, 망할.”
“… ….”
“소련 놈들은 손도 안 대고 코 풀었어. 일본이 항복해버려서 총 한 발 안 쏘고 북한 땅만 접수한 거야.”
“… ….”
“그래서 이렇게 되었어. 6·25전쟁으로 미군 5만명이 전사하고 정전이 된 지 61년.”
그러고는 머리를 든 해리슨이 토드를 보았다.
“그런데 또 워싱턴에서는 북한을 중국한테 떼어주려는 것 같아, 마이클.”
피우다 만 담배를 커피잔 안에 던져놓은 해리슨이 충혈된 눈으로 토드를 보았다.
“토드, 그때 승만 리라는 위대한 사내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네.”
처음 듣는 이름이라 토드는 리씨 성을 가진 가수로 들은 것 같다. 그저 눈만 껌벅이고 있다. 그때 해리슨이 말했다.
“토드, 날 도와줘.”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덧붙였다.
“뭐, 현실적으로 말하겠네. 책임은 내가 질 거야. 그리고 이건 반역이 아냐.”
“어, 자네가 그 유명한 46용사인가?”
다가선 김정일이 손을 내밀며 물었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숙였다.
“이동일 대위입니다.”
“잘 왔어.”
김정일은 피로해 보였지만 목소리엔 힘이 실렸고 손을 쥐는 힘도 강했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김정일 뒤쪽에 서 있는 김정은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지만 무표정한 얼굴로는 변화가 없다. 그때 김정일이 앞쪽 자리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앉게. 동무는 지금부터 내 측근이야.”
그러고는 자리에 앉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넓은 방의 양쪽 벽에 금강산과 천지가 그려져 있다. 소파는 좌우로 두 줄로 놓였는데 중앙에 김정일이 앉아 있다. 이동일이 왼쪽에 앉았을 때 김정은은 마주 보는 앞쪽 자리에 앉는다. 방 안에는 문 쪽 벽에 붙어 서 있는 두 명의 군관까지 다섯이다. 이곳까지 안내해준 대좌는 문 앞까지만 왔다. 긴장한 이동일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심호흡을 했다. 머리가 멍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갑자기 평양 주석궁의 지하 벙커로 들어와 김정일한테 측근이라는 말을 듣다니. 그때 김정일이 불쑥 물었다.
“데려온 장교는 무전수인가?”
“예, 하사 안성욱은 무전병입니다.”
그렇게 정정했을 때 김정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안성욱은 옆방에 있다.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중국군은 쉽게 철수하지 않아. 그리고 그것을 미국도 바라고 있을 거야.”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일본도,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동무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겠지.”
그러더니 김정일이 다시 묻는다.
“지금까지 인민군을 몇 명 죽였나?”
이동일이 김정일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이제 조금 정신이 든다.
“예, 중국군까지 2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중국군까지?”
“예, 강동군에서 중국군 제39집단군 소속 187포병여단을 격파했습니다.”
“동무가?”
“노농적위대원하고 연합했습니다.”
그것을 인민혁명군이라고 부르지는 못했다. 김정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동일을 보았다. 방안에는 잠깐 정적이 덮였다.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린 김정일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노농적위대하고 같이 공격했군.”
“… ….”
“중국군 놈들을 말이지.”
“… ….”
“동무가 나한테 와 있는 것을 미국 정부는 물론 일본, 중국 정부까지 다 알고 있을 거네.”
다시 김정일이 화제를 돌렸으므로 이동일은 정신을 차린다. 긴장한 이동일을 향해 김정일이 물었다.
“동무는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남한 정부가 파견한 비공식 특사야.”
“… ….”
“연락관이 아냐. 동무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남한과 북한은 연결되었어. 그젠 누구도 이것을 막지 못해.”
김정일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한마디씩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이제 동무를 통해 내 의사가 수시로 전달될 것이네. 남한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기선을 잡아야 돼. 그래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네.”
“이봐, 장군.”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해리슨을 그렇게 부를 때는 사적 감정은 다 빼고 사령관 대(對) 참모장으로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이곳은 오산 연합사사령부 벙커 안의 사령관실. 2014년 8월2일 토요일, 오전 9시. 개전 9일째가 되었다. 우드워드가 앉아도 조금 커 보이는 해리슨을 올려다보았다.
“그 46용사의 지휘관 놈이 김정일과 합류했어. 이것은 뭘 의미한다고 생각하나?”
“연합이죠.”
한마디로 정의했던 해리슨이 덧붙였다.
“동맹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사령관.”
“우리가 주목하다는 것을 남북한 두 놈도 알고 있겠지?”
그 두 놈이란 김정일과 박성훈을 말한다.
“물론이요, 사령관.”
“그럼 연합사령관인 내 지시, 아니, 동맹국인 미국과의 신의를 무시하겠다는 표시일까?”
“한국 측 입장에서 보면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고 몸을 뺀 건 미국입니다, 사령관.”
“참모장을 바꿔야겠는데.”
“그래도 이미 늦었습니다, 사령관.”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이 대위를 공식화할 겁니다.”
“뒤통수를 맞겠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령관.”
해리슨이 정색하고 말했으므로 우드워드도 눈을 치켜떴다.
“장군, 생각을 말해봐.”
“뒤통수 맞은 건 중국하고 일본으로 하십시다. 우린 동맹국 아닙니까?”
우드워드의 시선을 잡은 해리슨이 입술 끝만 올리고 웃었다.
“곧 작전참모가 대응책을 보고드릴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령관께서 워싱턴을 설득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우리가 중국, 일본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워싱턴도 꼼짝 못할 테니까요.”
우리워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해리슨을 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송 기자, 전화” 하고 사회부장 홍동수가 소리쳤으므로 주위의 시선이 모여졌다. 전화기를 치켜든 홍동수는 눈까지 치켜뜨고 있다.
“빨랑 받아! 해병사령부야!”
이제는 세 칸이나 떨어진 문화부 쪽에서도 송아현을 보았다. 송아현이 제 전화기를 들고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가슴이 세차게 뛴다. 이동일에 대한 나쁜 소식이 아닐까? 홍동수의 표정을 보면 심상치가 않다. 그때 수화구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나, 해병사령부 참모 최 대령입니다.”
최재창이다.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빨리 오셔야겠는데요. 송 기자가 대특종을 방송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래놓고 덧붙인다.
“거기, 사회부장을 데려오시죠. 아직 영문을 모르고 있는데 신문 보도도 해야 될 테니까요.”
2014년 8월2일 토요일 오전 10시 반. 개전 9일째.
TV 화면에서 아나운서의 설명이 뚝 그치더니 이동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일주일 만에 나타난 이동일의 얼굴은 조금 야위었지만 말끔했다. 그리고 상반신에 양복을 걸쳤다. 일산 대호식당 안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김대호가 놀라 입만 딱 벌리고 있다. 그때 이동일이 말했다.
“저는 지금 평양 주석궁에 와 있습니다.”
김대호의 입이 더 벌어졌다. 뒤쪽 주방에서도 소음이 뚝 끊겼다. 아나운서는 북한의 이동일과 화상 통신을 한다고만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저는 북한의 인민해방군과 함께 싸우다 어제 주석궁에 안내되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때 화면에 금강산과 백두산 천지의 벽화가 그려진 응접실이 비쳤다. 다시 테이블에 앉은 이동일에게로 화면이 옮겨졌다.
“저는 오늘부터 수시로 북한 정부의 방침과 현황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이 방송을 통해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먼저 김정일 위원장은.”
호흡을 가다듬은 이동일이 똑바로 화면을 보았다. 지난번 휴대전화 영상 화면과는 달리 화면이 선명하고 각도도 잘 잡혔다. 북한 측 촬영장비가 동원된 것 같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2014년 8월2일 오전 10시부터 북한 전역에서 활동하는 인민해방군을 공식 북조선 인민공화국 군조직으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각 인민해방군은 국방위원장 직속의 군조직이 되었습니다.”
이동일이 이제는 원고를 들고 읽는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월2일 오전 11시를 기하여 남한에 대한 어떤 무력 행사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한 한국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원고를 내려놓더니 화면을 바라보며 묻는다.
“질문 받겠습니다.”
그러자 화면에 스튜디오가 비치면서 송아현의 모습이 확대되었다.
“갑자기 어떻게 주석궁에 들어가시게 된 거죠?”
지난번과는 달리 송아현이 경어를 썼고 표정도 굳어 있다. 송아현이 묻자 이동일도 정색한 채 대답한다.
“국방위원장이 연락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부의 허락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상부라면 어디죠?”
“해병대 사령부입니다.”
“빌어먹을 놈.”
화면에서 시선을 돌린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동일의 한국어는 밑에 영어 자막으로 번역되어 나오는 것이다. 우드워드가 앞에 선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을 보았다.
“뻔한 수작이지만 여론은 잘 먹히겠구먼, 안 그래?”
“그렇습니다, 사령관.”
“해병사령관이 잘릴까?”
“영웅이 될 겁니다.”
토드가 덧붙였다.
“여론은 무시할 수 없거든요.”
입맛을 다신 우드워드가 앞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토드가 작성해온 작전계획서다.
11장 38선(線)
현 상태에서 정전(停戰)할 것을 주문한다. 이대로라면 평양과 황해남북도가 남한에 통합되고 나머지 북쪽 영토는 중국령이 되는 반쪽 통일이 될 터. 이에 한국군은 연합사 지휘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시작하는데…. <편집자>
“그러고 보니 너희들 동갑이다.”
문득 머리를 든 김정일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먼저 김정은부터 보았다. 식탁에는 셋뿐이었으니 김정은과 자신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스물아홉 살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쇠고깃국을 한 모금 떠먹은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하나는 대장이고 또 하나는 대위로군, 하하하.”
어제 김정일이 묻기에 나이, 집안 내력, 경력까지는 말해주었다. 주위는 조용하다. 오늘은 8월4일 월요일, 오후 12시 반, 개전 11일째가 되는 날. 셋은 주석궁 지하 벙커의 주석용 소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다. 김정일의 초대, 더구나 두 부자만의 식탁에 초대받은 이동일은 잔뜩 굳어 있다.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이동일을 보았다.
“대위, 어떠냐? 배 아프지 않으냐?”
“아닙니다, 위원장님.”
수저를 내려놓은 이동일이 정색했다.
“그런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남조선에서는 3대 세습이 세계적 웃음거리라고 했어.”
식사를 마친 참이어서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이며 말을 잇는다.
“그 삐라도 내가 ...
“잘한다.”
한국군 장성 두어 명이 소리쳤고 박수 소리까지 들렸다가 곧 조용해졌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8월10일 자정까지 철군하지 않을 때는 북한 영토를 침입한 것으로 간주해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오늘 방송은 인터뷰 형식이 아닌 성명발표다. 발표를 끝낸 이동일의 영상이 사라지자 상황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서로 중구난방 떠들던 장성들은 외침소리에 조용해졌다. 참모장 해리슨이다.
“조용! 간부들은 회의실로!”
해리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소리쳤다.
“5분 후에 회의 시작이야!”
“아직도 자기가 북한 통치자라고 믿는 것 같군.”
화면이 꺼졌을 때 후성궈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헤드셋을 벗은 후성궈가 말을 잇는다.
“저런 임기응변력을 경제발전에다 응용했다면 남한을 따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제 독재정권 연장에만 머리를 썼으니 말야.”
“사령관, 전화 왔습니다.”
후성궈가 혼잣소리로 분개하는 동안 전화가 온 것이다. 옆으로 다가선 양훙이 전화기를 내밀고 서 있다. 후성궈의 시선을 받은 양훙이 말했다.
“주석 동지올시다.”
시진핑이다. 후성궈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받고는 귀에 붙였다.
“예, 주석 동지. 후성궈입니다.”
“방금 평양 방송을 보았소.”
시진핑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으므로 후성궈는 긴장한다.
“예, 주석동지.”
“전황(戰況)은 어떻소?”
“반란군 소부대가 부딪치고는 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겠소?”
시진핑이 불쑥 물었으므로 후성궈는 심호흡을 했다. 그렇다. 187포병여단이 궤멸당한 후에 후성궈는 적극적인 작전을 건의했다. 그것은 ‘평양점령’ 작전이다. 사방에서 평양을 포위하고 대항하는 몇 개 부대만 격퇴하면 사흘 안에 평양을 함락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지도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후성궈가 대답했다.
“예, 주석 동지. 이대로 시간이 가면 저희들이 불리합니다.”
더구나 조금 전에 김정일이 중국군 철수를 기한까지 정해놓고 공공연히 요구한 것이다. 망설일 여유가 없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김경식을 시켜 북조선 지도부의 정통성을 공격하시오. 그리고 결전에 대비하시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6시, 개전 11일째. 오산 한미연합사 사령부 벙커 안. 상황판을 응시하는 연합사 지휘관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거대한 상황판에는 수많은 전등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푸른 등이 한국군이다. 휴전선 근방에서부터 북한 전역은 무수한 등으로 표시되었고 그 하나하나가 단위부대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 영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푸른 불덩이가 시선을 끌고 있다. 바로 105기갑사단이다. 사리원 아래쪽 봉산에 주둔한 105기갑사단은 그 좌우로 820전차군단이 호위하는 형식으로 5개 여단이 배치되어 있는데다 그 아래쪽 고속도로 주변에 14개의 한국군 단위부대가 배치되었다. 105기갑사단을 고립시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북상시킨 기갑부대, 대전차부대, 포병연대, 미사일대대, 그리고 군수지원단 등이다.
또한 그들을 지원하려고 이미 확보된 고속도로를 통해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2개 사단 병력이 북상하고 있다. 전연지대의 서부지역인 제4군단이 통로를 개방했기 때문에 이제 황해남도는 교전이 끝난 상태였고 황해북도에 한국군이 진루하는 중이다. 이것은 모두 105기갑사단의 전격적인 전진과 북한 820전차군단의 응원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한 ‘인민혁명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105기갑사단은 전선에서 애를 먹었을 것이다. 상황판을 응시하던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더 이상의 북상은 안 돼.”
머리를 든 우드워드가 지휘관들을 둘러보았다.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105사단이 다시 움직이면 안 돼. 명령 불복종으로 처리할 테니까.”
우드워드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105사단 지원도 2개 보병사단 이동으로 끝낼 것, 이상이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자 참모장 해리슨의 시선이 한국군 장성들에게로 옮겨졌다. 기둥 옆에 서있던 합참의장 장세윤이 해리슨의 시선을 받더니 눈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옆방을 가리킨 것이다.
상황실 옆방은 참모 대기실이었는데 미리 한국군 참모들이 방을 비워놓았기 때문에 해리슨은 장세윤과 항상 붙어 있는 육참총장 조현호, 거기에다 연합사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해리슨이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사령관을 납득시켰지만 더 이상은 무리요. 사령관은 백악관으로부터 압박을 당하고 있어요.”
장세윤과 조현호는 잠자코 시선만 준다. 105기갑사단의 지원부대를 일사불란하게 보낸 것은 해리슨과 토드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길게 숨을 뱉은 해리슨이 말을 이었다.
“이것으로 황해남북도는 석권한 셈이 되었으니 서둘지 맙시다. 중국군이 움직이면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알겠소, 해리슨.”
두 명의 대장은 영어가 유창했으므로 장세윤이 먼저 말했다.
“당신들의 협조에 한국군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아니, 사령관도 그렇게 지시했을 겁니다.”
쓴웃음을 지은 해리슨이 토드를 힐끗 보고나서 말을 잇는다.
“우리가 작전계획을 조금 일찍 만들어놓았던 것이죠.”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연합사 소속의 대령이 들어섰다. 대령이 해리슨과 토드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사령관께서 찾으십니다.”
“빌어먹을.”
자리에서 일어선 해리슨이 입맛을 다셨다.
“작전계획서 때문이군.”
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자신의 방에서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과 셋이 둘러앉아 있다. 우드워드 앞에는 위스키 병이 놓여 있고 이미 두 잔을 마셨지만 둘에게는 권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표시다. 머리를 든 우드워드가 토드를 쏘아보았다.
“이봐, 장군. 중국군의 공격 시에 연합사가 움직이자는 건가?”
우드워드가 손끝으로 술잔 옆에 놓인 서류를 두드렸다. 토드가 작성한 ‘작전계획’이다. 전시였지만 종이에 찍은 ‘작전계획서’다. 같은 사무실 안에 있는 터라 컴퓨터가 오히려 더 불편한 것이다.
“한국군과 김정일 군이 연합한 상황이니 우리가 김정일 군을 도와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빌어먹을.”
말을 잇지 못한 우드워드가 술잔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토드의 작전계획서는 이동일의 ‘방송’이 있기 전에 합성되어 참모장을 거쳐 우드워드에게 전달되었다.
‘중국군이 김정일을 공격하면 한미연합사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나서 조금 전에 시진핑과 후성궈의 전화 내용이 감청된 것이다. 그때 해리슨은 말했다.
“사령관, 이건 백악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우리 코앞에서 일어날 전쟁이니까요. 그리고….”
해리슨이 말을 멈춘 것은 다음 내용에 폭발력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다. 심호흡을 하고난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지금 105기갑사단이 사리원 남쪽에까지 진출한 상태입니다. 중국군이 평양을 공격하면 자연스럽게 105기갑사단, 820전차군단, 815기계화군단이 김정일 친위대와 연합하게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말을 멈춘 해리슨이 우드워드를 보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중국군과의 전면전이 된다. 중국군의 상대는 김정일 친위대만이 아니다. 한국군과 중립군인 인민군군단, 그리고 인민해방군 연합이다. 거기에다 한미연합사의 미군이 참여한다면? 또 뜸을 들였더니 우드워드의 뇌도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었다. 어금니를 물었다가 푼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거, 중국 놈들이 또 일을 일으키겠다.”
2014년 8월4일 월요일 오후 7시 반. 대한민국 대통령 박성훈이 산본장의 지하 벙커에 앉아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박성훈의 옆에는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 그리고 국방장관 임기태와 합참의장 장세윤까지 나란히 앉아 스크린에 떠 있는 북한군 제2군단장 김경식 대장을 본다. 김경식은 북한군 대장 계급장을 붙였지만 상의에 훈장을 한 개도 붙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가슴 전체에도 모자라 배에까지 주렁주렁 붙여놓았던 그 이상한 쇠붙이가 한 개도 없다. 그때 김경식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북조선인민공화국 인민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김씨 일가의 학정에서 벗어나 새 세상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남조선 괴뢰는 미군과 연합해 북조선 인민들의 씨를 말리려고 합니다. 인민 여러분, 인민군 여러분. 우리가 남조선 놈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까? 미군의 지시를 받는 남조선군은 우리 인민군을 모조리 처형하고 북조선을 강탈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때 박성훈이 머리를 돌려 한 사람 건너편에 앉은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저 선동에 인민군이 넘어갈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세윤이 바로 대답했다. 박성훈의 시선을 받은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김경식이 이렇게 김정일의 권위를 흔들어놓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입니다. 인민군은 당분간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 뒤쪽의 비서관이 버튼을 누르자 다시 김경식의 입술이 움직였다. 30분 전인 7시에 김경식이 TV에 나와 연설을 한 장면을 녹화해놓은 것이다.
“인민군 여러분, 우리의 혈맹 중국군과 함께 새 조선을 건설합시다. 인민 여러분, 우리 북조선은 이제 김씨 일족의 독재에서 벗어나 중국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잘살게 됩니다. 남조선 괴뢰들의 무시와 구역질나는 동정을 받으며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중국이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금방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남조선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립합시다!”
박성훈의 손짓을 받은 비서관이 다시 버튼을 눌렀으므로 김경식이 입을 딱 벌린 채 굳어졌다. 그 순간 안보수석 주명성이 말했다.
“중국군이 개입할 명분을 만들고 있습니다. 뻔한 수작이지만 이유는 충분하지요.”
황해남도 해주에 전연지대 서부지역 방어를 맡은 인민군 제4군단의 사령부가 있다. 4군단장 우장선 대장은 12군단장 이기준과 연합함으로써 한국군의 진입을 도운 셈이 되었다. 물론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위치한 820기계화군단까지 모두 중립군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한국군의 황해남북도 석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김경식의 선동에 동요하는 장병은 없습니다.”
참모장 박명호가 우장선에게 보고했다.
“적어도 황해남북도는 우리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란 인민군과 한국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장선 앞에 펼쳐진 상황판에도 황해남북도의 전황이 펼쳐져 있다. 인민군 정예 4개 군단 외에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주변에 10여 개의 한국군 부대, 그리고 사리원 아래쪽 봉산과 은파 부근까지 105기갑사단이 배치되었다. 거기에다 개성 북방으로 한국군의 2개 보병사단이 전개해오고 있는 것이다. 우장선의 시선이 상황판 아래쪽으로 옮겨졌다. 옹진반도 쪽이다.
“한국군 해병은?”
“태탄에 1사단 사령부가 설치되었고 한국군 해군과 함께 용연, 옹진, 강령을 장악했습니다.”
이제 서해상에 인민군 해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기지에 들어가 스스로 무장해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옹진군 사곶리의 기지는 개전과 동시에 폐허가 되었고 과일군 초도 기지는 온전했지만 배는 모두 버려둔 채 해군은 기지에서 대기 중이다. 역시 과일군 비파곶의 기지는 노농적위대의 공격을 받아 공작창과 창고가 파괴된 채 전투함과 잠수함이 버려져 있다. 바다로 나와도 도움이 안 되는 터라 지금 주석궁 벙커에 들어가 있는 해군 수뇌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을 것이었다. 우장선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황해남북도가 북남의 완충지 노릇을 할 수 있겠어. 중립지대가 된단 말야.”
12군단장 이기준의 반발로 시작되었다가 2군단, 820, 815군단의 가세로 강력한 세력이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4개 군단이 모두 황해남북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국군의 교두보 확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우장선이 말을 잇는다.
“개성 공단지역까지 포함하면 이곳은 한반도의 중심지역이야.”
“거기에다 평양특별시까지 흡수되면 핵심이 되지요.”
박명호의 말에 우장선의 시선이 상황판의 위쪽 평양으로 옮겨졌다.
“그렇군.”
우장선이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
“내가 평양을 잠깐 잊고 있었군.”
평양이란 곧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김정일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간다는 말이었다.
“핵은 다시 확인했지요?”
하고 오바마가 묻자 합참의장 마크 핸슨이 대답했다.
“평양 김정일의 통제를 받는 곳은 연구소 두 곳뿐입니다.”
핸슨이 테이블 위에 펴놓은 북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무수단리 미사일기지 등 10여 곳은 김경식 일당이 장악했다가 지금은 중국군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핵을 잡았다니 다행이오.”
혼잣소리처럼 말한 오바마가 머리를 들고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를 보았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안이다. 오후 3시여서 나른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반도의 전쟁 브리핑이 열흘 가깝게 계속되고 있는 터라 사내들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빌, 이 시점에서 정전할 수는 없을까요? 평양까지 한국 쪽에 넘겨주고 말이오.”
오바마가 묻자 빌 스튜어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머지는 중국령으로 하고 말이지요?”
“한국이나 북한 측도 불만이 없을 텐데, 나머지 땅은 불모지 아니면 수용소뿐이지 않소?”
“그렇죠. 핵시설만 놓고 가면 됩니다.”
하고 비서실장 패트릭 어윈이 말을 받는다.
“백 개 있거나 백한 개 있거나 마찬가지니까 핵을 중국이 가져가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평양과 황해남북도만 남한에 통합되는 반쪽 통일이 된다. 거기에다 핵시설과 핵무기는 모두 중국 소유가 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오바마가 지쳐 보이는 얼굴을 들고 스튜어트와 핸슨, 어윈과 국방장관 제임스 코넬까지를 둘러보았다.
“한국군이 더 이상 날뛰기 전에 이 선에서 정전을 합시다, 이의 없지요?”
평양특별시는 남포직할시와 인접해 있었는데 남포에는 서해함대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다.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전 10시, 개전 12일째. 남포 북방 오신에 주둔한 제28해상저격여단의 여단장실 안이다. 여단장 차금성 중장은 참모가 건네주는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였다.
“예, 차금성 중장입니다.”
“동무, 내 지시를 받겠나?”
수화구에서 울린 목소리는 김정일이다.
“예, 지도자 동지.”
차렷 자세로 선 차금성이 벽에 붙은 김정일의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전에 김정일과 통화한 적이 두 번 있었지만 이렇게 묻은 적은 없다. 그것을 깨달은 차금성의 코끝에 시큼한 느낌이 왔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동무, 반역자의 방송을 들었을 것이다. 그 반역자가 지금 중국 놈에게 공화국을 팔아넘기려고 한다.”
차금성은 숨을 죽였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동무에게 평원에 주둔한 중국 제40집단군 119보병여단을 격퇴할 것을 명령한다. 명령에 따르겠는가?”
“예, 지도자 동지.”
차금성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즉시 출동하겠습니다.”
“평원을 막고 있으면 남포 북방과 평양 서쪽이 위협을 받는다.”
“예, 평원을 탈취하고 지키겠습니다.”
“부탁한다, 차금성 동무.”
그러고는 통화가 끊겼으므로 차금성은 심호흡을 했다. 두 눈이 어느새 붉게 충혈돼 있다.
“그렇다면 북한군과 중국군의 첫 전투가 됩니다.”
상황 스크린 앞쪽 테이블에 둘러앉은 지휘관들을 둘러보면서 연합사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방금 김정일과 차금성의 통화 내용을 스피커로 생생하게 들은 것이다. 둘의 통화가 끝난 지 5분도 안되었다. 우드워드가 말을 이었다.
“평원 탈환이 김정일에게는 대단히 중요해요. 그곳만 확보하면 평양과 남포 사이의 지역을 확보하게 되고 서해와 접할 수가 있거든.”
손을 들어 상황 스크린을 가리키자 참모 하나가 재빠르게 평원 아래쪽의 평원군, 대동군, 증산군 지역을 레이저로 가리켰다. 그때 한국군 육참총장 조현호가 물었다.
“119보병여단 위쪽 숙천에 40집단군의 제5장갑여단과 118보병여단이 있어요. 그들이 내려오면 28저격여단은 끝장납니다, 그런데.”
입맛을 다신 조현호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김정일은 그 대비책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 그랬을까요?”
둘러앉은 지휘관의 절반가량이 미군이었으므로 조현호는 영어를 썼다. 그러자 참모사 참모장 해리슨이 대답했다.
“김정일은 우리가 이렇게 녹음을 듣고 회의를 할 것도 예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해리슨이 쓴웃음을 짓는다.
“중국군 또한 다 들었겠지요. 아마 지금쯤 평원에 장갑여단과 보병여단을 남하시킬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회의를 하고 있을 줄도 중국군이 예상하고 있을 것 아니겠소?”
하고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 묻자 대답은 우드워드가 했다.
“김정일도 예상하고 있겠지요.”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두리번거리며 누구를 찾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끝 쪽에 앉아 있던 해병대사령관 정용우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김정일과의 통로가 필요한 때가 되었군요.”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전 11시30분, 개전 12일째. 평원 동북방 어파에 집결한 인민혁명군 부대는 모두 5개에 병력은 1500명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6개 부대가 3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었고 내일 정오까지는 모두 18개 부대 2만명의 병력이 모일 것이었다. 18개 부대는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붉은청년근위대도 있지만 정규군단인 3군단 소속도 있는데다 425기계화군단에서 빠져나온 보병대대도 포함되었다. 어파는 인구가 2000명 남짓한 소도시지만 평양시에 가까운 농산물 공급지 역할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도로가 잘 닦여졌고 세상 물정에 빠르다.
“자, 작전계획을 봅시다.”
하고 소리친 사내는 3군단 소속 제77교도사단의 제2연대장 주장온 대좌다. 현역 대좌여서 권위도 있지만 성격도 강해서 좌중을 압도하고 있다.
“내일 오전 8시까지는 28해상저격여단이 바닷가로 북진해서 이곳에 닿을 거요.”
주장온의 손끝이 탁자 위에 놓인 지도의 한곳을 짚었다. 바닷가 길로 화진 북방이다. 평원 남쪽에 포진한 제119부대와는 41㎞ 거리가 된다. 주장온의 손가락이 평원 위쪽을 짚었다.
“이곳의 118여단과 제5전차여단이 출동준비를 하고 있다니 내일 오전 8시 이전에 평원 남쪽에 보강될 겁니다.”
“전쟁이군.”
나이 든 지휘관 하나가 말했다. 50대 후반인 것을 보면 노농적위대 지휘관이다. 그러나 가슴에 147이라는, 비닐로 싸인 붉은색 숫자를 달았으니 ‘인민혁명군’ 제147부대장이다. 주장온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쟁이오. 이제는 중국군과 인민군의 본격적인 전쟁입니다.”
“인민혁명군이오, 대장동지.”
하고 ‘208’이란 숫자를 붙인 지휘관이 커다랗게 말하자 주장온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나도 비밀 표지를 붙이고 다녀야 큰소리를 칠 수 있겠구먼.”
협동창고 사무실에 둘러선 지휘관은 복장도 각양각색이었고 나이도 제각각이다. 40대 후반인 주장온은 5개 부대장 중 어린 편이다. 주장온이 말했다.
“28해상저격여단은 정예요. 장비도 좋아서 중국 놈들 여단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습니다.”
“우린 중국군 지원군을 맡는 것 아니오?”
하고 누가 물었으므로 주장온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오. 28여단을 지원하는 척하다가 우리 주력은 순천으로 갑니다.”
그 순간 모두 긴장한 채 입을 다문다. 순천은 중국군 총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해상저격여단이란 북한군 UDT와 SEAL, 해병특수수색대를 결합한 해군 소속의 최정예 부대를 말한다. 28저격여단은 6개의 해상저격대대를 주력으로 하고 공병중대, 박격포중대, 파괴중대 등을 지원부대로 두었지만 이번 임무는 육상의 중국군 여단이다. 여단장 차금성 중장은 육로로 북상하는 중이다.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후 1시20분, 개전 12일째.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지 3시간20분이 지난 현재 차금성은 여단 병력을 이끌고 남포직할시 관내의 용강을 지나고 있다.
“대동에서 지원군 3개 부대가 합류하겠다고 하는데요.”
지휘차에 탄 차금성에게 뒤쪽에 앉아 있던 참모가 소리쳐 보고했다.
“제3군단 직할 경보대대와 직위대 2개 부대입니다.”
머리를 돌린 차금성의 시선을 받은 참모가 덧붙였다.
“주석궁의 연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원에는 이미 5개 부대가 집결되어 있는 것이다. 빠르다. 차금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동에서 만나자고 연락해.”
더 북상해 갈수록 지원부대가 늘어날 것이다.
2014년 8월5일 화요일 오후 12시05분, 개전 12일째.
중부전선 철원 동북방 한국군 제3697부대 제1연대 2대대 3중대의 GOP. 전시 상황이어서 중대장 김진호 대위는 지금 12일째 비상근무 중이다. 이곳은 DMZ 지역이어서 중대 GOP에서도 북한군 초소가 육안으로 보인다. 거치된 초소 망원경에 눈을 붙이면 북한군의 계급장까지 선명하게 구분된다.
“평양 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망원경에서 눈을 뗀 김진호가 옆에 선 제3소대장 백선우 소위에게 말했다. 백선우는 부임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임 소대장이다.
“저희들끼리 전쟁이지. 김정일 직속 부대와 중국군이야.”
손등으로 눈을 비빈 김진호가 다시 망원경에 눈을 붙이면서 말을 잇는다.
“김정일 직속 군에다 중립군, 인민혁명군까지 연합해서 중국군을 까는 거야.”
앞쪽 북한군 진지는 조용하다. 이곳은 반란군으로 불리는 김경식 대장의 2군단 지역으로 정예군이다. 서해안 쪽 4군단 지역이 뚫려 한국군이 치고 올라갔지만 이곳은 아직도 철통같다. 김경식에게 충성하는 부대인 것이다.
“이제 이쪽 방어선도 허물어지게 되어 있어. 중국군이 깨지면 저놈들도 매달릴 곳이 없을 테니까 말야.”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김진호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었다. 그 순간이다.
“꽈광!”
폭음과 함께 콘크리트 참호가 흔들리면서 천장에서 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아앗!”
놀란 백선우가 외침을 뱉었을 때 이번에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마치 하늘을 쇳조각으로 찢는 것 같다.
“꽝, 꽝, 꽝.”
김진호는 엄청난 폭발음을 들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전병을 부르려고 입을 벌린 김진호는 참호가 폭발하는 바람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비스듬히 날아온 포탄이 안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전쟁입니다.”
대통령 박성훈에게 합참의장 장세윤이 소리쳐 보고했다. 장세윤은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말을 잇는다.
“중부전선 철원 근처의 한국군 부대가 적의 포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군도 대응 포격을 하는 중인데 벌써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아니, 이쪽은 왜?”
했다가 박성훈이 정신을 가다듬더니 다시 묻는다.
“확전될 것 같습니까?”
지난 정권 때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하자 대통령이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 전쟁을 피하고 보자는 비겁자로까지 매도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가장 먼저 확전 걱정부터 해야만 옳다. 그러고 나서 정황을 분석한 군의 보고를 듣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때 장세윤이 말했다.
“현재 포격전은 점점 증가되고 있습니다. 아군은 3개 포병단과 3개 미사일 기지에서 북한 2군단 지역 전체를 포격하는 중이고 북한도 2군단의 모든 화력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 ….”
“피폭 지역이 확대되고 있어서 민간인 피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이다. 개전 12일 만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온몸을 굳힌 박성훈의 귀에 다시 장세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곧 폭격 정보가 나갈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도 피신하십시오!”
산본장 응접실 벽시계가 오후 12시15분을 가리키고 있다.
2014년 8월5일 오후 12시25분, 오산 한미연합사 벙커에서 다시 외침 소리가 울렸다.
“1군단 지역에서 미사일 발사!”
한 줄기 외침이 330㎡(100평)도 넘는 종합상황실 벙커 안을 잠깐 정적 속으로 빠뜨렸다. 깊은 정적, 그리고 순식간에 조금 전의 소란함보다 두 배쯤 더 큰 소음으로 묻혔다.
“274, 575 지점이야! 27부대 미사일로!”
“102포병을!”
“712부대가 당했어!”
“공군은 왜 늦는 거야!”
작전계획이 있는데도 실제 상황이 되면 시간차와 전력의 차질이 발생하고 실수까지 겹칠 수가 있다. 동해안 지역의 인민군 제1군단은 지금까지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김경식 일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전선은 서부지역에 형성돼서 동부지역은 관심 밖의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1군단이 전 화력을 동원해 한국군 진지와 그 후방 지역을 무차별 포격한다.
“강릉 시내가 포격을 당하고 있어!”
하고 누군가가 소리쳤을 때 다시 상황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가 더 떠들썩해졌다.
“김경식, 이 새끼.”
눈에 초점을 잃은 한국군 소장 하나가 서둘러 상황실 안을 헤치고 오면서 혼잣소리로 욕을 했다. 아마 연합사 소속의 장군 같다.
“좋아! 공군에서 미사일을 쐈어!”
누군가가 소리쳤고 이번에는 미군이 영어로 소리쳤다.
“오키나와에서 공군기가 떴어!”
연합사의 미공군기다. 이제 전면전이다.
“어? 랴오닝성의 중국군 제1사단, 제11사단 공군기가 떴다!”
하고 위성 스크린을 응시하던 장교가 소리쳤을 때 상황실의 긴장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는 지금 백악관의 오바마에게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지금 워싱턴 시각은 밤 10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다른 장교가 소리쳤다.
“전투기 15개 편대 60기, 전투기 10개 편대 40기… ….”
“제21사단에서도 발진 중!”
하고 장교 하나가 소리쳤을 때 이번에는 해리슨의 우렁찬 목소리가 상황실을 압도했다.
“공군, 출격이다!”
그때 누군가가 ‘갓뎀’ 했지만 상황실 안은 다시 소음에 묻혔다. 미 공군 전투폭격기 편대가 다 출격하면 30개 대대가 넘는다. 더구나 그중에는 스텔스 대대도 끼어 있다.
“출격!”
한국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는 한국 공군기의 출격을 명령하는 것이다. 심호흡을 한 우드워드가 오바마에게 말을 잇는다.
“갑자기 전면전이 되어갑니다. 이제 포격전에서 공중 폭격과 공중전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 각하.”
“중국 공군이란 말입니까?”
오바마의 목소리는 억양이 없다. 긴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 하지만.”
상황 스크린에 힐끗 시선을 준 우드워드가 말을 잇는다.
“이미 그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우리도 즉각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분단 60년. 그동안 수백 번 전쟁 대비 연습을 했고 수백 가지 경우를 예측한 터라 이 경우도 그중 하나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라는 설명을 해주려다 만 것이다. 물론 시간차, 작동 실수, 물량 차이는 존재한다. 그때 오바마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장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자 우드워드가 입맛을 다셨다. 역시 대통령은 바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치인은 다 그렇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좋아하는 대답을 해주는 수밖에 엇다.
“각하께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기다리고 계시면 다시 보고드리지요.”
2014년 8월5일 오후 12시5분. 순안남도 순천 서북방 21㎞ 지점에 위치한 제115 보병사단 사령부 외곽의 경비초소, 초소장인 인민해방군 중위 전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 언덕을 보았다. 바위투성이의 언덕 위에 북한 남녀 20여 명이 움직이고 있다.
“뭘 하는 게야?”
전윤이 묻자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부하들이 제각기 대답했다.
“조금 전에 보니까 풀을 뜯고 있습니다.”
“땅을 파는 것이 쥐를 잡는 것 같던데.”
“어쨌든 먹을 걸 찾는 것 같소.”
모두 남루한 차림의 남녀였고 아이도 서너 명 섞여 있다.
“거지 같은 놈들.”
혀를 찬 전윤이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맑다.
“곧 우리 해방군 공군기들이 지나갈 것이야.”
하늘에 시선을 준 채 전윤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 싹 쓸어버리는 것이지.”
“평양을 깝니까?”
부하 하나가 묻자 전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곳이 독사 머리가 있는 곳이야. 머리만 없애면 이번 전쟁은 끝난다고.”
“그럼 우린 총 한 발 안 쏘고 전쟁하고 돌아왔다고 하게 되겠소.”
정색한 부하 하나가 말했으므로 몇 명이 웃었다. 전윤이 다시 언덕 위를 보았다. 언덕과의 거리는 150m 정도. 이젠 북한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총이라도 몇 방 쏠 기회를 줄 테니까 걱정 마라.”
하고 전윤이 말했을 때였다.
“아앗!”
놀란 외침소리가 옆에서 울렸으므로 전윤이 머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치켜뜨면서 입을 딱 벌렸다. 입 밖으로 소리가 뱉어지지 않는다. 흰 가스가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다. 그것도 대여섯 개. 아직 소리도 없다. 로켓포다.
“앗!”
누군가가 다시 외마디 외침을 뱉었지만 다음 순간 전윤은 자신의 몸이 푸른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엄청난 폭음을 듣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의식이 끊겼다.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군구사령관 후성궈가 보고를 받았을 때는 오후 12시55분. 참모장 양훙에게서다. 점심을 먹다 만 양훙이 붉은 입술로 소리치듯 말했다.
“115보병사단입니다! 상대는 반란군으로 이미 사단 사령부는 기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이런, 개 같은.”
잇사이로 말한 후성궈가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었다. 스크린을 볼 것도 없다. 지금 자신의 귀에 폭음이 들리고 있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음도 느껴진다. 115사단 사령부와 자신이 위치한 집단군구 사령부와는 4㎞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머리를 든 후성궈가 양훙에게 소리쳐 지시했다.
“평양으로 진격해!”
2014년 8월5일 오후 1시05분. 한국 공군의 KF-24전폭기 8개 편대가 쏜 공대지미사일 수십 발이 2군단 지역을 폭격했다. 그로부터 3분 후에 동부전선으로 다가간 10개 편대는 1군단 지역을 폐허로 만들었다. 동시에 연합사 소속의 미 공군 전폭기 편대가 다가왔다. 이번 2014년 전쟁에서 처음으로 미 공군 전폭기 편대가 등장한 것이다.
전쟁 발발 12일째가 된 현재. 한미방위조약의 효력이 살아 있는 터라 한미연합사 전력은 다 갖춰진 상태다. 다만 2개 군단 전력의 지상군은 대기상태이나 해군의 5개 항모전투단은 서해에 4개, 동해에 1개로 나뉘어 그야말로 한반도 양면의 바다를 꽉 채운 것처럼 보인다. 1개 항공모함 전단이 4, 5척의 이지스함과 7, 8척의 구축함으로 편성돼 있어 서해에는 4척의 항공모함에 이지스함만 20척 가까이 떠 있는 셈이다. 4척의 항모에 실린 전폭기는 330여 대, 그중 3함대 소속의 항모 존 스테니스에서 발진한 슈퍼호넷 F/A-18E/F 60여 대가 이번 폭격을 맡았다.
“젠10과 젠3이야.”
조나산 스코트가 스테니스의 상황실에서 레이더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헤드셋을 쓰고 있는데 지금 12명의 편대장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그놈들은 모두 평양 쪽으로 달려온다. 너희들하고 1분 거리야.”
1분 거리란 공대공미사일 사이드와인더 AIM-9SS의 사정거리 120㎞ 안에 중국 공군기가 1분 후에 닿는다는 말이다.
“자, 목표를 부숴라!”
하고 스코트가 소리쳤을 때 63대의 F/A-18E/F 슈퍼호넷은 일제히 목표를 향해 공대지미사일 AGM-99를 두 발씩 발사했다. 전장 2.5㎞, 중량 250㎏, 사정거리 110㎞인 AGM-99의 정확도는 98%, 120㎞ 밖의 적 전차를 겨냥하면 100대 중 98대를 맞힐 수 있는 것이다.
“젠이 미사일 발사 장치를 풀었어!”
하고 헤드셋을 울린 목소리의 주인은 편대사령관 리 헤이든 대령이다.
“빌어먹을. 놈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고 말야!”
다시 헤이든이 소리쳤을 때 스코트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38선을 넘지 말고 선회해!”
“갓뎀.”
했지만 12개 편대 63대의 슈퍼호넷은 일제히 기수를 돌렸다.
“명중!”
위성 스크린을 응시하던 참모 두어 명이 환성을 질렀으므로 스코트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상을 비춘 화면이다. 슈퍼호넷이 폭격한 제2군단의 포병대, 미사일부대, 사단본부, 포병진지, 통신대, 자재창고까지 폭발하고 있다. 2분쯤 먼저 출격한 한국군 10개 편대가 폭격하고 남은 곳, 덜 부서진 곳이 이번에는 철저하게 폭파되었다.
“저런!”
하고 탄성이 울렸으므로 스코트가 긴장했다. 위성 상황 스크린에 비친 위쪽이 폭격을 당하고 있다. 눈을 치켜뜬 스코트가 숨을 삼켰다. 중국 공군기는 평양 부근을 폭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쪽도 공대지미사일만 쏘았다.
2014년 8월5일 오후 3시10분, 개전 12일. 발사 버튼을 누른 정국 대령은 레이더 화면을 보았다. 중국 공군기와의 거리는 180㎞, 공대공미사일 버튼을 누르려면 10초쯤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때 헤드셋에서 조기경보기 통제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쪽은 연합사 소속의 통제관이 지시를 한다.
“38선 넘지 말고 선회!”
영어 지시였지만 정국이 지휘하는 8개 편대 42기의 KF/A-24편대 조종사들은 다 알아듣는다. 정국은 기체를 선회하면서 기어이 입 밖으로 말을 뱉었다.
“지기미, 시발. 차라리 후장을 주고 말지.”
지금 중국 공군 앞에서 엉덩이를 보이며 돌아선 제 꼴을 한탄한 셈이다. 한국말이어서 통제관은 알아듣지 못한 모양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곧 한국말이 울렸다. 대구기지 사령관 이철식 소장이다.
“명중이다! 다 맞혔다!”
지금 정국은 전연지대의 1군단을 폭격한 것이다. 42기의 KF/A-24편대는 이번 전쟁에서 최대의 공습을 감행해 1군단의 기지를 분쇄했다. 그때 이철식이 다시 소리쳤다.
“저놈들도 쏘았다!”
놀란 정국이 레이더를 보았지만 미사일은 잡히지 않았다. 그때 통제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젠12 편대는 평양 동쪽 인민혁명군부대와 평방사 소속 부대를 공격하는 중이야.”
정국은 숨을 들이쉬었다. 중국군의 목표는 김정일 군이었던 것이다.
강릉시에 떨어진 다연장포 포탄은 24발이었는데 시내 중심부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불길이 번지면서 주유소까지 폭발했고 10층 빌딩이 무너진 데다 아파트 한 동은 폭삭 가라앉았다. 사거리 복판에도 포탄이 떨어져 차량 10여 대가 뒤엉켜 불타는 중이었고 시장 안에도 한 발이 떨어져 지옥이 되었다. 20여 발의 포탄으로 강릉 시내가 마비되었다. 시민들이 시외로 쏟아져 나가는 바람에 도로는 막혔고 곳곳에서 약탈과 강탈사건이 일어났지만 아직 군경은 손을 대지 못한다. 그 장면이 TV로 보도되었으므로 전 국민은 경악했다. 전쟁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지 12일. 처음으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셈이었다. 계엄군과 정부 쪽에서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방송의 추측 보도는 과열되고 있었다.
“사망 725명, 부상 2245명, 실종 324명.”
단정하듯이 국제방송에서 첫 보도를 하자 질세라 대한방송이 각 현장을 카메라로 비추면서 병원 수용자와 매몰자까지 예상한 숫자를 내놓았다.
“사망 1225명, 부상 3427명, 실종 725명.”
그러면서 정부와 군의 우유부단한 대응이 이 참상을 불러일으켰다고 비난했다. 그때 2군단에서 포격한 연천 근처의 마을 한 곳이 처참하게 폭파된 장면을 TV로 보도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더 증폭되었다.
2014년 8월5일 오후 1시35분 개전 12일. 대한민국 내부가 폭격의 피해로 공황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한미연합군 공군과 지상군의 북폭은 성공했다. 이쪽 화력이 더 강했던 것이다. 북한군 1군단이 강릉시를 포격한 것은 약 7분 동안이었다. 그러고는 목표를 바꿔 속초, 인제, 양양까지 몇 발씩 떨어뜨렸다가 한미연합사 측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고 간격이 멀어지더니 20분이 지난 현재 침묵했다. 동해상에 떠 있던 미 항모 조지 워싱턴의 함재기 50여 대가 출격해서 강원도 회양의 1군단 사령부를 집중 폭격하고 난 후였다.
“전쟁 양상이 바뀌었군.”
상황 스크린에 표시된 시간을 보면서 해병대사령관 정용우가 말했다.
“이것 참, 묘하게 비틀리는구먼.”
혼잣소리여서 대꾸하는 사람은 없다. 랴오닝성 군구와 해방군 북해함대 소속의 공군기들은 평양 주변의 김정일 친위군단과 인민혁명군 부대, 그리고 일부 중립군 부대를 폭격하고 돌아간 것이다. 한미연합사 공군기들과 미사일부대, 포병대는 전연지대에 배치된 김경식 군을 폭격했으니 중국군과 연합사의 미군은 서로 대결하지 않고 비껴나갔다. 상황실 안은 소란하다. 그러나 제각기 맡은 일은 해내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모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다. 옆으로 육참총장 조현호가 다가와 섰으므로 정용우가 시선을 주었다.
“105기갑사단은 건드리지 않았는데요. 바로 위쪽 평방사 소속 기갑연대를 폭격했는데도 말입니다.”
조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재 북한 영공에 떠 있던 중국 공군기는 다 돌아갔다. 연합사 공군기도 38선 남쪽 상공을 선회할 뿐 폭격은 하지 않는다. 한바탕 소나기 같은 양국군의 공습과 포격전이 벌어졌다가 뚝 그친 상황이다. 왼쪽 북한 영공의 레이더는 깨끗하다.
“평원을 치려던 북한 28해상저격여단은 흩어졌고 응원하려던 인민혁명군 부대들도 궤멸된 것 같습니다.”
정용우가 말하자 조현호는 스크린에 시선을 준 채 대답했다.
“이것들이 사정거리 안에 있는데도 서로 못 본 척하고 돌아간단 말야. 그러고는 각각 김정일과 김경식 일당의 기지는 화장실까지 찾아내 폭격을 했어.”
“한국 공군은 중국군 부대 쪽으로 가지도 못했습니다.”
앞쪽을 향해 주고받던 둘이 동시에 서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정용우가 먼저 말했다.
“미중 양쪽이 뭔가 말을 맞춘 것 같습니다.”
“서로 공격하는 일은 없기로 하자고 말이지?”
“가능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지금 기분이 좆같다는 거야.”
“전폭기는 38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지시를 받았답니다.”
“시발 놈의 38선.”
그러자 정용우가 눈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평양 북쪽에서 중국군이 남하하고 있다. 모두 6개 부대. 그 뒤로도 10여 개 부대가 이어져 있었는데 김정일의 친위부대는 이번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저렇게 길을 만들어주려고 폭격할 겁니다.”
“이건 미중 연합군이야. 개새끼들. 우릴 뭐로 보고.”
그러고는 조현호가 머리를 들고 스크린을 보았다.
“평양에서도 우릴 의식하고 있겠지?”
조현호가 뻔한 말을 물었으므로 정용우는 긴장했다. 대장쯤 되면 꼬리가 다섯 개 달린 여우로 봐야 한다. 단순한 인간은 절대로 대장이 못 된다.
2014년 8월5일 오후 2시10분 개전 12일. 호위총국 소속의 1개 기갑여단과 1개 기계화여단이 재기불능의 피해를 보고 주저앉았으며 평양방어사령부 소속의 1개 경보병 여단이 궤멸했다. 중국 공군의 폭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주석궁에도 10여 발의 미사일을 쏘았지만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정일은 격노했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소리쳤지만 이제 차분한 표정이 되어서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위에 찬바람이 일었다. 낮고 억양이 없어진 말이 칼날처럼 날아오는 것 같다. 그 김정일이 이동일에게 말했다.
“이 대위, 중국군이 평양을 쉽게 점령하지는 못할 거다.”
역시 주석궁의 상황 스크린에도 영공의 중국 공군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평양 북방의 중국군은 남하하는 중이다.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이동일이 잠자코 김정일을 보았다. 이동일 옆쪽에 벽에 김정은이 붙어 서 있었는데 조금 불안한 표정이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이번 연합군의 공격으로 1군단과 2군단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김정일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대위, 저기, 38선을 보라우.”
이동일은 김정일의 손끝이 동부전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곳이 비었어, 대위.”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이동일이 다시 시선만 주었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중국군과 미군은 서로 건드리지 않았어. 그러고는 나만 없애려고 했다. 그럼 이북에는 중국군만 남기 때문이지.”
“… ….”
“이미 김경식이는 없는 놈이나 같다. 이제 저를 따르는 군단까지 없어졌으니 그놈은 중국 놈에 붙은 거머리로 보면 된다.”
“… ….”
“한국군이 38선 위로 올라와야 돼. 그래서 한국군과 중국군이 부딪쳐야 된단 말이다. 미군에 맡기면 안 돼.”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인가? 북한이 밤낮으로 외쳤던 구호가 ‘미제’를 타도하자는 것 아니었던가? 전황이 몇 번이나 뒤집힌 후에 이런 결과가 되었지만 이동일의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이것은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 7500만 남북한 인민의 바람이 아니었던가? 38선을 돌파한다는 것은 남북한 통일을 의미한다. 1945년 나누어졌던 38선이 2014년, 69년 만에 깨뜨려질 것인가?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한국군 지휘부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대위.”
“응, 나야.”
하고 수화구를 울리는 목소리에 임민희는 기절초풍을 했다. 박기천, 아직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 더구나 이런 때 날 찾다니, 혹시 잡혀서 날 끌어들이려는 것인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그때 박기천이 묻는다.
“지금 거기에 있지?”
계엄군에 잡혀 날 끌고 가려는 것이 맞는가보다. 살려주는 조건으로 날 불었구나. 지도자의 연락총책 박기천도 별수 없는 놈이다. 임민희가 이를 악물었을 때 박기천의 말이 이어졌다.
“시간이 급하니까 얼른 나갈 준비를 해. 이걸 전해야 할 테니까 말야.”
“뭐 말입니까?”
겨우 임민희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을 때 박기천이 말을 잇는다.
“특급우편이 당신한테 온 거야.”
특급우편이라니, 더구나 이 상황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던 임민희는 서둘러 종이와 펜을 집는다. 어쩔 수 없다. 특급우편이라면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시간에 선양군구 사령관이며 진주군 사령관 후성궈 상장은 순천의 사령부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는다.
“제16집단군은 대동군으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6시까지는 대동과 증산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대동과 증산은 평양특별시 서쪽 요지다. 남포직할시 북방이기도 해서 김정일이 제28 해상저격여단을 북상시켜 지켜내려고 했던 지역이다. 머리를 끄덕이는 후성궈에게 참모장 양훙이 말을 잇는다.
“제40집단군의 5장갑여단이 강동을 돌아 평양 동부지역 접경을 돌파했습니다. 그 뒤를 보병여단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미 상황 스크린에 부대 위치가 떠 있는 터라 실감이 난다. 후성궈가 말했다.
“공군기를 띄우면 한미연합사 측에서 과민 반응을 하게 되는 터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 육군으로 밀고 나가야 돼. 평양만 함락하면 이 전쟁은 끝나는 거야, 동무.”
“5일이면 됩니다.”
이미 작전계획에도 2014년 8월11일로 적혀 있다. 양훙이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면서 말을 잇는다.
“특별한 일은 일어날 리 없습니다.”
김정일은 이미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 인민혁명군이라고 치켜세워준 반란군은 이번 중국 공군기의 무차별 공습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약점을 천하에 드러냈다. 공군기의 미사일 한 발에 혁명군 부대 하나가 날아간 것이다. 이번 공습으로 40여 개의 부대가 전멸했고 50여 개는 흩어졌다. 지도자가 없는 무리, 애국심이 결여된 부대는 마치 마른 모래를 쌓아놓은 것이나 같은 것이다. 머리를 든 후성궈가 양훙을 보았다.
“너, 괜찮나?”
하고 차금성이 묻자 대위는 잇사이로 대답했다.
“예, 견딜 만합니다.”
대위의 어깨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흙까지 묻어서 치료가 급하다. 입맛을 다신 차금성이 대위에게 말했다.
“대위, 넌 이곳에 남아 치료해라, 난 남은 병력을 데리고 떠난다.”
“여단장님.”
대위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차금성은 몸을 돌렸다. 여단에서 살아남은 병력은 200여 명, 그중 군관은 6명이다. 그러나 해상저격여단은 인민군의 최정예로 한명이 열 명 몫을 하는 것이다. 차금성은 병력의 90%를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차금성이 산기슭의 바위 밑으로 다가가자 흩어져 있던 군관들이 다가와 섰다. 복장은 제각각이고 맨머리인 군관도 있었지만 모두 눈빛이 강하다.
“출동준비 되었습니다.”
가장 선임인 중좌 하병준이 보고했다.
“모두 5개 소대로 재편성을 했고 여단장 동지께선 1소대장을 겸하십니다.”
“알았다.”
머리를 끄덕인 차금성이 군관 여섯 명을 차례로 둘러보며 웃었다.
“우리는 지도자 동지의 특명을 받은 결사대다. 우리 목표는.”
헛기침을 한 차금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적의 총사령관이다.”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고 차금성이 말을 잇는다.
“이곳은 우리 땅이야. 사방에 인민군 동지들이 퍼져 있다. 우린 풀이 되고 흙이 되어서 적 총사령부로 접근, 총사령관놈과 함께 죽는다.”
그러고는 어깨를 폈다.
“군인으로서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나는 지도자 동지께서 우리의 죽음을 듣고 감동하시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만세!”
군관 하나가 번쩍 손을 들고 소리치자 다른 군관들도 따라 외친다.
“지도자 동지 만세!”
2014년 8월5일 오후 4시30분, 개전 12일. 한미연합사 참모장이며 8군 참모장이기도 한 모건 해리슨 중장이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 앞으로 다가섰다. 오산의 한미연합사 사령부 벙커 안은 다시 긴장감으로 덮여 있다. 개전 이후 가장 긴장한 것 같다.
“장군, 중국군이 움직이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잘 아시겠지만….”
그때 해리슨의 말을 장세윤이 잘랐다.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미중 간의 전쟁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요. 세계 초강대국 간의 전쟁이니까.”
“한미 동맹은 편리한 쪽으로만 써먹을 작정이요? 난 지금 연합사 측에 묻고 있는 거요, 장군.”
장세윤이 한마디씩 정확하게 발음했을 때 해리슨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바짝 다가가 섰다.
“장군, 수백만의 시민이 죽습니다. 강릉시의 참상은 만분지일도 안 될 것이라고요. 만일 우리가 중국군을 막는다면 말입니다.”
“잘 모르시나 본데 지금 한국 여론은 북진이요. 저 빌어먹을 38선을 밀고 올라가자는 겁니다. 이것이 69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라는 거요.”
그러자 해리슨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해리슨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장군.”
목소리를 낮춘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중국군이 김경식 군을 불쏘시개로 만들고 나서 전면전으로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놈들은 기어코 북한을 흡수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북한을 중국령으로 넘겨주면 세계평화가 유지되겠군요.”
“… ….”
“북한이 없어지면 한국 국민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할 줄 아신 것 같군.”
“… ….”
“그러니까 저, 38선….”
말을 그친 장세윤이 몸을 돌렸다.
2014년 8월5일 오후 5시30분, 개전 12일. 벙커 안이어서 24시간 전등을 켜놓은 터라 지금이 아침인지 밤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지금 이동일이 그렇다. 30분쯤 잠을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았더니 이른 아침 같았다.
“일어났습니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이동일은 몸을 돌렸다. 김정은이 다가와 앞쪽 소파에 앉는다. 이곳은 상황실 옆쪽 보좌관 휴게실이다. 김정일이 이곳을 이동일과 안성욱의 방으로 지정해준 터라 드나드는 사람은 김씨 부자와 연락관 정도다. 이동일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고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아침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인민군 부대에 중국군과 싸우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뜸 말한 김정은이 이동일을 보았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김정은이 말을 잇는다.
“중국군을 몰아내고 북남 조선이 통일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 ….”
“지금 계속해서 방송이 나갑니다.” 이동일은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지금 통일의 기회가 왔다는 감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이렇게 통일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궁지에 몰린 끝에 잡는 것 같은 처신 때문이 아니다. 상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중국군은 이미 평양특별시에 진입해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사방에서 인민혁명군이 지원해주지만 아래쪽에 있는 한국군 105기갑사단은 말할 것도 없고 인민군 4, 12군단 또는 820이나 815군단도 북상해오지 못한다. 또다시 벌어질 중국군의 대규모 공습이 두렵기 때문이다. 4시간 전의 중국군 공습에서 중국 공군은 전폭기 250여 대를 동원했다. 한미연합사 공군 측도 거의 비슷한 260여 대의 전폭기를 출격시켰으므로 북한 영토는 처참하게 폭격을 당했다. 평양특별시는 이미 반 이상이 폐허가 되었으며 인민군 1군단과 2군단은 궤멸되었다. 김정은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불쑥 물었다.
“김 대장께서는 전쟁이 끝나면 뭘 하실 생각입니까?”
“나요?”
했다가 김정은이 쓴웃음을 짓는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내가 살아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지요, 하지만.”
머리를 든 김정은이 똑바로 이동일을 보았다.
“일이 잘 끝난다면 건축 공부를 좀 해갖고 집을 짓고 싶네요.”
“… ….”
“거, 큰 건물은 말고 산속에 짓는 집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한국 잡지를 좀 보았는데, 옳지, 전원주택이라고 합디다.”
김정은이 생기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시멘트나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겁니다….”
그러더니 문득 말을 멈추고는 이동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동일은 김정은의 눈동자에서 차츰 초점이 흐려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했다.
“저도 꼭 보고 싶네요. 그 집을 말입니다.”
12사단장 변용식 소장은 부관이 건네주는 K-5 소총을 받아 쥐고 장갑차에 오른다. 부관과 작전참모가 뒤를 따라 탔을 때 장갑차는 곧장 출발했다. 2014년 8월5일 오후 8시15분. 긴 여름 햇살이 스러지면서 주위에 어둠이 덮였다. 장갑차가 속력을 내었을 때 작전참모 윤택성 대령이 말했다.
“수색대대, 2연대는 이미 38선을 12㎞나 돌파했습니다.”
장갑차의 진동이 심했으므로 손잡이를 쥔 변용식은 눈만 끔벅였고 윤택성의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인민해방군 4개 부대가 길을 선도하고 있고 1연대 앞에도 3개 부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38선을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12사단 뒤에는 2사단 17연대가 바짝 따르고 있었으니 이 속도라면 한국군 2개 사단이 한 시간 만에 38선을 넘는다. 다시 윤택성이 소리치듯 말했다.
“수색대대 2중대는 방금 고성을 지났습니다, 사단장님.”
그러자 변용식이 심호흡을 했다. 잘 풀린다면 오늘밤 안에 목표인 원산을 닿을 수도 있겠다.
그 시간에 연합사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가 참모장 해리슨과 작전참모 토드를 앞에 세워놓고 소리쳤다.
“몇 개 부대야?”
“중부와 동부전선의 6개 사단입니다.”
토드가 외면한 채 대답했다. 그러나 작심한 듯 잇사이로 말을 잇는다.
“미리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6개 사단이 거의 동시에 38선을 돌파했습니다.”
“시발놈들.”
“현 상황으로 보면 선발대는 일몰 직후인 19시35분경에 출발했고 사단 사령부까지 다 38선을 넘었습니다.”
“개새끼들.”
우드워드의 시선이 잠자코 서 있는 해리슨에게로 옮겨졌다. 이곳은 종합상황실 바로 옆의 사령관실 안이다. 우드워드가 둘을 이곳으로 부른 것은 한국군 지휘부도 섞여 있는 상황실이 거북했기 때문이다.
“이봐,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군 지휘관 놈들을 다 체포해야 되는 건가? 아니면 연합사 해체하겠다고 오바마한테 건의할까?”
또 있다. 지휘 책임을 물어 무능한 사령관을 갈아치우는 방법이다. 해리슨과 토드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우드워드가 이런 식으로 말할 때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같이 끌어안고 동반자살을 하는 성품이다.
“사령관, 이 전쟁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겁니다. 그리고 그 책임도 북쪽한테 있습니다.”
해리슨이 차분하게 말했지만 우드워드는 눈을 부릅떴다.
“말 똑바로 해. 북쪽하고 남쪽, 둘이야.”
“한국군 해병의 기동훈련을 말씀하는 겁니까?”
“그놈들은 그때부터 계획적이었어.”
“그렇게 안 한다면 군인이 아니죠.”
했다가 해리슨이 헛기침을 하고나서 서둘러 말을 잇는다.
“이번 한국군의 38선 북상은 김정일과 연합한 작전 같습니다.
우드워드가 눈만 껌벅이는 것은 예상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때 해리슨의 눈짓을 받은 토드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 백악관에서 중국 지도자에게 연락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함으로써 중국군과 한국군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라고 해.”
했지만 우드워드는 외면하고 있다. 토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되면 우린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말려들게 됩니다. 아마 가만있다가는 이곳에서 당하게 될지도 모르니깐요.”
하고 토드가 방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을 때 우드워드의 화가 폭발했다.
“닥쳐! 풋내기 자식아!”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 우드워드가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어 해리슨과 토드를 번갈아 가리켰다.
“너희 둘은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그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
그러더니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좋아, 이제 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단 말이지?”
평양과 강동군의 경계 지역인 개울가 바위에 12군단 소속의 강성일 중좌가 기대 앉아 있다. 2014년 8월5일 오후 8시35분, 주위는 어두웠고 보름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아서 마른 개울의 바위를 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강성일이 감았던 눈을 뜨고 앞에 앉은 오기봉 중사를 보았다.
“날 그냥 이곳에 놔둬라.”
오기봉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지만 입은 열지 않는다.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곧 비가 올 테니 그땐 떠내려가겠지.”
“… ….”
“가다가 물속에 묻히든지 대동강까지 흘러갈 수도 있겠다.”
강성일은 중국 공군기의 폭격으로 창자가 터져서 지금 죽어가는 중이다. 가쁘게 숨을 뱉던 강성일이 허리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중좌 동지.”
12군단에서부터 수행해온 오기봉이 불렀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강성일이 권총 총구를 옆머리에 붙이고 말했다.
“자, 넌 가라.”
“중좌 동지, 가족에게 남기실 말씀은.”
“없다.”
그러고는 강성일이 시선을 들어 오기봉 머리 위쪽 밤하늘을 보았다.
“말해서 뭐 하겠냐?”
“중좌 동지, 잘 가시라요.”
“돌아서.”
오기봉이 돌아서자 밤하늘에 낮은 총성이 울렸다. 총성이 낮게 깔리는걸 보면 비가 오실 것 같다.
12장 대한민국 연방 (마지막 회)
이에 중국군은 미사일 공격으로 북한군을 궤멸시킨다.
바야흐로 한국군과 중국군 간 일전이 벌어지려는 순간, 오바마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전화해 휴전을 제안한다.
미군과 중국군이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군하다는 조건이다.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한반도에는 통일 분위기가 조성된다.
김정일은 6·25를 비롯한 그간의 과오에 대해 한국 국민에게 사과하는데…. <편집자>
2014년 8월5일 화요일 22시30분, 개전 12일째.
선양군구사령관이며 북한 진주군사령관 후성궈 대장이 탄 장갑차가 평양특별시 구역 안의 용성으로 향하고 있다. 39집단군의 190기계화 보병사단과 제3장갑여단의 경호를 받으면서 군구사령부 진영이 천천히 남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에는 16집단군과 40집단군 병력이 평양시 깊숙이 진출해서 김정일 친위군과 격렬하게 교전을 하는 중이다.
“300m만 전진하면 호위총국이 사용하던 벙커가 있습니다.”
앞쪽에 앉은 참모가 소리쳐 말했으므로 후성궈가 불쑥 묻는다.
“쓸 만해?”
“예?”
참모의 시선을 받은 후성궈가 자르듯 말한다.
“오늘밤에 사령부를 그곳에 설치한다. 물론 벙커가 쓸 만하다면 말야.”
본래 오늘밤 사령부 예정지는 서남쪽으로 5㎞쯤 더 내려간 서포 근처의 평방사 벙커였던 것이다. 참모가 분주하게 연락을 하는 동안 후성궈는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긴 채 기다렸다. 한국군은 동부전선을 돌파하고 무서운 기세로 북상 중이다. 조금 전에 선발대가 회양과 통천을 돌파했다니 그 속도라면 오늘밤 안에 ...
“미군이건 중국군이건 이젠 다 필요 없어. 조선의 북남 군대가 이 전쟁을 끝내는 거야.”
그렇다면 이제 남북한군의 적은 미군과 중국군인가? 이동일은 눈만 껌벅였다.
“각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하고 우드워드가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드워드는 화상통신으로 산본장 지하 벙커에 있는 한국 대통령과 통신 중이다. 박성훈의 시선을 잡은 채 우드워드는 말을 잇는다.
“저는 미군 통수권자이며 본인의 명령권자인 미국 대통령의 전갈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한미협정을 위반하셨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는 유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해합니다, 장군.”
화면에 비친 박성훈의 표정은 차분했다. 상황실 안은 작은 소음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모두 긴장한 모습이다. 상황스크린 옆쪽의 100인치 대형 화면에 박성훈의 모습이 떠 있는 것이다.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한국군이 북진은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인민해방군 127개 부대가 한국군과 합류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합류해오고 있습니다. 장군, 나는 한미연합사가 북진 명령을 내려주기를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여 부탁드립니다.”
“각하, 그것은.”
우드워드가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외면했다가 입맛을 다셨다. 또 기습을 당했다는 표정이다. 적반하장이다. 이 상황에서 같이 북진을 하자니, 그 순간 우드워드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미연합사는 주적 북한에 대응하는 군 조직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지 않은가? 한국군의 북진을 막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가 어지러워진 우드워드가 어금니를 물고는 박성훈을 똑바로 보았다.
“각하, 한미연합사 해체를 심각하게 고려할 상황이 되었다고 미국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전해드리려고 각하께 전화를 한겁니다.”
“문제는 핵이요.”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 중장이 잇사이로 말했다. 박진상은 상황실 안에서 방금 끝난 우드워드와 박성훈 대통령의 통화를 들었다. 구석 기둥에 기댄 박진상이 앞에 서 있는 정용우에게 말을 잇는다.
“통일 대한민국이 핵까지 보유한 강대국이 되는 게 걸리는 거요.”
“일본에서 난리를 치고 있겠는데.”
정용우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가장 초조한건 일본이 될 거요. 그래서 미국을 압박하겠지.”
“역사는 되풀이되는 건가?”
시선을 앞쪽 벽에 둔 박진상의 말이 이어졌다.
“100년도 더 전에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 먹기로 합의를 했단 말이오. 그러고는 서로 눈을 감아주기로 했는데, 미국이 먹은 필리핀을, 일본이 먹은 조선을 말이오.”
“70년 전에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놓고 합의했소.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 한반도를 소련한테 주기로 말이오.”
하고 정용우가 말을 받았을 때 박진상이 꿈에서 깨어난 얼굴을 짓고 정용우를 노려보았다.
“이보쇼, 사령관. 우리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돼. 이게 마지막 기회요.”
2014년 8월5일 화요일 23시30분.
평양특별시 서포지역 인민학교 교사 안. 주위는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안에 모인 사람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안에는 10여 명의 군인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 인민군 장교다. 그들은 제각기 무기를 쥐고 서거나 앉아 중앙에 선 사내를 주시하고 있다. 폭음이 연거푸 울렸고 총성이 이어지고 있어서 분위기는 급박했지만 모두의 표정은 차분하다. 그때 중앙에 선 사내가 말했다.
“현재까지 인민혁명군 17개 부대가 조직되었다. 병력은 6700명, 부대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이만하면 강력한 전력이다.”
폭음이 컸으므로 사내의 목소리도 그만큼 커졌다.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건물이 흔들렸고 천장에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사내는 28해상저격여단장 차금성 중장이다. 중국군의 공습으로 부대가 궤멸되었지만 200여 명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차금성 옆에 서 있는 장교는 주장온 대좌다. 차금성의 지원부대를 이끌던 주장온도 겨우 살아남아 인민혁명군 부대를 규합한 것이다. 차금성이 소리치듯 말을 잇는다. “알겠는가? 우린 평양시에 진입한 결사대다. 호위총국, 평양경비사 부대가 우리를 적극 지원할 것이다.”
이제 평양특별시는 중국군과 김정일 정예군의 전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금성과 주장온이 이끈 부대는 주변에서 모여든 인민혁명군이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울리면서 유리창들이 부서져 내렸다. “자, 출발!” 차금성이 소리치자 사내들은 일제히 막사를 빠져 나간다. 섬광이 번쩍이면서 사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두 인민혁명군의 지휘관들인 것이다.
“김정일을 잡아.” 후성궈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밤이 깊었지만 상황실 안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70대 초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후성궈는 활기찬 표정이다. 두꺼운 눈꺼풀을 치켜든 후성궈가 다시 소리쳤다. “오늘밤 안에 평양을 석권한다! 자, 밀어붙여라!” 평양 북방은 전체가 전장으로 변했다. 각 부대가 나뉘어 돌파하고 있었지만 평양은 전체가 진지였고 사방이 북한군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략도 전술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치 백병전을 하는 것처럼 앞을 막는 적을 제거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든 후성궈가 벙커 벽에 붙여진 상황 스크린을 보았다. 스크린에는 평양만 확대되어 비치고 있었는데 북쪽은 전체가 붉고 푸른 등으로 덮였다. 붉은 등은 중국군이고 푸른 등은 북한군이다. 이제 호위총국, 평방사, 평경사 구분도 없다. 인민혁명군 부대도 같이 붉은 등으로 나타난다. 후성궈의 닫힌 입안에서 굵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평양특별시 전체를 초토화하고 진입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국제 여론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평양특별시 구역 안에만 북한 인구의 5분의 1인 500만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옆으로 참모장 양훙이 다가와 섰다. 양훙은 50대 나이인데 지친 표정이다. “사령관 동지, 한국군이 조금 전에 원산에 입성했습니다.” 양훙이 말했으나 후성궈는 상황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다시 양훙의 말이 이어졌다. “1개 기계화사단은 고속도로를 타고 황해북도 신평 동쪽 10㎞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 ….” “반란군 부대가 합류하고 있는데다 전혀 저항을 받고 있지 않아서 내일 아침까지는 함경남도, 평안남도 남쪽 지역까지 장악할 것 같습니다.” “김정일만 잡으면 돼.” 화면에서 시선을 뗀 후성궈가 양훙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놈이 숙주야. 그놈만 잡으면 북한은 해방되는 거야.” 중국군의 명칭은 ‘인민해방군’이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1시10분, 개전 13일째다. 대통령 박성훈이 산본장 지하 벙커에서 조금 전 화면에 뜬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응시한다. 지금 영상 통화가 시작되고 있다. 박성훈 뒤에는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 국방장관 임기태에, 급하게 달려온 합참의장 장세윤까지 넷이 서 있다. 그때 통화를 신청한 박성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각하, 전황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한반도에서 중국군이 철수할 것을 미국 정부가 요구해주십시오. 중국군만 철수하면 전쟁이 끝납니다.” 오바마는 시선만 준 채 입을 열지 않았고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전장은 평양특별시로 옮겨갔습니다. 다른 곳은 모두 평정되었습니다, 각하.” “중국 정부는 한국군이 38선 이남으로 철수하면 자국 군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바마가 말했을 때 박성훈 뒤에서 누군가 혀를 찼다. 다시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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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은 조중동맹 조약에 의거한 진출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김정일의 대표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주적인 남조선의 침공에 대응한 조약 이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박성훈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목소리는 높아졌다. “각하, 그 말이 억지라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중국은 이 기회에 북한을 영토에 통합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정부도 한미방위조약을 어겼어요, 각하.” 말을 자른 오바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길게 숨을 뱉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곳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이 기회에 한미방위조약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단 말입니다. 일부 의원은 제2차 중국군 공습에 연합사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박성훈은 어금니를 물었다. 국가는 개인보다 엄격해야 한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조약도 어길 수 있다. 그것을 비판하는 자국민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에 해가 되는 조약을 지키려고 든다면 매국노, 부적격자로 비난받는다. 지금의 미국 정부 상황이 그렇다. 한국인에 호의적인 미국 일부 국민은 그러지 않겠지만 미국 정부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불편한 것이다. 다시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각하, 한국군을 이전의 휴전선 밑으로 철군해주시지요. 그럼 우리 미국 정부도 책임지고 중국군을 철군시키겠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1시30분. 계단을 오른 이동일은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맵고 찌릿한 땅 냄새가 맡아졌다. 자세히 말하면 흙과 풀이 섞인 대기의 냄새다. 도시에서는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때 위쪽에서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음, 오랜만에 흙냄새를 맡는구나.” 김정일도 목소리는 밝다. 그러나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리고 천둥 같은 폭음이 들린다. 계단을 더 오를수록 포성과 폭발음이 더 선명해졌다. 이동일은 잠자코 계단을 오른다. 앞뒤로 경호원들에 싸여 있었지만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주석궁 벙커에서 나와 지하철을 이용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객차 5량에 측근과 경호원을 가득 싣고 이동한 시간은 15분 정도. 15분간 남하하고 나서 지금 지상으로 오르는 중이다. 김정일이 주석궁을 떠나 피신하는 것이다. “자, 이쪽으로.” 옆쪽에서 소리가 들렸으므로 이동일은 머리를 들었다. 군관 하나가 시멘트벽에 기대서 있다가 옆쪽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그쪽으로 꺾어졌고 이동일도 뒤를 따른다. 다시 50m쯤 걸었더니 앞쪽이 둥근 구덩이처럼 보였다. 터널 입구로 나온 것이다. 이동일이 지금 걷고 있는 터널에 불을 켜지 않아서 밖이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이윽고 이동일은 터널을 나왔다. 그러자 주위가 깊고 험한 산인 것을 알았다. 삼면이 가파른 산이다. 양쪽과 위쪽이 모두 산으로 막혔는데 골짜기 사이는 100m도 되지 않는다.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하늘의 별이 보였다. 이제 포성은 더 커졌고 딛고 선 땅이 울렸다. 드디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제4대피소죠. 자, 저쪽으로 갑시다.” 어느새 김정은이 옆에 와 있었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1시50분. 평양특별시 북방 용성에 위치한 중국군 사령부 벙커 안에서 갑자기 외침이 터졌다. “820이 움직입니다!” 작전참모 중 한 명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소파에 앉은 채로 잠깐 졸고 있던 후성궈가 머리를 들었고 상황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후성궈의 시선이 상황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평양특별시를 관통하는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가 화면에 떠있다. 그 고속도로의 평양 아래쪽 송림에 파란 불덩이가 모여 깜박이고 있다. 다시 참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05기갑사단이 양쪽으로 벌어지고 820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앞장선 것은 1개 여단인 것 같습니다.” 참모가 말하는 동안에도 파란불이 살아 있는 세균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며 위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때 어느새 후성궈 옆으로 다가선 참모장 양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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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면 평양 시내로 진입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은?” 후성궈가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주위는 조용해졌다. 바로 5분 전에도 김정일 상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주석궁 근처까지 중국군 선발대가 접근했지만 호위총국 병사들의 저항은 격렬했다. 인간 폭탄이 되어서 중국군 장갑차에 몸을 던지는 바람에 다시 후퇴해야만 했다. 잠깐 정적이 흘렀을 때 상황 스크린 앞의 참모가 다시 소리쳤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크다. “아, 820 뒤쪽으로 105가 따라붙습니다!”
“105가 움직입니다!” 이쪽은 오산의 한미연합사 벙커 안, 후성궈 앞에 펼쳐진 스크린의 10배쯤 되는 크기의 스크린이어서 점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탱크도 드러났다. 이미 송림 서북방 고속도로에 진입한 820전차군단의 2개 여단 뒤쪽으로 105기갑사단의 1개 연대 규모의 전차가 ‘은근슬쩍’ 따라붙은 것이다. 그렇다. ‘은근슬쩍’이다. 우드워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빠른데, 이동과 대열 정비가 빠르다.” 옆쪽에 서 있던 참모장 해리슨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들었을 것이다. 우드워드가 어금니를 물었을 때 해리슨의 말이 이어졌다. “105하고 호흡이 맞는군.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움직이는구만 그래.” “중지시켜!” 마침내 우드워드의 입에서 격한 외침이 터졌다. 주위 참모들은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마치 비 오는 날 번쩍이는 번개를 보고나서 천둥소리를 듣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다시 우드워드의 천둥이 이어졌다. “한국군 지휘부를 불러! 그리고 직접 저 빌어먹을 탱크 사단장 놈을 연결해!”
그 시간의 서울 서교동 동양호텔 객실 안이다. 민중당 국회의원 임민희가 객실 의자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다. 임민희 앞에 앉은 두 남녀는 국제신문 사회부장 홍동수와 기자 송아현. 둘은 지금 막 인터뷰를 시작한 참이었는데, 늦었다. 그것은 임민희가 시간을 지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인사가 끝났을 때 임민희가 송아현에게 말했다. “송 기자가 요즘 뜨시데? 지금 이 대위는 국방위원장님하고 같이 계시죠?” “네.” 하고 송아현이 대답했지만 말은 홍동수가 이었다. “임 의원께선 이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님이라고 대놓고 부르시네요, 그죠?” “그래요, 의식적으로 그랬어요.” 임민희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골수 빨갱이인 제가 가족과 함께 이곳 호텔에서 묵고 있는 걸 보면 세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김정일의 밀서를 전한 투사로 인정받은 거 아닙니까?” “아니죠, 이젠 남북한은 이념에서 해방되었다는 걸 의미해요.” “김정일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투항했다고 봐야 되겠죠?” “아니죠, 서로 용해된 겁니다. 대한민국은 새로 건국되는 거죠.” 그러자 송아현이 정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내저었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했어요. 그것을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고요. 새 건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죠.” 홍동수가 거들었다. “임 의원께서 그렇게 주장하시다간 또 도망 다니시게 되겠습니다.” “위원장님께서 대통령과 합의를 하실 겁니다.” 이제는 임민희도 정색하고 말했다. “통일이 된다면 위원장님이 가장 큰 기여를 하신 것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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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현과 홍동수가 마주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김형기, 김경식 일당의 도발로 시작된 남북전쟁은 대한민국에 대한 김정일의 적극적인 협조로 급진전되고 있다. 쓴웃음을 지은 홍동수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 대한민국의 사회 통합은 어떤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오늘 인터뷰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러자 임민희가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대답했다. “민주주의의 틀은 존속시키되 공산당을 완전 합법화, 헌법에도 넣고, 국가보안법은 물론 철폐하는 것입니다. 또한….” “알겠습니다.” 말을 자른 홍동수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웃음 띤 얼굴로 임민희를 보았다. “이제 공산주의가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부활하겠습니다. 임 의원 말씀대로라면 말입니다.” “그것이 남북한 공존의 유일한 방법이죠, 보세요.” 임민희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민혁명군도 이제 모두 위원장님 중심으로 뭉치고 있지 않습니까?” “임 의원께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민혁명군을 반란군이라고 부르셨지요?” “내가요? 언제요?” 눈을 크게 떴던 임민희가 곧 시선을 내렸다. “저, 그런 적 없어요.”
2014년 8월6일 수요일 02시20분. 워싱턴은 화요일 낮 12시20분이다.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오바마는 방으로 들어서는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와 CIA 국장 리처드 번스를 맞는다. “그래, 어떻게 되었습니까?” 앞쪽 소파에 앉는 스튜어트에게 오바마가 먼저 물었다. 스튜어트는 오전에 일본 대사 이토 사다유키를 만난 것이다. 이토는 일본 정부의 훈령을 받고 스튜어트와 두 시간 동안이나 비밀 회담을 했다. 스튜어트가 입을 열었다. “일본은 북상하는 한국군이 무수단의 핵을 확보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수단을 미군기가 폭격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폭격?” 그러고는 오바마가 입맛을 다셨다. “아직 점심 전인데 밥맛 달아나는 소리를 듣는군.” “각하, 일본 정부는 심각합니다.” 이번에는 CIA국장 리처드 번스가 말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에 진주한 중국군이 무수단과 함경북도의 북한 핵기지를 완전히 확보하도록 중국 정부에 로비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색한 오바마가 스튜어트를 보았다. 자리를 고쳐 앉은 오바마가 묻는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극동은 더 안정되는 것 아닙니까? 핵까지 포함해서 말이오.” 그 순간 스튜어트와 번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바마는 지금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첫째, 중국과의 전면전을 피했으며 둘째, 북한 핵은 중국군이 흡수하는 것이 이롭고 셋째, 남북한은 최악의 경우에 평양 이남으로 분할하여 위쪽은 중국, 아래쪽은 대한민국으로 재조정되는 것을 기대했다. 둘의 표정을 살핀 오바마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순리를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러고는 오바마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내가 우연히 백악관 기록을 보았더니 지금부터 109년 전인 1905년에 코리아의 이승만이란 청년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했더군요.” 스튜어트와 번스는 눈만 껌벅였고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사연이 재미있어. 이승만은 1882년에 한미 우호조약을 맺은 거중조정항, 즉 한쪽 국가가 위급하면 다른 국가가 조정해준다는 조약상 한 항목을 이유로 그 당시의 코리아를 일본의 침략에서 구해달라고 온 거요. 코리아 황제의 특사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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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이게 무슨 귀신이 씨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오바마의 얼굴에는 열기가 드러났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탄원서류를 국무부에 접수하라면서 아승만을 돌려보냈어요. 이승만은 희망에 부풀어서 돌아갔지. 그런데 사실은.” 오바마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둘을 보았다. “이미 루스벨트는 일본과 밀약을 맺고 있었어요. 미국이 필리핀을 먹을 테니 일본, 너는 코리아를 먹어라. 그리고 우리는 서로 상관 안 하기로 하자….” “… ….” “코리아는 뒤통수를 맞았지. 아니, 바보 같다고 봐야겠지. 그런 조약 한 줄을 믿다니 말야.” “… ….”
“두 번째는 얄타에서 또 다른 루스벨트가 소련한테 코리아를 넘겨주었어. 2차대전 때 소련의 참전이 절실했던 루스벨트가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만 해주면 코리아를 준다고 했거든. 극동 방위선은 일본이면 충분하니까 말야.” “… ….” “그래서 38선이 생긴 거요. 소련 놈들은 우리 원자폭탄 덕분으로 총 한방 안 쏘고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그 즉시 공산 괴뢰정부를 세웠지. 남한이 단독정부를 먼저 세웠기 때문에 통일이 안 되었다고 하지만 소련이 얄타에서부터 한반도를 먹을 작정이었어.” “… ….” “그런데 이제는 중국이군.” 그때 스튜어트가 헛기침을 했다. “각하, 코리아 역사 이야기는 감명 깊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말씀을 하셔도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2시40분. 함경북도 화대군 화대시 서쪽 3㎞ 지점에 9군단 예하 제102교도사단 수송대대의 자재창고가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에 수송대대가 군단사령부인 청진으로 철수하면서 지금은 시멘트 골격만 남았다. 목재로 된 것은 모두 땔감으로 뜯어갔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 안에 마치 벌통 안의 일벌처럼 구물거리는 물체들이 있다. 멀리서 보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이 구더기떼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가가보면 군인들이다. 이곳은 인민혁명군 제427부대. 부대장은 제102교도사단 제2연대장 이강복 대좌이며 휘하에 3개 연대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자신이 지휘하는 2연대 병력에다 인민혁명군으로 흡수한 4000여 명의 병사를 재편성하여 인민혁명군 제 427부대로 조직한 것이다. 건물 구석에 선 이강복이 앞쪽의 부대장들에게 말한다. “지금 즉시 무수단리 기지로 가서 경비 업무를 맡는다. 아마 곧 3개 인민혁명군 부대가 지원을 올 게야.” “아니, 대장동지. 무수단리 기지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인혁군 연대장이 된 50대의 사내가 묻자 이강복이 머리를 끄덕였다. “무수단리 기지를 사수하라는 지도자 동지의 명령이시다, 그리고.” 이강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부대장들을 둘러보았다. “중국 놈들이 동창리 기지는 이미 접수했으니 이곳만은 빼앗기면 안 된단 말야. 자, 출발!” 소리친 이강복이 발을 떼자 모두 움직였다. 구더기떼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곳에서 무수단리까지는 10㎞,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무수단리 기지에는 1개 대대 병력이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인민혁명군 부대와는 우호적이다. 김경식 세력이 소탕된 지금, 인민혁명군의 목표는 침략자 중국군이 된 것이다. 김정일의 대국민 선언 이후로 정규 인민군과 인민혁명군은 급속히 결속했다. 특히 중국군과의 접경 지역이나 작전 지역에서 인민군 장교가 통합군 지휘를 맡기도 한다. 지금 이강복도 통합군 대장인 것이다.
“주석궁에 진입했습니다.” 참모장 양훙이 소리쳐 보고하자 후성궈는 빙그레 웃기부터 했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3시30분이다. 앞에 선 양훙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지금 16집단군의 48보병여단 1연대 병력이 주석궁 벙커 입구를 폭파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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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시도에서 주석궁이 뚫린 것이다. 저항이 격렬해서 선봉에 섰던 제69보병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후퇴했다. 대신해서 나선 48여단이 마침내 방어선을 뚫은 것이다. “김정일은 꼭 생포하도록 해.”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후성궈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 아들놈도 말야.” “모두 알고 있습니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벽에 붙여진 상황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동부전선의 푸른 반점이 강원도를 휘덮고 함경남도 신포에까지 닿았다. 현재시간 새벽 3시30분. 4시간 전에 원산에 입성하더니 함흥을 거쳐 신포에 닿은 것이다. 또한 2개 사단이 함흥에서 북진해 장진고원의 장진에 닿았다. “이놈들이 이제는 폭격을 받을 차례가 된 것 같군.” 후성궈가 푸른 점들을 노려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였다.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으므로 후성궈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정예 호위총국 소속의 벙커여서 시멘트 재질도 우수한 데다 깊이는 지하 20m나 된다. 북한 평양시의 대공 요새는 최첨단 무기로도 뚫을 수가 없다. 수십 년 전부터 개보수를 해온 터라 지하벙커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됐다. 평양시에 거의 2개 집단군 전력이 진입했는데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도처가 요새요 벙커여서 몇 십 미터 전진하는 데도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이다. 다시 땅바닥이 흔들리더니 테이블 위에 놓은 지휘봉이 조금 굴렀으므로 후성궈가 두꺼운 눈꺼풀을 치켜들었다. “뭐야?” 양훙도 놀란 모양인지 몸을 돌렸고 상황실 안의 장교 서너 명도 두리번거린다. 그때 또 한번 진동이 왔는데 이번은 강했다. 상황실 안의 모든 장교가 머리를 들 정도였다. 벽에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졌고 스크린의 전등이 깜박이다 다시 켜졌다.
같은 시간 차금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좋아! 좌측은 돌파했다! 앞으로!” 사방은 요란한 총성과 폭음으로 뒤덮여 있다. 전방 100m 지점의 초소가 불에 타 화염이 하늘로 치솟았고 연거푸 폭발음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차금성은 AK-47 자동보총을 고쳐 쥐고는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이미 앞쪽에 10여 명의 부하가 달려가고 있다. 그때 옆으로 붙은 하병준 중좌가 소리쳤다. “여단장 동지! 주장온 대좌가 전사했습니다!” 차금성은 말없이 뛰기만 했다. 옆쪽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철모에 파편이 맞아 요란한 소리가 났고 폭풍으로 몸이 흔들렸지만 부상을 입은 것 같지가 않다. 주장온은 좌측을 돌파하고 전사한 것이다. 이제 후성궈의 벙커까지는 100m 정도가 남았다. 기습에 놀란 진주군사령관의 호위대는 전열이 흐트러졌는데 좌측에 이어 정면도 무너지는 중이다. 달리면서 차금성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인민군 전사들이여! 조국의 운명이 이 작전에 달렸다! 이름을 빛내고 죽으라!” 폭음과 총성이 귀청을 찢을 듯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으므로 앞을 달리던 부하 서너 명만 들었을 것이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03시45분. “피하십시오!” 벙커 안으로 달려 들어온 장교 하나가 버럭 소리쳤을 때 상황실 안은 물벼락을 맞은 듯이 조용해졌다. 벙커의 철문이 열린 상태여서 이제 폭발음과 총성까지 울리고 있다. “시끄럽다!” 하고 먼저 꾸짖은 것은 참모장 양훙이다. 눈을 치켜뜬 양훙이 소리쳐 물었다. “전황을 자세히 보고해야 할 거 아니냐!” 하지만 바로 2분쯤 전에 참모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진주군 사령부는 39집단군의 190기계화 보병사단과 제3장갑여단의 철통 같은 경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방에서 공격해온 인민군 부대는 호위총국도, 평방사, 평경사도 아닌 혼성군이었다. 아니, 잡군(雜軍)이다. 그런데 그 잡군의 기세가 무서웠다. 각각 500 내지 1000명까지의 소부대로 나뉜 잡군 20여 개 부대가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쪽을 격파한 것이다. “현재 100m 앞까지 적이 침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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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훙의 기세에 잠깐 움찔했던 참모가 안간힘을 쓰면서 보고했을 때 열린 문 안으로 군관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그 순간 엄청난 폭음이 울리면서 군관 뒤쪽에서부터 잔해가 쏟아져 들어왔다. 벙커 안 복도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파편에 맞았는지 비틀거리던 군관이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적이 벙커 입구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요란한 발사음이 울렸으므로 양훙이 머리를 돌려 후성궈를 보았다. 후성궈는 어금니를 문 채 앉아 있었는데 마치 낡은 석상 같았다. “사령관 동지! 피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때였다. 총성이 더 요란해지더니 벙커 안으로 10여 명의 군인이 쏟아지듯 들어섰다. 지저분한 군복, 모두의 눈에는 핏발이 섰고 손에는 제각기 AK-47 자동보총을 쥐었다. 북한군이다. 놀란 상황실 안의 참모들은 무기를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참모 대다수가 권총 혁대를 풀어놓은 채 상황스크린을 들여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인민군 하나가 유창한 중국어로 소리쳤다. “반항하면 죽인다!”
2014년 8월 6일 수요일 04시 정각. 오산 한미연합사 상황실 벙커 안. 상황 스크린 옆쪽에 붙여진 TV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곧 희미한 영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미군 참모 하나가 설명을 한다. “휴대전화 영상통신을 TV화면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곧 화면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북한에서 5분 전에 전송된 사진이다. 상황실 안은 조용하다. 연합사령관 우드워드 대장부터 해리슨 참모장, 한국 측 합참의장 장세윤과 육참총장 조현호까지 한미 양국군 고위층은 다 모여 있다. 그때 화면이 깨끗해지더니 험악한 표정의 사내가 나타났다. 단정한 용모의 50대인데 표정이 험하다. 눈을 치켜떴고 이마에 핏자국이 배어 있다. 굳게 다문 입술, 인민군 군복 앞쪽에 검은 얼룩이 묻었고 구겨졌다. 그러나 어깨에 붙여진 계급장은 중장, 장군이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나는 제28해상저격여단장 중장 차금성. 지도자 동지의 명을 받아 방금 침략자인 중국군 최고사령관 후성궈와 참모장 양훙, 그리고 14명의 참모를 생포했다.” 사내가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는 동안 상황실 안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내가 지휘하는 19개의 부대는 용성에 주둔한 적 2개 사단을 완전히 격파, 적 후방의 진지를 확보했다. 이제 평양 시내로 진입한 적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정말인가?” 우드워드가 혼잣소리로 물었을 때 화면이 바뀌더니 한 무리의 군인을 비췄다. 중국군이다. 모두 벽을 등지고 앞 열은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뒤 열은 서 있었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앗! 후성궈다!” 우드워드도 앞 열 중앙에 앉은 노인을 보았다. 모자를 쓰지 않은 군복 차림으로 두터운 눈꺼풀을 늘어뜨린 채 양쪽 입 끝이 내려가 있어서 우울한 ‘불도그’ 같다. “옆에 앉은 건 참모장 양훙입니다.”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이 우드워드의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토드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위치는 평양 북방의 용성입니다. 진주군 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입니다.” 그러자 심호흡을 한 우드워드가 화면을 보았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참동안 중국군 장성들을 비추던 화면이 바뀌더니 차금성의 얼굴이 나왔다. “나는 중국군에게 지금부터 2시간 여유를 주겠다. 2시간 안에 평양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포로로 잡힌 15명의 중국군 지휘부를 모두 처형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지금부터 두 시간 후인 오전 6시까지다….” 그때 화면이 끊겼으므로 우드워드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놈의 전쟁.” 투덜거린 우드워드가 머리를 돌려 상황판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멎은 곳은 평양특별시 남쪽이다. 참모장 해리슨의 시선도 우드워드를 따라 같은 지점에 멈췄다. 평양특별시 남쪽 ‘강남’이다.
장갑차에 부착된 스크린은 16인치 모니터이지만 화면이 선명했다. 작전 참모가 손끝으로 화면을 ‘톡’ 찍었더니 금방 그 부분이 확대되면서 탱크들이 드러났다. “야, 신기하구만.”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응시하던 820전차군단 참모장 조규 상장이 감탄했다. 화면에 비친 것은 강남 우측의 산골짜기에 배치된 105기갑사단 제2 연대의 탱크들이다. 머리를 든 조규가 차봉호에게 물었다. 멀리서 포성과 폭음이 울리고 있다. “사단장 동무, 남조선 땅크는 기름을 얼마나 먹소?” “앞으로 300㎞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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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봉호가 금방 대답했더니 조규가 다시 감탄했다. 이제는 어둠 속에 섬광이 번쩍인다. “야, 대단하구만. 지금까지 200㎞는 뛰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린 보통 600㎞는 갑니다.”
2014년 8월6일 04시10분 현재, 820전차군단과 105기갑사단은 평양특별시 진입을 완료했다. 지금 강남과 중화에 걸쳐 가로로 1000대가 넘는 남북한군 전차가 배치되어 있는데 물론 중심은 820군단이다. 그런데 820군단의 전차가 말썽을 일으켜서 1시간 전부터 더 이상 북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20전차군단은 5개 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1개 여단의 전차보유 대수는 약 120대, 군단의 총 전력은 600대의 전차다. 그런데 사리원 북방에서 820이 앞장을 설 때부터 540여 대가 움직였는데 평양특별시에 닿았을 때는 470대로 줄어들었다. 도중에 엔진고장, 캐터필러까지 풀린 전차가 나오는가 했더니 나중에는 엔진 과열로 불이 난 전차가 두 대나 되는 등 70여 대가 길가에 낙오한 것이다. 한국군 105기갑사단은 720대의 전차를 보유했다. 그중 개성에서부터 705대가 출동했다가 지금은 703대가 포진하고 있다. 두 대가 낙오한 것이다. “역시 듣던 대로 한국군 전차 성능이 좋구만.” 머리를 끄덕인 조규가 말했으므로 차봉호는 입맛을 다셨다. 지금 전력을 재정비해서 평양으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이다. 한가하게 칭찬이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장갑차 안에는 서너 명밖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뒤쪽 문을 열고 10여 명의 남북한 지휘관이 둘러서 있다. 폭음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다. “그럼 10분 후에 진격하는 것으로 하고 시간을 맞춥시다.” 하고 차봉호가 말했을 때였다. 장갑차 안쪽에 앉아 있던 참모 하나가 귀에서 헤드셋을 떼더니 작전참모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작전참모가 차봉호에게 말했다. “연합사에서 발신한 화면입니다. 보시라는 지시가 왔습니다.” 그러고는 스크린의 버튼을 누르고 음량을 조절했다. 새벽 4시1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 주위는 어둡다. 그래서 밖을 향해 놓인 스크린의 영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때 화면에 인민군 복장의 사내가 나타났으므로 모두 긴장했다. 사내가 소리치듯 말한다. “나는 제28해상저격여단장 중장 차금성. 지도자 동지의 명을 받아 방금 침략자인 중국군 최고사령관 후성궈와 참모장 양훙, 그리고 14명의 참모를 생포했다.”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어둠에 덮인 대지 위로 차금성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참모가 볼륨을 더 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지휘하는….” 북쪽에서 포성과 기관포 발사음까지 들렸지만 차금성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대지를 울리는 함성이 일어났다. 화면에 후성궈를 포함한 중국군 지휘부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군을 당분간 보류합시다.” 같이 함성을 질렀던 차봉호가 열에 뜬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하자 조규가 서둘러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그래야겠소! 과연 해상저격여단이다! 만세! 만만세!” 만세 소리를 들은 순간 차봉호가 퍼뜩 눈을 치켜뜬 이유가 있다. 혹시 만세 앞에 김정일 이름이 들어갈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잊었는지 생각이 없었는지 조규는 끼워 넣지 않았다.
“16집단군사령관 주자춘이 선임입니다.” 하고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가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주자춘이 진주군사령관을 맡을 겁니다.” 이곳 상황실은 좁지만 응접실처럼 꾸며놓아서 아늑했다. 소파 앞쪽 벽에 펼쳐진 상황 스크린은 대형 TV같다. 김정일은 잠자코 스크린만 보았고 옆에 선 전백준의 말이 이어졌다. “그놈들한테는 후성궈 이하 참모가 15명일 뿐입니다. 철수할 리 없습니다.” “영웅이야.” 스크린을 응시한 채 김정일이 입술을 달싹이지 않고 말했다. “저 동무들한테 내가 미안해.” 지금 김정일의 시선이 닿은 곳은 평양특별시 북쪽의 용성이다. 이제 그곳에는 30여 개의 인민혁명군 부대가 운집되어 있다. 중국군 사령부를 함락시키고 나서도 더 모인 것이다. 그러나 용성 주위에는 중국군 3개 집단군의 7개 사단병력이 포위하고 있다. 차금성이 통보한 2시간은 아직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평양특별시 안으로 뒤에 처져 있던 39집단군 부대까지 진입해 왔다. 김정일이 다시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뒤쪽에 서 있는 이동일에게도 다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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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한민족의 저력을 이제야 맛보게 될 것이다.” 상황실을 나와 복도 앞쪽 화장실로 들어선 이동일에게 안성욱 하사가 다가와 옆에 나란히 섰다. “중대장님, 어떻게 될까요?” 무전병으로 이곳까지 따라온 안성욱은 전투 때보다도 기가 죽어 있었다. 이동일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어.” 거울 앞에 선 이동일이 손을 씻으면서 저를 향해 웃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하지만.” 고급 티슈를 뽑아 손의 물기를 닦으면서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넌 살아 돌아가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 테다. 그래야 우리 이야기가 기록에라도 남을 것 아니냐?” 이곳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평양특별시에서 벗어난 외곽 지역이다. 3면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쪽에서 깊숙이 산을 파고 들어간 동굴은 시멘트 벙커보다 더 견고하게 보였다. 주석궁 벙커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친위대 병력에 의해 3중 방어막과 온갖 시설이 다 갖춰졌다. 왼쪽 복도 끝 계단을 오르면 터널 끝 쪽으로 앞쪽 산이 보인다. 포성이 은근하게 들리는 것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화장실 안에는 둘뿐이었지만 안성욱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전쟁터에 있는 것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이곳은 숨이 막힙니다.” “그럼 새 공기를 마시러 가자.” 하고 이동일이 안성욱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하사, 니 군기 좀 잡아야겠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화장실을 나온 둘은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걸어 왼쪽 끝 시멘트 계단을 오른다. 모두 48계단으로 12계단마다 네 발짝 폭의 평지가 나온다. 둘은 단숨에 48계단을 오른 다음 통로 앞쪽을 보았다. 이곳은 둥근 터널이다. 50m쯤 앞에 나무로 가려진 입구가 있다. 이윽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흡입되었으므로 이동일은 심호흡을 했다. 터널 좌우에 서 있던 친위군 하사관들이 그러는 이동일을 보더니 슬쩍 웃는다.
2014년 8월6일 05시15분. 오산 한미연합사 상황실 벙커에서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온다. 상황 스크린을 보고 있던 한미 양국군 지휘관들이다. “빌어먹을.” 장군 하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돌렸고 또 다른 장군은 구둣발을 구른다. 그것은 용성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중국군들이 일제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공격을 한 것이다. 이쪽 참모 대부분도 그렇게 예상은 했다. 후성궈를 포함한 참모 15인을 살리려고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제한시간인 2시간도 안 되어서, 그리고 협상해보겠다는 시늉도 않고 이렇게 공격해오다니. 전시라도 인간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행위는 경멸받는다. 공격 장면을 본 연합사 장군들의 심정은 다 똑같았다.
“개새끼들.” 폭음과 함께 천장의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내렸으므로 차금성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폭음은 더 격렬해졌고 이제는 벙커 전체가 흔들렸다. 1㎞도 안 되는 거리에서 정확한 좌표를 입력해 놓고 발사되는 포탄이다. 지금 떨어지는 포탄은 미사일이다. 배겨날 수 없다. 차금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 벽에 나란히 앉은 후성궈와 참모들을 보았다. 이곳은 후성궈가 지휘하던 사령부 상황실 그대로다. 주인이 포로 신분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후성궈와 양훙은 차분했지만 이미 긴장으로 굳어진 표정이다. 후성궈 뒤쪽 벙커의 시멘트벽이 갈라져서 10㎝ 정도의 검은 틈이 벌어져 있다. 양훙의 어깨에 시멘트 가루가 쌓여 있다. 그러나 나머지 참모들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깨달은 몇 명은 눈물을 흘렸으며 몇 명은 벙커가 무너질 것에 대비해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때 참모 하병준 중좌가 소리쳤다. “여단장 동지! 이름을 남기십시오!” 하병준의 손에는 켜진 휴대전화가 들려져서 차금성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 방송을 하라는 뜻이다. 그러자 차금성이 뿌연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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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네가 해라. 이름은 무슨.” 그러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너 때문에 내가 웃으며 죽는다.”
2014년 8월6일 05시25분.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참모가 버럭 소리쳐 보고했지만 주자춘은 상황 스크린만 보았다. 이곳은 16집단군사령부가 위치한 서포 남쪽의 임시 벙커 안이다. 포성과 폭음이 귀청이 떠나갈 듯 울리고 있었으므로 참모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적은 격멸되고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학살이 맞다. 사방에서 포위한 중국군이 전 화력을 동원해 가로 1㎞ 세로 1.2㎞ 타원형 구역을 집중 폭격하는 터라 각종 포탄이 몇 미터 간격으로 폭발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주자춘 옆으로 참모장 타이윈 중장이 다가와 섰다. “사령관 동지. 후성궈 동지는 전사했다고 발표하시지요.” 타이윈이 소리치듯 말했다. 이런 발표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폭격하는 장면은 이미 전세계로 보도될 테니 빨리 사건을 덮는 것이 낫다. 방금 참모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소리친 것은 후성궈가 갇혀 있는 벙커를 말한다. 지대지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10여 발이나 맞은 벙커는 이제 거대한 구덩이가 되어 있을 뿐이다. 이윽고 주자춘이 머리를 돌려 타이윈을 보았다. “좋아, 내가 발표하겠다.” 그때였다. 상황 스크린 앞에 선 참모가 다시 소리쳤는데 폭음 때문에 잘 안 들렸다. 그 좁은 구역에는 인민군 2만여 명이 집결해 있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 쏴도 맞을 것이었다. 다시 참모가 소리쳤는데 이번에는 들렸다. “……진격해 옵니다!” 몸을 일으킨 주자춘이 상황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을 때 다시 참모가 소리쳤다. “조선군 탱크대입니다! 전속력으로 이쪽을 향해 진격해 옵니다!”
같은 시간 차봉호는 자신의 ‘애마’라고 불리는 1번 장갑차에 타고 있었지만 멀미에 시달렸다. 자리도 불편해서 엉덩이가 쑤셨고 자꾸 어깨가 쇠붙이에 부딪혔다. 1년에 몇 번, 그것도 10분 정도 탑승한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익숙지가 않다. 그러나 엔진과 성능은 빠삭해서 냄새만 맡아도 기능을 안다. “야! 밟아!” 버럭 소리친 차봉호가 입맛을 다셨다. 105와 820이 거의 동시에 출발했지만 5분여가 지난 지금 105의 탱크대가 대부분 앞으로 튀어나왔다. “시발놈들, 저런 걸로 탱크 군단이라고 하다니.” 바로 눈앞에 설치된 14인치 상황 스크린을 흘겨보며 차봉호가 투덜거렸다. 사단장 장갑차여서 탑승한 작전참모가 소리쳐 보고했다. “선봉 중대는 중국군 저지선을 돌파했습니다!” 105사단의 1개 중대다. 같이 돌파하기로 했던 820의 1개 중대는 우측에서 500여m나 뒤처져 있다. “저런 지기미 시발놈들.” 스크린을 보면서 차봉호가 투덜거렸을 때 갑자기 헤드셋에서 무전병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단장님! 본부 연락입니다!” 본부라면 연합사를 말한다. 차봉호는 헤드셋을 움켜쥐었다. 벗어 던지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심호흡을 하고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버튼을 누르자 곧 선명한 목소리가 울렸다. 차봉호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상관이라기보다는 인간, 육참총장 조현호다. “얀마! 거기 서!” 대뜸 그렇게 소리친 조현호의 목소리는 마치 개가 물어뜯기 전에 짖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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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놈들 전폭기가 떴단 말이다! 우리도 전폭기를 띄웠는데 그 상황에서 오바마가 시진핑에게 전화를 했어! 전화가 끝날 때까지 멈춰! 중국 놈들도 멈출 테니까 말야! 스톱! 스톱!” 나중의 외침은 다급한 버스 차장의 외침 같다.
2014년 8월6일 오전 5시40분. 워싱턴은 오후 3시40분이다. 여기는 백악관 집무실. 오바마가 책상에 두 손을 얹고 앞쪽 벽에 붙여진 영상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오바마의 좌우로 참모들과 장관, CIA 담당 부국장까지 10여 명이 둘러앉았다. 그래서 상대방 화면에는 오바마만 비칠 것이다. 지금 오바마가 응시하는 화면 속의 시진핑도 그렇다. 화면 밖에 중국 정부의 실력자가 다 모여 있을 것이었다. 오바마가 입을 열었다. “시 주석 각하.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1000기 가까운 미·중 양국의 전폭기가 떠있습니다.” 오바마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우리가 이 회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양국 전폭기는 교전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시작된 전쟁은 금방 바다로, 다시 육지로 이어질 것입니다.” 아직도 시친핑은 시선만 주고 있다. 계속하라는 표시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고 코웃음 치기 직전의 표정 같기도 했다. 헛기침을 한 오바마가 말을 이었다. “미국 정부는 지금 즉시 휴전을 제안합니다. 미·중 양국군 전폭기를 복귀시킴과 동시에 한반도 안에서 미중 양국군의 철수를 제안합니다.” 그때 시진핑의 표정에 천천히 변화가 일어났다. 눈썹이 희미하게 꿈틀거리더니 입술 끝이 떨렸고 나중에는 눈도 깜박인다. 그것을 오바마는 유심히 보았다. 좌측에 앉은 CIA 국방 리처드 번스에게 비서실장 패트릭 어윈이 귓속말로 물었다. “승낙할 것 같소?” 초조해서 말을 건 것이라 시선은 시진핑에게 향해 있다. 그러자 번스도 입술만 어윈의 귀에 붙이고 말했다. “시발 놈들 속을 알 수가 있어야죠.” CIA 국장답지 않은 발언이었지만 듣는 쪽이 건성이라 그냥 넘어간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대통령 각하. 중국 정부는 5분의 시간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러고는 화면이 꺼져버렸기 때문에 오바마가 어깨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갓뎀.”
그 시간에 한국 대통령 박성훈도 화면을 보고 있다. 비록 이쪽은 스피커 기능이 상실되어 있지만 양쪽 표정과 이야기를 다 보고 들은 것이다. 따라서 화면이 두 개다. 산본장의 지하 상황실 안에는 박성훈을 중심으로 요인들이 둘러앉았다. 이쪽은 관람만 하는 처지라 극장식 배열이지만 화면은 둘이다. 그래서 왼쪽 오바마 화면이 ‘갓뎀’ 하면서 나중에 꺼졌을 때 박성훈이 머리를 돌려 옆에 앉은 국방장관 임기태에게 물었다. “지금 김정일씨는 어디 있습니까?” “이 대위하고 연락이 안 됩니다만.” 임기태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주석궁은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김정일씨도 이것을 봐야 하는데.” 박성훈이 혼잣소리처럼 말하자 바로 뒤에 앉은 안보수석 주명성이 대답했다. “녹화되어 있으니까 나중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반도 운명이….” 잠깐 말을 그친 박성훈이 머리를 좌우로 풍뎅이 머리 비틀 듯이 한껏 비틀어 모인 인사들을 다 본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말을 잇는다. “내가 한 시간 전에 오바마의 연락을 받았어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난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했는데….” 모두 숨을 죽였고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한반도에서 미·중군 동시 철군 카드를 들고 나왔군요.” “우리한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준 것입니다.” 하고 주명성이 말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설명성 발언이다. 오바마의 연락이 왔을 때 주명성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주명성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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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한반도의 핵을 그대로 남겨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군이 철수하면 핵은 남게 됩니다.” 무수단리는 이제 3만여 명의 인민군, 인민혁명군에 의해 완벽하게 경비되고 있다. 중국군이 그곳을 탈취하려면 원자탄을 써야 할 것이다. 그때 박성훈이 말을 받는다. “문제는 핵이었어요. 일본의 반발이 거세었지만 미국은 핵을 남겨두기로 한 겁니다, 대한민국에 말이오.” 박성훈은 대한민국을 한 자씩 더 분명하게 발음했다. 다시 박성훈의 목소리가 상황실 안을 울린다. “1949년, 미·소 양국군이 한반도에서 다 떠나고 난 다음해인 1950년 북한이 남침해왔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상황도 아닌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박성훈의 얼굴은 어둡다. 이제 쓴웃음을 지은 박성훈이 말을 맺는다. “한반도 운명이 주변 강대국 결정에 따라 변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말요. 자, 이제 중국 측 결정을 기다려 봅시다.”
2014년 8월6일 수요일 오전 6시 정각. 5분 후라고 했던 시진핑은 15분을 끌었다. 그래서 연료가 떨어진 미군 함재기는 34대나 항모에 돌아가 연료 공급을 받은 후에 다시 떠올랐고 중국군 전폭기 13대는 연료가 떨어져 북한 비행장에 불시착을 했다. 물론 승무원들은 인민혁명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 시진핑이 15분 안에 TV 화면에 나타났다. 화면이 켜진 것이다. 백악관 집무실 화면만 켜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양국 수뇌부의 단독 영상 회담 형식이어서 참관자로 대한민국 대통령만을 넣어서 3국 정상의 대담과 참관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바마의 지시로 전 세계 TV에 방영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이 등장했을 때 일산 대호식당의 사장 김대호도 박성훈과 같은 조건으로 TV를 본다. 그때 시진핑이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중·미 양국군의 전면 철군에 동의합니다. 또한 중국은 5000년 형제국인 코리아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히, 5000년이나?” 하고 벽에 기대앉은 처 박인옥이 궁시렁거렸을 때 김대호가 버럭 소리쳤다. “아, 시끄러! 헷갈려!” 그래서 시진핑의 다음 말은 못 들었지만 핵심은 이미 다 들었다. 개전 13일째에 휴전이 된 것이다.
2014년 8월8일 금요일 오전 10시30분. 주석궁으로 돌아온 김정일이 대국민 방송을 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부터 김정일은 방송에 직접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평양특별시는 폐허가 되었고 인민혁명군의 초기 약탈로 북한 전역이 피폐해졌지만 분위기가 묘하다. 생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정전 선언을 한 지 이틀이 지난 지금, 중국군의 마지막 부대인 제39집단군 소속의 부교연대가 압록강을 건너감으로써 중국군의 철군은 완료되었다. 미군은 먼저 미8군 소속의 2개 연대 병력을 일본으로 철수시켰는데 기지 관계상 완전 철군은 2015년 6월 말까지로 계획되었고 중국 측의 동의를 얻었다. 이동일은 김정일이 방송을 하는 바로 옆방에서 김정은과 함께 TV를 본다. 이 방송은 대한민국에서도 다 시청할 것이다. 이윽고 정색한 김정일이 TV를 똑바로 보았다. “인민 여러분, 이제 전쟁은 끝났습니다. 모두 제가 부족해서 인민 여러분께 고통과 슬픔을 드렸습니다.” 여전히 굳어진 얼굴로 이쪽을 응시한 채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앞으로 한민족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깨를 조금 부풀렸다 내린 김정일이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8월10일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박성훈 대통령과 함께 재건사업을 심도 있게 협의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재기할 능력이 있는 민족입니다.” 화면을 응시한 채 이동일이 숨을 들이켰다. 옆에 서 있던 김정은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갑자기 꾸무럭거린다. 김정일의 방한은 세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이 대위, 너, 나하고 같이 가자.” 방송실을 나온 김정일이 영접하러 나온 인사들 뒤쪽에 끼어 있는 이동일을 용케 찾아내더니 말했다. “이번 서울 방문에는 이 대장도 함께 간다.” 이제야 돌아가게 되었다. 가슴이 뛴 이동일이 머리를 돌려 김정은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김정은이 빙긋 웃는다. 천진한 웃음이다. 김정일을 따라 일행이 복도 끝 쪽으로 몰려갔으므로 이쪽에는 둘이 남았다. 김정은이 물었다. “돌아가게 되어서 좋아요?” “살아서 돌아갈 줄은 생각도 안 해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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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이 정직하게 대답하자 김정은은 다시 웃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좋아하겠네요.” 김정은도 송아현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이동일과 송아현의 방송을 주석궁에서 보았다고 했다. 김정은이 발을 떼었으므로 이동일은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2014년 8월10일 일요일 오전 11시10분. 북한 민항기가 내전으로 다 파괴되는 바람에 김정일 일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1대씩 제공한 A-300기편으로 성남공항에 도착했다. 성남공항에는 박성훈이 마중 나와 있었는데 3부 요인은 물론 주한 외교관까지 동원했고 3군 의장대와 예포까지 준비했다. 최대의 규모였고 최상급 환대다. 트랩에서 내린 김정일과 박성훈이 포옹하고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세계에 보도되었다. 일산 대호식당에 가득 찬 손님들도 숨을 죽이고 화면을 본다. 예포가 발사되면서 인사를 나누고 의장대를 사열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둘이 연단에 나란히 섰을 때는 11시35분이 되어 있었다. “아, 시발. 너무 잘혀주는 거 아녀?” 마침내 지겨운 표정이 된 김대호씨가 투덜거렸을 때 몇 명이 동의했다. 손님 중 1할쯤 된다. 그때 먼저 박성훈의 환영사가 시작되었다. 민족, 평화, 통일, 화합, 새 출발 등이 요지였는데 5분쯤 걸린 연설에서 김대호의 머릿속에 입력된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이윽고 김정일의 순서가 되었다. 식당 안의 손님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박성훈의 연설은 다들 많이 들었지만 김정일은 남한에서 처음 연설을 한다. 김정일과 얽힌 사연이 얼마나 많은가? 근래의 연평도 포격, 천안함 기습 격침 사건에서부터 대한항공 폭파, 아웅산 테러 등 헤아리면 금방 열불이 난다. 도대체 저놈이 우리하고 무슨 원한이 있기에 돈 달라, 쌀 달라 하다가 안 주면 죽인단 말인가? 이런 날강도가 없다. 지하자원도 남한보다 몇 배나 많고 해방 이전에는 남한보다 잘살던 이북이다. 그런 이북을 최빈국으로 만들어 300만이나 굶겨 죽여놓고 왜 남한에다 떼를 쓰는가? 같은 민족이라고? 그럼 같은 민족이니까 마음대로 죽이고 납치해도 되는 거냐? 그때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런 기회가 올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차분한 표정이다. 표현도 차분해서 귀에는 쏙쏙 들어왔다. 그래서 말 많은 김대호도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제 아버지 김일성을 대신하여 사과드립니다. 1950년 6월25일, 북남통일의 명분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인명을 살상했고 지금도 그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놀란 김대호가 입만 딱 벌렸을 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제가 일으킨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천안함 침몰, 어선 납치, 요인 암살 등 수많은 테러, 정부 전복 활동에 대해서도 사과합니다. 모두 제가 지시한 일이며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말씀드릴 기회가 온 것을 저는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문이 막혔다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김대호는 물론이고 식당 안의 손님 모두가 입만 딱 벌리고 있다. 그때 김정일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나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대통령과 통일 협의를 할 것입니다. 이제 외세가 사라진 지금,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내놓은 지금, 대한민국의 통일에는 장애가 있을 리 없습니다. 나는 통일을 위해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시간이지만 워싱턴은 오후 10시다. 화면의 자막으로 내용을 읽다만 오바마가 불쑥 머리를 들고 옆에 서있는 CIA 국장 리처드 번스에게 물었다. “리처드, 핵은?” 그러자 번스가 입맛부터 다시고 말한다. “무수단리 핵시설은 온전합니다, 각하.” “그럼 그것이 대한민국 차지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각하.” “일본이 당장 핵을 만들겠는데.” 그러자 번스가 정색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본래 한 국가 아니었습니까? 북한 핵이 대한민국에 흡수되었다고 일본이 핵을 만들다니요?” “그것도 말이 되지만….” “중국도 적극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바마가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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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신생 대한민국을 끌어들이려고 하겠군.”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으므로 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오바마가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난 대한민국에 어떤 미국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이번에도 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CIA 국장이라고 해도 그것까지 조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김경식 일당 중 살아남은 군 간부는 모두 중국군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래서 북한 땅은 친김정일 부대, 중립군, 인민혁명군이 남았지만 자연스럽게 원상회복이 되었다. 평양특별시 공방에서 친김정일 부대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바람에 위축되었고 간부 대부분이 전사한 상황이다. 인민해방군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새로 조직된 자위대가 치안을 맡았다. 북한의 치안 회복력은 강하다. 김정일이 서울에서 회담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정전 6일째가 되는 8월12일에는 북한 전역이 정상 기능을 회복했다. 그리고 ‘남북한 통일회담’이라고 명명한 ‘통일조건’도 하나씩 외부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新) 연방제 통일이다. 북한을 대한민국 북(北) 연방으로 포함시켜 한국에서 파견한 정부조직의 관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남북한 간 입출국은 당분간 통제되며 북한에는 대규모 공단과 대기업 수십 개가 밀려갈 것이다. 최적의 입지조건과 노동력, 지적 수준과 의욕, 거기에다 언어와 풍습까지 같은 민족이 아닌가? 더욱이 공장 부지는 무상이나 다름없고 임금은 중국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했다. 기업가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땅이었다. 이제는 북한이 대한민국의 지배를 받는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남북한 연방 합의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김정일이 다 맡긴 상황이어서 서로 호의적이었고 배려했으며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은 조항을 넣어주기까지 했다. 8월14일 회담 닷새째가 되는 날 오후는 마무리 상태가 되었다. 검토를 마친 박성훈과 김정일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박성훈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북한연방의 구심점으로 위원장께서 앞으로 도와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이제 북한연방의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 대통령처럼 상징적인 역할이 많다. 박성훈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김정일을 보았다. “위원장님께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박성훈이 이런 말을 했다면 탄핵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둘러앉은 정부각료, 자료를 가져왔던 한국군 장성까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김정일은 웃기만 했다.
2014년 8월15일 금요일 낮 12시 정각.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대형 기자회견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기자, 주한 외교사절단,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각국의 특사, 수십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다. 이윽고 연단에 대한민국 대통령 박성훈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나란히 섰다. 하늘은 푸르고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다. 그러자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다. 단상 뒤에 나란히 세워진 깃봉에는 태극기와 북한기가 흔들리고 있다. 국기를 향해 함께 목례를 한 두 지도자는 다시 정면을 향해 섰다. 그때 사회를 맡은 대한민국 문화공보부 장관 이춘식이 마이크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2014년 8월15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는 양국의 신(新)연방제 통일에 합의하여 이에 합의서를 교환합니다. 합의서가 교환되는 시점에서 남북한 양국은 대한민국 연방으로 통일되었음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는 바입니다.” 이춘식의 말이 끝났을 때 두 지도자는 다가가 서로 사인한 합의서를 교환했다. 그때 다시 이춘식이 소리치듯 말한다. “대한민국 연방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그러자 박성훈과 김정일이 다시 돌아섰고 대한민국 애국가가 울린다. 마침 바람이 조금 불면서 태극기가 펄럭였다. 단상과 단하에 모인 내외 귀빈이 모두 일어나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한다. 숭례문까지 운집한 수십만의 시민도 부동자세로 선 채 애국가를 따라 부른다. 점점 시민들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노랫소리에 울음이 섞여들었다. 일산 대호식당 안에서도 애국가가 울려나오고 있다. 김대호씨는 아예 끅끅 우느라고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한다. 애국가가 끝났을 때 따라 울던 이춘식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이상입니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대한민국 연방기는 태극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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